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이 내 곁을 떠났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후,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
한수정 지음 / 설렘(SEOLREM)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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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유족이란 말은 남겨진 가족이란 뜻입니다. 아직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덜컥 유족이란 말로 규정되다니. 저자는 "믿기지도 익숙해질 수도 없는 말(p24)"이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데 "전래 동화에 소복 입고 나오는 사람만 과부 아니냐"는 말에 빵 터졌다고도 하십니다. 이래서 어른들이 아이들 덕분에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한번 크게 웃을 수 있다고 하는가 봅니다. 

"여전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p61)."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면 이를 수용해야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순도 높았기에 좀처럼 그게 잘 안 됩니다. 남편께서 돌아가신 그날도, 직분을 행하려 쓸쓸히 발걸음을 떼시던 모습이 평소와 같았기에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p65)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뜻밖에 자녀분의 재미있는 말 덕분에 등장한 "과부"라는 말이 내내 저자분 마음에 무겁게 다가온 듯합니다. 사시다 보면 남편 없는 설움이 수시로 느껴질 텐데 "나도 모르게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생길 것 같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요즘음 비혼이나, 이혼한 후 혼자 사시는 분들도 무척 많은데 그분들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떤 아픔을 안고 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하물며 사별의 경우는... 

학교에서 가족관계증명서에 아빠가 나와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왔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물론 담임선생님이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는 하나, 이런 서류가 왜 필요한 걸까요? 예전에는 호적등본 등으로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걸 지금은 당대 중심으로 새 양식이 마련되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잘 납득이 안 되었는데, 저도 최근에 이 서류를 떼었습니다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엄연히 표시가 되어서입니다.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서류에 나와 계신 걸 보니 뭔가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책의) 미성년자와 (저 같은) 성년자가 다른 것일까요? 아무튼 나이 어린 당사자(와 그 어머니)에게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구태여 겪게 하는 법정절차는 개선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라이어 캐리가 전성기를 지난 후에도 평생 풍족하게 먹고 살게 해 주는 효자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인데 이 캐롤은 해당 가수가 뜨고 난 후에 등장했으므로 생각만큼 역사가 그리 오래된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크리스마스 자체를 상징하는 노래처럼 엄청난 존재감과 인기를 지금까지 누리는데, 저자께서는 이 노래 제목을 들을 때마다 슬퍼진다고 하시네요. 뜻하지 않게 이처럼 어떤 분들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남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북받침에 괴로워할 수도 있으므로 우리가 살면서 조심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내 기분에만 충실한 사람은 참으로 못나고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사별한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걸까" 죽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으면 이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이런 말을 두고도 봉건적 분위기라니 뭐니 하며 비판하는 자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평생 사랑 같은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불쌍한 인간으로부터라야 그런 말이 나올 법합니다. 사람에게는 향상심이라는 게 있다는 저자의 지적 역시 타당합니다. 사람이 그저 현상이나 유지하려는 안일한 본능이 지배적이었다면 우리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동물의 단계에 머물렀을 겁니다. 

책 처음에도 나오지만 전 시어머니도 어떤 점에서 참 대단하신 듯합니다. 아들의 불행한 사실을 냉정하게 전하시고, 장례식 후에도 기일은 물론 생일에도 빠짐없이 아드님을 찾으신다는 게... 저자는 생일을 가끔 빠지기도 하신다는데 일단 시모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며, 역으로 슬픔이 너무도 큰 까닭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녀 간에 잠시 타올랐다가 감정이 식거나 한편의 부정(不貞) 때문에 냉정하게 헤어지기도 하는 게 요즘의 세태입니다. 물론 부부를 이어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더 안 잊히고 석별의 정이 절절해지기도 하겠으나, 제3자 입장에서 여튼 남녀가 사랑을 한다면 이 정도 순도가 있어야 그게 사랑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사별을 한 분들은 물론, 오히려 지금 한창 뜨겁게 사랑하는 젊은 커플들이 읽어 보면 더욱 유익할 책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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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모른다
로지 월쉬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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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psyche)이 깃든 곳에 사랑(eros)이 머물 수 없다."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며 기어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했던 프쉬케에게 에로스(=큐피드)가 그녀를 떠나며 한 말입니다. 흔히들 여자의 과거(이성교제, 성경험, 특히 동거 사실, 유흥업소 알바 경력 등)는, 결혼하려는 남자에게 절대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금기를 깨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나는 "너도 별로 깨끗하지 않으면서 남녀가 달라야 할 이유가 뭐임?" 같은 좀 단순한 반발심리, 다른 하나는 "이 남자는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 앞에서 조금도 뭘 숨기고 싶지 않다" 같은 미안한 심리에서라든가, 혹은 어차피 과거가 다 알려지기 쉬우니 그냥 자수(?)해서 이후의 화를 방지하려는 동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유형의 사연은 네o트판 같은 데서 자주 보이기도 하죠. 

이런 걸 쿨하게 넘어가는 남자도 있고, 연애 경험이 부족한 채 결혼에 바로 골인하는 찐따형(?)의 경우 "나는 아닌데 얘는..." 같은 배신감 때문에 결국 관계를 깨기도 합니다. 이 중 둘째 동기의 여성과 찐따남자의 파탄 과정이 제3자가 보기에는 가장 안타까운데, 결국 키는 남자가 쥐고 있어서 남자가 세상을 두루 겪어 여유를 가진 채로 (힘들겠지만, 테무진의 배포를 발휘하여, 얘는 여튼 내가 사랑하는 애라는 각성 하에) 여자를 끌어안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의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나하고 잘 맞는 여자와 함께 꾸려갈 미래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요즘 스릴러 트렌드대로, 1인칭 시점이 교대되며 전개됩니다. 챕터 제목이 레오이면 레오가 1인칭으로 자기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엠마이면 그 챕터에서는 엠마가 "나"입니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니, 독자는 최대한 머리를 써서 객관적 진상이 무엇일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단 엠마는 레오를 자신의 조모(정치인)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납니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 후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수시로 털어놓으려고 했었으나, 레오가 이런 쪽으로는 씨도 안 먹힐 남자 유형이라는 걸 알고 멈춥니다. 

엠마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뭘 속인다는 게 계속 꺼림칙하고 (나중에 들통날 게 두려워서라기보다) 죄의식을 견딜 수 없어 다 까고 용서를 받으려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영화 <슬리퍼스>의 한 장면이 생각나던데, 가톨릭 고해소 사제 칸에 동네 불량배 소년들이 들어와 신부인 척하며 동네 아줌마가 자신의 부정(不貞)을 고해하는 걸 듣습니다. 이 부인은 고해소를 떠나며 "얘들아 비밀은 꼭 지켜 주렴"이라고 하는데, 죄인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그 상대가 성직자이든 아니든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엠마도 사랑하는 이 앞에 마음의 짐을 더는 게 최우선이었으며 그 후과(後果)를 의식하는 계산적인 동기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한편 기가 막힌 건, 레오 역시 엠마의 과거가 수상쩍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대로 은밀하게 이것저것 캐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레오는 바보가 아니었고, 엠마가 자신에 대해 말해 온 것과 실제 남아 있는 이런저런 흔적이 일치하는 게 별로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엠마가 나왔다고 하는 학교에서 졸업가운의 색깔은 이러이러한데 그녀의 졸업사진에서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든가... 여자가 이런 경우 잡아떼는 스킬도 다양한데 엠마는 적반하장형보다 무관심형을 택합니다. "그래? 난 식장에서 주는 대로 입었지." 뭐 그럴싸하긴 합니다. 이 경우 여자 연기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데, 엠마가 아무리 잘 둘러댔어도 여태 드러난 물적 증거가 뚜렷하며 레오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유형이므로 사실 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엠마는 생물학 전공인데, 그냥 이름 없는 학자가 아니라 방송 다큐 진행을 맡은 적 있어서 약간 셀럽에 가깝고, 이 때문에 스토킹 대상이 되거나, 미리 쓰인 부고 기사 주제 인물 리스트에도 올라 있습니다. 레오가 다름 아닌 부고 담당 기자이기 때문에 이게 나중에 약간 민감해진 이슈가 됩니다. 나 말고 다른 누가 엠마를 신경 쓸 만큼 엠마가 중요하고 유명한 인물이었던가? 과대망상이 아니라 정말로 한 개인이 감당 못 할 엄청난 진실이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레오는 직감합니다. 갯벌(다양한 생명체들) 이야기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한국의 새만금 등도 세계적인 갯벌에 포함되므로 엠마에게 좀 알려 주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부고 전문 기자는 영미 문예에서 약간 웃음거리로 쓰이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보통은 해당 언론사에서 가장 능력 없는(취재력이든 문장력이든) 기자를 그 자리에 배치하는데, 이런 레오를 두고 "당신이 쓴 기사가 최고"라며 칭찬하는 엠마가, 제3자 입장에서는 우습게 보이기도 합니다. 엠마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 레오도 알고 우리 독자도 압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이며, 이 소설의 원제인 "The Love of My Life"가 레오와 엠마 서로에게 모두 적용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라 굳게 믿었다..." "내가 알던 바와 하나도 같은 게 없는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키우는 개의 이름이 존 키츠인데, 그냥 존이나 키츠도 아니고 구태여 영국 낭만주의 3대 시인인 그 이름을 꼬박꼬박 부르는 게 재미있었는데 잘 생각해 보니 이것도 약간 복선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계속 불길하게 두 사람 사이에 자꾸 끼는 그 사람의 이름, 바로 그 자가 문제 아니냐고 느꼈다면, 당신의 느낌은 틀리지 않고 맞았습니다!...라고 해 주기엔 제법 더 복잡한 플롯 끝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늦여름에도 스릴러가, 밤에 읽기에는 제맛입니다. 영화화 프로젝트에서 일단 에이미 애덤스가 엠마 역인가 본데 잘 어울릴 듯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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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인간 - 인생을 단단하게 살아내는 25가지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강민지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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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지금 시점에서 아득한 예전처럼 느껴지는 17세기에 활동했던 종교인, 철학자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 소속 종교를 떠나서도, 그의 글들은 안온하게, 읽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삶의 온갖 신산과 곡절을 모두 달관하고 평정의 마음으로 관조하는 현자(賢者)의 경지가 느껴지는 명문들입니다. 40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널리 읽히는 글과 가르침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완전함이란 하나의 속성이 맞을까요 아닐까요? 중세 전체를 뒤흔들었던 논쟁의 핵심 주제이며 경과에 따라 종교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이슈였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 그라시안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 문제가 해결이 날 리 만무했으나 p12에서 그라시안은 이 완전함을, 인간 기량의 문제로 현명하게 치환합니다. 신의 문제를 유한한 인간이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우리들의 인격을 닦고 현실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이 문제를 적용하는 게 더 실용적인 방안 아니겠는가? 아마도 이런 생각에서 그라시안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허물을 고치자는 제안을 합니다. 종교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라시안은 이솝 우화,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까지 인용해 가며 독자를 점잖게 설득합니다. 

위대한 인물은 그 위대함 때문에 오히려 사소한 결점이 있어도 그것이 유독 도도라져 보일 수 있다는 게 역설이라면 역설입니다. 그라시안은 아마도 당대 유력 정치인(왕이나 귀족)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 말(p61)을 했겠는데, 변덕, 이 변덕이라는 게 다른 사람을 유독 짜증나게 하며, 마치 뱃멀미처럼, 그 사람과 뜻을 같이하려던 이들을 어질어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너무 신중하다 보니 저렇게 자주 변덕을 부리는 것 아닐까? 그라시안은 단호하게 부인합니다. 신중한 사람은 반대로, 일관성 있게 매사에 임라지 결코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이성(理性)에 충실한 인간일수록 변덕이란 속성을 경멸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당대 모 정치인의 실정을 애써 옹호하던 이들에게, 그 퇴로까지 차단하며 준엄하게, 그러나 품위 있게 반박하는 그라시안의 논변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p77 이하에는 후안 프란시스코 안드레스 박사, 역주에 의하면 그라시안의 벗이자 당대 시인, 역사학자였던 이가 그라시안과 대담을 나누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인은 항상 동류인 거인들과 교제한다고, 안드레스 박사의 공력 역시 그라시안과의 대거리에서 한 치 빈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항상 그 절반만 전해지기 마련입니다.(박사)",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그 전체를 알아 보곤 하죠.(그라시안)" 이 두 거인의 대화에서도 역시, 그 참뜻을 눈 밝은 독자라면 알아보고, 평범한 독자들은 그 가장 표피적인 의미새김에 그치고 마는 법입니다. 진리를 깨닫는 경지란, 도달하기에 그만큼이나 피 나는 수련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외관은 화사하나 뒷면이 초라한 건(p116) 안타깝게도 여느 건축물에서나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그라시안은 이 이치를 정치인들에게 적용하여, 로마 시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역주에서 그리 말합니다)처럼 그 시작이 화려하고 끝이 비참할 수도 있었던 위험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역주에 의하면, 그라시안의 평가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전성기에는 그 아그노멘이 무색하지 않게 위엄과 재능으로 만인을 굴복시켰고, 이후에는 놀라울 만큼 신중함을 발휘했으니 그저 타고난 신분상의 유리함이나 행운만으로 그런 성공을 거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그도 더 강한 자를 만나 결국 파멸하니 인생 경영의 난도가 이만큼이나 높습니다. 

디오게네스는 과장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키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니다(p151)."라고 했습니다. 공자도 논어 위령공편에서 소인은 궁지에 몰리면 함부로 행동한다고 했고, 예수도 요란하게 남 보란 듯 회개하는 위선자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꾸짖었습니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의 후원자였던 이노호사 후작에 대해 그 인품을 찬양하며,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품위 있게, 습관은 점잖게, 행동은 영웅답게(p157)." 이것이 그라시안이 내린 군자 처세의 원칙 그 결론입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행복한 사람, 마음이 거울처럼 맑은 이들의 공통점이 이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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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늪
안원근 지음 / 문이당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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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아픔과 질곡, 모순이란, 그 피해를 직접 당한 개인뿐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나아가 그 끔찍한 사연을 전해 들은 후속 세대에까지 트라우마를 안기게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비록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논픽션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생생하고 치열한 증언, 고백, 묘사를 담았습니다.     

짜식이는 제 이름도 그 음소가 그런 구성이지만, 된소리만 잘 발음하고 예사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째끼들 찌원하고 깨운 히뻐리것다." 이건 아마도 번역하자면 "새o들, 시원하고 개운해버리겠다."겠죠? 동네 아이들, 이 대목에 나오는 것처럼 시골 아이들은 유독 여름에 아랫도리까지 벗고 나다니는 걸 좋좋아하데, 또래 여자애들이 보는 걸 즐기는 심리도 있고 자갈 등과 접촉할 때 느껴지는 묘한 감촉의 쾌감도 있다고 소설에 서술됩니다. 사실 이 비슷한 서술은 일제강점기 아동문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의 산문에도 나옵니다. 

이 소설은 영화 <대부> 2편처럼 여러 시대가 교차되며 등장하는데 저 아이들이 일종의 항일 운동(?)을 벌이는 대목이 p90이하에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무렵 시대 배경은 일제가 진주만 기습을 하고 루스벨트가 대응하여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이 사람들 사이 대화 중에 전해지는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박완주와 이혜경은 이 와중에도 친일부역배들의 악질 행각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웁니다. 

채만식의 <탁류>에 보면 요즘말로 선물(future) 거래에 가까운 투기적 거래가 등장하는 등, 친일파의 본능적인 이익 추구 욕구는 반민족적인 체제가 동포들을 착취하는 풍조 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합니다. p50을 보면 정교술이 이런 패륜적 시스템 하에서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가 잘 나옵니다.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장제수는 엄연히 이철문이 남편으로 있는 지순례에게 추행을 하고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여기서 소설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노비제가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해도, 사실상 소작농과 구분이 안 되는 외거노비가 일제 말엽인 1940년대에도 여전히 한반도에 잔존했고, 일제의 근대화 선전이 얼마나 허명에 불과했는지까지 알려 줍니다. (장제수는 조금 뒤에 처단당하는 장면이 나오니 너무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p74를 보면 독재정권 하에서 여대생(이 소설에서는 영자)가 불법 시위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와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끔찍한 취조를 당했는지 생생한 묘사가 나오네요.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였겠으나 가장 잘 알려진 케이스는 권인숙양(보통은 그냥 권양이라고 불렀음) 부천서 성고문 사건인데 심지어 월간조선 1987년 8월호 같은 매체를 봐도 그 참상(과 이 사건이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의 과정)이 아주 자세히 적혔습니다. 이런 야만의 시대를 살아 왔다는 게... 참고로 권인숙씨는 교수를 거쳐 현 국회의원입니다. 

권력을 통해 취약한 소작인의 아내에게 은밀한 타진을 하여 성착취를 시도하는 아주 못된 작태는 아마 식민시절, 또 조선 후대를 통틀어 아주 자주 벌어졌으리라 짐작되죠, 한영주가 임실댁을 괴롭히며 끝내 죽음에 내모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과 가족이라는 건 사회의 가장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며 임금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인륜의 토대입니다. 이게 흔들리고 욕보인다는 건, 이미 국가 체제가 존립할 근거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그러했으며, 소설에서 교차 등장하는 군사 독재 체제가 그러했습니다. 권력의 썩은 마각은 성(性)을 통해 기층 민중의 가장 약한 부분을 침투해 오는 것입니다. 

"개인이 갖추고 누려야 할 인권이니 인격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사치에 불과했으며 억압과 착취를 통해 인간의 존재성을 망각시키고 있었다.(p236 일부 문장 변형 인용)" 이런 악질의 사기꾼들, 독재자들은 21세에도 엄존하며 그 진영의 좌우를 가리지도 않고 어디서건 출몰합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하여 압제와 사취, 뻔하고 상투적인 수작에 저항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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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베스트셀러의 마케팅 법칙 - 세계에서 가장 잘 파는
두번째 월급.보표.정현군 지음 / 호우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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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처음에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으나 이후 안 파는 게 없는 백화점, 소매업의 거인으로 우뚝 서서 이제 세계 최고 레벨의 시총을 자랑하는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안 팔릴 법하던 물건도 아마존의 손을 거치면 매혹적인 상품으로 둔갑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마케팅의 힘이라는 게 아마존의 성공 사례를 통해 유감없이 증명이 된 셈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남김없이 팔아치우는 마법의 마케팅이 가능할까요?  

한국의 마스크팩은 중국어로 面膜(면막)이라 부릅니다. 그저 어디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상품인데 동북 3성에서는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사용이 일상화한 제품도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 가면 다소 낯설 수 있는데, 이럴 때 그 사용법을 가르쳐 주면 장벽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판매량이 급증라기도 합니다. p40에 보면 여드름 패치, 세럼 스틱처럼 한국에서는 중학생들도 친숙하게 사용하지만 외국인들은 낯설어하는 제품들을, 어떻게 시장에 한껏 가까이 다가서게 했는지 그 비결이 사진들과 함께 소개됩니다(뒤 p164에도 또 나옵니다). 정수 필터가 달린 스트로의 마케팅 사례도,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진 한 장의 위력을 일깨웁니다(p41에도 나오고 뒤 p232에도 다시 짚어집니다).  

"키워드는 역할에 따라 메인, 핵심, 추가로 구분된다(p80)." 이미지가 대개 환기, 감각의 영역이라면 텍스트는 구매에의 최종 결정을 내리게 하는 방아쇠 노릇을 합니다. 브랜드명, 제품군, 개별제품 특징을 간결히 넣는 타이틀의 모범적인 구조가 다음 페이지에 바로 나옵니다. 이렇게 카피와 문구를 배치해야 사람들이 사고 싶겠구나 하는 수긍이 절로 듭니다.    

"소비자는 일단 관심이 없고 정말 바쁘다(p79)." 맞는 말입니다. 우리들도 이런저런 광고(그 중에는 정말 요긴하고 유익한 메시지도 있습니다)를 보고 얼마나 짜증부터 내고 봅니까, 일단은요. 우스운 건, 우리들도 대부분은 남들에게 무엇을 팔아야만 살아남는 회사에 다니면서 열심히 뭔가를 팔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나는 남들의 노력에 관심없으면서 나만은 누구한테 뭘 악착같이 팔려 든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남의 주의라도 일단 끄는 일이 그만큼이나 어렵다는 겁니다.   

똑같은 소릴 하면 누구나 지겨워합니다. 반면 그래도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발신해야 그 중 한 번이라도 제대로 도달이 이뤄집니다. 책에서 말하는 건 반복과 변화입니다. 웬만큼 매혹적인 메시지가 아니라면 반복을 해야 상대의 뇌리에 남고, 그게 혐오스러운 지경까지 안 가려면 변화를 줘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마케팅에 한정된 게 아니라 효과적인 소통 일반의 원리입니다. 이걸 강조하다가 연관이 된 다른 것도 한번 슬쩍 찔러넣기가 가장 모범적으로 구현된 마케팅의 장(場)이 바로 아마존입니다. 

"그냥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오감을 만족시켜라(p102)." 가장 대박인 게 바로 이런 제품이겠는데, 제품 자체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이런 경우에도 마케팅의 지분이 크다는 게 의외라면 의외입니다. 고작 토스트기 하나가 30만원인데 그걸 누가 산단 말인가? 상식을 뒤집는 발뮤다의 성공은 바로 소비자의 토탈 만족을 이끌어내는 데 기인합니다. 최고급 고성응 쥐덫은 아무도 안 산다고 하지만, 발뮤다는 토스트기 하나를 갖고 직장인 아침 시간에 전에 없던 활력과 운치를 불어넣었습니다. 하이엔드 토스트기라는 건 확실히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혁신입니다.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한 캔커피인데 뭔가 다른 만족을 주는 몇몇 브랜드가 어떻게 마케팅을 했는지도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있지요. 

화장품 광고를 무조건 미남미녀 모델이 한다는 것도 공연한 선입견입니다. p124를 보면 장수 브랜드는 소비자 페르소나가 결정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광고를 보고 아 저 제품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쓰는 거네?하고 동질감을 어떻게 주느냐가 이 페르소나 형성의 핵심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찌르면 안 되고, 제품의 특성에 맞는 정밀 타기팅(targeting)이 필요하다는 말 역시 잊지 말아야 하겠네요. 책에 자세히 나오는 듀드의 사례는 정말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남성 전용 물티슈라니 그게 어디 팔릴 법한 카테고리이겠습니까? 이런 걸 갖고 없던 시장 하나를 만들었으니 장사는 정말 이렇게 해야 합니다. 

뭘 누구한테 팔아먹으려면 내 입장이라도 이건 사고 만다는 자신감이 판매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품질에 대한 확신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저자극, 무독성, 천연성분, 친환경을 내세운 핑크 스터프(p182)는 이런 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꼽힐 만합니다. 이렇게 품질이 좋아야 소비자들로부터 후기가 쇄도하는 선순환이 이뤄집니다. 

소비자의 경험이 중시되고 피드백을 통해 적극 (재)활용되어야 하며, 그 제품은 다른 경험으로 손쉽게 이어지도록 확장하되 그 전략은 철저히 데이터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마케팅에 있어 감각과 직관은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 시장에는 이미 충분한 데이터가 구해진 상태이므로 이걸 무시하고 감에만 의존하는 건 무모함과 직무 태만의 소산입니다. 심리를 파고들되 전략은 철저히 과학이어야 한다는 점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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