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현실 - XR은 어떻게 디지털 전환의 미래가 되는가
제레미 돌턴 지음, 김동한 옮김 / 유엑스리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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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AR, MR, 그리고 xR... 이 약어들은 모두 R로 끝난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센서와 그래픽, 연산 시스템과 네트워크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현실에 각종 판타지를 입혀 새로운 분야의 오락을 줄기게 하거나, 너무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던 각종 정보를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돕습니다. 이 모든 게 전적으로 가상이나 환각의 영역에서 일어나면 안 되며, 어디까지나 그 한 발은 현실(reality)에 디디고 있어야만 합니다. 모든 기술은 우리가 현실을 올바르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보조 수단에 그쳐야 하며 테크놀로지가 현실을 압도해서는 안 됩니다. 저 많은 R들 중에, 제레미 돌턴 대표가 앞으로 우리 삶의 중추를 형성하며 존재를 규정하고  표준을 형성하리라 예측하는 R은 확장현실, 즉 eXtended Reality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xR, 즉 확장현실이지만 책에는 다른 R들,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의 개념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줍니다. 각각은 생산 현장에서, 또 유저의 체험 속에서, 맡은 역할들이 다 다르고 자신만의 강점과 약점을 지닙니다. 특히 이 책의 제2장에 그 사항들이 잘 요약되었는데, 아무래도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의 설명이다 보니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흔한 정보보다는 훨씬 서술이 박력 있고 명료하게 뜻이 전달됩니다. 그리고 개념 정의가 기능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훨씬 구체적으로 뜻이 다가옵니다. 사실 여태 다른 정의들은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서로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각각의 기술이 쓰이는지 감이 잡히는 듯했습니다. 

특히 VR은 사회 성원들의 일체감 증진과 공감 확산에 기여한다는 재미있는 예시가 책에 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 타고난 계급상의 이점 덕분에 실제로 노숙자나 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없다면, 본인이 애써서 그런 타인들을 이해해 보려 해도 그저 머리로 상상하거나 관련 다큐를 시청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슬럼가나 노숙자 출몰지에 가서 뭘 체험해 보려다가는 (그 취지가 아무리 좋았다 해도) 병에 걸리거나 (다툼 끝에)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생짜 현실이란 원래 녹록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럴 때 VR을 교육, 체험 도구로 활용하면, 어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소정의 목적(공감, 현실의 심각성 체험)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윔블던 테니스 대회 같은 걸 시청할 때, 볼이 라인에서 인인지 아웃이었는지는 과거에 심판 재량에 전적으로 맡겨졌습니다. 지금은 체계적인 비디오 판정이 이뤄지며 공이 라인에 어느 정도까지 붙었는지 시청자나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그래픽으로 바로 제시됩니다. XR은 이처럼 데이터의 시각화에 큰 기여를 하는데(p77), 특히 3차원 이상의 데이터를 유저에게 이해하기 쉽게 가공하는 단계에서 탁월함을 보입니다. 보고서 스캔 등에서는 이제 추가 소프트웨어 설치의 필요 없이 AR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도 합니다. 

XR은 사람의 이해를 돕고 관심을 유발하는 효과적인 기술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광고채널이기도 합니다(p119). 모든 광고인들의 꿈은 개별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어필을 도달시키는 것인데, 마이클 코어스 선글래스의 경우 페이스북을 통해 XR, AR로 소비자 개개인에게 최적화한 아이템 착용을 체험하게 하는 등, 안경 같은 개인적 체험 차가 클 아이템에 대해 궁극의 만족도를 시도합니다. 사실 같은 인종, 민족이라 해도 얼굴형이 천차만별인데 공장에서 천편일률로 찍어낸 제품이 과연 얼마나 두루 만족을 주겠습니까. 

과거에나 지금이나 영화, 드라마 촬영은 엄청난 위험이 수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애써 촬영한 작품, 컨텐트가 기록 매체의 보관, 운송상의 실수 때문에 한순간에 무(無)로 화하기도 합니다. 제작에 투입된 그 막대한 자본이 자그마한 프린트 안에 다 담겼을 뿐이니 말입니다. 혹 누군가가 실수라도 하면 처음부터 그 많은 장면들을 다시 찍는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p164). 360도 동영상, 또 볼류메트리 포맷에서는 아무런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던 걸, CG 컨텐츠는 일부 수정, 첨가가 가능할 뿐 아니라 여러 참여자가 다양한 단계에서 전체의 진행도, 협업 수준을 개관할 수 있으니 단지 비용만 절감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의 완성도까지 높입니다. 또 이 책의 제10장은 Alex Rühl 대표, 크리에이터(여성분입니다)가 따로 집필했는데, 360도 동영상만의 장점을 (돌턴 저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서술했으니 책 중의 책으로 별개 참조할 만합니다. 

노인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보면 하루에 얼마나 걸었는지, (애플리케이션 추가 설치 여부에 따라) 혈당이나 간수치 등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도 통계적으로 잘 정리하여 표시해 줍니다. 이 모든 성과는 센서의 발전에 주로 의존한 것인데, 수사 기관이 주로 쓰는 걸음걸이 분석 도구의 경우 99.6%의 정확도로 개인 식별이 가능하다(p174)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다만, 데이터가 이처럼 민감한 수준에서 개인의 아이덴티티와 연결되다 보니 보안 이슈가 다시 등장합니다. 시스템 공격은 PC 레벨뿐 아니라 헤드셋 등 독립실행형 기기에서까지 이뤄질 수 있으니 이 분야에서 보완 노력이 시급할 듯하며 유저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책을 읽어도 XR이라고 하면 영화를 더 실감나게 만들거나, 특수 게임방 같은 데서 신 나게 즐기는 도구로만 인식하는 게 또 대다수의 독자들 반응일 것입니다. 그걸 미리 예상했는지 저자는 11장 이하에서 XR이 얼마나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하여 사는 방식 자체를 슬금슬금 바꿔 놓고 있는지 알려 줍니다. 예컨대 월마트에서는 직원 교육에 VR을 적극 도입하여, 직원들에게 그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만큼만 교육을 시켜 교육 비용도 절감하고 이직률도 줄였다고 하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좀 비정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업은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지 교육기관이 아닙니다만, 여튼 그의 사회적 기능 중에는 직능의 숙련도 향상을 통해 사회 전체와 성과를 간접 공유하는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p293에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XR을 적극 활용하여 어떤 성과를 내었으며, 어떻게 이 분야에 후원하고 기여했는지가 잘 정리되었습니다. 결론은, XR을 잘 활용하고 회사 운용의 핵심 모듈로 일찌감치 삼은 회사가 미래를 먼저 장악하고 앞서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책은 곳곳에서 XR이란 도구가 이미 1990년대부터 산업 현장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그 초창기 모델부터 회고하는데 기술서라고 해도 이처럼 시계열로 짚어 줘야 독자가 전체를 보는 인사이트가 생깁니다. p348 이하에서는 the Cave라고 하는 복합 프로젝터 시뮬레이션 장비가 소개되는데, 이 장비는 이미 현장에서 널리 쓰이기에 사람들이 딱히 그 존재를 인식 못 할 정도라고도 합니다. 그만큼이나 XR은 이미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거나 곳곳에 녹아들었습니다.  

책 말미에는 용어 추가 정리와 참고 문헌 소개가 실려 관심 있는 독자의 추가 공부를 지원합니다. 한 권으로 깔끔하게 확장현실을 공부할 수 있는 멋진 책입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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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 버는 비즈니스 글쓰기의 힘 - 한 줄 쓰기부터 챗GPT로 소설까지
남궁용훈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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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글쓰기는 생존의 조건(p26)." 책의 저 페이지에서 저자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사례 세 가지를 들어 줍니다. 관계 기관에 민원 넣기, 정부에 지원금 신청서 넣기, 취업이나 이직, 대학원 진학 시 자기소개서 쓰기 등입니다.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 세 가지 경우에, 그저 글쓰기 자체가 두려워서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나아가 금전적 손해까지 본다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실제로 글솜씨가 좋아서 민원이나 청원, 기관 상대로 단순 항의 시 예상 외의 효과를 거두는 예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자신을 글로써 표현해야 할 상황이 훨씬 더 많이 전개됩니다. 그래서 저렇게, "생존의 조건" 같은 말씀도 나오는 것이며 이 책에는 그 구체적인 미래상, 앞으로 글쓰기가 어떻게 우리 삶에 필수 수단으로 침투해 들어오는지가 생생히 설명됩니다. 

저자는 큐레이션 전문작가이며 따라서 당연히 글쓰기로 생업을 갖는 분입니다. 이런 분도 매번 펜만 잡으면 글이 술술 나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이나 세부 전개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급하게 대충 마무리한 경우가 있긴 있었다고 하시네요. 지인의 동생인 웹소설 작가분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치셨는데, 다리 부상과 글쓰기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을 것만 같아도 부상 치유 1년 동안 전혀 글을 못 썼다고 합니다. 

운동 선수도 심지어 몸에 아무 탈이 없는데 이른바 "입스" 때문에 예전의 감각이나 신체 기능 발휘가 안 되는 황당한 일도 겪는다고 하죠. 이런 걸 단순히 슬럼프라며 무시하고 넘어갈 게 아닙니다. 저자가 명명한 이런 블로킹 현상, 누구나 자기 영역에서 이 비슷한 체험을 합니다만 저자는 걷기를 통해 극복한다고 하시네요. 우리들도 자기 침체가 불시에 나에게 닥쳐올 때,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작은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그 소재가 되는 생각이 머리 안에 풍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물론 삶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인격 자체가 성숙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하겠지요. 책에서 전개되는 생각의 구조, 문장의 형식에 익숙해져야 본인이 그걸 흉내내며 자기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충고합니다. 즉,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라는 겁니다. 

책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만 하지 말고, 의문을 떠올려보라는 거죠. 왜 이 책은 이 대목에서 이런 결론을 내리는 걸까? 나 같으면 이런 전제에서 다른 판단을 할 것도 같은데... 이 질문이 그저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만으로, 혹은 생각에 깊이 잠긴다고 해서, 답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여태 활동했던 최고의 사상가, 철학자에게라도 극히 드뭅니다. 그런 위인들도 일생에 고작 몇 번 성과가 난 게 그런 큰 업적으로 남은 거죠. 답이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작은 씨앗 하나가 뿌려진 게 언젠가는 꽃이 필 수 있다는 게 작가님의 제안입니다.   

가독성 높은 문장을 쓰기 위해 저자는 여러 디테일을 가르쳐 줍니다. 쓸데없는 접속사를 쓰지 마라, 적(的)이란 접미사 사용을 자제하라, ~수 있다, 되다를 쓰지 마라 등등... 사실 저는 독후감을 쓰면서 다른 분이 읽는 상황을 그리 배려하지 않고 제 기분대로 수다 떨듯이(스트레스 풀듯) 후루룩 쓰는 스타일이라서 저런 원칙들을 알면서도 잘 안 지키는 편인데, 만약 가독성과 많은 구독자 확보를 우선시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염두에 두어야 할 지침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트7에는 창조적 글쓰기를 위해 챗지피티의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좋은 가르침이 많이 나옵니다. 챗지피티는 근래 많은 한계가 노출되어 이용자가 급감한 경향이 있으나, 이름대로 계속 발전하는 애라서 앞으로 또 어떻게 환골탈태하여 멋진 적응력을 보일지 기대도 되죠. 또 글쓰기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면이 있습니다. 아무튼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글쓰기라면 과연 어떤 모습이라야 하는지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수 있다라는 말 쓰지 말라고 했는데! 쯧) 유익한 책이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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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독성울 높여주는 실질적인 글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빙혈 2023-09-05 01:4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꽃보다 향기로운 날들 - K-플라워 시대를 여는 김영미의 화원 성공백서
김영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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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께서는 사람을 살리는 의료인, 즉 간호사 일을 하시다 플로리스트로 전직한 분입니다.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직분이나, 식물이 그 꽃을 아름답게 피우기를 돕는 직분이나, 어찌보면 서로 크게 닮은 데가 있습니다. 한 인생에서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본 분이라야 이 상황의 묘미와 고충을 정확히 논할 수 있으실 텐데, 이 책이 과연 그러했습니다. 문장마다 깨달음의 흔적이 흘렀고, 곳곳에 삽입된 사진도 산뜻하고 청정한 저자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 듯했습니다.  

나리의 경제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자영업 폐업 퇴출이 일상처럼 되었습니다. 한번 성의껏 차린 가게가 내내 번창하여 고객과 사장님이 알콩달콩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힘듭니다. 그러나 저자께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림 없이 깊이가 있고 감성을 지닌 꽃집을 오래 하고 싶다(p44)."고 하십니다. 모든 가게에는 무릇 자신만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며, 샵에는 사장님만의 철학과 소신, 인간적인 향취가 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동네, 어느 거리라도 이처럼 사연이 자리한 샵이 있어야 개성과 품격이 형성될 수 있지요. 

저자께서는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사람은 이런 극한의 고통을 겪고서야 비로소 신에 대해 깊이 있게 사색하게 되며, 종교에 귀의할 마음도 먹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p75)" 아무리 기도를 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해도 "슬픔의 늪에서 나를 건져올릴 수 없었다"고 저자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인간의 아픔이란 아무리 작은 한 길짜리 속에서 생성되었다 해도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으며,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때로 세계 전체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더욱 그러합니다.  

p90을 보면 저자께서 문호 톨스토이가 지은 단편 중 하나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평해 놓으신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리가 불편한 애들도 있고 대체로 가난하지만, 정성스러운 부모의 돌봄을 받고 무척 행복하게 자라납니다. 과연 친부모가 죽은 후 누가 저 불쌍한 아이들을 돌볼까 생각했었으나, 지금 만나니 그간 아이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대한 힘이 작용이라도 했는지 저처럼이나 잘 크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내린 답은 그러했습니다. 예수도 까마귀를 가리켜 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알아서 기르신다고 했습니다(누 12:24).  

저자는 p122에서 전문가의 식견으로, 식물이 꽃을 제대로 피우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조건을 거명하십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은 자연이 제공하는 토양, 빛, 바람, 물이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논한 4원소와도 비슷합니다(정확하게는 불이 빛 대신에 들어가지만). 그런데 저자께서는 이에 다섯번째 요소가 더 가해져야만 식물이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기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기르시며 어언 결혼 50주년을 맞은 노부부의 마음(p128)이 이를테면 가장 모범적인 예 아니겠습니까. 

p168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꽃들의 꽃말이 나옵니다. 흔히 접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이 페이지에 소개된 꽃들이야말로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꽃들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죠. 그 꽃들에 부여된 꽃말들도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가치를 대변합니다. 저자께서 운영하시는 사랑꽃농원의 상징 같은 하트 구조물(p174l에도 그런 소중한 가치와 사람들의 추억이 배어 있습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이런 의연한 다짐(p193)으로 굳세게 일어서는 저자님의 다짐을 들으며 우리들도 인생에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저 들꽃처럼 다시 피어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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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을 만들기 위한 핵심 지식 - 한 권으로 끝내는 AI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의 모든 것
김동혁 지음, 이호영 감수 / 슬로디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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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산업은 AI에 의해 주도된다고 합니다. 좋건 싫건 산업의 개편 방향이 그쪽이라면 우리들도 방향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물론 그것이 수행하는 서비스를 우리가 이용하고 누리는 게 앞으로 보통 겪는 일이 되겠으나, 우리 자신이 조직 내 기여도를 높이고 소득을 더 거두려면 AI 생산자 포지션에 선 우리 자신들의 모습도 그려 봐야 합니다.     

이 책에는 제목 그대로, 우리들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자 입장에서 무엇을 만들어 내어야 할 때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이 정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p22에 보면, 인공지능 개발 솔루션 프로세스가 도표화되어 독자에게 제시되는데 아래 설명에서도 눈치챌 수 있지만 이는 제약바이오 기업이나 의료기기 제조업에서의 한 예입니다. 제약바이오 기업이라면 그저 신약 개발에나 바이오시밀러에 올인하면 될 듯해도, 무엇을 하든 그 과정에서 AI가 이렇게나 쓰일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약이 제약만 알아서는 사업을 영위할 수 없고,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 활용할 줄 알아야 엄청난 양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원가도 대폭 절감할 수 있습니다. 

p30에는 회귀모델과 분석모델의 차이를 설명해 놓았습니다. 본문에 설명이 나와 있듯, 전자는 연속적인 값을 예측하는 데 쓰이고, 후자는 이산적인 데이터를 놓고 그 예측값을 구하는 데 쓰입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 MAE, MAPE 등의 대표적 모델들이 표룰 통해 특징이 설명됩니다. 사실 이런 작업들은 종래에도 통계 분석 tool을 통해 수행되던 것들이었으나, 이제 AI를 통해 훨씬 많은 데이터를 더 빨리 처리하며, 그 예측도 더 정밀하게 해 내자는 것입니다.  

모델의 성능이 과연 얼마나 좋은가를 측정하기 위해 AUC-ROC 곡선이 쓰입니다. 이 책은 볼륨에 비해 많은 정보를 담았으면서도,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만 찌르는 설명이 참 좋았습니다. "AUC가 높다는 건 클래스를 구별하는 모델의 성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p35)."  

p57에 보면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은 상상에서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상은 고등동물인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상상이라는 즐겁고도 생산적인 정신작용이 있기에 인간은 따분한 일상에 질식하지 않을 수 있고, 결국에는 기존의 생산 방식을 탈피하여 혁신을 일구고 삶의 질 면에서 퀀텀 점프를 완성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산업에는 라이프사이클이라는 게 있는데, 이제 어떤 산업, 프로젝트 등에 AI가 적용된다면, 그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과정이 (생애 주기 면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작동할지 상상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직업 운동 선수도 피지컬 트레이닝만 하는 게 아니라, 고수들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물리적으로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던 상황에 대처합니다. 경영자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저 기업의 부품이 아닌 비전의 중추가 되려는 개발자의 마인드셋 또한 같아야 하겠습니다.  

p94~p95에 보면 해당 기업, 프로젝트 상황, 매 단계에서의 프로세스 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뤄집니다. 교과서적인 설명이긴 하나, 일반적인 교과서의 태도와는 또 다른 게, 해당 항목에 대한 다양한 각도로부터의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또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쓸모를 염두에 두고서 서술이 이뤄졌으므로, 업무 담당자가 현장에서 바로바로 참조해 가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책 자체가 이처럼, 다양한 프로젝트 안에서의 프로세스 기법들(구체적)에 대한 설명, 케이스 스터디에 대한 책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p142를 보면, 비단 기업의 특정 비즈니스 스테이지 말고도,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 같은 시설을 상정하여, 어떻게 해야 이 지역에서 빈발하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할지에 대한 하나의 시나리오가 제시됩니다. 

뭐니뭐니해도 해도 이런 책은 개발자가 최우선적으로 봐야 하는 책입니다(제 개인적으로는, 특히 이렇게나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라면 누구보다도 경영자가 읽어야 할 책 같습니다만). 챕터 5의 대전제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사용자를 위한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이 원칙은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이란, 그냥 돌아만 가면 되지" 이런 무책임하고 무사안일한 생각을 가진 일부 개발자들 때문에 전체가 욕먹고, 개발자 인재 pool이 싸잡아 소모품 취급당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어 개발자가 다시 주목받고 고페이를 지급받게도 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인공지능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고 냉철한 파악이 선행되지 않으면 일선에서 가장 먼저 도태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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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사과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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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부 유럽에서 토마토를 전통적으로 "늑대의 사과"라 불러왔다는 사실은, 최인 작가님의 이 신작 소설 머리말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보면 그 서두에 고래에 대한 온갖 인용문을 다 갖춰 놓고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이 소설의 시작도 그와 닮아 보입니다. 최인 작가님의 전작을 읽은 독자들은 잘 알겠지만, 동서 고금의 숱한 명문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그 출처까지 명기하는 게 작가님의 스타일이며, 이 신작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이하게도 이번 소설은 탈북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최인 작가님 소설 주인공들이 치밀한 사색가이며 빼어난 지적 능력을 지녔으나 현실의 모순을 겪고 고민하는 특징이었는데, 이 소설도 그 궤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또 남자 주인공은 그에게 매혹된 여성들과 농도 짙은 로맨스를 즐기는데,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묘사는 대단히 노골적으로 흐르기도 하며, 다만 전작들에서는 묵직하고 심도 있는 사고의 흐름을 독자가 좇느라 성애적 서술이 살짝 묻히기도 했다면, 이 신작은 그런 대목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다릅니다. 

p31에서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병호라는 젊은이는 지나치게 학교 성적에만 집착하는 모친 때문에 매우 잔인한 성정으로 자라납니다. <문명, 그 화려한 역설>에서 주인공 모제가 그 모친과 갈등을 겪는 설정과 닮았습니다.  

휘는 OLED 스크린(p81)은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약간 인기가 시들해진 홈시어터 아이템입니다. 페시와 함께 커플시네마의 어느 객실에 들어선 주인공은 클로이 모레츠가 주연한 뱀파이어 영화 <렛미인>을 관람합니다. 이 특이한 상황에서 영화 속 매혹적인 흡혈귀가 빨간 입을 하고서 희생자의 피를 빠는 장면은 그에게 묘한 자극을 가합니다. 무엇인가에 탐닉하여 현실의 부적응 상태로부터 도피할 필요가 있었던 그에게 이 장면의 시청은 일종의 전기가 됩니다. 때마침 그가 투자했던 유니드코리아(가상)라는 종목이 상장폐지되자 그는 재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습니다. 

구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게 유일한 창작의 기조이자 방침이었습니다. p124에 나오듯 북한에서는 당성, 사상성만이 예술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인 반면, 남한에서는 오로지 시장성만이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작품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한데, 아마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 이처럼 저속한 대중의 기호만으로 작품성을 평가했던 공간은 없을 듯합니다. 허먼 멜빌의 그 장대한 우주도 21세기 한국에서라면 그저 지루하다고 쓰레기 취급이나 받았을 것입니다. 

전작 <문명, 그 화려한...>에서도 주인공들이 묘한 업소에 들어가서 기이한 환락 체험을 한 후 궁극의 허무를 맛 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p109 이하에 팔루스 카페라는 희한한 곳에 입장하여 겪는 일들이 서술됩니다. 팔루스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보면 이후에 벌어질 사건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되죠. 공교롭게도 고양이박쥐가면 역시 부친이 실향민이라서 키즈와 접점 하나가 생깁니다. 그녀의 본명은 "미소"였으며 출판사 사장의 딸인 덕에 남한 출판계의 생리를 훤히 꿰고 있습니다.     

"남조가 교회에 불을 질렀다고?(p162)" 표기는 피를 빠는 느낌이 생생하게 서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런 엽기 행각에 빠졌는데, 마치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했던 김동인의 작품들(<광화사>, <광염 소나타>)에 나오는 화가나 음악가들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한 작품들을 남기기 위해 그들은 방화와 살인도 서슴지 않았고 결국 인간적 파멸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원래 선했던 주인공들을 극단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원인은 (김동인 작품들에서와는 달리) 한국 자본주의의 지독한 천민성이라는 게 큰 차이점인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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