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군주론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9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용준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잘 일깨우고, 험한 세상에서 어찌보면 지혜롭게 살아남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물론 연대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공동체 안에서, 마키아벨리식 책략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일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지탄 받고 단죄되어야 마땅합니다. 공자가 만약 천 수백 년 후의 마키아벨리가 쓴 이 책을 읽었다면 별 주저없이 그를 소인배로 낙인 찍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에도 법가, 종횡가 등이 이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주장을 이미 내놓은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그런 결론을 내게 한 중근세 이탈리아 반도 내 도시국가들의 사정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 자료일 뿐 아니라, 아직도 국제관계에는 도덕률과 신사도가 통용된다고 보기 어렵기에, 이 책은 아직도 무시 못 할 묵직한 울림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또 책 뒤표지에 나와 있듯, 수백 년 후 헤겔 같은 이도 "대단히 위대하고 고결한 심정을 갖춘, 참으로 정치적인 두뇌의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고 진실로 가득 찬 착상"이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습니다. 고결한 도덕적 이상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세상이 속임수와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이상 그 본질이라도 철저히 규명해 보자는 그의 이지적인 노력과 총명한 본성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p56에 보면 "군주의 혈통이 갑자기 말살되면 군주제의 전통에 익숙했던 이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새로운 지도자를 쉽사리 세우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도 모른다"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의 시대로부터 6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라고 하겠습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많은 나라들이 독재자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민주정치를 향유할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가들은 갑작스러운 민주주의의 시행에 적응 못 하고, 오히려 포퓰리즘 독재자를 맞아들여 퇴행하는 모습까지 드러냈으며 지금 이 시점까지 그 폐해가 이웃 나라들에까지 미치는 중입니다. 

p61을 보면 "무장한 선지자들은 정복에 성공했고, 무장하지 않은 선지자들은 파멸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영어 번역본들에서는 이 구절의 주어를 전통적으로 (un)armed prophet(s)라 옮기는데, 20세기의 저술가 아이작 도이처는 이 구절에 착안하여, 초기 소련 내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트로츠키를 두고 "무장하지 않은 에언자"라고 그 인생 후기를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대로 이 구절은 당대 민중주의 종교 지도자였던 사보나롤라를 주로 가리키는 의도였습니다. 

p80을 보면 "잔인함"에 대한 논급이 나옵니다. 찬탈자는 자신의 행위가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고, 누구에게 혜택을 주었는지(의도를 했든 아니었든 간에) 면밀히 살피고, 가해행위는 그 행위의 여파가 여러 날 지속되지 않게 단칼에 해치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확실히, 이방원 일파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도 그렇고, 이세민 역시 현무문의 변을 최단 시간 안에 마무리하고 충격을 받았을 민심을 위무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시대보다 앞서 발생했고 십중팔구 그는 이 동아시아의 정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겠지만 이 분석은 그 성공한 찬탈의 사례에 대해 잘 적용됩니다.    

p128을 보면 아마도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일 "사자와 여우" 비유가 나옵니다. 함정을 잘 피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멀리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군주는 백성에 대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는데 인간의 본성은 어차피 사악하므로 상대방 역시 약속을 어차피 어길 게 분명하며, 약속을 어길 때 둘러댈 핑계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개탄스러울 만큼 한심하고 비열한 진술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도 신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군주는 그 자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그 응보를 치렀다는 점 분명히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딴 식의 마인드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가 내내 분열되어 외세에 시달렸고 통일된 후에도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지리멸렬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저 매사를 운명에만 맡기려는 무책임한 군주는 국사가 잘 풀릴 리 없고, 반대로 운명을 제 힘으로 개척하려는 의욕에 충만한 군주는 역경이 닥쳐도 이를 극복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는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있죠. 영어로는 vicissitude라고 부르는 이런 인생사, 세상사의 국면은 사실 개인(군주라고 하더라도)의 힘으로 극복이 안 됩니다. 하지만 불요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가지고 매사에 임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결과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권말에는 <카스트라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가 실렸는데 일종의 평전입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꿀벌의 예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맹세컨대 난 자네를 죽이지 않았어(p86)." 하지만 문제가 전생과 후생에까지 이어진다면, 분명 나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자 내 영혼의 벡터가 책임질 일이라 해도 어찌 기억이 그에 미치겠습니까. 학장님 같은 석학이라 해도 이는 장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p156에서 그는 클로틸데가 바로 자신임을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습니까.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요즘은 문명 시민들의 안온한 삶이 내내 보호받는다는 어떤 낙관, 기대를 가지기 힘든 세상입니다. 아니, 프랑스만 해도 최근 몇 년 새 얼마나 잦은 테러를 겪었습니까. 그런데도 의연한 시민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고 평화로운 태도를 보입니다(p89). 너희 테러리스트들은 결코 너희들의 사악한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선량한 시민들은 일치단결하여 보여 줍니다. 정의로움, 혹은 인류 문명의 올바른 진전은 어떠한 방해 기도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작품에는 <므네모스>라고 해서 역사상의 중요 사건들이 챕터 사이사이마다 소개됩니다. 아, 이 소설처럼, 우리네 역사의 미래 귀결이 마치 책처럼 열람, 검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이 답답해진 마음이 후련해지겠습니까?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채로 우리 앞에 남아 있고, 심지어 과거 역시 막연한 기록 속에 파편적으로 남았을 뿐이라 우리는 추론의 영역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 와중에도 멜리사는 특유의 시크하고 냉소적인 기질(p160)을 과시하며 일행의 모험에 어떤 양념을 더합니다. 분단 도시, 분단 도시... 이곳은 키프로스의 니코시아이며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날카로운 이해가 대립하는 현장입니다. 

단장은 말합니다. "난 살뱅의 예언서가 큰 강점을 하나 가졌다고 생각하오.(p38)" 이 예언서는 가스파르의 것과 달리 2053년까지 다루기 때문이랍니다. 미래에의 예언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힘에 간혹은 의지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살뱅은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인류는 삼 보 전진한 후 반드시 이 보 후퇴합니다." 이 역시 인류사를 오래 천착한 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임에 틀림 없습니다. 삼 보 전진도 의미 있지만, 이 보 후퇴 역시 그 국면에 하필 던져진 이들에게는 너무도 아픈 법칙이 아니겠습니까.    

현대 범죄 수사에도 최면 기법은 일부 활용됩니다(증거능력 여부는 별개지만). p131에서 퇴행 최면 밑에 깔린 논리가 과학적이라는 확신은 자신에게 없다고 멜리사는 내뱉듯이 말합니다. 확신이 없어서 최면이 잘 안 되는 건지, (어떤 이유에서건) 최면이 안 되니까 확신이 안 간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윤리 규범이 독일 기사단보다는 성전 기사단에 가깝기 때문이야.(p144)" 클로틸데가 말합니다. 자신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선언하며 말입니다. 

후... 그리고 꿀벌.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문명의 존부와 꿀벌의 멸종 사이에 놓인 인과관계에 대해 말한 적 있습니다. p220 이하에서 오델리아는 청중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발표합니다. 여왕 꿀벌이 현재 ooo 상태에 놓였고, 어떻게 해서 이 작은 곤충 한 마리에 인류의 운명이 알렸는지 조곤조곤 설명하는 그녀의 태도에 우리 독자도 압도당하는 듯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 생략). 

생명의 존엄함은 우리 인간과 자연, 갖은 생명들이 인과 연에 얽혀 하나의 공동 운명체를 이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우리가 전생에 지은 업이 지금, 또는 내생에까지 질긴 연의 고리로 묶였다면? 세상사 심오한 이치 앞에 무지한 인간은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베르베르 특유의 선한 평화주의와 초월적 세계관이 재미나게 녹아든 소설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인이 특히 사랑하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 신작이라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신작은, 2년 전에 나왔던 그의 두 권짜리 장편 <기억>을 읽고 나서 읽는다면, 특히 사실상 주인공인 역사 교사 르네 등의 지난 행적하고 연결이 되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독자를 친절하게 배려하는 작가님이기 때문에, 이 신작에도 전작 요약이 필요한 만큼은 꼭 들어가므로 구태여 그 작품을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소르본 대학의 극우 학생들(p49)" 이 구절을 읽으니 몇 달 전 읽고 리뷰한 <베르베르 씨, 오늘은...>이  생각났습니다. 그 책에서 베르베르는 자신의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같은 또래 청년들이 격렬하게 시대의 모순을 고민했던 국면을 독자에게 묘사합니다. <기억>에서도 드러났지만 베르베르의 정치적 성향은 자유주의에 가까우며 좌우를 가라지 않고 독재자를 단호히 비판합니다. 

p47을 보면 르네와 오팔이 장래를 걱정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본래 재판에서 진다는 게 당사자에게는 물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이렇게 남기곤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도 여태 공동체에 기여도 하고 정신적으로 건전한 소속감도 갖던 귀족 같은 사람이라 해도, 아 이제 이 나라에선 더 이상 못 살겠다, 이민, 망명이라도 해야겠다며 분을 못 삭이는 태도가 자주 세팅되기도 하죠. 오팔과 르네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튼 적잖은 타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사실 베르베르의 소설 주인공들은 똑똑하긴 한데 약간 철이 없거나 현실 감각이 떨어집니다. 아마도 창조주인 베르베르부터가 그런 사람이라서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베르베르의 작품은, 자주는 아니라도 간혹 움베르트 에코 풍으로 진로를 틀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 1권 p80이하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르네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서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이 실제로 있는지 검색을 시도하는데, 살뱅 드 비엔이라는 저자(가상), 또 역사가 파트리크 코발스키(역시 가상의 인물)의 소장을 거쳐 이 도서가 실체와 사연을 갖추었음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르네는 결론내리기를 "이 책은 가짜(즉 위서)"라고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의 진자>에서 대놓고 가짜 책 하나를 만들어낸 젊은이들의 소동을 다룬 바 있습니다.    

p92에서 르네는 자신의 이름 유래를 설명합니다. 이 소설뿐 아니라 박식한 베르베르는 그의 작품 속에서 단어나 이름의 어원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1권 p202도 참조하세요. 티라미수 이야기를 합니다). 르네에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 레나투스 이야기가 나오고, 프랑스에서도 흔한 남성형 이름 알렉상드르(여기서는 학장님)의 어원에까지 화제가 옮아갑니다. 여기서 (제 생각에) 베르베르는 알렉상드르의 뜻을 통설과는 다소 다르게 푸는데, 이 설도 그럴듯하기 때문에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도 되었네요.     

이제 소설은 연세 지긋한 학장님과 젊은 여성 교사의 모험 이야기로 본격 발전합니다. 이런 흥미진진한 오락성이 또, <타나토노트> 이래 베르베르 소설만의 매력이고 개성입니다. 아쟁쿠르 전투는 셰익스피어 작품 <헨리 5세> 중에도 언급되는 중요 사건이며 프랑스 입장에서는 마치 조선이 정유재란을 겪은 듯 불쾌하고 불길한 타격을 받은 역사적 경험이겠습니다. 르네나 학장님 둘 다 프랑스인이니만치 이런 감성작인 베이스가 있겠음을 염두에 둘 필요도 우리 독자들에게 있겠네요.    

<기억>도 그렇고 <문명>에서도 베르베르는 전생이라는 모티브를 매우 흥미롭게 사용합니다. 이 신작에서는 퇴행 최면이라는 기법이, 무려 오르가슴까지 연결되는 과정(p165)이 재미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열심히 현생에 의미를 부여해 가며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들에게 "지금 이것은 중간단계에 불과하다"는 오팔의 말은, 르네뿐 아니라 우리 독자들에게까지 뭔가 깊은 허탈감을 느끼게 하네요. 에휴. 

학장님이 걱정을 멈추지 않고 표현하지만 당찬 멜리사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마이웨이 모드입니다. 장하기도 하고 무모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p267에 인티파다가 언급되는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꼬이고 꼬인 사연, 이어서 솔로몬 왕의 치세 중 레바논의 백양나무에 얽힌 그 사건이 교차 소개됩니다. 이 의도가 무엇이겠는지도 독자가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립토사피엔스와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 - 블록체인, 토큰경제와 탈중앙화의 길
박종백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4년 국내에도 비트코인 열풍이 불어 큰 돈을 한번에 벌었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화폐라는 건 원래 그것을 발행하는 주체에게 대중, 시장의 신뢰가 확고하게 부여되어야만 그것이 화폐로서 제 기능을 해 낼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지금까지는 한 나라 안에서라면 중앙정부, 세계적으로는 초강대국이 수행했었습니다. 

암호화한 어떤 디지털 부호, 총발행량이 합리적 수준에서 유지되고 규칙 위반자가 함부로 복제할 수 없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데이터가 이 화폐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이런 기대가 널리 퍼지는 바람에 몇몇 보유자들이 횡재를 했는데, 그 작동의 핵심은 블록체인 기술입니다. 저자 박종백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소속)는 이 암호화 기술에 기대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듯한 경제 구조의 개편 트렌드를 전망하며, 아울러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은 어떻게 진화할지를 치밀하게 서술합니다.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 혹은 기업이나 기관용 서버는 대체로 마이크로소프트社의 운영체제에 의해 움직입니다. 이 OS는 폐쇄형이며 개발자들을 위해 일부만 공개되어 외부 응용 프로그램의 탈부착을 돕는 정도입니다. 애플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도 기본적으로는 비공개입니다. 그러나 책 p30에도 잘 나와 있듯 블록체인은 오픈소프트웨어 시스템이며, 누가 그 관리와 개편 등을 독점적으로 (중앙에서) 관장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p33을 보면 포크(fork)라는 중요한 개념이 각주와 함께 언급되는데, 이런 중요한 변화조차도 유저들간의 합의에 의해 단행할 수 있을 정도이니(그러고도 화폐 시스템에 교란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이니) 탈중앙화가 어떤 함의까지를 지니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특정 자산의 위험을 다른 자산에 헤징(hedging)하는 방식도, 블록체인에 의하면 더 간편하고 기계적 실행이 더 잘 보장되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공학적으로 기발한 거래 형테가 개발되어도, 이를 거래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반드시 이행을 하게 만들 장치는 별도로 필요할 수 있는데, 블록체인은 이걸 가능하게 만듭니다. 책에서는 현재 신뢰도 높은 제3자가 개입하는 에스크로 방식보다 훨씬 개선된 절차로 쌍방 의무 이행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고 서술합니다.  

저자가 변호사이시다 보니, 부동산등기에도 이 블록체인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이 기법이 적용되면, 멸실등기라든가 경정등기 같은 절차는 혁신적으로 바뀌겠으며, 이전등기나 부기등기도 그 진정성이 한층 제고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부동산 등기의 엄정성과 전산화 정도는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마 공신의 원칙에도 근본적인 수정이 가해지겠지요(한국에는 적용이 없는 법원칙이긴 하나).   

디지털 혁명의 절정은 아마도 모든 자산의 토큰(token)화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산의 증권화야말로 자본주의의 꽃이라 여겼으나, 이는 위변조의 위험이 존재하고 인적 항변을 완전히 절단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미 비잔티움 장군의 문제에 대한 수학적 증명이 끝났기 때문에, 블록체인을 통한 자산의 토큰화는 별 기술적 문제가 없으리라 여겨지며 그야말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디지털 표식으로, 중복 발행이나 가짜의 출현 걱정 없이 원활한 거래라는 꿈 같은 상황이 머지않아 도래할 듯합니다. 위조블가능성에 대해서는 이 책 p97 이하의 논의를 참조하십시오. 

세계 대부분을 정복하다시피했던 원 제국이 무너진 건 군사적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교초의 남발로 인한 경제의 교란 때문이었습니다. 정부가 아무 원칙 없이 지폐를 마구 발행하면, 이는 악의적 반사회분자가 위폐를 배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가 투명한 절차와 준칙을 통해 달러화을 발행 유통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일 뿐 아니겠습니까. 책 p104 이하를 보면, 이제 화폐의 발행과 유통 분야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와 탈중앙화가 실현되는지 잘 설명됩니다. 이는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만 의지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화폐의 건전한 운용이 담보되는 것이라서 특히 주목됩니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스마트컨트랙트 솔루션을 개발하여 보급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 시스템이 시연되는 걸 봤었는데, 계약서 작성에서 대금 지급과 물품 인도까지의 과정이 기계적으로 정확히 이뤄지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p172 이하에서는 슬록잇 社의 상품이 예시로 소개되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변호사이시다 보니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예상하여 그 장점과 함께 설명해 주는 점이 좋았네요. 

앞에서 토큰을 설명할 때 벌써 떠올린 독자들이 많겠는데 최근 핫했던 게 NFT, 즉 non-fungible token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이재용 삼성회장과 그 모친 홍라희씨의 불교 사찰 방문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잘만 활용되면 도난이나 위조 등의 사고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본격 적용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여겨졌는지 현재는 가격이 많이 빠진 상태입니다. 책에서는 특히 SBT 등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STO는 security token offering의 약자입니다. 말이 offering으로 끝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기업으로 치면 IPO 비슷한 것이고, 코인의 ICO와도 닮았습니다. p218 이하에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 이슈 관련해서 여태까지 많은 IT 전문가분들이 쓴 책들을 읽었지만 뭔가 명쾌하질 않았는데, 이 분야 정통하신 변호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의문점들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듯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증권거래법, 자본시장법 하면 임재연 변호사님이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데 그분 책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살
이태제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무척 폭력적인 종이라고 합니다. 그전에 인류의 조상으로 지구에 흔적을 남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에 비해서도 난폭하고, 심지어 동족에 대해서까지 살상을 일삼거나 노예로 삼는 습성이란 다른 동물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도 하죠. 이런 폭력적 습성에 대해 하늘에서, 혹은 외계에서 어떤 천벌마냥 교정의 수단 같은 게 유입된다면? 하긴 우리 지구에는 본래 이 땅에서 유래하지 않은 물질이 많다고도 합니다. 언제, 이 소설에서처럼 그런 게 지상에 낙하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드레스덴이란 지명은 실제 독일에 소재한 공업도시이며 2차 대전 말 연합국측의 지독한 폭격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등장인물 드레스덴(p30, p91 등)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건 실제 역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보면 이 소설에서 그의 어떤 행보에 묘하게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 UN에서 기후 온난화에 대해 각별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요즘이고 보면, 이 소설에서 묘사한 해수면 상승(p43) 같은 대목에서 더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엄마, 온몸이 새파란 사람도 있어?(p10)"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답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 바다 한가운데 있는 감옥에다 가둔단다.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얼마 전 한국에서도 강력 범죄가 발생했고, 어떤 시민의 반응이 TV를 통해 전해졌는데 역시 상습범에 대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뇌, 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뇌입니다. 이스터도 파라에게 말하지 않습니까(p50).   

사방팔방에서 CCTV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물론 강력범죄를 막으려면 다른 도리가 없겠으나 그만큼 시민의 자유도 제한됩니다. "뭐야, 내 뇌 어디 있어?(p78)" 키클롭스가 불안하게 소리치자, 블라인드가 특유의 여유 있는 자세와 태도로 분위기를 통제합니다. 한편, 이 사태에서 중요한 몫을 떠맡은 한결은 좀 다른 시선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듯합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탈옥수들의 신원이 모두 밝혀졌습니다.(p106)" 

상황은 꼬이고 또 꼬입니다. 클로주어라는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었나 본데, p160에 설명이 나오듯 이것은 사람이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게 한결의 머리 속에 마련되어, 그저 한결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정 요원을 통제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기 짝이 없죠. 게다가 수색 영상이 조작되기까지... 정말 탈출구가 없는(no way out) 기막힌 판국입니다. 이제 드레스덴은 초월동아시아 연방 연구소의 잔해로 향합니다. 왜 2년 전에 이곳이 그리 되었겠습니까. 

폭탄의 처리도 간단치 않습니다. 모든 핀을 뽑아야 그게 터진다니!(p218) 이 소설은 고비를 넘으면 또하나의 고비가 기다리는, 끝도 없는 시쉬포스의 시련 같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 문명의 혜택을 받은 인류로서 공동으로 짊어져야 할 연대책임의 일종입니다. 이 난관을 극복해야, 아마도 이 행성의 새로운 미래 한 장이 바르게 열릴 듯합니다. 많은 희생이 있었고 인류 또한 아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교훈을 배웠으니 다시는 아포칼립스가 열리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