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들의 재개발·재건축 투자급소 50
김부현 지음 / 헤리티지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회가 배신을 때린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기회를 놓쳤고, (당시에는) 그것이 기회인지조차 몰랐던 것입니다(p43)." 우리 주변에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하고 비슷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하던 일 그만두고 떵떵거리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곧잘 돌곤 합니다. 물론 사람은 어느 정도 계산이 나오는 정직한 생업에 몰두해야 하며, 그것이 꾸준한 수입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바른 정신을 함양하는 데에도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불법 탈법이 아닌 이상, 내 삶의 수준을 높여 주는 투자 기회가 뻔히 내 앞을 지나가는 데도 두 눈 뜨고 놓친다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허황된 일확천금의 횡재만 노리라는 게 아니라, 영리하게 내 재산(여태 열심히 땀 흘려 일군)을 증식할 기회가 혹시 있다면 이를 놓치지 않고 제깍 거머쥐는 게 자본주의의 룰에도 부합하며, 그로부터 생긴 여유를 통해 생산적인 자기계발에도 재투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다른 안목 있는 이들이 똘똘한 재건축 재개발 물건을 잘 봐두었다가 좋은 시세를 만나 큰 이익을 봤다고 하면 일단 부러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며 나도 이런 투자나 한번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이 먹어지는 게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운이나 감, 촉 같은 것만으로 큰 돈이 벌리지는 않습니다. 손해를 보지 않고(=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어느새 남들보다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경지까지 가려면 대충 남들 흉내나 내는 식으로는 안 되며,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책에는 50개의 Q&A가 실렸습니다. 재건축 재개발에 대해 꼭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하도 많다 보니 얻어 듣는 것만 챙긴 그냥 동네 아줌마라고 해도 아는 게 꽤 많아지는 게 요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문외한과 전문가는 구조적인 지식, 종합적인 안목, 실수 없는 치밀함 등에서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장벽 같은 게 그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그런 아마추어들의 약점과 허술한 심리를 정확히 짚고, 사실은 당신이 이러이러한 점을 불안해하며 저러저러한 점을 잘못 알지 않냐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틀린 것을 바로잡고, 우리들이 미처 생각 못 한 바를 일깨워주는 포인트도 책 곳곳에 있습니다.     

"쪼개기가 유행이던데, 이런 상가를 사면 과연 아파트를 받을 수 있을까요?(p58)" 상가조합원의 지분으로부터는 (재건축 후) 상가 분양을 받는 게 원칙이며, 다만 책에 나온 대로 1) 아예 단지에 상가를 짓지 않게 되거나, 2) 혹 권리 차액이 발생할 경우 일정 요건이 충족된다면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산정비율이라는 게 상가 소유자들에게는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데, 1.0에서 0.1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처음에는 책에 오타가 났나 했습니다만 매경 기사까지 정확히 인용되었네요). 뭐 줄 걸 주더라도 일단 사업을 출범시키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된 거겠지요. 

대치동의 이른바 우선미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관련하여 언제나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물건들입니다. 책에서도 잘 설명되듯 이런 곳에서 사업이 지지부진한 건 당사자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인데, 호실 쪼개기는 그 성질이 공유지분 설정이지만 아예 별개 호실로까지 등록함으로써 소유권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하려는 의도가 있죠. 이런 건 사실 사적 자치의 영역이므로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서도 방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물론 권리에는 내재적 한계도 있고, 공공복리에 맞게 행사되어야 하며 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속창 뚜껑이라고 하는 무허가건축물(대지 지분이 없는)이 구역 내에 있을 경우 사업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책에서도 설명하지만 원칙적으로 이런 건물은 그 소유권을 보호할 필요가 없으나, 일정한 공익상의 이유로 인해, 특정 시점 이전에 지어진 무허가건물에 한해 분양자격을 부여합니다. 한국이 못살 때에는 재개발이니 뭐니 하는 상황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으므로 법규정이 마련되지 않았으나, 책에 나온 그 알정 시점 이후에는 새로운 사항을 규제하는 법이 발효되었으므로 그 후에 지어진 무허가건물에 대해서는 기대이익을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이들에게 검찰보다 무서운 게 국세청입니다.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복잡한 사실 관계를 잘 재구성(?)하면 어떻게 대항할 방법이 생길 수도 있지만, 국세청한테는 그게 안 통합니다. 한국처럼 경제 구조가 복잡하게 발전하고 변화무쌍한 나라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업이 생기고 그로부터 이익이 도출되는데, 소득세법이 기반한 소득원천설(통설)이 주장하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마치 (법인세법처럼) 순자산증가설을 따르는 게 보통입니다. 국세청은 마치 스스로 입법을 행하는 기관 같습니다. p182에 나오듯이 "갑자기" 이주지원비 대출에 대해서도 배당소득세를 내겠다고 나오는 게 국세청입니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현장의 조합과 조합원들이 어떤 지혜를 짜내는지가 책에 매우 흥미롭게 서술됩니다.   

다물권의 경우 참 피곤한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p239에서 설명된 대로, 2023년 2월 23일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 문제는 법적으로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셈입니다(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 이런저런 기사나 주장들은 이 책의 내용보다 더 예전의 사정을 기초로 삼았을 뿐이니 이제는 믿을 게 못 됨). p241에 나오는 사례의 경우 매수인이 정말로 선의의 피해자인지도 의문일 뿐 아니라 애초에 중개계약의 내용으로 그런 사정까지 참작해야 할 의무가 중개인에게 있다고 보기 힘들 듯합니다. 다만 현업 중개사들의 경우 이런 시비에 얽힐 위험이 있으므로 구역 내 물건을 다룰 시 이런 점까지도 체크를 하는 게 현실적인 센스 발휘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장의 달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갖가지 지혜와 노하우를 이렇게 책을 통해 공개해 주신 김부현 대표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지네요. 정말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해(深海), 즉 깊은 바다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어떤 생물이 그 깊은 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사는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문학가 괴테는 죽기 직전 "더 많은 빛을(Mehr Licht)!"이라 외쳤다는데, 그저 캄캄할 것만 같은 깊은 바다에도 스스로 빛을 내뿜는 해양생물들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데서 학자들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빛은 질서이며, 어둠은 혼돈이다(p33)." 우리 생명체의 아득한 기원이기도 한 바다에 대해,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한다 해도 책을 통해서나마 이렇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비단 해양생태계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 학자들이 특히 곤란을 겪는 이유는 각 생물들이 고립되어 살지 않고,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의존하기에, 몇 마리만 골라 실험실에 고립시켜 놓고 연구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조합(combination)으로 단순 계산해 봐도, 고려에 넣어야 할 모든 종의 수와, 그 중 초점을 맞춰 연구해야 할 종의 수가 각각 하나씩만 늘어나도 경우의 수는 크게 증가합니다. 고립이 아닌 상호의존과 협력이, 생태계 작동의 본질이라는 점 다시 확인하게도 됩니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기로 선택하는가에 따라, 우리 존재의 모습이 결정된다(p44)." 외계에 대한 인식의 뱡향과 기준을 우리가 정하면, 그에 따라 우리도 비로소 결정이 된다는 뜻인데, 인식(perception)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절대적 실재가 있고 그에 따라 우리가 생각, 행동한다는 우리의 믿음과는 배치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이고 생각할 뿐입니다. "동물의 시각적 신호가 어떠한지 알려면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한다. 즉 그들이 사는 세상을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p79)" 인간이 지독하게 우리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탈피할 줄 알아야 동물과 자연에 대해서도 비로소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특정 깊이의 바다에 특정 파장의 빛만 잡히겠거니 짐작했는데 전혀 예상 못한 빛이 감지되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p131). 생명체가 스스로 발하는 빛은 그 생명체가 살아 있으면서 열심히 대사 활동을 한다는 뜻도 되고,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피식자들이 떼를 지어 방어 활동 중이라는 뜻도 됩니다. 영어 격언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도 생각납니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개체의 노력에서는 어떤 비장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집니다. 

올해 6월 타이타닉 잠수정 참사처럼, 바다에서는 일정 깊이 이상으로만 들어갔다 하면 반드시 안전 문제를 신경써야 합니다. 이 책 전반부에서 거진 주인공 위치인 와스프 호의 역할이라는 게 자주 부각되었는데, 과학자는 이처럼 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 외에도 장비 조작 기술을 필수로 숙지해야 함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팀에는 이에 능숙한 전문가, 기술자가 합류합니다만 과학자 역시 자기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반드시 정해져야만 전체 프로젝트가 지체 없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p226에서는 앨빈 호도 잠시 언급됩니다. 

"안전줄에 의존하지 않고, 칵테일 셰이커처럼 요동치지 않아(p131)" 인간 없이 해양생명체 자신들끼리만 있을 때 어느 정도의 발광(發光)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새로운 장비인 딥 로버를 채택하였을 때 자자 에디스 위더 박사님을 비롯 팀원들 전체가 설레는 마음이었겠음은 책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저 뒤 p199에 보면 007처럼 스케일 큰 대작 영화에 기여했던 기술진이 이 과학 연구에도 힘을 보태는 과정이 서술되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p154에도 나오듯 사실 인류는 우리가 짐작한 것보다 고대 이래 훨씬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도 현대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저 예전에 저런 공작이나 축조가 가능했었는지 모르는 이른바 ooparts라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죠. 저자는 이누이트 족이 눈[雪]을 읽을 줄 알았고, 고대 항해인들은 그들만의 신성한 항해술 비법을 알았으나 직업상, 혹은 종교적 이유로 후대에까지 전승이 안 된 점을 무척 안타까워합니다. 태평양 그 먼 곳 한복판까지 사람이 건너가 사는 걸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책 7장에서는 이 놀라운 신비에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데, 미 해군 기밀 프로젝트에까지 화제가 연결되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바는, 과학에서 영원한 진실은 없다는 것입니다(p198). 한 시대에 철석같이 진실이라 믿고 있던 내용도 다른 반증이 발견되어 뒤집어지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처럼 혁명적인 두뇌가 나타나 패러다임 자체를 뒤집어 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는 비판에 오픈되어야 하고,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이론에 포섭되어야 할 진실인지 세밀하게 섬세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심해에서 특정 발광 현상이 감지되고 안 되고는 그저 해양생물의 생태에 대한 기술적 연구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p285를 보면 중성미자(neutrino) 탐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심해 생활에 독특하게 적응한" 세균들이 입자 부착 상태로 발하는 빛에서 이 특이현상의 효과적인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곧, 첨단 물리학의 성과로까지 이어진다는 뜻) . 데드폴, 웨일 폴 같은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에서도 과학자들은 새로운 성과를 칮으려 두 눈을 부릅뜹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훔볼트오징어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동물의 이름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기려 지어졌는데, 그는 19세기의 만능 과학자이자 탐사가였고, 저도 책좋사 이벤트에서 2014년에 그의 저서를 당첨 받아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적 호기심(p16)으로 가득하고 앎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과학자들, 용감한 모험가들에 의해 더 살 만한 곳으로 나날이 바뀌는 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중에 어떤 시련(p40)이 끼어들더라도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개츠비 열림원 세계문학 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와 함께 엄청난 사치 행각과 화제성 있는 언동으로 20세기 초 미국 사교계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사람의 운수가 길하거나 불길하게 흐르는 게 참으로 무상하게 돌아갈 뿐인 듯합니다. 한때 좋은 사업운을 만나 벼락출세를 한 개츠비, 하지만 비천한 과거를 숨길 방법은 없고 어설픈 사칭 연극을 벌이는데, 극중 상류층 인사 눈에는 물론 심지어 독자한테도 그 얕은 술수가 빤히 보입니다. 고가 아이템 목록을 줄줄 꿰는 건 어디서 주워 듣고 흉내내는 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배움이 얕은 건 차마 위장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 쓰는 개츠비에 대해 경멸감이나 분노가 솟기보다, 왠지 측은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게 또 보통의 반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고 머틀 읠슨의 동생 캐서린의 외양을 묘사한 p57의 여러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머틀(Myrtle)도 돈 많은 남자들한테 꼬리나 치다가 팔자나 고치려는 유형이고 캐서린도 다를 바 하나 없습니다. 눈썹을 다 뽑아 버리고 새로운 자리에 문신을 해 넣었지만 "원 위치를 찾아가려는 자연의 노력 때문에 얼굴이 지저분해 보였다"는 게 작품 속의 서술(1인칭의 닉 캐러웨이 목소리)입니다. 21세기 한국의 특정 부류 여성들 역시, 이 문장이 비꼬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시술은 원래 유지 비용이 더 들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닉 캐러웨이는 탄탄한 환경에서 자란 인물답게 제법 냉철하고 절제력도 강한 인물입니다. p56을 보면 그는 평생 두 번밖에 술에 취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닉의 사촌 데이지 뷰캐넌도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살아온 축복받은 인생이지만, 성격이 가식적이고 내면이 텅 비었습니다. p35를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라는 그녀의 말을 두고 "억지로 지어낸 쾌활한 목소리"라 평가를 받는 대목이 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코멘트는 형식상 1인칭 화자인 닉 캐러웨이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슷한 출신 배경을 지닌 사촌 눈에도 이런 인간적 허점과 내면의 부실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데이지. 그 백지장처럼 얇디얇은 인격의 깊이란. 

p109를 보면 닉과 개츠비의 세번째 만남이 서술됩니다. 개츠비의 많이 못 배운 입에서 (이 작품 전체를 통해) 버릇처럼 나오는 말이 "형씨"인데, 원어로는 old sport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이 작품을 원서로 읽을 때에도 대체 저 말이 무슨 느낌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제가 더 이해가 안 갔던 건, 이런 저렴한 말씨를 쓰면서도 자신의 배경이 위장 가능하다고 여전히 믿는 개츠비의 대책없는 낙천성입니다. 두 페이지 넘기면(p111) 개츠비가 자신이 옥스포드 졸업자라고 밝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수작에 넘어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사실 이 유명한 대목에서 제가 더 이해가 안 갔던 건, 가짜를 한눈에 알아 볼 만한 위치에 있는 닉 캐러웨이 같은 사람이, 구태여 조던 베이커가 뭐라고 단정했었느니 어쩌니 하며 남의 생각에 근거를 두는 기색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조던 베이커가 무슨 판단을 갖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본인이 직접 보면 모른다는 말입니까? 저는 이 대목에서, 닉의 내면이 개츠비에 대한 동정, 혹은 공감으로 가득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서두를 꼽자면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 하디의 <테스>와 바로 이 작품이 거론되는데, 거기서 닉이 괜히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말을 회상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개츠비가 불쌍해 죽겠다는 소리죠. 20여년 뒤에 나온 로버트 워런의 소설 <올 더 킹스 맨>에서 젊은 기자 버든이 타락해가는 윌리 스탁을 졸졸 따라다니는 심리와 약간 비슷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가지만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이런 얄팍한 술수가 오래갈 리 없고 운수가 다한(여태 버틴 게 용한) 개츠비는 이제 파멸이 지근거리에 다가왔음을 알게 됩니다. 아니 이것도 닉이 알려줘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닉은 개츠비에게 애틀랜틱시티 등으로 피신할 것을 권하는데 책의 각주(p245)에도 나오듯 뉴저지에 있죠. 영화 <대부 3>(1990)의 헬기 무차별 충격 씬에서도 나오듯 카지노로 유명한 곳입니다. p63에도 몬테카를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열림원에서 앞으로 계속 나올 세계문학 시리즈 둘째 권입니다. 어렸을 때 참 잘 안 읽히던 작품이었는데 왜 이리 술술 읽히는지 그동안 나의 내공이 늘었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번역자가 김석희씨인 걸 다 읽고 나서 확인했습니다. 어쩐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을 이겨내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 마음을 수술하는 의사 이병욱 박사의 희망 메시지
이병욱 지음 / 비타북스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암은 아직도 현대의학이 그 정복 방법을 찾지 못한 난치병입니다. 저자 이병욱 박사님은 환자의 몸에서 암세포를 제거하실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수술하시는 인술(仁術)의 실천자입니다. 암은 바람직하지 못한 식습관, 생활상의 버릇, 나쁜 환경에서도 비롯하지만, 당사자의 부정적인 마음과 스트레스 취약성에도 상당 부분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환자에게는 적절한 화학적 치료, 표적 치료, 면역력 증가 등의 요법뿐 아니라, 그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환경적 원인을 제거하려는 인간적, 감정적 케어 역시 중요합니다. 저자께서는 이 땅의 모든 암환자들에게 그저 기술적 정보만 전달하지 않고, 근원적으로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까지 알려 주며 마음의 치유까지 시도하십니다. 

"암환자는 반드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p17)." 저자께서는 만약 어떤 이가 암에 걸렸다면, 이는 당사자가 그동안 자신의 몸을 너무 함부로 다뤘으며, 이제는 좀 소중하게 자신을 다시 돌보고 추스를 것을 권장하는 자연의 명령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암(癌)이라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잘못된 입이 산처럼 많이 쌓여 생긴 병"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과식, 폭음, 탄 것, 짠 것, 불규칙 식사, 심지어 나쁜 말 같은 것도 다 나쁜 입에 해당한다고 하십니다. "분노, 슬픔, 긴장 등 스트레스를 계속 받다가, 더 이상 몸의 세포가 견디지를 못하고 탐욕적으로 변한 게 암세포(p17)." 저자의 진단입니다. 그러니 암의 치유는 물론, 암의 예방읊 위해서도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감싸지 않고, 스트레스에 함부로 노출시키고 막 다룰 때, 암세포는 우리 몸 속에서 마구 자라나 내 몸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암세포 역시, 외부에서 침투해 들어온 어떤 괴이쩍인 병원체가 아니라, 내 몸의 정상적인 세포였던 녀석입니다. 나였던 것, 나의 소중한 일부가 내게 적대적인 그 무엇이 되어 나를 공격하고 내 몸을 돌덩이처럼 만든다는 게 섬뜩합니다. 여태 얼마나 내가 나를 소홀히 다뤘으면 이런 게 내 몸 안에 똬리를 틀었겠습니까. 

저자는 말합니다. "암 재발을 막을 비법이나 특효약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p31)." 결국 미래에 아무리 의학이 발전한다 해도, 어떤 의학적 처치로 이 병이 확 정복될 확룰이 낮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권위자의 이런 전망에 독자의 마음은 많이 어두워집니다. 그렇다면 암 앞에 그대로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암이 근원적으로 내 몸에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단단한 평화를 내 마음에 들였는데, 내 몸의 세포가 갑자기 암세포로 바뀔 이유가 없습니다. "스스로 존귀해질 때 암세포로부터 멀어집니다." 

아무래도 암의 치료에는 환자, 의사, 보호자, 이 세 당사자의 노력의 합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할 의사의 처방와 태도에 더 기대려는 경향이 크므로, 혹 의사가 건성이리든가 나몰라라 하는 태도로 나온다면 의욕도 잃고 자포자기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이 나을 가망이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의사는 긍정적인 자세로 치료에 임하여 환자의 사기가 꺾이지 않게 만전의 노력을 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큰 병원에서 치료할 때, 검사는 검사대로 행해지지만 이게 치료에 즉시 반영이 안 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모든 의사와 간호사가 최선을 다해도, 행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자기 자리에서 각자 애쓰는 이들의 노고가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환자 역시, 검사 결과가 바로 반영이 되도록 의료진과 긴밀히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암은 반드시 사연을 깔고 들어온다." 어떤 사람이 주변과 관계도 좋고 만사 형통인데 갑자기 암에 걸린다거나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분명 누군가와 극심한 불화를 빚거나, 상황과 비생산적인 싸움을 벌이다가 내 몸에 암을 들이게 됩니다. 숙면을 잘 취하고, 근육을 자꾸 움직여 체력에 맞는 운동을 하고, 생강, 양배추, 마늘, 토마토 등 얌을 억제하는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예술 작품을 가까이하며, 가족이나 지인 등의 천연항암제를 가까이하여 큰 소리로 웃으며 암을 떠나보내는 습관을 들이라고 합니다. 의사는 항상 환자, 보호자를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하며, 혹 피치못하게 떠나보내야 할 때라면 최대한 인격적인 죽음을 채비하게 도우라고 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암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큰 치유가 될 말씀들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이 되기 전 꼭 알아야 할 삶의 지혜 - 발타사르 그라시안에게 듣는다
임재성 지음 / 시간과공간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사제였습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남긴 어록은 여전히 우리의 심중을 꿰뚫고 죽은 양심을 일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저자 임재성 선생님은 저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명언과 가르침을 통해, 생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가 반드시 체득하고 곱씹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조곤조곤 알려 주십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얼마나 가볍고 하찮은 고통과 번민 앞에서 나약해지고 엄살을 피워 대었는지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두 번 창조된다. 한 번은 마음 속에서, 다른 한 번은 실제로.(p56)" 우리 인간이 애써 만들어내는 건, 원래는 그게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일단 전제로 합니다. 이미 있는 걸 새로 만들어낸다고 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이런 창조, 그것이 예술품이든 사업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이든 간에, 그 만드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일단은 존재해야 합니다. 생각만으로 무엇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지만, 생각도 않았는데 내게 필요하고 절실한 게 뚝딱 어디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마음으로 일단 만들고 나서야, 원하던 그것이 세상에 나올 1단계가 비로소 밟아지는 것입니다. 간절한 창조의 마음이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빚어낼 어떤 작품도 남기지 못한 채 나 역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앤드루 J 번스타인은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정말 믿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고 선택해서이다(p85)."라고 말했다고 책에 나옵니다. 많은 비관주의자들은 이성적으로 생각, 판단하여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미래는 아직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럭비공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당사자가 이 아슬아슬한 균형추를 잡으면서, 불안불안하게 걷느니 그냥 떨어져 죽어버리자고 마음 깊은 곳에서 결정을 해 버리는 거죠. 반대로, 평균대 위를 걸으며 미친 듯 애 쓴 끝에 완주를 할 수도 있고, 운이 나빠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될 거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애를 써 보는 게 삶을 사는 바른 태도입니다. 지레 처음부터 파멸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마냥 착한 것도 죄가 된다(p103)." 사람은 지능이라든가 사회적 협동성을, 나이에 맞게 발달을 시켜야 하며 만약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주변으로부터 고운 시선을 받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것 외에도, 자신의 희로애락 감정 역시 나이에 맞게 발달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안 된다면, 책 p103에 나오듯 "참새들에게 놀림 받는 허수아비 꼴"이 됩니다.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이처럼 감정이 고루 발달하지 못한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은 그게 착한 게 아니라 오히려 악함에 가깝다고까지 말합니다. 정말로 악하다기보다는, 그런 단계에 머무는 걸 극력 경계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공자가 말한 능호인 능오인의 경지도 연상이 됩니다. 

어느 집단이건 간에 분위기 메이커라는 게 있어서 누가 애써 좋은 기분을 자아내면 전체가 밝아지기도 하며,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 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확 어둡게 만들거나 망치기도 합니다. p128에서 저자는, 감정이란 전염된다고 합니다. 확실히, 한 사람이 갑자기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영문도 모르고 다들 덩달아 따라 웃는 체험, 누구라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처럼 얼굴도 모르던 타인과 갑자기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선 conditioning이라고도 부르는데, 쉽게 말해 마음 먹은 대로 일이 정말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나의 진로도 그러하며,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른 이들의 앞날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사회 전체를 위해서라도 나부터 우선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공부를 할 때에도, 그게 일방적인 수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배운 것은, 그게 정말로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가 되었다면, 나의 언어로 열렬하게 표현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좀비처럼 중얼중얼 읊조리는 넋두리는 그게 나를 변화시킬 수 없음은 물론,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공부의 능률을 위해서라도, 지식은 이제 내 버전으로 표현을 해 보자는 게 저자의 결론인 듯합니다. 

어른은 그저 나이만 찼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성숙하고, 성숙한 만큼 사소한 부정적 감정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을 많이 접한,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