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를 살아가는 지혜, 논어
동리즈 지음, 김인지 옮김 / 파라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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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우리 조상들도 그로부터 삶의 지혜와 도덕의 기준을 추출하는 진리의 샘이었습니다. 이 책은 논어 원문에서 많은 구절을 인용하고 한문에 음도 달아서 독자의 구송을 돕고, 해설을 붙였으며, 그와 관련된 다른 출전(역사서 등)의 중국 고사도 곁들여서 입체적 학습을 가능하게 합니다. 

p88에 보면 <자로편>에서 유명한 구절이 인용됩니다. 선인과 악인을 인인(隣人)의 평판을 통해 구별하는 방법인데, 개인적으로는 재작년 EBS 수능특강에서도 이 부분을 가르치는 걸 봤습니다. 매우 단순하고 상식적인 듯 보이지만 깊이 있는 지혜를 담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사람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5호 16국 시대 전진(前秦)의 왕 부견의 일화를 같이 소개합니다. 재상 왕맹이 "적은 진(晉. 즉 동진)이 아니라 선비족과 강족"이라 간했으나 부견은 이를 무시하고 남정을 무리하게 단행하다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인편에서 공자는 이약실지자선의(以約失之者鮮矣)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자신을 단속하면 실수가 드물다는 뜻으로 책에서는 새깁니다. 鮮은 교언영색선의인이라고 할 때와 그 용법이 같죠. 책에서는 절묘하게 장한과 왕정상의 고사를 이에 엮으며, 과오를 일단 저질렀다 해도 몸을 깨끗이 하며 제2, 제3의 타락을 면할 것을 타이릅니다. "에이, 기왕 망친 몸!"이라며 자포자기, 탈선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선택은 없습니다. 살면서 정말 명심해야 할 바입니다.  

"빈이무첨도 빈이락만 못하며, 부이무교도 부이호례만 못하다.(p128)" 역시 공자님다운 멋진 말씀이며, 무첨도 좋지만 기왕이면 락의지경까지 가라는 독려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한실의 중시조인 유수가 엄자릉과 대범하게 교유한 일화를 들려 줍니다. "객성이 제좌(帝座)를 범하려 했나이다." 그 일관도 참 천문을 정확히 보긴 봤습니다. 이처럼 달인들은 사소한 예를 초월하여 대도를 함께 논하는 호방함이 있습니다. 광무제 유수의 다른 일화는 p152 이하에 또 나옵니다. 

p177에 보면 사람의 겉모습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 나옵니다. 안연편에서 극자성의 말이 인용되는데 책에서는 자우, 등애, 위선 등의 고사가 함께 소개되네요. 이 교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지만 현실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원칙이기도 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丁儀 역시 마찬가지로서, 그의 진가를 뒤늦게 알아보고 "사시가 아니라 장님이라고 해도 그를 맞았어야 했다!"라고 탄식한 조조의 일화가 유명하죠. 저런 극단적인 말로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조조도 어지간하다는 생각입니다. 

서양에서는 인재의 고유한 특기만 중시하지 어떤 인격 같은 건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공자는 본인이 다재다능한 폴리매스였으면서도 언행일치, 지조 같은 도덕 팩터를 무척 중시한 게 독특합니다. 하긴 예수도 어부 등 하층민들로부터 제자를 받았으니 有敎無類(유교무류. p204)라 할 만합니다. 이 유교무류 정신은 이후 250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부패를 막고 사회유동화를 촉진하는 핵심 교리로 작동하죠. 저자는 이를 두고 시대를 앞서간 "교육개혁"까지 높이 평가합니다. 

위정편에서 공자는 강압이나 혹률로 백성을 다스리는 건 한계가 있음(p237)을 분명히 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자의 일파가 나온 건 철학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예(禮)에 복귀하기를 이끌어야 하는데, 사실 한 무제는 앞서 사마천(p155)을 궁형에 처하는 등 무지막지한 면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백성을 잘 먹이고 본인은 검소하게 살며 나라의 경제를 잘 관리한 명군으로서의 면모를 더 강조합니다. 확실히 이런 미덕은 모든 위정자가 본받아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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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당당한 글로벌 수출기업 만들기
조계진 지음 / 진인터랩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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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 꽃이라 꼽힐 만한 인력은 최고의 세일즈맨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명문대를 졸업한 한병태가 자본주의 체제의 적자로 스스로를 평가한 후 대기업도 마다하고 커리어로 택한 게 영업이었죠(비록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물론 영업직은 거의 모두가 기피하다시피하는 부서지만, 반대로 영업에서 최고 실적을 낸 분은 사실 어떤 일을 맡겨도 잘해낼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쓴 대표님도 청년 시절 구태여 직장 데뷔를 영맨으로 골라서는 바로 그해에 최고 실적을 냈다고 나오는데 수출기업 토픽뿐 아니라 이런 분이 하는 말은 주제가 뭐든 간에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기업이 그저 국내시장에서 1인자가 되는 것도 무지 어렵습니다. 탄탄한 독자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나 전문가들도 많고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 어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설령 1인자의 지위에 올랐다고 해도 이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건 또 별개 문제입니다. 책에 잘 나오듯이 한국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은 대기업들이며 증소기업의 비중은 미미합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1970~80년대 수출 역군들이 오늘날 풍요로운 한국 그 토대를 만들었듯, 현재 대기업 위주로 고착화한 구조 안에서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들어낼 만한 주역 후보들이 바로 탄탄한 기술과 아이템을 보유한 미래산업형 중소기업들입니다. 이들이 국내 1인자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로 뻗어나갈 어떤 통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겠고, 저자는 자신의 노하우를 이 책에 담은 것입니다. 

"창업하자마자 정부에서 지원한 (불과) 몇천만원 자금을 극단적으로 절약하면서 온라인 위주로 해외거래선을 개척하면서... 하나의 레퍼런스를 이루고..(p20)"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얼마든지 해외 바이어와 상담이 가능하며(p21), 과거처럼 사람이 직접 거액의 항공료를 써 가며 협상장에 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또 극히 드뭅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확실히 아마존닷컴이라는 온라인 공룡의 역할이, 전세계 중소기업들에 열어 준 어떤 판로의 기회가 참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주)에스지피였던 슈피겐코리아는 미국 대리점을 인수하여 아예 상호 자체를 바꿔 현지화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한국에서 잘 통하던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실패하자 그 원인을 재빨리 캐치하여 현지 소비자의 기호에 적응한 덕에 선도 브랜드로서 위상을 다졌다는 사례는 많은 교훈을 일깨웁니다.  

구 세빗이라든가 CES(p102) 같은 전시회 역시 강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책 p98 이하에 나오는, 전시회 참여는 1년 전부터 준비하라든가, "좋은 제품을 출품하여 마음에 드는 바이어를 고른다는 여유 있는 마음가짐(p109)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조언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해외시장에서는 가격 우위, 제품 차별화, 서비스와 광고 차별화, 그리고 가격 차별화 원칙을 꼭 관철하라고 충고합니다. 그 외에 회사가 자신 있는 단 하나에 역량을 모으는 "집중화"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코텀즈라는 말이 낯선 이들도 CIF, FOB 같은 말은 몇 번 들어 봤을 것입니다. 책 p195 이하에 여러 용어들이 자세히 나옵니다. 특히 p211 이하에, 실제 대금 수취 관련하여 겪을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매우 실용적인 여러 팁들이 나옵니다. 바이어와 주고받는 서신이, 정말 필요한 용건만 간략히 담을 수도 있으나 여튼 사람 사이의 소통인데 때로는 간곡하고 정중한 마음을 표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자의 영어 실력은 이런 경우 유용히 쓰일 수 있는 좋은 템플릿 여럿을 책 중에 제시하고 있네요.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이 주도한 여러 혁신 사항이, 무역의 실제에 현재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도 잘 알 수 있는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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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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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대륙(과 요동) 정세가 급변할 때 반도의 정책 결정자들이 판단을 크게 그르쳐 백성의 삶을 피폐케 하고 국체를 더럽힌 외환을 초래한 비극이 벌어진 해입니다. 이에 대해 이런저런 소설, 영화까지 여러 해석을 시도해 왔고 대중들도 그에 영향을 받은 어떤 관점을 갖고 있지만 일차 사료까지를 확인하려는 노력이야 당연히 미진했습니다. 학계의 몫으로만 미룰 게 아니라 대중서로도 더 심도 있는 분석을 시도할 만했는데 유근표 전문가님의 이 책이 어느 정도 그 갈증을 해소해 줄 것 같습니다. 

호남 광주광역시에는 여러 역사적 의의를 지닌 금남로(누구나 알 만한)라는 곳이 있는데 이 금남이 정충신(p39)의 봉호, 봉지에서 유래한 이름(p46)입니다. 이 책에도 나오듯 황해도 황주 일대에서 이괄의 반란군과 맞서다 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난(1624)을 진압한 이가 정충신이며 이분은 임란 때(p46)에도 권율 휘하에서 어린 나이에 여러 공을 세웠음은 역사 기록이나 민담 등에서도 확인됩니다. 이괄의 난 때문에 북방 오랑캐를 방어하는 중요 체계가 붕괴하였고(이괄군 자체가 주요 방위 병력이었으므로), 뜻하지 않은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 지나치게 가혹한 외환을 맞았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명은 이미 지배체제 핵심부에 어떤 구심점과 기강이 사라져 환관과 권신들이 작정하고 축재, 월권에만 몰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취가 가혹하다 보니 (언제나 그래왔듯) 농민 반란이 안 일어날 수 없고 국가 병력이 동북쪽에서는 여진의 발호를 막느라, 내부적으로는 기초 치안 질서를 잡느라 도통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한 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명 칙사들(p57)은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인조 조정으로부터 뇌물과 접대를 요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이때에 이르러 어쩌면 기존의 상국을 섬기는 절차가 (이후에 벌어질) 삼배구고두례 못지 않게 치욕적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원숭환은 책에도 나오듯이 유능하고 총명한, 누천년 중국 역사가 과거 시스템을 통해 등용한 빼어난 인재의 한 전형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모문룡을 치죄하며 그는 못난 우리 조선 조정의 편에 서기까지 하여 우리 후대 한국인이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게까지 해 주기도 하죠. 이런 충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죽인 당시 명 조정은 반도의 인조 정권과 더불어 마치 누가 더 멍청하게 자기 파괴를 행하는지 무슨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현대 중국 공산당 일각에서 이런 원숭환을 두고 어이없는 논거를 들어 폄하를 시도한다는 건데 자국 역사의 위인 모독이라는 점에서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순히 걸출한 군사 지도자에 머문 게 아니라 공동체의 경제산업 체제를 재편한 유능한 경세가이기도 했던 누르하치는 우리로서는 고맙게도 조선에 대해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후계자 홍타이지는 어리석은 조선 조정의 잇단 실책들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 않았으며 청 입장에서는 이제 무의미한 유훈 일부에 집착하지 않고 과감하게 남하남정한 게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이처럼 청나라는 후금 시절부터 내내 수뇌부에 가장 신중하고 영리한 결정을 내릴 능력자가 포진했었다는 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저 싸움만 잘한다고 천하가 제 차지가 되는 게 철칙이었다면 이미 15세기, 16세기에 에센, 다얀 칸, 알탄 칸 같은 오이라트, 몽골의 장수들이 명을 집어삼키고 새 정복왕조를 열어, 여진족에게는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남한산성은 그나름 큰 의의를 지닌 방어시설이었으며 이 책 곳곳에서 잘 짚어 주듯이 이미 신라 문무왕 때 축조되었었고 조선 중기 들어 오리정승 이원익이 (그로서는) 이례적일 만큼 독촉하여 어느 정도 정비를 마친 요새였으나, 이게 인조 조정에서 다시 방치되고 치명적인 실책, 결정 지연 등이 겹쳐 그런 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淸軍)이 남한산성을 에워쌀 때, 만약 반도 삼천리 곳곳에서 근왕군이 몰려와 군량(軍糧), 병력수 면에서 우위를 점하며 역포위를 시도할 경우 여진 입장에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에센이나 알탄 칸, 혹은 저 멀리 슐레이만의 장수들도 그래서 북경, 비잔티움을 함락 못 시키고 결국 후퇴, 철군한 것인데... 인조 조정은 왜 그리하지 못했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 책에 설명이 나옵니다. 

몽침과 원 간섭기에도 그랬지만 사실 의외로 저 북방 민족은 반도의 왕조, 왕족들에게 어느 정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 편이었습니다. 이 책 후반부에는 실권자 도르곤, 또 의순공주 관련해서 여러 재미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소현세자 역시 피해자인데 청에서 융숭히 그를 대접하고 자신들의 역량에 대해 증명을 해도 했기에 그가 친청으로 돌아섰지, 무작정 대륙 정세의 전환만 목격했다고 해서 관점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튼 틀에 박힌 해석이 아니라 좀 더 팩트 위주로 접근하여 시대상의 입체적 이해를 도모한 게 돋보이는 대중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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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들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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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절 법정 스릴러의 거장 존 그리샴이 간만에 자신의 장기를 갖고 컴백했습니다. 그리샴의 법정물은 완성도나 흥미도 빼어나지만 주제가 건전하고 보편적 교훈과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서 독자들이 더 큰 사랑을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법정물에는 자주 기결수, 그 중에서도 사형이 이미 확정 선고되었고 상고 기회도 다 써버린 죄수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물론 아무리 확정 판결이 났어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하면 다시 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만 이런 청구가 받아들여질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모두가 포기해 버린 이런 사건, 이런 죄수 편을 들어 동분서주하는 변호사, 혹은 법대생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심지어 이런 사건 이런 죄수들은 처음에 대중의 여론조차 무척 좋지 못합니다. 그런 자를 뭐하러 편드냐는 식입니다.    

"노래하는 카나리아."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이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범죄자들은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별의별 증언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범죄조직도 이런 배신자, 밀고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골머리를 썩히죠. 밀고자는 본래가 예측이 안 되(p68)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보편적이고 성숙한 가치관에 입각한 그리샴 식의 멋진 교훈이 등장합니다. "복수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세요(p69)." 하지만 당사자 퀸시의 생각은 다른가 봅니다. 퀸시는 이 상황에서도 칼을 갈고 치를 떱니다. 물론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이유와 명분이 있죠. 

집행 재고를 청할 만한 죄수 중에서도 성범죄자만큼은 예외로 취급합니다. p125에 나오는 무고는 우리 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실제 있었던 사건과 매우 닮았습니다. 뭐 본인은 미치고 환장할 일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제럴드 쿡 씨가 당한 저런 봉변은 평소에 그가 불성실하게 산 탓이 없다고 못합니다. 이런 악질 무고가 가능하려면 못된 꾀를 알려주는 악질 변호사가 있어야 가능했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컬런 포스트는 그런 악당들에 맞서는 백기사이고 말입니다.   

p154 이하에 나오는 "진술서"라는 건 아마 affidavit이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런 양식에 독자적인 증거능력과 증거력을 부여하지 않으므로 낯설지만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쓰이므로 소설이나 영화에서 국면 전환시 중요 계기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문제는, 극단적인 경우 당사자가 이를 뒤집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변호사나 검사가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가죠. 

"밀러를 석방하려면 당신이 진범을 밝혀야만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이 무고하다는 것만 밝히면 됩니다."(p187) 컬런 포스트의 케이스들뿐 아니라 모든 형사사건이 다 그렇지만 피고나 그 변호사는 자신의 무죄만 밝히면 그만이고 진범(혹은 또다른 억울한 피의자)을 대신 피고석, 포승줄에 채워넣고 빠져나와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허나 많은 스릴러, 추리물에서는 그런 식으로(즉, 진범 적발) 멋지게 누명을 벗는 결말이 꽃피죠. 독자들 후련하라고. 반대로 어떤 희한한 작품은, 바르게 검거된 진범이 억울한 타인을 교묘하게 얽어넣은 후 무죄방면(acquittal)되는 플롯을 쓰기도 합니다. "여기 진범이 따로 있는데 내가 어떻게 범인이겠습니까?" 

"나는 변호사 생활의 대부분을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보냈고 교도소의 폭력적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무감각해지지는 않았다.(p319)" 역시 그리샴의 주인공 다운 멋진 말입니다. 변호사가 꼭 아니라 우리 평범한 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각양각색의 부조리와 불의에 매번 타격을 입지는않고, 어느정도는 무덤덤해지거나 체념합니다. 하지만 양심으로 이를 용인하지는 않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배우자, 부모 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입니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서 힘들게 루틴을 맴도는 우리들에게 그리샴의 주인공들은 무엇이 정도(正道)였는지, 초심이었는지, what you gotta do였는지 감동적으로 환기해 줍니다. "어이, 그쪽이 아니잖아!"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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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창업을 위한 중개실무 바이블 - 초보공인중개사의 성공을 위한 필독서
김진희.조우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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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폭락론을 지지하며 아파트 폭락한다는 말이 훨씬 일리 있게 들렸다. 중개를 하면서 폭락론이라는 게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으니 부동산을 어떻게 재미있게 했겠는가?"(p36) 

확실히,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와, 자신이 원래 가진 비전이나 세계관이 서로 큰 차이를 드러내면 그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가치관 자체가 부정적이면 그 사람은 조직 안에서 맡은바 일을 올바르게 해 낼 수가 없고 조직도 그런 쓸모없는 인력을 선발하지 않습니다. 자영업의 경우는 이게 남의 일도 아니고 자기 일이니 더 말할 것도 없죠. 내 사업이면 그게 요리이든 중개든 분양이든 그 일 자체를 사랑하고 거기에 영혼을 갈아넣을 각오를 해야 성공의 최소 필요조건을 갖추는 셈입니다. 

이처럼 치열한 시장에서 공인중개사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이 저자분들처럼 열정을 갖고 부동산 시장의 동향을 있는 그대로 볼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관점(현실에 잘 들어맞지도 않는) 같은 게 모든 팩트나 시황에 앞서 자리하여 머리 안에서 부적절한 필터링을 행한다면 남들 돈 벌 때 혼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또 크게 공감했던 게, 부동산중개업을 (프로스포츠라면) 페넌트레이스 아닌 포스트시즌에 비유한 부분입니다. 업종에 따라서는 정규시즌 성적이 진짜 실력인 게 있듯, 개별 이벤트에서 화려하게 재능과 성과를 증명하기보다 길게 꾸준히 잘하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중개업은 다릅니다. "숏게임의 연속이고, 매 순간 집중해야 한다(p35)." 어찌보면 이게 낚시하고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유독 인근지역 개업 문제가 빈번하고 분쟁도 많이 발생한다. 영업비밀이 유출될 경우 타 직종에 비해 타격이 크다... 이직률이 높고, 능력이 좋은 직원은 개업을 하거나 더 보수가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기도 한다(p87)"  후단부는 이동전화 판매점, 안경점, 명품샵, 미장원 등 고객 응대하는 직원을 둬야 하는 모든 업종이 비슷한 사정이겠으나 특히 부동산중개업에서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개인간의 모든 계약은 서로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서 사소한 의견 차이로 성사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책 p144에 나오는 대로 인터폰 고장 같은 건이 있을 때, 협상 과정에서 기분이 상해서 성사 직전까지 간 계약이 파토나기도 합니다. 이때 매수:매도:중개사=2:1:1(하나의 예시입니다) 정도로 융통성 있게 하나의 중재안(비용 부담)을 내세우면 모두가 기분 좋아져서 기어이 체결이 되고 말며 중개수수료가 내 손 안에 척 들어오는 거죠. 이런 게 사람 사이를 잘 조율하는 묘미이고 사회 생활의 기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등기는 본인이 직접 칠 수도 있으나 물건의 가액이 크든지 혹은 얽힌 법률관계가 복잡하면 법무사를 개입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이때 소개라든가 업무 조율도 중개사가 신경 쓸 부분이라고 책에서 말합니다(p179). 이런 사정이 있으므로 요즘은 중개사와 법무사를 겸업하려는 이들도 있으나 법무사 자격 취득 시험이 매우 어렵고 이 책에서도 중개사는 중개사 본연의 업무에 더 집중하라는 조언도 저자들께서 합니다. 

계약문언은 하나하나가 명확해야 하는데 p251을 보면 "합의하여 잔금일을 앞당길 수 있다" 같은 말은 "조정하여" 등으로 더 막연하게 바꾸지 말라고도 합니다. 물론 이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계약 자유의 대원칙상 가능합니다. 임대차계약 여러 유형에 따라 특약이라는 게 있을 수 있고 이 책 p252 등에 그 예시가 있으므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중개사는 큰손, 부자 고객을 어떻게 하면 잘 만나서 관리하는지가 큰 포인트인데, 이 책 곳곳에 그와 관련된 팁이 있습니다. 사실 접대부도 그렇고, 잔잔바리 여럿보다 큰손 몇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소수 큰 건을 잘 성사시키는 게 훌륭한 중개사의 실력입니다. 

책 뒷부분에는 업계 신조어, 세법 필수 사항 등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었습니다. 세법은 중개사 시험 칠 때 많이들 공부했겠지만 언제나 최신으로 업데이트된 지식이 필요합니다. 국민자격증이라 불리는 공인중개사를 막상 취득한 후에도 이를 성공적으로 개업,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무 팁이 너무 잘 정리되어서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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