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평전 - 음악, 사랑, 자유에 바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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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려 7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평전입니다. 모차르트는 서양  고전음악 그 기본적인 틀을 완성하다시피한 사람이며, 그가 남긴 불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습니다. 핸드폰 벨소리에서부터 산모들을 위한 태교 음악에까지, 그의 작품에 담긴 명쾌하고 조화로우며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아름다운 구조는 그저 휘파람이나 콧노래로 흥얼거려도 신이 날 뿐 아니라 통속극에서 고전 정극에 이르기까지 어느 상황의 배경음악으로 써도 잘 어울립니다. 가히 마법의 멜로디라 부를 만하며, 이런 작품을 남긴 사람을 천재라 부르지 않는다면 과연 그 호칭에 값할 이가 누구일지 의문이 들어 마땅합니다. 

천재는 대개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특히 모차르트 같은 음악의 천재는 연주나 작곡 실력으로 타인을 즐겁게 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어린 볼프강은 잘츠부르크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p60을 보면 악단원들의 관심과 애정을 한몸에 모으며 성장했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의식이 일찍 형성되고, (헤겔이 지적한 대로) 어떤 군주의 기상 같은 게 있기에, 어린이들이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경향도 있죠. 이를 두고 책에서는 Königreich Rück, 진정한 왕국이라고 불렀다고 나옵니다. 아마 Rücken, 즉 등이나 등뼈라는 뜻이겠습니다. 책에서는 누나인 난네를, 엄마인 안나 마리아에 대해서도 짚고 갑니다. 모차르트의 팬들애게는 이런 포인트들이, 다른 책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는 사항을 알려 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각주에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에 대해 평가한 대목이 있어 흥미를 끕니다. 저자께서는 일단 이 평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두 작곡가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적 간격이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일단 지극히 타당한 말씀이라 생각하며 작가님의 견해에 찬성하고, 단 괴테는 아마 그 나름대로 자신의 진심을 말했을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서양 고전음악의 초석(형식미)을 다진 사람이니 자신의 감정을 음악에 담는 데에는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면 세월이 흘러 멘델스존의 시대에는 곡에 사람의 절절한 감정이 실리는 기교가 절정에 달했고 순전히 이 관점에서라면 모차르트의 솜씨가 마치 기술만 알고 인생사의 비의를 모르는 똘똘한 어린이의 현란한 유치한 과시행위로 읽힐 여지가 있죠.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뛰어난데, 다만 모차르트의 앞선 수고가 아니었다면 멘델스존의 어깨에 과부하가 실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역시 기교를 위한 기교에는 찬성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우리들도 그저 장식음만 가득한 그시절 음악은 피곤해져서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가수나 작곡가나 "너 이거 할 수 있어?"라는 듯 현란한 기교만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만 그렇게만 일관하면 대중이 외면하죠. 나폴리 왕 페르디난도 4세 영명축일에서 타 작곡가의 작품에 대해 모차르트가 내뱉은 코멘트도 그런 취지입니다. 비평가들에게 그토록 악의 어린 질시를 받았던 모차르트가,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이 평전의 재미입니다. 

우리는 보통 간과하지만 누나 난네를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었으며 다만 여자였기에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한받았을 뿐입니다. 이때(1774년. 볼프강은 18세) 그녀의 나이 24세 절정의 젊음을 과시할 때였다고 책에 나오며 동시에 그 부친 레오폴트도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평전은 이처럼 연대순으로 자세히 천재 가족의 행적을 짚으며 독자들은 모차르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보다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엄마인 안나 마리아는 아들의 매니저 노릇을 하기엔 여러 모로 부족했었으며 이래서 부친 레오폴드의 엄격하고 치밀한 성격이 더 돋보이기도 합니다. 음악적으로나 경영 능력에서나 탁월한 점이 많은 인물이었고 베토벤의 부친 같은 사람은 이분을 어설피 따라한 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1780년이면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국 같으면 정조대왕의 재위 기간이었습니다. 이때 24세였던 모차르트는 징슈필 <차이데>를 작곡하는데 나중에 K.344로 정리되는 그 작품이죠. 징슈필이 뭔지 모를 독자를 위해 책에서는 친절히 역주를 달아 설명도 해 줍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이 작품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고 저자는 이 작에 대해 모차르트 가족 전체를 은유했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또 이 대목에서 우리는 K.384 <후궁 탈출>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었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황가 요제프 2세 앞에서 클레멘티와의 피아노 대결이 벌어진 건 1년 후인 1781년이었습니다. 아마 밀로스 포먼의 영화(1984)나 피터 셰퍼의 원작 뮤지컬에 나오는 살리에리와의 대결은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이었겠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실제 모차르트는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하는데 영화에서는 상대가 즉석에서 지어낸 어떤 곡을 역시 즉석에서 개량하여 터키 행진곡을 만들어내는 걸로 묘사되어 살리에리에게 절망감을 선사하죠. 물론 픽션입니다. 

또 여기서 황제는 겉으로 무승부를 선언하나 모차르트가 기술과 취향 모두를 갖추었다며 음악가 폰 디터스도르프와 함께 모차르트의 우월함을 인정합니다. 이 역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못 알아 보고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만 했다던 영화에서의 황제와 큰 차이가 나죠. 황제는 어려서부터 폭 넓은 교양을 섭취하고 자라나므로 모차르트 같은 천재를 바로 못 알아봤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또 "왜 훌륭한 가문의 처자와 결혼하지 않는가?"라 묻는 황제에게 모차르트가 바로 "저는 제가 정직하게 사랑하는 여인을 부양할 만큼 충분히 벌고 있습니다."라고 대번에 응수한 일화는, 천재 작곡가의 인격이라든가 빈틈없는 자부심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그저 모차르트의 열렬한 워너비로만 보통 인식되지만 이 책에서는 실제로 베토벤이 모차르트에 대해 어떤 평을 했는지 정확히 인용됩니다. 모차르트의 연주를 직접 듣고 "다소 구식"이라 코멘트했다고 나오는데, 고전음악이나 그 연주 방식은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784. 4.1 모차르트는 부르크테아터에서 콘서트를 여는데 기량으로나 인기로나 이때가 전성기였지 싶고 K.452에 대한 멋진 평가도 나옵니다. 독자인 저도 제일 좋아하는 곡입니다. 부친은 이무렵부터 계속 아프다가 1787년에 드디어 사거(死去)합니다. 

p566을 보면, K.550에 대해 슈만, 슈베르트 등 후배 음악가들이 어떻게 평했는지 잘 정리되었으며 또다른 모차르트 평전을 쓴 고바야시 히데오의 평가까지 망라됩니다. 또 이 대목뿐 아니라 책 곳곳에서 모차르트의 다양한 작품들에 대해 저자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평이 있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감상력의 증진을 촉진합니다. 1791년 아직 강대국의 위상을 유지하던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는 일단 평화를 유지했으나 정작 빈은 이때로부터 몇 년 후에 엉뚱한 데서 존립 자체에 위태로움을 겪게 되죠. 모차르트는 이무렵 다시 살리에리와 경쟁하나 이미 궁중 내 출세 경쟁에서 패배한 시점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p648을 보면 프란츠 자버가 출생했다고 나오는데 아버지보다야 훨씬 못하지만 이분도 후세에 이름을 남긴 음악가입니다. 프리메이슨(세력)과 황제 간의 미묘한 관계도 이 책 후반부 곳곳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마술피리>도 이 관점에서라면 좀 다른 해석도 가능하며 저자는 매우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p671에 <마술피리>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분석도 독자에게 매우 유익한 읽을거리입니다. 

모차르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므로 독살설 등 여러 추측이 당대에나 근세에나 난무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점들까지도 촘촘히 커버했으며 독자는 작품이면 작품, 작곡가의 생애면 생애, 뭐 하나 소홀히할 데가 없을 만큼 풍성하게 모차르트의 세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평전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며 참고문헌소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내 저자님 솜씨라서 독자로서 더욱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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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이부치 -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최덕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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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인류사에 다시는 있어서 안 될 수치스러운 참극입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뚜이부치"는 중국어로 미안하다는 뜻인데 한자로 對不起(대불기)라고 쓰죠.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도 가해자가 그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피해자의 마음이 눈 녹듯이 풀어지기도 하는 게 인간사인데, 일본은 여전히 사과를 진지하게 하지 않고 있으며 난장대학살에 대해서는 역사적 실재를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만화 형식인데 전 작품이 흑백 톤이며 피 같은 걸 묘사할 때만 붉은색이 쓰입니다. 이 기법 채택의 깊은 의도에 대해서는 우리 독자들이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작가님은 1998년 처음으로 아이리스 장(현재는 고인이 되었습니다)의 책을 읽었고, 2005년에는 MBC의 다큐를 시청한 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권말에 보면 작가님이 참조한 많은 다른 책들이나 컨텐츠의 목록이 나옵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아즈마 시로 씨는 2006년에 타계하였으며 1912년생입니다. 1937년 그는 겨우 20대 중반의 청년 장교였습니다. 어느 나라이건 국가에서 무장을 시켜 주고 제도상의 폭력을 대신 행사할 권한이 부여된 군인에게는 명예라는 게 있습니다. 총과 칼을 들었다고 마음대로 사람을 살상하면 이는 전쟁범죄이며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자국군이라도 엄격히 처벌합니다. 일본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오래된 무인의 도리라는 게 있으며 어느 무사도 칼이라든가 그 소지한 무기를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즈마 시로 씨도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장교로서 군 복무를 했지만 비무장 민간인을 대거 학살하는 만행을, 군대 상층부(나아가 국가)의 명령에 의해 자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p102를 보면 이른바 위안소라는 곳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아즈마 소위는 당연히 국가에서 제공한 이런 시설에 정당한 절차를 거쳐(당시 기준) 자발적으로 참여한 여인이겠거니 생각했었으나 이 사람은 조선 출신이었으며 행색이나 분위기를 보아 강제로 끌려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중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이런 식으로 욕구를 풀 생각은 없었고 말이나 잠시 나누다가 나갈 생각이었던 아즈마 소위는 상황이 파악되자 대경실색합니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은 청년의 양심으로, 이런 처참한 비극에 동참하여 같이 전쟁 범죄를 저지른다는 게 과연 용납이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천황의 부대다. 힘 없는 민간인을 해치며 야만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건 군인이 아니라 도적이나 다름없어!(p59)" 아즈마 소대장이 부하들에게 절규합니다. 그러나 그가 도덕과 인륜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덴노 본인부터가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를 묵인, 방조하거나 사실상 지시했음을 알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p42를 보면 일본군의 포고령 일부가 나오는데 이처럼 그들은 눈 앞에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뻔뻔스럽게 항복 군인과 민간인을 국제법에 따라 보호하겠다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은 것입니다. 전쟁 포로는 일본군에 의해 (중국군이건 미군이건 영국군이건) 끔찍한 학대를 받았으며 이 사실은 국제 전범 재판정에서 샅샅이 드러났습니다. 

아즈마 시로 중위는 위안부를 통해 성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통행증을 얻어 마치 유럽의 쉰들러처럼, 혹은 남북 전쟁 당시의 리바이 코핀이나 해리엇 터브먼처럼 이 조선인 처녀를 탈출시킬 마음을 먹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인간의 양심은 작동하는 것입니다. 국제안전구역에 도달하기 위해 양쯔강을 건너는데 사람의 시신이 강 표면에 가득합니다.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의 결과입니다. 11장 "나무토막"에서 일본군은 병사들에게 누가 더 많은 중국인을 학살하는지 경쟁을 시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중국으로의 "두번째 방문"을 하게 되는 아즈마 노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몸부림치다가 코피를 기내에서 흘립니다. 일행 중 어느 노인이 여승무원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추태를 부리는 장면이 잠시 나오는데 짧은 삽화이긴 하나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여튼 우리가 아는 대로, 아즈마 노인은 50년만에 중국어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합니다. 그는 사실 사과를 할 필요도 없던, 극히 드문 양심적인 군인이었으나, 사과를 정작 해야 할 죄인들이 반성하지 않은 탓에 엉뚱한 사람이 일생을 두고 괴로워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 비극은 9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 추악한 공방이 이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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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잘 풀리는 인생
김새해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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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인생이든 어떤 고비라는 게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인생은 앞으로 계속 전진되어야만 합니다. 저자께서는 <장자(莊子)>의 가르침을 즐겨 배우시던 아버님께 어려서부터 알토란 같은 훈육을 받으셨으며, 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자양분은 삶에서 험난한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회고하십니다. 이래서 우리들은, 부모님께 한없는 채무감을 갖고 끝도 없는 효도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 잘나서 출세하고 돈 벌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 같아도,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이 없었다면 우리는 올바르게 성장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아예 물리적 생존조차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천주교에 대한 깊은 소양도 어머님께 전수받았다고 하십니다(p48). 

앞에서 잠시 언급하신 닉 부이치치의 이야기도 그렇고, 저자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벅찬 순간을 새삼 확인할 때 지체장애인, 절단장애인 분들(p52)의 사연을 함께 언급하십니다. 태어날 때 몸이 불편해져서 태어난 건 대체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불운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후천적 장애도 마찬가지인데, 당장 우리가 평안히 거리를 걷는 중 어느 음주운전자나 광인이 차를 몰고 돌진하여 나에게 중상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되는 건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라도 닥칠 수 있는 불행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시스템적 위험이 상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들애게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등산 사연은 참으로 감동적이라서, 저자님의 어떤 내적 공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네요. 

이 책 p86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작가님, 특히 젊은 작가님들은, 물론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관계자분들과 갤러리 앞에 나서실 때, 세련되었다는 인상을 주고 자신의 내면을 잘 어필할 수 있는 복장과 컨셉이 참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가장 고가였던 높이 1.6m의 대형작품까지 "완판"되었을 때 찾아온 성취감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들만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수 있다(p88)."는 데일 카네기의 명언도 이 책에서 작가님이 인용한 맥락 속에서 매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더군요. 

어떤 환경에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요리법 같은 걸 개발하더라는 게 독자인 제 개인적인 관찰의 결과입니다. 반면 불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배달 음식 같은 것에 소득을 낭비합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대체로는 영양이 균형잡힌 편인 식사가 저축에도 유리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p109를 보면 현지(독일) 음식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저자님의 사연이 나옵니다. 여기서 저자는 가능하면 한국음식을 끊으라는 다소 충격적인 조언을 하시는데, 왜 그렇겠습니까?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라 현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호감을 얻는 것도 중요하겠고요, 잘 팔지도 않는 한국 음식 찾아다니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 내가 애초에 거기에 왜 갔는지 목적을 과연 달성할 수가 있겠습니까? 현지 맛집 찾으러 호강하려고 외국까지 간 게 아닙니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p148)." 저자는 요셉 할아버지라는 분을 캐나다의 마돈나하우스에서 만났던 일을 떠올립니다. 이때 저자님은, 제가 이 독후감에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럴 때 자칫 마음이 딴데로 흐르면 어떤 나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의외로 약한 존재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요셉 할아버지는 저자님한테 길지 않은 말씀을 듣는데, 말이 아니라 눈빛과 행동으로 많은 것을 가르치는 분이었습니다. 사람은 생을 마감할 때 결정적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말도 있죠.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른 길을 갈 때, 나는 혹 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사람은 잘나갈 때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하니 말입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란 뜻을 지닌 뿌스띠니아에도 저자는 오래 머무셨다고 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나 혹은 특정 상황에 처해서도 그 다른 성원, 점유자 등과 좋은 관계,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책에는 저자께서 직접 체험하신 여러 경험으로부터 유익한 교훈이 많이 나오는데, 심지어 부모님 매장에서 간혹 맞닥뜨린 도둑들에게조차 따끔한 경고 정도로 끝낸다거나, 구걸하는 사람들도 돈 천원 쥐여 보낸다거나(오래 전 일이므로 물가 수준은 감안해야 하겠네요) 해서 가능하면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이 꼭지의  소제목은 "맨몸으로 세상과 만나자 생겨난 일들"입니다. 세상이라는 게 참, 어떤 보호막이나 타이틀이 벗겨진 채 바로 마주하는 게 수월한 곳이 절대 아닙니다. 젊은 나이부터 험한 일 궂은 말을 마다하지 않았고 과감하게 세상과 소통한 저자님의 책이라서 소중한 교훈을 많이 챙길 수 있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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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복서
추종남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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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중한 재능이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망칠 위기로 몰아넣는 건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의외로 역사나 문예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천재의 자기파괴적 패턴"이라 부르는데, 이런 천재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부여받은 재능에 따라 수행해야 할 그 숭고한 작업을 때로 무척 혐오하며, 다른 영역으로 도피하려 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요나의 행동도, 어쩌면 그런 관점에서 해석해 볼 여지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1960~70년대 슈퍼스타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일부 행적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 

팬이라면 스타의 소셜 미디어에 찾아가서 조회수 1,000 정도는 쉽게 늘려 줄 수도 있을까요? 음, 무례한 상대에게는 매너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태영의 말(p29)에 물론 수긍을 하지만, 폭력은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권숙의 태도도 유별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명인으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감내해야 할 사항들도 있고, 저 "팬"은 어쨌든 자신이 좋아서 저런 경박스런 언행을 하는 건데 말입니다. 다만 권숙에게는, 그 영상을 보고 나타낸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 링 위에서 겪고 보이고 했던 여러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걸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겠죠. 실제로 여성 복서들의 경우 아웃복싱 스타일을 잡는 게 얼굴을 맞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 권숙에게는 그 이상의 더 심각한 사연 때문이지만. 

"거만한 천재가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실제로는 소속사의 관리도 있고 미디어에서 저렇게 직설적이고 부정적인 헤드라인을 달지 않겠지만, 이권숙의 경우 워낙 대 언론 관계 설정을 엉망으로 해 왔을 테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무리도 아니겠습니다. "8살 때부터 내가 키운 권숙이는 약점이 없는 괴물이야.(p101)" 철용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권투 선수가 롱런을 하려면 맞지를 않아야 합니다. 타고난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전성기에는 거의 한 대도 안 맞고 선수 생활을 한 무하마드 알리는 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입니다.  

아무래도 딸이다 보니 철용은 권숙에 대해 때로는 과민반응을 보여 가며 보호하려는 태도로 나옵니다. 태영은 물론 직업인으로서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지만 아빠 눈에는 그 위험한 행동(의 전조)을, 제 이익을 위해 부추긴다며 태영을 아주 나쁘게 봅니다. 제대로 맞았으면 아마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갔겠으나 태영도 대비는 제대로 해 두었습니다(p154). 한편 권숙은 ㅋ 엉뚱하게도 태영에게 (오해 때문에) 화를 내는데, 부친한테는 멱살 잡히고 딸한테는 배빵... 에이전트도 참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앞 p114에서는 권숙에게 정타를 맞아 기절까지 합니다. 

"희원의 초라한 모습을 태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p170)."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정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쟤를 따라가면 쟤뿐 아니라 나도 같이 무너진다, 누구 하나는 자리를 지켜서 나중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이기적인 것만 같아도, 나중에 보면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럴 때 박 기자가 나타나 또 속을 긁는데... "참 수법이 안 변하시네요." "사람이 쉽게 변하면 어디 되겠습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 ㅋㅋㅋ 사실 박 기자는 나쁜 놈이죠(p61). 

권숙은 꼬박꼬박 태영에게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오빠라고는 절대 안 합니다(p116). 사실 태영도 나이가 있어서 누구한테 이자식저자식 소리나 듣고 멱살이나 잡힐 짬은 아닌데도 여기저기서 수모를 당하네요. 권숙은 그나마 개인종목이지만(물론 체육관 내 선후배 질서가 있긴 합니다) 야구는 단체 운동이라서 운동 외적인 게 사람 피곤하게 하죠. "재능 없는 운동 계속하기 싫어서 퇴부(退部)했어." 여기서 저 앞 p75, 이권숙 아니 이유리가 유치원 교사 그만두는 대목도 생각나더군요. "야 김희원이 뭐냐 김희원이. 김희원 선수라고 해야지." p209에서 태영이 언급하는 영화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이고 그 설명대로 미셸 파이퍼가 여성주역 겸 주제가까지 다 불렀습니다. 김희원에 대해서는 저 앞 p40를 참조하십시오. 

권숙은 최호중더러 "대표님은 왜 아저씨(김태영)한테 꼼짝못해요?"라고 묻습니다. 권숙은 아직 어려서 모르지만 사실 태영은 인간성도 진국이고 운동 보는 안목도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사실 호중은 선배라고 하면 일단 깍듯하게 굽니다. 때로는 비굴할 만큼... p313에서도 이철용에게 굽신거리는 걸 보고 권숙이 의아해하는데 그 와중에 애들이 와서 이모라고 하자 화를 냅니다. 태영한테는 막 부르더니 내로남불 쩐다고나 해야겠네요. 그래도 p67을 보면 에스토마타의 패배가 사실은 방심이 한몫 한 것이라고 파악하는 등, 필요한 자기객관화는 철저하게 합니다. 

길은 본인이 알아서 찾아야 진짜 자기 것이 된다는 태영의 말(p345)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권숙은 끝까지 태영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네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가정사나 그 외 사정 때문에 한때 좌절했던 여성 천재 복서가 다시 일어서는 얘기 자체가 재밌기도 하거니와 스포츠계 전반의 사정도 두루 짚고 인생사의 쓰디쓴 교훈도 전달하는 등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괜히 교보스토리 공모 최우수작이 아니네요. 곧 방송된다는 KBS 드라마도 기대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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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집 -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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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슬픔이란, 나라의 주인(과거 왕정 시대)인 임금과 그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나라님 하나만 의존하고 생업에 종사하던 수백만 백성, 생령들의 삶이 송두리째 곤두박질치는 날벼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망국의 경우 가장 극적으로 신분이 하락 강등하는 이들은 대개는 왕족, 왕실 사람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비극을 최전면에 내세우고 맥수지탄을 환유합니다. 이미 <덕혜옹주>로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권비영 작가님이, 다시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날들을 슬프게 이 신작 안에 형상화했습니다. 

이은은 영친왕으로 대중에 알려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며 순종(명성황후 소생)의 배다른 동생입니다. 그 모후는 상궁 출신 엄귀비이며 이분은 현 숙명여대의 창립자 격인 인물이기도 합니다(p313도 참조). 영왕의 곁에는 마사코 여사가 머무르며, 이분은 자신이 남편인 영왕에게 더 극진한 대접을 베푸는 게 자존을 더 굳건히 지키는 길이라며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현명한 생각을 하십니다. "영친왕 이은은 조선으로 돌아가라!" 남의 나라를 도적질하고도 아직 성에 차지 않은지 사저에까지 몰려와 폭도 짓거리를 벌이는 못된 왜놈들의 행태(p82) 보십시오. 나라 잃은 이들이 겪는 부당함과 서러움이 이와 같습니다. 

관동대진재를 구실로 미개한 왜놈들은 무고한 조선 사람들을 수없이 학살했습니다. 이은과 마사코 여사의 마음은 너무도 아팠으나 딱히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아직 어린 아들 이구(李玖)도 부모님의 괴로운 심경을 읽었는지 곁에서 쓸쓸하게 그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보냅니다. 상하이와 홍콩을 경유하여 멀리 베네치아로 향하는 호화 여객선 하코네마루에 승선한 그들의 심사는 한없이 착잡합니다. 어린 구(玖)는 고모인 덕혜옹주의 당부, 그리고 조선의 민족혼을 일깨우려 의거를 일으킨 여러 지사들의 행적을 조용히 떠올립니다. 

이등박문은 조선인들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이지만 한편으로 더 악랄한 노선과 정책을 내세우려 했던 정한론자들과 정치적으로 적대했던 노회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중근 의사의 업적이 조금이라도 퇴색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 자는 영친왕에게 겉으로 깎듯이 대했으나 그의 선의를 마냥 믿을 건 물론 아니었습니다. p136에는 이왕직 사무관이었던 고희경이 영친왕께 황태자의 본분을 결코 잊지 마시라는 충언을 올리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사람은 정미칠적, 경술국적인 고영희의 아들입니다.  

"이 일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p165)" 일본이 패망하면 망국 황실의 적통 승계인과 그 식솔들에게는 잘된 일 아닐까 생각할 수 있으나, 소설에 잘 나오듯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일제는 조선 황실에서 나라를 강탈했던 악행을 덮기 위해 구 황족에게 일정한 우대를 했고 이 덕에 그들은 딱히 어떤 생업에 종사할 필요 없이 호화로운 생활이 가능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일제가 망했으니 합방 상태도 해소되고 일본 황실 자체가 앞으로 운명이 어찌될지 모르는 판에 이은 일가가 보살핌을 받을 수는 전혀 없을 전망이었죠. 그렇다고 해방된 조국에서 왕실을 복벽시킨다는 보장도 전혀 없었고, 오히려 앞으로 어떤 적대적인 조치가 그들에게 내려질 지도 모를 판이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p200에는 구황실재산처리법이 통과되어 이은 가족들을 궁지에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영왕을 비난하고 적통이 의왕 이강에게 넘어가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강과 이은은 어머니가 서로 다르고 나이도 거의 부자지간처럼 차이가 납니다. 또 생전에 고종 황제는 명확한 의사로 후계자는 이은이라고 정한 바 있습니다. 아무튼 조국의 광복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불운과 불편의 물꼬가 열린 셈이 되었는데 소설 제목의 "잃어버린 집"은 일단은 이 뜻입니다. 

조선의 황태손이라는 고결한 신분인데도 그 의미를 알지도 못하는 줄리아(p221). 사실 저는 질척한 에로티시즘을 추구한 작가인 헨리 밀러를 좋아한다는 이구의 취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거기 동조라하는 줄리아도). 여튼 영왕의 건강은 날로 나빠지는데 여전히 마사코 여사는 그 품위를 지킵니다. 남편을 요셉이라 부르며 신의 가호를 청하는 이방자 여사. 소설 후반부는 며느리 율리아(이제는요)와 시모 마사코 여사 두 분의 의연하고 정의로운 삶에 대한 사연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품격은, 역경에 처해 봐야 그 진정한 가치를 발하기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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