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의 파트너십 - 이론, 이슈 그리고 사례
김석우 외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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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여국이 수원국에 적절한 원조를 제공하고 수원국은 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경제 개발을 이루는 선순환 관계는 세계 모두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개발협력이라는 프로젝트 혹은 어젠다는 현대 국제 관계에서 핵심을 이루는 프로세스이며 OECD의 CD도 협력과 개발이라는 단어의 약자입니다. 그저 개발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협력(cooperation)이 들어가며, 따라서 이 프로세스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복수 국가의 파트너십을 전제로 삼습니다. p16 이하에 이 파트너십에 대한 의의가 자세히 서술되었습니다. 다만 명분만 파트너십이라고 내걸었다고 해서 굿 거버넌스가 저절로 담보, 이행되는 건 아닌 만큼, 원조의 건강성과 생산성, 도덕성이 실현될 수 있는 어떤 다자간 컨센서스가 필요합니다. MDGs라는 새로운 개념이 이 "파트너십"의 새로운 의의를 더욱 가시화하고 내실화하는 데 어떤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겠습니다. 

거버넌스 자체에 바람직한, 공공에 이로운 같은 뜻이 이미 포함되었습니다만 최근 들어서는 그 실천적인 기능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굿 거버넌스"라고 보다 선명한 가치지향을 표방하는 듯합니다. 공여자/국의 편의적 양심을 달래기 위해 던져주듯 하는 선심, 적선이 아니라, 수혜 측의 자립과 건전한, 또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는 윈-윈의 결과가 달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하관계, 의존관계, 일방적 시혜관계를 지양하고자 수혜국/수혜당사자라는 말 대신 요즘은 파트너라는 말을 쓰는데, 이를 통해 정당성과 합법성을 더욱 높은 수준까지 달성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합니다.   

"규범과 원칙의 실현 정도가 파트너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의 규모와 특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p112)." 그만큼 사후평가, 측정가능성 지표가, 특히 MDGs 아젠다에서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나라에 물자를 던져 주고 일정 시설을 지어 주고 그냥 끝이 아니라, 이 원조가 어느 섹터에 배분되어 어떤 사람들의 어떤 활동에 도움을 주었으며 시계열적으로 어떤 효과를 남겼는지 정밀한 추적과 평가,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p111에 나온 개발 파트너십의 8유형 도식화도 참조할 만합니다. 파라미터가 3개이니 2^3=8하여 모두 8가지입니다. 

다자주의라고 해서 항상 가치중립적인가? "주의(-ism)"이란 접미어가 들어갔다는 사실부터가 벌써 어떤 지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저자들은 지지합니다(p131). 따라서 다자주의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되며, 아젠다가 인권이냐, 환경이냐, 혹은 개발협력이냐에 따라 그 실질적 의의를 다르게 새기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양국간 FTA가 활성화하며 오히려 WTO가 위축되듯이, 다양한 환경협약들이 발효함에 따라 종래의 UNEP가 유명무실화하는 게 역설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극복하고자 다자주의가 등장했는데 양자주의가 이를 교란하고, 변형된 일방주의가 다시 나타나는 건 확실히 국제질서 확립에 있어 난제라고 하겠습니다. 

2차대전 후 왜 신생국간의 연대는 장벽에 부딪혀 진전하지 못했을까요? 일단 내재적 원인을 찾아 보자면, "식민 시대의 구 엘리트 계급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고 대중에게 사회 복지를 배분하는 식의 정책요소가 가미된 기형적인 민족주의가 팽배하게 되(p190)"면서 경제적, 문화적 종속 구조는 결국 극복되지 못했고 남남협력의 세력화는 오랫동안 지체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21세기인 작금에 들어서야 중국, 인도가 브릭스를 축으로 하여 접근해 가는 식으로 일부 현실화했는데 양국간 분쟁사도 워낙 연원이 깊기에 귀추를 지켜볼 일입니다. 

기존의 국가간 협력 패턴에서 UN 산하 혹은 독립적인 국제 가구의 적극적인 개입, 나아가 민간 NGO의 활약 등을 통해 이제 개발협력 파트너십은 새 국면을 맞아갑니다. 개발협력은 말그대로 대등한, 적어도 호혜적인 상호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상대방에게 공여한 다양한 포맷의 혜택이 훨씬 발전적인 형태로 공여 장본인에게, 나아가 온 세계에 돌아온다는 확신을 갖고 더 투명하게, 더 법제화하여 추진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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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지속가능발전인가? - 유엔 지속가능발전의 비판적 성찰
김태균.우창빈 엮음 / 인간사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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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서 거의 최상위 어젠더로 삼다시피한 지속가능한 발전(SDGs)은 이제 거의 어떤 국가적, 혹은 국제적 프로젝트에도 그 필수적 요소로 포함되어 윤리적 기초나 정당성까지를 담보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국제 프로젝트에는 공여국이 있고 수원국이 있습니다. 과거 제국주의적 수탈을 일삼았던 공여국 그룹에서는 이 지속가능성 요건을 프로젝트에 반드시 끼워넣지만, 이로써 수원국에 부당한 부담을 슬쩍 떠넘길 수도 있습니다. 

당장 우리도 1998년 외환위기 당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가혹한 조건을 수용, 이행해야만 했었기에 이 같은 지적이 유추적으로나마 이해되는 면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수원국의 제도와 법규가 과도하게 간섭당하거나 부당한 변형을 겪는 현실을 지적하며,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개념에 이해당사자 모두의 합의가 반영되어야만 신자유주의의 막후 지배, 전횡, 폭거가 미연에 방지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기업에서는 이른바 "고통분담"이라는 명분 하에 정리해고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습니다. 기업만 힘들게 이 위기를 버틸 수 없으니 직원들도 어려움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일각에서는 책임 회피, 고통 전담(전가)라는 비판도 나왔던 게 사실입니다.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즉 CBDR이란 개념은 범지구적인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 처음으로 대두되었습니다. 

사실 지금의 환경 위기가 초래된 건 선진국이 여태 약탈적으로 경제개발을 해 온 통에 악화한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그러다가 이제 개발도상국이 공업화를 시작해 보려니 환경오염이라는 부작용이 수반되고, 갑자기 환경 보호의 잣대를 일방적으로 들이대니 이런 후발주자의 선택과 발전이 제약을 받습니다. 이 점에 CBDR의 위선성, 이중성과 모순이 표출되는 것입니다. 개도국 입장에서는 왜 이제와서 지속가능발전이란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냐며 불만이 나올 법합니다. 

중국은 지금처럼 경제굴기를 이루기 전에도 비동맹회의의 주도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특히 개도국, 후진국, 남반구에 일정 영향을 행사하려 들었습니다. 이제 중국은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 즉 BRI(Belt- and Road-initiative)를 통해서, 소외된 여러 나라들에 대해 굵직한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듯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거버넌스 경쟁이 벌어지다시피하는 작금, 설령 SDGs가 다분히 명목적 구호에 그치는 면이 있다 해도, 선진국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국들의 실질적 참여가 보장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남과 북의 공영공존에의 길이 열리는 유일한 루트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근래의 논의는 이런 SDGs의 논의에 국가나 정부 섹터만 참여할 게 아니라 각종 비정부기구의 발언권도 보장하는, 이른바 multi-stakeholder로 대상을 더 확장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공여피로감(donor fatigue)라는 분위기가 퍼지자, SDGs는 이제 MDG로 발전적 개편을 맞이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핵심개념은 측정가능성(measurability)입니다. 올바르게 원조가 쓰였으며, 그 원조가 수원국의 국민들에게 고루 배분되어 실질적인 복리가 과연 증진되었는지가 추상적이지 않게 검증이 되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빈곤퇴치에 대해서는 p137의 표에 잘 요약이 되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SDG의 이상은 난민 수용과 보호에까지 확장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각국의 국민감정이나 소요재원 문제, 제도적 미비성 때문에 많은 한계를 드러내는 점도 부인하기 힘듭니다. 재정착이나 보충적 수용은 정부 차원에서뿐 아니라 민간의 적극적인 협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성평등과 과학기술, 보건 이슈 역시 그 우선순위가 낮아져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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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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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종에서 수컷들은 다른 수컷의 자손을 살해하려는 성향을 보이며 그 어미와의 짝짓기를 통해 자신의 DNA를 복제하려 한다(p17)." "수컷이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는 게 자연의 섭리이듯이(p477)." 이 두 문장은 별개의 두 작품에 나오지만 주인공 여성, 혹은 주인공 여성에게 죽고 나서도 강한 영향을 끼친 어느 여성(사실상 주인공?)이 비슷한 취지로 한 말입니다. 

이 책에 실린 네 작품에서 여성들은 대체로 무기력하거나, 사악한 남자한테서 무기력화한 후에 큰 위험에 처합니다. 사실상 이 세계들에서 수컷들이란 다른 수컷의 자손을 죽일 뿐 아니라 선한 암컷과 어린것들을 두루 약탈하고, 욕보이고, 기어이 죽이려 드는, 사악한 성품을 가진, 세계의 파괴자들입니다. 혈기왕성한 수컷들이 살아 있는 한 이 세상에는 참평화가 깃들 날이 없어 보이며 늙은 수컷은 그것대로 추태를 떨며 세상을 더럽힙니다. 

카디프-바이-더-씨는 오래 전의 지명(地名)이며 지금은 사람들에게 그저 카디프로 불린다고 합니다(제가 알기론 메인 주에 카디프라는 곳은 없습니다). 네 편의 소설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안정된 삶을 줄곧 누려온 경우인 클레어 사이들은 원래 고아였고 클레어 도니걸이란 이름이었습니다. 사이들 부부에게 입양되어 이제 박사후 과정 중인 그녀는 입양아라는 점만 빼면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삶을 살아 왔는데 느닷 "모르는 사람"인 루셔스 피셔란 변호사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생물학적 조모가 그녀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소식입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살던 그녀에게 유산 같은 게 솔깃한 소식까지는 아니었으나 이 기회에 그녀는 자신의 근원과 뿌리를 캐 보기로 합니다. 그런 처지의 여성치고는 대단한 모험심의 발휘였으며 독자들은 마치 유령 같은 그녀의 이모할머니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벌써 으스스해집니다. 

클레어는 우리 독자들 헷갈리게, 이모할머니들이 정성껏 잘 차려 준 만찬을 받고도, 이상한 약을 먹은 듯 몽롱해진다고 하는가 하면, 어느 분의 팔이 싹둑 잘려나간 듯 뭉툭하다고 했다가 다시 보니 그냥 손톱이 부러졌을 뿐이라고 하는 등 횡설수설합니다. 두 페이지 뒤 p53에서는 "기형에 가까운 모랙이 한쪽 팔로 트렁크를 옮긴다"고 했다가 잘못 본 것 같다고 다시 바로잡네요. 현재 그녀가 산다는 브린모어 역시 펜실베이니아이며, 멀다고는 하나 어차피 같은 동부 권역인데 메인주가 무슨 아편에 취한 차이나타운이라도 되는 양 이리 온 후 그녀는 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합니다. 

사실 이는 서술 트릭에 불과하며 이모할머니들은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유산을 가로챌 생각으로 클레어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속셈도 아니며, 무슨 맥베스를 홀리는 마녀 같은 초자연적 존재들도 아닙니다. 그럼 혹시 그날, 클레어에게 무서운 일이 있었던 그날의 진상을, 이 할머니들이 은밀히 공유라도 하는 걸까요?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진상을 누가 혹 안다면 당시 초동수사를 맡았던 은퇴 경찰관 드루이트뿐입니다. 그녀는 마치 학술 목적으로 인터뷰를 따는 학자처럼 자료를 수집하고 그날의 진상을 캐려 듭니다.  

과연 ooo은, 그 기분나쁜 외모에 걸맞게, 아름다운 o과 oo를 질투하여 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개수대 밑에 숨어 있던 ooo까지 해치려다 뜻밖의 반격을 받고 더 이상 나가지 못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외모가 unprepossessing한 남자들에게 강한 혐오감을 갖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자신을 향해 강한 의구심을 표현하는 ooo에게, ooo은 그저 무덤덤하게 뭔소리냐는 듯 대꾸할 뿐이지 않습니까? 특이하게 이 소설은 수미쌍관식 구성인데, 아마 모르는 누구에게 전화가 걸려온 그 짧은 순간 잠시 고딕 망상을 한 편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L 피셔는 변호사가 아니라 아마 텔레마케터인지도 모릅니다. 전화를 받아 봐야 알 수 있죠. 

<먀오 다오>는 그래도 진상에의 짐작이 비교적 쉽습니다. 우선 미아를 괴롭히던 뎀스터를 잔인하게 죽인 범인은, 소설 후반에 패리스 로크를 처단한 먀오 다오(아니, 뭐라고?)일 것입니다. 승냥이처럼 로크의 경동맥을 끊어 한순간에 쓰러트린... 아 물론, 먀오다오는 그 전에 이미 로크에게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난다든지 해서 복수를 할 수는 없고, oo를 뜻하는 겁니다. oo가 먀오다오를 성장기 내내 같이 둔다는 건, 이제 자신의 분신처럼 내면에 이 무서운 애를 비치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겠다는 뜻이겠죠. 인상적인 건 그 엄마가 갑자기 콩깍지가 벗겨지기라도 했는지 마지막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아빠를 갑자기 잃은 oo의 망상일지도 모릅니다. 

읽으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환영처럼 1972>였습니다. 물론 이 소설에서 가장 나쁜 놈은 "아직 서른도 안 되었기에 어른스워지지 못한(p395)" ooooo입니다. 그런데 나쁜 놈보다 더 기분 나쁜 자는 그 예순 살 자신 시인입니다. 얼마 전 oo 앞에 신붓감 찾는다는 광고를 낸 어떤 사례도 생각났는데, 이 노인은 그야말로 주책바가지이며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신조와도 모순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너의 비전형적인 미모를 몰라볼 수도 있다는 말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객관적으로 육십 먹은 노인이 젊어 보일 수가 없는데 앨리스가 필사적으로(?) 그를 젊게 보는 건 저 <카디프..>에서 팔이 없는 모랙에게 팔과 손이 달린 듯 본 클레어의 이상 지각과 비슷합니다. 다만 마지막에, 이미 혼백이 된 상태에서 병상을 찾은 앨리스를 노시인이 분명히 알아본 건 자못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사랑(?)은 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도 비교적 분명히 진상이, 특히 후반부에 다 드러나는 편입니다. 앞에서 <카디프>의 클레어처럼, 성별은 다르지만 여기 스테판도 the surviving child입니다. 우리도 "동반 자살"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데 여기서 NK는 죽은 후 메데이아에 비유될 만큼 컬트적인 독부(毒婦)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세계로부터 자신을 닫아 버린 스테판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걸로 드러나니... 한심한 수컷들의 저주받은 속성을 끊어 버리려면 아직 오염되지 않은 스테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가 엘리자베스를 살린 건 단지 한 여자의 목숨만 건진 게 아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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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디에 특서 어린이문학 2
이도흠 지음, 윤다은 그림 / 특서주니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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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 이도흠 선생님이 쓴 생태 성장 동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독서를 진행할수록 전혀 가볍지 않은, 너무도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펼쳐져서 놀랐습니다. 제목은 "엄마는 어디에"인데, 이 동화 세 명의 주인공들, 오누이 연어들인 아리, 마루, 이든이 엄마를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이 담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장 동화"입니다.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나이가 어리니까 당연히) 잘 모르는 세 오누이는 엄마를 찾아 떠나면서 다양한 물 속 생명체들과 만납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동족인 연어이며,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과는 생사를 건 다툼을 벌입니다. 세 오누이는 여정을 이어갈 때마다 무엇인가를 배우지만, 그 가르침들 중 어떤 것은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매우 잔인한 진리입니다. 

어디 계신지 모르는 엄마를 찾아 나선 오누이들이 궁극적으로 알게 된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 어머니께서도 너희를 낳기 위해 먼 거리를 거슬러와선 출산이라는 성스러운 행위를 완수하셨다. 너희들도 너희의 운명인 후손 번식을 위해 애써야 한다." 물론 인간에게도 후손을 낳고 성장시키는 건 무척 소중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후사를 잇기 위해 이처럼이나 개체에게 수난이 따르다니, 그럼 개체가 세상에 나 기쁨과 슬픔을 맛보는 의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요. 

세 오누이는 엄마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험난한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나갑니다. 연어 오누이 역시 자신보다 약한 물고기나 벌레가 나타나면 가차없이 잡아먹고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야만 자신보다 더 크고 강한 물고기를 만나 치열하게 싸우고 버텨 나갈 수 있어서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작을 때에조차 우리를 지켜줄 덩치 큰 엄마가 없을까?" 스스로를 불쌍히도 여기지만 그렇다고 자신보다 아주 작고 힘없는 녀석들에 대한 연민은 없습니다. 다만, 같은 연어 무리 중에 덩치 작은 애를 만나면 작다고 무시하지 않고 "넌 작은 대신 빠르니까 부러워."라며 힘을 북돋워줍니다. 

동족끼리는 경쟁도 하지만 협력의 지혜도 공유합니다. 이 배움이 절정에 이른 건 새미, 슬기샘을 만나고 나서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로워서 오누이뿐 아니라 어린 물고기들에게 다양한 학습을 시키며 강한 개체를 만들고 이들 집단이 공동의 적을 만나 어떻게 단결하여 싸우는지도 가르칩니다. 교육은 놀랍게도 살벌한 실전까지 포함하는데, 슬기샘 역시 산메기와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덧나 결국 죽음에 이를 만큼 잔인한 과정이었습니다. 슬기샘이 죽자 여러 이유로 불편해진 오누이들은 다시 엄마를 찾아 떠납니다.  

(내용누설) 
막내 이든은 결국 바다표범에 물려가는데 이 대목에서 너무 슬펐습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누나와 형이 보았으니... 둘째 마루도 결국 수달에게 물려 죽는데 누나 아리가 살아남아 출산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따른 희생이었지요. 이 전에 마루는 제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제시의 언니 낸시도 순바리와 짝을 짓는데 아름다운 사랑이 흐뭇하기보다 슬펐습니다. 엄마 역시 이 세 오누이를 낳다 죽었고 자신의 육신을 벌레에게 먹혔으며 그 벌레를 먹고 다시 오누이가 자랐으니 너희 엄마는 너희들 안에 있다는 가르침, 결국 그들은 번식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게 곧 효도였습니다. 

은연어, 백연어, 왕연어의 싸움을 중재하면서 그들은 각자에게서 착한 마음을 알아보기, 상대의 눈에서 바로 나를 찾기 등의 지혜를 배웁니다. 이게 거울신경체계를 통한 눈예수, 눈부처, 눈알라의 발견이고 공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세상이 그저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되지 않게,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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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쓰기노트 - 공부 어휘력과 문해력을 키우는 필수 한자!
이미선 지음 / 미래지식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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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아무래도 고유어보다 한자어의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에, 효과적인 언어 생활을 위해서는 한자 학습이 필수입니다. 이 책은 "어휘력과 문해력 증진에 주안을 두었다"고 스스로 밝히는데요. 요즘은 또 성인 문해력이 큰 이슈입니다. 책이나 언론 기사를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 가며 읽어야 내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바르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자를 대충은 안다고들 생각하지만 막상 이 교재를 보며 실제로 따라 써 보니 여태 잘못 알던 바가 무척 많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처음에 배울 때, 아예 정확하고 확실하게 배워야,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수고를 할 필요가 줄어들 듯합니다.   

한자는 올바른 모양이 나오려면 필순이 정확해야 한다고들 하죠. 책 p4에 보면 필순의 원칙이 나옵니다. 위에서 아래로 쓰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게 대원칙입니다. 많은 이들이 틀리는 게 가로와 세로가 겹칠 때에는 가로획을 먼저 긋는다는 점입니다. 글자의 허리를 끊는 획은 나중에 쓴다고도 가르쳐 줍니다. 이런 원칙을 어려서부터 공부한 학생들은 글씨를 쓰면서 이미 몸에 배었기 때문에 일일이 원칙을 텍스트로 떠올리지 않아도 알아서 손부터 나갑니다.    

p5를 보면 삐침과 파임이 만날 때는 삐침을 먼저 쓴다고 합니다. 아버지 부(父)와 사람 인(人), 이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일견 비슷해 보이는데도 왜 순서가 다른지 아이들이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 지도하면서 삐침과 파임의 차이를 정확히 어른들이 이해시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p5의 12번 원칙을 보면 필발머리라든가(發의 부수 부분) 임금 왕(王), 푸를 청(靑) 등은 쓰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문이나 한자는 꼭 자신이 배운대로 방식이 맞다고들 하며 싸움이 나는 수도 있는데, 이처럼 본래 복수 표준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으니, 보다 유연한 태도를 다들 가져야 하겠습니다. 

p21을 보면 벼슬 경卿, 서로 상相을 합쳐 경상이라는 단어를 소개합니다. 물론 여기서 相은 서로라는 뜻의 부사가 아니라 역시 벼슬, 그 중에서도 재상이나 장관이라는 뜻이겠습니다. 관련 단어로는 추기경, 양상(樣相) 등을 소개합니다. 학생들에게 지도할 때는 이 단어들도 예문과 함께 공부하게끔 유도해야 하겠습니다. 경이(驚異), 경인(庚寅. 육십갑자 중 하나) 등 발음이 같아도 뜻, 모양이 다른 경 이라는 글자들이 이처럼 많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아래에 마련된 빈 칸에 필순대로 따라 쓰는 연습이 반드시 따라오게 지도해야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경과 인은 천간과 지지를 나타내는 글자이므로 혹 다른 단어에서 쓰이는 예로 무엇을 들었을까 궁금했는데 역시 경시(庚時), 인방(寅方) 등 본연의 용도로 쓰이는 예들만 제시되었습니다. 

p84를 보면 벽계(碧溪)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푸르게 보이는 맑은 시내란 뜻이라고 나옵니다. 다른 단어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하나하나의 단어에 필순을 다 붙여 놓았기 때문에 무작정 쓰는 게 아니라 또박또박 원칙대로 아이들이 따라할 수가 있습니다. 예전 책들은 개별 필순은 생략하거나 아니면 필순 대원칙을 안 가르쳐 주고 무작정 따라하게만 시키는 것도 있었는데 이 교재는 이런 점들이 확실히 좋습니다.  

어른들이 봐도 어려운 단어가 있는데 p117을 보면 숙약(孰若)이 나옵니다. 집(執)하고도 모양이 비슷합니다. 또 불화발이 달린 熟이라는 글자도 따로 있습니다. 孰은 주로 의문사로 쓰이며 熟은 우리가 아는, 숙성했다 익숙하다 할 때의 그 숙입니다. 아래에는 숙능, 즉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뜻의 구절이 제시되며, 아마도 우리가 이 글자가 들어가는 것 중 가장 잘 아는 단어일 "약간"도 있습니다. 

p165에는 이혜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泥兮라고 쓰며 그 뜻은 신라 시대 현 이름 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서에 고려 초기 신라의 이런저런 행정구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 지명이 기록된 바가 있나 봅니다(검색을 해 봤습니다). 기초한자 1800자에 이처럼 다양한 글자가 포함되며, 언어 생활의 정확을 기하기 위해 생각보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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