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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모범택시 2 (하) ㅣ 모범택시 2 2
오상호 / 너와숲 / 2023년 5월
평점 :
"정의(正義. justice)의 정의(定義. definition)는 무엇인가?" 이 책 p4에 나오는 말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아주 가벼운 죗값만을 치르고 사회로 복귀하여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보고 평범한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를 대변합니다. 영어로 justice는 대법관이란 뜻도 있고, 사법절차의 진행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판사들이 범죄자들에 대해 온당한 단죄도 하지 않고, 사법적 응징도 대단히 불완전하게 이뤄질 뿐이라면 과연 justice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무지개운수 대표님 이하 여러 직원들이 저처럼 열심히 제2의 사업에 몰두하는 동기는 여기에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9화에서도 여전히 하준이, 즉 온 기사는 도기한테 형님 형님 거리며 살살대는데 이제 이쯤 되면 시청자, 혹은 독자들이 그의 정체에 대해 눈치를 채는 단계라서 리뷰에서 더 이상 돌려말하지 않겠습니다. 인간 중에 가장 잘못된 인간이,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한테 악으로 갚는 유형(특히, p166, p271을 보십시오)인데, 성장 과정에서의 상처 때문에 저렇게 되어 버린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지만 정말 혐오스럽습니다. 하준이 계속 친해지려 들지만 나이도 한참 위인 도기는 계속 온 기사에게 말을 높이며 그와 거리를 두려 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은이는 (도기하고 나이 차는 있으나) 꼬박꼬박 성까지 붙여가며 "김도기기사님"이라고 드라마 끝까지 호칭하는데 물론 이건 전혀 다른 동기입니다.
어떤 조직이건 "실세"라는 게 있는데, 최고 권력자가 조직 안에서 특정 구성원에게 얼마나 사적인 신뢰를 주느냐에 따라, 그 조직원의 공식 직함, (한국에서라면) 나이 등과 무관하게 높은 서열을 차지하는 분자를 말하며,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직위로 보나 비교가 안 되는 박현조 총경이 "온 실장"에게 쩔쩔 매는 걸 보면 이 조직 내 권력 구도가 짐작이 됩니다. 이 박현조 총경은 11화 이후로 계속 주요 등장인물이며, 15화 이후에서 그 충격적인 과거가 드디어 밝혀집니다. p151 같은 데서, 서열이 깨지는 굴욕감을 참지 못한 박 총경이 계장에게 미친 듯 화내는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p219에 빅터가 박 "총"경에게 술 따라 주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경찰"총"장의 allusion이겠습니다.
9화~10화의 메인 빌런은 안영숙 원장인데 개인적으로 모범택시 시즌 2에서 가장 잘 뽑힌 빌런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상도 선하고 감정을 함부로 표현하지 않고 지능도 뛰어나며 사회적 지위도 확고한데다 지긋한 나이의 여성이기까지 합니다. 누구도 그 선의를 감히 의심할 포지션이 아니며 그렇기에 몇 배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배우는 이항나씨라고 나오는데 저는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 아니 이런 분이 여태 어디 숨어계셨나 싶었습니다(제 눈에). 미인이신데다 과장되지 않게 딱 이런 유형의 악한을 적합하게 연기하셔서 그 연기력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신뢰를 받는 직업군이기에, 이 에피소드의 충격도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각별히 클 듯합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허구의 산물이지만, 드라마가 다분히 의도했듯 이 비슷한 쇼킹한 사건이 있었기에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원작 웹툰부터 해서 소재로 삼은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에피소드 자체는 원작 웹툰에 없는, 오상호 작가의 창작이라고 합니다.
이 드라마의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무리 심각한 사건을 해결하는 중이라도 무지개운수 직원들, 대표님이 큰 웃음을 선사하는 대목이 꼭 있다는 건데, 의료사고(다분히 고의적인) 와중에도 김도기가 이른바 "나이롱 환자"로 대놓고 행세하며 안 원장과 실랑이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만 딱 떼어놓고 보면 교양도 있고 노련하기까지 한 안 원장이 사회의 쓰레기인 김도기를 능숙하게 컨트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장면에서의 긴장감과 해학은 5~6화에서 사기분양업자 강필승이가 가짜 부부 도기-고은을 예리하게 분석하던 대목과 맞먹습니다. 물론 안 원장이 강필승보다는 레벨이 높은 악당이지만.
p74에서 "불법건조물침입"이라는 죄명은 없습니다. 물론 건조물침입이 불법이 될 경우가 많겠지만 저런 명칭은 없다는 것입니다. 대본집이나 드라마나 똑같이 처리되었네요.
차량에다 폭발물을 설치하는 방식의 살인은 미국 마피아 소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많이 나오는데 무지개운수가 이런 일(p155)을 겪고 보니 그 사고 자체의 충격파보다 배후 세력의 규모, 의도에 대한 걱정이 당사자들에게 더 컸으리라고 짐작이 되죠(사실은 시청자가 그렇다는). p199에서 C4라는 건 컴포지션4이겠는데 스릴러 소설이나 미드에 하도 많이 나와서 일반인도 원 모를 수가 없습니다.
11화~14화의 "블랙썬게이트"는 4년 전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사건을 대놓고 allude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지금 11화의 도기처럼 피해를 봤던 김o교씨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물론 해당 인물에 대해 진정성 의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 피해만큼은 팩트였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공권력이 아예 작정을 하고 폭력조직, 업소 따위와 유착하면 서민들은 대체 어디에 기대야 하겠습니까. 물론 서민은 저런 클럽에 갈 일 자체가 없긴 하겠습니다만.
p291에서 MD 윈디가 "갈수록 진상이야 쪼끄만 새끼가"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드라마에서도 그대로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아이돌 빅터의 키를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나이를 가리키는 건지였습니다. 사실 윈디는 이상하게도 도기가 좀 위기에 몰린다 싶으면 나타나서 결과적으로 그를 구해주는데(잘 지켜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혹시 얘가 무지개운수 비밀직원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제 짐작이지만 그렇게 하려고 복선을 심었다가 나중에 진행을 바꾼 것 같네요.
p320을 비롯 여러 군데에 나오는, 비리의 온상 정삼경찰서는 (물론 가상의 지역명을 따서 그리 이름이 붙었겠으나) 저는 이게 역삼동의 패러디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버o썬이 역삼동에 소재했었고 정(正)과 역(逆. reverse)은 서로 반대말이니 말입니다. 물론 역삼동의 한자 표기는 驛三洞이지만.
p300에 보면 홈런이 무슨 뜻인지 빅터에게 도기가 묻는 장면이 있는데(드라마도 당연히 같습니다), 빅터 답이, (p229의 이른바 "꽁치"라든가) 홈런의 뜻은 그게 맞겠습니다만 안타 뜻은 제가 알기로는 그게 아닌데... p233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종업원"은 이른바 "샴걸"이죠(그게 "수영복"은 아니지만 여튼). 이 시즌 2 전체에서 가장 큰 웃음이 나온 장면은 장 대표가 열심히 호루라기를 불며 인솔하는 일련의 등산동호회 노인들이 클럽에 들어와 난장판을 만드는 씬(p307)이었습니다. 쩜오모델급(p228) 아니면 입밴인 클럽이었는데... 그런데 쩜오면 쩜오지 쩜오모델은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쩜오가 뭐 대단하다고 모델급을 종업원으로 쓰나요?(아마 일반 시청자가 쩜오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까봐 배려한 것 같습니다) 여튼 여기(p309)에서 드라마는 최 주임이 DJ석에 가서 노래를 <내 나이가 어때서>로 바꾸는데 대본집을 보니 구체적인 곡명은 안 나와 있었네요.
아... 드라마 시작할 때 극중에서 언급되는 종교, 시설, 직종 등에 대해 이는 허구이니 혹 불편해할 시청자들에게 미리 사과한다는 자막이 뜨는데, 이른바 금사회라는 비밀조직을 이끄는 "교구장님"을 보고 누구라도 대번에 천주교 사제를 떠올리겠기 때문입니다. p371을 보면 도미누스 보비스꿈, 데오 그라시아쓰 등 라틴어 경문을 (마치 구식 미사처럼) 사제와 신자들이 중얼거리는 장면 있고 드라마도 같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미사는 각국의 현지어로 진행될 뿐이며, 구식 liturgy를 고집하는 극우파를 이 드라마에서 암시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뭐 모를 일입니다. vobiscum은 with you("복수인 당신들"과 함께)인데 라틴어는 저렇게 독특하게 전치사 일부가 제 목적어 뒤로 가서 달라붙어버리는 어법이 있죠.
15화, 16화는 반전(twisting)이 정말 심합니다. 이렇게 진행되겠지 짐작하면 바로 방향을 드라마가 틀어 버리는 통에 머리가 다 아팠는데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보면 편합니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서 이 리뷰에서 밝힐 수 없고, 아무튼 저 무지개기사 1호(김소연), 오미서 중위 등이 나올지 모르는 시즌 3가 빨리 제작되었으면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종이책은 하권을 따로 판매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e-book 상품 페이지에 이 리뷰를 작성합니다. 상권 리뷰는 세트상품 페이지에 등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