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슈퍼마켓
벤 밀러 지음,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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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너에게 좋지 않은 것 같아.'(p62)"
"아무래도 이 이야기들은 라나가 듣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p26)" 

라나의 엄마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어떤 책을 읽어 주거나 읽힐 때 먼저 내용의 적절성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게 사실입니다. 예전에 수입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TV에서 큰 인기를 끌 때 학부형들은 그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산 컨텐츠가 외산을 거의 몰아내었을 뿐 아니라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아 해외에 수출까지 됩니다. 

21세기인 지금, 유럽 근대에 창작된 여러 동화들이 과연 그 하나하나가 아이들한테 읽히기 적합한지는 따져 봐야 할 문제인데, 영국 코미디언 벤 밀러가 쓴 이 작품은 학부형으로서 한 번 정도는 느꼈음직한 저런 고민을 모티브로 삼아 이렇게 재미있는 판타지 하나로 탄생된 듯하네요. 역시 아동용 컨텐츠를 잘 쓰려면 아빠(엄마) 입장에 한 번은 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두에는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신 나(저자)의 아빠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표현(p4)되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어려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이들이 커서도 남 보기 좋게 크고 직장에서도 제 할 일을 잘 해 내게 마련이죠. 

라나의 엄마도 정작 본인이 커서 읽어 보니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는 것 같은데 그림 형제 동화 중 난쟁이 룸펠슈틸츠헨 이야기는 우리들이 성인이 되어 읽어도 다소 기괴합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저 "룸펠슈틸츠헨"이라는 이름부터가 무섭습니다. 그 그로테스크한 난쟁이 캐릭터가 책 밖으로 나와 우리와 조우한다면? 책이건 영화, 드라마이건 이런 장르 판타지는 모두 어떤 결계를 넘어 내가 책 안으로 들어가거나 반대로 책 안의 세계가 밖으로 우루루 튀어나옵니다. p43에서 라나는 마치 이상한 나라로 빨려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어떤 어두운 통로를 거쳐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데 이것도 아마 거의 모든 판타지 장르에서 애용하는 클리셰이겠습니다. "보름달이 뜬 날 결코 날지 않는 용(p75)"처럼 말입니다. 

"'문은 어디로 사라진 거에요?' '사라지지 않았어. 닫혀 있을 뿐이지.'(p70)" 언제나 결계는 이런 식입니다. H G 웰즈의 <벽문>에서도 사람 환장할 만큼 문과 통로는 닫힘과 동시에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여튼 이 커다란 젤리통은 편하긴 합니다. 라나 말처럼, 엄마가 아무리 책을 숨겨도 라나는 언제든지 그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숨긴 책(노인이 놀라운 상술을 부려 팔아먹은)에는 미처 서술되지 않았으나 왕자한테도 그 나름의 내력이 있었고 이 왕국은 말만 왕국이지 매우 가난합니다. p78에 왕자가 창피하게도 나라 이름을 드라이츠마르크라고 알려 줍니다(p127도 참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서푼짜리(=dreigroschen) 오페라>는 들어봤어도 나라가 통째 이런 푼돈어치인 건 또 처음입니다. 이 왕자는 좀 바보인지 p96에서 라나나 해리슨 이름이 이상하다고 큭큭거립니다. 매사를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네요. 이래갖고 과연 공주를 구해낼까요? 

이런 두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에서 추격 씬(p86)만큼 사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건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재미나게 묘사된 것 중 하나가, 더 이상 아이이길(=나와 놀아주길) 거부하고 어른 세계로 한 발 들이며 공부에 집중하는 형, 오빠, 누나 등에 대한 섭섭함인데 이건 책 맨처음에 나옵니다. 이러니까 동생 입장에서는 더 엄청난 놀잇감을 만들어 저 어른 흉내내는 오빠(형, 누나)를 다시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 작가는 중년 남성이면서도 그 심리를 잘 캐치한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서 소설은 헨젤과 그레텔까지 등장시키는 등 캐릭터들의 향연을 벌입니다. 하루아침에 땅 밑에서 솟아오른 큰 슈퍼마켓(p6)처럼 그 안에 없는 게 없습니다. 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주인공들과 함께 부담없는 모험을 즐긴 것 같아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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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삶을 디자인하다 최우현의 보석이야기 2
최우현 지음 / 마음시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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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이란, 인간이 품은 허영심의 표현 그 극한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의 무굴 제국은 코이누르라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를 통해 제국의 위신을 과시했고, 요즘 드라마 <빨간o선>을 보면 상류 사회의 욕망과 자긍심을 드러내는 직접적 수단이 보석으로 구성된 예물 세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석의 기능과 의의를 그저 사치와 향락 쪽으로만 연결시키는 건 꽤 피상적이고 편협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같은 보석이라도 어떤 디자이너의 손을 통해 가꾸어지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과 영감의 원천 노릇을 하거나, 패용하는 사람의 품격과 이미지를 매우 다르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보석 세공과 디자인이 시대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천차만별로 발달해 온 이유입니다. 

책 앞날개에 적힌 저자 최우현 디자이너의 경력을 참으로 화려합니다. 한국인의 미감, 심미안과 손재주가 이 정도씩이나 된다는 걸 세계에 확인시킨 자랑스러운 분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1권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으나 이 책을 완독한 후 따로 찾아 읽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한국은 이제 이 분야에서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p83에 보면 보석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자질에 대해 저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자는 주저없이 관찰력을 꼽습니다. 이 관찰력은 기계적인 시력, 해상도 같은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캐치한 후 이를 원래의 숨은 곳으로부터 밝은 시야로 드러내는 통찰력에 가깝겠습니다. 저자는 또한 이 관찰력은 일종의 감각으로서, 한번에 계발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가꾸어지는 센스라고 하며 특히 성장기에 중점적으로 길러지고 함양된다고 지적합니다. 참으로 타당한 말씀입니다. 

책은 고급 백상지에 인쇄된 총천연색 사진들과 도판이 가득합니다. 보석을 이야기하는 책답습니다. 읽으면서 그저 겉으로만 화려하게 보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던 보석이, 사실은 이런 인문적 함의를 지녔었구나, 인류 문명사와 보조를 맞춰 온 보석들이 역사 곳곳의 지점에서 가치와 이념, 감정과 인륜의 상징물, 매개 노릇을 이처럼 알차게 해 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호박은 한국의 농가에서 가꾸는 채소를 가리키는 말과, 이 책 p132에 소개되는 보석류로서의 amber가 (당연히) 서로 무관한 단어입니다. 주변에서 호박의 용도로 자주 거론되는 여러 상황들과, 이 책에서 차근차근 짚어 주는 체계적 위상이 상당히 차이가 나서 책을 읽으면서도 진땀이 났습니다. 잘못 알고 있던 바를 고치는 게 독서의 의의이며 양서를 만나는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p170에 나오는 삽화 "하늘을 품은 나비"를 보면 세상 천지에 다시 없을 부드러움을 지닌 곤충이 이처럼   표독스러운 야망과 당참, 혹은 간교함을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 파트는, 현재 재난으로 큰 고통을 겪는 터키와도 깊은 관련을 지닌 터쿼이즈 보석을 설명합니다. 보석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의 마음과 정신의 심층 구조에 대한 비밀을 밝혀 주는 듯하여 신기합니다. 사람이나 보석이나 그 기원이 한줌 흙으로 공통이라서일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좋은 책들을 함께 보내 주신 마음시회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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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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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염치, 부끄러움을 알아야 그게 인간입니다. 내가 부족하다 싶으면 더 갈고 다듬어야 마땅하지 혼자만의 공간에서 우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하고 무작정 자신만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밀어붙이듯 강요하는 유형을 두고 우리 조상들은 예전부터 소인배, 악인으로 규정하고 이를 경계해 왔습니다. p106을 보면 이어령 박사는 대학, 중용 등을 출처로 들며 "혼자 있을 때도 삼가고 조신할 것"을 강조하는 말로 "愼獨(신독)"을 환기합니다. 대학 중용에 명언이 한두 마디가 나오는 게 아니지만 유독 한국의 유학자나 지식인 사이에서 이 어구가 자주 거론되는 건 (이 책에 나오는 대로) 동인학맥의 거두 이퇴계가 특히 강조한 바 있어서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원래는 어조사 也를 끝에 붙여서 "신기독야"라고 하죠.  

"역설과 반어는 아주 밀착되어 있다(p90)." 사실 역설은 역설이고 반어는 반어일 뿐인데 고교 참고서 같은 걸 보면 이 두 기법을 같은 항목으로 놓고 설명합니다. 이 오묘한 이치를 설명하면서 이어령 선생은 김소월의 <먼 後日>을 예시(例示)합니다. 제가 며칠 전 어느 증권 애널리스트의 방송을 봤는데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면서 일부 예측자의 모순되는 듯한 워딩을 비판하더군요. 물론 주식에는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 식으로 일도양단이 되어야 하겠으나 인문 영역이라든가 사람 사는 이치는 꼭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서야 잊었노라" 이 말은 결국 안 잊겠다는 소리를 저리 돌려 표현한 것뿐이죠. 혹은, 제논의 역설(이 선생이 생전에 즐겨 거론한)처럼, 부분에 있어 타당한 게 전체로서는 부당할 수 있습니다. 

p168에는 여성의 비행에 대해 선생 특유의 의미부여가 나옵니다. 각별히 총명한 따님을 뒀던 선생이니만큼 여성 얘기할 때 선생은 언제나 페미니스트가 됩니다. p168 이하에서 선생은 박경원, 또 우리 시대의 이소연을 회고합니다. "여성의 비행은 그 자체로 시위다." 사실 이 분야에서 바로 떠오르는 인물인 아멜리아 이어하트도 그 생애 자체가 하나의 문화 상징입니다. p162에서 인용하는 작가 아인 랜드의 말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선생은 생전 고령 시점에서도 구닥다리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이처럼 전거로 삼는 지성인들의 pool이 언제나 최신으로 업데이트되어 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로 한국사 교과서에도 잘 나오는 이규경은 "농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천지인 삼자의 힘이 다 필요하다(p20)"고 했답니다. 경회루의 유래와 드라마 <용의 눈물>도 같이 거론되는데 이런 조상들의 의례, 혹은 몸부림이 미신처럼 보여도, 사실 기상 현상은 21세기의 첨단 이론, 기술로도 설명이나 텅제가 완벽히 이뤄지지 못합니다. 그러면 진인사대천명, 어차피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 다른 온갖 정성을 기울여 공동체의 기강을 정화하고 다른 사회적 덕목을 부가적으로 달성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습니다.

<장크리스토프>로 노벨상을 받은 작가 로맹 롤랑은 실제로 <베토벤의 생애>라는 책도 따로 썼는데(p131) 여기에는 "비굴한 사람은 우상을 통해 행복을 얻고 위인(베토벤 같은 이들)은 고행을 통해 진정한 삶의 기쁨이 뭔지 체험한다"는 말리 나온다고 합니다. 연예인 뒷얘기나 경솔하게 읊어대는, 지성과 품격 모두를 결여한, 반골을 가장한 미친 광대(아무한테서도 존경을 못 받는) 입장에서는 이런 경지가 이해될 수 없겠죠.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구(詩句)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아주 특이하게 해석하는 이 선생의 글을 읽으며 인생의 진정한 묘미와 경지는 과연 어디서 찾아야할지 깊이 반추하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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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광둥어 두걸음 - 광동어·중국어 MP3 음원 / 쓰기 노트 제공 단어·회화·문법·패턴·문화로 광동어 마스터 GO! 독학 시리즈
시원스쿨 중국어연구소.SOW Publishing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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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제 주변을 보면 요즘 광둥어 배우려는 분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성조가 있는 남방계 언어를 배우는 게 그저 취미 동기로 한국인 입장에서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산업 구조적으로 어떤 수요가 분명 발생하는 중이지 싶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아직은 소수일 텐데 선제적으로 시원스쿨에서 이렇게 코스를 마련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낍니다. 

첫걸음 책 미리 공부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광둥어는 표준 중국어의 4성조와 달리 9성조가 있다고 하죠. 그러나 6성조로 더 단순화할 수 있고 이 교재에서 공부하는 표현, 문장들의 거의 모든 단어들도 대부분 6성조 안에서 정리됩니다. 광둥어를 들어 보면 표준 중국어 특유의 권설음이 적어서 덜 답답하고 더 청량하게 들립니다. 또 약간 어말을 길게, 야양 떨듯이 빼는 세련됨, 귀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교재도 월병(粵拼)에 따라 발음을 표기합니다. 粤이란 글자는 고대 이 지역에 있었던 월(越)나라와 같은 뜻이었으며, 오월동주 같은 고사성어에서라든가 춘추 5패 중 하나인 구천이 월나라 왕이기 때문에 알고 보면 한국인들에게도 꽤 친숙합니다. 월 방언을 표기하는 병음이라서 월병이라고 부릅니다. 

성조가 저리 많다 보니 베트남어 공부해 보신 분들은 베트남어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데, 베트남어도 한자를 같이 공부하면 더 머리에 잘 들어온다고 하는 분들도 제 주변에 계십니다. 공식적으로 한자를 폐기한 베트남과 달리, 광둥어를 가르치는 이 교재엔 당연히 한자가 나오며 한문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훨씬 쉽게 다가옵니다. 

이 교재는 광둥어, 표준 중국어, 영어, 한국어 등 4개 언어 표현을 나란히 비교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데, 와 무슨 4개 국어를 공부시키냐 하고 부담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메인은 광둥어이므로 맨왼쪽의 광둥어만 보고 mp3 파일을 듣고 열심히 따라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교재에서 4개국어 표현을 나란히 배치한 건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미리 표준 중국어(보통화)를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광둥어만의 좀 특이한 표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p60을 보면, 呢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이건 표준 중국어에서는 경성으로만 발음되고 뜻도 조사(의문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광둥어에서는 이, 이것(this)이란 뜻을 가지며, 책에 나오듯이 표준 중국어의 这와 같습니다. 표준 중국어 초급 코스에서 맨먼저 반드시 가르치는 게 这(this), 那(that)이므로 모를 수가 없죠. 물론 이런 게 부담스럽다면 그냥 넘어가고 광둥어와 한국어 부분만 봐도 충분합니다. 중국어를 선수 학습한 이들에게라면 더 편리한 점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참고로 呢는 광둥어에서 저런 1성 [니] 말고 4성 [네이]라고 읽히기도 하는데 이때는 또 뜻이 달라집니다. 

같은 페이지에서 잘 설명되듯이 咗라는 글자는 특히 광둥어에서는 ~하게 되었다 같은 비교 변화를 나타내는 용법이 있습니다. 책에 잘 나오듯이 표준 중국어에서는 了가 이 기능을 대신하죠. 물론 이런 설명은 표준 중국어를 어느 정도 아는 학습자에게라면 엄청 편리하게 다가오며 광둥어만을 급하게 배우려는 이들이라면 구태여 보지 않아도 됩니다. 

홍콩은 20세기 대부분 영국 영토였으며 이 때문에 냉전 시대에도 한국과 잦은 접촉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p149 같은 곳에 나오는 홍콩 특유의 분위기에 대한 설명은 광둥어 공부를 위한 의욕을 더 돋우는 듯합니다. 컬러 그래픽이 많고 학습 부담이 비교적 적어서 매일매일 쉽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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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 - 시와 해설로 읽는 신화 인문학 고전 아틀리에 2
최기재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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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학서가 최근의 것을 읽어야 한다면 인문학은 오래된 과거를 읽어야 한다(p23)." 인류사를 통해 찬연히 빛나는 숱한 고전들이 있습니다만 호메로스라는 이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일리아스>는 그 중에서도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애독되며 미국 중고교생들에게도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필수로 읽히는 명작입니다. 어떤 실용적 목적을 반드시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일리아스>는 그저 무용담이나 설화로 읽어도 재미가 납니다.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펼쳐지며 오늘날까지 널리 인용되는 관용구들의 출전 구실까지 합니다. 

이 책은 그런 고전 <일리아스>를 제대로, 또 더 재미나게 읽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 매뉴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해제라면 그간 여러 책들이 나왔었습니다만, 이 책은 깊이 있는 해제 노릇도 할 뿐 아니라, 마치 게임 유저들을 위한 가이드북처럼 온갖 흥미로운 배경지식을 꽤 두꺼운 한 권의 책 안에 잔뜩 담아 놓았습니다(p34을 보면 게임에 대한 말씀도 있네요). 동양 고전 중 나관중 삼국연의에라면 이미 이런 책들이 많이 마련되었습니다만 헬라 고전은 국내에서는 이런 정보가 많이 부족했는데 이제 이 책 덕분에 그런 갈증이 꽤 해소될 것 같습니다. 

또 해설, 해제에 대해 저자는 "일단 원전을 읽고 나중에 읽으라"는 충고도 합니다(p49). 꼭 평론가가 아니라 해도 우리 독자들 역시 고전에 대해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할 권리가 있죠. 저자도 독자들이 반드시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이해"라는 유익하고 유쾌한 체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조언하는 듯합니다. 정해진 고견만을 학습한다면 즐겁기 짝이 없어야 할 고전 독서가 얼마나 고생스러운 공부에 그치겠습니까. 저자는 심지어 <논어>에도 줄기찬 재해석이 가해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책 곳곳에는 동양 고전에 대한 언급이 잦으며 심지어 p321에서는 <일리아스>와 <효경>의 교차 분석까지 펼쳐집니다. 

몇 주 전('22.12.22) 이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인 천병희 선생이 타계했습니다. 이 책 역시 천병희 선생의 역본을 주안에 두고 집필되었다고 책에 나옵니다(단 선생의 별세에 대해선 직접 언급은 없습니다). 천 선생께서는 생전 매우 역점을 두어 헬라 고유명사 그 바른 표기에 대해 후학들에게 가르쳤는데 이 고전 제목 "일리아스"도 포함됩니다. "일리어드"는 영어식 변형일 뿐이며,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인 영어권 학자들의 탁월한 연구에 대해서는 깊은 존중을 보낼 필요가 있겠으나 우리가 헬라스(p289)의 고전 제목을 영어식으로 읽을 필요까지는 없죠. 그래서 이 책처럼 바르게 "일리아스"라고 제목이 붙은 책은 일단 신뢰가 가는 것입니다. 

고전이 현재에까지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그 안에 시대를 초월한 보편의 주제가 담겼기 때문입니다. 이 책 p103을 보면 인신공양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오는데 사실 에우리피데스의 <아가멤논>에서도 클뤼타임네스트라가 그저 평면적인 악녀 악처로 설정되지 않습니다. 출정 전 고명딸 이피게네이아를 무정하게 제물로 바치려 한 남편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동기를 형성했고 그 얘기가 이 책 p103에 나옵니다. 

고전에는 또한 다양한 형태의 변신(메타모르포시스)가 나오는데 이 <일리아스>의 시퀄인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이타케의 왕 오뒷세우스(p278)가 여기(<일리아스>)서 일개 상인으로 변장하여 참전을 회피하려 드는 것도 그 일종입니다. 이 대목을 언급하며 저자는 느닷 "남장 여자 국회의원"을 거론(p97)하는데 제 추측에는 유신 때 강단 있는 행적을 보여 큰 화제가 되었던 김옥선씨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뭐 남장여인 모티브는 요즘 한국 TV 트렌디 사극들에 자주 등장하며 데즈카 오사무의 <リボンの騎士> 같은 예가 이 테마로 아주 유명합니다. 

고전뿐 아니라 중세를 관통해 내려온 유럽 설화의 핵심 구조 중 하나는 주인공이 어떻게 저주에 걸렸으 며 그의 노력으로 해당 저주가 어떻게 풀리느냐가 서사 궁륭의 핵으로까지 평가되죠. 이 책 p262를 보면 아가멤논 일생을 통해 어떤 저주들이 걸리고 나중에 해소되는지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정리되었네요. 

며칠 전 튀르키예에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는데 본시 트로이아가 아나톨리아 반도 소재이며 지금 반도의 주인 노릇하는 투르크계는 아직 이 먼 소아시아에 도착하기도 전이었고, 따라서 고대 헬라 문화를 꽃피운 유적지는 튀르키예 곳곳에 분포합니다. p354 이하를 보면 터키 여행을 위한 유익한 정보로도 잘 활용될 사항이 정리되었으며 사실 여행의 진짜 묘미는 현지의 인문 지식이 곁들여질 때 그 전모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인문서 출판의 명가인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고전 아틀리에 제2권이며 제1권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도 제가 지금 읽는 중입니다. 이 출판사의 손을 거쳐 현대적으로 재조명될 여러 고전들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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