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4 미중전쟁
엘리엇 애커먼.제임스 스태브리디스 지음, 우진하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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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몰입감이었습니다. 음... 어느 정도였나 하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가 틀었던 9시 뉴스에 토니 블링컨이 나오자, 아 저 사람 전쟁 뒷수습하러 저기 갔구나, 미국이 큰 피해를 입고 이제 국제 사회 위신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과연 잘 되려나... 같은 생각이 갑자기 들 정도였습니다. '아 참, 소설이었지.' 그 정도로 실감과 박진감이 대단했습니다.  

이 소설은 2034년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벌어질?) 전쟁을 소재로 삼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2023년인 지금 이 사태가 벌어져도 아무 이상할 게 없을 만큼(물론 소설 후반부에 전개되는 몇 가지 사태는 제외하고), 이미 국력이 상당 부분 쇠퇴한 미국, 무섭도록 성장한 중국 사이의 역학관계를 잘 반영한, 소설이라기보다 스토리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원서는 2020년에 발표되었으니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도 전입니다. 또 역자 후기를 보면, 코비드 2019 팬데믹도 탈고 시점까지는 반영이 안 된 듯 보입니다). 우리 한국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중국의 대만 상륙은 이 소설이 지어질 무렵 미국 조야에서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소설에서 아주 디테일하게 다뤄지진 않지만(핵심 이벤트이긴 합니다), 대만과 남중국해의 확실한 장악은 현재 중국 집권층이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이루려는 목표이긴 합니다. 사실 이대로 놔 두기만 해도, 대만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게 자명하며 압박을 안 해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귀부(?)할 형국이었습니다. 구태여 무력을 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중국군 측 역시 막대한 인명 손실이 발생할 테며, 주민들의 마음에는 원한이 남는 방법을 왜 선택하겠습니까? 다만 현 지도층이, 장기 집권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가시적으로 설득을 해야 하니 이런 무리수를 심중에 두고 있는 거죠. 

이 소설에서는 평소에 잘하는 척하던 러시아가, 동맹 비슷한 나라였던 ooo을 느닷 공격하여 oooo의 요충지를 장악하는 놀라운 설정이 중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영어에 fox in the henhouse라는 관용구가 있는데 이 소설에도 그 대목(p180)이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빈집털이죠(스포를 좀 하자면 그나마 띨띨하게 실패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대판 붙을 때 얍삽하게 약소국들을 호주머니에 챙기는 건데, 현실에서는(즉 이 소설 창작 완료 후부터 지금 이 시점까지 새로 발생한 사태) 엉뚱하게도 러시아가 먼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갔습니다. 빈집털이가 아니라, 중국이 먼저 힘을 쓰기 전(미국 중심의 질서 동요)에 자기들이 용감하게(?) 선수를 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설과는 달리 미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며 정신 없을 때 중국이 빈집털이를 할 여지가 생기는 거죠.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하자면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패권국과 도전국이 한 판 붙으면 차기 패권국 지위는 제3의 나라가 반드시 슬쩍 나와서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때 영국이 여전히 패권국이었는데 독일이 도전했고, 양국이 싸우다가 넉아웃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새로 지도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 사실을 소설에서는 노장군 ooo이 외조카 ooo에게 얘기해 줍니다(p159). 전쟁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기는가가 중요하다, 정말로 이기는 자는 먼저 싸우는 자가 아니라 나중에 나와서 슬쩍 수습하는 자다, 이게 소설의 결론입니다. 

왜 모든 현대전은 피로스의 승리, 승자의 저주로 귀착될까요? 전쟁은 이기는 쪽도 밑천을 엄청 들이는 장사이기 때문에(장사로 본다면), 이기고 나서 패전국을 철저히 박살내고 뜯어먹어야 합니다. 미국은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대해 그렇게 하려 했으나, 이라크에 비밀 투자를 하고 있었던 유럽 여러 나라(영국만 제외)의 반대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그 여파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패권이 기울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말입니다. 또 1차 대전 당시 영국이 이기고도 오히려 2차 대전이라는 위기를 얼마 안 되어 다시 맞은 것도 근본적인 원인은 이도저도 아닌 전후 처리 탓입니다. 역설적으로, 전쟁은 이처럼 bloody expensive business이기 때문에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거고요. 굳이 하겠다면 13세기 몽골처럼 아예 하든지. 

이 소설이 왜 구태여 2034년을 배경으로 삼았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당장 이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고 오히려 지금 했으면 했지 구태여 2034까지 중국이 대만 상륙을 미룰 이유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시진핑은 오히려 늦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아마 1) 중국 지도자들은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으며, 참고 또 참을 만큼 신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거나 2) 제 생각에는 이게 더 중요한데, 소설 후반부에서 완전 깜짝 놀랄 만한 액션을 취하는 oo가, 2020년, 아니 2028년이라 해도 그 정도로 완성된 국력을 갖추기는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죠. 2034년이면 그럼 가능할까? 저는 아니라고 보지만 저자들의 생각은 달랐나 봅니다.   

중국은 이 소설에서(도) 매우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멍청한 건 미국입니다. 미국은 치명타를 입고 모욕을 당했으면서도 도대체 뭔 곡절로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사태 파악을 못합니다. "이제 국민들이 (나더러)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p136)" 고작 생각한다는 게 자기 인기 관리이며 애국심이나 사명감은 간데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현대전은 먼저 설치는 쪽이 반드시 패배합니다. 태평양전쟁 때도 조급함을 못 참았던 일본이 결국 무슨 꼴을 당했는지 보십시오. 선빵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건 도조 히데키 같은 동네 양아치의 마인드입니다. 

이 소설에서 트리거를 당기는 사람은 커티스 르메이 같은 전쟁광이 아니라 oo oo라는 젊은 여성 사령관입니다. PC의 흔적인가 생각도 했었는데(인도계 남성인 초두리 박사의 사실상 주인공 역할도 그렇고) 그건 아니었고 읽어 보니 다 이유가 있더군요. 하긴 저자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원... 커티스 르메이가 없는 건 아니고 와이즈카버 캐릭터가 그 노릇을 합니다. p123 등에 나오는 솔레이마니는 실제로 2020년에 트럼프가 죽여버린 이란의 장군인데 여기서 좀 중요한 캐릭터로 잠시 등장합니다. 미국이 암살했을 때 이미 말기 암환자였다는 설정은 그냥 소설의 창작인데 미국이 잘했다고 여기는 여러 작전들도 알고보면 그냥 삽질인 게 많았음을 비꼬려는 작가의 의도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빨리 미국이 정신 못 차리면 이 소설에서보다 더한 망신, 파국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소설 초반에 중국은 놀라운 기술을 구사하여 미국을 무기력화하는데 왜 그런 기술을 후반에까지... 라고 생각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이해 못 한 겁니다. 이 소설은 일종의 <화왕계>, 즉 우화입니다. 톰 클랜시 국뽕 스릴러가 아니고 말입니다. 실제로 음파 공격이라고 구글에 검색해 보면 중국이 미국은 전혀 모르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겠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쿠바에 짓는다는 도청 기지, 러시아의 초음속 미사일 등은 엄연한 팩트입니다(이 소설에 그런 게 나온다는 게 아니라). 또 중국은 미국이 상상도 못할 사이버전력을 갖고 있으며 한국이 가끔 원인 모를 인터넷 마비가 일어나는 게 북한 따위가 장난을 친다기보다 사실은.... 흠 여튼 이 소설은 생각 외로 치밀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진행이며 뭐가 허술하게 보이는 면이 간혹 있어도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게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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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시원스쿨 베트남어 OPIc (저자 직강 유료 동영상 강의 + 원어민 MP3 음원) - 취업·승진·주재원 두 달 만에 끝장내기
손연주.시원스쿨 베트남어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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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시원스쿨 손연주 선생님이 연 강좌 <영화로 배우는 베트남어 - 디자이너>를 종이책 교재와 음원으로 공부한 후 후기를 남겼습니다. 이 책은 베트남어 OPIc 대비 교재인데 역시 같은 손연주 쌤이 지도하는 코스입니다. 다른 시험도 아니고 오픽이니만치 음원을 다운받고 꾸준히 따라하며 연습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것 같습니다. 손연주쌤 사이트에 가 보니 아무래도 직장인분들 후기가 많이 보였습니다. 한국 기업 중 베트남에 진출한 곳이 그만큼 많고, 현지인들과 능통하게 의사를 교환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음원은 압축 해제 전이 약 56Mb, 압축 해제 후 약 91Mb입니다. 페이지별로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어서 학습하기에 편합니다.  

Chúng ta bắt đẩu nói chuyện bằng tiếng Việt nhé. p16에 나오는 첫번째 문장입니다. 이 문장의 뜻은 "베트남어로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chuyện은 전(傳)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이야기 정도로 해석이 됩니다. tiếng은 聲(성)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여기서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이 문장은 실제 OPIc 시험에서 아주 자주 듣게 되므로 귀에 잘 익혀 놓아야 하겠습니다. 

이 교재는 거미줄 템플릿(p11)을 자랑합니다. 사실 베트남어 아니라 어떤 언어에서도, 오픽 시험에서 순수 어학 실력만으로 모든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건 어렵습니다. 사전에 이러이러한 질문이 나올 걸 예상하고 미리 대답의 틀,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 예상 답안이 템플릿이며 이 교재를 다 훑어 보니 정말 웬만한 질문들에는 적절히 응용, 변형해서 다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과마다 필수 패턴 몇 개가 나오고, 그다음에 필수 5문장 확인하기가 따라 나옵니다. 이 교재의 가장 핵심은 바로 이 대목, 즉 필수 5문장입니다. 이 필수 5문장에는 mp3 음원이 반드시 붙고, 우리들은 음원을 따라 큰 소리로 따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실전에서 바로 이 문장들을, 약간씩만 변형해서 우리가 입으로 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강 집 묘사에서는 Em sống ở một căn hộ chung cư. 즉 "저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같은, 역시 응용도가 아주 높을 듯한 문장이 나옵니다. p23에는 단어 뜻도 따로 나오는데 chung cư가 아파트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衆居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다중(多衆)이 사는[居] 곳이 아파트이니 수긍이 됩니다. 

p39에는 Thứ hai, trong khu vực này có nhiểu nhà hàng ngon.라는 문장이 필수 5문장 중 네번째로 제시됩니다. 뜻은 "두 번째로 이 동네 안에는 많은 식당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nhiểu가 "많은"이며, nhà hàng ngon이 맛집이라고 나옵니다. 이걸 혹시 한자로 쓴다면(베트남은 한자를 공식적으로 안 쓰지만) 家行言이라고 하는군요. 음원을 들어 보니 차분~한 로우 톤의 여성께서 문장을 읽어 주시는데, 쉬운 듯하면서도 정확히 따라 읽기가 아무래도 초보다 보니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음원대로 열심히 따라해 봐야 하겠습니다! 

교재가 처음 봤을 때 얇아 보였는데, 막상 60일 분량에 맞춰 60강을 다 마치려니 와... 이 책을 언제 끝마칠까 싶어 막막해졌습니다. 그러나 템플릿의 양이 많고 꼼꼼해서, 이 책 한 권으로 적어도 오픽 대비에는 빈틈이 없겠다 생각하니 다시 의욕이 솟았습니다. 더군다나 돌발 주제에 대한 대비책도 있습니다. 역시 시원스쿨이고 손쌤이 최고입니다. 

*시원스쿨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나서, 솔직하게 또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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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이 싸대기를 날려도 나는 씨익 웃는다 - 불행은 제 맘대로 와도 행복은 내 맘대로 결정하려는 당신에게
김세영 지음 / 카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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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에 역경이, 설령 사소한 것이라도 닥쳐 온다면 누군가를 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싸대기까지 맞은 상황에서 씨익 웃고 말 수가 있을까요? 이 책을 읽어 보면 저자께서는 어린 나이에 참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고 지금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 듯 보입니다. 책에서 느껴지는 공력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입영 전야를 회상합니다. 누구라도 이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지상파에서 방송 종료 안내가 나오면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아쉬운 반응이 몰려오곤 하죠. 나의 소중한 청춘이 이렇게 또 하루가 가고, p37에 나오는 대로 90개의 레고 블럭이 한 번에 빠지는 느낌이 들죠. 더군다나 집안 형편도 여의치 않은 판이면 내가 이대로 가족을 두고 떠난다는 부담감이 엄청나게 밀려오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상황은 저자가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의 회상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이 일은 어제 일같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저자께서는 스스로의 용모에 큰 자신감을 갖는 분 같습니다. A양과 이별하던 기억을 p93 이하에 서술합니다. 사실 이 대목은 남이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살을 저미는 고통일 수 있는데... 참 읽고 나서 재미있었다는 소감을 적기가 죄송하네요. 아무튼, 비슷한 상처를 안은 사람들이 서로 친해지기도 쉽고, 그런 걸 떠나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감정을 나눈 이성과 헤어지는 건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이 외에도 어린 소녀가 "저 오빠와 결혼할거야!"라고 했다는 이야기라든가... 인생을 참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즐겁게 사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앨범이란 건 그 안에 시간이 녹아 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사진 한 컷은 한 컷이지만 그 얇은 두께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것입니다. 이 책에는 앨범 이야기도 참 자주 나오는데, 그만큼 저자분이 가족을 깊이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지낸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 되죠. 사진은 보통 혼자 찍기보다(앨범에 있는 사진이라면) 다른 이와 함께 찍는 게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한자 언어 유희를 이 책에서 자주 구사합니다. 童謠, 動搖가 그렇고 重苦, 中古가 그렇습니다. 보통 동음이의어로 드립을 쳐도 한 글자 정도는 겹치는 게 보통인데 안 그러시고 의미를 담는 게 기발한 면이 있습니다. 삶은 어쩌면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래도 말이 되어서 더 오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냥 발음만 비슷하다고 다가 아니라 이렇게 의미가 살아나야 하죠. 학창시절에 공부 잘하셨다고 하니 이게 가능하기도 하겠습니다. 

p186을 보면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문장이다."로 시작하는 저자의 심오한 상념이 글로 표현됩니다. 이 독후감에 인용할까도 했으나 일단 저 혼자서 곰곰 새기는 시간을 가지려고 보류합니다. 이 책은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저자분의 많은 교훈을 담았고 그만큼 치열하게 사셨기에 이런 문장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세하게 인용하기엔 좀 죄송스러운 대목도 많고... 우리 모두, 삶에서 이런저런 힘든 상황이 있다 쳐도,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도 있으므로 다들 힘 내고 난관을 잘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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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런던 - 최고의 런던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3~’24 프렌즈 Friends
한세라.이정복.이주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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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수도였으며 국세가 많이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국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강국의 심장부이고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 노릇을 합니다. 사정이 이러니 도시 자체가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attraction이며, 런던을 가 보지 않은 이가 여행 좀 다녀 봤다며 어디서 내세울 수 없을 하나의 큰 이유가 됩니다. 

p32에는 "생각보다 맛있는 영국 음식"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p250 이하에서도 따로 자세히 다루니 참조하십시오). 프렌즈 시리즈가 귀여운 점이 바로 이런 부분들입니다(독자의 의표를 찌른달지). 기껏해야 피시앤칩스 정도가 떠오르며 세계적으로도 최악으로 놀림 받는 게 영국 요리이지만 디테일을 좀 파고들다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선입견을 좀 걷어내고 보면 (영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요리라도) 괜찮은 별미가 많습니다. 책에는 5종이 모두 소개되는데 제가 (현지에서는 아니지만) 먹어 본 중에서는 선데이로스트가 괜찮았습니다. 물론 시장이 반찬이긴 합니다만. 

서울도 오랫동안 한 나라의 수도 노릇을 해 온 터라 제법 분위기 있는 오래된 골목들이 (특히 강북 쪽에) 많습니다. 책 p48 이하에는 런던의 "색깔 있는 골목"들이 예쁜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데 지인들로부터 듣기로는 특히 메릴본, 세실코트 등이 볼만하다고들 하더군요. 유서 깊은 도시는 이처럼 그윽하면서도 현지색 물씬 나는 골목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p55에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소개되는데 두 말이 필요없을 대한민국 월클 손흥민의 소속 구단 홈구장입니다.   

영국에 들어가려는 이들이 대부분 거치는 히스로 공항도 그 자체로 런던의 명물이겠습니다. 지하철이 세계에서 최초로 생긴 곳이 바로 런던이니만큼 여행객들도 그저 대중 교통 수단 이용이라는 의의 외에 역사적 의의도 새겨 볼 만합니다. p78에 나오는 mind the gap이란 문구는 한국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여러 맥락에서). 런던, 혹은 영국이란 나라의 문물 전체를 상징할 만한 빅벤(p92),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요람 구실을 톡톡히 한 House of Parliament 역시 뜻깊은 건축물들입니다.   

한국인들에게도 보헤미안들의 아지트로 잘 알려진 소호(Soho)가 또 런던의 명물로 빠질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그러나 이 구역의 어두운 점도 슬쩍 찔러주며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는 평가를 덧붙입니다. 사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당황스러운(?) 면모가 반드시, 어느 도시에서나 발견이 됩니다. 그런 곳에서 꼭 현행법까지 어겨가며 현지의 추억을 만드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야 없겠습니다만 여튼 런던(혹은, 다른 어떤 도시라도)은 런던이기에 런던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도 해 봅니다. p129에는 왕립 미술원(RA)의 웅장한 전면이 프렌즈 특유의 선명한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독자를 설레게 합니다. 

닥터가 아니었는데도 닥터로 기려지는 당대 최고의 문필가 새뮤얼 존슨. 그가 저작을 남긴 본거지였던 우아한 저택도 이처럼 관광지로 개발되어 전세계로부터 영문학도들을 맞이하고 있네요. 책에서는 18세기 런던 건축물의 한 전형적인 양식 보존으로도 의의가 크다고 평가합니다. 런던은 또 세계 금융의 수도이기도 하기 때문에 특히 뱅크 디스트릭트에 가면 다양한 모습을 한 빌딩들을 구경할 수 있겠는데 p164 이하에 예쁘게 잘 소개가 되네요. 시사 퀴즈로도 자주 출제되는, 폐 화력발전소를 개조하여 만든 테이트 모던도 런던의 명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테이트 모던 카페테리아는 저 뒤 p282에 따로 소개됩니다). 

영국은 또 세계 패션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p304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샵이 소개되는데 특히 책에서는 아무도 생각 못한 모델을 기용하여 단숨에 그 창의적 컨셉을 대중의 뇌리에 심었던 사례를 상기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런던에는 없는 브랜드가 없다고 하면서, p305 이하에서 "영국 브랜드는 아니지만 런던에서 볼 수 있는" 인기 브랜드들도 한데 모아 소개해 주는 점입니다. 

책이 최신판이다 보니 작년 9월 별세한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묘소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물론 윈저 성(p346)에 대한 소개입니다. 가는 방법, 내부 지도, 성 내 명소 소개가 자세합니다. 윈저 성 내부 건물은 아니지만 윈저 성과 가까이 있는 이튼 칼리지도 소개되는데 영국을 이끌어 온 그 숱한 지도자들의 요람이라고 생각하면 각별한 경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렌즈 시리즈를 읽으면 저는 언제나 인문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p376 이하에 영국 역사의 중요 터닝 포인트, 인물들 소개가 재미있습니다. 초서부터 셰익스피어까지, 디킨스에서 조앤 K 롤링까지! 한 나라의 힘은 이처럼 군사력이나 경제력뿐 아니라 문화의 면면한 전통에서도 기인하는 것입니다. 역시 프렌즈는 여행가기 전 계획 세울 때뿐 아니라 현지에까지 반드시 휴대해야 할 컴패니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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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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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 선생님의 "친절한" 시리즈 두번째 권이 드디어 나왔네요. 작년('22) 2월달에 <친절한 인문학>이 발간되어 저도 읽고 리뷰를 올렸더랬습니다. 그저 친절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내용도 정확하며, 아직도 사회과학이 어려운 독자들에게 개념을 쉽게 잡아줄 뿐 아니라 앞으로 더 심화한 수준의 독서, 공부를 도와 줄 길라잡이 노릇도 해 줍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그 위에 높은 탑을 쌓을 수 있듯, 쉬우면서도 정확한 책으로 첫걸음을 떼어야 독자에게 발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시고 대기업연구원, 국회정책비서관, 지상파 방송인, 인기 유튜버 등 다채로운 경력까지 쌓은 사기캐 임쌤의 책이라서인지 이번 책도 최고였습니다.   

사회과학 고전 명저 20선이 어떤 책으로 시작할지 궁금했는데 올해 탄생 300주년이기도 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첫 테이프를 끊은 건 아주 놀랍지는 않았으나, 배달앱 이야기부터 꺼내시는 그 서두를 읽고서는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체 배달앱하고 국부론이 무슨 상관이람? 그러나 임쌤은 정말 기발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시는데,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제때 따박따박 받아먹을 수 있는 건 음식점 사장님들이나 라이더, 혹은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대표가 이타적이라서, 배고픈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타심, 박애주의로 무장한 분들은 사회의 빛과 소금과도 같은 분들이죠. 하지만 그런 분들은 소수일 뿐이며 사회 구성원 다수가 그런 착한 마음을 갖기를 당장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개개인의 이기심이 우리 모두의 이익이다(p24)." 각자에게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보장하는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라이더나 식당 주인, 앱 중개사업자, 시켜먹는 우리들 모두 윈-윈이 된다는 뜻이겠습니다.  

이기심이 의외로 모두의 풍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결론 말고도 <국부론>에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주장이 많았습니다. 중상주의가 주장하던 금 축적론에 반대하여, 금을 잔뜩 쌓아놓은 나라가 부자가 아니라, 쓸모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활발하게 사회에 유통되는 나라가 부자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이런 주장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도 같았겠습니다. 개인이야 저축이 많으면 좋겠지만 위정자는 그런 식으로 국가 거시경제를 운용하면 안 되며 국민들이 실제로 누리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는 거죠. 

임쌤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도 바로잡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 만능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도 온화하고 침착한 품성의 소유자였는데 이런 분들의 특징이 어느 한 가지 도그마나 이데올로기에만 기대어 모든 것을 재단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죠. 시장은 물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제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와 국가가 올바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외에 <도덕감정론>도 저술했으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감의 동물이기에 공동체가 이기심의 정글로 타락하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정치 이념은 그것이 아무리 완전무결한 체계를 지녔어도 현실에서 올바로 작동해야만 가치가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선험적 가정적 당위론을 연역적으로 전개한 게 아니라, 반대로 미국이라는 신생국에서 제법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그들식의 민주주의에 대해 귀납적으로 서술한 책입니다. 토크빌은 이미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그 교훈을 충분히 성찰할 수 있었던 세대에 속하며, 자유와 평등은 기대처럼 동시에 얻어지거나 유지되기가 매우 힘들다는 걸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습속, 법과 제도, 그 다음에 환경적 요인이 중요 요소로 작용한다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임쌤은 특히 환경적 요인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당시의 통념에 드 토크빌이 합리적으로 반박했던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어리석은 동물이어서 분위기에 휩쓸려 이성을 잃고 바람직하지 못한 실수를 종종 저지릅니다. 군중 심리라는 게 그만큼 무서운데 이 와중에 누군가는 이익을 취한 후 숨으며 행동에 참여한 다수는 엉뚱한 혐의를 쓰고 대신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인터넷상에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정보가 난립하는 요즘,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는 두 세기를 앞서간 한 사회과학자의 통찰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증명합니다. 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꿈의 재료는 그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할 뿐이니 예지몽 같은 것은 설 공간이 없다(p103)"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에 대한 욕구를 형이상학적으로 어떻게 의미부여할 것인가. 만약 경제적 풍요가 신의 계시라면, 그 추구 방법이 지나치게 비도덕적이거나, 그 추구 동기가 탐욕에만 기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칼뱅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스위스와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의 개신교도들은 이런 믿음을 생활 속에서 실천했고 막스 베버는 이를 정확히 포착하여 그의 명저 속에 풀어냈습니다. 20세기 들어 나온 여러 자계서들은 경제활동을 유도하는 욕망에 대해 아무 제한선을 두지 않습니다. 이런 점이, 이른바 프로테스탄티즘 기반 자본주의 정신과 오늘날의 자기계발사상 사이의 차이점 같습니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개인의 이기심이나 폭력성향이 집단 레벨로 올라오면 성질 자체를 달리하여 심각해진다는 진리를 체계화했습니다. 집단 폭력이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개인의 폭력과 이기심을 다룰 때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책에서는 19세기 말 미서전쟁, 이른바 the splendid little war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이없게도 반제국주의라는 명분을 걸고 얼마나 위선적인 행태를 보였는지에 대해 비판합니다. 니부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윤리적 전제를 유지하면서도 혁명을 위한 몸부림 자체는 그대로 남겨 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집단 레벨에서 발동되는 폭력은 고유의 논리에 대해 절제된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케인즈는 시장 기구의 작동이 그 본성상 언제나 원활하게 작동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정부가 수시로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새고전학파(new classical)에 의해 이론적 허점을 많이 지적당했습니다. 임쌤은 특히 케인즈가 경제의 정적인(static) 측면만 중시하다가 동적(dynamic)인 측면을 놓친 오류가 있다고 정리합니다. 그런데 케인즈도 생전에 그런 취지의 비판들에 대해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며 퉁명스럽게 반박한 적 있습니다.  

문명과 야만의 우열을 가를 수 없다고 한 레비스트로스는 현대에 들어서도 제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사상가에게 큰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신비스러운 성격마저 지닌 마셜 맥루언의 이론은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를 구분하며 현대 미디어학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임쌤은 우리들이 자신만의 주관을 유지하며 미디어로부터 적정 거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핵심과 요지뿐 아니라 고전들의 표준적 해석까지 알기 쉽게 풀어 주는 책을 읽다 보니 명저 20권 내용이 머리 속에 살아 숨쉬는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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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08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독하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