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스 윤민호 재무관리 - 공인회계사(CPA)·경영지도사·공기업 시험 대비ㅣ최신 출제경향 분석 및 반영ㅣ인강 할인쿠폰 수록
윤민호 지음 / 해커스경영아카데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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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관리 과목은 내용이 어려워서 CPA 합격에 가장 험한 관문으로 꼽힙니다. 그런만큼 가능한 한 쉽게 설명된 교재, 예제가 깔끔하게 뽑힌 교재, 최신 출제 경향에 더 포커스가 잘 향한 교재를 골라야 합격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투자는 예산의 제약 하에 이뤄집니다. 예산이 무제한이라면 합리적인 투자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재 p62에는 NPV법, IRR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독립적인 투자안 둘의 경우 NPV건 IRR이건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나 상호배타적인 두 투자안이라면 IRR과 NPV가 다를 수 있는데 이 경우 자본비용이 얼마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재투자가 자본비용으로 이뤄지느냐, 아니면 IRR에 의하느냐의 차이입니다. 

IRR은 그 가정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투자안은 보통의 자본비용보다는 훨씬 높은 수익률(IRR)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1기간(2기간, 3기간... n기간) 후에 회수되는 수익이 계속 IRR이 곱해져서 들어오는 금액이라고 가정하는 거죠. 교재에서는 투자안의 한계수익률이 체감되어 결국 자본비용에 수렴하기 때문에 NPV가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럼 NPV의 자본비용 할인율은 너무 살벌하지 않은가? 그건 CF 금액의 설정을 통해 투자안의 이상성(?)이 반영된다고 봐야 하겠죠. 책에는 "진정한 IRR"도 설명되는데 유입액 할인에는 자본비용, 유출액에는 IRR을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p67의 예제2를 통해 우리는 확실하게 이 개념을 익힐 수 있습니다. 

여러 투자 기회가 있을 경우, 아니면 오로지 소비기회만 존재하는 경우냐에 따라 최적투자점이 달라집니다. 두번째 경우는 소비자들이 어디서 돈을 빌릴 데는 없고, 자신이 투자한 금액이 회수된 것에서 얼마를 쓰고 그 남은 것을 재투자한다는 가정에 따릅니다. p94에 피셔의 분리정리가 설명되는데 이 교재 특징이 원래 그렇지만 앞에서부터 그 기초가 되는 이론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그 이론들이 한 데 모여 종합되는 파트도 이해가 잘 됩니다. 서술이 논리적으로 이뤄져서 그렇습니다. 

p125에 재무관리 과목의 핵심 중 하나인 포트폴리오 이론(마코위츠 모형)이 나옵니다. p134를 보면 공매(short selling)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우리 개미 투자자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공매도하고 같은 말입니다. 공매도 금지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당국이나 기관에서 하는 말이 외국에서도 다 시행하는 제도이며 이걸 금지하면 외국 큰손들이 떠난다는 소리입니다. 사실 이 제도를 허용해야만, p135의 그래프에서 보듯 그래프의 빈 부분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교재에 나오는 대로) 위험이 0이 되는 포트도 구성 가능해집니다(단 상관계수가 +1, -1인 때). 이론만 놓고 보면 공매도를 허용해야 하죠. 뭐 이론만 놓고 보면. 

현대학계에선 이미 폐기되었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으나 적어도 수험 재무관리에서는 CAPM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또 최신이론 역시 CAPM이 바탕이 되어서 발전한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CAPM의 여러 비현실적인 가정들도 완화되어 이론 전개되었고 교재에도(이 교재뿐 아니라 어디에도) 그 사항이 설명됩니다. 이질적 기대(투자자들 각각의 능력 차이), 개인소득세 등이 p176에 설명됩니다. 

마코위츠의 완전공분산모형, 샤프(Sharpe)의 시장모형 등은 투자기회집합 중에서 지배원리를 만족시키는 효율적인 안들만 모아 놓고 그 중에서 최상의 선택을 하려는 목적입니다(p207). 지배원리라는 건, A안과 B안이 있을 때 B안의 장점은 A안이 다 갖고 있으며, B안은 독자적인 장점이 하나도 없을 때 이를 지배당한다(be dominated)라고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하위호환하고 같습니다. 

p304 이하에서 가중평균자본비용법과 주주현금흐름법이 설명되는데 제가 본 교재 중에서는 설명이 가장 깔끔했습니다. 

p466에 듀레이션 개념이 잘 나오는데 특히 p470에 만기와 이 듀레이션 간 차이가 간단하면서도 조리 있게 설명되네요. 

최근 미 연준의 다소 비합리적인 금리 인상 조치, SVB 사태, 한국의 레o랜드 소동 등 일련의 사건 때문에 채권 제도 존재 자체가 위기에 몰렸다는 전망도 나옵니다만 여튼 증권 시스템의 양대 축은 주식과 채권입니다. p482 이하에는 이자율예측전략, 수익률곡선타기전략, 순자산가치면역전략 등이 설명됩니다. 

차익거래는 추가로 돈을 들이지 않고, 가격 차이가 나는 상황을 이용하여 여기서 사고 저기서 팔아 이익을 내는 방법입니다. 선물의 현재 가격이 균형가격을 초과했을 경우, 혹은 그 반대 경우 어떻게 차익거래가 가능해지는지 p511 이하에 예제를 통해 잘 설명됩니다. 보유비용모형은 예제 3에 잘 설명됩니다. p521에는 금융선물 이론이 나오는데 확실히 깔끔하게 필요한 부분만 문제 안에 들어갔다는 느낌입니다. 

p576에는 풋콜 등가식이 나오는데 본문에도 있지만 풋-콜 패리티가 원어이죠. 결국 이걸로 가격도 산출하고 이것저것 합성도 해서 내 상황, 취향(?)에 가장 잘 맞는 포트도 만듭니다. p590에 가격결정요인과 풋가격, 콜가격 등의 관계가 표로 잘 정리되었습니다. 스프레드도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p594에 최신 이론까지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p612에 콜옵션의 델타 개념이 나오니 혹 빼먹는 일이 없어야 하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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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혼 후 더 근사해졌다
사빈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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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측정을 해 보면 이혼이 주는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향후 생계에 대한 걱정, (아이가 있을 시) 육아에 대한 막막함 등 때문에 남성보다 이혼을 훨씬 더 어렵게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미 관계라는 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손상되었다면, 깔끔하게 정리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훌륭한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습니다.  

저자께서는 먼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십니다.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을 겪는다는 건 아이에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분노하게 되는 건, 동생(저자분의 부친)의 어린 아이들(자매)를 맡으면서도 학대와 폭행을 일삼는 백부와 그 가족들의 처사입니다. 형제 중에 이런 나쁜 사람들이 있으니 아내와 두 딸에게 어떤 처우를 하셨을지도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합니다. 어린 나이에 동생을 돌보는, 사실상 엄마 역할을 하셨다는 회상을 읽으며 독자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 자매는 온실 속 화초는 고사하고 잡초처럼 자랐다(p57)." 

어려서 기업에 취직한 것도 가정을 돌보기 위한 결단이었으니 정말 장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의 어려움은 이때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여초 직장이 흔히 그렇지만 상사나 오너가 누구 하나를 예뻐한다 싶으면 그때부터 따돌림이 시작됩니다. 이건 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다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자께서는 27세의 나이에 식을 올렸는데 이때에도 시가와 혼수 문제로 트러블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교통사고 후유증이 뜻밖에도 발목을 잡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에 불운이 이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닐 수도 있나 싶기까지 합니다. 수술 과정을 보니 참 의료진이라는 분들도 믿을 게 못 된다 싶었습니다. 병원에서 감당을 못 하겠다 싶으면 애초에 무리하게 진행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염증이 자주 생긴 걸 보면 의료사고에 가깝지 않나 저는 추측되었는데, 저자는 책 중에서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또 어느 간호사분에게도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입원 기간 동안, 특별한 손재주가 좋으셨던 시부께서 독서대를 만들어 오신 일도 인상적이었네요. 

이후에도 교통사고 후유증과는 무관하게 큰 고통이 찾아와서 대학병원까지 가서 진단을 받으신 결과가 대장 쪽의 이상이었습니다(궤양성 대장염. p174, p191, p303). 작다면 작은 사람 몸에 왜 이렇게도 복잡한 탈이 나며, 그 원인은 왜 이처럼  찾기가 힘든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앞선 그 병원에서도 경추 수술을 할 때, 자꾸 염증이 생기는 부작용을 아마 예측 못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도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었는데 환자분의 체질 문제가 있어서 그리되었겠죠. 저자께서도 부모의 이혼 때문에 더 일찍 철이 들어서 동생을 돌보았는데, 작은따님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자분을 간호했다고 합니다. 

잘 맞지 않는 배우자와 억지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건 적지않은 스트레스이겠습니다. 이혼 후 원인 모를 피부병이 싹 나은 것은 참 놀라운 일인데 우리 주변에서도 (인과관계를 뚜렷이 추적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두 번 다시 상처받기 싫어 아빠 곁을 탈출했지만 사랑하는 남자들은 아빠와 닮아 있었다(p208)." 그래서 프로이트적 무의식이 그렇게 무서운 건가 봅니다. "새롭게 안 사실은 남자 도움 없이도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p219)." 상처 받은 세 모녀에게 여행만큼 힐링이 되는 처방이 없었는데 사실 남자 도움 없어도 가능한 게 어디 여행뿐이겠습니까. 

지독한 불운으로만 점철된 듯하지만 이런분께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한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큐 프로그램에 저자분의 사연이 당첨된 것입니다. 앞에서 경추 수술 당시에도 긴 치료기간 중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저자분이었죠.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p255)." 두번째 이혼은 남편분께서 소송에 걸려서 더 고달프게 진행되었는데 정말 삶이란 게 이처럼 고달프게 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말 무거워집니다. 여튼 "분명 좋은 날은 온다(p303)는 저자님의 힘찬 외침이, 이 책을 읽는 독자 누구에게도 힘을 불어넣어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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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치료세계를 아십니까? -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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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자아는 계급적인 권력의 힘으로 얻어진 투쟁의 결과이며, 그 결과 억압의 힘은 잠들지 않고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p51)" 프로이트가 개창한 이래 정신분석 일반이 대개 그렇지만 우리네 이성은 생각만큼 그리 견고하지 못하며 어찌보면 주인 행세를 하는 가오마담이지 실세가 아닙니다. 끈을 쥐고 위에서(아니, 밑에서) 조종하는 건 끈적끈적한 무의식입니다. 무의식, 충동이 진짜이며 "자아"라는 건 생각보다 허구적입니다. 라캉은 아예 충동을 주체로 삼습니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 의젓하고 존경스러운, 성공한 부친(혹은 부모님) 밑에서, 완전히 다른 개성의 자녀들이 나오기도 하나 봅니다. 이때 다르다는 건 유전적 특질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대체로 이런 아버지들은 성공적으로 충동, 무의식을 억누른 자아를 보유했기에, 이미 패배한(그렇게 보이는) 끈끈한 야만이 다시 살아나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 싹은, 아직 바로 성장하기 전 과거의 자신으로 보이는 자녀에게서 다시 어슴프레하게 관측됩니다. 아버지(혹은 어머니)는 가차없이 이 무질서, 악을 억누르고, 자녀는 영문을 모른 채 원한을 품으니 아버지를 닮을 자아가 아예 그 안에서 성장을 못합니다. 전혀 납득이 안 되는 패륜이 곧잘 등장하는 건, 이처럼 억눌린 충동이 아들 대에서 다시금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딱한 일입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보다 왜 더 불안한가?(p56) 사실 과연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죠. 사자도 의외의 불안에 시달릴 수 있고, 연약한 사슴도 생각보다 자신의 생존 확률이 높음을 알고 태평할 수 있습니다. 여튼 절대적으로 인간이 꽤 불안한 정신 상태에 놓인 건 사실이며 사회적 일탈자, 정신병자 등이 왜 이리 많이 출현하는지도 따지고 보면 불안해서입니다. 저자는 그 원인을 일단 "말하는 나와 (그) 말 안의 (진짜) 나는 서로 다르기에 갈등이 생기고 불안이 누적된다"고 규정합니다. 

주체인 척 하지만 사실은 객체이고(p46), 애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시시때때로 생성될 뿐인 게 주체이니(라캉의 입장. p47 등) 이 긴장과 불안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왜 속이 후련한가? 불편한 자아를 객체의 지위로 (바르게, 자연스럽게) 끌어내렸기 때문입니다. 주인 아닌 것이 여태 위태롭게 외줄타기를 하다 내려왔으니 자아(있지도 않지만) 제놈도 안도가 될 테고, 무의식과 충동은 비로소 주인 자리(제 자리)를 찾았으니 또 저들대로 후련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저자는 p76에서 노래 가사 하나를 인용합니다. 검색을 해 보니 조경수라는 분이 1978년에 발표한 히트곡이라고 나옵니다. 목소리도 그윽하고 가사도 곡조와 잘 매칭되는 명곡입니다. 그건 그렇고,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 왜 알 수가 없습니까? 알 수도 있을 듯하거니와 뭘 정확히 알아야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 테고 말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착각, 오해입니다. 이런 행복은 사실 만족에 가까운 것으로,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타울적으로 작동하며 계산적이고 약탈적입니다. 사자가 배가 고파 가젤을 사냥하고 물어뜯어 배를 채우면 그건 행복입니다. 그게 아니라, 혹 사자가 정글에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거나 과시하기 위해 가젤의 등뼈를 꺾었다면 그건 만족입니다. 이런 만족은 사실 타율적이기에 결코 충족되지 않고(insatiable) 자아를 결국 지옥으로 이끕니다. 무의식과 충동은 공연히, 모진 놈 옆에 섰다가 함께 벼락을 맞습니다. 

의식(남의 눈이건, 허구의 자아이건)을 하고서 이래야지 하고 노려서 만족하는 건 결코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은 그저 철없는 어린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배시시 웃고 천진하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p77에는 참으로 멋진 말이 나오는데요. "행복은 서로의 고통을 알기에 살아내는 과정에서 서로가 지니는 자연스러운 공감이다." 그러니 진정한 행복은, 정략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조건 따지지 말고 너 그냥 나하고 같이 살자, 응? 하며 조르는 천진난만한 처녀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p104 이하에 잘 나오듯 프로이트 체계에 대하여 라캉만이 행한 독자적 기여는 바로 언어 체계에 대한 해석을 전면 도입해 새로운 의의를 부여하고 작동 범위를 훨씬 넓힌 것입니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등의 개념이 엮어내는 담론이 워낙 정치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작가들이 자주도 인용하며, 따라서 요즘 독자들은 체계적 공부 없이 웬만한 자계서만 이것저것 읽어도 어지간히 익숙해질 지경입니다. 조금 앞선 시기 드 소쉬르가 정비한 언어학 체계로부터도 크게 도움을 받았고 말입니다. "나"보다 중요한 건 인간이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원초적 생명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든다(p122)." 저자는 육체의 몸과 신체의 몸을 준별하며, 후자는 말초 감각이 받아들인 자극을 신호로 변환하여 대뇌에 전달하고, 대뇌는 다시 신체 각 부위의 세포에 그 해석한 바대로 공유하고 명령을 내리는 체계로서, 전자가 그저 살, 피 등으로만 존재하는 것과 구별됩니다. 저자는 "말하는 주체"의 중요성에 주목하며, 물질대사뿐 아니라 정신의 대사도 중요하다고 지적하는데, p65의 배설의 섹스와 쾌락의 섹스 구별론을 전제로 삼아 도출되는 논의입니다. 저자의 의학적 소양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해진 결론이기도 하겠네요. 

근대는 인본주의를 토대로 삼아 탄생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인간의 생명"입니다. 저자는 현대에 들어 더 중요한 건 "생명의 인간(p168)"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더이상 금지와 명령에 짓눌리지도 말며, 그로 인해 상실과 결핍감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가 되지도 말자고 합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이 뭔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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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었다 - 경제학이 외면한 인류 번영의 중대 변수, 페미니즘
빅토리아 베이트먼 지음, 전혜란 옮김 / 선순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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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본 내용입니다. 혹은, 페미니즘 시야에서 다시 고찰한 경제사(經濟史)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바는, 관점을 달리하면 기존에 틀림없다고 여기던 바도 새삼 의심이 생기고 재검증이 필요하겠다 싶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세상의 반은 여자가 맞긴 하구나, 일단 기존에 소홀히하던 변수가 끼어들어 공리가 흔들리니 전혀 새로운 진리가 눈에 띄기도 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이죠. 페미니즘 진영도 아마 여기까지는 미처 내다보지 못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생산력 차이가 근본적으로 역전된 건 산업혁명 이후입니다. 우선 서유럽은 여성의 시장 참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합니다(딱히 새로운 주장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가족 외 구성원과도 신뢰가 공유될 수 있는 제도인가, 만약 그렇다면 여성의 자유가 더 넓게 보장된다... 이 부분에서 눈을 크게 뜨게 됩니다. 특히 중국, 한국은 사실상 신뢰의 범위가 친족 집단을 넘지 못하고, 이 점이 사회 근대화를 크게 가로막았습니다(후반부 p213도 참조). 이런 제도 하에서는 여성이 가부장 아래에 더 철저히 종속됩니다. 반면 서유럽은 부르주아 이상이면 여성들이 사교계에 자유로이 출입도 하던 사회였죠.  

다음으로 이 책은 저임금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기존의 허술한 주장을 사정없이 깨부숩니다. 저임금은 기업가의 혁신을 가로막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고임금 국가여서 더 빠르게 성장했다는 주장에 다시 "백인 남성 노동자 중심 사고"라는 반론이 가해집니다.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흑인 들은 저임금에 시달렸다는 거죠. 여기에 다시 가해지는 재반론은, 영국이야말로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타 유럽 국가보다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스포츠 경기처럼 흥미롭습니다.  

p77을 보면 특정 시기 중동 지역의 경우 우리 선입견과는 다르게 인도, 중국에 비해 여성에 대한 처우가 나았다고 합니다. 상속권이 더 넓게 인정되었고 남편에 대한 종속도도 훨씬 낮았다고 하네요. 순결에 대한 감시가 더 혹독했으나 이 점은 경제활동과는 관련성이 낮습니다. 결국 여성이 산업과 거래(p188의, 성공한 시장론도 참조. p181에서의 "해방구로서의 시장")에 어느 정도 폭 넓게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경제 성장과 밀접한 인과관계, 적어도 상관관계를 가지며 실제로 해당 지역에서 통계와 자료로 확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무제한으로 타당한 결론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한정된 결론입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여성의 자유도건 경제 성장이든 동아시아가 훨씬 나은 형편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저 칼 마르크스의 협력자 위상에 그치는 인물이 아니며 특히 근대 가족제도 발전에 대한 연구는 찬성이든 반대든 아직도 그의 연구를 상당부분 참조해야 할 만큼 폭 넓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신석기 농경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사유 재산 제도가 생겼으며, 여성이 출산 도구이자 성노예 역할로 본격 전락했다고 규정합니다. 이처럼 좌파이론은 해당 논자가 페미니즘을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친여성 성향을 띠는 게 보통이고 또 원칙입니다. 하물며 엥겔스 같은 사회주의의 개조격 인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단 바버라 슈뭐츠 같은 이는 가부장제가 진화론적 반응이라며 다소 결이 다른 주장도 합니다.   

부양이 아닌 돌봄이 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낸시 프레이저 같은 이는 여성의 신체 자율권이 더 철저히 보장되어야 약탈적이고 환경파괴적인 경제 발전 비전이 멈춰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신체자율권이란 대체로 낙태의 자유 확대를 뜻합니다. 아프리카처럼 여성의 자유가 위협받는 나라에서 인구가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빈곤과 환경 파괴가 더 만연하다는 건 우리 모두가 보는 바입니다.  

반여성적인 사회일수록 성노동자(전통적으로 매춘부, 성매매산업 종사자라 불렸던 이들)에 대래 낙인찍기가 심하고, 결정적으로 "정상적인" 여성과 성노동자 사이에 편가르기를 유도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의 경우 여성운동가들조차 미숙한 인식에 그치는 경우를 흔히 보며, 기껏해야 시혜적인 스탠스에서 누구의 죄를 사한다는 식으로 patronizing하는 반(反)진보적 퇴행도 드러내곤 합니다. 어떤 자는 캐서린 하킴의 매력자본 개념을 왜곡, 견강부회하여 자신의 값싼 처신, 성상납, 타락 행위를 합리화하는 막장 태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페미니즘에 대한 역적행위를 하는 셈이죠.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는 규모가 아니라 능력에 달렸다(p196)." 어떤 기준과 태도로 여성 이슈, 나아가 (결국 여성 팩터로 대부분 환원 가능한... 이 책 원서 제목도 참조하십시오) 사회 문제에 접근하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가릅니다. 제인 험프리스 같은 이는 "애초에 경제학은 성차별주의자들이 만든 것으로서 그 자체가 성차별적 체계"라고도 했지만, 경제학의 풍성하고 뛰어난 현실설명력이 기존에 존재했기에 그에 대한 반론, 혹은 페미니즘적 재해석도 이처럼 재미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날 뿐 아니라(제시 잭슨), 암수의 두 축이 균형을 이뤄야 애초에 개체가 탄생,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책 중 최고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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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판매원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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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란포가 극찬했을 만합니다. 

과거 고전들을 보면 충분히 긴 길이, 호흡 속에 깊이 있는 사색의 흔적을 담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바쁜 현대에 들어서는 저런 작품들을 더 이상 넉넉한 마음으로 음미하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데다, 때마침 외계인 소재의 가벼운 SF물이 유행하여, 호시 신이치 같은 천재가 이런 장르를 창안할 수 있었겠습니다. 실린 작품들이 대부분 기발한 트릭이나 돈강법을 사용하는데, 이 짧은 분량에 이 정도 레벨의 기교를 쓸 수 있을 작가가 극히 드물겠으므로 이후 쇼트쇼트 장르가 그리 번성하지는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표제작인 <사색 판매원>부터 리뷰하자면, 역시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기발하고 혁신적이었습니다. 상대의 액션 허점을 파고들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을 펼치는 건 p172의 <서부에 사는 남자>의 플롯과도 비슷하며,  예전 작가 로베르 토마의 <Double Jeu>하고도 닮은 데가 있습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모든 생각의 수고를 끝내 버리기 위한 생각 기계, 그리고 모든 외판원들을 퇴치해 버리는 기계를 팔러 다니는 외판원... p425의 <신용 있는...>을 보면 우리는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가 만났을 때 더 이상 그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p184의 <하늘로 가는 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럭스 권총>을 보면 역시 날카롭게 빛나는 아이디어가 매력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이후 007의 영화판에서 여러 번 쓰였는데 아마도 호시 신이치의 이 작품이 더 먼저일 듯합니다. <약점>도, 예를 들면 숀 코너리 주연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본드의 소변 샘플을 얼굴에 뿌리자 그 막강한 맷집의 거한이 바로 뻗어 버리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만한 독극물은 없다는 결론 속에 호시 신이치 특유의 염세주의가 드러납니다.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불능이지만 그렇다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는 뭔가 망설여지는 상황들이 있는데 p18의 <비>가 그런 당혹스러움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우주통신>은 생선회를 즐겨 먹는 일본인들 머리에서 나올 만한 작품이 분명합니다(생선회가 얼마나 잔인한 음식인가요, 알고보면). 소통이란 그래서 어려운 것이며 상대방은 내 메시지 중 생각지도 않던 지점에서 미칠 듯한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유토피아>에서 팰 행성의 주민들은 대단히 지혜로운데, 실제로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 혹은 시칠리아, 실론 섬의 주민들이 지난 역사에서 무수한 고초를 겪은 것도 다 저러지 못했던 이유에서였습니다. p205의 <안개 별에서>도 낙원에의 침입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착상입니다. 

p54의 <증인>은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이른바 "개돼지(영화 <내부자들>")로 요약되는 대중의 어리석음을 신랄히 꼬집습니다. 환자를 고치는 건 의사의 소명인데 너무 잘 고쳐 놓으면 바로 그 고쳐 준 은인 입장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난감해질 수 있음을 우습게 포착한 p67의 <환자>도 좋았습니다. 시골 사람들도 "사는 낙"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사실 과거 일본 역사에서도 억압된 하층민들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지배층이 그들의 무서운 일탈을 주기적으로 허용하곤 했었고 그게 p72의 <낙(樂)>에 표현된 듯합니다. p100의 <불만>은 한참 뒤에 나온 영화 <혹성탈출>이라든가, 심지어 <300>에서 에피알테스의 배신도 생각나게 합니다. 

p109의 <신들의 예법>은 p230의 <우호 사절>과 발상이 닮았습니다. p120 <멋진 천체>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p322의 <통신판매>, p421 <식사 전 수업>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 문제는 과다 성욕을 통제하기 어려운 데서 터지기도 하는데 p130의 <섹스트라>가 이를 풍자합니다. p329의 <텔레비전 쇼>는 이런 문제가 과잉교정된 암울한 미래(성욕 부재로 후속 세대 재생산 불가능)를 그립니다.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순수한 사람들은 도태되는 게 어쩌면 필연인데 p214의 <물소리>가 이 씁쓸한 주제를 잘 말하며, p237의 <반딧불>도 비슷합니다. p242의 <엇갈림>은 단편 분량인데 튜브(작품에서의 이름은 "슈터 서비스")를 통해 물품이 공급되는 건 조지 오웰의 <1984>에도 나옵니다. 이런 서비스는 튜브가 택배로 바뀌었다뿐 어느새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중인 편의라고 하겠습니다. 택배가 엇갈려서 소동이 나는 건 조여정, 클라라 주연 한국영화 <워킹걸(2015)>도 있죠. 

<사랑의 열쇠>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엽편인데 이렇게 마음이 잘 통하는 연인들은 잘 맺어질 자격이 있는 거겠죠? p275의 <잃어버린 표정>도 좋았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여성분은 얼굴도 예쁘지만 표정이 참 다채롭고 다이내믹한 분인데, 사람 표정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그런 여성들에게 바치는 최상의 찬사인데 사람 표정 만들어내는 기계까지 등장하면 반칙이라는 것이니 역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표정들이 지어지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냐는 뜻이 되니 말입니다.     

p298의 <악을 저주하자>는, 그럼 그 끔찍한 저주(그런 인형을 effigy라고 하죠)는 아무 죄 없는 누군가가 대신 받았다는 소리니 제발 생사람 잡는 멍청한 짓을 하지 말자는 교훈도 됩니다. p352의 <복수>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복수의 쓸모없음을 암시하는 좀 다른 메시지도 함께 담습니다.  

p439의 <순교>는 사후세계의 메시지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썼는데 영화 <일루셔니스트>도 생각납니다. 죽음보다 죽음을 앞둔 공포가 더 무섭다는 게 p377의 <처형>인데 마지막 문장, 죽음이 마치 화려한 불꽃쇼처럼 표현된 대목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떤 독자에게라도, 책을 읽다가 지루해서 잠들 일은 아마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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