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역사 - 흑사병부터 코로나까지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리처드 건더맨 지음, 조정연 옮김, 김명주 감수 / 참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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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들어 세균학, 바이러스학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은 언젠가는 모두 극복되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 바이러스는 그 고유의 이점을 잘 이용하여 전혀 새로운 패턴으로 진화했고, 앞으로도 인류 곁에 영원히(...) 머물 것으로 추측됩니다. 혁명이나 전쟁, 사회 불안, 범죄 같은 것보다 더 근원적인 레벨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건 질병이며 역사의 고찰은 이 감염병이 끼치는 영향을 제외한다면 의미 있는 진전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다소 당혹스럽지만 누가 뭐래도 인간에게 가장 큰 쾌감을 안겨 주는 건 바로 성 관련 행위입니다.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 아인슈타인 같은 위인은 혹 다른 고차원 행위 중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일 뿐입니다. 인간은 설령 타고난 머리가 나쁘더라도 이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마음 놓고 행위할 자유를 박탈하는 밤의 질병(p118)의 존재는 실로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매독, 후반에는 AIDS(p130)가 유행하여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소설을 보면 문란하게 살던 중노년 부자가 죽을 꾀를 내어 수은을 흡입하다가 아예 저세상 사람이 된 클리셰가 정말 자주 나옵니다. 에이즈는 산모에게서 태아로 수직 감염, 혹은 수혈 사고로, 무분별 성행위와 전혀 무관한 희생자가 생기는 게 가슴 아픈 일입니다. 클라미디아, 헤르페스, 임질은 남성 중 상당수가 보유했으며 피임도구의 사용으로도 못 막는 경우가 많으니 그저 절제된 행위 습관으로 자신을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이라는 게 그저 의도적으로, 혹은 체계적으로 설계된 프로젝트 하에서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우연에 의해서도 엄청난 성과가 가능한 영역임을 예증하는 게 바로 페니실린의 발명입니다. 그러나 그 우연한 발견조차 영국처럼 기초과학 인프라가 탄탄하고 연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고한 나라에서 이뤄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p125를 보면 이 항생제의 발견이 약 2억 명의 목숨을 구했겠다고 하지만 요즘은 항생제 내성으로 더 큰 위협이 초래됩니다. 한때는 마냥 축복이자 쾌거로 여겨졌던 게 이처럼 평가가 바뀌는 것도 이례적입니다.  

얼마전에는 암이 유전이라고 하면 모두가 황당해했습니다. 지금은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죠. 위궤양은 그저 개인의 기질과 성격, 식습관 등에 기인한다고 여겼고 이게 감염성을 지닌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겠으나 호주의 배리 마셜 같은 이는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용액을 마시는 결단으로 자신의 이론을 입증했습니다. 압도적 다수 과학자(엄연히 최고 전문가)들이 반대하는 와중에도 이런 신념을 지키고 올바름을 증명한 그 강단이 정말 대단합니다. 

현대는 이미 미생물학, 또 관련 의학이 충분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한 상태지만 p64에 나오듯 18세기처럼 아직도 폐습과 미신이 지배하던 시절이라면 에드워드 제너 같은 선구자의 노력이 얼마나 고독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p65의 지도는 당시 브리튼 섬의 천연두 사망률을 한눈에 보여 주는데 이때만 해도 병에 걸려 죽고 아니고는 그저 팔자 소관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방법은, 불운이나 재앙 등을 놓고 이성과 계획으로 대응하여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하는 범위를 점차 넓혀 가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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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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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혹은 여러 전문서적, 심지어 대중 자계서에도 그가 설계한 실험이나 이론이 소개된다는 건 학자로서 분명 크게 성공한 삶이라고 평가 받아 마땅합니다. 필립 짐바르도는 책 중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되듯, 명문 스탠포드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들은 교수에 꼽히며, 상아탑 안의 학자를 넘어 이미 대중에게도 널리 인지도를 갖는 엔터테이너의 위상이라고 합니다. 책표지에서 뭔가 코믹하고 드라마틱한(적어도 점잖지는 않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 얼굴만 봐도 그런 느낌이 듭니다. 

책 p14나 p222를 보면 그는 거듭해서 뉴욕 (사우스)브롱크스 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고 술회합니다. 이런 성장 배경이, 그가 그토록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 데에, 적어도 학계의 기존 통념을 뒤집는 혁신 연구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 책은 인터뷰어의 짤막짤막한 질문에, (모르긴 해도) 수다스러울 듯한 그의 길고 긴 내러티브가 지면을 꽉꽉 채우는 형식입니다. 그의 <루시퍼 이펙트>라든가 공저 <타임 패러독스(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이 책 중 p127)>는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를 만난 베스트셀러입니다. 바로 그 저자가 허심탄회하게 한 인간의 목소리로 털어 놓는 이야기를 통해, 저 레전드 실험들과 연구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캐치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또래 학생들의 말이 아니라 교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 학교에 와서 수업에 참여하는 거에요.(p73)" 짐바르도 교수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수업 방식이 저렇게 처음에는 반대에 부딪혔나 봅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저 학생들(짐바르도 교수 반대파)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대학 교수님은 중고교 교사들과도 또 달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성계의 진로를 잡고 첨단 지식을 발굴해 내는 선봉장입니다. 그 가르침이 학교 밖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귀한 것이기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우러 가는 것 아닐까요? 물론 어떤 방식이든 장단점이 있고, 짐바르도 교수는 자신의 방법론을 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것이지만 말입니다. 

짐바르도 교수의 그 전설적인 교도소 실험(p254를 보면, 정작 자신은 그렇게만 기억되고 싶지 않아합니다)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p198)"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환경 결정론의 불길한 연장 해석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미국에서 엘리트로 손꼽히는 스탠퍼드대 학생들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적으로 의사결정 자유가 박탈되는 상황도 아닌, 실험인 걸 나도너도 뻔히 아는 분위기에서도 결국은 그런 악영향을 받았으니... 이 책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짐바르도 교수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뭘 강압적으로 지시한다거나 할 퍼스낼리티도 아니었겠고요. 

아무리 실험 속의 상황이라고는 하나,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세부 상황까지 예측 가정하여 철저히 윤리 규범이 지켜져야 합니다. p45 같은 걸 보면 약정서 같은 게 작성되었고(p39, p129도 참조하세요) 아마도 대학이나 연구기관 주도 실험 중 이런 계약이 꼼꼼히 체결되는 관행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을 겁니다. 짐바르도 교수는 참 여러 면에서 업적을 남긴 셈입니다. 한국 일각에서 횡행하는 음습한 변태적 SM 상황극에서도 암묵의 약속은 지켜진다고 하지만 뭐 당사자들 외에 누가 정확히 알겠습니까. 

심리학을 경제학에 전면 응용하여 새 분야를 개척한 게 행동경제학인데 짐바르도 교수도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을 정교히 측정하는 방법론으로 업적을 남겼으니 어찌 보면 저 분야의 선구자입니다. 트버스키, 카너먼 등에 대한 언급도 p96에 나옵니다. 사실 이 인터뷰에 드러나는 짐바르도 교수의 특징적 비유나 어법을 통해 그의 심리를 추단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현대에 들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부당하게 악마화하기도 하나 p142, p264에서처럼 존 웨인이 바로 빌런과 동일시되는 건 드문 편입니다(물론 다른 이의 의견을 근거로 들지만). p239를 보면 더 극단적 성향을 지닌 흑인 학생에게 결국 크레딧을 못 받은 걸 두고 불만을 털어놓는 등 뒤끝도 장난아님이 드러납니다.ㅋ 

위키피디아에 보면 그를 두고 유대인, 푸에르토리코인, 마피아, 흑인 등으로 오해한다는 기술이 있는데 이 평판의 근원은 짐바르도 자신의 회고(이 책 p61 같은 것)이지 어떤 객관적 근거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리버럴 성향답게 중국도 극단적 전체주의라며 싫어하고(p209) 포퓰리즘적 독재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는데 트럼프, 에르도안, 두테르테 등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지만 김정은이 이 범주에 드는지는 의문입니다. 책에 나오는 대로 인민사원 짐 존스와는 닮았지만 말입니다.  

p270의 아티클은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를 불과 몇 페이지로 잘 요약한, 유익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레전드가 탄생하게 된 뒷이야기를 그랜드마스터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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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캉디드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7
볼테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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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고전 <캉디드>는 마치 대하소설의 요약본처럼 스피디하게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 무렵 혹은 20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 문학에선 특유의 중언부언 만연체가 지배적(물론 그게 또 매력이긴 합니다만)이었던 걸 생각하면 다소 의외이기도 합니다.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기획이 내세우는 대로 "쉽고 역주가 필요없는 번역, 주석이 본문에 녹아있는 번역"이 이 책에서도 돋보이지만, 구태여 윤문이 필요 없을 만큼 불어 원문부터가 심플한 걸로 유명합니다. 하긴 볼테르가 넉살(p8)을 지레 부린 대로 원래 이 사연은 독일어(p72)로 길게 쓰인 원전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으니 말입니다(물론 그런 건 없지만). p151에는 국뽕 가득 담아 영국의 문호 존 밀턴을 까는 대목이 나와서 우스웠습니다.  

캉디드는 주인공의 별명인데 그 뜻은 소설 본문(이 책이라면 p9)에도 잘 나오고 또 일반 교양 사항으로도 잘 알려진 바입니다. 이 프랑스어 형용사는 영어 어휘에도 편입되어(캔디드) 드물게, 또 점잖은 뉘앙스로 쓰이는 단어죠. p9 밑에서 두번째 줄에 타피스리가 나오는데 영어의 태피스트리도 여기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저 뒤 p97 같은 데를 보면 "리브르 스털링" 같은 말이 나와서 흥미로웠는데 영국 파운드화뿐 아니라 부르봉朝 프랑스에서도 무게 단위와 구별하기 위해 저런 표현을 쓴 듯합니다. p132에 나오는 국왕 시해 사건은 앙리 4세(낭트 칙령의 주인공)에 대한 것입니다. p157, p181에는 유럽이나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은 왕이나 왕자들의 운명이 언급되네요. 

설정에 의하면 주인공 캉디드는 남작의 따님 퀴네공드와 근친 간인데도 무리한 로맨스(게다가 비천한 혼외자 신분이니)를 벌이다가 성채의 안온한 삶으로부터 추방당하며(남작 부자 2대에 걸쳐 캉디드는 벌을 받을 뻔했습니다. p12, p75)  이때부터 거의 고구려 미천왕급의 개고생이 시작됩니다. 본시 그렇게 살던 사람이야 고생이 몸에 배어 그닥 힘들 게 없겠지만 이런 분들에겐 열악한 환경에 처했다는 인식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깡디드, 또 뀌네공드 못지 않게 빵글로스(팡글로스. 이하 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가 중요한 인물인데 그 나름 박식한 인격자이긴 하나 근본 바탕이 엉터리인 위인입니다. 한 사람이 세계관을 낙천적으로 갖느냐 반대로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설정하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며 타인이 개입할 바 아닙니다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팩트가 프레임 안에 엉망으로 구겨넣어질 지경이라면 이런 관점은 타인을 교화하기는커녕 당사자 본인의 앞가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볼테르가 이 팡글로스 선생의 운명을 이렇게 비참하게 세팅한 건 물론 당대 특정 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긴 했겠지만, 현실에 단단한 바탕을 두지 못한 막연한 낙관론이 얼마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지를 깨우치려는 의도가 다분한 듯 보입니다.  

볼테르 당대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 이 소설의 핵심 배경은 리스본 대지진 과정에서 근거 없는 낙천주의와 종교 맹신이 얼마나 처참하게 그 무력함과 한심한 허구성을 드러냈는지를 풍자하기 위해 그리 설정되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이 소설 속에는 좀 특이한 이야기들이 끼어드는데, 예를 들어 소설 속 퀴네공드의 부친인 남작 가문이 박살난 건 불가리아 왕(차르)의 정복 전쟁, 그리고 불가르 족의 영원한 적수 아바르 족의 행패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바르 족이나 불가리아 차르국이 위세를 떨친 건 리스본 대진재로부터 거의 천 년을 거슬러올라가는 예전 일입니다. 

이때는 발칸과 아나톨리아가 비잔티움의 지배를 받을 무렵이며 이후 오스만이 이 일대(뿐 아니라 지중해 세계의 상당 부분)를 통치했고 볼테르의 시대에는 그 패권마저 해체될 단계였습니다. 불가리아 차르와 아바르 족(그나마 더 친근하게 묘사된)은 무지 폭력 야만 상태에 놓인 프로이센, 혹은 잡다한 슬라브 제족이 거주하는 동유럽을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장치 같습니다. 소설 후반부(p90)에는 엘도라도가 다 등장하니 명백한 판타지이긴 하지만요. p109에는 마르탱이 자신을 마니교도라고 밝히는 대목이 있는데 이때 캉디드가 "요즘도 마니교가 있나요?"라고 물어 웃음이 터졌네요. 그럼 아바르족은? 

여튼, 유서 깊은 게르만 귀족 가문이 누리는 평화, 부유함, 위신 같은 게, 고명딸 퀴네공드의 비참한 성적 유린 과정에서 보듯 한순간에 붕괴할 수 있는 무상한 가치(p99도 참조)일 뿐이라는 게... 아, 마치 볼테르의 시대로부터 600여 년 전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정강의 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캉디드도 캉디드이지만 사람으로서 겪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겪고도 멘탈을 잘 추스려 현실에 재적응하고 의지를 다지는 퀴네공드가 대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볼테르의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무관하게). "명예를 목숨처럼 지키던 여인도 한 번쯤은 그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p89)" 이 소설에서 불가리아 군인들이 저지른 만행은 성범죄 외에도 전쟁범죄 등 아주 심각하고 복잡한 성격을 지닙니다만, 문제를 단순화하자면 이런 태도를 현대의 성범죄 피해자들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범죄자가 극한 응징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다만 그와는 별개로 피해자 역시 마음을 크게 먹고, 밝고 희망찬 삶을 resume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풍속범죄에 대한 에두른 언급은, 동성애 관련이 p168, 수간 관련이 p52, p79 등에 나옵니다. 

팡글로스 선생이 "사랑(의 병)"에 감염(p29)된 한심한 사정 이야기는 마치 이때로부터 수백 년 전 창작된 <데카메론>의 몇몇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또 p56 이하에 나오는 할멈의 이야기도 어떤 대목은 데카메론의 한 에피소드와 놀랄 만큼 비슷한데 물론 데카메론 역시 이전 민담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바 있었겠죠. 여튼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자가 성욕 하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더러운 병에 걸렸다는 게 벌써 자격이 없음을 자백함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사람이 설파하는 어떤 원칙이나 교의에도 무슨 설득력 같은 게 실릴 리가 없습니다.  

캉디드와 퀴네공드가 비현실적인 세계관 때문에 몇 배의 큰 고통을 겪고 고생한 건 사실 팡글로스의 잘못된 가르침에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노출된 탓이 큽니다. 이 팡글로스는 마치 몰리에르가 만들어낸 타르튀프(p119에 프랑스 희곡에 대한 언급 있습니다)나 마찬가지로 엉터리이며 그나마 무슨 범죄 의도 같은 게 없어서 다행이긴 하나 이 역시 도덕성의 발로라기보다 그만한 주변머리조차 갖추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리석음에서 비롯한 선의는 결과적으로 사기꾼의 수작만큼이나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캉디드는 자신의 기지 덕에 살아났으면서 엉뚱하게도 "역시 자연의 본성은 선해!(p83)"라며 이미 효력을 잃은 팡글로스의 가르침에 또다시 경의를 표합니다. 불치병입니다. 이렇게 멍청하니까 사기(p104)를 당하죠.  

오지게 고생을 하고 나서 캉디드도 드디어 그 멍청한 수동적 기질을 버리고 기성 질서에 대들기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p173에서 퀴네공드와의 결합을 반대하는 남작 주니어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요즘 드라마 <빨oo선>을 보면 은산이가 지남철에게 건배하며 "들이받자!"를 세 번 외치는데 어차피 답답한 현실이 개선 안 된다면 일단 들이받고 나서 대안을 모색해 볼 일입니다. 마지막에 드디어 철이 들게 된 엉터리 박사 팡글로스의 씁쓸한 토로도 결국 그 뜻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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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원하는 인생을 사는 43가지 방법 -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임재성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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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끊임없이 자신의 장래를 물색하고 성인이 되어 내가 어떤 일을 사회에서 해 낼지를 슬슬 결심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IQ 검사, 적성검사 등도 행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학생의 진로를 정해주기에 충분한 자료가 되지 못합니다. 결국 내 적성과 천직이 뭔지 발견하고 결정해야 할 사람은 부모나 교사가 아닌 본인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책을 읽고 세상에 이런 직업과 진로가 있으며 나에게 이런 길이 알맞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p25)." 아무리 좋은 머리를 타고났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잡다한 이런저런 지식을 머리에 담기만 해서는 고기능 오타쿠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이 모이고 모여 여태 없던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저 공자의 말대로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또 이렇게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정신적 물리적 건강을 해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더 있겠습니다.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로 임용된 석지영(p40) 교수란 분이 십 몇 년 전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어떤 사람이 성공했을 때 구태여 아 저 사람은 집안이 부유해서 그랬다느니 하며 까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은 본래가 불평등한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진정 자격이 없다면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밀리기 마련인데 그게 다 그 자리를 지킬 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인생사에는 사필귀정이라는 이치가 있어서 결국 모든 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런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저 사람은 남보다 어떤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그 남다른 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지원이든 뭐든 애초에 머리가 나쁘면 거기까지 힘들게 가지를 못하는데, 남달리 인내심이 뛰어나다든지 뭔가 다른 면이 있어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 

그래서 p78을 보면 칠전팔기 정신이라는 게 나옵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낮은 자존감이 일깨우는 현타를 이겨 내고 결국 해 내는 정신도 알고보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책에는 커낼 샌더스 KFC 회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신이 가벼운 여성을 비웃는 비속어로도 쓰이는 저 단어를 보면 인생사의 다양한 면이 엿보여 헛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결국 인생은 무작정 도전하다가 미끄러지고. 일시 정상에 올랐다 싶어도 다시 원위치하는 아이러니컬한 경로가 있기 마련이죠. 

p160을 보면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을 운위하며 기존 직업 상당수가 없어지는 격변을 내다봅니다. 아니나다를까 몇 주 전 챗GPT 같은 게 나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이런 시대의 큰 혁신과 변모에 적절하게 대응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점을 두어 강조합니다. 창의력도 결국은 남의 생각을 잘 알고 그로부터 좋은 영감과 발상을 얻어내어야 지속적인 능력으로 자리잡는 것입니다. 독서의 힘은 그러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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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귀는 아주 간단한 마법 - 존중하기 같이쑥쑥 가치학교
조영경 지음, 시은경 그림 / 키즈프렌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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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하나는 각자 특기와 단점이 다른 김준기와 박선우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도와 주며 친구가 되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가정 환경이 다른 친구들과 달라 왠지 학교에서 위축될 것 같은 세 아이가 서로 으쌰으쌰하며 기운을 돋우는 내용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세대를 초월하여 누구나 공감할 만하지만, 두번째 이야기는 나이 든 독자라면 "요즘은 이런 일도 있나?"하며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습니다. 그도그럴것이, 예전에는 편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조손 가정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람직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그저 과거와 지금의 현실이 엄연히 다르기에 어린 세대(혹은 누구라도)가 그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할 뿐입니다. 

김준기는 운동 신경이 탁월합니다. 미끄럼틀을 탈 때에도 마지막에 엉덩방아를 찧지 않고 사뿐히 내려오는데(p10) 몸놀림이 날래서 그렇습니다. 이런 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게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달리기도 반에서 1등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합니다. 받아쓰기 점수가 30점(p19)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틀린 문제는 집에서 숙제로 해 와야 하는데 어떤 친구는 "달리기가 빠르니 숙제도 빨리 하려나?(p21)"라며 비웃기도 합니다. 제법 신랄한 말솜씨인데 얘 이름은 우혁이입니다. 메인은 준기하고 선우지만, 우혁이하고 도현이도 감초처럼 이야기에 나오는데, 우혁이는 선우과이고 도현은 준기과입니다. 적성이 비슷하니 친근감을 더 강하게 느끼나 봅니다. 

비슷한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좀 다른 친구들과 사귀면서 그들의 장점을 배우는 것도 자기계발에 도움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성도 길러집니다. 장점이 극대화한 건 준기와 선우인데 격하게 싸우려 드는 건 우혁과 도현입니다. 각 진영(?)의 2인자끼리가 보스들보다 더 사이가 나쁘다고나 할까요? 우혁과 도현이 다투는 걸 말린 후 준기와 선우는 다소 울적해졌는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조용히 되돌아보다가 서로 만납니다. 의외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걸 알고 둘은 서로 교환과외(!)를 해 줍니다. 

선우는 준기한테 틀린 문제만 집중적으로 복습해 보라고 합니다. 이른바 오답노트 작성, 혹은 메타인지 능력 함양입니다. 준기는 선우한테 일단 공연히 겁 내는 버릇을 버리고, 몸을 재빨리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합니다. 다리를 넓게 벌리면 발끝이 틀에 닿아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라서, 상대의 아쉬운 부분이 눈에 잘 들어오는 거겠죠.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책에는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p43)" 질문도 하고 교훈도 정리해 줍니다. 이야기는 학생들이 자기 주변에서 얼마든지 실제 겪을 수 있으므로 친근하게 잘 읽히겠지만, 독서는 재미 느끼기와 공감하기 이상의 액티비티가 되어야 하므로 너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처럼 더 생각해 보기를 어린 학생들에게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보민이, 은성이, 민서 등이 주인공입니다. 보민이는 엄마가 베트남 사람입니다. 딴에는 친한 척 아는 척 하느라고 "사와디캅!" 같은 인사를 건네며 장난치는 규민이 같은 나쁜 아이도 있습니다. p52에도 나오듯 이는 태국 인삿말이라서 더 큰 실례입니다. 은성이는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이며 민서는 아빠하고만 삽니다. 조손가정과 편부모 가정이 서로를 도우며 자존감을 높이는 과정이 매우 좋았습니다. 마무리에서 책은 서로 다른 가정이 있음을 다른 아이들이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을 가르칩니다. 이야기엔 안 나오지만 새터민 가정 유형도 있음을 독자에게 환기시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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