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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간직하고픈 시 - 개정판
윤동주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3년 6월
평점 :
청춘기에 그 뜨거운 가슴을 달래려 나 혼자 읊조리던 시 한 편은 꼭 있습니다. 때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입으로 되뇌면 멋있게 들려서 암송하던 시도 있습니다. 이 한 편만 조용히 노래하면 어느새 지구 반대편 센 강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 같은 시는 또 어떨까요. 이 작은 사화집(詞華集)에 담긴 시들은 사람의 마음에 가득 낀 먼지를 털어 주듯 머나먼 본향의 노스탤지어로 나를 흠뻑 적십니다. 40분의 시인들이 지은 70편의 시들이 모두 다섯 장(章)에 나뉘어 실렸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의 이 시는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낙담에 빠진 우리들의 마음을 토닥여 주는 듯합니다. 사기꾼이나 깡패가 나를 속이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나를 속인다라... 이 구절은 한국인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지만 그 오묘한 레토릭의 맛 때문에 들을 때마다 새롭고, 겸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죠. 이 푸시킨의 시는 후반부도 기막힌 아포리즘을 담았는데, 요약하면 누구나 현재가 힘들고 미래가 나아지려니 하는 희망으로 살지만 (그 희망은 대개는 이뤄지지 않고) 세월이 한참 지난 후 과거를 돌아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추억 보정으로 산다는 겁니다. 푸시킨은 19세기 지구 반대편 러시아 사람인데 어쩌면 이렇게 인생사의 핵심을 절묘하게 꿰뚫어보고 한 편의 시로 요약했을까요? 명시가 명시로 애송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백석 시인은 월북 행적 때문에 남쪽에서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었으나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해금되고 나자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그 주옥 같은 시 세계에 반하고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사상이나 경향성을 갖고 사람을 단죄하고, 예술 작품의 가치를 멋대로 재단하는 게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 짓인지, 특히 p62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면 알 수 있죠. 나와 나타샤와 오붓하게 동행하는 당나귀는 구태여 설명이 없더라도 온몸이 순백일 것만 같습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두운이 잘 맞고 연결 어미를 모두 "-고"로 척척 처리한 것이, 푹푹 나리는 눈 때문에라도 사실은 앞으로의 진로가 그리 시원시원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내 맘을 나보다 잘 아는 (나한테만) 착한 나타샤 덕분에 안 풀릴 일이 없을 듯합니다(아니 올 리 없다는 걸 보면, 아직 안 왔다는 뜻도 되지 않습니까?). 하얀 겨울밤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색기 가득한 나타샤와 함께 보내는(혹은, 그랬으면 하는) 낭만이 시 전체에서 그득그득 풍겨 나옵니다. 사실 당나귀는 그저 상상 속에만 있어도 무방한, 흐뭇한 겨울밤입니다. 비록 장마철이지만, 자, 우리들도 나타샤를 만나러 저 머나먼 선릉, 역삼으로 떠나...(다가는 큰일 날 수 있습니다^^:;)
역시 세계적인 19세기 시인이지만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가 좋아하시던 이가 독일 사람 하이네입니다. 하이네는 덴마크 동화 작가 안데르센보다 몇 살 많았는데 당시 프로이센이 덴마크를 침략해서 영토를 빼앗자 크게 상심한 그를 위로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가 실렸는데, 한 송이 꽃과도 같이 아름다운 그녀를 앞에 두고 시적 화자는 대체 왜, "서러워하는" 걸까요? 그녀를 내 것으로 못 만들어서? 아니면 이 절정의 아름다움도 곧 덧없이 시든다는 걸 알기에? 아마도 그 답이 후자라서 시인은 작품 후반부에서 "하나님이 너를 언제까지나 밝고 곱고 귀엽게 지켜 주시길" 기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얀 나타샤를 방 안에서 독점 탐닉하는 백석보다 훨씬 윤리적인 분 아니겠습니까 ㅋ (백석은 나타샤의 장래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는 이기적인 위인이죠)
푸시킨, 하이네보다는 훨씬 뒤에 활동했으나 역시 프랑스 시문학 마지막 전성기를 불태웠던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그 유명한 "시몽,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이 나오는 <낙엽>이 p68에 실렸습니다. 구르몽이 알고 보면 아르튀르 랭보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도 이상하게 (이 시 때문인지) 구르몽은 엄청 나이 많은 사람처럼으로만 느껴지고, 랭보는 요절을 해서인지 영원한 소년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번역을 한 번 거쳤는데도 이 시만큼은 원래의 멜랑콜리가 이렇게 그대로 전해지는지 참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네요,
제가 일일이 세어 보니, 소월의 시가 모두 네 편이 수록되어 1위입니다. 구르몽, 푸시킨, 하이네는 저 작품 말고는 없습니다. 정지용, 김영랑, 백석, 윤동주, 한용운, 릴케, 예이츠가 각각 3편, 도종환, 조지훈, 이상, 유치환, 박인환, 롱펠로, 문정희, 헤세가 2편, 다른 시인들은 각 1편씩입니다. 1편만 실렸다고 해서 꼭 그 비중을 적게 볼 수 없는 게, 위에서 예를 든 대로 그 한 편이 워낙 압도적인 완성도와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월의 시는 곡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읽기만 해도 한 편의 노래가 되는 마력이 있는데, 예를 들어 p46의 <못 잊어>를 보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같은 구절은 그 뜻도 구슬프거니와 어쩜 이렇게 운율이 척척 맞는지 과연 천재의 솜씨입니다.
세상과 그리 화합하며 살았다고는 할 수 없는 퍼시 셸리. 그의 작품 <사랑의 철학>에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은 없다/ 그대와 나 어찌 함께 하지 못하랴?(p122)" 같은 구절이 있는 게 몹시 흥미롭습니다. 그의 두 번째 부인 메리 고드윈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아주 어린 나이에 창작하기도 했죠. 사실 문학계에 끼친 이런저런 영향은 남편이 훨씬 심원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그저 사랑으로 충분하다"고 한 칼릴 지브란도 p88에 실렸고, 책 뒤표지에도 실린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p59에서 또 만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일단 모든 것을 살아 보는 것"이라 한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p41)는 우리 독자 모두의 인생을 향해서도 역시 유효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고 노래한 청마 유치환의 시도 발표된 지 반 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울림이 깊고 아름답네요.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야 잊었노라"(p142)고 한 소월의 노래에서처럼 시도 사랑도 먼 후일에서야 잊힐 시늉이라도 하는, 영원한 우리 마음의 빛과 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