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생각의 힘 - 성공하는 리더는 어떻게 변화를 이끄는가
이학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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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만나면 (내가) 충전이 되는 사람과 (반대로) 방전이 되는 사람(p4)." 이 구절은 여러 가지로 새길 수 있겠습니다. 후자는 속된 말로 "기가 빨리는 사람", 나의 에너지를 약탈해 가는 나르시시스트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남 방전을 열심히 시키는 중인데도 겉으로는 충전을 시켜 주는 듯,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지능 낮은 사기꾼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 이학영 논설위원은 전자를 긍정주의자로, 후자를 부정적 관념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해석하며,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정주영 현대 창업자를 듭니다. 이 책에 실린, "왜 중동이 건설의 천국인가?"에 대한 정 창업자의 근거를 읽어 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개척자의 마인드가 어때야 하는지 어떤 계시를 받는 느낌이 다 들죠. 

"연설은 최대한 길고 어려운 말을 동원하는 게 당시의 관행이었다(p64)."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3년 게티스버그 국립묘지 봉안식에서 이런 당대의 무익한 관념을 깼습니다. 그 결과물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간단한, 그러나 심오한 몇 마디 속에, 내전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가 반드시 구현하고자 했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들어 있습니다. 그 시대정신은 심지어 160년이 지난 지금에조차도 유효합니다. 저자는 현대 연설문 작가인 필립 콜린스의 말을 인용하며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문일지에 대해 다섯 가지의 원칙(p66)을 제시합니다. 

위대한 리더, 혹은 경영자라면 자신의 개성과 신념(그게 모범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전제 하에)을 자사의 전 직원에게 그대로 이식하고 확대 재생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연 그래서인지 창업 수십년이 지나고 심지어 창업자들이 사거한지 세월이 지났어도 현대나 대우(그 일부)는 조직 자체가 창업자의 개성대로 여전히 움직이는 듯한 느낌도 줍니다. 반면 다른 기업은 경영 최상층부와 직원들이 따로 노는 듯한 행태도 보입니다. 책에서는 갤럽에서 경영자로 무려 32년을 봉직하고 올해 퇴임한 짐 클리프턴 회장의 말을 인용합니다. "자기 인식이 높아지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수고를 멈출 수 있다. (또)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된다(p81)." 

경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스승 노릇을 해 줄까요? 그런 경우가 많겠으나, 오늘날처럼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고정관념 제조기'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경험의 틀 밖에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p132)." 이런 교훈들은 결론 그 자체가 아니라 추가 검증이 필요한 가설 정도로만 간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능력 자체는 뛰어날 수 있으나 그 아이디어를 바르게 평가하는 능력은 매우 갖기 어렵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되네요.  

요즘 한국에서도 x덤 카페가 느는 추세이지만 하다못해 포커 같은 도박이라고 해도 과연 운에 의해서만 결과가 좌우될까요? 고수들은 결코 직관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고(물론 그들은 직관도 뛰어납니다만) 상대방의 순간순간 변화하는 표정이나 내 새로운 패를 보고 이미 세웠던 전략을 재빨리 수정합니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수를 계산해 내고 이를 행동에 옮기기 때문에 그토록 높은 승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물론 포커는 여전히, 높은 정도로 운에 좌우되는 게임입니다만).  

"부정적인 감정의 수명은 단 90초에 불과하다(p229)." 그런데도 우리는 순간 치밀어오르는 분노 등을 참지 못하고 표현을 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보거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래서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우리의 집중력(p247)은 금붕어와 비슷한 9초 정도라고 합니다. 이 9초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 못 해서 우리는 그렇게나 자주 대사를 그르치곤 하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인생 장기 플랜을 세우며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관리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더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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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근대적 통치성 다층적 통치성 총서 3
이동수 엮음 / 인간사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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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전근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이 속성이 통치성에 끼치는 영향은 어떠할까요? 한국정치학계의 거두인 이동수 교수님이 정기적으로 펴내시는 여러 정치학 총서들(우수한 논문등을 함께 엮은)은 재야의 아마추어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사이트와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19세기 서세동점이라는 불행한 역사적 체험을 겪으며 동양은 비자발적으로 근대화의 호된 과정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과연 근대성은 21세기인 지금 각국의 정치제도와 이념 속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을까요, 아니면 혹 서양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자 모델을 어느 정도 형성하여 대안을 마련이라도 해 가는 추세일까요. 

"유학에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지식인들은 불교와 도교의 세련된 교설에 매료되었던 것이다(p16)." 사실 유학은 특유의 객관적 관념론에 집착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제기되던 여러 형이상학적 질문에 마땅한 답을 내어놓지 못했습니다. 물론 애초에 비생산적인 괴력난신 담론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유가의 특장이기도 했습니다만 문제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하는 방식은 담론 생산에 종사하는 지식인 진영 자체의 자괴와 불만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이처럼 외부(불, 선)로부터의 도전이 이어지자 이에 응전격으로 나온 것이 정호 정이 형제, 주돈이, 그리고 주희의 성리학이었습니다. 

사실 성리학은 한반도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행 과정만 봐도 그 당시로는 철저한 자체 개혁과 근대성을 지향한, 대단히 혁신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단지 왕뿐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문명화를 통해 평화(와 공자가 이야기한 도의 경지, 치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다(p33)." 책에서는 당시 신진 사대부의 대표적 인물들이었던 조준, 권근 등의 논변을 소개하며 직전 수 세기 간에 걸쳐 일어났던 외환(원, 홍건적, 왜구)과 내적 모순(권문세족과 사원의 착취)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민생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지 깊이 고민하던 정치 상층부의 고민을 조명합니다.  

또 정도전의 정치 비전도 소개됩니다. "정치의 두 대강(大綱)을 재상의 조정(coordination)과 간관의 비평(critique)으로 보았던 것이다(p49)." 사실 이미 당시로부터 오백 년 전인 고려 초창기에도 재신과 추신의 합좌(도병마사)로 국정이 운영되긴 했습니다만 추신은 간관과는 또 포지션이 다릅니다. 정도전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정치란, 이처럼 왕의 절대권이 재상의 대행(代行)과 간관의 끊임없는 견제 속에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민생의 과제가 장애 없이 완수된다고 여겼고 이것이 14세기 사대부가 지향했던 근대성의 본체였겠습니다.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를 우리 나라 신문의 효시로 보통들 간주합니다. 책 p116에서는 한성주보로 재간된 언론 지면에 실린 논설을 인용하며 박영효, 유길준 등의 지식인, 관료가 국제 정세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서술합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정치학은 이상주의 담론과 현실주의 페리스코프가 영원한 길항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하는 학문인데, 이 당시에는 세계 각지에서 충돌하며 각축을 벌인 열강의 침략이 어느 오지에도 예외를 두지 않고 사방에서 마수를 뻗치던 시기라서인지 다들 현실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인 주장을 펼치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일본은 자체 역사에서 거의 예외없이 무사도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853년 매슈 페리 제독의 강제 개항 요구를 기점으로 막부의 위태위태하던 권위가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이른바 명치유신이라는 게 완수되고 나서는 신시도(신사도. 神士道)라는 게 국혼(國魂)으로까지 내세워져 "구 무사계급이 노정했던 치태(痴態)"(p177)를 전면적으로 극복하는 대안으로 숭앙되었습니다. 이런 그들 특유의 의기양양한 행보는 러일전쟁의 승리를 맞아 그 절정에 이릅니다.  

이 책(논문집)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삼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는 개념은,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듯 미셸 푸코의 체계에 그 연원을 둡니다. 특히 김정부 교수의 인도 재정 예산 제도에 대한 분석에서 예의 푸코 이론은 낱낱이 적용되어 현대 인도 정부의 경제 부처 작동 원리를 해부하는데 특히나 아시아 국가 중 혹독한 식민 통치를 받았던 인도가 20세기 독립 과정을 거치며 근대성을 어떻게 내재화해 가는지를 치밀하게 조명합니다. 

중국은 이와 대조되게도 민본과 민주 사이에 노선의 혼란을 겪으며 포퓰리즘와 권위주의 사이를 방황하다 끝내 전체주의 체제 하의 통일로 귀결되었으며 터키는 제국이 붕괴되고 국가 소멸의 위기를 맞았으나 케말 파샤라는 구국 영웅의 노고 덕에 이슬람 구태를 청산하고 근대화 루트를 걷다 최근 에르도안의 기만적 독재로 다시금 퇴행합니다. 동양은 이처럼 갖가지 양태로 제 나름의 근대를 소화하며 고유의 통치성을 표현하기에 그 귀추가 각별히 주목된다고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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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로 만나는 서양철학 - 지금 우리에게 서양철학은 무엇일까?
박병기.강수정 지음 / 인간사랑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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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라 함은 원래 선(禪) 불교의 참선 주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삶의 무수한 난관들 혹은 관심사들이기도 하며, 이런 많은 화두들이 알고보면 철학, 철학하기의 동기, 단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 속뿐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는 문학, 영화, 드라마 안에도 이런저런 화두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며, 이 책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맥락 속에서 그 어렵다는 서양 철학의 주요 테마를 친근하게 풀어 줘서 유익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는 꿈 많고 상상력 풍부한 소년이었으나 학교에서 강요하는 라틴어 문법으로 대표되는 살인적인 공부에 지쳐 끝내 죽음을 선택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잠시 인용하며, "나 자신을 알기,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대해 자세히 풀어 줍니다. 소크라테스는 사실상 서양 철학 본령의 개조이며, 그가 전개한 담론의 핵심이 바로 저것입니다. 

이데아, 즉 모든 현상과 가치, 지향에는 이데아, 즉 가장 순수하게 완성된 형태가 있고, 이보다 좀 못하거나 타락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선(善)의 이데아"를 최정점에 올려놓는 방대한 이롬 체계를 후학들에게 폂쳐 보였고 서양 고전 철학은 사실상 그에게서 본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정과 귀족정 사이의 조화를 주창했으며 특히 군인과 통치자가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한 지론이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행복, 환상에 이어 세번째 화두는 운명이며 저자들은 이 화두를 스토아 학파의 이론을 통해 설명합니다. 스토아 학파는 우리네 인생의 덧없음을 내다보았기에, 파토스(정념)로부터 로고스로의 도약, 초극을 강조했고, 자연법의 보편타당성과 범신론, 자유의 소중함을 설파했습니다. 이렇게 배우고 보니 그 어려운 스토이시즘이 훨씬 쉽게 다가오네요. 

인간은 누가 뭐라해도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다만 그 쾌락이 어떤 종류냐는 데 차이가 나는데, 벤담 같은 이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웠으며 이것이 공공선의 핵심이기도 했죠. 이어, 저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텍스트 삼아 J S 밀의 평등, 사회적 정의를 논합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가 말한, "배부른 돼지의 쾌락"과 인간의 참된 쾌락 사이에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 명확한 이해가 가능해지네요. 

<멋진 신세계>로부터 저자는 스피노자가 말한 "자기 보존"에의 노력과 본능을 자세히 가르칩니다. 따지고 보면 그 끔찍한 복제 시스템도, 우월한 종 특성의 순혈적 보존을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습니다. <파리 대왕>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아포칼립스를 보면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마지막에 나타난 그 어른일까요? 뭐가 되었든 간에 인간은 사회의 규율과 통솔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앞서 스토이시즘이 인간의 정념을 초월하는 걸 큰 목표로 삼았다고 짚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감정의 존재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서양 철학의 거성 임마누엘 칸트는 감정 따위를 초월한 선의지, 이성적 준칙에 의한 도덕적 결단만이 인간 본연의 의무를 완성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실존의 의의에 대해 여러 철학자가 논한 바 있으나 이 책에서는 니체와 사르트르를 거론합니다. 니체는    참으로 격정적으로 다양한 삶의 힘있는 국면에 대해 시적인 표현으로 독자들과 소통했으며 사르트르는 상호주체의 개념을 통해 현대인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각자에게 발견되는지를 예리하게 통찰했습니다. 

책은 마지막 장에서 우리의 일상에 대해 천착한 철학자로 호주 출신 피터 싱어를 소개합니다. 종차별을 극복하고 사회에서 절대빈곤을 퇴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울림이 깊으며 롤스 역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해 사회 전반에 정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했다고 하겠습니다. 

어렵기만 한 철학 토픽에 대해 영화, 드라마 등에서 주제를 뽑아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챕터 말미에는 해당 철학자들의 생애와 핵심 성과에 대해 요약한 부록까지 곁들여져서 더욱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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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 - 김병종 그림 산문집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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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human being을 가리켜 왜 인간(人間), 하필 사이 간(間) 자가 들어간 그 명칭을 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유가 있긴 하겠습니다. 김병종 교수님의 이 그림 산문집도 세 파트로 이뤄졌는데 각각의 이름은 "시간 사이에 사람이 있다", "풍경 사이에 사람이 있다", "빛과 어둠 사이에 사람이 있다"네요. 사람은 확실히, 혼자 서기가 힘들고 무엇 사이에 있어야만 하나 봅니다. 같은 사람 사이이건 어떤 맥락이나 의미 사이이건 간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p18)은 예나 지금이나, 뭔지도 모르는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도가 얼마나 저 두 사람에게 설레는 이름이었는지는 모르나 김병종 교수는 자신의 작품 활동이나 지나온 생에 대해 그 "설렘"이 없었다면 완전한 빈껍데기와도 같았을 것이라며 어떤 영감(靈感), 혹은 열감(熱感)에 대해 술회합니다. 

하긴 이런 사정은 석학, 혹은 예술의 대가가 꼭 아니라 우리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사랑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설렜던 마음이라든가 그토록 만나 보고 싶었던 여인과 조우했을 때의 그 두방망이질치던 느낌. 이런 느낌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갖고 가며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이 세상 헛산 게 아니라는 보람으로 남는, 진정 소중한 것들이겠습니다. 

앞에 구체적으로 무슨 대학인지를 밝히지 않고 그냥 "대학신문"이라고만 제호를 정해 교내지를 내는 곳은 아마도 서울대학교 한 군데밖에 없지 싶습니다. 저자는 졸업반 때 <겨울 기행>이라는 시(詩)를 써서 해당 신문사의 공모전에 입선했고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헌데 당시 시국이 워낙 그런 시국이다 보니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지시가 내려와 대폭 개고(改稿)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는군요. 시대의 아픔이라는 건 특히 젊은 지식인에게 각별한 볼륨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겨울 기행>에 배어나는 소회를 보니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미학자 조르조 아감벤(p111)은 여전히 자주 인용되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굳건한 영향력을 유지합니다. 김병종 저자는 아감벤의 "오리진" 개념을 설명하며 그저 유일성, 창의성 정도의 외연이 아니라, 일종의 근원에 닿으려는 움직임, 또 그 작품 활동이 그 근원에 닿음으로써 성과를 내었냐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김 교수님은 이 근원에의 "닿음"이란 뜻을,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등이 얼마나 긴밀하게 만나는지에까지 확장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면교사든 뭐든 그 중에 나의 스승이 반드시 있다고도 합니다. 물론 무엇을 배울 최소한의 깜냥이라는 게 있어야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생기는 거겠고요. 여튼 김 교수님은 네팔의 청년 나트구릉, 인도의 짐꾼 하산 등이 (나이에 무관하게) 자신의 스승이라고 토로합니다. 후자는 심지어 직접 만난 적도 없는 TV 프로그램 속의 등장인물인데도 말입니다. 나의 탐욕, 오만, 무지, 거짓을 깨우쳐 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합니다. 이 파트에 모두 네 폭의 그림들이 함께 실렸는데 김 교수님 특유의 화풍으로 친숙하게 그려진 작품들이라서 한참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도 되었습니다. 

"인생도처유상수". 심지어 스승은 목욕탕 속에도 있습니다. 하긴 김 교수님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이런 청년을 볼 때에도 아마 느끼는 바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렇다 저렇다 판단에 판단을 하는 중에 우리의 마음은 지옥에 절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영어에서 judging은 그 자체가 부정적 의미이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도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님이 p283에서 말하는 epoche가 무엇인지 우리 독자들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 생각과 명상에 그림들도 참 많은 도움이 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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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카네기 - 인간관계 자기관리 그리고 삶의 철학
데일 카네기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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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는 자기계발서의 성경과도 같이 널리 읽히는 불멸의 책들을 다수 저술한, 신화적인 명성을 지닌 모티베이터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 보면 오늘날 흔히 쓰이고 발매되는 자계서류와 포맷, 필치, 격조 등이 상당히 다릅니다. 어떤 책은 정통 전기 같고, 어떤 책은 경영분석서 같으며, 어떤 책은 개인 회고록 같습니다. 마냥 쉽게 읽힐 것만 같아도 실제 많은 고뇌와 연구를 거쳐 나온 저작들이기 때문에 쉽고 간편한 책에 익숙해진 현대 독자들에게 그저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습니다. 따라서 바쁜 직장인들에게 되도록이면 짧은 시간 안에 카네기 저술의 정수만을 맛보게 할 다른 요령 있는 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카네기의 책에 실린 일화, 에피소드는 요즘 자계서와 달리 다른 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게 많습니다. 요즘 자계서에서 양념처럼 쓰곤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사실 어느 책에서건 쉽게 발견되곤 하는 노생상담격 레퍼토리들이죠. 카네기의 책은 그렇지 않아서 예전이건 지금이건 그리 쉽게 듣는 예화들이 잘 없습니다. p25 이하에 나오는 W P 고우와 "희귀 성씨"인 사장님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역시 그러합니다. 칭찬, 칭찬... 칭찬은 과연 고래도 춤추게 하며 안 될 일도 되게 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특효의 윤활제입니다. 칭찬의 효험은 뒤 p166에서도 다시 강조되네요. 

카네기의 책은 마흔을 넘어 회사 관리직에서 서서히 인생의 장기 비전을 재설계하는 중장년들뿐 아니라, 어찌보면 이제 사회 커리어를 갓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독자를 염두에 두기라도 했는지 카네기는 p60에서 직업 선택에 대한 조언을 합니다. 직업적성은 결코 마술가(우리 식으로 따지면 사주쟁이, 무당 같은 이들이겠죠)에게 가서 묻지 말라, 인원이 이미 과잉된 직역군에는 가급적이면 지원하지 말라, 자신의 적성을 어느 하나에 지레 국한시키지 말라... 사실 이런 알찬 조언을 들으면 과연 마흔 넘어서 이직, 퇴직 등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만한 이들에게 정말 절실하게 다가올 법도 합니다. 

읽다 보면 참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사는 모습들이 비슷해서, 이게 과연 고전인가 일간지 시사 칼럼인가 헷갈릴 만큼 실감과 시사성을 주기도 합니다. 경영자와 노동자들은 일시 이해 관계가 맞지 않아 쟁의를 빚어도 결국은 같이가야 할 운명공동체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저 무렵에도 이미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었기에 현장 CEO들은 고용된 사장이 많았을 겁니다. 일화에 나오는 저 현명하기 짝이 없는 경영인은 아마 현대 한국에 소환되어도 자기가 맡은 일을 척척 잘해내는 유능한 일꾼이겠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감정의 동물이며, 역지사지의 공감을 유도하는 설득은 거의 항상 효과를 크게 봅니다. 

혹 세상을 거친 매너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다 보면, 나의 이 약한 가족들에게 내 부재시에 행여 피해를 끼치는 자가 있을지 두려워하여 자연스럽게 마음이 선해지고 타 구성원들에게도 양순하게 태도가 바뀌곤 합니다(악질 사이코패스를 제외한다면). 가장, 학부형들에게 언제나 잘 통하는 방법은 그들의 자녀들을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의 진심이 충분히 표현된 웃음을 보여 준다면 아무리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당신과 새로운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 

누구나 결점이란 게 있고 나도 당신도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상대방의 결점에 집착하지 말고 먼저 허심탄회한 태도로 말을 건네는 게 소통의 첫걸음입니다. 이처럼 어떤 무익하고 불필요한 긴장과 피로를 한시바삐 내 육신에서 걷어내는 게 노화도 방지하고 타인과 평화롭게 이 세상에서 공존하는 길이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말이라는 것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의 말은 나의 주관, 그의 말은 그의 견해,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를 반영할 뿐이라고 합니다. 설령 상대가 부주의해서 실언을 했다손 쳐도, 그 말 한 마디에 내가 과민반응하여 공연히 내 심신을 괴롭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럴 시간에 내 성격, 상대방의 성격을 가능한 한 정확히 파악하여, 무엇이 우리 비즈니스에 더 건설적인 소통일지를 연구하라고 합니다. 카네기의 충고는 이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독자들을 깨우치는 어떤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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