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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 NASA의 과학자, 우주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다
케빈 피터 핸드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2년 9월
평점 :
생명의 이치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철학에서 가장 근본되는 물음은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고 하는데, 이 질문은 너무도 심오해서인지 우리는 이 질문이 대체 무슨 뜻인지부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연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생물학은 아직 도약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생명 현상은 믿을 수 없이 드문 현상인가? 아니면 조건만 맞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생명이 발생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생물학적 우주인가?(pp.30~31)"
이 질문은 생물학뿐 아니라 모든 자연과학에 공통된, 가장 근본이 되는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질문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정의된다면, 1)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생명체를 우리가 만들 수 있고, 2) 우주 어느 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거나 혹은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비로소 첫 걸음을 떼는 게 가능하겠습니다. 저자는 주로 2)의 과제에 대해, 이제는 기술적으로 많은 애로가 해소되어 유의미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파악합니다. 책은 바로 이 전제에서 출발하여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줍니다.
<아바타>,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등 여러 흥행작을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미 1980년대 후반에 대작 판타지 <어비스>를 만들어 공개했으나 대중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 감독은 여전히심해 세계를 다룬 아름다운 영화 제작에의 꿈을 버리지 못했었는지, 2003년도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우주생물학자인 저자에게 참여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20년 전의 그 설레는 제안이 지금 이 책을 저술한 계기가 된 셈입니다.
소련이 망하기는 했으나 그간 축적한 자연과학 지식, 기술의 수준이나 양은 여전히 막강한 경쟁력을 지닙니다. 저자는 책 들어가는 말에서 러시아의 켈디시 호, 그 부속 잠수정인 미르 호 등에 탑승하여 유익한 연구를 수행했던 기억을 털어놓습니다. 책에 보면 "미르"는 러시아어로 "세계, 평화"라는 뜻이라고 나오는데,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도 원제가 "보이나 이 미르"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느낀 건, 저자 혹은 (이 책에 언급되는) 동료 과학자들처럼, 이런 우주학자, 생물학자 들은 영위하는 직업도 물론 그 분야이지만 실제로 자신의 연구 대상에 대해 참으로 비상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단계보다 한 레벨을 뛰어넘는 성과는, 바로 저런 특별한 열정이 빚는 상상력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과학자가 쓴 책은 커뮤니케이터들이 쓴 책과 달라서, 일반 독자가 바로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내용을 담는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렇지도 않아서, 예를 들어 물은 지구상의 다른 물질과 달리 고체(얼음)가 되면(응고) 오히려 부피가 커지며, 섭씨 4도에서 부피가 가장 작아집니다. 바로 이 성질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강이나 바다 밑에 생물들이 얼어죽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이치를 쉽고 재미있게 저자는 설명해 줍니다. 이런 특이한 성질을 물이 갖는 이유는 수소 결합 구조 때문인데, 이런 내용은 늦어도 고2때 배우는 사항이지만, 이 책이 훨씬 이해가 쉽게끔 풀어 주고 있네요.
우리가 우주에 대해 현재 파악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은, 알고 보면 100% 정확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여태 지구 안에서, 위에서 얻어 낸 물리 법칙이 지구 밖에서도 타당하리라고 가정한 후 그리 추론한 정도죠. 이런 명제들은, 향후 정밀 실측과 연구가 더 진전됨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p92를 보면, 정말 다행스럽게도 여태 과학자들이 추론한 바 상당수가 과연 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저 얼음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고 지구에서 측정한 분광 결과가 옳았음을 확인했다." 분광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뒤 p190 같은 곳에서 다시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또한 얼음의 존재에 계속 주목하는데, 책 앞부분에서 물의 온도에 따른 밀도 변화를 지적하고, 겨울에도 얼음 아래에 많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신비를 자꾸 지적한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구의 얼음 밑에 그토록 많은 생명체가 살 수 있다면, 그런 일이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우로파) 얼음 바다 맡에서도 있지 말라는 법이 없죠.
우리는 지저(地低)를 수천 km까지 파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핵, 내핵의 구조와 성분이 이러이러하리라고 자세히 추론합니다. p119를 보면 관성모멘트 식을 이용해서, 유로파의 내부 상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일러스트를 통해 잘 설명해 줍니다. 물리학 개념인 모멘트는 대략 고2 이과 과정에서 배우는데, 역시 이 책은 교과서보다 훨씬 알기 쉽게 독자를 가르칩니다. 갈릴레이가 정리한 관성이라는 개념(중학교 때 배우는 지극히 쉬운 내용)이 얼마나 근본적인지, 또 얼마나 많은 내용을 품었는지 다시 숙고해 보게도 됩니다.
나사는 1969년에 달로 지구인을 보낸 이후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이후 화성, 금성 등에 대고 비슷한 업적을 못 남겼다는 이유로 1969년의 업적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이들(음모론자들)이 많은데, 그런 천체들에 대한 연구와 탐사는 난이도 레벨 자체가 다르므로 시간만 지난다고 단순 비례적으로 성과가 자동으로 나오는 건 아닙니다. 벌써 이런 대중서가 쓰인다는 자체가 그간 엄청난 성과가 쌓였기에 가능한 거죠. 이 책 2부 6장에서 인류, 아니 과학자들이 적어도 유로파에 대한 이해를 반 세기 동안 엄청나게 넓혔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행성계에 존재하는 물의 총 부피는 지구의 20배가 넘을 수도 있다(p181)." 이 책은, 순전히 물 하나의 화두 하나만으로 첫걸음을 떼어 외행성 전체로 논의를 확장합니다. 그만큼 우리 지구 생명체에게 물의 존재는 핵심적입니다. 1996년 시사주간 TIME은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했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 다 이런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물이 일단 있다면, 그곳으로 우리 인간이 이주하여 거주 공간의 기반을 마련할 최소 근거가 생기는 셈이니 말입니다.
"행성이든 아니든 명왕성은 정말 놀랍다... 얼음의 천체이나, 한 가지 종류의 얼음이 아니다.(pp.196~197)" 그러나 우리 독자들은 의문을 품을 만합니다. 그렇게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얻어 살 수 있겠는가? 저자는 행성(아니지만) 내부에서 방사성 붕괴가 일어나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암석의 부족함은, 우리 지구와는 상당히 다른 종류라는 다른 물, 얼음의 여러 성분이 이를 보충해 준다고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상상력은 이처럼 한계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 종이 처음 생길 때부터 지금 같은 지능과 손재주를 가진 게 아니었습니다.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머리도 따라서 좋아졌고, 척박한 자연의 도전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골디락스라는 말이 암시하듯, 대체 이런 아름답고 온화한 지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살고 번영할 수 있을까 싶기만 하지만, 사실 내내 에덴 동산처럼 낙원이기만 했다면 아직 나무 위 배부른 원숭이 처지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그저 포화상태 지구를 탈출할 필요만 갈급한 게 아니라, 다른 행성 다른 위성에 도달하여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습니다. 우주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더 잘 알아야 할 이유는 여기에도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