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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ㅣ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평점 :
2년 전쯤 현대 미스테리 작가 루스 웨어의 장편 <헤더웨어 저택의 유령>이 책좋사에 소개된 적 있는데 바로 이 고전,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고 작가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시카고플랜 여섯 번째인 이 책은, 같은 기획의 다른 작품들처럼 비교적 쉽게 읽히고, 맨앞에 등장 인물들 간의 관계도가 제시되어서 혹 사람 이름 헷갈린다 싶을 때 바로 돌아와 찾아보기가 편합니다. 물론 이 작은 나오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저 관계도가 여튼 작품에 처음 진입할 때의 서먹서먹함을 걷어내기에 좋게 쓰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가정교사가 대저택에 입주하여 후한 보수를 받아.. 까지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생각나기도 하고, 추가로 좀 이상한 애와 그 아빠한테 걸려서 여선생이 고생하는 건 도일 경의 홈즈물 <너도밤나무 저택의 모험>과도 닮았으나 이런 건 설정상의 공통점이며 이 고전의 진가는 점차 패닉 상태에 빠지는 여성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그리고 독자들에게 공포감을 스멀스멀 선사하는 놀라운 이야기 솜씨에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도입 액자에서 캐릭터이기도 한 더글라스가 "당신들 만약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으면..."이라며 마치 책 밖의 독자들 들으라는 듯 너스레를 떠는 대목이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거론한 고전들과 이 명작이 또하나 다른 점은,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더글라스가 부유하고 젊고 매력적인 남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꼭 그렇진 않지만, 영 앤 리치이자 노블 메일이 예쁜 젊은 여성 하나를 자기 세력권 안에 두고 재기불능으로 파멸시키면서 쾌감을 느끼는 진행의, 어찌 보면 원조격이 이 작품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택 자체를 더글라스의 활유(personifying)로, 꼬마 마일스를 더글라스의 분신으로 혹 본다면 말입니다. 앞서 거론한 고전들은 모두 영국 작가가 영국 배경으로 세팅한 작품들이며, 심지어 이 작도 작가는 미국인이지만 배경은 영국입니다(햄프셔, 런던...).
가난한 시골 목사의 딸이긴 하나 여교사는 자긍심에 가득한, 귀엽고 낙천적인 인물입니다. "나의 현명한 사리 분별과 높은 교양에서 비롯된 자율적인 선택이, 내게 이 일을 맡긴 사람에게 기쁨을..(p43)" 같은 구절이라든가, "(더글라스 주인님이) 젊고 아름다운 가정교사를 선호하시는 것 같던데 말이에요!(p36)"라며 완전 자뻑 모드로 가정부 그로스 부인(처음에 다소 무기력한 듯 보였으나 결국 음흉해지는)한테 힘차게(?) 선언하는 걸 보면 그 천진난만함에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레베카>에서의 가정부인 댄버스 부인이 엄청 무서운 캐릭터인 것과는 대조되죠.
이 작은 1961년에 흑백영화로 만들어진 적 있는데 <공포의 대저택>입니다. 가정교사 전문배우(?)인 데버라 커가 주인공이며 영화에서는 이름이 있습니다. 반면 이 소설(원작)에서는 주인공인데도 끝까지 이름이 안 나오며 거꾸로 영화판에서는 고용주 더글라스가 그 이름이 안 불립니다.
제가 예전에 이 고전을 읽을 때에는 주인공 여교사가 한참 동안 만족감과 사명감에 불타는 장면이 이어졌던 듯한데... 이번 새 번역에서는 p53에서 벌써 주인공이 유령을 목격하네요. p111에서는 그녀가 여태 좋게만 보았던 ooo가 드디어 그 본색을 드러내죠. "자정에요. 나쁜 아이가 되기로 마음먹으면, 저는 제대로 나쁜 아이가 되거든요!(p117)" 패닉 상태에서도 주인공 여교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와의 약속(아이들 일은 철저히 교사 선에서 처리하며 결코 더글라스에게 연락하지 말 것)을 지킴으로써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비천한 나의 매력을 이용하여 그의 관심을 끌려고 수작을 부린다고 오해하여 행여 나를 우습게 여기고 경멸하지 못하게..(p124)" 같은 부분은 좀 놀랍기까지 한데 다소의 열등감도 감지되지만 이 여교사의 심지가 그 나름 얼마나 단단한지도 알 수 있죠.
"오명과 불행을 뒤집어쓴 내 전임자가.. 지금 침입자는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내가 아닌지... 이 끔찍하고 비천한 여자야!(p144)" 그녀는 현명하고 섬세하기에 그로스 부인 따위가 팩트를 뭐라고 왜곡하건 간에 진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혼자 힘으로 감을 잡기 시작합니다. 마일스가 아무리 그녀의 마음을 매혹하려 들어도 말입니다. "다윗(책에는, 딱히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다비드라고 표기되네요)이 사울 왕을 위해 연주를 제안할 때도 그처럼 매력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p161)." 이런 표현은 참 기가 막힙니다.
그 모든 불길함과 소름끼치는 환영 뒤에 숨은 진상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과연 죽은 oo oo와 미스 제셀의 원혼들이 마일스와 플로라에 빙의라도 한 것일까. 혹은 이 모든 심리적 효과를 두 피용인에게 심어 주려고 영악한 아이 두 명이서 꾀한 치밀한 음모일까. 답은 독자가 각기 알아서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아, 부디, 세상의 젊고 착하고 경험없는 여성들이 행여 못된 놈들의 꾐에 빠져 몸을 다치고 마음을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남자라서 더 잘 알지만 이 세상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니.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