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상상력 공장 - 우주, 그리고 생명과 문명의 미래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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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우리가 상상력을 발동해 봐도 여전히 신비와 모순이 남는 곳이 우주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착상 이래 시간과 공간이 더 이상 분명한 선을 긋는 존재 양상이 아님도 밝혀졌으므로 "곳"이라는 표현에도 어폐가 있습니다. 저자 권재술 교수께서는 시원시원하면서도 엄정한 서술을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아무리 상상력을 발동해도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라는 대상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인과관계에 있는 두 사건 순서는 어떤 기준계에서 봐도 바뀌지 않습니다(p49)." 기준이 바뀌면 모든 게 바뀝니다. 그 와중에, 인과관계라는 족쇄가 채워진 두 사건(혹은 그 이상)은 부동의 순서를 가질 뿐이라는 게 놀랍습니다. 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엔트로피 제2 법칙에 의해 설명됩니다. 혼란과 무질서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뿐, 그 반대의 진행은 지극히 어렵다는 뜻이죠.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우리처럼 과학에 무지한 독자들에게도 시간의 역행이 왜 불가능한지 직관적으로 잘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책 p52에서는 "시간을 역행하는 전자"로서 양전자가 정의됩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역설이고 모순이자 개념붕괴에 가깝지만 수학적으로는 이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죠. 수학에서는 이것 외에도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전혀 감 잡을 수 없는, 터무니없이 여겨지는 패러독스가 얼마든지 도출되며 언제쯤이나, 또 어떤 방식으로 물리학적인 해석이 가능해질지가 궁금해집니다.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고 남은 것이 바로 중성자별입니다. 회전하고 있는 중성자별은 주기적인 빛인 pulse를 냅니다(p97)." 여기서 저자는 맥동성, 블랙홀, 중성자별, 나아가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설명이 아직도 그저 신비하게 들리는 이유는 중력, 중력이라는 힘, 혹은 장(場)의 정체가 아직도 모두에게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이 역시 시공간을 초월해 부정(父情)으로 전달되는 데이터에 기반하여 마침내 궁극의 방정식, 포뮬라가 완성되지만 말입니다. 

모든 현상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걸까요, 혹은 확률분포함수로 해석, 전개될 수도 있다는 걸까요? 이런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다중우주론이 도출 가능합니다. 또 요즘은 살짝 한물간듯한 끈이론 역시 이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저지 권재술 교수는 "어느 다른 우주 한귀퉁이에서 다른 내용으로 책 한 권을 쓰고 있을 또다른 권재술(p165)"이란 얼마나 흥미로을지에 대해 신 나게 이야기하는데 이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암울한 비전이긴 하지만 우리 우주는 멸망으로 향해 치닫는 중입니다. 다만 개체의 생명이 너무도 짧기에 그 파멸을 끝내 목격하거나 관여, 참여할 수 없고 따라서 무심해하거나 초연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개체의 생명뿐 아니라 종(種)의 지속도 찰나임은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꼭 우주의 멸망만 환기하는 게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의 위기(로 말미암았던 대멸종), 은하 단위에서의 종말까지도 거론하며 너무도 덧없고 미미한 인간의 역량 한계 때문에 이 모든 심각한 이슈가 그저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는 부조리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무한한 시간이야말로 진화의 무기(p264)" 사실 진화론의 많은 난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건 진화의 호흡이 너무도 길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긴 시간의 단위라면 사실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반면 찰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의식이란 것의 실체는 또 무엇입니까? p320에서는 로저 펜로즈의 견해를 인용하여 의식의 정의 네 가지를 소개하지만 사실 이 외에 또 어떤 정의가 가능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주엔 우리 말고 또 어떤 문명이 존재하겠으며 다이슨 구(球)의 신비란 얼마나 엄청납니까. 인간은 겸허하게 한편으로는 내적 성찰을, 다른 한편으로는 광활한 우주를 향해 지적인 시선을 둘 필요가 있으며 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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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사용법
캐럴 해이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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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페미니즘은 공부를 많이 해야 그 본령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한 분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값싼 행동주의나 공명심, 혹은 출세지향적 매명만을 동기로 삼은 이들이 판을 치는 통에 본연의 취지가 많이 왜곡되고, 이에 대한 거센 백래시가 무분별하게 일어나서 대립하는 통에 아예 수습불가의 난맥상으로 귀결된 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무엇을 위한 논쟁이요 다툼이었는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하다고나 하겠습니다. 

이 책은 캐럴 해이 교수의 다소 유쾌하고 가벼운 저작이지만 저자 본인부터가 현재 논쟁의 한복판에서 허활약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매 챕터 말미에 달린 많은 주석만 봐도 알 수 있듯 주장이나 개념마다 일일이 출처를 명기(원주)한 진지한 저술인데다가 아직 주제의 본령에 낯설어하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많은 설명까지 붙은(역주), 술술 잘 읽히지만 마냥 쉽게 읽어내려갈 수만은 없는 공붓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도 진화심리학 논의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 요즘입니다. p28을 보면 양성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진화심리학 역시 하나의 설명을 제공하는데 저자는 꼼꼼하게도 데이빗 버스 같은 이의 논거를 정확히 인용해 가며, 이들이 생물학적, 사회학적 기원에서 현상을 설명하여 듦을 전제한 후 그 논파의 영점을 조준합니다(^^). 박학다식하고 영민한 저자의 책은 이래서 재미있습니다. 그 주장의 방향성과 결론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논쟁에 있어서는 일단 자신이 공격하려는 진영이 정확히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알고 난 후 공박이 이어져도 이어져야 하니 말입니다. 똑똑한 이는 반박이건 논파건 재치있으면서도 유효하게 이끌어가기에 (소속 진영에 무관하게) 보는 이들마저 유쾌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빌 - 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등장 이후 이른바 문화투쟁이 격화되어 좌우 양 진영의 갈등상이 화해 불가능의 국면까지 치달은 판에, 2010년대 들어서는 트럼프 같은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까지를 얻게 되어 이제 이 싸움의 종착점이 어디가 될지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책에도 트럼프나 마이크 펜스 같은 인물들이 자주 인용되며 적기(eneny flag)의 좌표를 더욱 선명히 잡습니다. p13의 펜스 아저씨 운운은 단순히 정치인 이름의 거명이 아니라 이른바 "펜스 룰"로 불리는, 반대 진영으로부터의 거센 백래시를 상징하는 주장(원칙)을 신랄히 비꼬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미투라든가 이제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페미니즘 용어, 사건, 개념들은 이 책 속에서 더 쉽게, 더 정확하게 풀어져 설명되며,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지난 세기 활발히 저술, 행동한 페미니즘의 시조새도 자주 등장하는 등 읽디 보면 뭔가 사상의 근본이 잡혀 가는 느낌입니다. 섹스, 강간, 포르노그래피 등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선명하고 정통적인 관점을 유지하되, 적대적일 수 있는 독자들에게조차  충분한 공감, 적어도 반대의 유보를 끌어낼 만큼 지적이고 꼼꼼하게 논의를 전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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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상을 복구하라 - 리테일 아포칼립스 탈출을 위한 소매상 혁명
마크 필킹턴 지음, 이선애 옮김 / 동아엠앤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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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 아포칼립스" 아마존닷컴이나 오프라인 대형 매장들이 점점 소비자를 향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소매점이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트렌드입니다. 이러니 소매상의 앞날이 종말로 치닫는다는 비관적 전망이 대세를 당연히 이룰 법합니다. 소매상이 사라지면 많은 자영업이 필연적으로 소멸하고 그들이 동네에서 창출하는 이런저런 소소한 일자리도 따라서 없어지겠습니다. 그러니 소매상의 부활 여부는 그들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지역, 국가 단위 거시경제의 활력이 달린 이슈라고도 하겠습니다. 

한국은 1990년대에만 해도 시중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지점을 늘리고 직원들을 고용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경제가 고성장 가도를 달렸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나 외형 불리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거품이 잔뜩 끼게 되어 결국 외환위기 후 가혹한 구조조정을 맞게 되었습니다. 필킹턴의 이 책 p52 이하에도, 21세기 들어 가뜩이나 핀테크의 발달로 시중은행 지점을 줄여나가던 터에 코비드19의 유행까지 맞아 군살을 팍팍 빼나가는 굴지의 영국 은행들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런 쟁쟁한 시중은행들은 그 자체가 소비자 상대의 소매업일 뿐 아니라 거리의 소매상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공생공존하는 핵심 인프라 구실도 합니다. 

테슬라나 다이슨 같은 업체들도 가급적이면 유통구조를 단순화하여 중간마진까지를 자신들이 다 먹으려 들거나, 그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양보하여 친밀도와 충성도를 높이려 듭니다. "언뜻 보면 이런 채널들(D2C)이 왜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는지...(p77)" 저자는 여기서 이런 메이커들이 직접 소비자들과 거리를 좁힐수록 이익률만 더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딩 과정까지를 다 세밀히 통제할 수 있는 장점이 더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이런 역할을 그간 소매상들에게 맡겨 둔 브랜드들은 코비드19를 겪으며 소매상이 질식해 나가던 시절 시장 지배력을 타 업체에 비해 더 뚜렷이 잃어나갔다고까지 합니다. 이러니 소매상은 그 존재 의의를 더 상실해갈 밖에요. "너희들이 일을 못하니 앞으로는 우리가 다 챙겨야겠다" 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소비자는 생산자로부터의 거리가 좁아짐에 따라 그저 가격면에서만 유리해진 게 아니라 자신이 주도하고 더 대접받는 소비를 즐긴다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러니 리테일 아포칼립스가 더욱 가속화하는 게 당연합니다. p133에는 이런 절박한 인식이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되었는데, 

1) 이커머스 혁명 2) 소비자 리뷰, 인플루언서 의견이 주도하는 소통 혁명, 3) 생산 유연성 제고 혁명 

이 세 가지의 "혁명"이 진행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면 소매상들은 이런 비관적인 추세에 맞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소매상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신해야 할지 비전과 대안을 제시합니다. 우선 퍼포먼스 마케터 유형이 있는데 이들은 이른바 깔때기 꼭대기/중간/하단이라는 세 층의 소비자 구조에 주목하여 각각 다른 대응전략을 취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마케팅도 여전히 유효하고 전망이 밝습니다. p163 이하에 소개되는 기업 파타고니아의 딘 카터 부사장은 회사에 대해 "체크인은 있어도 체크아웃은 없는 호텔 캘리포니아(히트곡 가사에서 딴)"라며 그 자긍심을 표현합니다. 코비드19로 특히 타격을 받은 분야가 패션 섹터인데 이들의 윅기 돌파 전략은 디지털화입니다. 실제로 도매상은 물론 많은 소매상들도 온라인에 블로그나 몰 페이지를 따로 운영하는 게 알게모르게 이런 인식이 확산된 결과입니다. p229를 보면 어떻게 이커머스와 쇼루밍이 병행되는지 그 치밀한 전략 사례가 잘 설명됩니다. 독창성과 쇼맨십은 여전히 밀접한 상호의존적, 생산적 관계라는 흥미롭고도 날카로운 지적(p237)이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잘 아는 베스트바이는 원래 오디오 전문점이었고 한때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으나 토털 테크 서포트라는 독특한 프로그램 운용 등으로 소비자에게 더 밀착 접근을 시도하여 오늘날에 이릅니다. 

책 후반부의 여러 성공 사례를 보면 세상의 급변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확인이 가능하고 또 그 성공담을 보며 학습과 대리만족, 비전 형성에도 도움을 받습니다. 역시 현대 기업은 고객 체험 기회의 확대와 진정성 있는 소통이 중요한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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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 입문자를 위한 철학
김현강 지음, 안스가 로렌츠 그림, 김현강.신성엽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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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시대, 마르크시즘을 위시한 그 모든 진보 이념 추수 진영에 대해 하나의 대안 체계를 제시한 개척자로 각광받았고 두루 종합자 노릇도 겸했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많은 지지자를 거느린, 가히 좌파의 락 스타라 불릴 만한 철학자(물론 일부로부터 미움도 받습니다만)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입문서입니다. 불과 86쪽 분량이지만 작은 폰트의 텍스트가 지면을 꽉꽉 채우며, 한 글자 한 문장마다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고, 매혹적인 그래픽과 일러스트가 함께하여 정녕 고등학생 정도의 이해력만 갖춰도 쉽게 읽어가며 지젝 사상의 핵심만 쏙쏙 머리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진보 사상에 대한 거악의 안티테제로 등장한 게 파시즘과 나치즘이었고 히틀러가 패망한 후에도 그가 악랄하게 유럽인들을 혐오라는 깃발 하에 하나로 뭉치게 든 수단이었던 반유대주의였습니다. 지젝은 오늘날 유럽에서 뜻밖에 다시 반유대주의가 세력을 얻어가는 움직임에 대해 크게 우려합니다. 지젝은 이 시대착오적인 안티세미티즘이 포퓰리즘과 결합하여 더욱 위험한 양상을 띠며 근로대중을 오도, 분열시켜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결국 시대의 발전을 따르지 못하고 실패한 담론으로 판명난 유물에 지나지 않을까요? 지젝은 이에 대해 한 단계 더 올라선 지평에서 시원한 답을 내어놓습니다. 이론(이데올로기)이 있고 이것의 결과물인, 라캉적 의미에서의 상징계가 있습니다. 상징화의 자장에서 벗어난 부분이 바로 실재계이며 이는 타자의 영역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지젝의 결론입니다. 물론 노동자와 지식인은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갭을 최소화하는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것이 언제나 당위의 조화를 교란할 수 있다는 인식의 겸손함을 유지해야 하죠. 

개인적으로 지젝 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주체로의 귀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클함을 가장한 퇴폐 퇴행의 자포자기 넋두리에 지나지 않은데, 지젝은 당시 그 불리한 정세 속에서 용감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을 공격했고 그러면서도 데카르트적 반동회귀는 단호히 거부하며 "코기토의 잊힌 뒷면, 즉 광기와 부정성(p50)"을 강조하는 영민함을 보였습니다. 이 부분 논의는 정말 탁월하며,  장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코기토 논급 파트 같은 건 지젝의 유장함과 논리성 앞에서 완전히 빛을 잃어버린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싶네요. 

뒤셀도르프 대학 김현강 교수님이 독일어로 저술했고 본인이 직접 한국어로 이렇게 번역에까지 참여했습니다(다른 공동 번역인은 신성엽 연대 교수). 앞서도 말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 안스가 로렌츠의 묵직한 선으로 표현된, 각 텍스트에 적합한 일러스트들 덕분에 더 명쾌하고 더 직관적인 독서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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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질서 - 우주 안의 나, 내 안의 우주
줄리앙 샤므르와 지음, 이은혜 옮김 / 책장속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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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파동이다" 입자/파동의 이분법이 확립된 후에도 유독 빛만이 이중성의 역설을 드러내어 난다긴다하는 학자들 사이에 극심한 논쟁이 수백년을 이뤄졌습니다. 이 난맥상은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결되었는데 그렇다 해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물질이나 현상은 입자/파동 어느 한 범주에(만) 넣어야 더 매끄럽게 설명이 됩니다. 하지만 이 책 저자는 아예 입자성을 거부하고 파동 일원론으로 해명을 시도합니다. 

이 책은 정말 특이한 게, 저자분 외에도 기획자분들이 따로 있고, 저자는 프랑스인이지만 한국인, 일본인 전문가들, 제자분들도 참여했습니다. 저자 줄리앙 샤므르와는 파리제5대학, 우리 한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소르본대학(p14)이라 아는 명문대를 졸업한 분이고 정말 특이하게도 일본어, 중국어 등 계통이 완전히 다른 동아시아의 여러 언어들에도 차츰 통달하게 된 경력을 가졌습니다. 어찌보면 언어 학습을 한 가지 방법으로 삼아 사람 사이의 소통에 더 능해지고 마침내 우주를 관통하는 섭리에까지 도달한 분인데 저자의 입장과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고 않고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런 방법론부터가 확실히 흥미롭기는 한 듯합니다. 

유독 가족 간의 사이가 좋은 이들이 있으며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외조부가 폐암으로 사망한 후에도 모친은 마치 죽은 자신의 아버지가 곁에 여전히 머무르는 듯 느꼈다고 합니다. 이를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어떤 기(氣) 같은 걸로 여겼고, 이에 더불어 저자분은 외계인의 능력 같은 걸 통해 파동의 틀로 해명하려 드는 것입니다.   

"영적인 체험"은 비단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강조해 오던 것이며 다만 저자분 입장의 독특한 개성은 만남, 방문(외계인의) 등 어떤 접촉, 소통의 계기를 중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외계 존재들과의 encounter에만 의존하면, p98에 나오듯 일종의 분리불안, 혹은 깨달음의 리셋 등을 걱정할 수밖에 없죠. 참된 각성은 바깥의 그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튼 이처럼 함께하는 파동의 든든함을 저자는 "집합의식"이라 부릅니다. 깨달은 자가 체험하는, 우주와 같이 호흡하는 듯한 경지겠죠. 

"파동이 강해지면 물질적인 차원을 초월한 정보에 쉽게 닿을 수 있었고...(p123)" 개체의 자각이나 인식은 어차피 유한합니다. 내가 자그마한 내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으려면 "머릿속에서 그 누군가와 대화하는(p149)" 듯한 초월적 체험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거겠죠. 이런 체험이 조각조각 떨어진 감각이나 기억에 머물지 않으려면 어떤 "적당한 관점(p194)"이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 체험을 하는 우주이다(p203)"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할 때 우리는 마음의 평안도 찾고 우리들이 여태 다른 의도에서 추구해 오던 다른 소중한 가치들도 더 근원적인 의의를 부여하며 좇아갈 수 있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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