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 세상이 멸망하고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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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의 멸망이라는 건 별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3년 전 우리는 코비드19 때문에 밖에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했고,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한데 모여 식사를 하거나 여흥을 즐기는 일에까지 제약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거리두기 기간 동안 어느 미국의 백만장자는 장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그는 백만장자였으므로 경제적 곤란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어딜 다니지 못하고 숨쉬는 일에도 매번 감염을 걱정해야 한다면 바로 이게 일종의 아포칼립스 아니겠습니까. 

<매드맥스> 같은 영화에서도 그랬고, 아포칼립스가 일단 닥치면 세상을 더 망치려 드는 자도 배짱 좋은 악당이며, 반대로 세상을 다시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 역시 비범하고 용기 있는 유형입니다. 과거 인류가 겪은 갖은 전쟁이나 혼란, 기근 등의 고초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모두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때 시련을 이겨내자고 상황을 주도하는 이들은 보통 영웅이라 불리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소심하고 두려움 많고 어느 구석을 봐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면 이건 확실히 기존 상식에 반합니다.   

"아이돌을 잘 모르는 30대는 처음 보는군요. 그런데 10대인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3D보다 2D가 더 좋습니다(p70)." 지우의 말입니다. 사실 독자인 저도 아이돌에 대해 잘 모르는데, 주위의 같은 또래들이 거의 모두 이 정보에 대해 빠삭하니 잘 모르는 제 자신이 비정상처럼 느껴지고 자괴감마저 듭니다. 이른바 "인싸"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대목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러나 "최강자"는 (이렇게) 소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척척 결정하지 못하는 바를 대신하여 잘 결정내린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남들 앞에 지도자랍시고 나서는 사람의 자질이 그저 "소심하지 않은 것" 정도라면 그 사회는 참 앞날이 걱정된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뻔뻔함이 그를 리더로 만들었을 것입니다(p89)." 하긴 중국에서도 이른바 후흑(厚黑)의 자질이 사회적 성공의 첫째 조건이었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가 가능한 자가 리더로 나서도 나서야지, 그저 속마음을 잘 숨기고 술수를 잘 피우며 뻔뻔스럽게 구는 게 고작이라면 아포칼립스 없이도 이미 그 사회에는 아포칼립스가 닥친 것 아닐까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진짜 무서운 재난이 무엇일지,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본질적 위험은 따로 있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금은 영화관(p129)뿐 아니라 어디라도 자유롭게 갈 수 있죠. 여성이라면 긴 생머리가 아무래도 로망이겠으며, 라푼젤처럼 긴 머리를 드리우고 싶어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이 대목에서 서윤은 하필 라푼젤을 이야기했을까요? 답은, 사실 라푼젤 역시 그 행동에 제약을 받던 처지라는 데 있습니다. 단톡방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우에게 마트나 백화점 가는 걸 말립니다(p167). 과연 이 세상에서 단톡방은 누가 돌아가게 하는지, 하찮은 편의라도 이제는 결코 당연한 게 되지 못할 듯하지만 말입니다(p12에서 정부의 배급 언급한 부분도 참조하십시오). 

"확실하진 않지만 이 세상에는 수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확실하다(p210)." 선동 말마따나 참 소심한 사람이 내린, 역설도 아니고 그 자체로 모순인 엉터리 진술입니다. "세상이 망했는데 oo인들.."이라며 체념할 게 아니라, 그래도 세상을 낫게 만드는 무엇이라도 해 봐야 사람된 도리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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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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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모든 저주는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축복입니다. 사람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세팅되었을 때 더이상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 저주가 걸렸다고 여길 때, 이를 탈피하거나 부당한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발버둥을 치기 마련입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악조건이 붕괴할 수도 있고, 그 노력의 부산물로 어떤 다른 탈출구가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폰타나 가문의 모든 둘째 딸들은, 일시적인 건 몰라도 영원한, 혹은 진정한 사랑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사실 세상에 어떤 특정인을 향해 내려지는 저주 같은 게 정말로 있다면 그 내용은 정말 살벌한 것입니다. 과연 뭐가 진정한 사랑인지 그 정의도 분명치 않은데, 내가 현재 만족스러운 사랑을 못한다고 해서 이를 모종의 저주 탓으로 돌린다면 한편으로 우습기도 하고 뭔가 귀여운 면마저 있습니다. "이게 다 내가 모 가문의 둘째 딸이라서 그래!" 하긴 뭐 다른 유니버스의 다른 둘째 딸들도 적어도 그 연애사만큼은 그리 순탄치가 않더라는 기억이 나긴 합니다.  

이탈리아는 풍광과 기후가 다채롭고, 도시국가들이 곳곳에서(남부 제외) 자신들만의 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에 반도가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지역 없이 고루 개성적으로 발전한 면이 분명 있었습니다. 시스템의 획일적인 억압을 비교적 덜 받고, 개개인이 자신의 이상대로 취향대로 자유롭게 살아온 전통이 뚜렷했습니다. 그러기에 중세부터 풍요롭고 활기찬 삶이 가능했고, 이탈리아 여행은 타 국가의 귀족 자제들에게 더 큰 성장을 위해 하나의 필수 의식, 절차처럼 치러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뭐 중근세의 사정이고, 지금 에밀리아, 루시아나 둘에겐 더 현실적인 문제가 던져졌기에 이탈리아 여행은 호사가 아니라 숙제입니다. 어느 가문에건 금기시되는 인물이 있고, 이 인물과 정면으로 맞닥뜨림으로써 두 처녀는 금기를 깨는 동시에 저주도 벗어나고(저주라는 게 진짜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을 옥죄는 정신적 사슬을 스스로 벗어던질 때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쩌면... "그 오래된 과제"까지도 같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죽은 아이에게 집착이 너무 심해서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었던 여인(p141)." 사실 포피 이모(짜증스럽고 사랑스럽고 미친 작은 노인. p177)뿐 아니라 주변에 보면 이런 엄마들이 꼭 있습니다. 자녀가 꼭 어떤 불행한 사고로 죽어야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는 품 안에 있을 때에나 자식이며, 다 성장하면 자기 뜻대로 배필을 찾아, 자기 먹을거리를 찾아 살게 떠나 보내야 합니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자식이 꼭 부모의 돈을 탐내고, 지원을 기대하고 추한 의존을 일삼습니다. 아내가 탄생시의 성을 떼내고 남편의 성을 쓰는 건 종속의 표시가 아니라, 다른 남자의 가문에 대한 새로운 지분권을 따내었다는 주주 자격 증명입니다.   

그린칠리 시트러스 보드카(p232). 세상엔 너무나 서로 모순되는 성분으로 배합된 음료, 혹은 주류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의 루시는 그리 기준이 까다롭지도 않습니다. 그 몇 기준 중 하나가 "여친과 있을 때 다른 여자에게 두길마보기를 하지 않는다" 정도인데, 아니, 이건 사람인 이상 너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엔 에밀리아가 오히려 아닌 듯 착한 듯 무난한 듯하면서도 까다롭고 눈높고 비위 맞추기 힘든 여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티를 안 내니 오히려 마음을 읽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나이 먹도록 싱글인 게 사실은 다 이유가 있... p285를 보면 가브가 "긴장할 필요 없다"며 에밀리아를 배려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것도 사실은 은근 짜증나는 면입니다. 얘는 자기가 긴장한다기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대신 긴장하게 만드는 타입이에요. 가브도 여기서 정말 그러고 있고 말입니다(본인은 모름). 

말만 저주지 사실은 자의식 강한 이탈리아인들의 자기 도취 대축제 같습니다만 뭐 사실 우리도 남 눈치만 안 보이면 은근 공감이 많이 되는 사연들입니다. p515를 보면 알베르토가 요하나의 이마에 입맞추며 "당신 덕분에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그녀(들)의 재주입니다. 남자들 역시 그냥 행복한 저주에 걸렸다 생각하고 여자들의 정신없는 게임에 장단을 맞춰줘야 제 신상이 편해지더라... 뭐 소설의 결론, 교훈(그런 게 있다면)은 이게 아닐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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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시의원 출마로 배운 세상 - 정치신인을 위한 선거운동 미리보기
장석호 지음 / 청년정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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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에서 정치란, 어떤 특수한 사람들의 전유물에 그치는 영역이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영화 <데이브>를 보면 어느 평범한 시민이 일상에서 부조리를 겪은 후 아예 직접 정치에 참여할 각오를 품었으며, 경력을 쌓아 마침내 부통령직에까지 오릅니다. 우리가 뽑는 지도자들이란, 알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이런 경우라야 하며, 이 책은 과연 시민의 대표가 어떤 사람이라야 하는지 모범적 예시 하나를 알려 주는 듯했습니다.   

최근에도 지방의원, 국회의원, 단체장 일부가 이 어려운 시기에 구태여 외유성으로 해외를 나간다거나, 골프를 친다거나 해서 지탄을 받고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p55에서 저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갖습니다. 대체 시민의 눈높이가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시민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갖는 기대치가 터무니없이 높기라도 하단 말입니까? 그저 건전한 상식 정도에만 부합하는 행동을 정치인들이 해 줘도 유권자들의 분노가 이 지경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선거, 혹은 정치 같은 걸 떠나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를 품는 것과, 사람들이 내 의사와 행동을 해석하는 건 서로 큰 차이가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도 책에 나오더군요. 예를 들면 누가 트럭 한 대를 빌려 준다고 제의했을 때, 저자분 입장에서는 아 이분 도움은 이미 확보한 것이구나 싶어 천천히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저자분이 절실히 필요할 때 요청하니 이미 취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난감했겠죠. 세상사가 다 이와 같아서, 기회가 있으면 일단 손을 뻗고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예인도 그렇고 정치인에게도 역시 무플보다는 악플이라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가 봅니다. p136에는 중요하고도 재미있는 말이 하나 나오는데, 정치인은 자신에 대한 소식을 부고(訃告)만 제외하고 무엇이든 빠르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정치인은 지역 조직 관리가 무척 중요한데, 꾸준히 지역에서 당선이 되어 온 정치인이라야 이 조직 관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단, 수도권에서는 이 조직이라는 것의 중요성이 예전보다는 덜하다는 말씀도 나오네요).   

언필칭 중립기관이라고 하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일관성 없는 선거관리도 현장에서 뛰는 청년 정치인에게는 불합리한 점이 많았나 봅니다. p151을 보면, 한국이 무슨 연방제 국가도 아닌데 왜 다른 지역 선거구에서는 되는 일이 이 지역에서는 불허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선관위가 헌법 기관으로 자리한지 반 세기가 넘었고 대통령직선제, 소선거구제, 지방의회선거가 실시된지도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규칙의 적용과 해석이 갈팡질팡이라는 게 개탄스럽기도 합니다. 

직접 정치의 일선에 뛰어들어보고 싶은 젊은 정치인들이 선거를 준비할 때 참고하면 좋을 책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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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가 - 노래로 알아보는 마음의 작동 방식
박진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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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프리마투르>를 보면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한 도시에 창궐한 전염병을 일거에 치유하는 스토리가 나옵니다. 비록 과장된 소설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그만큼 음악이 우리 정신의 조화로운 작동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힘들어진 마음을 달래는 데 대중음악이건 고전이건 반드시 곁에 두고 수시로 활용하며, 음악이 없는 삭막한 생활이란 이미 문명이 아닌 야만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기쁠 때에만 웃음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어이가 없을 때에도 이른바 헛웃음이라는 게  나오곤 하는데, 저자는 이런 상반된 두 반응(웃음과 울음)을 동종이형의 일종이라고 파악합니다. dimorphous는본래 같은 종(種)의 암컷과 수컷이 서로 다른 모양새를 띠는 걸 가리키는데, 금메달을 딴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 눈물을 흘리는 건 슬픔이 아니라 정반대로 벅찬 기쁨의 표현이라고 합니다(p49). 저자는 쉬운 말로 이를 "청개구리 감정"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설명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잔인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체는 어떤 특정한 (편안한) 감정에 마냥 지배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낳은 새끼가 귀엽지만,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표독스럽게 외부의 적과 어미는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양가 감정은 동시에 발현되는 수가 많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생체라는 게 항상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감정의 불균형한 발산, 흐름은 역시 생존에 저해될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 독자로서 특히 이 부분 설명이 너무 좋았고,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이 설명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감정이 어떤 구조를 지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음악을 이용해서 이를 달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조성모의 과거 히트곡이라든가, 영어의 eat you up 같은 표현을 예로 드는데 1980년대 일본 히트곡 <Eat you up>이라는 게 있었고 몇 년 전에 한국의 여성 희극인 다섯 명이 이걸 번안해서 대중에게 다시 알렸죠. 아무튼 별것 아니어 보이는 말의 표현, 무심결에 노출되는 내 감정 속에 그런 기제가 작동하는지는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몇 년 전부터 "결정장애"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사실 그까짓게 무슨 장애까지나 되나 싶어도 이게 은근 큰 스트레스입니다. 책 p31 이하를 보면 질문에는 폐쇄형이 있고 이분형이 있는데, 이분형은 얼핏 보아 대답하는 이에게 자율이 크게 보장된 듯하지만 사실은 폐쇄형의 일종일 뿐이라고 저자는 날카롭게 짚습니다. 이 주제를 꺼내게 된 건 걸그룹 트와이스의 히트곡 <Yes or yes> 때문인데, 사실 yes or no라고 해도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가 따르는 걸, 아예 선택지를 yes 한 가지로만 제시했으니 상대방에게는 무슨 선택의 여지라는 게 없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연애를 잘 이끌어나가는 데에도 질문하는 이의 스킬이, 상대방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구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109 이하에는 맥거크 효과라는 게 설명됩니다. 사람은 시각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와 청각 정보가 서로 모순될 때 시각을 우선시하거나 제3의 결론을 도출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이유는 기대치라는 게 때로 감각을 왜곡하기 때문인데, 저자는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에서 아무리 열심히 입 모양을 정확히 만들어도 결국 듣는 이가 제 멋대로 결론을 내는 게 다 이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을 하려면 귀에다 대고 조곤조곤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는 것인데 설명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Love hurts>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예전에 TV 시리즈 <스칼렛>(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편의 극화)에서 주제가로 쓰이기도 했는데(노래 발표 시점은 훨씬 오래됨), 말 그대로 사랑은 (본질적으로) 으픈 것이라는 점을 절절하게 노래합니다. 팬크세프 교수는, 인간이 예를 들어 살갗이 찢기는 물리적 고통과, 실연 등에서 유래한 심리적 고통을 잘 구별하지 못하며(관장 부위, 기제가 같음), 따라서 심리적 고통을 달래는 데에도 모르핀 등을 적용하는 게 효과를 본다고 발표했습니다(p125). "엄마 손은 약손" 역시 이 이론으로 설명됩니다. 

후...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조차 "이성은 정념의 노예(p223)"라고 했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대체 애정사의 다양한 고비에서 오는 이런저런 감정적 격동을 대체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사람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알고리즘에 의한 게 있고, 엄격한 절차에 따라 완벽한(합리적인)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대충 해 보다가 개중에 나은 걸 고르는 방법을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후자에 의한 게 (합리모형에 대비되는) 만족모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네가 종종 의지하는 감정 휴리스틱의 경우, 무엇인가에 결부된 좋은 느낌, 희망적인 인상 등이, 이런저런 접촉을 통해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결론입니다. 그 가장 좋은 매개체가 음악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책에는 매 챕터마다 QR코드 하나씩이 실려서 주제에 맞게 힐링되는 좋은 곡 하나씩이 권장됩니다.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예쁜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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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막히지 않는 웹소설 작법
천지혜 지음 / 콘텐츠랩오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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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은 요즘 많은 이들이 직업으로, 혹은 취미로 참여하곤 하는 창작 영역입니다. 하지만 관련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한다든가 해서 창작에 친밀감을 일찍부터 쌓았다거나, 처음부터 창의력이 뛰어난 경우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웹소설에 도전하라면 아무래도 선뜻 엄두가 나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고 "나라고 못할 것도 없었군." 같은 의욕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합니다. 창작 혹은 스토리텔링이란 모든 사람의 본능에 포함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p46을 보면 노블 코믹스의 콘텐츠 패키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인기 웹툰이 영화화하여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얻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이 웹툰이 원작 웹소설을 두기도 한다는군요. 웹툰의 경우 이른바 캐붕, 즉 캐릭터 붕괴가 일어날 때 독자들로부터 실망어린 반응이나 질타가 전달되기도 하는데, 원작 웹소설이 있었다면 캐붕을 방지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하네요. 저자께서 실제로 자신의 작품 <금혼령...>을 이렇게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적이 있기에 더 집중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p50을 보면 표룰 통해 14건의 사례가 제시되는데 이 중에는 <재혼 황후>처럼 저도 이미 읽은 작품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웹소설 같은 고도의 창작작업 말고도, 사실 모든 글쓰기는 그 서두를 잡는 일이 너무도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p90을 보면 웹소설을 쓸 때 생각이 정 나지 않으면 현실, 내가 지금 처한 현실에서 그 소재를 찾아 시작해 보라고 합니다. 웹소설의 소재 역시, 내 이야기에서 과감하게 찾아 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합니다.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면 그 자체가 이미 재능이라고도 합니다. 

"좋은 작품이란, 설득이나 정보 전달이 그 목적이 아니라, 소통하고 싶은 욕구의 결과물이며 대중과 잘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p122)" 그래서 남성향 독자, 여성향 독자의 욕망이 각각 다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합니다. 특히 여성향 독자의 경우 그저 꽁냥꽁냥 달콤한 로맨스만 그린다고 다가 아니며, 그들을 정말로 만족시키려면 로맨스가 그렇게 목적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고도 충고합니다. 

작가는 일단 자료 조사가 첫째입니다. p134를 보면 자료 조사에 관한 구체적 방법이 나옵니다. 웹소설은 대개 이북포맷, epub나 pdf 같은 형식으로 나오는데 이걸 읽으면서 스마트폰이나 리더기에다 밑줄을 칠 수는 없으니 종이책 버전을 사서 읽어 보는 것도 추천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입니다. 음... 요즘은 스마트폰 어플 중에도 형광펜 기능이 있는 게 있고, 리더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더 자유롭게 텍스트에 내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경우를 상정하신 듯합니다.   

작가님은 플롯을 두고 공공재(p172)라고까지 규정합니다. 지나치게 창의성에 대한 압박을 받지 말고 이미 잘 알려진 플롯을 자유롭게 갖다쓰며, 그 틀 안에서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역시 전체 플롯은 치밀하게 고안되어야 하는데, 로맨스도 메인 로맨스가 있고 그 밑에 서브로맨스가 촘촘하게 깔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p198~199). 우리가 별 생각없이 재미있게 읽고 넘어가는 웹소설, 그중에서도 로맨스 장르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지려면 이처럼 정교한 과정을 거친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창작 컨텐츠에서 캐릭터들은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깊이와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일관된 대사의 톤이 있어야 하며, 디테일이 충분히 담기고 창의력도 띠어야 합니다. 반전은 아예 비트별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과연 제가 여태 재미있게 읽었던 대중 소설들도 다 이런 원칙들을 따르고 있었음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우선 개인적으로 좋게 읽었던 과거 히트작에 하나하나 대입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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