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압축 성장의 기술 - 직장에서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 회사 밖 성장 공식
김미희 지음 / 푸른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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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날 때부터 모든 호조건을 갖추고 경쟁에 뛰어든 행운아에게는 발전이라든가 성취를 위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자께서는 성공의 조건 중 하나로 "결핍"을 꼽는데, 저자께서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인 "빅크"는 그 처음이 미미한 편이었습니다. 저자는 물론 삼성전자라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다니던 인재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런저런 번아웃과 성취감 결핍, 인정욕구 좌절 등으로 한계를 느끼던 상황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또 빅크에 참여한 멤버분들도 엘리트 스타트업 특유의 화려한 스펙 같은 걸 갖추지 않은 인재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난다긴다 하는 인재들이 모이고 모여도 창업이 성공하란 법이 없는데, 공통분모로는 결핍과 좌절감 등 부정적인 요소뿐이었으니 밖에서 보는 이들이 빅크의 장래를 밝게 보기 어려웠겠죠. 그러나 결과는 보란듯한 성공이었습니다. 

결핍은 때로 압축성장, 퀀텀점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스타트업은 실행이 전부다(p12)." 시작부터 여러 부족한 환경이었기에 어떤 금전적인 인센티브 제공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에의 갈망, 혹은 결핍이 배태한 어떤 강한 동기나 욕구가 거꾸로 대성공에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겠습니다. 크루를 모으는 과정이 책에 자세히 나오는데 마치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보는 듯 흥미로웠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멤버들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실력들은 하나같이 출중했었습니다. p26의 이귀행 CTO 같은 분도 직전의 몇 번 실패가 좋은 교훈도 되었고 재기를 위한 오기도 충전된 상태였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더라도 일단 어떤 일이든 도전할 필요가 있다(p59)." 결핍 그 자체로 성공의 자본이 된다는 게 아닙니다. 결핍 자체를 한탄하면서 이런 탓 저런 탓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이런 사람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죠. 흔히 자계서에서 긍정적인 감정으로 내면을 채우라고들 하는데 저자는 역으로 부정적인 감정 역시 잘만 바꾸면 압축 성장을 위한 엄청난 에너지원이 된다고 합니다. 고객의 페인 포인트(p115)를 잘 캐치하는 경영자는 이걸 역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독자적인 강점으로 바꾸는데 저자는 자신과 팀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정변환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저자분을 비롯한 경영진은 처음부터 어떤 강력한 성공요인을 갖춘 분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만 해도 대학 진학 후 부업으로 과외 지도를 했는데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성적을 올려내었다고 하십니다. 다만 본인이 학생 시절 충분한 과외를 받지 못했기에, 그에 대한 일종의 결핍감을 가졌고 이것이 더 큰 성공을 위한 어떤 동기로 작용했다는 거죠. 가르치는 실력 자체는 충분한 분이었고 이 고유의 장점이 결국은 교육 스타트업 대박에 결정적 노릇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트업의 경우 인지도 확산에만 주력하다가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몇 걸음 못 가 좌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인지도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성장, 고객 만족이 먼저였다고 합니다. 요즘은 UX 라고 해서, 내가 만든 서비스 영역에 들어온 유저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만족하고 이용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도 합니다. "내재동기가 강한 자기 주도형 인간(p116)" 창의력과 개척 정신이 강한 경영진이 딱 그러한 회사 비전에 맞는 인재들도 정확하게 알아보는 법입니다. 시연요정 진, 프로게이머급 실력의 차이 등은 빅크가 발견해 낸 젊은 동량들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이란, 절벽에서 뛰어내린 후 비행기를 조립하여 날아가야 하는 일이다(p167)." 베타 (시험 테스트) 기간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기에 지나친 완벽주의는 금물입니다. 최소 기능 제품을 언제나 시도함으로써(p188) 시장에 최적으로 맞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뭐가 두려워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부터 먼저 정의(define)하고, 나중에 후회할 일은 최소화하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원칙만 지켜도 스타트업은 의외로 제 갈 길이 열린다는 저자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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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써먹는 최강의 반도체 투자 - 한발 앞서 읽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모든 것
이형수 지음 / 헤리티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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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과 SK하이닉스 시가 총액을 합치면 428조, 코스피 시총은 대략 1918조 정도 되니 대략 22.3% 정도를 저 두 기업이 차지하는 셈입니다. 물론 삼전은 가전 비중도 크므로 순수 반도체 기업은 아니지만, 여튼 이 큰 기업의 주가 등락에는 반도체 시세와 실적, 전망이 보다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여기에 코스피나 코스닥에 포진한 여러 중견 소부장 기업들까지 고려하면 한국 산업과 경제는 현 시점에서 반도체가 쥐락펴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반도체 기업이 해외 수출에서 큰 성과를 올려도 대기업 직원이 아닌 이상, 또 낙수효과가 엄청 큰 것도 아닌데 내 삶과 무슨 관계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MZ세대 중심으로 많은 직장인들은 소액일망정 삼전이나 하이닉스 주식을 갖고 있습니다(특히 2019 동학개미운동을 기점으로). 이 주식들은 불경기에도 크게 하락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아예 침몰하지 않는 이상 저들 회사가 망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믿음을 대중이 갖고들 있죠. 배당률이 높진 않지만 이들 기업의 성과로부터 연말에 일정한 배당도 챙기고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기에(어디까지나 기대 수준이지만), 한국인이라면 적든 많든 이들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투자에 대한 기본 소양이 필요합니다. 

p79를 보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 분석에는 3요소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3요소는 가격, 기술, 투자입니다. 기술은 예컨대 EUV 노광장비 도입 같은 이슈가 있으면 초기 공정 난도가 높아져 수율이 떨어지는데 이때 공급부족은 곧 가격 상승을 부른다고 합니다. 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에서 만드는데 이 이슈 역시 적어도 2년 전에 증권가에서는 다 알려졌던 바입니다. 뉴스가 이미 2년 전에 나왔는데도 본인만 모르다가 몇 달 전 이 부회장(이제는 회장)이 네덜란드 현지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겨우 반응한다면 이런 투자자는 수익을 내기 어렵겠죠.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해외 커뮤니티나 이런저런 소식통도 참조해야만 합니다. 

1985년 007 제14편 뷰투어킬이라는 대형 오락물이 개봉했는데 여기서 거대한 악의 세력과 미국, 소련 등은 첨단 반도체 기술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펼칩니다. 이 무렵 플라자 합의(p94)라는 게 있어서 미국과 유럽이 당시 욱일승천하던 일본 경제의 기세를 확 꺾어놓았다는 통념이 있지만 이는 다분히 결과론입니다. 사실은 일본이 눈 앞의 횡재에 눈멀어 수십 년 먹거리를 제발로 찼고 그것이 반도체였으며 저런 상업 영화에서 소재로 다룰 만큼 중대한 이슈였었음이 분명합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씨의 도쿄선언(p95)은 그만큼이나 시대를 앞서간 혜안이었습니다.  

중국은 십여년전부터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많은 투자를 했었고 당시 신문 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10년 뒤면 한국은 흔적도 없이 중국에 먹힌다는 분석이 대세였습니다. 10년 후인 지금도 우리가 여전히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너무도 못해서였습니다. 이런 중국도 전략을 수정하여 자신들의 비교열위가 그나마 덜한 분야에서 선도해 보려는 움직임이 뚜렷한데 SiC, GaN 등이 그것입니다(p150). 특히 GaN은 이제 한국 기업들에서도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가 나는 차세대 소재인데 이 역시 전문가들이 적어도 2년 전부터 주목했었습니다. 증권사 분석 리포트 같은 걸 절대 소홀히 보지 말고, 뭐가 이슈다 싶으면 깊이 있게 몰라도 일단 키워드부터 추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더군요. 질화갈륨이 뭔지 몰라도 일단 머리에 새기고 아이디어 맵의 노드에 추가해야 좋습니다. 나중에 이런 책을 보고 더 구체적인 개념을 잡고 전문서적을 읽으며 뷰를 구체화하는 거죠. 

뉴스에서 EUV다 ASML이다 키워드 이슈가 새로 생기면 일단 검색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7장이 "작업공정에 대한" 세부적 이해가 필요하다며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뭐 현재 제 수준에서는 최고였습니다. 뉴스에서 스택을 쌓는다 2나노미터다 1.4나노미터다 하면 무심히 넘길 게 아니라 이 제조공정이라는 게 대략이라도 머리에 그림이 그려져야 정말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올지 안올지 (비록 개인 레벨에서나마) 어떤 합리적인 예측을 시도라도 해 볼 수 있겠죠.  

이런 책을 읽을 때는 "그래서, 저자는 이 주식 이 주식을 사라는 거구나"라고 피상적인 정보만을 정라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유망한 소부장 기업 추천도 이 책 곳곳에 있지만 어차피 이런 이름들은 다들 아는 것이고 사고 안 사고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들어가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예측할 때 이러이러한 정보에 주목하고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구나 같은, 어떤 방법론을 배우는 게 핵심입니다. 초판 한정 별책부록으로 유망한 소부장("반등유망종목") 10개를 소개한 소책자도 있네요. 제목이 "반등유망종목"인데서도 알 수 있듯 현재 얘네들은 시세가 빠져 있습니다. 기업 현황이 이러하다는 걸 알고 자신만의 합리적인 뷰를 형성한 후 언제 치고들어갈지 시점을 정해 보는 것도 주식하는 하나의 재미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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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팔리는 카피 - 즉각 매출을 올리는 무기 12가지
글렌 피셔 지음, 박지혜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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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은 그저 고유의 품질, 소위 상품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 기업 쪽에서도 아직은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상품이라도 이를 어떻게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시장에 내어놓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며, 이를 두고 마케팅 파워라 부릅니다. 마케팅에 들어가는 그 수많은 노력과 정신을 단 몇 마디로 요약한 것이 카피이고, 시장이라는 살벌한 전선에 가장 먼저 내세워지는 선봉대임을 감안하면, 카피의 막대한 중요성이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art of the click입니다. 웹상의 매혹적인 카피나 이미지가 눈에 띄어야 그를 클릭하게 되므로 결국은 같은 말입니다. 매혹적이고 성공적인 카피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겠지만 구매자가 장기간 머무는 환경이 인터넷과 모바일로 크게 바뀌었으므로 업계의 최신 사정을 반영한 책을 당연히 읽어야 합니다(독자가 혹 마케팅 부서 근무자가 아니라 해도). 이 책의 저자는 업계에 20년 이상 몸담았고 실무와 교육을 병행해 온 분 답게 잘 정리된 언어로 다양한 예를 들어 가며 카피의 본질과 핵심에 대해 일러 줍니다. 

이런 저자들께서 책을 쓰실 때는 대개 현장에서 부딪혀온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밀한, 개성적인 각론을 책에서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책에는 그런 각론도 많았지만, 예를 들어 p117에 나오는 것처럼 그 적용 범위가 매우 넓은 총론(대원칙)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1단계 - 먼저 실험한다. 시도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한다. 
2단계 - 상상의 과정을 거친다.
3단계 - 아이디어를 검증한다. 

현장에서 카피라이터(넓은 의미)가 아이디어나 영감 자체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2단계와 1단계의 일부가 그의 주된 업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케팅은, 특히 기업 내에서 이뤄지는 부서 활동으로서의 마케팅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 외에 보다 체계적이고 성과 재현, 재생산이 가능한 프로세스 속에서 수행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검증과 실험이 필수이며, 산만한 시행착오만으로는 결코 기업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영감과 아이디어는 평범한 미숙련자에게도 찾아오는데 책임자는 여튼 그런 사소한 행운도 손에서 빠져나가게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당첨된 복권은 당첨 후에는 이미 종전의 몇 천원짜리 종이조각이 아닌데 이를 소홀히 관리하다가 잃어버리면 본인만 손해입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관심을 끌고 끝까지 유지하기"의 핵심입니다. 때로 지루하게, 혹은 산만하게 보여도 헤드라인과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고 이것이 갖는 박력과 포인트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직접 반응 유형의 카피가 성공하려면 황금실(gloden thread) 개념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 대목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잊지 마라. 직접 반응 카피의 목적은 고객으로부터 직접 반응을 얻어내는 것이다(p253)."  
"설명이 따로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카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p294)."
"직접 반응 카피는, 그저 길기만 한 카피가 아니다. 또한 특정 틈새 시장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p323)." 

저자는 또한 성공하는 카피는 진정성(p339)이 담겨야 하며, 목표는 높게 세우고 제품에 대한 정보는 판매 직원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p109). 우리가 흔히 카피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런저런 선입견과는 크게 다른 주장임을 알 수 있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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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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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나는 인간의 본성이 끔찍할 정도로 혐오스러워.(p16)"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때,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p59)" 과연 알세스트다운 말인데 그의 평소 지론을 감안하여 해석하자면 완전한 사랑을 나누는 사이에선 상대의 과오가 보이지 않으니 뭘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는 뜻 같습니다. 바로 다음에 "키가 큰 여자는 기품 있는 여신처럼 보인다고 하고, 키가 너무 작으면 경이로운 하늘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운운하는 엘리앙트의 대사도 이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수백 년 후, 소설가 에릭 시걸의 통속물에 나오는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란 유명한 구절이 혹 몰리에르의 이 고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는, 알세스트가 그토록이나 우려하는 그의 벗 필랭트의 "아무한테나 친절하며 누구한테나 똑같은 얼굴을 하는(p12)" 유감스러운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필랭트 역시 그가 상대하는 다른 이들의 단점이 안 보여서 저런다고 합리화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극 중반인 2막 5장에서 법원 관리인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물론 몰개성의 장치에 가깝지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겠습니다만 몰리에르의 다른 대표작 <타르튀프>에서도 그러했듯 어떤 법원 관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하면 뭔가 큰 흐름이 바뀐다는 예고입니다. 오롱트는 알세스트한테 그렇게나 큰 호감을 갖고 접근했었으며 자존 따위는 완전히 버린 채 정직한 우정을 고백했는데 알세스트라는 인간은 상대가 느낄 수 있는 극한의 모멸을 선사하는 개매너로 응답했으니 오롱트 입장에서야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앙갚음을 해야겠다고(ㅋ) 마음먹었을 만합니다. 

반면 같은 직언을 해도 아르노지에 부인 같은 노숙한 이가 "당신께서는 살아가는 방식에 다소 잘못이 있으며...(p77)"라고 상대가 알아듣게끔 조곤조곤 설득하는 품은 제법 성숙한 인품 같은 것의 방증입니다. 상대의 자존을 완전 박탈하는 모욕적인 직설 한 단계 위에 필랭트식의 세련된, 만인을 향한 아부가 위치한다면, 이처럼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상대로부터 흔쾌한 승복을 끌어낼 만한 기술이 사교 소통의 최고난도 단계일 것입니다. p77에 "아부도 셀리멘 부인을 두둔하지 않았습니다."에서 "아무도"가 바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갓 스물에 벌써 "부인" 타이틀을 단 셀리멘의 응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르노지에 부인의 충고 속에 뭔가 자신을 평소부터 고깝지않게 여겼음이 슬쩍 암시되는 가시를 감지하고, 당신의 조언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했다는 가식적 전제를 깔고서는 바로 반격을 가하는데 더도덜도 아닌, 딱 받은 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칼날 같은 공격이 들어옵니다. 어쩌면 셀리멘은 아르노지에의 적의를 제대로 꿰뚫어봤는지도 모릅니다. p22 필랭트의 대사 "점잖은 아르노지에가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네(알세스트)를 바라보았는데"를 보면 아르노지에 부인은 셀리멘에게 연적으로서의 적대감을 진즉부터 지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셀리멘은 애초에 만인의 관심을 즐길 뿐 누구 한 사람한테 진득한 애정을 키우는 타입이 아니므로 여기서 슬쩍 알세스트를 아르노지에에게 밀어주고 더이상의 소모적 기싸움(여성들 특유의)을 피하려 듭니다. 둘만 남게 되자 아르노지에는 알세스트의 (셀리멘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 주겠다는 듯 집요한 설득을 통해 상대의 열정이 자신에게로 방향을 바꾸려고 합니다. 

알세스트는 이처럼 어떤 자신만의 환상이 깨어지는 걸 무척 두려워할 만큼, 냉소주의자 특유의 냉철함을 갖추지 못한 유형입니다. 사실 그에게 과연 인간혐오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을 만한지도 의문스러웠습니다. 과연, 법정에 불려가서 혼이 난 후 자신이 그토록 멸시하던 오롱트에게 낯 깎여가며 평판을 양보하고 왔으니 앞으로 자존을 어떻게 유지할지 걱정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타격을 받은 건 이 법정 패소가 아니라 셀리멘의 "배신, 부정"이었습니다. 애초에 이 여자가 알세스트에게 뭘 약속한 자체가 없었으니(p106) 그야말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셈이라 더 우습습니다. 종국(6막)에 서신 폭로 소동을 거치며 ooo이 개망신을 당하고 사교계에서 매장당하는 듯 보이지만 진짜 패자는 알세스트인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을 혐오(?)하려면 제대로나 했어야 했는데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지론 속에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나르시시즘과, 사랑으로 착각한 얕은 욕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처음부터 기반이 부실했던 에고가 완전히 박살이 난 셈이 되었으니. 

"완벽한 이성을 지니고 싶다면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절제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p18)." 이미 절친 필랭트는 완벽한 정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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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설계자 - 자동 수익을 실현하는 28가지 마케팅 과학 스타트업의 과학 1
러셀 브런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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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케팅이란 것에 대해, 어떤 감성의 영역이라든가, 순간 반짝하는 영감 혹은 센스가 작동해야만 업무가 잘 풀리는 특이 섹터로 곧잘 간주합니다. 물론 그런 종류의 자질, 재능, 수완도 필요합니다. 헌데 저자 러셀 브런슨은 제법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브런슨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트업 마케팅 플랫폼의 대표이며 본인 스스로가 젊은 스타트업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자타공인 "광고에 미친 사나이"입니다. 

이분은 마케팅이라는 게 더 체계적이고, 더 과학적이며, 그 실행에 있어 더 치밀한 사후 검증, 피드백이 이뤄질 여지가 엄청 많은 영역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분이 이 분야에서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미처 캐치 못한 마케팅의 맥점을 기가막히게 짚고 잘 만질 줄 알았기에 가능했겠고, 제법 두꺼운 이 책을 통해 그 비법을 좀 풀겠다는 의도겠습니다. 원서는 8년 전에 출간되었고 윌북에서 드디어 한국어판이 나왔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 일류 저자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데, 언제나 보편타당하고 당연히 여기는 진리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뭐라도 하나 끼워넣고 주장의 개성을 부각하려 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상함을 피하고, 주장에 진실성을 더하며,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도모합니다. 브런슨 대표는 더군다나 자기 일에 대해, 자기 삶에 대해 무척 할 말이 많아하는 타입이라고들 하죠. 그래서 1) 일단 잘 정리되고 설계된 그의 체계를 착착 읽어가며 공부하는 보람이 있었고, 2) 곁가지로 그의 박력 있는 인생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공통된 관심사를 주제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많습니다. 브런슨 대표는 대학 때 레슬링 선수였다고 하는데(p54), 그 넓은 미국 각 학교의 레슬링 선수들은 인터넷상의 레슬링 포털에 접속하여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브런슨 대표의 촉이 발동하는데, 레슬링 관련 용품을 팔려는 당신이라면 이렇게 좋은 마케팅 기회를 그냥 지나치겠냐는 겁니다. 물론 한국의 상당수 커뮤는 바이럴 포스팅을 금지하거나 제약을 두지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수백 명이 밀집한 어느 장소라는 건, 내 상품의 사활을 걸고 접근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는 점, 누구도 부인 못 합니다. 

큰 히트를 친 노래 중 어떤 것은 "후크"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대중의 정서에 정석대로 호소하지 않고 어떤 기계적 자극을 통해 관심을 유발하는 방식은 비판의 소지가 많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가 어떤 기안을 할 때 이 후크를 즐겨 쓰는 게 또 맞습니다. 욕하면서도 못이기는 듯 의존하는 후크, 기왕이면 영리하게 써야겠고 브런슨은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도 없는(p79)" 후크에 스토리를 잘 담는 게 성공의 비결임을 강조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 사이트로의 클릭수를 높일까요? 참 누구나 고민하고 궁금해하고 여러 사람들이 많은 해답들을 내놓지만 시원한 답이 없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무슨 정답이 있겠거니 궁금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브런슨 대표는 거의 이 책 전체에 걸쳐 퍼널과 프레임이란 걸 강조합니다. 퍼널(funnel)은 깔때기를 가리키는 그 단어인데, 브런슨 대표는 이 단어를 주로 동사처럼 씁니다. 흩어져서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없는 대중의 관심사를, 마치 깔때기처럼 응집하고 흡입해서 내 상품과 서비스로 끌어들이자(=퍼널[링]하자)는 의도지요. 프레임은 우리가 여태 예사롭게 보던 물체나 현상에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설계요 장치입니다. 저자는 이 두 단어를 마케팅의 핵심까지 끌어올리고, 장대하면서도 쓸모 요긴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과연 마케팅의 대가라서 꽤나 기술적인 사항도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풀어서 얘기해 준다 싶었습니다. 

"나는 딴 거 아무것도 모르고 이거 하나만 파는 사람입니다. 이거만큼은 날 믿으셔도 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단순한 군고구마 메밀묵 찹쌀떡 장수 같은 전략이 잘 통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브런슨 대표는 저런 구식 선전술을 단호하게 리젝트합니다. 브런슨은 우리 현대인들이 사려 드는 건 개별 상품이 아니라 어떤 "가치"이며,  특정 상품이 전체로서 어떤 가치에 속해 있냐에 따라 사고 안 사고를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p93에서는 척추지압사 지인을 컨설팅해 준 사례를 소개하는데, 척추 지압이란 건 사실 단순한 기술이라 심지어 유튜브에서 몇 분만 보고 따라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아무리 닥터가 제공하는 시술이라 해도 매상이 신통치 않았는데, 저자는 단순 기술을 팔 게 아니라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건강 프로그램을 팔라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척추지압술(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은 그 프로그램의 일부로만 보이게 하고, 건강이라는 궁극적 가치는 의사만 다룰 수 있으므로 여기서 차별화를 하는 겁니다. 또 가치는 사다리를 이루게 하고 여기에 갖가지 상품과 서비스를 적절히 퍼널링하며 배치하라고 합니다. 이 대목은 정말 읽으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p157 이하에는 사이트 방문자를 어떻게 "소유"하고 "통제"할지에 대한 브런슨만의 비법이 나옵니다. 이른바 주소록(고객 명단)은 구글 등 어디서건 살 수 있으나 그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또 그 주소록이 내 사업에 잘 작동할지도 의문입니다. 나만의 주소록을 갖는 게 핵심인데, 이 방법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그대로 따라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소유, 통제 주소록 비결, 방문자 유형 분석은 국내 다른 책에서도 읽어 본 이들이 많을 텐데 그 오리지널이 브런슨의 바로 이 책입니다(그 책들도 브런슨 책이나 저자명을 최초 출처로 밝히고들 있습니다). 

퍼널링과 가치 사다리는 정말 브런슨 마케팅론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일단 판매를 하고서, "네 구매가 확정되셨습니다 고객님"으로 끝이라면 당신은 하수입니다. 아 그럼 같은 걸 한 번 더 팔아야겠구나 하면서 같은 아이템으로 컨택한다? 이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하수가 아니라 최하수입니다! 어떻게 모신 고객인데 한 번만 팔고 말겠으며(내내 저자가 강조하는 건, 주소록[고객 명단] 만들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같은 걸 또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거죠. 이때 가치의 사다리가 작동하는 겁니다. 차를 방금 산 고객에겐 액세서리나 보험을 팔아야 합니다. 만약 더 큰 무엇을 사는 게 부담스러운 고객이라면 사소한 다른 아이템(같은 퍼널 위계에 자리한)이라도 팔아야 합니다(하향 판매). 세상은 넓고 팔 것은 많다고나 해야 할지, 브런슨 대표 같은 마인드와 비전을 지닌 사람이라면 정말 누구에게건 무엇이라도 팔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일부만 잘 따라해도 그게 어디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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