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공법
헨리 휘튼 지음, 김현주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외교관 헨리 휘튼이 쓴 고전으로, 원제는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입니다. 대학 교재들이 이름으로 흔히 쓰는 "국제법 개론"이란 뜻이죠. 당대 미국 강단에 국제법 교과서가 여럿 있었겠으나, 유독 이 책을 선교사 윌리엄 마틴이 한문으로 옮겨 중국인들에게 보급했고 이것이 구한말 우리 조상들에게도 알려져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하나의 준거틀을 제공했습니다. 김현주 원광대 교수가 쓴 역자 서문(즉 바로 이 인간사랑刊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양무운동 당시 공친왕(서태후의 정적이기도 했던)이 이 책 일독을 고관들에게 장려하였다고도 합니다. 이 책은 한능검 같은 시험에서 출제사항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21세기 한국 젊은이들에게 적어도 그 제목만큼은 잘 알려진 책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 본성은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이며 매우 호전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나마 기특한 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끝에 공멸로 치닫지 않고 사전에 게임의 룰을 정하긴 한다는 점입니다. 규칙은 모두가 좋자고 만들어 놓았지만 대체로는 약자에게 당장 더 필요한 장치이며 제도입니다. 중국도 당장 서세동점의 대세 속에 일단 폭력이 아닌 말과 이치에 호소할 방법을 찾고 싶었겠으며, 한편으로는 이 양귀(羊鬼)들과 소통이 가능할 기본 원칙들, 저네들끼리 다툼을 해결하는 원리들이 어떤 모양을 갖추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겠습니다. 

특이하게도 윌리엄 마틴 역 <만국공법>에는 서문이 하나 붙었는데 역자 정위량(마틴의 중국명)이 아니라 노생을 자칭하는 장사규라는 선비가 썼다고 나옵니다. 오히려 이 글이, 청말 중국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좋은 자료 구실도 합니다. 고구려가 수당 제국의 외침을 받으며 짐짓 중국군의 퇴각을 권유했을 때 흔히 쓰던 자칭 문구가 "분토(奮土)"였습니다. 이처럼 쓸모없는 땅에 뭐하러 관심을 가지시냐는 애교어린, 또 짐짓 겸손해하는 외교적 제스처죠. 그와 선명히 대비되는 게 장사규 서문(p11)의 "최혜의 지역"이라든가, "사해가 모두 있어 만국이 모두 내왕한지 말할 수 없이 오래되었다" 같은 표현입니다. 농사가 잘 되어 인구 부양력이 매우 높고 강성한 정치단위가 오래전부터 발달하여 주변 소국으로부터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뜻인데 자부심이 가득 배어납니다. 

반면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에 대한 인식은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고 왕은 재상처럼 살림을 직접 돌보며 토산이 부족하여 군함을 해외에 보내 약탈 조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김 교수님의 자상한 역주에 의하면 <좌전>의 한 문장에 기댄 표현이라고 하네요. 이런 치밀한 점이 고전 읽어가는 독자들을 무척 행복하게 합니다. 여튼, 청조의 서생 장사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은, 중화제국 역시 황제가 재상처럼 국정을 섬세히 돌보는 치세 아래에서라야 외적의 침노를 두려워않고 국세를 사방에 떨쳤으며 백성의 삶도 윤택했다는 점입니다. 명 홍무제는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주부처럼 세심히 내정을 살폈으며, 청 강희제는 실무 지식을 자랑하기를 하급관리처럼 했는데, 그래, 이 모든 현군 성군들의 행적들도 비웃음의 대상이겠습니까? 지식인부터가 이처럼 식견이 좁고 자기객관화가 부족하니 온 나라가 망국지경까지 갔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이 영국 영향 하에 있다거나, 마침내 프랑스가 영국을 따라잡았다거나 하는 장사규의 기술은 기초 사실관계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오히려 서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한 시기는 프랑스가 더 길고 오래되었으며 산업 혁명 전후로 잠시 역전된 걸 프랑스가 다시 추격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장사규가 러시아의 국세 쇠락을 짚는 대목에서는 차라리 실소가 나오는데, 그런 허수아비에게 청 제국은 아무르 이남의 광대한 영토를 뻬앗기고 부동항 비슷한 걸 내주어(1860년) 그들의 숙원을 해소해 주었다는 것인가요?  

아무튼 이는 서문에 대한 논평에 불과하고, 지금부터 본문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어판 역자 김현주 교수는 서문에서 "공법(公法)"의 뜻을 놓고 곧 국제법(오늘날 용어로)이라고 새깁니다. 즉 "만국공법" 전체라야 국제법과 동의어가 되는 게 아니라 "공법"만으로 국제법이란 뜻이 된다는 거죠. 오늘날 공법이라 하면 사법(私法)의 반대 영역 모두를 칭하므로 헌법, 형법, 각종 절차법 등이 다 포함되므로 저 무렵 중국인들이 쓰던 관례와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공법이라는 포괄적 뉘앙스의 단어 안에 국제법만을 대응시켰다는 건, 역자 윌리엄 마틴을 포함하여 중국인들이 국제법 질서(의 위력)에 대해 갖는 기대가 그만큼 컸음도 짐작할 수 있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크게 다릅니다. 구한말 한국에서 활약했던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한국의 호랑이")는 어느 국제법 전공자(갓 박사학위를 딴)를 두고 크게 칭찬했습니다. 청년이 어리둥절하여 영문을 묻자 박사가 대답하길 "존재하지도 않는 걸 연구한다니 얼마나 대단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인가!"라고 했다죠. 냉엄한 현실 속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에 설령 법이 있다 한들 강대국이 무시해 버리면 이를 집행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오늘날 국제법 교과서라고 하면 각종 조약과 협의체, 국제기구, 외교관 파견과 활동, 신분에 대한 프로토콜 등이 설명될 것입니다. 이 책에도 물론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당시에만 존재하던 특수한 국체(國體) 등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는데,  p72를 보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예를 들어 나라들이 합병해도 각자의 주권을 잃지 않는 경우의 예를 들고, 또 잃기도 하는 예는 대영, 즉 그레이트 브리튼의 예를 듭니다. 오스트리아 이원 제국(double monarch)의 경우가 워낙 특수한 예이죠. 현재는 이런 경우(즉 전자)가 없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는 1차 대전 후 별개국으로 분해되었습니다. 속령이었던 체코, 슬로바키아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재미있는 게 폴란드가 처음 삼차에 걸쳐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에 의해 분할될 때 폴란드 고유의 여러 권리는 대체로 존중되었고 다만 최고 주권만이 차르에 귀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존 강한  폴란드인들이 독립 운동을 일으켰고, 이에 실패하자 러시아는 그간의 제도 존중도 모두 철회하여 완전한 속방으로 삼은 건데, 이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가 비엔나 조약 위반이라고 비난했다는 사실까지 기술되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요즘이라면 국제법 교과서보다는 외교사 등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커버할 주제이죠. 

공법인데도 당시가 제국주의 체제 하 식민국이 있던 시절이므로 식민국(속국이라고 표현합니다)에서의 재산권이 본국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도 규율합니다. 또 흑인 등을 노예로 삼아 상품처럼 거래하는 건 금지된다고 선언하는데 이 책이 쓰일 무렵 미국은 아직도 남부 주에 노예제가 상존했으므로 미국인 학자 휘튼이 쓴 이 구절이 더욱 묘한 느낌을 풍깁니다. 이제는 교과서라기보다 차라리 역사 문헌이라고 봐야 할 이 책을 읽으며, 한 시절에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되던 바가 세월이 지나면 이처럼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커스 증권투자권유자문인력 최종핵심정리문제집 + 실전모의고사 2회분 - 핵심정리문제 실전까지 10일 완성|필수암기공식 30, 무료 바로 채점 및 성적 분석 서비스 제공|인강 할인쿠폰 수록
민영기.송영욱 지음 / 해커스금융 / 202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금융 관련 자격증 중 "자문인력"을 뽑는 시험은, 그 난도도 "대행인" 선발에 비해 높은 편이고(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응시 자격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금융관련 직종에 현재 종사하거나,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한 이들이, 소정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에 이 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험은 취준생들이 스펙용으로 준비할 성격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먼저 대행인 시험을 합격한 후, 관련 회사에서 1년 이상 경력을 쌓고 나서 이 자문인력 자격을 취득할 수는 있겠습니다. 

현실적으로, 법에 규정된 투자권유 자문인력 사무를 수행하려면 현재 금융관련 회사(규모가 크건 작은 곳이건 간에) 재직자라야만 그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점을 좀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과목은 모두 네 개입니다. 1과목은 증권 분석인데 내용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p37의 16번 문제는 중요도가 ★★★인데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주지하는 대로 환율경로, 신용경로, 자산가격경로, 금리경로 등 네 개가 있고, 페이지 하단에 상세하게 도표가 나와 있듯이 은행 대출 증가, 기업 투자 증가(혹음 개인 소비 증가)를 거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건 선지 중 ④신용경로입니다. 벌써 "은행"이라는 키워드가 있으면 신용경로를 떠올려야죠. 은행이 곧 신용창출기관이니 말입니다. 

중요도가 ★★★인데도 문제가 이처럼 어렵지 않게 풀립니다. 잘 짜여진 교재 한 권만 집중적으로 파면 한 달 안에 그리 어렵지 않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겠음을 알 수 있습니다. 페이지 하단에 나오는 문제 해설이 사실상 개념 설명 구실을 하므로 여기만 잘 공부하면 따로 기본서가 필요 없습니다. 

대표유형 문제풀이를 통해 기본 개념을 다 익히고 나면 출제예상문제 파트가 나옵니다. 파트마다 30문제 이상이 나오는데 앞에서 배운 개념만 머리 속에 잘 정리되었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57 중요도 ★★★의 12번 문제를 보면 경제심리지수(ESI)에 대해 묻습니다. 답은 선지 ②인데 직접 설문하지 않고 BSI, CSI를 합성해서 산출한다고 교재 해설에 잘 나옵니다. 

p71 12번을 보면 답은 선지 ②인데, 이건 PER의 뜻만 알면 바로 골라낼 수 있습니다. 주식 관련 화제에서 흔히 "퍼"라고 (잘못) 불리는 이 지표는 말 그대로 주가를 수익으로 나눈 비율입니다. 분자가 커지거나 (반대로) 분모가 줄어들어야 이 비율(ratio)이 커집니다. 그런데 ②는 분자, 분모 모두 커지는 경우를 말하니, 이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 역시 ★★★의 중요도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파트는, 주식 전문가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소위 차트 보는 법, 패턴 같은 것도 이론화하여 문제로 출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1과목 제3장 기술적 분석인데, 엘리엇 파동 이론, 사케다 전법, 캔들 차트 해머형, 관통형, 십자형, 샛별형 등을 그림도 곁들여 잘 설명합니다. 웬만한 주식 베스트셀러보다 이 책 내용이 훨씬 자세하고 내용도 망라적입니다. 저항선, 지지선, 이동평균선, 계속갭, 소멸갭, 돌파갭, 섬꼴반전 등도 쉽게 설명되었네요. 그뿐 아니라 요즘 주식 투자자들은 각종 보조지표도 폭 넓게 참조하는데(대부분이 후행성이긴 합니다만) 이 교재에는 스토캐스틱, ADR, RSI, VR, 엔빌로프 등도 간명하게 잘 풀이되었습니다. 

근 수 개월 동안 시장이 엄청난 타격을 받긴 했고 지금도 어렵습니다만 요즘은 채권 투자에도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고 기관은 원래 채권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그래서 시장 볼륨 자체가 더 큰 것이고). p223 12번 문제를 보면 채권 가격 구하는 공식을 묻는데 이렇게 예제를 통해 몇 번 다뤄 보면(손으로 몇 번 풀어 보면)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머리에 남습니다.  

p235 24번 문제를 보면 금리상승/하락시 각각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내린다, 이 점은 상경계 대학생이 학부 3학년쯤에 배우는(화금론이건 재무관리이건) 절대 원칙이며 마치 수학에서 근의 공식이나 물리에서 뉴턴, 맥스웰 원리처럼 철칙 취급을 받습니다. 답은 ③인데 변동폭이 작은 단기채권을 더 많이 사고 장기채권을 포트에서 빼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기관 매니저들은 역으로 가기도 합니다. 시장의 치열하고 기민한 두뇌 싸움에서 어떤 고정된 전략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3과목은 다양한 금융상품의 종류에 대해 묻습니다. 이 역시 이제는 금융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잘 아는 사항이며, 랩어카운트니 ELS니 리밸런싱이니 하는 말들은 재테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라면 household name에 가깝습니다. 재무관리 과목에서 배운 여러 원리도 문제화하여 출제되는데 난도는 그리 높지 않고 이 교재에 나온 유형 반복 풀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4과목은 법제사항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암기할 포인트가 매우 많은 이 과목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투자권유사무를 하려면 실정법을 모른대서야 말이 안 되며 어차피 실제 업무에서 다 맞닥뜨릴 이슈이니만치 미리 머리에 정리해 두는 게 고객에 대한 의무 차원에서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내용이나 출제 수준이 그리 어렵지 않으므로, 이 교재 한 권만 딸딸 외운다는 각오로 집중해서 파고들면 합격은 무난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또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아시아 해양분쟁과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 이어도연구회 연구총서 6
고충석 외 지음 / 인간사랑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3년 전(2020.11)에 출간되었지만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시사해 주는 점들만 보면 지금이 더 의미심장한 독서가 될 듯합니다. 동아시아 바다는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법원의 결정을 중국이 정면으로 무시하며 필리핀과의 분쟁을 더 확대할 기미를 보이던 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분쟁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일본을 상대로 하여 첨각열도(조어대, 조어도)를 둘러싼 대립을 확대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이어 오던 세계의 중심이라는 고유의 스탠스에 완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주변국은 당분간 이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 역시 이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다툼이 있습니다. 이 총서 역시 그 분쟁 아닌 분쟁에 대한 종합적 시야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으므로 우리 독자는 이어도 문제를 포함하여 왜 동아시아의 바다가 이처럼 시끄러운지 숙고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네요. 무엇보다, 우리의 영토가 강대국에 위한 위협 앞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고충석 이사장이 직접 쓴 1장에서 책의 모든 내용을 직접 요약합니다. 따라서 혹시 책 전체를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책 전체를 개관한 후 본격적인 독서를 하고 싶은 분은 1장을 특히 꼼꼼히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2장은 이서항 한국외교협회 부회장이 집필했는데 p34에서 "회색지대 전략"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서술합니다. 사실 이 대목이 제겐 매우 심각한 의미로 읽혔는데, 지금 러시아나 중국이나 배후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마치 제3자의 위치에서 중재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알고보면 백투백으로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분쟁엔 중국이, 중국의 분쟁에는 러시아가... 또 이 와중에서 가뜩이나 세계적으로 인심을 잃은 미국은 오히려 전쟁의 주범으로 몰리는 등 총체적 난국입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명백하게 러시아가 선제 침공한 사건인데 어느새 미국은 러시아와 동등한 전쟁 책임을 써 가는 분위기입니다. 

이 책에서는 전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화는 더욱 아닌 회색지대 상태를 동아시아의 바다가 상시 유지하는 이런 상황을 중국이 의도한 전략이라고 파악합니다. 고대부터 역사학자들이 갈파한 전략 중에 살라미 책략이라는 게 있는데, 슬금슬금 현상을 변경해 가던 중 눈뜨고 보면 어느새 전체를 다 차지한 채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는 패턴을 말합니다. 중국은 2010년 당시는 물론 지금도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을 제압할 역량은 되지 못하므로 이런 식으로 의도를 관철해 가는 거죠. 

이 2장에서는 또한 중국 해상민병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는데 이 조직은 백만 병력, 15만 척 선박 보유 상황이 추정된다고 합니다. 뭐 상상이 안 가는 만큼의 엄청난 규모인데,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정규군 전력이 생각 외로 적다 싶어도 이런 반관반민의 "민병대"가 있다 보니 평시나 전시나 중국의 군사력을 결코, 결코 경시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성계가 처음부터 사불가론을 들고 나온 것도, 자신이 십 수 년 전에 고려 영토 안에서 직접 상대해 본 홍건적 병력이란 게, 그 질을 떠나 양적인 측면에서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는 상대란 점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무서운 점은 군부 엘리트들에 의해 구체적인 상황이 시뮬레이션되며 그 와중에 새로운 전략(예를 들어 p98의 양배추 전략)이 항상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략은 전략일 뿐이며 구체적으로 전쟁이 터졌을 때 얼마나 효용을 발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프로이센의 맹장 몰트케가 말했듯이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으나 막상 전쟁이 터지고 보면 그 계획이란..."인 법이며 어떤 오류 어떤 맹점이 숨어 있었는지는 그저 미지의 베일에 싸여 있을 뿐이죠. 슐리펜 계획 역시 1차 대전이 막상 터지자 그저 탁상공론으로 전락했습니다. 

지금이 과연 전쟁인지 평시인지 애매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며 어느새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치밀함, 이 역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안슐루스, 주데텐 합병 등을 연이어 관철시킬 때 쓰던 책략이었습니다. 프랑스는 당시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패전국 독일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우월한 위치였으나 국론이 사분오열되고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에 눈 멀어 정신나간 정쟁을 벌이는 통에, 전쟁 개시 후 불과 6주 만에 패망했습니다. 20세기에 국가적으로 큰 망신을 당했다고 여기며 주변국, 특히 한국을 언젠가는 손 봐 줘야 한다고 절치부심하는 중국이 과연 앞으로 미국의 (사실상) 경제 봉쇄 조치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제대로된 한국인이라면 그저 "궁금한"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도네시아어 말하기 첫걸음 1 - 왕초보 탈출 프로젝트 인도네시아어 말하기 첫걸음 1
하영지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도네시아는 현재 투자이민을 고려하는 부유층들이 한국에 꽤 많을 만큼 그 장래가 기대되는 나라입니다. 현지에 진출한다면, 물론 국제어인 영어를 쓸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의사 소통은 가능하게끔 인도네시아어를 어느 정도 배워 둘 필요는 있겠습니다.  

언어는 일단 짧은 몇 마디라도 입밖으로 꺼내 구사를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 교재에는 다른 시원스쿨 어학 교재들처럼 딸려오는 음원 파일들이 있습니다. 다운로드는 포털 사이트 등에서 시원스쿨 인도네시아어를 검색해서 찾아간 후 학습자료실을 클릭하면 하영지쌤 첫걸음 1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압축파일 용량은 90Mb 정도이며, 압축을 해제하고 나면 140Mb 정도 됩니다. 책에 QR코드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어는, 현지에 가 보거나 공부를 해 본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발음이 알아듣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음원을 들어봐도, 이게 인도네시아어 현지 사람들만의 독특한 개성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영어나 프랑스어는 발음기호를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네이티브들만의 독특한 구강구조나 발성버릇 등을 고대로 흉내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반면 인도네시아어는 지금 무슨 모음, 자음을 발음하는지, 그 뜻은 몰라도 적어도 소리만큼은 또렷하게 들립니다. 베트남어나 태국어하고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베트남어는 표기 문자가 알파벳과 닮았으나 각각의 대응 음가는 직관에 반하는 것들이 많습니다(물론 공부를 통해 익히면 되지만). 인도네시아어는 귀로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들리고, 글자를 봐도 대강 어떻게 읽는지 감이 잡힙니다. 그러니 일단 입문 단계에서 외국인이 배우기 참 편한 언어인 듯합니다. 

mp3 음원은 트랙별로 하나하나 분리되었고 페이지에 따라 나뉘므로 공부하는 부분만 골라서 듣기에 편합니다. p12~p13에는 단모음, 단자음, 반모음, 이중모음, 이중자음 등이 설명되는데 역시 한국인 입장에서 각각이 무슨 소리이겠는지 짐작이 아주 쉽습니다. e는 제 귀에는 "어"와 "으"의 중간처럼 들립니다. r은 rajin의 예에서 보듯 어두에서 ㄹ 같은 발음이며 hari처럼 어중(語中)에 와도 ㄹ 비슷한 발음입니다. 이 네이티브분(남성)이 l(엘)을 읽을 때 영어 화자와 별 차이가 없고, r도 엘 비슷하게 읽긴 하는데 l과는 달리 trilling, 아주 약하게 떨리는 듯한 발음이 들리는 게 특이합니다. 아무튼 음성 장벽이 덜하니 문법 학습과 단어 암기에 주력만 하면 되는 게 편하겠습니다. w와 y가 반모음으로 쓰이는 것도 영어, 독어 등과 비슷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어느 정도 친숙한 표기라서 더욱 좋죠. 

말하기를 빨리 실전용으로 익히게 하기 위해 이 책은 필수 패턴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p116을 보면 Selamat siang, apa kabar? 라는 문장을, 한국어 발음과 함께 제시합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바로 오른쪽 페이지를 보면 "안녕하세요. 잘 지내요?"라고 나오네요. 이는 점심 인사라고 합니다. apa라는 단어는 책 앞에 나왔었는데(p105), 뜻은 "무엇"이라고 했었습니다. kabar도 p113에서 가르쳤었죠(뜻은 "안부"). 

간단한 생활인도네시아어 회화에 자주 나와서 일반인들도 아는 말 중 kemudian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어로 치면 so, and라든가 then 같은 말입니다. 이 단어는 구어체, 문어체 모두에 쓰이지만, 이 단어와 비슷한 뜻인 dan은 구어체에만 쓰입니다(p130). 이런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 줘야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대화 중 어색한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줄어 듭니다. 

전반적으로 책 편집이 깔끔합니다. 또 특정 시험 대비 교재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초보자라도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시원스쿨에서 낸 다른 첫걸음 교재들처럼 정말 쉽게 가르치기 때문에 하루 분 진도 빼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 p8에 나오는 계획표대로 진행하는 게 쉬울 듯합니다. 

*시원스쿨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나서, 솔직하게, 또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팀장의 홍보전략과 리더십 - 인문학으로 승부하는
이상헌 지음 / 청년정신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큰 지지를 받는 방송인이자 유튜버, 언론인인 유용원씨의 이 책 추천사를 보면 "홍보 리더에게 전략과 리더십은 필수다. 전략의 원천은 인문학 소양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아직도 홍보가 기업 조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그저 거짓말 좀 보태어서 상대에게 푸시만 하면 전부인 줄 아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홍보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인데, 효과를 내기 위한 전략에 의거하는 게 당연하며, 홍보 리더에게 리더십이 없다면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합니다. 인문 소양이 결여된 전략은 그저 유효기간과 범위가 짧고 좁은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과 결합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p86). 저자는 기술이 사람에게 복무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기술의 중요성도 결코 평가절하될 수 없지만, 세상에는 그 쓸모를 찾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아직도 햇빛을 못 보고 특허목록에만 남은 빼어난 기술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런 기술들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불운한 아이들이겠습니다. 엔지니어가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까지 더 잘 이해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 충분히 인정과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과거 합격도 늦었고 가문의 배경도 충분치 못했습니다. 왜란을 맞아 그에게 충분한 보급이나 무력이 주어졌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최악의 여건으로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맞아 싸워야 했습니다. 저자는 나쁜 환경에다 핑계를 대고 누구 탓을 할 게 아니라, 이순신 장군처럼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놀라운 정신력과 마음가짐으로 성공과 승리의 기반을 구축하라고 독자들에게 조언합니다. 또 상황은 정적이지 않고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무엇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할 것인지 먼저 패러다임부터 정하라고도 충고합니다. 

한때 노키아는 이동통신계의 거인이었으나 지금은 예전의 위용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하며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못 읽었다, 둘째 전략 면에서 실패했다, 셋째 시스템이 관료화했다, 넷째 기업문화가 오만했다. 이 논의에서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고유의 유리한 점을 못 살리고 미국 측에 패배했는지를 분석합니다. 함포의 위력은 일본 해군이 우세했으나 제공권을 상실하자 아무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읽지 못한 패착입니다.  

홍보에서, 모르는 자원을 충동적으로 쓰는 게 가장 큰 실수라고 합니다. 책에서 드는 예는 소셜 미디어를 남용한다거나 반대로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는 것 등입니다. 이렇게 무모한 비용을 들이는 무계획적인 홍보는 설령 성공을 하더라도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리라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또 홍보맨은 상황의 변화에 맞게 유연한 대처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메시지와 피드백이 상호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홍보에 전략이 없으면 필패입니다. 그러나 전략만으로 밀어붙이는 홍보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일깨웁니다. "때로는 전략보다 덕이 필요하다." 공자의 <논어> 위령공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저자는 "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임을 상기합니다. 타인에게 공감할 줄도 알아야 하고, 선입견을 걷어내어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봐야 후광 효과, 뿔 효과 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일러 줍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글쓰기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저자는 워런 버핏의 비결을 인용하며 칼보다 펜이 강할 수 있음을 상기합니다. 첫째 단문을 쓰자. 둘째 전문용어를 자제하자. 셋째 진정성이 드러나는 서민적인 말투를 쓰자. 넷째 비유와 은유를 적절히 사용하자. 다섯째 생생한 동사, 가벼운 명령형 표현의 사용을 듭니다. 일생 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투자의 궁극을 실현한 그이기에 이 가르침이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