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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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은 노래가 되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숙박앱 에o비앤비 광고를 보면 배경음악으로 1970년대 가수 한대수씨가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부르는 <행복의 나라로>가 깔립니다. 2015년 5월 이분이 쓰신자전적 에세이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을 읽고 저는 그 독후감을 이 블로그에 남긴 적도 있습니다. 그 책도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가득 담겼었습니다. 청춘기에는 가장 앞서나가던 성향이셨지만 그 외의 취향은 상당히 보수적이시지 않나 하는 짐작도 독자인 제 멋대로 조심스럽게 해 보는데,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책의 부제로도 나오듯) 필름으로 찍은 작품들입니다. 물론 그는 사진작가도 겸업하는 분이므로 작가적 방향성과 완성도를 위해서 이 포맷을 희생할 수 없었겠습니다. 

"삷이라는 고통." 이 책의 제목입니다.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고, 또 무(無)이며 소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상에 태어나 감각적 쾌락을 맛보고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한대수 저자가 자신의 책들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삶의 최고 목적이죠), 무엇인가를 이루고 한세상살이 마감하는 건 누구나 긍정하는 삶의 의의이며 생명체의 의무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저자는 당시 한국에서 손꼽는 명문가에 태어나 아무 아쉬울 것 없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분입니다. 도대체 왜 그는 "삶"을 고통으로 선언하는 걸까요? 

p22를 보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맞은편 페이지를 보면 어떤 흑인 소년이 (아마도 빈민가에 소재한) 집 안에서 허술한 방충망이 깔린 창 밖으로 힘없이, 그러나 약간의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시선을 주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문장은 다시 영어로도 반복되는데, 이 문장이 좀 묘합니다. We are all sentenced; to life. 만약에 이 문장에서 세미콜론(;)이 빠졌다면, sentenced to life는 그냥 "종신형을 선고받은"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문장부호(;)가 저렇게 하나 들어가면서,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감옥에 갇혔다"라는 묘한 뜻으로 다시 읽히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욕심, 집착, 미움... 삶이 이처럼 비생산적이고 불건전하고 소모적인 요소로만 가득하다면 과연 감옥살이, 그것도 죽을 때까지 출소가 안 되는 수형의 신세에 다름 아니겠습니다. 

미국에서도 명문 학교만 다니던 그는 뉴햄프셔 주립대를 그만두고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조부와 부친에게 선언했습니다. 부친께서는 "사진은 취미이지, 직업이 아니지 않니?"라며 만류했다고 합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니 당장 알바를 해야만 했는데 NYT 광고란을 뒤져 그가 구한 자리는 레스토랑의 이른바 드링크맨(드렁큰맨이 아닌!)이었습니다. 업소에서 내건 "용모단정" 요건을 층족시킨 그는 바로 채용되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재클린 케네디, 앤디 워홀, 페이 더너웨이 등을 화장실에서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래서 크게 될 사람은 하다못해 알바를 해도 큰물에서 놀아야 하나 봅니다. "하하! 돈은 버는 사람만 번다!(p65)"  

p79 이하에는 서울 창경원(당시 명칭)을 비롯하여 마치 개발 도상국 같은("같은"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던) 서울 곳곳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죽 이어집니다. 1969년이면, 현 75세인 그가 스물 한 살이던 시절입니다. 어느 허름한 식당(주류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인 듯)의 간판은 "전주집"인데 물론 이곳도 서울 소재입니다. 빨래가 널린 이유는 장식이 아니라 빨래를 햇볕 가득 말릴 공간이 거기밖에 없어서였겠습니다. 1969년은 그만큼이나 아득히 먼 멀티버스였습니다. 그리고 p173 이하를 보면 바르셀로나(2004), 뉴욕(2002)의 가난한 예술가 혹은 홈리스들이 곤경 속에서도 눈빛을 번득이는 사진이 이어지네요. 동시대인 듯 아득히 먼 시간과 공간. 

p121을 보면 그 가난한 서울에서도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이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수줍어하거나 어색해하는 기색이 없고 당당히 렌즈를 응시하는데 "응, 뭐지?"라고 하는 듯한 당돌함이 그 표정에 배어납니다. 만약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했으면 저런 표정이 안 나왔을 듯합니다. p125를 보면 지게처럼 보이는 어느 도구를 도로변에 세워 두고 그 위에 올라읹아 잠이 든 어느 노동자의 고단한 모습 뒤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갑니다. 지게와 자동차라니 묘한 콘트라스트입니다. "캉가루구두약"이라고 특정 상표(당시)를 크게 써붙인 리어카를 끄는 서울의 중년 남성은 마치 중국의 인민복 차림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p235 이하에 이어지는 사진들은 2002년 베이징에서 그가 찍어논 것들입니다). 

아무래도 한대수씨 같은 분은 군에서도 그 특기를 살려 참모총장실 영문연설 작성직으로 배치가 되곤 했나 봅니다. 당시 복무 기간이 무려 3년 3개월! 제대한 후 약혼녀 김명신씨(한대수씨의 팬들은 이분을 다 알기를, 마치 존 레논에게 오노요코가 있었던 것과 비슷할 만큼이죠)과 결혼하고, 불 같이 사랑하고, 20년 후에 드라마처럼 헤어졌습니다. 1992년에 옥사나 여사와 재혼해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p276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야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의 청년 시절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고 이에 반대하는 히피들, 플라워 칠드런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2022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지금 이순간에도 아무 의미 없는 테러와 폭력이 반복된다고 그는 고발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필요해도, 지구는 우리가 필요없다." 그저 불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중은 아닌지, 공멸로 치닫는 폭주를 이제는 멈출 때입니다. "나는 괴롭다. 고로 존재한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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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30 Days 태국어 문자쓰기 + 기초문법 - 플러이쌤과 함께하는
조나경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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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어는 근래 한국 회사들의 현지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학습자가 부쩍 늘어난 듯합니다. 일단 인근 베트남 등과는 달리 로마자가 아니라 고유 문자를 쓰다 보니 접근부터가 좀 어렵습니다(물론 로마자를 쓰는 베트남어도 직관적으로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체계는 아니지만). 따라서 초심자라면 일단 글자 한 자 한 자가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배워야 길거리 간판이나 가게 매뉴라도 대략 알아볼 수 있고, 마치 초등학생에게처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교재(혹은 코스)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일단 그런 점에서 초보자의 심적 부담을 엄청 덜어 줍니다. 

동영상 강의는 무료로 제공됩니다. 또 동양북스 사이트에서 무료로 mp3 음원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pdf 파일로 된 쓰기노트도 제공되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에 매우 중요한, 소리내어 크게 읽기 과정과 쓰기를 손수 해 볼 수 있어서 유익합니다. 

문법이나 철자도 중요하지만 사실 태국어처럼 우리 한국인들에게 아무런 스키마가 마련되지 않은 언어는 공부 초입에 학습자들한테 대략적인 쌩 기초를 마련해 주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p8을 보면 한국의 세종대왕 격인 쑤코타이 왕조 제 3대 왕인 람캄행이 1283년에 태국어 문자를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1443년에 한글을 창제했으니 160년 앞서 만들어진 셈입니다. 

우리가 영어 처음 배울 때, 한국어와는 달리 S+V+O(또는 C) 형식이 기본이라고 배웠습니다(혹은 그의 변형). 태국어도 문장의 형식(혹은 어순)은 (우연히도) 저 영어와 비슷합니다. p9를 보면, ฉันกินข้าว라고 해서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을 배웁니다. 우리말처럼 어절 단위로 띄어 쓰면 ฉัน/กิน/ข้าว가 되겠습니다. 발음은 "찬/낀/카-우"라고 교재에 한글로 일일이 달아 놓았습니다. 다만 "문장 내 띄어쓰기,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책에 나옵니다. 꾸미는 말은 꾸밈을 받는 말 뒤에 놓이는데, 이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과 (우연히) 비슷한 특징입니다(한국어, 영어와는 반대입니다). 

또 우리말처럼 태국어에는 존대 어휘, 높임말이 있다고 합니다. 또 어형(語形)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단어 반복이나, 합성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고 나옵니다. 책에서 예로 드는 건, 쌀(ข้าว, 카-우)라는 단어를 두 번 겹쳐 써서, 쌀쌀, 즉 "카-우 카-우"라는 단어로 "백미(白米)"라는 새 말을 만들어내는 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말에는 자음 24개, 자음을 나타내는 글자는 14개가 있습니다. 태국어에는 중자음 9자, 고자음 10자, 저자음 23자가 있다고 합니다. 한글보다 글자 수 자체가 엄청 더 많습니다. 중, 고, 저의 3분류는 성조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p115를 보면, 이런 중자음 뒤에는 1, 2, 3, 4성 부호와 모두 결합할 수 있고, 성조 기호도 같은 페이지에 다 나옵니다. 성조 기호는 일종의 diacritic인 셈인데, 중국어와 달리 이처럼 초자음의 오른쪽 위에 성조 기호가 (원칙적으로는) 다 따로 붙어서 발음하기가 편합니다. 그런데 p119를 보면 성조부호가 따로 없어도 알아서(일정 규칙에 따라) 성조를 내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이걸 무형성조라고 부릅니다. 

ไก่(까이. 닭)을 예로 들면, ㄲ라는 자음은 (오른쪽의) ก라는 글자가 표시합니다. 또 [아이]는 (저 왼쪽의) ไ라는 글자가 표시합니다. 순서가 우리 감각과는 반대인 셈입니다. 또 ไ라는 모음은, 교재 저 뒤 p84, p89에 나오듯이, 이른바 반모음이라는 것입니다. 종자음이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종자음이 오지 않습니다. 

태국어에는 복합자음(p137)이란 게 있습니다. 책에서는 우리 학습자들의 편의를 위해 "그저 이중자음, 혹은 초자음의 두 개 연속"이라고 이해해도 된다고 설명합니다. 영어에도 예를 들어 strike 같은 단어는 자음이 어두에 세 개가 오기도 하니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이런 게 없습니다.  

앞에서 태국어는 단어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반복부호라는 게 따로 있습니다. 마이야목(p159)이라 불리는 이 기호는 ๆ라고 쓰며 태국어 키보드에 표시도 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빨리빨리, (강조의) 좋다, 천천히" 같은 단어들의 예가 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를 충분히 배려한 친절한 설명, 올컬러 배색 덕분에 훨씬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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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챗GPT 리터러시를 만나다 - 디지털·미디어·인공지능 리터러시와 1인 기업가 되기 크리에이터 시리즈 6
김미진.주혜정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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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3) 초 드디어 챗GPT라는 게 나와 생성형 AI의 시대의 개막을 본격적으로 알렸습니다. 이제 AI는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며 기업 사무 전영역에 도입되어 업무 고도화에 기여할 것이 예상됩니다. 과거에는 문자를 해독하고 남이 쓴 장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며 나아가 내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게 하는 아날로그식 문해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AI에게 일을 효율적으로 해 내게 명령을 정확히 내리고 다양한 생성물을 이끌어낼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부각되는 시대입니다. AI와의 소통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자질을 키워, 미디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컨텐츠를 창조하고 마침내 성공적인 1인 기업가가 될 수도 있게 가르치는 게 차세대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온라인 활동에만 몰입하면 바람직한 인격적 성장, 정신 건강 유지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소통이나 업무, 학습, 공동체 의사 형성 참여 등 모든 면에서 온라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존재 자체가 필수불가결에 가까워졌으므로 올바른 관계 형성,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매너 등을 어린 세대에게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온라인 채널이라는 게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혁명적으로 감소시켜 주므로 이를 제쳐 놓고 레거시 수단으로 회귀한다는 건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자 퇴보입니다. 

이제는 생성형 AI에게 명령을 알토란같이 내리는 요령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실력은 프롬프트 디자인, 혹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릅니다(p46). 책에서는 AIPRM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데, o글 크롬 브라우저에 애드온으로 추가하여 쓰는 형식인 듯 보입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유저들에 의해 가장 많이 쓰일 만한(혹은 쓰인) 프롬프트들을 주제, 활동 등의 기준에 따라 고를 수 있습니다. p48을 보면, 예를 들어 "주제"에서 "생성형 AI"를 선택했다면, 달리, 미드저니(이미지 생성의 경우), 파이썬, 자바스크립트(소프트웨어 공학) 등이 제시된다고 합니다.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터넷 곳곳에 남긴 모든 흔적이 모이고 모여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까지도 한다는 함의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인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SE03 EP01)인 "추락(Nosedive)"의 예를 들며,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해 왔느냐에 따라 사람의 평점이 매겨지며, 이것이 그 사람의 계급 노릇까지 하게 되는 섬뜩한 세상을 묘파합니다. 

평판 관리라고 하는 것은 그간 오프라인의 대면 구조 2차 사회(조직)에서나 중요했는데, 이게 이제 온라인상에서 어떤 일관된 시스템을 거쳐 개별 성원에 대한 레이블링이 이뤄진다니 아무리 픽션상의 상황이라고 하나 경각심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이어 책에서는 잊혀질 권리, 유o브 알고리즘 등에 대해 설명하는데, 솔직히 제가 개인적으로 써 본 바로는 유o브의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을 정확히 읽어 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입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인터넷상의 가짜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다수의 오랜 구독과 지지를 보유해 온 거대 미디어가 생산하는 뉴스라고 해도 무작정 믿을 것은 못 됩니다. 사실 이는 디지털/아날로그 시대 구분을 떠나서도, 무엇이 팩트이며 무엇이 그 사람의 의견(opinion)에 불과한지를 분별해 내는 능력(p117)은 민주 시민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일 뿐 아니라 속임수가 난무하는 험악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기도 합니다. 

앞서도 말한 대로 올해 초에 Open AI라는 회사에서 출시했던 챗GPT의 개선된 버전이 그간 일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개량된 성능을 증명해 보인 일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책 p142에 보면 저 회사에서 만든 챗GPT와, 구글이 대항마 격으로 키워 온 바드의 차이점이 설명됩니다. 재미있게도 이 문제 자체를 사람이 서치하지 않고, 구o의 바드한테 물어서 대답을 얻었습니다. 책의 해당 페이지에 그 사항이 표로 잘 정리되었고, 이를 통해 현 단계 생성형 AI의 성능과 한계까지도 간접으로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실제로 여러 과제를 시켜 본 결과, "사실성과 정확도 면에서는 바드가 나았고, 문장력은 챗GPT가 나았다"고 결론내립니다(p146). 아직은 두 엔진 모두 갈 길이 멀어, 어처구니없고 바보 같은 대답도 곧잘 내 놓곤 하는 게 많습니다. 여튼, 이런 새로운 도구를 통해 인류는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더 몰두할 수 있겠으며, 날 때부터 이런 디지털 환경을 당연하게 접한 어린 세대는 "신인류, AI 네이티브"라 불려 어색하지 않으므로, 이들에게 그간 사회가 합의를 이끌어낸 올바른 프로토콜을 가르치는 게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맴버들 중 반이 죽고 반은 무척 고령이기에 재결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비틀즈라든가 리더인 커트 코베인이 죽은지 오래인 너바나 등은 이제 그 특유의 스타일로 음악 작품을 더 이상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머신 러닝을 통해 이들의 작품을 학습시키고(데이터의 양적 부족 이슈가 일단 있겠습니다만) 창작을 시켜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대립할 뿐 아니라, 과연 무엇이 그들의 개성을 규정하는 스타일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저작권 관련 수익의 귀속 문제도 무척 법적으로 까다롭습니다. 

자율주행은 교통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운행 중인 시간을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옮겨 쓸 수 있는 등 인류의 생활을 개선할 미래 기술 중 하나입니다. 책에서는 1980년대 미국 TV 드라마 <전격 Z 작전(Knight Rider)>를 환기시키며, 이 드라마에서 구현된 기술이 요즘 식으로 말하면 레벨 5라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시민권도 부여받고(p193), 개발사(홍콩의 핸슨 로보틱스 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도 아주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인 소피아는 윤리적으로 미묘한 질문에도 지혜롭게 댭변을 해 냈다고 합니다. 이처럼 놀라운 기술의 혁신은 SF에서나 상상했던 편익과 성취를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현실로 끌어오고 있으며, 그에 부응하여 우리의 교육도 근본에서부터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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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4 - 청룡을 타고 비상하는 2024를 기원하며!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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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기미가 가실 줄 모르고 설상가상으로 전쟁의 기운마저 엄습해 오는 듯한 요즘, 개인이건 기업이건 뜻하지 않은 손해와 타격을 면하려면 그저 조금이라도 더 똑똑해지고 기민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생존 전략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세상의 큰 흐름을 읽고 그에 잘 적응, 편승하는 길, 나아가 (가능하다면) 남들보다 대세를 먼저 파악하고 내가 만드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자보다 더 우수한 것으로 만드는 길이겠습니다. 

머리말 중 p19에는 이 트렌드코리아 시리즈가 매년 출간된 게 벌써 16년째라고 대표저자 김난도 교수님이 밝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다 알듯 이 시리즈는, 명년에 출현, 발생이 예측되는 트렌드들의 영단어 두문자를 따서, 전체로도 하나의 의미를 이루는 구절을 만들어 매번 제시합니다. 내년은 용의 해이며 그래서인지 DRAGON EYES가 뽑혀 책 전면에도 내걸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시리즈의 이런 전통에 대해 약간 억지라며 가벼운 불평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필진의 고충과 노력, 센스, 나아가 통찰에 대해 매년 적정선의 경의를 표하며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어 나갈 듯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서두(p22)에는 키워드 해제가 나옵니다. 독자들이 익히 아는 바이지만 이 대목은, 정 시간이 부족한 독자라면 이 단 두 페이지라도 꼼꼼하게 읽어 둬서 책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핵심 정보라도 챙겨야 하는 곳이며, 책 전체를 통독하는 통상적인 독자라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읽어 두어 내용을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 워밍업 존(warming-up zone)입니다. 이게 바람직한 독서 방법이겠으나, 여태 이 시리즈를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다 알듯이 사실 책이 워낙 쉽고 재미있게, 소설처럼 술술 읽히기 때문에 너무 그렇게 각잡고 형식에 딱딱 맞춰 읽을 필요는 없기도 합니다. 

시리즈가 대체로 그랬듯이 올해판(내년판)도 전반부에 2023년 한해를 회고하고 작년판에 대한 약간의 리뷰도 담았습니다. 이어 후반부에 10개 트렌드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전개되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책 옆면에는 thumb index를 찍어 필요시 찾아보게 했습니다. 책의 학문적 신뢰성 제고와 독자의 추가 탐색을 위해 권말에는 주석도 달렸습니다.  

대기업들의 신규 공채가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되는 등 취업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추세지만 대신 우량기업의 직원 혜택, 복지는 더욱 강화되고 바람직한 직장 문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조짐이 있었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AR, VR 등 최신 기술이 직원들의 소양 증진, 건강 체크, 사기 앙양 등에 사용되며, 고위층에서도 젊은 세대의 감각과 안목을 조직 문화에 적극 흡수, 활용하려고 애 쓰는 모습이 관측된다고 합니다. 인적 자원은 경영진의 비전과 방향성을 강화하고 적극 활용되어야 그게 기업에도 이익이지, 어떤 치졸한 제로섬 게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그저 정해진 제품과 서비스를 대중에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업력이 오래된 곳이라면 지난 역사를 그 자체로 콘텐츠화하여 소비자나 직원과 소통 강화의 채널로 삼습니다. 책에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 내는 예로 LG전자를 들며,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전은 금성"이라는 통념(근거 유무는 일단 떠나서)을 컨텐츠화하는 데 성공하고 젊은 층의 레트로 유행을 잘 캐치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요즘은 편의점이든 어디든 제로슈거 제로칼로리가 유행입니다. 제품군 자체가 나온 건 20년도 넘었습니다만 효능 면을 개선하고 풍미도 보강하여 지금처럼 흐름 하나를 새로 일으킨 건 여태 없던 현상입니다. 이 역시 혁신의 일종이며 책에서는 이른바 "헬시 플레저 족"을 겨냥하여 이런 마케팅이 시도된다고 합니다. 원래, 꺼림칙하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는 대상이나 활동을 가리켜 guilty pleasure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에 라임을 맞춰 신조어가 나온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금융기관 보고서에서 코인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ESG 모토도 트렌드로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집필진이 선정한 2023년 10대 상품 설명을 마지막으로 1부가 끝나고 본격 2024년 트렌드를 내다보는 2부가 시작됩니다. 매년 이 시리즈를 챙겨 봤던 독자들은 알겠지만 이 10대 히트 상품 회고가 은근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시간관리가 직장인, 학생 들의 주요관심사로 대두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긴 합니다만 올해 2023년은 특히나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의 효율.p137)가 트렌드를 넘어 강박의 영역으로 진입했다며 많은 관측자들이 입을 모읍니다. 책에서는 젊은 층이 주거를 고를 때 직주근접을 더욱 중요시하고, "반반반차"라는 말이 다 나올 만큼 시간 단위를 더욱 잘게 쪼개어 관리, 사용한다고 지적합니다. 드라마 하나를 봐도 결말이 기대에 못 미치면 자신이 투자한 시간을 아까워하며, 기업들은 이에 따라 고객의 시간 니즈를 먼저 고려하는 쪽으로 개발 전략을 수정 중이라고 합니다. 이 "분초사회"는 책의 머리말에 나온대로, 두문자 중 서열이 가장 앞인 만큼, 다른 키워드 트렌드들을 이끌고 나가는 으뜸 근인으로 책에서 내세운 테마입니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실감나게 다가온 키워드가 "호모 프롬프트"였습니다. 이제 명령만  프롬프트  창에 입력하면 무엇인가를 생성해 주는 똑똑한 AI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는데 그 대표가 올해 초에 큰 화제를 모았던 Chat GPT였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 AI가 전적으로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기는 어려우며, 그런 날이 혹 온다 해도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입니다. p181에서 저자는 "메타인지라는 인간만의 능력을 잘 계발한다면, AI가 작업한 용의 그림에 눈을 그려 넣어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역할은 결국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는, 다소 감동적이기까지 한 말씀을 하시네요. 올해판의 키워드 두문자 조합, 혹은 책의 부제가 DRAGON EYES임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젊은 세대는 육각형 기준을 두루 충족하기를 추구하고 이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의 또래들과 비교 대조하기를 좋아합니다. 육각형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파라미터는 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의 6요소입니다. 이게 어떤 정성적(qualitative)인 가치평가가 아니라 숫자로 환산되는 줄세우기, 랭킹 매기기 놀이에 가깝다는 건 뒷맛이 약간 씁쓸해지는 대목이죠. 연예인들도 어떤 브랜드의 앰배서더에 선정되느냐에 따라 대중에 의해 순위, 나아가 계급이 규정된다는 대목에서, 해당 연예인은 물론 소속사 인력들도 참 골치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처럼 육각형 인간의 기준 충족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건 한국의 계층 상승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뜻도 된다고 책에서는 진단합니다. 

가전제품 졸업했다는 말이 예비 신혼부부 온라인 카페에서는 유행이라는데 "발품 팔아 각종 가전을 만족스러운 가격에 다 구입하여" 라인업을 꾸려 놓은 상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전제품은, 한국에서 이른바 대리점이라고 불리던 유통 경로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한동안 양판점이 인기를 끌다 현재는 도심 곳곳에서 보듯이 대기업 브랜드의 D2C가 대세입니다. 시간 버라이어티, 채널 버라이어티, 고객 버라이어티 3유형으로 분류되는 가격 차별 전략은 이제 세계적 대세가 되었다고 책에서는 말하는데, 사실 그 원형격인 이론은 학부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었던 게 이제 이렇게나 진화한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별나게 재미를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요즘 세태에서는 도파밍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책에서는 작년 트렌드 중 하나로 꼽혔던 "디깅"과는 다르게, 그저 재미면 족하다는 취지로 쓰이며 책에서 그 유형을 네 개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쾌락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도파민 분비 기제도 관리하여, 돈도 절약하고 자신의 장기 건강도 챙기는 영리한 대처가 필요하겠습니다. 

컨텐츠뿐 아니라 브랜드에도 스핀오프가 요즘은 수시로 론칭되는 시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뉴스 같은 formal하고 근엄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보다 가벼운 포맷으로 즐길 수 있는 스핀오프가 나오기도 하는데 책에서는 스브스뉴스 같은 걸 예로 듭니다. 기술도 메인에서 파생된 서브 기술이 줄줄이 나오기도 하고, 여러 대기업이 분사(分社)라든가 자체 스타트업을 내놓는 등 조직 스핀오프까지 나오는 중입니다. 브랜딩이 세분화하면 일찍이 없던 수요를 자극하거나 창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대기업의 독과점이 우려되기도 하고, 개인 측면에서는 정체성 훼손 문제도 고려해야 할 이슈입니다. 

셀럽도 과거에는 공중파에 출연하여 전국민이 다 잘 알만한 정도라야 연예인 소리를 들었으나 요즘은 다양한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들이 활동하고 이들의 팬들이 그 소비나 표현 패턴을 따라하는 "디토(ditto)"가 유행이기도 합니다. 사람 디토, 컨텐츠 디토, 커머스 디토가 책에서 분류한 세 유형인데, 세번째 것은 편집샵 같은 걸 생각하면 됩니다. 이게, 과거처럼 거대 브랜드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추세를 반영하여 이른바 시그너처(signature) 소비가 대안으로 떠오른 결과라고 하며 기업도 그에 맞게끔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메트로폴리탄을 넘어 요즘은 자신을 리퀴드폴리탄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어느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때로는 번잡한 대도시에서 차가운 도시인의 컨셉에 푹 빠지고, 때로는 한적함 교외로 나가 자연인이 되어 야성을 표현하기도 하는 걸 가리킵니다. 사람들의 다층적 욕구를 잘 파악하고 특정 지역에서 "경험 여정(p358)"을 만드는 이를 "도시 기획자(local creator)"라고 한다는데, UAM 같은 신 교통수단의 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돌봄경제의 등장입니다. 노인, 장애인, 어린이, 기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움 제공이 주된 기능인데,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늙고 혹은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이런 인프라 혹은 민간시설은 시민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고 또한 이타적 인간성 본연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10개 트렌드는 내년에의 예측이지만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근미래이기도 합니다. 이 중 상당수는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일상에서 회사에서 체험할 만한 것들인데, 과연 얼마나 그것을 최신 트렌드라며 의식적으로 캐치하고 살았는지 점검할 필요도 있습니다. 만약 이미 캐치해 낸 게 적었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나 자신을 추슬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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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트렌드 모니터 - 대중을 읽고 기획하는 힘
최인수 외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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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니는 분들은 엠브레인이라는 회사 이름을 들어 봤거나 실제 몇 번 컨택했었을 수 있습니다. 시장조사를 대행하는 곳이며 코스닥 상장법인이기도 합니다(움직임은 좀 심심한 종목입니다). 또 대선 때 엠브레인퍼블릭이라는 곳이 출처인 여론조사도 뉴스에서 자주 접했을 만합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서 매년 이맘때 펴내는 <트렌드 모니터> 시리즈도 처음 본 게 대략 10년 전 같은데 꾸준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소셜, 워크(work), 라이프, 컬처의 크게 네 챕터로 이뤄졌습니다. 

"어른이 사라진 사회." 물론 성년/미성년을 괜히 가르는 게 아니라서, 사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행하고 20세 이상이라면 모두 인격적으로 동등한 자격입니다. 나이 좀 많다고 함부로 어린 상대를 무시하거나 훈계를 일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조직이나 사회에는 그 공동체의 변천 과정을 죽 지켜봤거나 기여를 한 어른이 있기 마련이고 이들에 대한 respect는 마땅히 행해져야 그게 문명인답습니다. p42를 보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상황에 맞는 역할을 잘 찾아가는 사람"이 어른의 정의라는 응답이 73%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동문회 등에 가서 후배들한테 대접 받으려면 이 점 유의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책에서는 이른바 지연된 성인기를 맞는 세대에 대한 우려도 표명합니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거나 그 시기가 늦어지고, 이에 따라 사회는 젊고 싱싱한 노동력(정신, 육체적 모두)을 결과적으로 늦게 공급받는 셈이니 그 영향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는 타성에 젖고 혁신에 더뎌질 수 있으며, 은퇴 세대에의 연금 지급 과정이나 의료 보장에도 지장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세대간 갈등이 큰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이른바 노키즈존 같은 예를 들며, 신규 세대의 원활한 생산, 진입, 사회화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어덜티즘(adultism)에 대해 우려를 표명합니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낮아 국가 소멸을 우려해야 하는 나라에서 아이들 키우는 데 이렇게나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반대로 얼마 전 어느 카페에서, 자리를 오래 점유하는 노인에게 젊은 손님들이 싫어한다며 주의를 주어 가게를 떠나게 한 사건은 다른 함의를 갖는 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사는 탓에 학교건 직장이건 살인적인 경쟁이 벌너지는 게 또 문제입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에 인성이 피폐해지고 직장은 성원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공히 공동화시킬 만큼 살벌한 정글입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2~3년 전에는 코인 같은 신유형 자산의 등장, 코로나 시국 덕에 전개된 유동성 장세 덕분에 주식 수익 횡재 같은 게 있었으나 지금은 긴축과 불황의 기조 속에 씀씀이가 최악으로 위축된 판입니다. 사람들은 평균 이상의 수입, 성과, 과시, 소비를 자꾸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에 이제 질려서 그저 평균만 하자며 아우성치고 있다며 책에서는 진단합니다. 

이 책에는 현 2030을 가리켜 "역사상 최고의 스펙 세대"라고 곳곳에서 규정합니다. 스펙도 탁월할 뿐 아니라 실제로 뭘 시켜도 척척 잘하고 판단도 합리적으로 내립니다. 인생관이나 정치관도 대개 논리적이고 차분합니다. 이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세대이기에, 사직이나 이직 문제에 대해서도 쿨하게 대처하고, "조직에의 충성"이란 강박이 없습니다. MZ에 대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프레임에 가깝다는 게 책의 진단입니다(p104). MZ에게도, 워라밸과 n잡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과 이중성이 분명히 있고 이런 갈등과 오해의 해소를 위해 기성세대와의 소통 채널이 따로 필요하다는 게 책의 제안이네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 젊은 세대는 자산 투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노동 소득 외에 다양한 자본 소득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실제 결과를 집요하게 내려고들 합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 노년층은 본래부터 재산 증식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성향입니다. 2030이 벌써부터 코인이나 주식 채권에 관심두는 건 아마 한국에서는 역사상 처음 보는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도 이 책 중에서 여러 번 짚어지는데,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책의 내용이 최근 트렌드 팩터들 여기저기에 걸친 데가 많아서라고도 생각됩니다. 하나의 급소만 짚어서는 책이 그만큼 성공하지 못했겠다는 뜻도 됩니다. 

요즘은 어느 기업이나 구독 서비스를 최전선에 내세워 승부를 겁니다. 구독(購讀)이란 한자어는 본래 읽을거리(신문, 잡지, 책)에만 국한되던 것이, 영어의 subscription이 상품과 서비스 전 영역에 걸쳐 확대됨에 따라 그 번역어까지 어색하게 뜻이 확장되었습니다. 여튼 요즘은 온갖 것들을 다 구독하여 소비하는 세상이 되었고, 이제 구독 서비스도 어느 정도 체험해 본 소비자들이 그 속성을 파악하게 되었으므로 무엇을 구독할지 혹은 하지 않을지에 대해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따진다는 게 책의 분석입니다. 넷플릭스 같은 혁신적이고 신선한 서비스에 대해서조차 그리 충성스럽지 않고 무료 채널(광고만 시청하면 되는)을 찾아다니며, 가성비와 가심비를 넘어 시성비(시간이 곧 돈이므로 시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것) 

예전에는 폰 주소록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연락처가 저장되었는지가 인맥 위력의 척도였습니다. 지금은그렇지 않고 필요할 때 과연 내가 원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소수에 속하는 자신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이가 친구이며, 극단적으로는 "딱 한 명이라도 상관없다(p210)"는 게 최근의 경향이라고까지 합니다. 대중은 다수를 무작정 추종하려 드는 경향도 있지만, 반대로 여건이 무르익으면 비록 소수임이 명확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 의사를 드러내려고도 하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그런 추세가 두드러진다고 하네요. 

컨텐츠는 점점 개인화하여, 표면적 형식적 공정성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대변해 줄 수 있는, 이른바 매운맛 채널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도 요즘 눈에 띄는 추세입니다. 다만 이런 극단화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과연 건강하겠는지는 별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인지한 여러 외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OTT규제를 마련한다고도 합니다. 유해 환경에 뜻하지 않게 더 노출된 소비자들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져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소비자들은 모순적입니다. 어떤 나라를 싫어하면서도 그 나라에서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거리낌없이 소비하기도 합니다. 어린 세대인데도 레트로를 이상하게 선호하기도 하며, 이런 트랜드는 미국, 일본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흥미롭고 특이합니다. 소셜 미디어가 실제의 사교(social acts)를 상당 부분 대체하자 젊은층에서 이제는 소셜포비아가 증가한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소셜 미디어가 안티소셜을 자극한다는 게 실로 역설적이죠. 

트렌드를 키워드 위주로 앙상하게 짚기보다 수필처럼 자상하게 풀어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또 트렌드 분석이 분석에 그치지 않고 회사 실무자가 바로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게, so what? 코너를 일일이 덧붙여 follow-through 해 주는 점도 무척 도움이 되었네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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