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 덕의 정치, 사랑의 정치, 힘의 정치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1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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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인 이상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그 표를 심사숙고한 후 행사하는 건 일종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적 신념을 확고히 가졌다고 해도, 이를 정제된 형태로 다듬고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저자 홍성민 교수님은 정치학이 정신과학이라는 특질을 감안하여, 어떤 "관점"을 마련한 후 다른 개념들까지 순차적으로 공부해야만 어떤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p7을 보면 자연과학의 경우 "내"가 대상을 어떤 틀 없이 그대로 관측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학의 경우 패러다임을 일단 한 번 거쳐 대상을 보고 해석하고 전달하며 비평하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토머스 쿤은 자연과학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그 정도와 방법이 정신과학과 같을 수는 없으므로 일단은 논외입니다. 만약 이 관점(perspective)이 올바르게 자리하지 않은 채 정치적 소통을 시도하면, 자칭 자유주의자가 전체주의적 주장을 (비록 부분적으로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강변하거나 반대로 사민주의자라는 사람이 공리주의적 주장(p7)을 앞뒤 안 맞게 내세우는 볼썽사나운, 차라리 코믹한 광경을 목도하게도 됩니다. 혼자 있으면 상관 없는데, 정치적으로 적대하는 진영이나 개인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자신이 속한 진영에까지 피해를 끼칩니다) 평소에 공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홍알정 기획이 독자들에게 시도하려는 방향성이 이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뉩니다. 첫째 덕의 정치, 둘째 사랑의 정치, 셋째 힘의 정치입니다. 덕의 정치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사람이 우리 동아시아인들에게는 공자일 텐데, 책에서는 p75 이하에 나옵니다. 이 파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정신과학 분야에서도 이분이 고전의 기초를 놓았으며 사실 고교 과정에서도 이분의 정치사상을 개략적으로나마 다룹니다. 우리가 기억을 못 할 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분야 그의 대표 저작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습관을 통해 인간은 정의로워질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p25). 본성에 의해 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본성이 덕을 애써 밀어 내어 방해하는 것도 아님을 주장한 그의 입장은 어찌보면 성선설, 성악설 모두를 지양(止揚)한 실용적인 관점이라서 흥미롭습니다. 중용을 강조한 그는 정치적 지혜, 실천적 지혜의 두 구별되는 존재 앙식을 논했는데, 같은 페이지 각주에 나온 홍성민 교수님의 평소 지론, 즉 정치인도 자격고사를 치르고 정치를 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교하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귀결이 그렇지만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본 정치의 궁극 목적도 결국은 행복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관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의 반대편에 서는 이들이라든가, 혹은 그의 입장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이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쪽 입장은 칸트, 마르크스가 나오는데 사실 이 두 사람도 (시대는 다르지만) 자기들끼리는 엄청 대립하죠. 특히 p54 이하에서 칸트적 인간관을 놓고, 공동체주의로 파악되는 아리스토텔레스 관점과 대립시키는 저자의 설명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롤즈의 입장을 칸트주의의 계승으로 보는 대목도 최곱니다. 찬성은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마이클 샌들 두 사람이 설명됩니다. 

사랑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정치학을 전개한 이들로는 레비나스, 리쾨르, 니버, 묵자 등이 소개됩니다. 이 철학자(정치학자)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던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사랑의 정치"라는 관점의 범주에 묶여서 통합적으로 설명되는 걸 보면 또 뭔가 크게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돌봄은 개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가 떠맡아야 할 정책 대상이다(p96)." 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문화의 영역으로 돌봄의 행정을 편입해야 한다는 게 배려의 책임윤리이며 이것이 레비나스 철학의 한 핵심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기 책임 하에서만 살 수 없는데, 은혜의 축, 공감능력, 사회제도의 세 가지 핵심으로 체계를 전개하는 게 폴 리쾨르입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꽤나 다른 두 철학자의 사상을 이렇게 하나의 틀에서 조감하니 또 색다른 느낌이네요.  

국제정치학에서 "힘의 정치"는 레알폴리틱스에서 모든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역시 마키아벨리가 첫째로 꼽힐 만한데 그가 자신의 주군 체사레 보르자를 과연 잘 보필했는지는 의문이지만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불멸로 남기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어떤 개념이 설령 저술자 본인에 의해 아무리 잘 정의되었다고 해도 독자에게 항상 모든 맥락에서 명확히 이해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홍성민 교수님은 p145 이하에 <군주론>의 모든 페이지에서 '비르투(virtu)"들을 추출하여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나중에 <군주론>을 따로 정독할 기회가 생겨도 이 대목이 요긴하게 쓰일 듯합니다. 국가이성에서 종교 색채를 완전히 뽑아낸 게 그의 큰 공로 중 하나라고 합니다(p172).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소명의식을 강조합니다(p166). 그가 카리스마를 강조한 논변을 보면 "힘의 정치"란 개념이 그의 사상 체계에서 갖는 위치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세심한 구분을 보면 그의 지향이 어디를 향하는지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마이네케는 마키아벨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면서 정치가의 비르투를 1차, 시민의 덕성을 2차로 봅니다(p173). 1차 대전의 발발은 국가이성의 왜곡에 있다고 보며(p174) 그 책임을 마키아벨리-헤겔-트라이치케 계보가 독일 제국주의를 낳았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이네케는 E H 카의 <역사란...>에도 자주 거론되는 이름이죠. 그람시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에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중첩시켰다고 요약합니다(p182). 한비자의 분석으로는, 본래 강(姜)씨의 나라였던 제(齊)를 권신 전상이 가로챈 건 그가 민심을 얻어서인데, 홍성민 교수는 이를 두고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홍알정 시리즈는 거의 17부에 걸쳐 이어질 전망인데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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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수학 좀 대신 해 줬으면! - SF 작가의 수학 생각
고호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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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은 대체로 수학이며 아마도 수학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문이과가 갈리는 게 보통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어려운 수학만 누가 좀 대신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며, 사실은 이미, 예전에 사람이 하던 분야를 컴퓨터가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핵심 분야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겠으며, 만약 이게 현실이 된다면 인간의 지능, 지성, 창의성에 대해서는 아마 재정의가 이뤄져야 할 듯합니다. 

책 p52에 나오듯 나폴레옹은 수학을 매우 잘했다고 하며 나폴레옹의 병과가 원래 포병이었습니다. 정확한 포탄 발사를 위해서는 삼각함수, 다차방정식 등에 소양이 깊어야 했겠으며 이런 자질이 부족했더라면 나폴레옹은 이름 없는 군 장교로 혁명의 혼란 와중에 스러졌을 것입니다. 날아가는 돌이 계속 날아가는 이유에 대해 오늘날 우리들은 정확한 고전 물리의 설명을 배워서 알지만 예전 사람들은 매질의 힘, 임페투스 등 다양한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이것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잘못된 설명들은 아닙니다. 지금 이뤄지는 설명이 체계적으로 더 완전하다는 것뿐이며, 설명이 비교적 완전해진 건 책에 나오듯이 갈릴레오나 뉴턴 등에 이르러서입니다. 

p55의 선형계획법은 지금도 고1 정도의 수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아이들은 아마 그게 선형계획법이란 이름인 줄 모르겠지만). 3년 전쯤에 심아진 작가님 소설(책좋사에서 당첨)을 읽었는데 그 소설 중에도 이 기법이 잠시 나와서 제가 리뷰 속( https://m.blog.naver.com/gloria045/222138741234 )에 언급한 적 있었습니다. 1947년까지 무려 군사기밀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들한테 교실에서 알려 주질 못해 안달이라니 아이러니입니다. 모든 걸 시뮬레이션해서 전쟁을 대비하는 상황을 작가께서 말씀하시는데 일단 그 이전에 주식시장에 적용해서 모든 종목의 최적가를 알아내고 부자가 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단계까지 만약 갈 수 있다면 그 역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력, 상상력이 더 먼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듯합니다. 

p70에 폰 노이만이 무한급수 푸는 법이 나오는데 독자인 저도 이 이야기를 참고서 같은 데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것 같은 게, 폰 노이만은 그저 계산 실력만 뛰어났던 게 아니라 사물을 직관하는 능력도 보통 사람을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두 대가 만나는 시간만 구하면 된다는 생각도 아마 폰 노이만이 훨씬 빨리 해 낼 것입니다. 사실 무한급수로 푼다 해도 이미 공식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일반인도 몇 초 안 걸려 해결합니다. 우리가 수학의 천재들에게 빚 진 바가 그만큼 큽니다.   

정말로 수학을 잘할 사람도 어렸을 때의 사소한 좌절 때문에 재능을 꽃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질책보다는 격려를 해 줘야 하는데, p77에서 저자는 세상 뛰어난 천재도 사소한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북돋우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공연한 자책이나 자기비하보다는 마음을 긍정으로 채우는 습관을 통해 숨은 잠재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수학의 중명이란, 논리로써 완전히 이뤄져야지, 컴퓨터를 통해 일일이 계산하여 어떤 결과를 보인다면 그런 것도 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논의가 분분하지만 그 역시도 증명은 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결과를 통해 어떤 다른 암시, 가르침을 받기가 옹색하다는 것, 덜 통쾌하다(?)는 것 정도이지요. 책 p104에는 켈러 추측, 특히 7차원일 경우 해결하는 (모서리가 완전히 겹쳐야만 하는지 여부 판정) 과정이 나오는데 이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이들 교재에 자주 나오는 4색 정리 문제도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옵니다. 확실히 작가님이 같은 테마라도 일반인 눈높이에 맞게 호기심을 북돋우며 설명을 더 잘해 주시는 듯합니다.  

p132를 보면 사람이 만든 난수보다 컴퓨터가 만든 난수가 "진짜"이므로 창의성도 컴퓨터가 뛰어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이슈가 나오는데 저는 그렇게는 생각지 않습니다. 난수의 경우는 그 복잡성에 가치가 달려 있으므로, 계산 과정을 통해 복잡성을 다양하게 만드는 컴퓨터가 (계산 능력에서) 유리한 것이지, 그게 창의성으로 자동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그런 걸 손으로 해냈으면 그건 창의력의 징표가 맞겠습니다만. 

아이들이 게임 하는 걸 무작정 나무랄 게 아니라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처럼, 같은 개념도 게임을 통해 배우게 하면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우며 그 결과가 더 창의적인 게 나올지 모릅니다. 저자는 (p138) 어렸을 때 게임을 만들면서 좌표 개념을 익혔는데 사실 이 좌표(coordinate)라는 게 수학뿐 아니라 물리, 지구과학 등 얼마나 넓은 분야에 핵심적인 길잡이로 쓰이는지 모릅니다. 뭐가 중요하다 아니다는 본인이 시행 착오를 통해 직접 익혀 봐야 그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려서건 태중에서건 무조건 음악을 듣게 해서 정서 함양에도 도움을 주고 지능 발달도 꾀해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고전 명곡은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가라앉히고 정신의 조화로운 파장 형성을 분명히 돕습니다. 안 겪어 본 사람은 절대 모르죠. p226을 보면 여러 연구 결과가 나오는데 이런 것만 봐도 무슨무슨 연구라는 걸 무조건 맹신할 게 절대 아닙니다.   

사실 인간도 언어가 다르면 처음에 소통이 안 되지만, 대신 수학의 용어로 진리를 공유하며 친해질 수 있습니다. 강희제도 아담 샬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우고 그렇게나 좋아했다는데 그 머리 좋은 사람이 지성의 신세계를 발견하고 느낀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저자는 외계의 지성과 소통하는 언어도 아마 수학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미래의 우주 개척을 위해서라도(?) 어린 세대에게 올바른 수학을 잘 가르쳐야 할 듯합니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당장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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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 인간창조편 - 딸아 한자 공부는 필요해. 아들아 너도 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김꼴 지음, 김끌 그림 / 꿰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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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한자 공부는 필요해. 아들아, 너도." 약간은 코믹하게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은 그러나 의외로 묵직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한자를 정확히 알아야,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그 무수히 많은 한자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문맥에 맞게 쓸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한자에는 세상이 작동하는 이면의 심오한 원리가 깃들었으며, 이 이치를 깊이 탐구하고 숙고하는 사람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여타의 우중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생각 깊고 현명하며 바른 행동이 몸이 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한자 학습은 꼭 필요합니다. 

이 책은 한자의 제자(制字) 원리를 다루는 가운데 창조 신화, 혹은 인간 사회의 발달사를 알기 쉽게, 일러스트를 결들여 가르칩니다. 한자에 평소부터 관심을 많이 갖고 공부해 온 사람이라고 해도 갑골문으로부터 비롯한 글자들의 정확한 형성 원리를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 이 글자가 아런 과정으로 만들어졌으며, 연관되는 다른 글자에는 이런 것들이 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배움의 새로운 경지에 접어드는 이들이 많을 듯합니다.  

매(每. every)라는 글자에는 특이하게도 어머니 모(母)라는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책에서는 갑골문 분석을 통해 머리를 올린 여인이라고 그 기원을 잡습니다. "성인식을 끝낸 여인은 언제나, 매일,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몸조심을 하는 모습"이라는 해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繁(번)이라는 글자에도 자세히 살펴 보면 每가 들어 있는데, 머리에 가체를 덧붙이니 그게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悔(회) 역시 그 아쉬운 마음(후회)이 늘, 언제나 깃드니 그런 모습의 글자가 되었으며, 심지어 侮(모)도 모욕을 준 사람이 언제나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치가 그렇다 하니 읽으면서 수긍하게 되네요. 

季(계)는 원래 볍씨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禾(벼 화)와 子(아들 자)가 합쳐졌으니 그게 볍씨가 맞는데, 이게 계절이란 뜻으로 전이된 건 볍씨가 각 네 계절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뿌림, 기름, 거둠, 보관) 그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흥미로운 건, 왜 "막내, 끝"이란 뜻을 이 글자가 갖게 되었냐인데, 봄의 끝무렵에 볍씨를 직파하던 고대의 풍습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 이치는 누가 연구하여 밝힌 걸까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目(눈 목)이라는 글자도 온갖 다른 글자들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옥을 문지르면 빛이 나타난다고 해서 나타날 현(現)인데 이 글자에도 目이 들어 있습니다. 觀(볼 관)도 황새 관(雚)에다가 볼 견(見)이 붙은 건데, 책에서는 큰 눈(口+口)과 艹(눈썹), 그리고 隹(새 추)가 합쳐진 글자가 雚라고 설명해 줍니다. 일종의 상형자라는 건데, 이 글자를 초등학교 이래 여러 번 쓰고 외웠지만 그런 뜻이 담긴 줄은 몰랐습니다.  

글자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그 숨은 연관성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腋(겨드랑이 액), 夜(밤 야)는 모두 亦(또 역)에 뿌리를 둔 형제 글자라고 합니다(p147). 亦은 큰 대(大)의 겨드랑이 사이에 털을 그려 사람의 겨드랑이라는 뜻을 표시했다고 하는데, 그러니 진짜 겨드랑이 액(腋)이 모두 亦에서 유래했을 수밖에 없었겠네요. 이 글자를 바탕 삼아 다양한 다른 글자들에까지 응용이 또 되는데, 구멍이 겨드랑이 사이에 뚫리니 시원해서 爽(시원할 상)이 나왔다고 하네요.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  

낳을 산(産)에는 이미 낳을 생(生)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런 모양이 되었는가. 무엇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낳음[生]만으로는 안 되며, 두드러진 노력이 더해져야[产] 가능하다는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한자의 이치는 공부하면 할수록 신비롭고 오묘합니다. 

상황이 급박하면 평소대로의 절차를 따박따박 밟아서는 일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편법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사기열전 등에 나오는 전국시대 사공자 중 한 명인 위(魏)나라의 무기(無忌) 신릉군(信陵君)은 빼어난 지혜와 덕성으로 인망이 높았습니다. 진(秦)이 조(趙)를 침공하자 신릉군은 위왕의 병부(兵符)를 훔쳐 군대를 빼내어 조나라를 구하는데, 조와 위를 모두 이롭게 한 현명한 행동이었으나 참람되게 왕의 군 통수권을 행사했으니 눈밖에 나게 되었고 결국 실의에 빠져 죽습니다. 절부구조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야기와 함께 익히는 한자 공부는 기억에도 오래 남을 뿐 아니라 선현(先賢)들의 지혜까지 함께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합니다. 어려서부터 한자를 이치적으로 배운 아이는 아마 자라서 공동체와 환경까지도 더불어 보살필 수 있는 정의로운 시민이 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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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러시, 해외 진출이 답이다
염호석 지음 / 라온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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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살기에는 한국이 가장 좋은 나라라는 말도 있고, 타당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의견을 크게 달리하기도 합니다. 답은 그 중간의 어디쯤에 놓일 듯한데, 저자 염호석 전무님의 생각은 아마도 "한국 역시 무척 좋은 나라지만, 개인의 성취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번 정도 시선을 국외에 둘 필요도 있다."인 듯합니다. 무작정 해외로 나간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님은 당연하며, 성공은커녕 가진 돈마저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상 외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큰 돈은 못 벌어도 진정한 자신의 적성을 찾거나 현지에서 완전한 자기 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만약 저분이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평범 이하의 자영업이나 영위하다가 몇 번 폐업하고 낙담에 찬 세월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싶은 경우도 꽤 됩니다. 이 넓은 세상에, 사람이 비로소 자기 위치라는 걸 찾아 행복을 누리는 과정은,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이 지켜보기에도 무척 흐뭇합니다. 물론 체면 때문에 쉬이 귀국은 차마 못 하고 낭인 생활에 길들여지는 실패자의 케이스도 있습니다.  

대기업의 해외주재원 생활은 한편으로 무척 큰 사회적 인정도 받고 적잖은 보수가 따르지만, 아무래도 천리타향 이국에의 적응이 힘든 면도 많습니다. 멕시코시티에 발령 받았을 때 저자께서는 일단 일상에서의 호흡이 어려우셨다고 합니다. 해당 도시가 워낙 고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당연히 그랬을 만합니다. 또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지만) 치안이 무척 불안하다는 사실도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자제분들도 나이가  어렸을 때인데 부모로서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겠습니까. 

그런데 확실히, 세상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게... 아무래도 치안이 좋지 않다 보니, 제공되는 사택도 규모와 편의성 면에서 훨씬 낫고, 입주 가정부(스페인어로 muchacha)도 저렴한 비용에 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입니다. 마인드셋 자체가 긍정으로 무장한 사람은 그 기운이 가족에게도 두루 퍼집니다. 두 따님에게도 멕시코는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시네요. 

비슷한 상황에 처하고 유사한 지위에 있는 사람끼리의 교유, 소통, 정보 공유라는 게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무척 중요합니다. 저자는 일단 뉴커머스클럽에 가입했다고 회고하는데 책에 잘 나와 있듯이 new commerce가 아니라 new comers' 입니다. 영어는 잘하시지만 스페인어는 캄캄했던 터라 현지 적응을 위해서는 더욱 정보 공유가 필요했겠는데,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고 해도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이 멕시코 주재 당시 클럽 가입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기에, 이후 독일로 파견되었을 시에도 같은 방식으로 현지에 적응했다고 하시네요. 

또, 한국인이라면 아무래도 정부 차원에서 제공되는 편의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고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코트라나 중진공 등 준정부기관의 도움을 충분히 받고 이를 업무와 사업에 100% 연결시키라고 조언합니다. 또, 우리가 일본 소설 같은 걸 읽어 보면 나오지만, 의외로 (외국) 지자체 중 구청에 가 보면 생각밖으로 쏠쏠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으로서는 미처 생각 못 할 부분이긴 하기 때문에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네요. 

저자도 말씀하시지만 요즘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 위상이 많이 높아져서 현지(외국)의 인재들이 한국 기업을 알아서 찾아와 취업의 문을 두드린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사업을 출범하고 잘 키우려면 아무래도현지에서 직접 조달하는 인재가 무척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수한 인재가 두루 조달될 만하겠냐는 점이, 높은 우선순위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프랑스인들이 영어 실력이 비교적 떨어지며, 일부러 영어 질문에 프랑스어로 대답한다는 평판이 지난시절에 파다하긴 했습니다. 저자께서는 실제로, 또 아직도, 이런 경향이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말합니다. 반면 국경을 맞닿은 독일에서는 영어 실력들이 대개 뛰어나다고도 합니다. 프랑스인들과 사업상의 협상을 벌이기가 까다로운 편이지만, 대신 준비를 철저히 해 가면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이는 편이므로 너무 두려워할 일은 아니라고 하네요.  

마요르카 섬은 스페인의 유명한 휴양지인데도 부유한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걸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자분은 많은 독일인 사업가들, 또 네덜란드인들과 교유했는데 인생 설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치열한 입시 경쟁을 겪지 않고도 두 딸을 미국 명문대에 보냈고 지금은 우아한 은퇴 계획을 짜는 자신을 보며 그 성공 비결이 해외 진출에 있었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이 좁은 반도 안에서만 아웅다웅할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외국에도 적극 진출할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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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잼 쉬운 일본어 첫걸음 - 아주 쉽게 따라하는 일본어 표현의 모든 것 잼잼 쉬운 일본어
이원준 지음 / 반석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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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는 모두 8개의 파트, 그 밑에 56개의 세부 챕터로 나뉩니다. 일단 우리가 다양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 책 한 권에 잘 나뉘어서 정리되었다는 점이 든든합니다. 영어도 그렇지만, 일본어 역시 표현법이 다채롭게 발달한 언어이기 때문에, 웬만큼 해당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 이런 말도 있었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 표현을 쓰면 되겠구나 같은 생각이 교재 구석구석을 볼 때마다 들 수 있습니다. 교재 옆면에는 컬러 인덱스가 인쇄되어서, 상황에 따라 독자가 빠르고 편하게 찾아보게 배려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십니까?(p25)" 이 문장은 일본어로 こんにちわ、私のこと覚えてます。라고 나옵니다. 覚은 우리 한국식 한자로는 覺이라고 쓰겠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覚이라고 약자 비슷하게 쓰지만 엄밀히 말해 정자체는 아닙니다. 覚이나 私는 글자 위에 후리가나로 음이 달려 있어서 초보자의 학습을 돕습니다. 

"말씀 드리러 찾아 뵈어도 될까요?(p55)" 이것은 일본어로 お話ししに うかがってもいいですか。라고 쓴다고 합니다. 각 일본어 문장 밑에는 한글로 발음하는 법이 일일이 적혔습니다. いいですか의 경우 "이이데스까"라고 적지 않고, "이-데스까"라고 장음 부호로 처리합니다. 일본어도 우리말처럼 상대 존대 표현이 은근히 발달했으므로 공부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비즈니스라든가 일상, 혹은 학교에서 가장 많이 쓰일 법한 표현이 식사 관련입니다. "이 가게에서 초밥이라도 먹읍시다(p61)."는 일본어로 この店で 寿司でも 食べましょう。라고 나옵니다. 寿司(수사. 즉 스시)는 우리 나라에서도 일식집 간판에 워낙 자주 노출되는 단어라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습니다. 단, 寿라는 글자는 일본에서만 쓰는 한자이며, 한국에서 스시(초밥)이라고 할 때 말고 저 글자를 쓰는 경우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식으로(그리고 정자체로는) 壽라고 쓰겠습니다.  

대화를 할 때 여러 안들 중 무엇이 맞냐고 확인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p67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とれが 正しいのですか。 입니다. 正에 대해, 후리가나로 ただ(타다)라고 음이 달렸습니다. しい 역시 "시이"가 아니라 "시-"라고 표시되었습니다. 한국인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한 표현, "さま"에 대해, 책에서는 친절하게 "さん"을 높여서 부르는, 존칭의 접미어라고 설명해 줍니다. 또, "~にする"는 ~으로 삼다, ~으로 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고 가르쳐 주네요. 이 설명이 나온 이유는, 앞 예문에 "니시마스까"가 나왔기 때문에 그 기본형을 짚어 주려는 의도이겠습니다. 

민감한 상황이긴 하지만, 불편함을 무릅쓰고 꺼내야 할 화제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p158에 나오는 부부싸움, 이혼 등의 주제가 그렇습니다. "이제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는  もう 妻を 愛していないんだ。라고 합니다. 소리내어 읽어 보면, 뭔가 살짝 슬퍼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같은 페이지 밑에 보면, 別れるって ことは つらいことだ。(헤어진다는 건 괴로운 일이야)라고 했나 봅니다. 여기서 は를 "하"가 아니라 "와"라고 읽는 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흡연자가 매우 큰 눈치를 받고 홀대받는 분위기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을까요? p193에 보면 "불 좀 빌려 주시겠어요?"라는 표현이, 일본어로 火を 貨していただけますか。라고 나오네요. ますか는 앞에서도 여러 번 나왔던 말입니다. "재떨이를 이리 가지고 오지 않겠어요?"라고 살짝 정중히 부탁하는 표현은 灰皿を こちらへ 取ってくれませんか。라고 합니다. 재떨이는 이제 한국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는데, 일본어로는 はいざら(하이자라)라고 하며, 한자로는 저렇게 灰皿(회명)이리고 쓰네요. 灰가 재이며, 皿이 그릇이므로 우리식으로도 뚯은 어느 정도 통합니다. 

웬만한 일상 속의 대화 표현은 이 책 안에 다 담겨 있으므로 여행 갈 때라든가 챙겨 가면 든든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짬짬이 익혀 두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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