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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 미중전쟁
엘리엇 애커먼.제임스 스태브리디스 지음, 우진하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5월
평점 :
엄청난 몰입감이었습니다. 음... 어느 정도였나 하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가 틀었던 9시 뉴스에 토니 블링컨이 나오자, 아 저 사람 전쟁 뒷수습하러 저기 갔구나, 미국이 큰 피해를 입고 이제 국제 사회 위신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과연 잘 되려나... 같은 생각이 갑자기 들 정도였습니다. '아 참, 소설이었지.' 그 정도로 실감과 박진감이 대단했습니다.
이 소설은 2034년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벌어질?) 전쟁을 소재로 삼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2023년인 지금 이 사태가 벌어져도 아무 이상할 게 없을 만큼(물론 소설 후반부에 전개되는 몇 가지 사태는 제외하고), 이미 국력이 상당 부분 쇠퇴한 미국, 무섭도록 성장한 중국 사이의 역학관계를 잘 반영한, 소설이라기보다 스토리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원서는 2020년에 발표되었으니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도 전입니다. 또 역자 후기를 보면, 코비드 2019 팬데믹도 탈고 시점까지는 반영이 안 된 듯 보입니다). 우리 한국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중국의 대만 상륙은 이 소설이 지어질 무렵 미국 조야에서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소설에서 아주 디테일하게 다뤄지진 않지만(핵심 이벤트이긴 합니다), 대만과 남중국해의 확실한 장악은 현재 중국 집권층이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이루려는 목표이긴 합니다. 사실 이대로 놔 두기만 해도, 대만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게 자명하며 압박을 안 해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귀부(?)할 형국이었습니다. 구태여 무력을 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중국군 측 역시 막대한 인명 손실이 발생할 테며, 주민들의 마음에는 원한이 남는 방법을 왜 선택하겠습니까? 다만 현 지도층이, 장기 집권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가시적으로 설득을 해야 하니 이런 무리수를 심중에 두고 있는 거죠.
이 소설에서는 평소에 잘하는 척하던 러시아가, 동맹 비슷한 나라였던 ooo을 느닷 공격하여 oooo의 요충지를 장악하는 놀라운 설정이 중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영어에 fox in the henhouse라는 관용구가 있는데 이 소설에도 그 대목(p180)이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빈집털이죠(스포를 좀 하자면 그나마 띨띨하게 실패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대판 붙을 때 얍삽하게 약소국들을 호주머니에 챙기는 건데, 현실에서는(즉 이 소설 창작 완료 후부터 지금 이 시점까지 새로 발생한 사태) 엉뚱하게도 러시아가 먼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갔습니다. 빈집털이가 아니라, 중국이 먼저 힘을 쓰기 전(미국 중심의 질서 동요)에 자기들이 용감하게(?) 선수를 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설과는 달리 미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며 정신 없을 때 중국이 빈집털이를 할 여지가 생기는 거죠.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하자면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패권국과 도전국이 한 판 붙으면 차기 패권국 지위는 제3의 나라가 반드시 슬쩍 나와서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때 영국이 여전히 패권국이었는데 독일이 도전했고, 양국이 싸우다가 넉아웃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새로 지도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 사실을 소설에서는 노장군 ooo이 외조카 ooo에게 얘기해 줍니다(p159). 전쟁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기는가가 중요하다, 정말로 이기는 자는 먼저 싸우는 자가 아니라 나중에 나와서 슬쩍 수습하는 자다, 이게 소설의 결론입니다.
왜 모든 현대전은 피로스의 승리, 승자의 저주로 귀착될까요? 전쟁은 이기는 쪽도 밑천을 엄청 들이는 장사이기 때문에(장사로 본다면), 이기고 나서 패전국을 철저히 박살내고 뜯어먹어야 합니다. 미국은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대해 그렇게 하려 했으나, 이라크에 비밀 투자를 하고 있었던 유럽 여러 나라(영국만 제외)의 반대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그 여파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패권이 기울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말입니다. 또 1차 대전 당시 영국이 이기고도 오히려 2차 대전이라는 위기를 얼마 안 되어 다시 맞은 것도 근본적인 원인은 이도저도 아닌 전후 처리 탓입니다. 역설적으로, 전쟁은 이처럼 bloody expensive business이기 때문에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거고요. 굳이 하겠다면 13세기 몽골처럼 아예 하든지.
이 소설이 왜 구태여 2034년을 배경으로 삼았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당장 이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고 오히려 지금 했으면 했지 구태여 2034까지 중국이 대만 상륙을 미룰 이유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시진핑은 오히려 늦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아마 1) 중국 지도자들은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으며, 참고 또 참을 만큼 신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거나 2) 제 생각에는 이게 더 중요한데, 소설 후반부에서 완전 깜짝 놀랄 만한 액션을 취하는 oo가, 2020년, 아니 2028년이라 해도 그 정도로 완성된 국력을 갖추기는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죠. 2034년이면 그럼 가능할까? 저는 아니라고 보지만 저자들의 생각은 달랐나 봅니다.
중국은 이 소설에서(도) 매우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멍청한 건 미국입니다. 미국은 치명타를 입고 모욕을 당했으면서도 도대체 뭔 곡절로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사태 파악을 못합니다. "이제 국민들이 (나더러)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p136)" 고작 생각한다는 게 자기 인기 관리이며 애국심이나 사명감은 간데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현대전은 먼저 설치는 쪽이 반드시 패배합니다. 태평양전쟁 때도 조급함을 못 참았던 일본이 결국 무슨 꼴을 당했는지 보십시오. 선빵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건 도조 히데키 같은 동네 양아치의 마인드입니다.
이 소설에서 트리거를 당기는 사람은 커티스 르메이 같은 전쟁광이 아니라 oo oo라는 젊은 여성 사령관입니다. PC의 흔적인가 생각도 했었는데(인도계 남성인 초두리 박사의 사실상 주인공 역할도 그렇고) 그건 아니었고 읽어 보니 다 이유가 있더군요. 하긴 저자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원... 커티스 르메이가 없는 건 아니고 와이즈카버 캐릭터가 그 노릇을 합니다. p123 등에 나오는 솔레이마니는 실제로 2020년에 트럼프가 죽여버린 이란의 장군인데 여기서 좀 중요한 캐릭터로 잠시 등장합니다. 미국이 암살했을 때 이미 말기 암환자였다는 설정은 그냥 소설의 창작인데 미국이 잘했다고 여기는 여러 작전들도 알고보면 그냥 삽질인 게 많았음을 비꼬려는 작가의 의도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빨리 미국이 정신 못 차리면 이 소설에서보다 더한 망신, 파국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소설 초반에 중국은 놀라운 기술을 구사하여 미국을 무기력화하는데 왜 그런 기술을 후반에까지... 라고 생각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이해 못 한 겁니다. 이 소설은 일종의 <화왕계>, 즉 우화입니다. 톰 클랜시 국뽕 스릴러가 아니고 말입니다. 실제로 음파 공격이라고 구글에 검색해 보면 중국이 미국은 전혀 모르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겠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쿠바에 짓는다는 도청 기지, 러시아의 초음속 미사일 등은 엄연한 팩트입니다(이 소설에 그런 게 나온다는 게 아니라). 또 중국은 미국이 상상도 못할 사이버전력을 갖고 있으며 한국이 가끔 원인 모를 인터넷 마비가 일어나는 게 북한 따위가 장난을 친다기보다 사실은.... 흠 여튼 이 소설은 생각 외로 치밀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진행이며 뭐가 허술하게 보이는 면이 간혹 있어도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게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