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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지표 - 주식 차트나 기업 실적보다 더 중요한 경제 흐름 읽는 법
에민 율마즈 지음, 신희원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인플레라는 건 본질적으로 물가의 상승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여럿을 꼽습니다만 현재 우리가 겪거나 앞으로 겪을 것이라 우려되는 인플레이션은, 튀르키예 출신, 일본 주재 경제 저널리스트인 에민 율마즈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입니다. 당연한 지적이긴 하나, 사실 경제에 충분한 활력이 돌면 돈이 많이 풀려도 큰 지장이 없고 오히려 활황을 돕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지금의 인플레이션 위기 원인을 멀리 1987년 블랙 먼데이 사태까지 거슬러올라가 돌아보는데, 물론 그때 풀린 돈이 지금까지 회수가 안 되어 말썽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동안에 인류 역사를 바꿔 놓은 혁신(과 그를 통한 경제적 효용 창출)이 얼마나 있었는데요. 당국은 그때 이후로, 실물 경색과 침체 심리의 조짐이 보이기만 하면 바로 돈을 풀어서 해결하는 나쁜 버릇이 들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그때가 시초이고,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대폭락 당시 (경기를 부양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버블 퇴치를 명분으로 금리 대폭 인상, 긴축 정책을 단행했었는데(당시로부터 십 년 전 미국 폴 볼커를 그대로 따라해서) 이게 중환자의 체질 강화가 아니라 외려 호흡기를 뗀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은 이때 비로소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저자분은, 일본이 그때 호되게 데여서 지금까지도 웬만하면 완화를 유지하지, 돈을 거두어 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각각의 이유로,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큰 파장을 부를 만한 대질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민대응하여 돈을 지나치게 풀었다가 자국은 물론 세계적 범위의 인플레이션 사태를 불렀다(혹은, 그러기 직전이다)라는 게 이 저자의 입장입니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게 사리에 맞으므로 수긍이 가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현재 미국(연준)은 대중의 예상을 깨고 피보팅을 하지 않은 채 고금리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베이비스텝으로 금리를 올릴 기색마저 보입니다. 물론 정말로 올렸다가는 그날로 증시가 박살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차이나프리 상태로 살아야 하니 저가생필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고, 그 상태를 견뎌내려면 시중에 돈이 많이 돌아선 안 되기 때문에 긴축으로 가는 건데 서민들은 힘들어질 게 뻔합니다. 이래서 꽁돈 좋아하는 경제는 망하기 십상이라는 거죠. 받을 당장에는 좋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이른바 경제전문가들의 진단이나 조언은 믿을 게 못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한국에 그렇게나 경제학자, 전문가들이 많았건만 단 한 명도 그런 엄청난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예측을 척척 해내기에는 실물경제에 변수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무능해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혹 정확하게 봤다고 해도 그런 말을 구태여 공개적으로 표명할 유인이 없는 것입니다. p27에도 보면 그런 말이 나오는데, 설령 개별 애널리스트가 다르게 봤다고 해도 대외적으로는 하우스 오피니언(한국 증권사에서도 이런 말을 씁니다)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혼자 바른말을 못합니다. 상식적으로, 괜찮은 정보가 있으면 지가 영끌해서 지가 다 먹지 그걸 뭐하러 알지도 못하는 사람(아는 사람이라고 해도)에게 뿌리겠습니까?
아무튼 그래서, 저자는 대중들이 이른바 전문가나 기관이나 미디어의 말을 믿을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이 험난한 세상의 파고를 헤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언을 합니다. 난파선 잔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생존의 희미한 가능성만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어떤 멀리서 비추는 등대의 조명이라도 있어야 하겠는데, 그게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경제지표들입니다. 적어도 이것만이라도 챙겨서 효과적으로 각자도생하자는 뜻이겠습니다.
지표도 선행지표라 볼 수 있는 게 있고 후행지표가 따로 있습니다. 사실 보는 관점, 활용하려는 목적에 따라 다른 것이며 어떤 고정된 선행지표, 후행지표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p78을 보면 예를 들어 GDP의 경우 본질적으로 경기 후행지표이지 이걸로 한 국가의 경제 장래가 어떠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GDP통계는 거시 경제 전반에 대해 매우 세부적으로 커버를 하므로 이를 통해 현재(직전 과거)의 일국 산업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진로를 (눈 밝은 사람이라면) 내다볼 수는 있습니다. 실적발표를 낸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기도 하는 현상(선반영, 이익실현심리)과 매우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경제관련뉴스에서 ISM 제조업지수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대체로 50을 넘으면 경기 확대, 그 밑이면 경기 후퇴라는 게 이 지표를 해석하는 상식적 기준입니다. 이 지수는 특히 제조업 관련하여 비교적 적실성이 높은 편이나, 사실 설문조사 기반이기 때문에 특별한 물적 근거를 갖고 예측력을 발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 각 기업에서 책임 있는 포지션의 담당자들이 무슨 전망을 갖는지를 대량 취합하여 어떤 개략적 결론을 도출하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요즘 미국 경제 뉴스는 국내 뉴스하고 아무 차이 없을 만큼 관심이 집중됩니다. 시차 때문에 밤새(한국 기준) 당국에서 무슨 발표가 났다 제롬 파월이 무슨 소리를 했다 등을 CNN이나 유튜브 관련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 봅니다. 아마 그 중에 제일 잘 알려진 게 CPI일텐데, CPI도 종류가 있다며 주식카페에 가면 사람들이 자기 주민번호처럼 줄줄 뀁니다. 책에서도 "마지막으로 챙겨봐야 할 지표"라며 강조합니다(물론 책에서 설명상 마지막 순서라는 뜻이겠습니다만). 특히 이 책의 메인 테마가 인플레이션이니 만큼 더 주제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 지표입니다.
저자가 일본 주재원이기도 하고 그래서 일본의 상황이나 과거 선례, 지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도 일본의 통계는 작성 과정이 매우 꼼꼼하고 응답자들이 진지하게 참여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습니다. 책에서는 그 대표로 일은(日銀)에서 발표하는 단칸 지수를 드는데, 그 중에서도 업황 DI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저자의 말씀은 물론 개인 견해에 그치지 않고 일반적인 타당성까지 갖지만, 또 일본의 뎡제적 저력은 오랜 역사 속에 구축되었으므로 언제든 잠재력이 폭발할 개연성이 높지만, 실제로 세계 경제의 흐름과 일본의 동향은 다소 유리된 감이 있기에(과거에는 아니었죠) 일본의 지표로 세계 경제의 트렌드를 예측한다는 게 다소 고개가 갸웃해지는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물론 통계를 다루는 입장에서는 아주 이쁜 머티리얼이죠). 사실 일본은 이제 부를 충분히 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세계 흐름에 연동되지(혹은 좌우되지) 않고 갈라파고스에서 자기들끼리 잘 살겠다는 선택을 했다고도 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간 당장 북한처럼 되죠.
책에도 나오듯이 ASML은 네덜란드 기업이고 얼마전 이재용 회장이 직접 방문하기도 할 만큼(그래서 국내 투자자들도 그 이름을 다 아는), 반도체 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보유한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는 이처럼 못 따라할 기술을 갖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키를 지녔던 나라이긴 합니다. 발틱 운임 지수, 장단기 금리 역전, 독일의 IFO, 인도와 브라질의 특정 섹터에도 주목하라고 합니다.
이 책 곳곳에서 강조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전환점"입니다. 거시경제든 개별 종목이든 전환점만 잘 짚으면 저점에 사서 고점에 파는 투자자의 최상급 판타지가 언제 어디서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믿을 것은 나 자신의 처지에 최적화한 개별 생존 전략임을 알고 누구의 주관에 의해서 쉽게 왜곡되지 않는(대체로는) 통계와 지표를 일상적으로 체크하고 해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