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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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역사를 이야기 형태로 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정도가 사실에 부합하고, 어디서부터가 왜곡 과장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힘듭니다. 고고학적 증거는 그 자체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주제이지만, 역사적 진술이 과연 팩트인지 아닌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수단 구실도 합니다. 어쩌면 영원히 답이 나오지 않을 만한, 이미 확정적인 미궁에 빠져버린 문제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 정답은 있지 않겠겠냐는 확신 하에 탐구를 이어 가는 학자들의 분투는 위대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프랑스도 그렇고 의외로 닭이라는 동물이 "상서로움"을 상징(p68)하는 문명권이 많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금성, 서라벌, 나중에는 동경 등으로 불렸는데 별칭 중 하나가 계림이며 이때의 계 자가 닭 계(鷄) 자입니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달걀은 식용이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고 책에 나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인용하여 천축국에서 신라를 어떻게 불렀는지가 설명되는데, 그들 식으로 바꿔 부른 명칭에 그렇게나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닭을 숭배하고 귀하게 여긴 문명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는 게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이어, 세계 최초로 닭을 가축화한 고고학적 증거가 중국 허베이성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해당 주장이 물적 증거까지 얻은 최근의 현황을 알려 줍니다. 또 한국에서는 의외로 닭을 가축으로 사육한 지가 오래지 않았고 오히려 쉽게 사냥할 수 있었던 꿩 식용이 흔했다고 나오네요. 우리가 토종닭이라 아는 종은 허베이성이 아니라 한참 멀리 떨어진 운남성 출신이라고 하니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운남성은 원나라 대에 와서야 중화 제국에 완전히 편입되니 말입니다.     

생선은 몸이 해로운 물질이 적은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기 때문에 인류가 즐겨 섭취해 왔습니다. 그러나 변질이 쉽고 운송이 어려워 많은 이들이 식용으로 쓰지는 못했는데, 훨씬 후대에 들어 고작해야 염장을 해서 보관하는 정도였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생선을 먹었던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삼한 시대에 들어서야 사람들이 해산물을 즐겨 먹은 흔적이 나오는데, 한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듯 상어 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한국 컨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몇 년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p95에도 나오듯 인간의 놀이 문화는 그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오락 전용이 아니었고, 장차 전사로 자라날 후속 세대를 약간 잔인한 방법으로 교육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p97에는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에 남은 암각화가 사진으로 소개되는데, 다리가 O자형으로 휜 것도 말에 탔을 때 몸에 밀착하여 중심을 잘 잡기 위함이라 하니 좀 놀랍기도 합니다.  

원작국인 일본뿐 아니라 한국, 나아가 서양에서까지 큰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는 주인공이 영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그 원형을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로 꼽습니다. 사람은 한 곳에 평화롭게 정착하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아주 낯선 곳을 애써 찾아 떠나고 방랑하기를 꿈꾸기도 하는 묘한 존재입니다. 저자는 이런 여행 본능을 통해, 인류가 진화, 생존, 번영, 나아가 안식이 가능했다고 규정(p145)합니다. 한 곳에만 안주하는 개인이나 문명은 결국 퇴화, 피폐화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영생에 대한 갈망은 p284 이하에도 자세하게 논급됩니다. 

동물들은 그저 배를 채우고 비바람과 추위로부터 해방되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습니다. 놀랍게도 인간만이 형이상학적 욕구를 가져 문제 해결이나 초월을 갈망하기도 하고, 사치나 장식 등 따로 미적 욕망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의 제3부 주제와 제목은 "명품"인데, 실크, 황금, 금관, 인삼 등이 주요 토픽입니다. 특이한 건 이 3부의 첫째 토픽이 "석기"인데, 석기가 명품과 무슨 관계일까 싶어도 흑요석 등으로 만들어진 석기는 도구 이상의 노릇을 했으니 그리 평가받을 만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 독자들이 주목할 대목은, 20세기 중반 미국 고고학자 뫼비우스가 동양의 석기를 두고 조악하다 평가하여 지능이나 문명화 척도 이슈로까지 비화할 여지를 암시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일단 한반도에서도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반례가 생겼고, 애초에 차돌 등이 많아 가공이 어려운 환경에서 찍개 위주로 발달한 사정을 고려치 않은 독단론이었다며 비판(p181)합니다. 인종차별이 깔린 선입견과 편견은 학문 발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입니다. 

메타버스가 별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꾸곤 하는 꿈이 바로 메타버스(p262)라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이 메타버스를 예술로 표현한 게 바로 유적들에 남아 있는 옛 사람들의 (일견 투박해 보이는) 그림과 조각들이며, 고려의 <수이전>을 보면 실존 인물 최치원이 귀신 자매와 연애를 하는 사연이 나오는 등 꿈과 현실은 본래부터가 동전의 양면처럼 인간의 의식, 나아가 존재를 규정해 왔습니다. 

21세기 한국에도 대학가 등 골목마다 보이는 게 사주카페입니다. 물론 젊은 세대가 정말로 미신이나 운명론을 믿어서가 아니라 유흥이나 오락을 즐기는 심리가 다분히 작용했겠는데,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점복(占卜)에 대해 그 이유를 고찰합니다. 이는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간절한 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며, 천문학도 본디 점성술에 약한 기원을 두었다가 오늘날처럼 자연과학적 본질을 갖추게 발달한 것입니다. 이런 욕구를 발전적으로 승화하는 지름길은, 인간과 인간이 섬으로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보다 큰 존재로 거듭나는 데서 가능하다고 저자는 마무리하며, 이는 이미 우리들의 조상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보여 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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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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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은 이미 1980년대부터 많은 베스트셀러 시집을 내시고 한국인들의 척박해진 마음을 고유의 맑은 시심으로 어루만지신, 국민 시인이라 불려 손색이 없으신 그런 문인입니다. 수녀님의 작품은 남녀노소 누가 읽어도 마음에 바로, 쉽게 와 닿으며 공감되는, 탁월하고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는 언어로 이뤄졌다고 평가 받습니다. 긴 말이 필요 없이, 수녀님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눈의 먼 시야가 절로 트이는 듯 상쾌한 감동을 누구나 느끼게 됩니다. 오랜만에 나온 이번 신작 시집은 출판사 열림원에서 예쁘고 자그마한 양장본으로 나와서 소장 가치를 더욱 높이는 듯합니다. 

p36의 <여름일기>. "누가 건네주는/메o나 아이스크림/빛깔이 마음이 들어/기쁨 또한 연둣빛으로/녹아버리네" 작품 중에 언급되는 어떤 바형 아이스크림은 정말 오랜 세월 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인데, 맛도 좋지만 그 독특한 향과 색깔도 인기의 요인 중 하나인 듯합니다. 기쁨이란 게 누군가의 마음에 고형(固形)으로 남기만 해서는 그것도 곤란하며, 마음에 스며들어 오래 남게끔 "녹아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녹아든 기쁨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파도 빠를 것입니다.  

p49의 <꿈 일기 I>. 어쩌다가 꿈에, 오랜 동안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지인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사회 생활이라는 게 다 그래서, 회사에서 매일같이 보는 동료나 상사는 지긋지긋한 진상일 경우가 많은 반면, 꼭 만났으면 하는 그리운 사람은 어쩌다 마지막 연락처까지 없어진 상태입니다. 이런 사람은 혹 만난다 해도 뭔가 쑥스러워서 마음에 있는 말을 면전에서 차마 못 하는데, 꿈에서는 그 못 할 말을 남김없이 건네곤 합니다. 그래서 "꿈을 깨고 나서도 생생해서/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입니다. 고작 꿈에서 봤을 뿐인데도 이렇게 반가운 그 사람, 언젠가는 정말로 만나 보고 말 것입니다. 

p65의 <얼음 예찬>. 어리셨던 시절 수녀님의 별명은 "얼음공주"이셨다고 합니다. 책표지에 나온 사진의 이미지도 그렇고 우리 독자들로서는 좀 상상이 안 되긴 하지만 여튼 사실이니까 담담하게 털어 놓으시는 모습에서도 확실히 쿨하시고 소탈하신 수녀님의 면모가 확인됩니다. ㅎㅎ 우리 같으면 누가 흉이라도 볼까봐 안 꺼낼 얘기인데도 말입니다. 여튼, 어느 수녀님께서 선종하시기 전 마지막 소원 삼아 입에 한 조각 넣어 달라고 하셨다는 얼음 한 조각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망인의 입 안에 금화 한 닢을 넣어 저승의 뱃사공 카론에게 줄 노자로 삼게 했다고 하죠. 입 안에 들 얼음은 살아서는 금세 녹아 없어질 운명이지만 죽어서는 육신의 선도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게 돕는 매체일지 모릅니다. 서늘하면서도 정신의 열기를 꺼지지 않게 돕는 얼음의 본성에서, 우리 역시 정열과 냉철함 사아 균형을 잡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96의 <노년 일기>. 젋은 시절 찍은 사진은 아 나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같은 애상에 잠기게 하는, 약간은 덧없고 슬픈 감정의 촉발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녀님께서는 젊어서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혜로우셨기에, 현재의 나에게 "자연스러워요, 괜찮아요. 원래 그런 거에요."라며 의젓하시게 위로를 건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들도, 젊었을 때 생각 외로 수녀님처럼 생각이 깊었는지 모릅니다. 그때도 덤덤하게 수용했다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뭐가 더 서럽거나 조급해질 이유도 없습니다.  

얼굴이 잘 붓는 이유는 의학적으로야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상식으로 퉁치면 몸 여기저기에 독소가 많아서일 수 있습니다. p113을 보면 작품 <독을 빼는 일> 속에, 수녀님은 인생 곳곳에서 터득한 통찰과 지혜를 표현하십니다. 약을 복용하고 독을 빼면 정말로 그만큼 깨끗해지는 걸까? 수녀님은 당연해 보이는 이치에도 오히려 의문 한 점을 품습니다. 어쩌면 내 안에 남은 독도 나의 일부이며, 얼굴이 붓든 빠져서 핼쑥해지든 그 모두가 내 살아온 흔적이요 정직한 자국입니다. 마음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순수에 합일해야 몸의 독소도 진정으로 제거되는 것이며 약을 써서 일시적으로 제거한다 한들 그 자리는 도로 채워질 수도 있습니다. 

p193에는 <의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환자들은 의사에게 슈퍼맨을 기대합니다. 자신의 고통이 너무 크니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데, 그렇다 해도 어떤 환자들은 너무 심합니다. 그래도 아픈 사람을 낫우는 직분인 의사는 부당한 상황도 운명적으로 감수해야 할 때가 많겠는데, 수녀님도 자연스럽게 시적 화자인 의사의 내러티브를 취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조차 괜한 오해를 받곤 할 때 걀국 기댈 곳은 절대자의 주재입니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착해지면 공연히 신의 이름을 부를 필요도 적어질 텐데 그게 그렇게나 힘들어서 더욱 부끄러워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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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 분석의 기본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이야기
이시이 신이치로 지음, 김선숙 옮김, 박지혜 감수 / 성안당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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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도 나오듯, 이 책에서 동작 분석이라 함은, 환자의 동작 패턴을 관찰하여 동작 장해(障害)의 원인을 특정해 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다시 p26을 보면, 이 책의 제목과 컨셉에 끌려 펼쳐 든 이들 중 상당수는 아마 직업으로써 물리치료사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추측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동작 분석"이라는 말 안에 이미 "환자"라는 말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책은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의 전망에 대해, 아주 유망하며 로봇이나 AI에 의해서도 쉽게 대체되기 힘든 분야라며 강력하게 추천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저는, 물리치료사 지망생 외에도, 허리가 아프다거나 자신의 자세 때문에 이런저런 질환이 있던 분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법에 대해 혼자 연구해 보기 위해 이 책을 골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운동 선수를 지도하는 여러 종목 코치 같은 분들도 이 책에서 참고할 부분이 많겠다고도 싶었습니다. 

이 책은, 동작의 기본단위를 "체절(體節)"로 삼습니다. 뒤집기 동작의 경우, 머리의 움직임을 최초 기본 동작으로 삼아 이뤄진다고 합니다. p43에 뒤집기 동작이라는 게 어떤 순서로 이뤄지는지가 자세하게 나오는데,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어려서부터 해 오던 것이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하나하나 차례를 매기고 분석하면 이렇게나 복잡하구나 싶었네요. 이처럼, 체절 단위로 동작을 분석하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어느 단계서 문제가 생기길래 환자가 특정 동작이 안 되는 건지,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서 치료에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p50 같은 곳에서부터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뒤집기 동작이 가능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분석되는 거죠. 두경부를 조금 굽히는 게 공통적인 시작점인데, 견갑대(어깨)와 상지(팔)이 아프면 이 동작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부위들의 자그마한 통증, 질환도 뒤집기 동작을 방해한다는 거죠. 또 뒤집기의 중추는 척추의 회전(p54)인데, 골반과 하지(다리)가 이 상부 체절을 떠받치는 무게 중심이라고 합니다. p55에는 외복사근, 내복사근의 자세한 구조가 그림을 통해 설명되는데 "위에서부터 아래 방향으로 뒤틀림이 해소되는 과정"이 이걸로 명쾌하게 납득이 되네요. 

뒤집기를 예로 들면, 맨먼저 머리를 움직인다고 했었습니다(실제로 우리가 해 봐도 그렇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회전력이 부족하면 이렇게 안 된다고 나옵니다. 다른 데에서 동작을 시작하고, 일반인이 보기엔 부자연스럽거나 불필요해 보이는 동작(이런 걸 책에서는 보상 동작이라고 합니다)을 한다고 그러네요. 하긴 우리들도, 몸이 어디가 일시적으로 안 좋다거나 했을 때 이 비슷한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일어나기 동작"은 뒤집기의 발전형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일어날 때에는 바닥에 손을 짚고 몸통을 지탱하지 않는다(p74)." 이 설명은 측와위(옆으로 누움)에서 일어날 때를 전제로 할 때입니다. 말로 하면 살짝 헷갈리지만 바로 다음 페이지 하단에 그림과 함께 설명이 나오므로 누구라도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또 이런 동작은 우리가 살면서 다들 거치는 것이므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 그렇겠구나 하고 납득이 되지요. 

여기서도, 예를 들어 편마비 환자(중풍 등)는 과잉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p90). 또 구태여 난간 같은 걸 사용해서 일어나려 든다거나, 균형추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게 다 이런 경우의 두드러진 증상이라고 합니다. 아래쪽 팔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도 대표적인 예후입니다. p100에는 FIM이라는 지표를 사용하여, 과연 재활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잘 못 드는 환자들의 경우(p128), 특히 발관절의 발바닥쪽 굽힘과 근육의 과긴장 상태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특히 이 대목은 뇌졸중 후유증을 겪는 분들이라든가, 간병인들이 특히 유념해서 봐야 할 듯합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거의 매 섹션마다 자세를 표현한 그림들이 많이 삽입되어, 그림만 봐도 이 단원에서 뭘 설명하려는지가 쏙쏙 잘 들어온다는 점입니다. 

p136에는 운동기능이 저하되었을 때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가 잘 설명됩니다. 근육이 줄어들면 예를 들어 앉았다 일어설 때 갑자기 어지러움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근감소증(sarcopenia)에 대해서도, 그리스어 어근 설명과 함께 우리 일반인들이 꼭 알아둬야 할 내용만 요령껏 잘 소개되었네요. 특히 제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내용은 제6장 걷기 동작 단원이었는데, 사소해 보여도 어떤 이상 동작이 나타날 때 이 부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 비교적 구체적이라서 자가 점검에 일단 유익했습니다. 물론 건강에 이상이 나타나면 전문가와 우선 상의를 해야 하겠지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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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빵을 먹지 마라 - 음식의 노예로 만드는 탄수화물에서 벗어나기
후쿠시마 마사쓰구 지음, 이해란 옮김, 다카스기 호미 외 감수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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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탄수화물 섭취가 몸에 좋지 않다는 상식은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공유합니다. 정제백미가 썩 좋지 않다는 점도 알고, 그렇다고 현미와 잡곡 위주로 먹자니 노년층이 소화를 부담스러워하니, 바쁜 아침은 빵으로 간편하게 때우자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저자 후쿠시마 마사쓰구 원장님은 그런 습관이 대단히 좋지 않다고, 당장 멈추라고 경고합니다. 물론 탄수화물 일반에 대한 주의도 함께 촉구합니다. 일반론뿐 아니라 저자 자신의 임상 경험까지 담았기 때문에 책은 설득력이 매우 높습니다. 보편적인 상식 외에도, 책에서 추가로 배우고 깊이 새겨야 할 바를 제 주관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빵은 특히 위장에 좋지 못한데, 이유는 밀을 가열하여 빵으로 만들 때 훨씬 높은 열을 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옵니다(p44). 어느 경우와 비교하여? 밥과 비교해서 그렇습니다. 높은 열을 가했는데 그게 왜, 어디가 나쁘다는 걸까요? 높은 열을 가하면 AGE라는 노화물질이 만들어집니다. 이는 단백질 혹은 지질(=지방)과 결합하여 세포를 손상시키고 피부 주름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소화나 분해도 잘 안 되고 몸 안에 축적되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또, 아침에 먹는 빵은 혈당을 급격히 높이는데,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아침에 특히 많이 분비되는 게 그 근거입니다. 저자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이 아침에 돋우는 식욕이라는 게 얼마나 유혹적이냐고 하시는데, 이 말씀을 읽고 보니 더 빵이 당기는 듯합니다. 우리네 몸은 왜 이렇게 나쁜 습관만 잘 들었을까요. 

빵이라든가, 혈당을 올릴 수 있는 다른 음식을 아침에 먹어도, 이를 상쇄할 수 있게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운동을 하면 괜찮다고 하는 의견이 있고 우리들도 자주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구태여 빵 같은 걸 아침에 먹어서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게 아니라, 아예 아침에 빵을 먹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합니다. 저도 앞으로는 시리얼이나 식물성 메뉴 위주로 식단을 갖고 가서 저런 위험 자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하겠습니다. p50에 나오는, "원래 우리 몸은 외부에서 매일 꼬박꼬박 당을 섭취하지 않아도 일정 혈당은 유지된다"는 말도 유념해야 할 듯합니다(물론, 당뇨병 등 기저질환이 이미 있는 경우라면 별개의 지침에 따라야 하겠지만요). 

혈당이 높아지면 이자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이에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데, 자동차도 과속과 급정거를 반복하면 일찍 고장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평소에 인슐린 분비 기제를 마구 쓰지 않았다면 몸에 탈이 나도 늦게 날 것입니다. 이 부분이 고장나면 그게 바로 당뇨병인데, 평소에 절제된 식사를 하지 않은 응보이니, 건강이란 아직 괜찮을 때 잘 지켜야 한다는 이치를 단단히 명심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속이 더부룩하다"는 느낌을 평소에 잘 받은 적이 없어서 저는 잘 모르겠는데 많은 분들이 이 증상을 호소하며 위장약이나 소화제를 찾곤 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우리하고 이 점에서 비슷한가 봅니다. p66에 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저자의 경우(다분히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아무리 육류를 많이 섭취해도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들었을 뿐, 더부룩한 느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탄수화물을 이 "더부룩함"의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p85에 나오듯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은 소화되는 시간이 각각 다릅니다. 이것 때문에 소화 기관의 활동이 교란되고, 각종 질환이 유발된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특히 저자는, 단백질과 다량의 탄수화물을 동시에 섭취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또 우리 상식과는 달리, 지질보다는 탄수화물이 역류성 식도염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탄수화물이 위에서 잘 소화된다"는 상식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주장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이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과거에는 정제백미 식단이 타 메뉴에 비해 소화가 잘 되고 맛도 좋은 편이었던 반면, 현대에는 육류도 비교적 먹기 좋게 잘 조리되어 나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저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여튼 책의 소결론은, 지방도 지방 단독으로 먹으면 소화가 딱히 잘 안 될 것도 없다(p95)는 점입니다. 

이상지질혈증, 이것을 예전에는 고지혈증이라고 불렀습니다.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면 비만, 동맥경화가 생긴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LDL이 혈관 벽에 달라붙는 것은, 애초에 혈당이 높아서 그렇고 혈당이 낮으면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LDL은 오히려 범인 잡는 경찰인데 범인 누명을 쓴다는 저자의 재치 있는 비유(p142)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이상적인 한 끼니를 일즙삼채, 즉 국 한 그릇과 반찬류 3종이라고 전통적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이 그리 건강에 좋지 못한 식단이라고 비판합니다. 흰쌀밥은 밥그릇의 1/3까지만 먹으라고 합니다. 50g이 가장 적당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가급적이면 주식 개념을 없애고, 밥 한 공기를 식단에서 아예 빼자고까지 합니다. 현미 역시 백미에 비해 건강식품이라는 것이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게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결론은 그냥 반찬만 먹는 게 가장 좋으며, 가열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생선회가 권장할 만하다고 합니다. 지중해 사람들의 습관을 소개하며, 해조류나 조개류를 적극적으로 섭취하면 좋다고도 나옵니다. 

단백질뿐 아니라 지질 역시 뇌의 에너지원이며, 다이어트 중 채소 쥬스를 잘못 섭취하면 고혈당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그간 건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바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내용이 많아서 아주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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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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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인호씨는 1970년대에 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였으며, 책날개 설명에도 나오듯 서울고 2년 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낸, 비상한 두뇌와 감성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활동 기간 전체에 걸쳐 엄청난 다작을 한 분인데, 스스로도 어느 인터뷰에서 "제가 원래 괴물이었어요."라고 밝힌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랬던 그가 10년 전에 타계했고, 당시 이문열 작가도 아쉬움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문열씨와는 불과 세 살 차이인데 최인호 작가가 워낙 이른 시기에 데뷔했고 적어도 양적으로는 이문열 작가를 압도하는 활동상이었으므로 마치 세대 자체가 다른 양 착시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여태 책좋사 책프에 그의 작품을 24기 48주차, 25기 14주차, 25기 24주차 등 세 차례에 걸쳐 리뷰하기도 했습니다. 

"누굴 물로 보냐?", "물 먹었다" 같은 말이 있을 만큼, 원래부터 깨끗한 물이 흔했던 한국에서는 알맹이 없고 시장가치도 부족한 걸 두고 "물"이란 보조관념을 자주 씁니다. 아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려면 고급 한우 세트나 백화점 상품권 같은, 시중에서 쳐주는 아이템을 흔히 떠올리지만 최인호 작가는 어느 사제로부터 물 한 통을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냉수 마시고 속 차리라"는 비아냥이 아니라, 수도원 물 맛이 너무 좋아서 들고 왔다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프랑스 3대 고전주의 희곡 작가 코르네유를 인용하며, "선물은 물건보다 그 방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상황과 센스에 따라 물 한 병도 훌륭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다만 이걸 아무나 어설프게 흉내 냈다가는 오히려 욕만 먹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저는 어느 서양 고전을 읽으면서 "자부심에서 유래한 찌푸린 표정"이란 구절을 읽은 적 있습니다. 스스로가 지성인이므로 주위의 "자신만 못한 사람들과 세태"가 한심하고 못마땅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 사람의 자부심과 그런 판단이 객관적으로 옳냐는 건 또 별개 문제입니다). 최 작가의 아드님이 부친더러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미간의 주름을 없애라"고 충고했다는 대목에서, 저는 예전에 읽었던 그 구절의 실제 구현태가 바로 최인호 작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예전 분이므로 제가 미디어나 실물을 본 적은 없으니). 

물론 그저 지극한 작가적 고민의 흔적일 수도 있고 성격의 자취일 수도 있고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인호 작가는, 살벌한 자본주의적 생존 경쟁이 전개되는 한국 같은 곳에서 내심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 같은 경우가 유리할 바는 별로 없었다는 취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물론 독자가 읽기에 재미있었다는 것이고 작가님 본인은 쓰디쓴 체험의 회고일 수 있습니다. 

"신문을 보지 않으니 세상 살기가 편해졌다." 사실 이 구절은, 1970~80년대 내내 어느 신문이건 문화면 연재소설란을 독점하다시피했던 최인호 작가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면 정말 역설적입니다. 글을 읽어 보면 무슨 말씀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최 작가님도 어렸을 때는 세상을 읽고 받아들이는 유일한 창이 신문이었을 테고 신문에 기고하는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스승 격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분이 신문을 끊는다는 게 어떤 뜻인지는 독자가 새겨서 읽어야겠죠. 

그런데,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모든 소식들이 이 정도로 불편해진다면 사실 세상에의 적응이 힘들어진다는 위험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전 정운경 화백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분도 대략 비슷한 시기(20년 전)에 중앙일보의 <왈순아지매> 연재를 중단했었지요. 트렌드가 내게 유쾌하건 불쾌하건 이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므로 도태되지 않으려면 정면으로 대하고 싸우든지 얹혀가든지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로들은 몰라도 젊은 세대라면 대응 방식이 이래서는 곤란하겠습니다. 

애써서 집안을 꾸미는 건 가정주부의 큰 낙 중 하나이며 어쩌면 의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고 큰 위안을 얻습니다. 작가님의 사모님(황정숙 여사. p197)께서는 한국에서도 손 꼽는 살림꾼이셨는데(원로배우 안성기씨 사모님도 인정하셨다고 작가님 며느님이 증언하십니다) 어느때부터인가 방치하시는 걸로 스타일이 바뀌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님이 옮아가는 화제가 기가 막힙니다. 그는 고골리(19세기 작가 니콜라이 고골)와 한용운을 인용하며 하늘이야말로 꾸미지 않아도 최고의 경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지 않냐며, 치장과 정돈에의 강박 역시 인간의 부질없는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며 달관의 경지를 드러냅니다.    

음식은 꾸준하게, 음미해 가며 섭취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인생의 여유와 낙을 알아보는 소치이기도 하고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그런데 최인호 작가님께서는 그런 습관이 안 드신 자신을 자책하시는 듯한 대목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확실히 작가님이나 동시대 어르신들이나 너무나도 바쁜 세상을 살아오셨습니다. 어디 작가님뿐이겠습니까. 작가님의 아드님 세대에 이르러서는, 좋은 음식의 웅숭깊은 맛을 지긋이 음미하며 살아가는 여유가 한국인 다들 몸에 밸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나 속전속결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립의 초례청에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신동엽 시인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이 시구(詩句)를 인용하며, 역사의 큰 흐름을 보고 모든 소아적 갈등과 비생산적 감정을 대승적 민족애로 승화하여 보다 큰 대의를 바라보자고 역설합니다. 책 전체에는 품격 있고 우아한, 인생의 소소하다면 소소한 측면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졌는데 이런 큰 스케일의 교훈을 캐치하고 잠시 숙연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문장이 무슨 한국어의 교과서처럼 정확하고 아름답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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