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열림원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호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 사내의 사진을 세 차례 본 적 있다(p9)." 이제는 이 고전의 저 첫 문장도 모범적인 서두의 한 예로 꼽혀야 하지 싶습니다. 사진은 물론 그 사람의 정직한 모습을 담았지만, 근본적으로는 빛의 조작물입니다. 그렇기에 사진은 그 피사체에 대해 대체적인 진실을 말하지만, 어느 한 국면을 극단적으로 부풀려 결국은 치명적인 허위로 사람을 이끌기도 합니다. 사람을 세 차례 만나도 그 진면목을 알기 어려운데, 사진과의 수 차례 조우가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을 알려 줄 수 있을까요. 

"호리키는 얼굴색이 까무잡잡하고 단정하게 생겼는데, 미술학도치고는 드물게 깔끔한 양복 차림에다.. 머리에는 포마드를 발라 가르마를 타서 착 넘겼습니다.(p52)" 포마드 운운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장이며, 사실 이런저런 문학 작품에는 미술가라고 해도 의외로 (판에 박힌) 폐인 광인 캐릭터보다 대기업 사원 같은 깔끔한 형이 자주 등장합니다. 요조는 어찌 보면 날카롭게 상대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녀석은 분명 미술 솜씨도 신통치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참된 적성이 아니라 단지 열등감을 가리려는 위장막으로 전공이나 직업을 두르고 다니는 인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어떤 타고난 신분, 지위에 따라 주변에서 형성된 기대 같은 게 생기기도 합니다.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담을 받기도 하고, 많은 경우 이것은 책임감으로 승화됩니다. 이 기대를 충족 못 시키고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다... 인식이 이에 이르면 어떤 고귀한 종류의 정신을 지닌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세상에 사죄하고 자신을 처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p80에서 요조가 하는 말을 눈여겨 보십시오. 

잡지사에서 온 듯한, 키가 크고 마른 여자(p101)가 호리키에게 작품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 짧은 장면에서 요조는 방에 하나만 놓인 방석이라는 미묘한 세팅(우연한 상황일 뿐이지만), 넙치에게서 온 전보(요즘 같으면 실시간 문자메세지) 등이 겹쳐 기묘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독자인 저는 여태 다양한 번역본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이 장면이 호리키의 엉터리 같은 내면, 한심하게 꼬인 두 사람의 관계 등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멋진 씬 같습니다. 

어떤 여성은 대개 특수한 관계의 남성에게 새로이 활력을 주고 정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제대로된 남자라면 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합당한 사례를 하는 게 또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요조는 시즈코의 능숙한 솜씨에 오히려 역겨움(p107)을 느낍니다. 이게 (남한테 잘보여야 살아남는) 정부(情婦)의 특징일 뿐이다... 역시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요조의 사회 부적응은 부잣집 도련님 특유의 비현실적 몽상이나 도피성 심리에서 연유한 게 아니라, 오히려 꾸질꾸질 때 묻지 않은 안목에만 보이는, 비천한 타인들의 모순되고 타락한 약점을 향한 정확한 포착 능력 때문이라는 게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건방진 소리 하지 마. 나는 여태 너처럼 포박당하는 치욕은 겪어 본 적이 없어(p130)." 호리키의 역습입니다. 여태 요조만 그런 스탠스였던 게 아니라, 오히려 호리키가 교묘하게 요조를 적당히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하게, 요조 특유의 자기 파괴 기제가 또 작동합니다. 그래, 나 같은 건 호리키에게 저런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사람은 누구나 내로남불이며 자신과 똑같은 기준을 남에게 적용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공자 같은 인격자입니다. 자신이 가뜩이나 경멸하던 사람에게 역으로 경멸을 받으면 눈도 깜짝않는 게 보통 사람의 심리인데(반대로, 자신이 존경하던 이한테 그런 반응이 나오면 누구나 타격을 받죠), 요조는 반대입니다. "저런 녀석한테까지..." 답이 없는 고집이고 폐쇄성이지만 그게 또 요조만의 고결함입니다. 아무도 비난하거나 그를 교정할 수 없습니다.  

가독성이 좋고 역주가 많아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입니다. 박솔뫼 소설가의 추천사도 유익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A4 아트 포스터 컬렉션 (32장) 마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MARVEL 지음 / 아르누보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정말 멋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이 유서 깊은 마블의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만화로 그래픽 노블로 TV 시리즈로 영화로, 다양한 포맷을 통해 만난 경우인데... 사실 이 아트 포스터 컬렉션의 종이 케이스에 인쇄된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제가 어렸을 때 만난 그 모습과는 제법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어차피 지금의 스파이더맨은 코스춤, 체형(대체로는 마른 타입입니다만), 그 지나온 사연, 성격, 애정관계 등 모든 것이 초기와는 큰 변모를 겪었고 사실상 리부티드 상태입니다. 그러니 저런 변신에 대해 불안감이나 불만(?)을 가져 봐야 소용이 없고, 앞으로 잘해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여튼 이 포스터 컬렉션은 현재의 큰 변화를 치른 그 수퍼히어로 캐릭터에 대해 심적으로 어떤 스탠스이건 간에 아름답고 멋있고 감탄이 나옵니다. 누구라도 그 비슷한 느낌일 것입니다. 

스파이더맨은 영어로 쓸 때 spider와 맨 사이에 하이픈이 놓입니다. 이건 그 나름대로 탄생 과정에서의 이유가 있는데 슈퍼맨, 배트맨이나 아쿠아맨(이들은 DC 캐릭터), 아이언맨은 이렇게 쓰지 않습니다. across the universe는 하나의 관용구 같은 표현인데 영화 제목, 노래 가사 등에도 두루 쓰이며 스파이더맨 애니 3부작 중 올해 6월에 개봉한 제2편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Spider-verse는 물론 Spider-man과 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이 종이 케이스 안에는 모두 서른 두 장의 포스터가 들었습니다. 제가 받아본 박스에 첫 장으로 든 포스터(뉴 유니버스 애니의 가장 유명한 컷)에는 마일즈 모랄레스가 나오는데, 얘는 피터 파커가 죽은 후에 등장하는 흑인 주인공입니다. 마블에서 앞으로 마블 유니버스의 진로를 어떻게 잡을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터에서 마일즈는 다른 수십 명의 스파이더피플과 달리 거꾸로 매달려서 우리를 응시하는데, 뭐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여타의 스파이더피플이 마일스와 반대로 집단 물구나무 자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들은 다 각각의 멀티버스에서 주인공들입니다.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맨의 가장 유명한 씬은 2002년작 샘 레이미 감독, 토비 매과이어 주연 영화에서 엠제이(커스틴 더스트 扮)와 서로 반대 자세에서 키스를 나누던 장면이죠. 

두번째 포스터에서 주인공은 그웬 스테이시인데 원래는 피터 파커와 사귀었고 엠제이와 경쟁 관계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계관에서는 스파이더 그웬이 되어 (이 포스터에 나오듯) 스파이더 코스춤, 아니 수트를 입고 스파이더 우먼(마누엘 푸이그의 소설과는 무관)이 되어 초능력도 선보이고 맹활약을 한다는 소립니다. 연청록 스니커즈를 신고 핑크 수트를 입은 채 특유의 블론드 숏컷을 찰랑이는 그웬... 사실 존 와츠, 톰 홀랜드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에서 변이 거미에 물리는 사고가 아니라 수트에 의해 초능력이 부여될 때부터 이미 우리 독자들은 각오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일스 모랄레스는 피터 파커(오리지널)처럼 거미에 물려 초능력자가 되긴 합니다. 그웬도 그 독특한 단발 모양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리 되었고 말입니다. 

마블은 스파이더버스에 여러 새로운 캐릭터들을 넣었는데 위 포스터의 주인공은 스파이더맨 2099이며 이름 그대로 2099년에 활동하는 슈퍼히어로입니다. 인종적 배경도 소수 ethnicity로 설정되었는데, 부디 다양한 출신과 지향이 공존하는 이 세계가 다름을 혐오하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염원을 담은 듯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32장의 포스터가 더욱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던전 앤 드래곤 아트북
마이클 윗워 외 지음, 권은현 외 옮김 / 아르누보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던전앤드래곤은 적어도 한국에선 가장 널리 알려지고 플레이되는 RPG 게임이겠으며 던전이라는 말 자체가 이 게임 덕에 무슨 뜻인지 인지도가 생겼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온라인 게임 포맷 개발 훨씬 이전부터 오프라인(당연하지만)에서 여러 명이 참가하는 형태로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는데, <우주 전쟁>, <타임 머신> 등으로 유명한 H G 웰즈가 1910년에 게임 룰 북 한 권을 발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석 인형(안데르센의 <장난감 병정> 등도 이를 모티브로 삼았죠)으로 고작 구현하던 게 디오라마였던 것이 그 룰북을 통해 비로소 역동적인 게임이 가능해졌다는 게 지금 이 책에 나오는 서술입니다. 

이 대목을 서술하는 문단 제목이 "자그마한 전쟁 커다란 발상"인데 웰즈의 그 룰 북 이름이 <리틀 워즈>라서입니다. 웰즈 본인은 당시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었을지 모르지만 그 룰 북 발간이 나비효과처럼 보드게임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고, 중세 전쟁을 소재로 삼은 놀이 문화 자체에 새로운 영감을 주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던전앤드래곤이라는 뜻도 됩니다. 

p10에 인용된 배우 피터 쿠싱(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이 말한 대로, 일상과 직업에서 유래한 온갖 스트레스가 게임(종류 불문)을 하다 보면 눈 녹듯이 풀리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 피터 쿠싱은 초기 프랑켄슈타인 박사(괴물 말고)라든가 드라큘라 스토리에서 반 헬싱 박사 역을 맡았던 이지적 이미지의 영국 원로 배우였습니다. 

크래센트 앤 크로스(p13)라... 음, 게임을 실제 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십자군 전투가 또 게임 핵심 배경, 활동으로서 빠질 수가 없고 크레센트는 이슬람 측 상징인 초승달을 의미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한번 취미 활동에 몰입하다 보면 아주 정신을 못 차릴 지경까지 가던데, 보드게임류가 나오기 전에도 미니어처 제작, 복장이나 전투상 고증 등에 있어 이미 아주 이른 시기부터 그들은 큰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던전앤드래곤 게임(물론 컴퓨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의 연원이 전쟁의 무해한 놀이 재현이라는 그들의 오랜 전통에 이처럼 한 가닥을 대고 있었음도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재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모든 사업, 아이디어의 상품화라는 건 일종의 모험입니다. p81을 보면 1978년에 TSR社(현재는 다른 회사에 합병됨)에서 모험 모듈, 그의 확장인 기본 세트 등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 팔기 시작했다고 기록이 나옵니다. p80을 보면 당시의 광고 포스터가 나오는데 이 TSR社에서 게임, 잡지, 룰북 등을 모두 생산, 유통했음을 알 수 있네요. 

p99를 보면 당시 이 게임의 신드롬을 두고 "기이한 두뇌 게임", 심지어 "사이비 종교"라는 평가까지 나왔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 게임에 몰입하던 어떤 학생이 터널에서 실종된 사건 때문이었는데(당시 신문 기사 스크랩이 책에 나옵니다), 알고 보니 그저 개인 사정 때문의 도피였습니다. 여튼 게임은 이 해프닝 때문에 더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 

p235를 보면 1990년대 들어 더 이상은 기존의 룰북이나 상품 세트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데 그간 이용자가 엄청나게 불어나 전술도 새로 착상되고 스토리도 기하급수적으로 붙었기 때문입니다. 룰북도 기본 세트와 전문가 세트로 분리되었다고 하며, 아예 관련백과사전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선택 폭이 훨씬 넓어지면서 이제 진정한 RPG로 거듭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TSR社가 결국 다른 곳에 합병되었다고 했는데 아니 던전앤드래곤만 갖고도 백 년을 먹고살아야 마땅한데 왜 그렇게 되었을지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책 p279에 어느 정도 그 해명이 될 수 있는 사연이 나옵니다. 책에서는 개발자 측에 동정적인 톤으로 설명하지만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TSR이 너무 덕후들의 모임이었을 뿐 경영마인드가 부족했던 게 컸지 싶네요. 그당시 위저드오브더코스트가 경쟁사로서 유저들을 자사 게임에 더 성공적으로 끌어들였고 결국 던전앤드래곤까지 먹었습니다. 마치 지금 엔터사 하이브가 한때 감히 넘볼 수도 없었던 에스엠을 삼키듯이 말이죠. 

서평을 이렇게 쓰니 마치 이 책이 게임 연혁서 같아 보이지만 이 책읔 엄연히 아트븍이고, 룰북이고, 표지에 나오듯 아케이너(arcana)이며 백과사전입니다. 하긴 분량이 400쪽을 넘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막상 펼쳐 보니 텍스트마저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트북도 이런 아트북이 없을 만큼 그래픽의 향연이므로 디앤디 팬들은 망설임 없이 구매하셔도 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직업은 치과기공사 - 치과기공사가 말하는 치과 밖의 또 다른 세계
이푸름 지음 / 설렘(SEOLREM) / 202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인데 사회에서 그 존재, 비중을 잘 모르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 책 저자께서 갖고 계신 치과기공사가 그것인데, p16에 보면 그 분야가 상세히 나옵니다. 크라운, 포세린, 덴처, 교정의 네 분야입니다. 크라운은 구치, 포세린은 임플란트 관련, 덴처는 틀니, 교정은 유지 등 관련 장치 일체를 가리킵니다. 저자께서는 교정 분야 치과기공사라고 하시네요. 기술적 정확성, 심미안 등 여러 재능이 필요한 직업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절차탁마 주마가편이라 해서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신에게 어떤 질책, 자괴감을 심는 과정이 장인에게 주어진 듯도 합니다. 지금은 적절할 정도의 자기객관화만 있으면 충분하며, 오히려 의욕과 자존감이 꺾어질 정도가 되면 역효과가 날 뿐입니다. 저자께서 p19에서 표현하시는 대로, 매일매일 수련을 열심히 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놀이는 밸런스를 맞춰야 하며,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는 영어 속담처럼 사람의 일상과 그 결과물인 정신은 어떤 균형 상태가 이뤄져야만 합니다. 

p22에도 나오지만 저도 좀 이른 출근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이른 시간에 전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부지런하고 야무진 인상들입니다. 사람들에 덜 부대끼고(물론 피크타임 때의 힘겨루기, 몸싸움, 실랑이를 은근 즐기는 타입도 있습니다), 여유 있는 공간, 분위기에서 생각도 정리하면 그게 다 자신의 직장 생활에 이익이 되면 되었지 손해 날 건 하나도 없습니다. p31에도 나오지만 직장인이 정말로 발전이 이뤄지는 시간은 혼자 남았을 때부터입니다. 그 시간에, 남은 일을 해도 되고, 아니면 마음을 추스리며 흐트러진 감정을 조율해도 됩니다. 

모바일로 TV를 볼 수도 있고 각종의 팟캐스트, 유튜브 개인방송이 활성화된 요즘 라디오 방송은 설 자리가 없을 듯한데, 저자께서는 라디오를 "절대적 존재"라고까지 평가(p41)하며, 사실 의외로 요즘도 라디오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라디오도 전용 수신기로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앱, 피처폰 dmb, 컴퓨터라든가, 아예 미디어 포맷을 달리해서 유튜브 동시 송출로도 접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산울림 밴드의 리더였고 지금도 가수, 작곡가, 연기자로 활동 중이신 김창완씨의 방송(SBS FM)을 즐겨 들으신다고 하는데, 저자께서 가슴 깊이 간직한 메시지는(라디오 방송 중 들리는 다양한 사연을 통해), 내 주변 분들의 행운, 행복에 대해 공연히 질투 시기하는 마음을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직을 좋지 않게 여겼으나, 지금은 이직(적절한 이직이라면)을 자주 해야 몸값이 올라갈 뿐 아니라 경력 관리에도 유리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 번 밝혔듯이 영업일도 겸하는 분인데, 단정한 용모도 용모이지만 이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p59), 적극적인 태도, 분명하고 정중한 매너 등이 일을 잘 성사시키는 비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 뭐 잘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런 분에게는 아마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책이 참 술술 읽힙니다. 어떤 책을 읽으시고 글쓰기 실력을 키우셨는지가 궁금했는데, p73에 그 목록이 나옵니다. 다들 좋은 책입니다. p77을 보면 저자께서는 심지어 하루키의 책조차 비유가 많고 길이가 길다고 해서 싫어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슷한 문제를 가진 분들은 저 목록을 좀 참조하셨으면 좋겠네요. 

머리말에 보면, "아, 치과기공사! 돈 많이 버시겠네?"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p96을 보면 이 직업의 애로사항이 적나라하게 고백됩니다. 어떤 직업이든 간에 애환이 없는 직역은 없습니다. 교정기공소는 실제로 돈을 많이 벌며, 소장님의 "뚱뚱한 지갑(p98)"을 보고 진로를 크라운 아니라 교정으로 정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저자입니다. 그런 저자지만 남 입장도 바꾸어 서서 생각해 봐야 올바른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성숙한 견해를 표명하기도 합니다. p116을 보면 새로이 배출되는 신입생들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하는 일부 풍조에 대해 큰 우려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단골 강남 미용실 요금 인상(p127)을 보고 자신의 상황에도 이런 흐름이 적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을 드러내시는데, 누구나 자신이 애써 일한 만큼은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다 컨스피러시 옥성호의 빅퀘스천
옥성호 지음 / 파람북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이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을 배신했고 배신자의 더러운 이름은 2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지탄을 받으며 이어져옵니다. 역사상 가롯 유다 만큼 치욕스럽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널리 회자되는 이름도 다시 없을 듯합니다. 더군다나 유다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이며(애초에 주로 유다 지파 사람들의 후예가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신약 유다 서의 저자 타대우스도 있고, 구약(외경) 민족 영웅 유다 마카베이오스도 있으니 이 아이러니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저자 옥성호 대표께서는 고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2호선 서초역) 설립자분의 아드님입니다. 전작도 여러 권이 있는데 이번 이 책은 예수를 배신한 배덕 제자, 타락한 사도 유다에 대해 집중조명하고, 결국은 유다에 의해 감행된 엄청난 배신 역시 사전에 정해진 신의 거대한 계획의 일환이며, 어쩌면 유다는 십자가로 환유되는 엄청난 구원 사업에 있어 하나의 의도된 도구가 아니었던가 하는 게 그 골자로 읽힙니다. 

저자는 p48에서 도올 김용옥을 인용합니다. 그는 "지난 2000년 동안 자행한 만행을 지켜볼 때 기독교야말로 인류에게 재앙이었다."는 도올의 말에 찬성하며, 기독교가 살기 위해 그 희생양으로 지목하여 박해한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는 큰 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합니다. 어쩌면 가롯 유다야말로, 유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음모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p70에서 저자는 김기현 목사의 <가롯 유다 딜레마>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그는 우리가 현재의 형통함에 우쭐할 게 아무것도 없고, 언제라도 유다나 베드로처럼 예수를 팔아넘길 수 있다고 통렬히 자성합니다. 유다의 쉬운 길을 걷지 말고 착한 마리아처럼 순종하라는 말도 합니다. 제 뜻대로 큰길을 활보하며 침을 뱉고 날뛰는 건 쉬워도, 이유를 묻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좁디좁은 길을 걷는 건 어렵습니다. 

사실 말로만 성도를 자칭할 뿐, 이른바 믿는다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얼마나 자주, 대담하게, 뻔뻔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예수의 가르침을 배신합니까? 위선자의 눈물을 흘리며 예배당에서 아멘만 외친다고 헌금만 낸다고 그 더러운 행실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의 탈을 뒤집어쓴 죄인들이 악착같이 십자가 근처에 달려들어 예수의 손발에 못질을 하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게 현실 아닙니까? 이런 인간들은 유다를 넘어 아예 사탄의 자식새끼들이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예수가 십자가형이라는, 인간의 가냘픈 몸으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거쳐 인간, 이 죄많은 인간의 구원 사업을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탄은 그만큼이나 간사하고 교활합니다. 유다는 그때 절묘하게 끼어들어 예수의 십자가형을 돕습니다. 그는 만찬 자리에서 스승에게 죽음의 키스를 퍼붓고 새로운 믿음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 누구인지를 가리킵니다. 저자는 사탄이 이때 적잖게 당황했다고 보는데, 느닷없는 배신과 당국에의 밀고라는 상황 발생으로 예수는 정해진 행로에서 이제 이탈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p92에서 저자는 토머스 페인을 인용합니다. "유다와 본시오 빌라도는 성인으로 추대되어야 마땅한데, 기독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상식에 반한다." 물론 비꼬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하나의 역설을 지적합니다. 토머스 페인은 물론 책 각주에서도 알려 주듯이 민주주의의 기폭제가 되었던 그 명저를 쓴 바로 그 사상가입니다. 여튼 현재의 기독교와 상식 사이의 괴리가 있다는 게 저자의 소결론입니다. 

p146에서 저자는 복음사가 마태의 의도를 분석합니다. 마태는 유다의 동기가 돈 욕심이 아니었다는 쪽으로 암시한다고 추론하며, 저자는 이를 통해 유다의 동기가 다른 곳에 있었으며, "역사적 예수"의 논의처럼 이제는 "역사적 유다"도 재구성할 때가 되었다고 제언합니다. p180에서 저자는 복음사가 누가의 심중에까지 들어갑니다. 사실 누가는 시기적으로 더 후대의 인물이니 말입니다. 예수를 죽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유대인 군중의 모습이 모순적이며, 특히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유다가 성찬식에 참여했다는 게 이만저만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복음서의 융성과 승리를 위해, 과도하게 폄하, 왜곡된 유다를 이제 복권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독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네이버 북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