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덱 - 조직 문화를 선언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박창선 지음 / AM(에이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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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업이든 고유의 문화가 있어야 성공합니다. 이 문화는 대개 그 창업주가 자신의 개성을 심어 놓은 데서 출발하는 게 보통인데, 여튼 기업 고유의 문화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며들고 체화되어 조직 전체가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 시장에서 살아남고 목표한 바대로의 성과가 나옵니다. 이 책 p162에도 나오듯이 기업 문화는 bottom-up, 즉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윗단이 바뀌면 회사의 색깔도 바뀐다. 그래서 회사는 열린 사회와는 다르다." 

"기업의 문화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로 존재합니다(p42)." 이 말만큼 기업 문화의 구조적 특징을 잘 요약한 문장도 드뭅니다. 체계라는 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기체입니다. 부분은 전체를 위해, 전체는 부분을 배려하며 한 몸으로 작동하는 거죠. 이런 기업 문화는 암묵적으로 기업 성원 간에 공유될 수도 있으나, 이 책은 더 선명한 자기 주장을 합니다. 가급적이면 더 명확하게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게 글로 쓰여야 하며, 시각적으로 모두가 같은 시간에 바라볼 수 있게 만들면 그만큼 더 동기도 강화되고 진행 상황도 한눈에 파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deck은 이런저런 샵 앞에 설치한 우드덱이라고 할 때의 그 덱과 같습니다. 이런 덱도 가게 외관을 더 돋보이게 하거나, 접근성을 높이거나, 가게 컨셉을 외부로 더 확장하여 행인들에게 어필하는 효과가 있죠. 정체성은 물론 무의식중에도 확정되고 성장하지만 기왕이면 더 두드러지게, 더 분명하게, 더 넓고 깊은 범위로 "선언(p36, p124)"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성격을 분명히하고 기록으로서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예로 조선왕조실록, 고대 이집트의 세뉴, SK그룹 사내컨텐츠 스토리웹툰까지 거론합니다. 원래 SK그룹은 이런 개성 있는 컨텐츠를 통해 기업 문화를 외부에까지 홍보하는 능력으로 유명했죠. 

"컬처덱에 담긴 내용이 학습의 영역이 아닌, 감정과 함께 움직이는 감탄과 공감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p105)." 머리로만 옳다고 받아들이면 그건 공부이고 이론이지 문화 단계까지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유행하는 말로 "~를 책으로 배웠냐?"는 게 있죠. 물론 책으로 배우는 게 서당개가 풍월 읊듯 어깨너머로 어설프게 배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머리에만 정리해 넣는 건 머리에조차 오래 남지 못하며 행동이나 구체적인 성과로 연결되기도 힘듭니다. 그 사람의 감정과 체질에까지 스며들어가야 그게 문화로서 바르게 노릇할 수 있죠. 

책을 쓴다, 집단 기록을 남긴다는 게 의외로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듯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우리는 각종 동아리나 취미 활동에 참여하는데 그저 사진만 찍고 행사만 개최하고 끝에 아니라 보통 이걸 책자로 남깁니다. 이미 이뤄진 활동도 그렇고, 앞으로 이뤄질 활동도 기록으로 명확히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차이가 큽니다. 이런 기록화와 퍼블리싱은 월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 하는 식으로 정기성(periodicity)를 갖춰야 한다고 저자는 가르쳐 줍니다. 

컬처덱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요? 참고서와 보고서와는 달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지론입니다(p169). 정보를 찾거나 연구 공부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감정이 잘 전달되게,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모두가 한꺼번에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확 퍼뜨리기 쉽게, 누가 봐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회사가 열린 사회와 다르다고는 하나 피드백(p288) 자체가 원활하지 못하다면 이는 조직을 괴사시킬 수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열린사회 못지 않게 피드백이 활발해야 하며, 어떤 민주적 가치의 구현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상품을 많이 팔기, 많은 이익을 올리기 등)를 달성하기 위한 피드백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잘 지내고 케미스트리를 강화하는 데에만 주목하지, 구성원 중 누구 하나를 떠나보내는(퇴사) 절차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컬처덱에 이런 이별의 순간이 자리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건, 아니면 그 성원의 성장을 위한 이직(p376)이건 2차 집단에서는 얼마든지 가입과 탈퇴가 합리적인 이유와 절차에 의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잘 형성되고, 잘 성장한 기업 문화는 잘 전파될 필요도 있습니다. p390에 원활한 전파를 위해 피해야 할 요소,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가 설명됩니다. 똘똘한 컬처덱은 그 자체가 한 명의 유능한 사원, 간부이며 자체 논리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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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언니 시점 - 삐뚤어진 세상, 똑부러지게 산다
김지혜 외 14인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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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그래서 때로는 영악한 계책으로 난관을 빠져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에 호소하기도 하며, 때로는 대담한 배짱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합니다. 힘든 사회에서 그 나름 터득한 지혜에 대해 여러 당찬 여성들이 털어놓는 비결을 들어 보면 남자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게 많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외도 중인 남편들에게 고하나니 들킬 거면 출산 후에 들켜라.(p58)" 홍소영 필자는 실제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겪은 엄청난 고통담을 털어 놓습니다. 임신 기간 중에 남편들이 외도를 하기도 한다는 속설 같은 건 해당 부정행위를 결코 합리화할 명분이 못 됩니다. 산모가 이런 충격을 받았으니 출산도 순탄치 못했고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리원에서 미역국 냄새만 맡아도 토했다고 하는데 임신이나 출산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일인데다 정신적으로 그런 충격을 겪기까지 했으니... 저는 처음에 저 문장을 "외도 중인 아내들에게 고하니 제발 아이 하나 낳고 들켜도 들켜라."로, 정반대로 읽었습니다. 제 생각이 썩었나 봅니다. 

"당신 딸이 제 아이의 앞길을 망쳤어요.(p65)" oo이란 남성이 갓난아기의 아빠인 듯한데, 그 부모 되는 분이 여성의 양친에게 저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은주 필자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책에 나오는 대로 정말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선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쩜 저렇게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지, 본인이 남에게 끼친 피해는 전혀 생각 않는 건지, 이런 사람들은 꼭 보면 어디 다른 데서 얻어터지고서 엉뚱한 데다 분풀이를 하려 들더라구요. 눈물을 흘리는 건 필자(여성의 이모)이지 남친(즉 애 아빠)이 아닌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삶에는 어느 정도 지침(인디케이터)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p118). 아무리 소신이 강하고 마이웨이 스타일이라 해도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뷰렛 테스트, 베네딕트 시약... 외국에서 공부한 젊은 여성들(놀랍게도 필자의 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끝에, 이제는 적지 않은 연령의 필자도 새삼 어떤 불합리한 경계를 그들(?)과 자신 사이에 그어 왔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각성은 반갑고 놀랍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것입니다. 한숙 필자님 용기가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입니다.  

길에서 도를 아냐는 질문을 들으면 대개 뿌리치고 내 갈 길을 가게 마련이며 애초에 기억에 이런 걸 담아 두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김소애 필자님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어느 분의 말솜씨와 논리가 대단히 정연하며(!) 묻는 질문에 척척 대답까지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길에서 저런 분 만났을 때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니고, 우리가 무작정 남의 말에 귀를 닫을 권리까지는 없지 않냐는 생각인 듯하고 여기까지는 저도 동의가 되었습니다. 물론 결론은 "단돈 오천원으로는 안 됩니다!"였고 거기서 그분의 진정성이란 바닥을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우습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이  필자님은 그날 당일 신출내기 멤버 한 사람을 구했고, 한참 뒤 비슷한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남자친구(이 사건과는 직접 관계 없음)의 진로도 일단은 구했습니다. 이게 바로 분별력(p166)의 힘이란 거죠.  

"결론은 버킹검이다(p189)." 이 드립을 알아 들으려면 나이가 최소 40대 중반은 되어야 할 듯합니다. 이의진 필자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거꾸로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는데 썩은 해골물이 감로주로 맛들여지는 건 다 마음씀에 달린 문제이며 남 눈에 타조라도 내 눈에 기린, 사슴일 수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콩깍지는 때로 내 눈에서 안 떨어지는 게 이롭기까지 합니다.  

읽기 전엔 마음이 무거워질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역시 내공 있는 언니들의 "썰"이 최고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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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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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자신만의 확고한 체제중심과 자긍이 있었으나 유럽으로부터 촉발한 근대화의 물결 앞에 맥을 못 추고 반식민지 상태에 머무르다 기어이 나라가 풍비박산이 났었고, 국가의 생존 자체를 위협 받으며 독립 전쟁을 펼친 끝에 엄청나게 쪼그라든 영토만을 보유하며 간신히 국체를 지켜 냈고, 나라 꼴이 이 모양이 된 게 인본주의, 합리적 계몽사상, 민주주의, 남녀평등 등을 진즉에 주체적으로 수용 못 한 탓이라 자성하고 필사적으로 탈 전근대, 탈 이슬람을 시도해 왔습니다. 이 와중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적어도 민주주의와 인권 구현만큼은 한참 후퇴한 아픈 경험을 한 것까지도 비슷합니다. 

한국도 일제 강점기나 개발도상국 시절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이런 근대화 도정에서 가장 피곤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바로 여성들, 그 중에서도 총명한 두뇌를 타고났으며 사이비 아닌 정규 교육기관을 거치고 올바른 소양을 정신 속에 담아 체화한 여성 인력들이 가장 난감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였던 게 사실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즈베리 날반트오울루 역시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터키어는 20세기 초 아라빅 스크립트를 버리고 로마자를 쓰기 때문에, 예컨대 이 책 p8에 나오는 표기를 보고 특히 "트오울루" 파트를 읽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터키와 더욱 교류를 증대해 가야 할 한국으로서는 터키의 언어를 비롯, 문화 제반에 대한 관심을 체계적으로 늘려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느낀 건, 대체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집안에서도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행실 또한 반듯한 여성 인력들이, 왜 이처럼 평범한, 혹은 심지어 평범보다도 못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저렇게 재능을 썩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던가요? 특히 저는 이 소설 초반에 나오는, 페리 자신이 모는 자가용 안에서 부랑자 패거리(중의 꼬마)한테 지갑을 탈취당하는 장면이, 어디서 온당한 적수도 아닌 지저분한, 룰도 원칙도 없이 당한 대로(이 역시 피해망상) 미러링해 주겠다는 발악이나 하는 하급의 얼치기들한테 당하는 엘리트 여성의 치욕과 곤혹을 제대로 상징하는 듯하여 한편으로 헛웃음이 나왔고, 한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터키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난 이슬람 광신 시대의 인습, 혹심한 남녀차별 등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젊은세대는 국가 레벨에서 내려오는 권위주의,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죠. 소설 내내 나오듯 페리의 부친은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된 건 케말 파샤 덕분"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한, 전형적인 체제 순응적이고 보수적인 인사였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저 페리의 부친이 낮게 평가하는 이란도 1979년까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죠. 

케말 파샤는 게다가 1938년, 2차 대전 발발 전(즉 무려 팔레비 샤 즉위 전)에 타계했으니 이란의 현재 꼴이 어떻든 간에,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영향을 끼칠 만한 위치에 있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건, 터키는 이제 에르도안이라는 전혀 색다른 유형의 독재자를 맞이하여 그나마 아타튀르크 케말이 목숨을 걸고 시도했던 세속지향 - 탈종교의 방향성 자체를 바꾸려 든다는 점입니다. 이게 역사의 퇴행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물론 터키는 수니, 이란은 시아이므로 둘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 상극이긴 합니다만 만약 이 라이벌리가 광신 근본주의에의 경쟁으로 변한다면 이는 서아시아의 민중을 위해, 특히 여성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불행한 결과를 빚을 뿐이겠습니다. 1999년만 해도 터키의 젊은이들이 TIME에 엽서를 보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큰 인물" 투표에서 케말을 1위로 올리려는 열성을 보이는 해프닝이 빚어졌으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뿐입니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주인공 페리가 못마땅해하는 젊은 사람들(p248)에는 저런 이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재미있게 본 건, 페리가 꿈꾸는 어떤 이성의 상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머리에 지성과 교양이 있는 남자라는 것이며, 그녀가 주목하는 게 고전 문학을 사랑하고 그 참된 가치를 (어떤 광신의 기준에 따라 멋대로 왜곡하고 편집을 거친 게 아닌) 있는 그대로 알아봐 줄 줄 아는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왜, 저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는데? 자기들이 한 대로 돌려받을 거야! 죗값을 받을 거라고!"(p262) 이게 바로 벤데타라는 거죠. 원한이라는 게 당대에 해소가 안 되고 그 후대에까지 계속 내려오는 겁니다. 물론 악행은 반드시 심판 받고 단죄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후손들이, 명확히 또 당당히 그 선조들의 죄업을 계승하겠다며 전혀 반성의 기미를 안 보이고 오히려 해코지의 기억을 자랑스러워한다면 또 모를까, 아느 선에서는 이 분쟁의 악순환이 마무리는 되어야 하겠지요. 당사자가 거부한다면 뭐 답이 없겠습니다만 말입니다. 

페리는 이른바 오리엔탈리즘, 즉 유럽인들이 제멋대로 만든 동양에 대한 정형화한 비전에 집착하는 듯도 보입니다. 소설 초입(p13)에서도 그랬고, p297에서도 앨런 파커 감독의 그 화제작까지 언급합니다. 참고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사실 왜곡에 대해 공개사과를 한 적 있습니다. 그렇다고 터키 체제의 악행이 합리화되는 건 또 아닙니다. 아무튼 페리 같은 여성이 좀 이상할 만큼 "유럽의 시선"에 대해 신경쓰는 건 살짝 이해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이방인이라! 그야말로 "에밀리 디킨슨과 우마르 하이얌"(p379)의 사이에 선 형국입니다. 

이슬람의 가장 큰 명절인 희생절은 이 소설에서 여러 번(p9, p439) 등장합니다. 무슬림들도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한 일을 알고 그 의의를 기립니다. 애초에 무슬림은 과연 무엇을 올바른 정체성으로 잡을 것인가를 놓고 내부의 투쟁, 외부와의 타협 등을 거치며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형성된 집단이며 심지어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실존적 위기를 겪으며 장폴 사르트르(p470)까지 인용합니다. 근데 심지어 이 대목에서도 여전히 유럽 시선을 의식하네요. 

남자들이 못나서 답을 못 내면 여자들이 나서야지 어쩌겠습니까. 자유를 향한 그들의 발걸음(p553)이 멀리 나가길 기대합니다. "이브의 세 딸"이란 제목은 "세 가지 열정(p547)"으로 읽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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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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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윤제 작가님의 단편집입니다. 여러 작가들의 청소년 스포츠물 앤솔로지 격인 <달고나, 예리!>에 수록되기도 했던 "라이프가드"가 표제작입니다. <달고나, 예리!> 전체에 대한 제 리뷰는 재작년 10월경에 올렸더랬습니다. 

라이프가드는 해변에서 다른 사람들(주로 관광객)의 안전을 지켜 주는 직분입니다. 대체로 수영에 능한 이들이 이 직을 맡지만 주인공 유지의 경우 뭔가 다른 배경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p73의 "마음 속 욕망이 오물처럼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이 구절이 제게는 어려웠습니다. 유지 마음 속에 뭔가 억눌린 이런저런 감정의 찌꺼기가 머물러 있던 줄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유지에게 "욕망"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시기와 질투의 마음?(p72). p75의 "답답한 게 싹 없어져."라는 말과 어쨌든 연결을 시켜야 하겠지만. p65의 "세탁기가 비명을 지르며 더러운 구정물을 울컥울컥 쏟아냈다."라는 말과, p67의 "(묵은 살림을 깔끔하게 치워 내는) 엄마는 미다스의 손이었다."도 같이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강(江)>에서 "나"는 새엄마한테 뭔가 나쁜 의도나 있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모함하지만 사실 악의는 그렇게 말하는 본인의 마음 속에 잔뜩 똬리를 튼 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의 아토피가 그처럼 갑자기 나은 것도, 마을 아낙네(술집 여자에게 특별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댈 만한)들의 태도가 변한 것도, 여인의 행동 안에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불순한 시늉이 아닌 진정성이 다분히 배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정말 나쁜 사람은 역(逆)부전자전이라고, 후처의 전남편 소생을 끝까지 호적에 올려 주지 않은 그 부친이 아닐지. "검은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오물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p28)", "나는 아가미에서 오물 덩어리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검은 물고기를...(p10)" 아비와 자식이 달랐다면, 그래도 아들은 제 내면에 적체된 못된 심뽀를 "오물"로 감지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고나 할지.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서로 위치가 반대지만 마음의 오물을 민감하게("울컥울컥") 의식하는 점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다시 <라이프가드>로 돌아와, 유지 엄마는, 책 맨앞에 실린 <강>에서 "나"의 새엄마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닐지. <강>의 새엄마는 과거가 얼룩진 여인이었으나 마치 속죄라도 하려는 듯 새 가정, 새 공동체에 과할 만큼 적응하려 노력하다가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떴다면, 이 유지 엄마는 정반대입니다. 돈 많은 남자만 골라 로맨스 스캠을 벌여 한탕 한 후 다음 먹잇감을 찾아 떠나는 하이에나가 아닐지. p83에는 하우스에서 화투짝을 들여다볼 때 가장 활기가 도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의 표지 그림은 p83 "고양이처럼 살이 오른 엄마"에 대한 일러스트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사기를 친 후 혹은 직전에 짓는, 가늘게 눈을 뜬 회심의 미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고양이보다는 돼지에 가깝지만 말입니다. 유지 역시 새로 생긴 동생에 대해 적정한 거리를 언제나 유지하려 애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필이면 필요한 그 기술을 안 가르친 건, 한 달여 간 어디서 뭘 처리하고 왔는지 종적이 수상쩍은 제 엄마처럼 누군가를 적정 시점에 처리하는 고난도 부작위 기술인지도 모릅니다. 

<토성의 고리>를 쓴 독일 작가 W G 제발트에 대해 인구 백만이 넘게 사는 이 도시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p41)이라고 <도서관의 유령들>의 1인칭 화자는 추측합니다만 이분 말씀에 저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우선 제발트는 꽤 알려진 작가이며, 도서관처럼 특별한 성향과 목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드는 장소에서라면 더군다나 제발트는 자신의 독자를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한 이가 나 말고 또 있었나?" 그럼요. 의외로 당신은 그리 유니크하지 않습니다. 필립 로스의 <아메리칸 패스터>는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주인공이 아마 반납한 도서도 무슨 유령처럼 떠돈 게 아니라 걔를 알아본 어느 독자(들)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졌을 수 있습니다. 

토성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고리를 차고 정해진 궤도를 돌았으나 <토성의 고리>라는 제목을 단 책(의 한 카피), 또 그에 감정이입한 1인칭 화자는 오랜 동안 소속이 없이 겉도는 존재였습니다. 그의 사회 생활은 경악할 만한 배신과 뜻밖의 도움을 번갈아 겪는 등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첫사랑도 쉽지 않았고 애욕의 감정을 에리히 프롬의 (한물간, 또 잘 맞지도 않았던) 처방에 애써 기대어 달래야 했을 만큼 힘든 추스림의 시간을 거친 듯합니다. 키르케고르(당시 표기법으로 "키에르케고르")나 안병욱 교수나 그의 목마름을 결코 달래줄 수 없었을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고마운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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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고시넷 초록이 NCS 모듈형 2 통합문제집 - 공기업 NCS 시험에 출제되는 모든 문제 유형 | 모듈형+응용모듈형 기출문제 2023 고시넷 초록이 NCS
고시넷 NCS 연구소 지음 / 고시넷 / 202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NCS 공부가 조금은 식상해질 무렵 초록이 통합기본서①을 접하고 신선한 편집 덕분에 활력을 얻었습니다. 모듈형은 물론 기본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면 대개는 해결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문제집을 한 번은 돌려야 실력이 안정화되고, 또 피듈형으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발판이 생깁니다. 기본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통합문제집도 열심히 풀었는데 역시 좋았습니다. 수험 교재는 물론 내용도 내용이지만 깔끔하고 눈에 잘 들어오는 편집이 엄청 중요하다는 점 실감했네요 ㅎㅎ 

통합문제집도 기본서처럼 의사소통, 수리, 문제해결... 등등 8개 영역으로 나뉘었고 옆면에 인덱스도 찍혔습니다. 후반부에는 모의고사 2회분도 있어서 실력이 제대로 붙었는지 최종점검할 수 있습니다. 

p47의 27번의 경우 본문에 설명된 촉매설계방법과 가장 유사한 선지를 고르게 합니다. "반복"이라는 점에서 2, 4, 5 등이 후보가 됩니다. 1과 3은 동일 과정의 반복이 아니므로 일단 제외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2도 "오류의 최소화"가 아니라 거의 완전한 해법을 새로 발견한 것이므로 탈락입니다. 별책 p7의 해설에 보면 회귀 경로의 뜻을 환기시키며 방법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그럼 4는 동일한 시도가 거듭되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른 시도가 이뤄지는 과정이고, 또 여기서는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개선이 본질이 아닙니다. 5는 분명히 코치를 만나서 개선되는 과정이 포함되죠. 

p55의 12번은 모듈형의 전형적인 문항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기본서에서 이 항목을 잘 공부해 두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죠. 의외로 이런 걸 어려워하는 수험생들이 많았습니다. p63의 27번도 통합기본서에 거의 그대로 나오는 내용이라서 쉽게 해결 가능합니다. 

p111의 21번은 비교적 패턴이 빤히 보이는 문제죠. 해결 자체보다는 속도의 향상이 중요하며 문제집의 반복 풀이는 이런 용도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뻔한 문제를 더욱 빠르게 해결하는 능력. p112의 23번은 그림만 보면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오히려 더 쉽습니다. 이런 문제가, 예를 들어 A는 시계 방향으로 돌고, B는 반시계방향으로 돌 때 3분 후에 어느 지점에 있겠냐는 식으로 묻는다면 더 어려울 수도 있겠죠.  원은 그 정의가 "특정 점으로부터 일정한(=같은) 거리에 놓인 점들의 집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섯 사람 모두 출발점이 같아야죠. 

p123의 11번은 처음에는 꽤 어려운 문제였겠으나 이제는 너무도 자주 노출되어 수험생들이 답을 다 외울 정도입니다. 심지어 4명일 경우 답이 6이라는 점까지도... 이 문제는 뒤 해설집 p31에 나오듯 거의 공식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공식도 암기가 안 된다면, 차라리 선지에 나오는 네 가지 경우에 대입해 "실제 악수를 시켜 보면" 답이 안 나올 수가 없죠. p120의 04번 문제는 "표준편차의 의미를 잘 보여 준다"는 뜻이 다소 모호해서 아쉬웠습니다. 문제의 해설대로라면 선지 1도 극단적으로 산포도가 낮으므로 역으로 표준편차, 분산의 의의를 강조하는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NCS의 고인물들은 워낙 눈치가 빠르기에 이런 문제도 출제 의도가 어디 놓였는지 쉽게 알아채고 답을 4로 고르긴 할 것입니다. 

p433의 04번을 보면 안드라고지에 대해 묻습니다. 페다고지라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론이 있는데 이는 아이를 가리키는 pais와 이끌다는 뜻의 agog가 결합한 단어죠. 안드라고지는 저 단어에서 파이스를 빼고 성인이라는 뜻의 안드로스를 붙인 단어인데 페다고지와는 달리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신조어 그리스어라고나 할지. 

2회분 모의고사들은 비교적 최신 출제 경향을 잘 반영한 듯했고 난이도도 적당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유형은 드물었다고 하는 의견도 제 주변에 있었으나 교재가 모듈형이니만큼 포맷이나 수준은 적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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