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를 놓는 소년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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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인데 왜 수를 놓는다는 걸까, 수를 잘 놓기는 할까, 이런 의문은 소설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금세 풀립니다. 그는 장돌뱅이(p92)와 어느 침모의 아들이었고, 아픈 누나를 대신해 수를 놓으며 엄마를 돕다 보니 솜씨가 많이 늘었나 봅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있었고, 고달픈 현실을 잊으려 예술혼을 불태운(?)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p47을 보면 누나도 솜씨가 좋았다고 하네요). p36을 보면 심양 시장 선전(線廛)에서 형형색색으로 진열된 실을 보며 "이 정도면 못 놓을 수가 없겠다"며 영감에 젖는 윤승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마치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선 책을읽고싶은소년과도 비슷합니다. 

p8에서 심양이 청나라의 수도라는 걸 보니 아직 대륙을 정복하기 전인가 봅니다. 윤승이 끌려간 계기였던 병자호란(1636년)이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을 막는 예방 전쟁 격이었던 점(저 뒤인 p168)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p28에도 아직 대륙의 명이 망하지 않았음이 나옵니다. p18을 보면 윤승은 안주(p205) 출신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평안도 안주인가 봅니다(안주-박천 평야라고 할 때의). 윤승도 노예 상인에게 값을 치르고 환속될 수 있었으나 양반들이 이미 몸값을 너무 올려 놓아(p69) 상민, 천민들은 도저히 풀려날 길이 없습니다. "나라님이라면서 제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고..(p77)" 피로인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릅니다. 

잔인한 감독관 부카(그런데, p194에 반전이 있네요)한테 매를 맞아가며 노동을 하다 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통에, 어떤 작은 여자아이가 매를 맞아 죽을 위기에 놓인 걸 보고 윤승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할 기회를 잡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역경에 몰려도 이처럼 사람다움을 잃지 않아야 기사회생의 행운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진 부인이 윤승에게 p28에서 "힘든 처지에서도 만주어까지 배워 가며 생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칭찬해 줍니다. 아직 어린 윤승이 더럽고 한심한 노파의 음욕에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 여인네들이 노예로 만주에 많이 끌려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진 남성들의 첩 신세로 떨어졌는데, 자신이 원하지 않는 남성의 성노예로 사는 것도 딱하지만 정실 여진 처의 질시와 학대까지 받아야 했다는 게 너무나 비참했죠. 오죽했으면 청 황제가 조선 첩실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특명까지 내렸겠습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진씨 부인도 태 부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불쌍한 처지입니다. 아 물론, p42에 나오듯이 생짜 노예보다는 진 부인의 처지가 훨씬 나은 건 사실이죠. 

심양 일개 장시(場市)에서도 눈에 띄는(p44) 금사(錦絲)가 왜, 조선에서는 왕실에서나 겨우 쓸 정도로 귀했을까요? 조선은 애초에 고려가 특수 계층 사치 때문에 망했다는 인식 하에, 철저한 억상(抑商) 정책을 펴서 정치적 안정까지 도모했습니다. 민간에서 대자본이 형성되면 그걸 빌미로 권력 사냥이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관료층의 청빈을 유도하는 효과는 다소 거두었으나 대신 국력 자체가 쇠퇴하여 결국 외침에 매우 취약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19세기에는 명목상의 국가 간판만 간신히 내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무렵의 청나라 역시 만주만 간신히 차지한 상황에서 관민의 사치를 금하던 통에, 윤승이 금사를 지닌 걸 보고 도 어멈이 한바탕 난리를 칩니다. 태 부인의 자비와 현명함을 기대했으나 이 노인은 아주 나쁜 흉계를 꾸미는 데 윤승을 이용할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 윤승의 운명은 갈수록 악화일로입니다. 그런데... 

역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태 부인의 매질에 못이겨 윤승이 진 부인에게 불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윤승의 은인인 진 부인이 억울하게 신세를 망침은 물론, 결국 윤승도 후환을 우려한 태 부인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선인은 하늘이 돕는다고, 처음에는 강 대인이 현명한 처결을 했고(ooo마마도 성이 강씨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서로 아무 관계 없습니다. 강 대인은 여진족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ooo이 (사정을 몰랐겠지만) 그를 도우시는 바람에 기어이 진 부인과도 반갑게 해후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소현세자 일가를 인질로 잡아간 청은 의외로 그들을 후대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적절히 잘 구사했다 할까, 장기적으로는 조선과 진정어린 유대를 맺고 보다 덜 비용이 드는 평화를 굳히려 했던 그들의 행보를 보면 단수가 참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p178에는, 청나라 관료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p201에서는 명나라 황실에 부패한 관리도 있다고 합니다). p91을 보면 ooo과 진 부인도 이런 판세를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oooo와 ooo 마마가 심양에서 지내는 동안 뛰어난 상업 수완을 발휘(p125)했다는 기록은 정사(正史)에도 나옵니다. 역시 ooo 마마는 판단력이 영민하셔서 의주 부윤에게 기별을 넣는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 듭니다(p142). 멋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바느질 장인인 서 사부는 윤승에게 화두 하나를 던져 줍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른다면 평생 남의 도구로밖에 살아갈 수 없다(p119, p167)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듣고 윤승은 또 깊은 반성을 합니다만, 독자인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어린 윤승이 의식을 했건 못 했건 간에 그는 인간의 양심을 언제나 잃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순간순간 잔머리를 굴리려 들었다면 훨씬 힘 센 사람들이 그의 속셈을 알아채고 이용만 해 먹은 후 벌써 폐기처분했을 것입니다. 그가 원칙대로 살았고 자신에게 잘해준 이들의 은혜를 잊지 않았기에 여기까지나 올 수라도 있었죠. 아마 그는 강을 건너 자신의 길을 바르게 잘 헤쳐나갈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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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네가 있어준다면 - 시간을 건너는 집 2 특서 청소년문학 3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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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3년 전에 발표된 김하연 작가님 作 <시간을 건너는 집>의 2편입니다. 누군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 나타나 내 소원을 들어 준다는 건 무척 매혹적인 제안입니다. 물론 많은 제약 조건이 따르지만(서양 동화에서도, "소원은 신중하게 빌 것![Be careful what you wish for]"을 언제나 강조하죠), 무슨 횡재까지를 기대한 게 아니라(p31), 이를 통해 나는 누구이며 내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린 주인공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이 감동적인 1편이었죠. 당시 제가 남긴 리뷰도 있습니다. 

세계관은 그대로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아닌 이 2편에서는 친구들에 비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신민아가 새로운 주인공입니다. 소셜 믹스라고 해서, 고급 아파트 옆에도 정책적으로 임대동을 두어 계층 간 위화감을 감소시켜 보자는 게 이 정책의 취지인데 현실에서는 이 소설에 나오는 대로 여러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p89를 보면, 친구 최아영 엄마가 민아한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대목도 있습니다(물론 민아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p93, 아영이도 실토를 하네요). 구김없이 성장해야 할 나이의 민아이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1권에서처럼 갑자기 어떤 이상한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신비로운 미소를 보이며 민아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넵니다. "널 안단다. 네가 이 집의 첫번째 멤버거든.(p12)" 1권에서의 바로 그 할머니이신지 대사도 똑같네요. 1권에 나왔었던 이수의 이름이 p130에 잠시 언급됩니다. 

흰 운동화를 각각의 이유에서 신게 된 다른 두 "멤버"가 이상한 집에 모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정아린, 최무견이 나중에 합류합니다. 파란머리 소년 최무견은 원래 여기 낄 멤버가 아니었으나 우연히 흰 운동화를 신게 되어 아린과 민아와 같은 배, 아니 같은 집에서 운명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규칙은 1권에서와 대개 같습니다. 할머니도 그렇고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도 그렇고 어떤... 절대자 같은 초월적 존재일까요? p82에는 이 시리즈 처음으로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두 분도 뚜렷한 한계가 있고 주어진 룰에 따라 일만 할 뿐 그 근본 원리를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이 집은 그저 요행수 같은 소원 성취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p27에서 할머니가 말씀하시듯, 세상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어쩌면 버림받다시피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집이죠. 남이 잃어버린 운동화를 우연히 주운 무견이라고 해도 그렇게 이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는 게 벌써 우연만은 아니라는 게 할머니의 생각입니다. 새로운 기회(another chance)라는 게, 설령 어떤 큰 실수를 한 아이에게라고 해도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는 할머니의 주장을 듣고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네요. 민아, 아린이한테는 큰 문제가 없는 듯하고, 아마 인성이 좋지 않아 보이는 저 파란머리 무견이한테 주로 해당되는 사항이겠습니다. p104를 보면 무견이 아빠가 누군인지 나오는데 그 직업이 참 아이러니입니다. 

민아는 한부모 가정의 혜택으로 간신히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았으나 소외감을 느끼는 건 이사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에만 살면 괜찮겠거니 싶어도 그게 그렇지가 않죠. o오동에는 안o에서도 알아 주는 일류 학원들이 있다고 나오는데(p8), 동네 사는 독자로서 그런 얘기는 진심 처음 듣습니다. 혹시 민아가 고o동하고 착각한 건 아닐까요?ㅋ 좋은 학원 가려면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충고를 덧붙이며... 뭐 여튼 민아와는 달리 정아린은 정반대 환경, 강남구 청담동 사는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학군 때문에 급하게 이사 옴). 변호사 아빠(정상규씨)의 DNA를 물려받아 공부를 잘했으나 어느새 중압감 때문에 정신이 영 망가지고 말았습니다(공황장애. p59). 딸을 너무 몰아붙인 아빠 잘못이 적지 않아요. p52를 보면 친구(?) 황변호사도 좀 악질입니다. 

p118을 보면, 역시 사람은 do the right thing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으나 이렇게 하면 내 신상에 이롭지 않다 싶어 좋지 못한 길로 빠지는 것이고, 무견이는 이미 몇 번 실수를 했습니다(119를 보니 그런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더군요!). 그러나 p118에서 무견이는 비로소 바른 결정을 내렸으며 설령 이것 때문에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날렸지만(과연?), 앞으로 별 후회가 없을 겁니다. 아빠의 피가 무견이한테 과연 흐른다면 얘도 착한 애일 테니 말입니다. 

1권에서도 그랬고 아무리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는 집이라고 해도 규칙이라는 게 있으며, 할머니나 미키마우스 아저씨라고 해도 이 규칙을 함부로 깨지 못합니다. 그 중 하나가 죽은(죽어가는) 사람 못 살리는 것이고(민아 관련) 이 2권에서는 무견이가 다른 규칙을 이미 어겼습니다. 그러나 과연 피도 눈물도 없이 규칙이 최우선으로만 내세워져야 할까요? 고객과 수임인으로 밖에서 연이 생긴 정oo씨와 신설희씨(p121)의 자녀들이 "그 집" 안에서 그런 연이 또 생기다니 세상이 참 좁은 걸까요? 그게 우리 눈에는 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을 건너는 어떤 섭리를 놓고 보면 다 필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응보가 반드시 따르는 게 세상의 이치이니. 

*출판사에서 제공한 청소년용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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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끌로이
박이강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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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는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나 마찬가지라던데.(p9)"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이 말도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은 대번에 무릎을 치며 공감하고, 책 안 읽는 사람은 눈만 멀뚱멀뚱 뜰 법하죠. 요즘 성별이 모호한 상황에서의 사기 사건이 큰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 <올랜도(이 소설에서의 표기를 따르겠습니다)>은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스타일에다 기발한 상상력, 소재(성 전환?)까지 더하여 당대 큰 화제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명작입니다. 

"리스트라는 걸 맹신하는 엄마(p17)".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명작 리스트라면 아마 서울대 선정 목록이겠지만, 사실 같은 페이지에 나오는 NYT 것이 수험생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훨씬 알찹니다. "난 그거 PC 물이 들어서 싫어"라고 누가 말한다면, 뭐 그냥 수험생 한정이라고 치죠. 여튼 이 장편소설에서 주인공 이지유는 비록 아이비리그 입성에 처음 실패했지만, 정말 뉴요커(p15), 아니 보스토니언이 되고 싶다면 PC건 뭐건 저걸 붙들고 빡센 시간을 채워야 할 겁니다. p15에 삭스피프스애버뉴가 나오는데 여긴 미국 동부에서 아주 유명한 명품 백화점 체인입니다(sixth도 아니고 socks도 아닌 Saks[쌕스]!).시어스는 망했지만 여긴 여전히 잘나가죠. 

마침 이 독후감을 쓰는 시간대가 할로윈을 앞둔 휴일이기도 한데 끌로이는 화가 미스터 올랜도의 초청을 받아 분장을 하고 파티에 이지유를 데리고 갑니다. 가는 도중 지유는 흐트러진 레게 머리(dreadlock이 맞겠죠?) 마약 중독 노숙자(p23)한테 칭총(동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에 대한 멸칭) 소리를 들어가며 성o행 위험에 처하지만 칭총의 수호신(?) 끌로이가 기지를 발휘하여 달아날 수 있었네요. 드레드락 노숙자도 그러더니, 미스터 올랜도도 지유한테 천사라고 부릅니다(p33). 미스터 올랜도는 지금 드라큘라 분장을 하느라 얼굴이 허옇지만 지유는 원래 얼굴이 뽀얘서(p21) 그런 소리를 듣는가 봅니다. 아, 그런데 저 뒤 p107에서 지우는 멍청한 멘도에게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듣네요? 다시, 저 뒤 p115에는 위드, 조인트 같은 말들이 나오는데 요즘 한국도 마약 때문에 아주 망조가 들어가죠. 

지유는 참 얼척이 없는 아이입니다. 경기변동을 정확히 알려 주는 선행지수를 찾아 학부 졸업논문 소재로 쓰겠다(p42)니 교수가 어이없어 할만하며, 그게 가능하다면 그 카츠라는 교수 말대로 노벨상 감 정도가 아니라 그날로 세계를 지배하는 이코노미 칭기즈칸이 될 것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대로 마이크로 파이낸스 같은 게 본인 역량이나 정치 성향에도 딱 맞죠. 

참 음악 공부라는 게 어렵습니다. 성악이든 기악이든 한국 출신 신동들이 처음에는 완벽 화려한 테크닉으로 세계적 각광을 받아도 성인이 되어서는 잊혀지곤 하는 게 기교 그 이상이 아쉬워서입니다. 아니 연주자가 기교상 완벽해진다는 게 재능 외에도 미친 연습량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단 말입니까. 그래도 그게 그렇지가 않아서 어렵죠. "피아노는 널 잘 알아. 네 머리 위에서 널 내다보지(p68). 뜨거운 피가 필요해(p69)." 과연 지유 엄마는 기술 맹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p100에서 지유는 저 "뜨거운 피"에 대해 큰 오해를 하는데, 엄마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건 독자도 금방 알겠네요. 

엄마도 아빠도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는데 나이 들수록 여동생을 닮아가는(p79) 의사 (외)삼촌도 그런 사람이니 지유라는 애도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p91에서 음악에 대해 털어놓는 지유의 견해가 어떤지 보십시오. 저러니 재즈 장르가 귀에 들어오겠으며 <콘 알마>가 뭔지나 알겠습니까? 

저는 소설 중반부를 읽으며 멘도에 대한 지유의 감정이 뭘까, 아니 혹시 끌로이를 원하며 멘도를 질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특히 p130 같은 데서 그런 게 뚜렷이 나타나죠. 지유는 멘도 같은 하루살이 부평초 인생에 대해 결코 동경하거나 환상을 품지 않습니다. 친구로서 끌로이를 걱정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죠. 누구 딸인데 그러겠습니까. 그러나... 4부에서 미지와 그런 일을 벌인 건, 결국 지유가 끌로이한테 그런 욕망을 갖고 미지를 대역으로 삼았던 것에 다름 아닙니다. 

p49에 나왔듯 지유 엄마는 예쁜 몸에 왜 몹쓸 낙서를 하냐며 문신이라면 치를 떠는 타입이었습니다. 이제 지유는 간이 부어서 "선타투 후뚜맞(p139)"을 각오하고 샵에 왔는데 아픈 엄마가 진정 명 짧아지는 머습을 보고 싶은지,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참 안타까웠습니다. 타투이스트 미지(미지 씨가 아니랍니다. 사실은 권미선. p189)는 지유가 영어 잘하는 게 몹시 부러운데, philosophy에서 h 철자 하나를 빼먹을 뻔했다고 깔깔거립니다. 지유가 귀티가 나서 좋답니다(p155). 하지만... 이런 애들이 원래 다 그렇죠. 

지유는 저 악질 권미선이한테 완전한 환멸을 느끼고, 동시에 끌로이한테 가졌던 호감 역시 하나의 허상이었음을 알고 꽤 충격적인 방법으로 이별을 실행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이른바 "책임"을 지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도 실감하고선 말이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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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르시시스트 맞아 쓰면서 치유하는 심리워크북
브렌다 스티븐스 지음, 양소하 옮김 / 에디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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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자아도취에 빠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고안되었다는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 개념은 우리 생각보다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p14를 보면 다소 "온화한" 범주의,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려는" 형태도 등장하는데 이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누구라도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질투하는 누군가를 근거없이 흠집내기 위해 무작정 나르시시스트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그렇게 남을 비난하는 사람 자신이 오히려 반사회적인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책 p15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해롭다고 느낄 만한 나르시시트에 대해 공통적인 특징으로 꼽을 만한 아홉 가지 특징이 제시됩니다. 특히 6번, 대인 관계에서 상대방을 이용하려 든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 속셈이 남 눈에 훤히 보이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데도 악착같이 최초 계획에 집착한다는 게 특이하죠. 또 8번, 무한한 힘, 명석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서까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도 재미있게 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눈이 너무 높아서" 쉽게 이성을 못 만나는 사람도, 혹시 그가 나르시시스트여서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문제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책 p56에서는 그저 이기적인 태도로 사는 사람과 진성 나르시시스트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 성향입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중심 성향 그 이상이며, 남을 해치는 데 있어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고 합니다. 일단 이 책의 중요 목표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독자인 당신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함부로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어떻게 하면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를 바로 알아보고, 또 운 없게 나르시시스트와 엮였을 때 어떻게 나를 방어하고 빠져나오게 할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또 특정인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하는 게 중요한데, p47 같은 곳에서처럼 체크리스트나 특수 시트를 통해 독자가 활용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나르시시스트로부터 피해를 입고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 줄 위기 핫라인(p85)을 만들어 두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나르시시스트와 대적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어렵기도 하고, 또 책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게끔 미리 공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이미 피해자는 그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참으로 무섭기도 합니다. 사람은 감정적인 동물이기에, 어떤 현실적인 도움이 아니라도 그저 내 지인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조금은 놓여나는 느낌이 듭니다. 책에는 이처럼 현실적인 충고가 많아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게 맞는 에너지 충전법을 찾으세요(p108)" 이 파트 바로 앞에서는 나의 성향 스펙트럼을 먼저 체크하게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를 타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 목적은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이 어떤 취약점이 있는지, 나르시시스트의 공격에 어떻게 당할 위험이 있는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외향적인 사람이라 해도 얼마든지 나르시시트에 당할 수 있으므로 예방책은 물론, 당하고 나서 치유책도 각각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마련해야 합니다. 책에서 특히 두드러진 장점은, 나, 피해자인(혹은 그렇게 될 수 있는) 나를 지킬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건데, p115의 "내면 아이한테 보내는 편지"가 그 한 예입니다. 

내 감정이 다치지 않으려면,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그냥 당신의 감정에 충실하라"입니다. 저자님이 다룬 내담자 중 안젤라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미혼모 밑에서 자라면서 많은 정서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생들까지 돌봐야 했는데, 이런 소녀가장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self-denial입니다. 나보다는 내 식구들을 먼저 챙기느라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이런 걸 마음 속에 챙길 여유가 없이 성장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치유를 받으려면,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뭐가 싫으면 싫다고 정직하게, 나에게건 남에게건 인정하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은, 남의 영역을 함부로 치고 들어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관계 금도를 함부로 넘는다는 것인데, 또 이런 사람들한테 잘 당하는 피해자들의 특징이 뭐냐면, 남에게 넘게 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자주 침범당하게 허용한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로서는, 다시는 그 누구라도 남한테(나르시시스트건 누구건 간에) 내 영역을 함부로 침해 못 하게 단단히 방벽을 쳐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또 남이 나를 함부로 무시하게 방치하면 안 됩니다. 무시를 당했을 때 나의 가장 큰 피해는, 내가 내 핵심자아로부터 멀어져 내 내면이 공동화하고 황폐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르시시스트를 막는 궁극의 방법은, 나의 진정한 자존감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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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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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작품의 제재가 자그마한 책방일 때, 어떤 이야기가 대강 펼쳐질지는 우리 모두가 대체로 예상 가능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서점 하나에,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정 많고 착한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있으며 냉철하고 감정이 메마른 상속자(차도남이거나 차도녀)가 찾아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청산하려 들다가 결국은 본인이 감화되어 "멋이 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대체로 이런 식으로 진행되리라는 게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의표를 찌르는 포인트가 몇 있었으며 마지막이 눈물 핑 돌 만큼 감동적이어서 두꺼운 소설을 2주에 걸쳐 읽은 보람이 충분했습니다.  

첫 20페이지를 읽었을 때 저는 주인공이 마르티니크일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분이 얼마 전에 죽었다는 서점 주인 사라의 친자매인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니 unfaithful한 백만장자 배우자인 리처드와 갓 이혼한 마샤하고 3자매 관계(마치 에밀리, 샬럿, 앤 브론테처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그냥 고용된 점원이더군요. 하지만 고인이 된 사라 뤼도베리와 친자매 이상의 우애를 나눈 분이었으며 따라서 고인의 비밀, 이제 스웨덴에서 런던으로 날아올 상속인에 대한 비밀도 알고 있음이 p130에서 암시됩니다. p157에는 "그앤 이모에 대해 얼마나 알아?"라는 이웃 파넬라의 대사가 나옵니다. p236에서는 "사라가 자신(=마르티니크)에게 맡긴 비밀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지요.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웨덴 여성 샬로테임이 곧 드러납니다. 그녀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저는 모르겠던데, p164를 보면 1986년에 이사를 와 사라 이모와 30년 친구였다는 파넬라의 말이 나오고요, p212에 보면 1982년이 샬로테가 태어나기 1년 전이라고도 합니다. 이 소설이 출간된 해 2018년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본다면 그녀는 35세입니다. p33에는 스칼렛 요한슨을 닮았다는 말도 있고(그녀는 1984년생입니다), p175에서는 제 이모(즉 사라)처럼 아주 예뻤다고도 하며, p141에서는 아바의 금발 멤버 앙네타(우리가 아그네타로 알고 있던 분)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소설 처음에 나오는 별 능력 없는 심리치료사 이름도 (스웨덴에서는 흔한) 앙네타이긴 했습니다. 

샬로테는 아주 머리가 좋고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한 기업가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암시하기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아주 잘 읽었던 유능한 남편 알렉스의 정반대 성향인 뛰어난 자질이 없었더라면 그만큼 성공하기는 힘들었을 듯합니다. 남편 알렉스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p81 같은 데서 "이상한 사고"로 죽었다고 나오며,  p208, p415 같은 데서 커브길 사고 같은 게 언급됩니다. 분명 엄청난 미인이지만 평균 중의 평균인 점원 샘 같은 여자가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과 대비되게 "매력이 부족"하며, p47에는 "스몰토크가 힘든 사람", p55에는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힘든 사람"이란 말도 나옵니다. 그러나 생전에 남편 알렉스가 "회사의 간판(p39)"이라 점찍고 모델 사진도 찍었을 만큼 미인이죠. p26에서 행인이 지나가면서 풍기는 싸구려 향수에 질겁하는 그녀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고 곧바로 수긍했습니다. p31의 소독제 건도 그랬고요. p17에 자녀 이름을 딴 서가 장면이 제게는 재미있었는데, p165에서 샬로테가 "이런 도서 분류 체계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는 게 과연 그녀답다 싶었습니다. 

이성적 능력을 요하는 업무에 능한 샬로테는 p84, p105에 나오듯, 직접 회사 회계 업무를 맡아 봐 온 사람이며, 사라 이모가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서점 장부만 보고 바로 알아볼 정도입니다. p153에서는 사라 이모가 아마 "형편 없는 엄마"가 되어 파산했겠음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알렉스는 생전에 아내를 두고 문제 해결사(p109)라고도 했으며, p208에는 "정서적 안정, 실용적인 태도, 질서 중시"라는 그녀의 가치관이 그대로 서술됩니다. p286에는 "반 고흐는 (결국) 손가락이나 데고 말았군요."라며 기껏 이야기해 준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며,  p297에서는 경우에 맞지도 않게 리 차일드의 스릴러를 추천합니다.물론 잭 리처가 최고이긴 합니다만 큰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었습니다. p464에서 샘은 그녀에게, "첫 주에는 한 번도 안 웃더니 이제 웃음꽃이 핀다"고도 하네요. 이 과정, 그녀가 변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읽어 나가는 게 소설의 주된 재미입니다. 

음악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곡들이 언급되는데 비지스의 명곡 두 곡, 티나 터너의 <심플리 더 베스트(p103)> 등이 일정한 암시 속에 등장하네요. 티나 터나는 중년 여성들에게 나 아직 죽지 않았다는 용기를 북돋우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죠. 샬로테의 친구 헨리크는 p29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광팬이라 나오는데 p113에 그 성향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또 이 소설은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불행한 역사를 여러 곳에서 환기하는데, p192, p394 등에서 "아일랜드인이면 다 IRA냐?"라고 하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약자)이 싹 없어지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IRA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죠. 저는 대니얼이 중반쯤에서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p254에서 대니얼을 향한 크리스티나의 감정이 싹트는 장면, p293에서 키스하는 장면, p428에서 드디어 관계를 갖는 장면에서 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p571에서 대니얼이 "자신의 아버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사람이 달리 보였고, 그다음에서... 아... 참 슬퍼지더군요(스포). 

이 대니얼-크리스티나 씬과, 30여년 후 샬로테-윌리엄 씬이 서로 대칭관계입니다. p352의 "윌리엄(엘튼 존을 닮았다는! p489)을 보자 다시 가슴이 뛰었다"라든가, p379의 터치 장면, p415의 "그런 키스는 처음이었다"라는 샬로테의 말, p443에서 "이런 감정은 샬로테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이었다"라는 문장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책방 이야기이다 보니 예전과 요즘의 온갖 명작들이 작중 곳곳에서 언급되는 게 또 즐겁습니다. p241에서는 윌리엄이 <죄와 벌>에 깔려 죽는 사고라는 말을 하는데 물론 말도안되는 소리입니다. p301에서는 저 두꺼운 <죄와 벌>이 아주 우스운 목적을 위해 다시 언급되는데 여기서도 독자는 웃게 됩니다. p579에서는 한국에서도 많이 읽히는 작가 줌파 라히리가 잠시 입에 오르내립니다. p85에는 <가아프가 본 세상(존 어빙 作)>도 언급되는데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p145에는 아직 사라-크리스티나 자매가 서로 틀어지기 전, 언니가 동생한테 <오만과 편견>을 읽어 보라고 권하며 대니얼이 빙리일까 다아시에 가까울까 논하는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서점은 그저 낭만적인 향수만 자극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소재인데, p18에서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연대의식이 사라진 세상을 비판하는 의도로 읽힙니다. p390의 "서점은 아주 중요한 곳이었지"라든가, "서로를 돕는 우리 모두는 가족(p391)"에서는 동화 브레멘 음악대가 생각나기도 했네요. "우리 서점은 이 지역에 필요합니다(p534)"는 이 소설의 주제를 압축한다 할 만합니다. 

이 소설은 런던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런던 땅값이 요즘 특히 얼마나 올랐는지는 해외 토픽이 될 정도입니다. p43, p345에서는 대형마트인 테스코가 언급되는데 한국의 홈o러스 초창기 대주주이기도 했던 회사입니다. p78의 "런던 같은 대도시에는 일자리가 많으니까요"라는 쿡 변호사의 대사는, 뒤 p191의 "벨파스트에는 일자리가 없어서"라는 대니얼의 말이라든가, p15의 "중년의 문학사 학위 보유자", p100의 "서점 일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운운하는 마르티니크의 말과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루죠. 런던에 대해서는 p112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p275의 "변화무쌍한 도시", p430에서의 "제대로된 악천후" 등의 구절이 눈에 띕니다. 영국 음식은 맛 없기로 악명 높은데, p189의 피시앤칩스, p365의 뱅어앤매시, p382 마마이트 등이 재미있게 쓰입니다. 그리고 우리 서점의 운명을 바꿔 놓을 조앤 머리 작가님(누구일까요?)을 결정적으로 끌어들이는 건, p512의 스웨덴 식 기막힌 맛의 시나몬롤, 그리고 p418에 나온 "엄청난 해리포터 재고"였습니다(스포라서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p382에는 프랑스의 예 라 벨르 오르탕스가 언급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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