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이헌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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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영 작가님이 6년 전 발표한 장편 <한 생각>의 후편입니다. 저도 전편을 못 읽었습니다만 이 책의 앞부분에 내용 요약이 있으므로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용 요약만 읽어도 재미있더군요. 마치 <사기>에 나오는 염파와 인상여의 고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이처럼 대인스러움, 호탕함, 큰 그릇을 지녀야 마땅하지만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그런 큰 재목을 보기 어려운 듯합니다. 

p31에서 김주형의 대사 중 "이 자리에서는 안되겠구나."라는 말투는 실제로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가졌던 냉면 회동에서의 그 버릇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51에서, 정관영이 "해야겠다"가 아니라, "한다"라고 표현을 정정한 건 의미심장하죠. 사실 "해야겠다"도, 이미 일을 저질러 놓고 상대에게 사후 승인을 강요한다는 뜻에서 일방적이지만, "한다"는 아예 상대의 의사를 고려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강경합니다. 또 리비아의 카다피 사례를 든 것이나(공교롭게도 며칠 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이 타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기어이 못 지키고 저 꼴로 만든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대목은 아마 바이든이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싶습니다. 

p102에서는 정관영이 김주형 위원장에게 깜짝 놀랄 고백을 합니다. (1권에서) 자신이 허장훈에게 양보한 이유는 능력이 부족함을 스스로 알고 있고, 탄핵이 두려워서였다는 것입니다! 독자가 읽는 중에도 깜짝 놀랄 만큼 의외의 발언이었는데, 지금 이게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둘이서 목욕탕에서 나누는 대화 중에 나왔으니 그만큼 더 진솔한 속내라고 해야 할지...  

그러나 김주형은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얼씨구나, 이 자가 약하게 나오니 내가 올라타야겠다고 경솔한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습으로 나라를 물려받은 주제에 북쪽 절반도 제대로 못 다스리는 자신에 대해 에둘러 꼬집는 게 아닌가?"라며 대뜸 화를 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자격지심의 발로에서 괜히 상대방의 진심을 곡해한 것일 수도 있죠. 이상은 독자인 제 느낌일 뿐이며, p173 같은 데서 보듯이 소설의 기조는 "김 위원장"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주인공 정관영은 위원장의 비대한 체형에 대해 한심해하는 듯하며, 그 지성에 대해서는 약간 모자란 사람으로까지 볼 정도입니다. 

상대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면 움찔할 수도 있겠건만, 정관영은 오히려 한 술 더 뜹니다. "선친의 장례식장에서 위원장님은 부담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 않습니까?" 마치 조나라의 모수가 초나라 고열왕 앞에 가서 당당한 태도로 협상을 주도했다는 고사와도 비슷합니다. 또, 김주형이 정관영을 목욕탕으로 초대한 건 2차 대전 당시 처칠이 루스벨트와 알몸으로 열었다는 양자 정상회담이 연상되기도 했네요. 옷을 다 벗고 회동하는 건 도청이나 녹음을 막기 위해서인데 p154를 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p64에서,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라고 허장훈이 경고까지 했건만 정관영은 거침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관영만의 진솔한 인격이 잘 드러나기도 합니다. 

소설의 전개가 독자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갑니다. 1권을 안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김주형 면전에서 정관영이 그렇게나 직설적으로 쏘아붙이리라고는 전혀 예측을 못했기에 읽으면서 무척 놀랐습니다(후반부 p208에서도 다시 몰아붙입니다). 또 p121에서 인터폰을 눌렀을 때 일단의 인원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이 정관영을 투명인간 취급할 때에도 의외였네요. 그런데... 제7장의 제목이 "관영 죽다"라니! 고작 소설 중반에서 주인공이 정녕 죽는다는 말입니까? 음... 그러나.... 

p147에 처음으로 김유경이 등장하는데 아마 김o정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인가 봅니다. 부부장이라는 직함 역시도 그렇습니다. 인질을 자청한 정관영도 보통 사람이 아니지만, 서울의 김경희 대통령에게 소식을 전하고 평양으로 즉시 다시 돌아온 허장훈도 진심 의리의 사나이입니다. 일이 다 성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김주형의 이니셔티브로 이뤄진 것처럼 체면을 세워 주는 연극을 하는 대목은 마치 시안 사변의 몇몇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았네요. 김 위원장과는 대조적으로, 그 여동생인 "김 부부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의적으로 이 소설에서 형상화하는 듯합니다. 3만 5천이라는 탈북자 수에 대해 안 믿으려 드는 것(p184)은 오빠 김 위원장의 반응(p104)과 같습니다. 

"모두를 살리는 아이디어로 정곡을 찔러야 한다(p200)." 아이디어, 아이디어라... 스포일러라서 이 독후감 속에 자세히 적지는 못하지만, 정관영의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상천외합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으로는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교착 상태에 오래 머무를수록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정관영처럼 통이 큰 사람이라야 합니다. 나부터를 송두리째 내려놓을 줄 알아야 상대방도 그에 감화되어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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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옳다는 착각 - 내 편 편향이 초래하는 파국의 심리학
크리스토퍼 J. 퍼거슨 지음, 김희봉 옮김 / 선순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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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기는, 혹 그 결과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파국적이라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은 노력을 통해 그 파국적인 결과를 모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 p9에 나오는 2009년 에어프랑스 447 추락 사고 같은 게 그런 부류입니다. 조종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당 조종사의 능력, 경력을 감안하면 그 상황에서라도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저자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거죠. 보냉이라는 이름의 그 조종사뿐 아니라,  평균적인 인간의 인지 능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라는 게(대개 조종사의 이런 능력은 평균을 상회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다소 비관적인 전제로부터 이 책은 논의를 시작합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지겨워서라도 동일 시도를 반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중에는 "광기"라는 것도 있어서, 어디 될 때까지 해 보자 같은 이상한 집착을 발동하여 무익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죠. 이게 아주 어리석은 인간만 저지르는 행동이 아니고 평균적인 우리 누구에게라도 가능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인내 오류(perseverative erro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p14). 심리학에서 무슨 오류 무슨 오류처럼 유형을 나누어 분류하는 건, 그런 오류가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이지만 메타인지가 가능한 인간이니 만큼 이를 의식하고 나의 오류를 교정하여 합리성에 최대한 접근하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의 주제의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차 대전은 원래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 일어난 비극이라고 합니다. 물론 최근의 러-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처럼, 전쟁은 그게 무엇이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꼭 지금 이 책뿐 아니라 전쟁사의 권위자 존 키건이 쓴 <제1차 세계대전사> 같은 책을 봐도, 1차 대전은 사건이 꼭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확 커질 성격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진행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더 큰 비극이라는 뜻입니다. 이 책에 나온 대로, 오스트리아 프란츠 황태자의 죽음은, 이 인물이 그리 자국 대중에 의해 사랑 받던 편이 아니었는데도 기어이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양국 간의 전쟁이 터졌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저 두 나라가 주요 교전국도 아닌, 엉뚱하게도 영국, 독일 제2제국, 러시아, 프랑스, 나중에는 미국까지 참전하는 이상한 싸움으로 확전되었습니다. 물론 사라예보 사건은 그저 트리거에 불과했고 그간 곪아왔던 국제 관계 정치, 경제, 민족 모순이 일거에 터진 것이지만, 결국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전쟁으로 귀착했기 때문에, 애초에 피할 수 있는 계기도 많았던 만큼 각국이 조금만 이성적으로 대처했어도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입니다. 

p52에는 "느끼다"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며 모두 핑크색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개념)의 원어는 아마도 perceive일 것인데, 이성적으로 무엇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낀다는 이유에서 저리 구분하는 것입니다. MBTI의 16개 피라미터 중 하나이기도 하죠. 가용성 폭포 상황이 언제 일어나느냐에 대해 p53에서는 7개의 이유를 제시하는데, 이때 인간은 경험적 데이터를 이용할 생각을 못하고 우왕좌왕 안절부절을 거쳐 비이성적이고 때로 광기어린 판단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대부분 파국입니다. 책에서는 3년 전 NBA 경기 중단, 화장지 사재기 파동 같은 걸 예로 듭니다. 아니 코로나가 유행히는데 당연히 스포츠 경기를 중단해야 하지 않냐는 반문이 가능한데, 저자는 한 단체(혹은 개인)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나머지도 우루루 휩쓸려 눈사태처럼 상황이 비화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개인 차원보다 집단 광기가 더욱 무서운 법이죠.  

유전자 변형 식품은 물론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나지 않은 만큼, 어떤 위험이 그 안에 도사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GMO의 위험을 경계하는 신중한 태도와는 별개로, GMO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지에 대해서는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중 순수하게 아무 변형도 가해지지 않은 건 거의 없으며, 모든 인공(artificial)에 거부감을 보인다면 현대인의 삶이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소비와, 패닉은 서로 구분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념이라는 건 많은 경우 감정과 결부되었기 때문에, 눈앞에 그게 아니라는 증거가 훤히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도 보란 듯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곤 한다(p122)." 하물며 더 많은 경우,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 들어도 긴가민가라면, 우리는 그냥 자신의 신념에 따라 버리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건 누구한테나 그만큼 어려운 일이며 감정을 절제하는 게 그만큼이나 절실한 과제이죠. 

위기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마땅히 절제해야 하지만, 모두를 구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예외적인 사람이라면 대처 방법이 달라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너무나도 위기 상황이 잦아지면 사람들은 일일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데 지쳐 좀비처럼 무감각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p163에서는 둔감화(desensitization)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게 반드시 해로운 건 아니고 예외적으로는 이롭기도 합니다. 특별한 능력과 루틴이 몸에 배어 있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이기적이긴 하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 분들에게 우리는 위험에 무감각해지기를 은근 바라기도 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도 공포감 등에 지배되면 사람이 제 능력 발휘가 안 되는 법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미국도 지금 좌우가 대립하여 미친 듯 정쟁을 벌입니다. 책 저자도 곳곳에서 때로는 풍자로, 때로는 우려와 걱정의 표현으로 이를 언급하는데, 독자 중에는 좌파도 우파도 다 있기 마련이므로 유머러스하게 양쪽을 배려하는 태도가 여기저기서 드러나서 독자를 웃게 합니다. 물론 자신의 신념은 그것대로 소중히 간직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올바른 신념도 아닌 가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몇몇 때문에 모두가 파국으로 몰리는 결말만은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건 피부색과 인종, 민족에 무관하게 새로운 인력(육체노동, 기술 인력 등)을 받아들여야 생산력과 사회적 건강이 유지됩니다. p271에서 저자는 "국가 질서보다 출신 종족에 더 충성하는 야만 게르만 족을 받아들였기에 (서)로마가 망했다는 교과서에서의 가르침을 상기합니다. 물론 그는 이에 대한 비판을 꺼내들기 위해 이 화제를 언급했지만, 교과서에서 이렇게 배우셨다는 게(현재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입니다) 저자님의 연세를 생각하면 그럴 법하다 싶기도 했습니다. 이 섹션에서 저자는 보통 좌파 우파가 이민 정책의 효과, 부작용에 대해 착각하는 바를 팩트 분석을 통해 신랄하게 지적하며, 공동체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온갖 심리적 오류에서 가능하면 벗어나 보자는 노력을 독자에게 촉구합니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주장보다는 데이터에 더 의존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각종 학술 단체의 정치적 파당적 성격을 개혁하며, 메타 인지 능력을 계발(개인이건 사회건 간에)하는 방법으로 파국을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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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계 실무 가이드북 : 실전 편 - 일반인부터 CEO까지 알아야 할 회계와 재무제표에 관한 모든 것, 개정판
신방수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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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회계사나 관련 직종에만 회계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일반 사무직도 회계의 최소 소양이 있어야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도 더 충실하게 완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사람을 쪼아대는 나라이다 보니 만능이 되어야 하는 압박이 있습니다만, 기왕 일하는 것 더 깔끔하고 빈틈없이 해 내는 게 직업인으로서 자부심도 더하고 더 당당해지는 길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학부 때 보던 중급회계 원가회계 두꺼운 교과서를 다시 꺼내들자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나의 회사 업무에 필요한 지식만 딱 추려서 쉽고 요령 있게 간추린 책이 있다면 내가 참조, 활용하기에 정말 편할 듯합니다. 또 혹 주식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우리 개미 투자자가 상장사의 펀더멘털 분석, 밸류에이션에 직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로서 회계 공시자료만한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p63을 보면 현금흐름표 보는 법이 나옵니다. 설명이 참 깔끔하고 쉽습니다. 우리가 학부 때 배웠던 교과서들도 말의 거품을 좀 빼고 이렇게 솔직하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기업의 활동은 크게 영업활동, 투자활동, 재무활동이 있습니다. 활동의 비중에 따라 모두 여섯 가지 상황이 제시됩니다. 그런데 p65를 보면 제7의 상황으로 영업(+), 투자(+), 재무(-)인 경우가 던져지며, 독자들더러 이게 어떤 상황인지 분석해 보라고 합니다. 답은, 투자자산을 팔아 재무활동(=부채상환)에 나서니 이건 구조조정이라고 합니다. 2의 세제곱이니 모두 8가지 상황이 상정 가능하며, 이 페이지에 안 나온 건, 영(-), 투(+), 재(+)뿐입니다. 이건 어떤 상황이겠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거래의 8요소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상경계라면 학부 신입생 1학기 때에도 베우는 내용이지만, 정작 뭔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다들 버벅거립니다. 이 8대 요소가 좌우로 항상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고, 실제 거래 현상은 더 자주 일어나는 유형이 따로 있습니다. p89를 보면 그림에 저 8대 요소가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가 나오는데, 빈도가 높은 것은 검은 실선으로, 낮은 거래 사건은 점선으로 표기되었습니다. 비용의 발생과 수익의 발생도 우리 상식으로는 안 일어날 것 같지만, 예외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는 거죠. 차변과 대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줍니다. 인건비 지출, 기계 장비 취득, 부채 조달 세 가지 예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기업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p99에 보면 K기업이란 곳이 타 업체에서 제시한 공사입찰에 과연 응해야 하는지 사례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업체의 재무상태표(구 대차대조표)를 보니,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양호한 반면, 미수금 자산 비중이 큽니다. 또 단기 부채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입찰에 성공해서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단지 사장 단에서만 이런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대리라고 해도 이런 취지의 보고서를 올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회계 지식이 왜 필요한지 실감이 나는 대목이죠. 

이 책의 최고 장점 중 하나는, 우리가 회사 다니면서 마주칠 수 있는 사례가 자주 많이 나와서 응용의 범위가 넓다는 점입니다. p127에 보면 경기도 일산에 소지했다는 J 기업(물론 가공일 수 있습니다)의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가 제시되는데, 개발비 지출을 어떻게 장부상으로 처리하는지가 이슈입니다. 보통 인건비는 비용 처리하는 게 상식 같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합니다. 즉, 개발비에 해당하는 인건비는,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비(費)" 자가 붙었다고 다 비용 항목이 아니라 이렇게 자산으로 처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자산이기 때문에 감가상각 과정도 거칩니다. 

인사부문이 현금흐름표에 영향을 주는 건 어떤 부문일까요? 책 p135에 보면, 이것은 주로 영업활동으로 인한 게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건 제조 판매에 종사하는 인력에 지급하는 돈은 즉시 유출을 의미하기 때문에 효율적 집행이 무척 중요하다고 합니다. 반면, 상품 매출 대금 같은 것은, 어음으로 결제되는 경우가 많아서 현금 지출이 즉시 이뤄지는 게 아니지요. 

p153을 보면 이자보상비율이 설명됩니다. 아래에는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의 일부도 제시됩니다. 이 비율이 1(즉 100%)이 안 될 때에는, 이익이 있어도 이걸 이자 갚는 데 다 쓰인다는 소리이니, 기업의 현재, 미래가 아주 어둡다는 거죠. 기업의 상태를 볼 때 이 사항을 유의깊게 봐야 하는 이유이죠. 또 p195를 보면 주식 투자 분석에 자주 쓰이는 개념들, EPS, PER, PBR, ROE 같은 게 알기 쉽게 설명됩니다. 사실 이거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대화에 껴서 화제가 안 막히려면 알아는 둬야 합니다. 

부채비율을 갑자기 낮춰야 한다면 어떤 기교가 필요하겠습니까? p203에 보면, 차입금의 일부를 출자로 전환하는 방법(실제로 1998년 외환위기 때 하이닉스가 미아가 되자 노조 측에서 이 방법을 제안했었죠)이 나옵니다. 회계라는 게 어떻게 보면 숫자 장난, 항목 전환을 통한 사술 같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실물의 변화에까지 이르는 지혜가 도출되기도 합니다. 세무와 회계 분야에서 요즘 가장 핫한 작가인 신방수 세무사님 책이라서 더 믿음이 가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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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하우스 -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
김일중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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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p4에 나오듯이 "파워하우스란, 어떤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보유한 개인 또는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며, EP는 그런 파워하우스의 executive producer의 약칭입니다. 책에서 드는 예는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사람입니다. 한류 열풍이라고 해서 그간 말로만 들었지만 해외에 나가면 그 위력을 더욱 실감합니다. 한국의 컨텐츠가 그렇게나, 다른 나라의 각계 각층에서 큰 인기를 모을 줄은 미처 몰랐지요. 이만큼이나 성장한 대중 문화 강국이니, 한국에도 파워하우스가 당연히 있고 그 파워하우스를 이끄는 EP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성공비결이 무엇이며 남들이 함부로 따라 못 할 그들의 센스와 영감의 원천이 어디 있는지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모두 10인의 EP가 소개됩니다. 

처음에 소개되는 분은 윤신애씨인데 저처럼 드라마 잘 안 보는 사람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제목은 들어 본 적 있을 듯합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후의 한국 컨텐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드라마로 <인간수업>을 꼽는다고 합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책에 나온 몇 줄만 읽어 봐도 엄청난 파격이고 혁신이었던 듯합니다. 이런 컨셉으로 혹시 흥행이 잘못되면 책임자가 얼마나 욕을 들어먹겠습니까.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다 중간만 넘자는 생각이었다면 저런 히트작, 화제작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청 거칠었지만, 캐릭타가 아주 잘 살아 있었어요.(p13)." 대가의 눈에는 이런 게 다 보이나 봅니다. 

EP는 과연 무슨 일을 하는가. p5에서 이동훈 EP는 "작가는 전부 프로듀서다. 작가 겸 총괄 프로듀서가 라이팅 EP이며, 글을 직접 안 쓰는 EP는 논 라이팅 EP"인데, 후자는 바로 자신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회사에도 파운더(founder)가 다 있기 마련인데, 논 라이팅 EP는 그런 설립자와도 같아서 "시스템 안에서 이런 파운딩 멤버는 영원히 간다"고도 합니다. 미국에서 계약은 오퍼, 카운트 오퍼, 다시 카운터 오퍼 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미국 내에서라면 어느 정도 참고 지표라고 할 게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게 없으니 미국 쪽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들고 올 수도 있으며 이때 괜히 흥분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적인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인엽 EP는 창작 능력을 기르는 비결에 대해 "그저 많이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p86)"고도 합니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후킹 포인트"라는 게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길게 가는 기획자라면 돈만 밝혀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자신은 이 일을 20년 동안 해 왔는데, 재미있는 말이 주변에서 하던 "영화는 대박이 나면 건물도 사지만, 드라마는 잘돼봤자 아파트 평수 좀 늘리는 정도다(p89)"라는 소리에 현타가 오기도 했으나, 결국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한우물을 파다보니 이제는 넷플o스가 주도하는 OTT 세상이 왔고 박 EP 같은 분이 재능과 능력에 맞는 대접을 받게도 된 것입니다. 

한석원 대표는 어려서부터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 군대에서도 <씨네21>을 구독했었는데 열정이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텍스트로든 영상으로든 꾸준히 정신적 양분을 섭취하는 게, 한 분야를 향한 진지하고 헌신적인 집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된 작품은 <태양의 후예>인데, 이때에도 그가 최우선으로 꼽은 동인은 "재미"였습니다. 어느 분야이든,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죠. 다만 현재 잘나가는 인력에게건 유망주에게건 기회가 고르게 가야 하는데 현 OTT 주도의 시장에서는 양극화가 지나친 게 걱정스럽다고 합니다. 후배들이나 잘나가지 못하는 동료들까지 챙기는 한 대표님의 마음씀이 존경스럽네요. 

방송사의 제작 환경이라는 게 기성세대들이 알던, 지상파 방송국이 어떤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외부제작사한테 용역을 주는(그 이전이라면, 거대 방송사가 모든 걸 주도하는) 방식하고는 완전히 달라진 게 현실입니다. p151을 보면 김희열 대표는 "요즘은 방송사도 방영권만 구매해서 방송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코스닥 시황에서 보곤 하는 이런저런 미디어 제작사들이, 지상파 방송은 그저 채널로 삼아 배급하고 모든 걸 주도하는 그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방송사도 그저 하나의 플랫폼 노릇을 하는 구조로 바뀐 거죠. p159를 보면 EP는 머나먼 항해를 떠나는 배의 선장과도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국의 컨텐츠가 이처럼이나 큰 인기를 끌게 된 게, 드라마 안에 한국인 특유의 곱고 착한 마음이 드러나고 그것이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여 이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맞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드라마 그 너머를 꿈꾼다는 신인수 대표님은 "여기저기서 거절당하고 일이 안 풀릴 때 난국을 돌파하는 자신만의 킥(kick)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걸 메이드(made)시킬 수 있다는 확신, 자기 확신이 있다면 무슨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인다"고 대답하십니다. 본인 세대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뚫어야 입문할 수 있는 세대였으나 지금은 업계에서 신선한 젊은 피를 언제나 수혈받기를 원하며 "똘기있는" 창의적인 인력에 항상 목말라 있다고 하며, 그런 인재인지 아닌지는 척 봐도 알 수 있다고 하시네요. 젊은이들이 머뭇거리지 말고 젊음의 특권인 패기를 발휘하여 바로 도전해 볼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열린 마인드의 대가들이 성공 모범을 먼저 보여 주신 창조의 필드로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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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부 - 펩시 CEO 인드라 누이의 일, 가정 그리고 우리의 미래
인드라 누이 지음, 신솔잎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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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 vs 코크. 아마도 레알마드리드 vs FC 바르셀로나라든가, 마블 대 DC처럼 세대를 초월한 라이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시 vs 호날두, 파퀴아오 vs 메이웨더 정도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습니다. 아직도 탄산음료 점유율이라든가 선호도 면에서는 코카콜라가 펩시콜라를 앞섭니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펩시콜라가 더 많이 선택된다는 결과도 있고, 이 책 앞날개에도 나오듯이 펩시코 회사 전체(콜라 단품이 아닌)의 매출액은 이 인드라 누이 CEO 재임기인 2004년에 코카콜라社를 앞질렀으며, 현재도 수치 차이가 엄청나게 납니다. 만년 2인자였던 펩시코가 일부 부문에서나마 코카콜라社를 제칠 수 있었던 건 대개 이 인드라 누이 CEO의 공을 높게 칩니다. 

책읊 읽어 보니 인드라 누이 CEO가 생각보다 나이가 엄청 많은 분이더군요. 이분은 1955년생이며, 인도가 아직 세계 빈국 대열에서 탈피 못 하던 시절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출신 집안은 유복한 명문이었으며, 본인도 자질이 출중했던 덕에 인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예일대에서 박사를 땄습니다. 예일대가 원래 경영 쪽은 그리 역사가 깊은 건 아닌데(p91) 여튼 인드라가 다닐 무렵에는 최고 퀄리티였나 본지 책에서 내내 감탄과 감사를 표합니다. 본문 p27에서 스스로 밝히기를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출신 계급은 인도에서 최상위층인 브라만입니다. 물론 이것이 성장 과정에서 엄청난 이점이었음을 그녀 스스로도 인정합니다. p104에서는 그저 "중산층 출신"이라고도 하네요. 

출신지는 첸나이인데 p26에 나오듯이 원래는 이름이 마드라스였던 것을 1992년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에 인도 총리가 국명 자체를 바꾸려는 듯한 암시를 하기도 했는데... 이 첸나이는 타밀 나두 주의 수도이며, 이 고장은 타밀 족이 다수이고 힌디어가 잘 안 통하기 때문에 인드라 누이의 가문이 완전 주류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p36)"이 집안에서 지상과제였음을 그녀는 고백합니다. 이런 훌륭한 가풍에서 이런 인재가 나오기 마련이죠. p103에 보면 학생 시절 재미있게 본 영화로 두 코미디언이 나온 <실버 스트릭>이 언급되는데 저도 이거 재미있게 봤고 한국에서도 MBC 주말의명화 시간에 틀어 준 적 있습니다.   

공부 자체는 이분보다 언니 찬드리카가 더 잘했나 봅니다. 인드라 누이는 (좀 의외지만) 고급수학에 좀 약했기 때문에(p49) 개인과외가 따로 필요했다고 하네요. 책을 읽어 보면 그 모친께서 의지가 굳세고 치밀한 사고방식을 갖고 가정을 꾸린 분이라서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참된 CEO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며 찬사와 고마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훌륭하신 부모의 훈육과 가풍 아래에서라야 뛰어난 인재가 나오는 법입니다. "누이(Nooyi)"는 p102에 나오듯, 대학원 다니며 만난 남편(Raj.라지)의 성씨이며 친정의 성씨는 크리슈나무르티입니다. 한국에서 예전에 큰 성공을 거둔 어느 명상가, 저술가의 성씨와도 같죠. p116에 나오듯이 이분도 아내 인드라처럼 그냥 모범생이고 공붓벌레 스타일이었습니다. 의사 집안 청년이고, 부모님들은 일찍이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분들이었다고 합니다. 먼 태생으로는 인도 서남부의 칸나다 사람들인데 여긴 인드라의 고향인 타밀나두와는 정반대 방향이죠. 누이라는 성씨는 칸나다 주 항구도시인 망갈로르의 작은 마을 이름이라고 p137에 나옵니다.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보여 주되 주위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p97)." 얼마나 훌륭한 가르침입니까. 부모님의 가르침이 이러니 지역 사회에서도 미국 유학을 가서도 그 딸이 반듯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p85를 보면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인도인은 영국인에게라면 몰라도 미국인에게 피해의식을 가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1918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거론하는 바람에 인도 독립 과정(스와라지 운동 등)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좋죠. 여튼 미국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창의적인 교육 풍토가 큰 인재를 낳는 데 일조했음은 p91 같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스승을 아무 거리낌없이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라든가 하는 게 말입니다. 

독립적인 인간이 될 것을 언제나 강조하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맞춰 인드라는 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 굴지의 기업들에서 양질의 커리어를 쌓습니다. p131에 보면 게르하르트 슐마이어라는 인물을 모토롤라에서 만난 걸로 나오는데 이 독일 사람이 이후 인드라 누이의 경력 상당 부분을 이끌어주다시피 하더군요. 사회에서 좋은 사람과 인맥을 만나고 연을 잘 맺는 게 성공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토롤라 같은 큰 기업에서 그 정도로 큰 성과를 내기도 했고, 이사진이 찾아와 만류까지 했는데도 그녀는 술마이어 씨를 따라 ABB로 옮기기로 합니다. 이 새로운 직장에서 그녀 자신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p145)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함부로 흉내 못 낼 결단력입니다. 

ABB에서도 그녀는 좋은 성과를 내었지만 뭔가 여성에게 여전히 한계를 부여하고, 능력에 따른 존중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자인 제 생각에는, 단순히 어떤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서 얻을 만큼 경험과 성취감을 얻은 다음에는 나의 성장을 위해 망설임 없이 이직하는 타이밍을 기막히게 잡는 것이 또한 그녀의 능력이자 센스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하필이면, 그녀를 계속 이끌어 주던 술마이어 씨가 지멘스 계열사 CEO 자리를 찾아 독일로 떠나버리기도 해서(1993년)이기도 합니다. 10살짜리와 18개월짜리 아이들의 엄마였던 그녀는 이제 드디어 혼자(슐마이어 씨 없이) 펩시코에 입사하여 신화를 쓰기 시작합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국 대기업이라는 곳이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많은 한계를 지우는 조직이었음이 p207에서도 확인됩니다. 펩시코만 해도 여성 CEO가 이미 브렌다 반스라는 분이 있었으나 불과 1년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고 이 책에서 그녀는 회고하며, 능력도 출중한 편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책 서드에서도 그녀는 말했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가정이 최고라는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이 신념을 일생 동안 저버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 회사는 "긴급 문화(culture of urgency)"에 이렇게 강박적으로 짓눌려야 하는가? 좀 더 여유를 가지면 안 될까? 아이 엄마이자 가족 지상론였던 그녀는 나중에 회사의 풍조를, 보다 직원들이 자신의 가족에 더 많은 배려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합니다. p268도 참고하십시오. 

p213에 보면 드디어 그녀가 펩시코의 사장단이 되던 감격적인 순간이 회고됩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친정 엄마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항상 사위에게 장모로서의 도리를 다하던 엄마는 인드라에게 "넌 집안에서는 아내이자 엄마일 뿐이다. 오늘부로 사장이든 뭐가 되었건 간에 그 자리는 주차장에 내려놓고,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주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뿐 아니겠니?" 참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자녀라는 작품은 어디까지나 부모라는 예술가가 만드는 것입니다. 

p228을 보면 이래서 워킹맘이 힘들다는 게 실감이 나죠. 부모 피가 어디 안 간다고 아이들도 다 재능 넘치는 학생들이었지만 인드라는 엄마로서 좀 더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했는지 언제나 살폈다고 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p233)." 욱아에 힘쓰는 와중에도 인드라는 펩시코 내에서 갖가지 개혁을 주도합니다. 괜히 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을 논한 게 아니어서, 잘못된 회사는 물론 잘되는 회사까지도 끊임없이 바꾸고 또 바꿔야 합니다. "내 업무는 본질적으로 끝이라는 게 없었다(p233)." p245에서 그녀는 드디어 펩시코의 단독 CEO에 오르는데 앞서 p213에서는 스티브 레인먼드(Reinemund. p197) 씨가 메인 포지션이었고 이제는 그녀가 혼자 펩시코를 이끄는 것입니다. p260을 보면 레인먼드 씨(책에서 인드라는 내내 직장 선배나 전 상사를 퍼스트네임으로 부릅니다)가 그녀에 대해 최고경영자 재목으로 최상의 찬사를 보낸 사실이 나옵니다. 

여성스러움이라는 것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각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 특성에 담아야 하는 주요 속성 중 하나입니다. p268을 보면 슬로건 중 cherish라는 단어가 너무 여성스럽다며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인드라 CEO가 강력하게 밀어서 결국 채택이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p272에 보면 "펩시코의 미래를 이끌 단순하지만 세심한 전략이 PwP를 통해 마련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한국어판의 부제이기도 하네요. p288을 보면 이분 재임기에 펩시코의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가 성공적인 인수합병 등을 통해 크게 확장되었다고 나오는데, 이 독후감 초두에도 적었지만 펩시코가 현재까지도 코카콜라社를 매출액 면에서는 크게 앞서는 게 다 이분의 공입니다. p316에도 PwP의 효과가 설명되네요. 

펩시코의 역사를 새로 쓴 인드라가 퇴임할 때에도 큰 화제가 되었는데 여성 CEO가 떠나면 잠시 열렸던 유리천장이 도로 닫힌다는 매스미디어의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인드라 자신이 우려하던 바였습니다. 책 후반부에는 젠더 바이어스에 대한 그녀의 긴 지론이 펼쳐지며, 예전 모토롤라에서 허니 어쩌구 하며 무시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다시 회고되네요(p341). "리더는 스스로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p352)." 이 "모범" 안에, 차별 금지 등 현대의 모럴이 포함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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