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워리, 비 벨리 - 귀여운 관종 벨리곰의 햅삐한 일상 해시태그
벨리곰 지음 / 마시멜로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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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이어리 에세이입니다. 주인공은 핑크색을 뒤집어쓴 듯한 벨리곰이고 영어로는 BELLYGOM이라고 쓰네요. 실제로 이런 유튜버가 있나 해서 찾아봤는데 나x위키에도 독립항목이 있고 본진인 유튜브는 물론 페북, 인x타, 틱x에도 계정을 운영합니다. 소속은 (나x위키에 나온 설명으로는) 롯x홈xx이라고 하네요. 그 정체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이가 많다는데 EB* 소속의 펭수 같은 거와 달리 얘는 그저 자기자신이기만 하진 않나 봅니다.  

유령의 집에서 쫓겨났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나(벨리곰)를 좋아한다"라.. 영국 애니메이션 주인공 패딩턴은 가는 곳마다 천덕꾸러기였는데 그에 비하면 얘는 운이 좋은 듯합니다. 하긴 한국 굴지의 대기업 소속인데 감히 누가 눈치를 주겠..(농담입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기분이에요." 이런 건 벨리곰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습니다. 혹 기분 좋은 체험이라고 해도 여튼 처음 겪는다는 건 언제나 모험입니다. 낯선 곳에 뛰어드는 무서움과 머뭇거림이라면 우리가 "꿈"이라는 말로 잘 포장해서 자신을 달래지만, 벨리곰은 꿈 같은 거 없다고 합니다. 그런 거 없어도 일단 낯선 곳과 부딪히고 덜컹거리면서도 비집고 들어가서 일단은 적응에 성공하는... 이런 낙천성과 근성, 뻔뻔스러움(?)은 우리가 배울 필요가 있을 듯도 합니다. 

"귀여운 관종의 햅삐한 하루" 2장은 제목이 "사랑"인데 저는 처음에 "사람"으로 잘못 읽었습니다. 공원 같은 데 가면 노인분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있는데 얘도 그 위에 올라가서 운동 중인 것 같습니다. 덩치도 커서 기구에 몸이 꽉 끼는데다 잘못하면 그 무게 때문에 시설이 파손되지나 않을지 걱정도 살짝 되네요. "왜, 귀여운 거 처음 보세요?" 세상 사는 데에는 이런 뻔뻔스러움이 간혹 필요합니다. 다이어리 중간중간에 인스타샷이 있는데 해시태그 키워드가 #있잖아, #나 좀 귀엽지, #다 알아 입니다(...). 

처음 만난 사이의 어색함을 깨뜨리는 과정을 아이스브레이킹이라고 합니다. 벨리곰은 이렇게 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저... 벨리곰 닮으셨네요." 글쎄 효과가 있을지, 역효과가 혹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기분을 날씨로 표현한다면?" "1만원 이하의 선물을 스스로에게 준다면?" 벨리곰은 다이어리 지면을 통해 우리에게 다양한 제안들을 합니다. 

유튜브 영상 스샷들도 곳곳에 삽입되었는데 주변에 어린 학생들이 벨리곰을 쳐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벨리곰 캐릭터를 알아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신기해서 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벨리곰은 이 장면에서 레일 위를 걷는데 위태로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가끔 흔들려도, 균형을 잘 잡으면 돼요!" 그렇긴 합니다. 

"가끔은 어릴 때처럼 신 나게 뛰어놀아봐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신 나게 웃다 보면 어느새 걱정은 조그맣게 변해 있을 거에요." 이 말은 6장 열정 파트에 나옵니다. 이것저것 너무 재고 망설이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대담함, 뻔뻔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책이 다이어리 형식이고 양장본이며 날짜는 따로 인쇄 안 되었기 때문에 독자가 알아서 자기식으로 채워 나갈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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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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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에 과연 우리 조상들(가깝건 멀건 간에)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역사책이라는 기록에 쓰인 바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믿을 건 아닙니다. 그래서 고대의 일을 상고할 때에는 어느 정도 상상력이라는 게 필요하며, 혹 근대의 일을 고찰할 때에도 기록이 일일이 빈틈을 커버해 주는 게 아니기에 역사소설의 할 일이 고유하게 따로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김훈 소설가의 이 작품은 그야말로 순수 상상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사건을 담았습니다. 정복 군주나 절세 가인, 명장, 현신 들만 주인공 노룻이 아니라 이름없는 백성들도 자주 나오고, 심지어 사람이 아닌 동물들도 등장하여 한몫을 하고 격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사람과 동물 사이의 경계 자체가 모호합니다.  

맨앞 p2의 지도를 보면 물론 이것이 가상이지만 마치 한강 유역을 보는 듯 착각이 일기도 합니다. 책 p266을 보면 이 소설책에 몇 없는 각주가 하나 나오는데, 강 양안에 월진(月津)이 있고 창기들이 넘나들었다는 서술에 달린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 서울의 비싼 술집(룸살롱)들은 한강의 여러 큰 다리들 근방에서 가깝기도 하죠. "8차선 도로의 현수교..." 8차선이라면 양화대교, 성수대교 등이 있겠고, 현수교 형식은 한강에는 놓여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느닷 20세기 중반을 거론하며 문명의 영속성을 강조하려 한 듯한 작가의 의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는 되는 대목입니다. 

초와 단. 지리상으로 초가 나하(奈河)의 북쪽에, 단이 남쪽에 놓였으므로 혹 각각 유목 정치 단위와 농경 사회를 상징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갖다붙이기엔 아귀가 안 맞는 대목도 많습니다. 또 p33에선 왕을 "캉"이라 불렀다는데 이는 초가 아니라 또 단의 사정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확실히, 초가 젊은이들의 나라라는 점, p14에 나오는 돈몰 등의 기풍습은 고려장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만 고려장 자체가 그 진위를 놓고 논란이 많으며 한 여자를 놓고 여러 남자들이 공유했다는 p17의 서술("마을의 아이")이 북방 유목 민족의 풍습과 비슷하다고 볼 근거도 없습니다. 그냥 순수 창작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로 치부하면 충분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돈몰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한참 뒤에 나오는, 초나라 쉰 살의 목왕이 그 늙은 나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대목(p76)도 그 연장이겠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반대로 단 나라의 군독인 황이 알몸이 되어 스스로 투석기에 올라가 적 진영에 던져지는 대목 역시, 진영은 반대지만 늙어서 더 이상 유효한 완력을 보탤 수 없는 노구의 처분을 그리한 것이기에(물론 전세가 완전히 기운 탓도 있지만)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목왕의 구체적인 돈몰 과정은 p129에 나옵니다. 저는 한자가 頓歿일 줄 짐작했었는데 책을 다시 보니 旽沒입니다. p129를 읽으면 차라리 점몰(漸沒)이라 불러야 할 듯하네요. 

젖을 내어놓고 우는 여인들(p138, p142). 이 역시 쇼킹한 대목입니다. 반대로 젊은 병사들이 허연 엉덩이를 내어놓고 적진을 조롱했다는 실제 기록은 서양 쪽에서 본 적 있어도 말입니다. 여인이 그 나신을 백주에 공중 앞에 드러내는 건, 우리의 억울함이 극한에 달하여 이 세상에 더 이상 공의와 질서가 남아 있지 않음을 선언하는 처참한 풍경이며, 근세에 비슷한 예로는 YH 사건 같은 게 있겠습니다. 그러니 공격하는 측의 심경이 자연 처연해질 밖에요. 

단은 이 소설에서 旦으로 정해진 표기인데 단군왕검이라고 할 때는 檀이며 해동, 청구, 진단 할 때의 단은 旦이긴 합니다. 한국의 큰 두 줄기를 만주에서 내려온 북방계, 삼한 중심의 남방계로 본다면 초를 전자에, 단을 후자에 대응시키고 싶지만 이러면 旦이 대체로 발해에 연관되는 관행과 안 맞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여러 코드를 섞어 놓아 이런 추론을 미연에 막으려는 의도였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독 잡설을 늘어놓고 싶은 독자의 욕구는 끝이 없는데 일단 이성계의 고친 휘가 또 旦이었고 p77에서 목왕이 표와 연에게 권력을 나눠 주고 자신은 군권만 갖는 결정에선 또 태종 이방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하긴 이런 권력 분장 후 승계는 매우 보편적이어서 생전에 덩샤오핑도 자오쯔양과 후야오방에게 이런 식으로 힘을 나누고 자신은 군사위원회 주석직만 갖기도 했었습니다. 

중국 제 왕조를 보면 대체로는 고문헌과 전승에 근거하여 나라 이름을 지었는데 유목민들의 침투 왕조라 볼 수 있는 수(隋), 당(唐)은 유구한 고왕국의 이름을 채택한 것입니다(심지어 본격 찬탈 이전 단계에서도). 국명이 근본 없어진(?) 건 원 제국을 시점으로 명, 청에까지 계속되는데 저는 이 소설에서 특히 초(草)가 그리 느껴졌습니다. 물론 항우의 나라는 楚라서 완전히 다르고 말이죠. 아니나다를까 p101에 보면 어느 무당이 지금 저하고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혀를 뽑히는 장면이 있어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습니다.(!) 

동물이라고 해도 귀한 혈통이라는 게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몇몇 동물의 경우 오히려 사람보다 이 팩터가 더 중시되는 듯도 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슬프게, 또 무섭게 다가온 대목은 여러 개들이나, 야백 등 명마의 사연이었는데 고대 기록의 한혈마 등이 떠오르기도 했네요(p70 등). 명문의 혈통이든 절세의 용력이든 결국 주인의 손에 끌려 강제로 어떤 목적에 바쳐지는 건 종복의 운명과도 같으며 거죽만 사람일 뿐 거사를 치르고 용도폐기(p34)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왕들은 어떠합니까? 겨레가 그에 위탁한 소명을 완수 못 하고 타국에 패퇴하면 결국 목숨을 내놓고 폐문멸족되는 비참한 신세로 떨어지고 비빈은 적국의 성노예로 전락합니다. 부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이 세상사(世上事)와 역사(歷史)는 공평하게 슬프고 처참하고 덧없습니다. 누가 내 편이고 누가, 누가 적인지도 알 수 없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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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클래식 - 감정별로 골라 듣는, 102가지 선율의 처방
올리버 콘디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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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콘디가 지은 이 책은 클래식 활용 사전과도 같습니다. 옆면에 진짜 사전들처럼 thumb index도 붙었고, 항목은 가나다순으로 실렸습니다. 물론 영어판 원서는 내용 전개가 ABC순이었겠으므로 이 한국어 번역서는 그 편집 과정에서도 특히 관련 인력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drive에 시달립니다. 그 감정 중에는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즐거운 격정도 포함됩니다. 이런 기쁜 감정도 그것이 폭주하게 방치하면 그건 그것대로 해롭습니다. p267을 보면 "자의"라는 항목이 있는데 저는 처음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일부러 이 아티클부터 찾아가 정독했습니다. 글을 읽어 보니 이 자의는 아마 姿意를 뜻하는 듯했습니다. 자의... 물론 우리 인간은 제 뜻대로 하는 바가 있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존재입니다. 그게 아무리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이라 해도... 이 부분이 잘 통제되는 사람은 인격자, 군자로 주변에서 칭송 받고, 안 되는 사람은 소인배나 범죄자로 단죄 받습니다. 

재미있는 게 본문에 소개되는 용어 중에 voluntary라는 게 있는데 이게 명사로서 즉흥 독주라는 뜻이 분명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추천하는 곡은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인데(세 번의 표기 중 닐슨이라는 오기가 한 차례 있었습니다), 그의 평가는 "강력하고 체제 전복적인 악구를 만들어낸 작곡가(p268)"입니다. 특히 이 곡에서 저자가 주목한 건 타악기의 역할인데, "자의를 따르되 무슨 일이 있어도 음악을 방해하기로 작정한 듯 연주하라"는 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내 자의가 내 진로, 혹은 조직의 호흡을 확 가로막으려 들 때 이 곡을 듣고 대리만족해 볼 일입니다. 

직장인의 가장 큰 적은 잠입니다. 물론 잠은 모든 스트레스와 생각, 감정의 꼬임을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지만 잠이 그 주인을 지배하게 방치하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가장 마법 같은 일출의 정경(p67)." 사실 모리스 라벨의 곡풍이 다분히 몽환적이긴 하지만 잠이 쏟아질 때 이 곡을 들으면, 잠이 더 올지 아니면 짧은 시간 렘 수면 대리로 잔 효과가 날지는 쉽게 판단이 안 됩니다. 저자도 그렇게 생각하셔서인지 "더 냉정하고 엄하게 잠을 깨우려면" R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도입부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음악이 이리도 부지런히 움직이니 당신이 다시 잠들 가능성은 없다." 그렇긴 한데 이 곡도 서두는 꽤 잔잔하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버려지다" ㅎㅎ 누구나 세상 살다 보면 버려지는 듯한 고립감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헨델의 메시아를 추천하는데, 이 메시아라는 곡이 런던에 파운들링 호스피털을 설립할 당시 독지가 토머스 코램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네요. 책에도 잘 나오듯이(p114) 파운들링 호스피털은 "고아원"을 점잖게 부르는 말입니다. 남자애들은 불량배, 여자애들은 커서 창녀로 빠지는 정코스가 되기 십상이었기에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도 이런 조치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헨델의 거룩한 뜻에야 십분 공감하지만, 과연 이 곡을 듣고 버려진 느낌이 힐링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정이 부족해진다고 느낄 때 저자가 추천하는 곡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입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에릭 사티의 실제 삶을 환기하며 지저분한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도 음악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를 떠올려 보자고 권합니다. 확실히 저자의 처방들은 배경 지식에 어느 정도 도움 받는 이지적 경로를 통하는 것들이다 싶습니다. 이 짐노페디만 해도 저 같은 경우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울 때 듣곤 하는 곡인데 저자분과는 쓰임새가 많이 다르죠.       

모든 추천곡 해설 뒤에는 QR코드가 붙어서 쉽게 찾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또 유튜브 핵심 키워드가 따로 달려 있기에(해 본 이들은 알지만 구글이나 유튜브 엔진은 내 맘을 잘 모를 때가 많아서 키워드가 적절해야만 합니다) 검색에 편의를 톡톡히 제공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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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국지
임창석 지음 / 아시아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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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6국 시대가 끝나고 선비족의 북위가 중원을 대략 통일하였으나 강남에는 종전의 진(晉)을 계승한 여러 남조(南朝)가  굳건히 버티는 중이었고 이 와중 탁발씨의 북위는 한화(漢化) 정책을 둘러싸고 내분상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기어이 고씨의 북제와 우문씨의 북주로 분할 찬탈되었고 북주가 북제를 먹었으며 이 북주는 국구 양견에 의해 찬탈되어 수나라로 이어집니다. 

p95를 보면 사실상 이 소설의 주인공격인 을지문덕 장군이, 난릉왕의 묘소 근처에서 영애 목염군주와 고영수(고보녕의 아들이라는 설정. p92)를 만나 도움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 영양왕은 망국 황실의 후예들인 고씨 세력을 암암리에 후원하는 설정인데, 사실 북제가 알차게 내실을 다졌다면 오히려 인접국이어서 고구려에 훨씬 위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이긴 합니다. 생전 난릉왕(고숙)의 빼어난 용모에 대해서는 소설 맨 앞 p16에서 이문진의 대사 중에 아주 잠시 언급이 되었었습니다. 단 이문진은 왜인지 "주나라를 지키던.."이라고 하는데 문맥상, 또 실제 역사상 제나라의 오타이겠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대만 포함)의 역사장편소설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불만이었던 게, 앞부분에 나왔던 인물들이 뒤로 갈수록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하는 캐릭터의 낭비였습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원제 덕천가강)>이라든가, 심지어 삼국연의도 별 다를 게 없죠. 이 소설은, 적어도 앞의 난릉왕 언급 같은 장치가 뒤에서 그 나름 양념처럼 기능이 이렇게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문진은 물론 우리가 중고등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신집 5권의 저자인 그 사람입니다. 소설 p45 같은 데서 이문진은 다시 등장하는데 앞 장면에서 평원왕(영양왕의 부왕이자 온달의 장인)과 대화할 때는 그에게 왕이 말을 해라로 낮춥니다. 여기서 영양왕은 이문진이나 강이식 장군 같은 조정 중신들에게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데 왕은 그 물리적 연령에 불구하고 누구에게건 해라투가 원칙입니다만 여기서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중한 인품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읽힙니다. 더군다나 이 시점은 나라를 갓 통일한 양견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의 국운을 위협할 무렵이라서 이 장면의 비장감이 한층 더합니다. p179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 양제의 침략을 격퇴한 후 (비록 면전의 호통은 아니라고 하나) 영양왕이 "이놈 광아! 욕심이 지나치구나!"를 일갈하는 장면은 그의 엄청난 기개를 표현합니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대륙이 거진 통일되어 동방의 정치단위들이 큰 위협을 받을 때 고구려의 군주들이 한결같이 영명한 인물들로 묘사된다는 건데요. 예컨대 평원왕은 이문진의 계책과 진언을 듣고 그 허점을 지적하는데 신하의 조언을 듣는 군주라기보다 초년생에 한 수 가르치는 노련한 스승처럼 보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후계자인 영양왕 역시 치밀함 전략 하에 국정을 운영하고 전란에 대비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이처럼 자기 중심을 잘 잡는 리더만 있어도 근본 있는 나라가 망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한 삼국지>인 만큼, 아무리 고구려의 비중이 크다 해도 그 외 2국의 사정이 빠질 수 없습니다. 소설 맨처음(p10)에 잠시 언급되었던 위덕왕 이야기가 p187에 이어지는데 헌왕, 법왕을 거쳐 무왕(서동)에 이르는 재미있는 사연이 많은 상상력을 곁들여 펼쳐집니다. 선화공주는 대승적 차원에서 남편이 대귀족 사택적덕의 딸과 다시 혼인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신라의 공주였던 그녀로서는 엄청난 결단과 양보심의 발휘가 필요했겠습니다.  

소설에서 춘추가 유신에게 "형님은 을지문덕보다 더 큰 인물(p219)이 될 것임"을 예견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큰 인물은 벌써 그 외관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이들의 범싱치 않은 풍모는 이미 당이나 고구려에서까지 외교적 파장을 낳은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계가 끊어져도 범상치 않은 혈통이 지속되는 게 진평왕의 세 딸 덕만, 천명, 선화 세 명이 각각 선덕여왕으로 즉위하거나, 김용춘, 백제 무왕과 결혼하여 사실상 이 시점 이후의 삼국사 새 장을 열다시피했기 때문입니다. 자칭 백정(불타의 부친), 마야부인이었던 진평왕 부처는 19세기 유럽에서 빅토리아 - 앨버트 부처와도 비슷한 위상이라고 하겠네요. 

천책상장(p212)은 당 고조가 셋째 아들에게 내린 칭호인데 결국 세민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두 형을 죽이는 쿠데타를 일으켜 황위를 빼앗다시피합니다. 그가 무능한 인물이었으면 이때부터 나라의 혼란이 시작되었겠으나(마치 수 양제가 문제로부터 권력을 넘겨받듯) 그가 불세출의 명군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자장율사와 당 태종이 대담하는 장면은 물론 상상의 소산입니다. 그러나 당 태종은 그와 대화를 나눈 후 해동강역에 이처럼 인재가 자주 출현하는 사실에 경악하며 "반도의 삼국이 혹 통일이라도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며 두려워합니다. 현재 중국이 간신히 국가의 꼴을 갖추고서 저가 노동력을 앞세워 세계 경제 체제에 편입되어 외화를 그러모은 후 대국 행세를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그에 합당한 존중을 보내지 않습니다. 한반도가 하필 이때 북의 유일 체제, 남의 좌우대립으로 또다시 삼분되어 중국의 위협 앞에 속수무책인 형국입니다. 작가분께서 이런 시국에 역사 소설을 창작하게 된 우국충정의 동기에 공감하며 독후감을 마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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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 융 심리학으로 다시 쓴 어린 왕자
로베르토 리마 네토 지음, 차마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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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융에 따르면 우리 모두에게는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어떤 영적인 수호자, 곧 다이몬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마음속 깊은 곳의 다이몬과 대화에 들어가면 실존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p7)." 한편 폰 괴테(p168)는 예술가나 작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존재를 데몬이라고 불렀는데 아주 큰 범주에서라면 이 역시 같은 범위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튼, 브라질의 작가 로베르토 리마 네토의 멋진 창작, 혹은 패러디물인 이 책에는 여러 이름, 여러 캐릭터 들이 여러 환경, 여러 맥락에서 이 다이몬 노릇을 해 줍니다. 같은 지혜의 말이라고 해도 어린왕자, 프로메테우스, 융, 노인, 생떽쥐페리(즉 그 작가) 등의 입을 통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시니컬하게 들리는 가르침들은 또다른 깊이와 울림을 갖는 듯합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며, εὐδαίμων이라는 글자 안에 벌써 daimon이 들어 있었음은 의학박사 보에차트의 추천사를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훼가 악한 신이었나요?"(p76) 이 질문에 대해 노인은 구약에 기록된 그대로의 "사실"을 앙터안에게 들려 주며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 보입니다. 독자는 적어도 노인이 야훼를 악하다고 생각하는 줄 여기며 넘어가려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앙투안은 집요합니다. 추궁하듯 묻는 앙투안에게 노인은 다시 "그는 선함과 동시에 악하며, 양과 음을 넘어선 도(道)"라며 다시 어려운 대답을 내놓습니다. 

앙투안은 "왜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 할아버지인 아담이 지은 죄(원죄) 때문에 우리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나요? 야훼가 정의롭다면 그 죄를 먼 후손에게 물어서는 안 되지 않나요?"라 묻습니다. 노인은 "다리를 거치지 않고는 그 지점에 이를 수 없다"고 이르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도달하는 지점 자체보다 어디를 건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우리는 완전히 의식적이게 될 때까지 윤회를 되풀이한다.(p80)" 노인은 이 말에 덧붙여 "예수는 우리에게 어린이가 되라고 한 게 아니라, '어린이처럼' 되라고 했다."면서 이 두 표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어린이 상태로(앙투안이 오해했듯이) 그대로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그간 이뤄온 성숙이라는 성과마저 무위로 돌리게 됩니다. 나이에 합당한 성숙은 그것대로 간직한 채, 단지 이웃을 배려하고 남을 쉽사리 판단하려는 마음만 주저없이 버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어린이다움 아니겠습니까.  

생떽스의 <어린 왕자> 원본에도 하품을 금하는 왕이 등장했었습니다. 그 왕은 누구로부터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스스로를 심판하는 자"라 칭했었는데, p147에는 이와는 다른 신선한 해석이 나옵니다. 소크라테스도 인용했고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를 환기하며 오히려 최상의 지혜를 갖춰야 이 경지가 가능하다고까지 말합니다. 물론 자신에 대한 정당한(proper) 평가라는 전제가 성립해야만 하겠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위기를 극복하고(p172) 그만큼 더 성숙해지는 과정입니다. 예술가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일을 잘해야 하며 (연극 속의) 살리에리처럼 늙어서 영감이 잘 안 떠오르면 그만큼 고생하게 된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책에도 나오듯이, 베토벤은 노년에 접어들어 겪은 그 온갖 고생 때문이었는지 엄청난 인격적 성숙을 이루고 그 결과가 노년의 걸작에 그대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현대의 우리 감상자들이 에누리없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시련은 모두 감사한 텍스트이며 그 도중에 우리는 헛되이 나이만 먹는 치욕을 피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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