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아일랜드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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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이웃을 동료로 생각지 않고 내 생존을 위해 죽여야 할 희생양으로 간주하여 벌이는 살육의 참상.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짓거리인데, 이게 꼭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인도(소설이 다 끝났을 때도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나, 오징어게임에서의 그 또다른 익명의 무인도라든가, 다카미 고슌[高見廣春] 작 배틀로얄(1997)에서의 그 피비린내 나는 섬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불법 하코방을 두고 권리금을 붙여 팔아먹는다는가 하는 악질의 사기꾼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걸레질을 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일랜드라는 독특한 이름의 술집에 모이는 단골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탈하고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마스터라고만 불리는 술집 주인은, 가끔 무례한 말을 손님들에게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자영업 마인드에 특화된 인물로 보입니다. 제가 몇 개월 전에 읽었던 어떤 자영업 관련 서적을 보면, 그 저자께서 진상 손을 대할 때 사장은 그저 "이 객이 철없이 구는 어린이이겠거니"하고 넘기는 게 상책이라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사실 제 생각에, 저자는 아마 처음에 다른 표현을 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판물에 지나치게 원색적인 표현을 쓰는 게 곤란했으니 그 정도로 순화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그 저자님(사장님) 얼굴을 보면, 정말로 한 성격 할 것 같은 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장 순하고 남한테 해 안 끼칠 것 같은 인물들이 가장 짐승 같은 악행을 벌이는 걸로 드러납니다. ooo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섬 안에서 돌연 살인마로 바뀌는 ooo 또한 그렇습니다. ooo는 평소 그 직업을 맡아 온갖 진상 o원o을 상대하다 보니 그런 괴물이 된 듯 그려지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소설에서도 여러 번 서술되듯) 타고난 인성 자체가 나빠서 그렇겠죠. 청소 노파 역시 상황이 사람을 그리 만든 게 아니라, 타고난 인성이 비틀어지고 사악한 탓입니다. 그럼 ooo는 왜 이렇게 잔인하고 악랄한 무대를 만들었을까? 돈과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이 없으면, 지루한 걸 못 참는 인간이란 종은 이렇게까지 타락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지옥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나간 oooo도 앞으로 조심해야 할 듯합니다.

소설은 매우 치밀하게, 무인도에 갇힌 7인의 처절한 변모와 투쟁을 묘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ooo가 꾸민 지옥의 규칙을 알고, 같은 피해자의 처지이면서도 룰에 순응하고, (도움이 안 되는) 멤버를 배제하는 과정 같은 게, 사람의 지극히 이기적인 품성을 잘 드러낸다고 봤습니다. 이런 일은 무인도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협력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자고 이성적인 제안을 한 사람, 이 와중에 남들에게 그나마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먼저 죽어나갑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주변에 끝까지 남겨 둬야 나에게도 이익인 사람에게 맨먼저 해코지를 하는 데서, 사람이란 최소한의 이성도 없는, 그저 일개 동물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주 시야가 좁은 잔머리인데, 그 한심한 잔꾀를 두고 스스로 영리하다며 자화자찬하는 꼴을 보면, 라커인 양 착각하고 이용당하는 미친 돼지를 보는 듯 연민이 느껴집니다.

(약스포)
작가님은 소설 창작을 두고 연구를 많이 하신 분 같습니다. 무인도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런저런 요긴한 지식이 전개되는 걸 보면, 우리 독자 누구라도 설마 이런 일이 내 생에 벌어지진 않으리라는 걸 알아도, 이런 좋은 팁은 꼭 알아둬야겠다는 우스꽝스러운 다짐을 하게도 됩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건 oooo이, 예를 들어 p232 같은 데서 의외의 치밀한 계산을 한다거나, 그 사악한 빌런의 숨통을 끊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거나, 결말에 가서도 o깍o를 스스로 벗고 그 한심한 놈을 저승으로 보낸다거나 하는 과감한 면모입니다. 그 oo 되시는 분들도 보통 사람이 아니니 그런 큰 돈을 벌었을 텐데, 그 DNA가 뭐 어디 딴데로 갔겠습니까?

사실 저는 읽어나가며 좀 다른 결말을 예상했는데, oooo이 각성해 나가는 과정도 재미있긴 했습니다. 모쪼록 제대로 이 섬을 빠져나가 그 망할 자식한테 복수도 하고, 자신의 엄청난 포텐도 터뜨렸으면 좋겠습니다. 頑張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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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처음 일본어 - 일본어 찐 왕초보를 위한 100일 완성 프로젝트
박다겸.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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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재는 찐왕초보가 100일 동안, 글자 읽는 법, 간단한 회화 표현 떨지 않고 말하기, 교과서 읽기, 어학시험 초급 점수 따기 등을 마칠 수 있게 구성되었습니다. 일본어는 관심 있는 이들도 많고, 초보들을 위한 친절하고 세심한 교재가 기존에 여럿 나와 있었습니다. 그 책들도 다 좋은 책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더 깔끔해지고, 더 쉽고 더 예뻐진 책이 계속 발전하며 출간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수준이 쉬운데도, 그 내용은 기존 교재들이 다룬 다소 뻔한 패턴에서는 또 벗어나 있습니다. 중급자도 이 책을 보면, 아 이 부분은 나에게 부족했구나 싶어서 뜨끔해지곤 할 것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하는, 정말로 쌩초보용이라서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가르칩니다. か행에서, 단어 첫글자는 우리말 ㄱ에 가깝게 발음하고, 중간이나 끝에서는 ㄲ나 ㅋ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알려 줍니다. 그래서 豊臣은 토요토미가 아니라, 외국어 표기법에서도 도요토미라고 쓰는 것입니다. 또 이 페이지의 재미있는 점은, 히라가나의 무슨 글자가 무슨 발음인지 그림 연상을 통해, 예를 들어 ね는 그네 모양 컬러 일러스트를 위에 붙여서(p19), れ는 꼬불꼬불 벌레 모양과 겹치게 해서(p21), 학습자가 쉽게 연상케 하여 기억을 돕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방법은, 여태 한국인들을 위해 제작 출간된 모든 교재가 다 제 나름대로 기발하게 고안해 놓은 게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박다경쌤은 품사 설명도 참 체계적으로 하시는데 예를 들면 p36을 볼 때 명사(noun)을 설명하며, 이름 명(名), 말씀 사(詞) 라고 한자 하나하나까지 짚어 줍니다. 이렇게 기초부터 빈틈 없이 설명해야, 나중에 중고급으로 나아가도 흔들리지 않고 발전이 빠릅니다. 더군다나 일어는 중고급으로 갈수록 한자 기반 단어의 미묘한 느낌이 분화하는 언어이니, 이렇게 한자까지 잘 일러 주는 설명 스타일이 뭔가 더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말입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그림으로 만나는 보통명사"라 하여, 역시 컬러 미니 일러스트와 함께 설명이 진행되어 이해가 아주 편합니다.

p60에서는 지시대명사에 대 해 배웁니다. 제가 또 이 교재에서 눈여겨 본 건, 챕터를 처음 시작할 때 그냥 건조하게 문법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게 전체 문법이나 회화에서 어떤 의미인지, 학습자의 문제의식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학습자는 타성에 젖지 않고, 공부가 지루해질 무렵이면 적절하게 각성하게도 됩니다. 저는 박다경쌤 강의를 들어 본 적 없지만, 아마 실제 수업 시간에도 이렇게 재미있게 진행하실 것 같습니다. これ, それ, あれ는 기초 중의 기초지만 기초 수업을 띄엄띄엄 들은 학생들은 공부해도 공부해도 매번 헷갈릴 듯합니다. 이번에 이 책으로 확실히! 매조지했으면 좋겠습니다.

p82를 보면 ~부터 ~였어요? 형식의 구문을 가르치는데 도식화가 잘 되어서 정말로 "한눈에 구문이 보입니다." 명사+でしだか?라고 하면, 그 뜻이 ~였어요?인데 예문으로는 結婚式は何月でしだか?라는 게 나옵니다. 그 뜻은 "결혼식은 몇 월이었어요?"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진 패턴만 배우는 게 아니라, おげんきでしたか? 같은, 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일본 영화 <러브레터> 덕분에 아는, 관용표현의 이해에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의 표현은 おげんきですか?로서, 현재형으로 물었습니다.

형용사 유형 중에 な형이 있습니다. p111을 보면 어떤 사람의 평판에 대해 물을 때, 그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긍정해 주는 여러 예문이 나옵니다. 木村さんはとても眞面目です.라고 하면, 기무라 씨는 매우 성실해요.라는 뜻입니다. とても는 "매우"라는 부사이며, 眞面目た는 "성실하다"라는 형용사인데, 이 眞面目은 우리말로는 그저 실제 모습이라는 뜻일 뿐인데 일어로는 저런 의미라는 게 흥미롭습니다. 아무튼 だ가 탈락하고 です 등의 어미가 붙는 패턴을 잘 이해하면 됩니다.

뭔가 공부하는 재미를 북돋워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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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뿡이는 친구가 필요해 책고래세계그림책 2
다니엘 웨르가 지음, 데이비드 칸트로위츠 그림, 김서정 옮김 / 책고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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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칸트로위츠 작가님이 그림을 그렸으며, 다니엘 웨르가가 글을 썼습니다. 웨르가는 이름을 Huerga라고 쓰는데 현재 한국에 거주한다고 나오네요. 이 책 표지를 보자마자 어디서 본 듯하다는 느낌이 온다면 그건 아마 디즈니 OTT 가입자여서일 수 있습니다. 니켈로디언 컨텐츠에서 많은 스타일을 제작했던 아티스트라서 많은 캐릭터들이 그의 손 끝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방귀뿡이는 현지화(한국화)한 이름이고, 원래는 프랭키 더 팔트(Frankie the fart)입니다. 프랭키도 방귀(fart)라는 의성어에 좀 가깝다 싶은 이름이므로 이 번역은 적절합니다. 방귀가 주인공이다보니 이목구...만 있고 비가 없으며 얼굴형이 모호하지만 여튼 니켈로디언 스타일입니다. 또 같이 나오는 조연들은 누가 봐도 디즈니 풍입니다. 칸트로위츠가 여태 얼마나 디즈니 애니에 간여했었는지 눈치챌 수 있는 책이기도 했네요.

책의 목적은 인간에게 방귀라는 생리 작용이 어떤 의미인지 가르쳐 주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유해한 가스를 내뿜는 효능이지만, "가끔은 그냥 피식 새는 공기일 뿐"이라고도 책에 나옵니다. "아마 네가 만난 중 가장 다정한 방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곧바로 말을 고칩니다. "아, '만난'이 아니라, '맡은'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뜻인지는 성인 독자라면 다 알 수 있을 테고, 이런 말장난 익살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어린 독자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도 교육상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이 깨닫는다면 더 좋겠지만). 이게 원서에서는 you will ever meet인데, 원문은 미래형이고 우리말 문장은 경험의 현재완료처럼 되었습니다만 뜻은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절묘한 건 "만난"과 "맡은"의 두운(頭韻)인데, 원문은 meet와 sniff이니 그저그렇고, 한국말 번역이 더 기가막히게 된 경우입니다.

밀폐된 장소,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 방귀가 나오는 상황이 가장 난감하겠습니다. 책을 보면 네 남녀가 탑승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프랭키가 갑자기 나온 그림이 있는데, 특히 맨오른쪽 노신사, 저 가운데가 꺼진 20세기 스타일 신사모는 영어로 center crease hat라고 하는데, 이분이 그 표정을 보니 가장 죽을 지경인 듯합니다. 뿡이, 즉 프랭키는 아주 짓궂은 애라서 점잖은 장소에서마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당황시키는데, 어느 고급 레스토랑을 보니 손님들이 다 성장(盛裝)을 했을 뿐 아니라 나이도 다들 지긋하십니다. 이런 레스토랑에는 잔잔한 피아노 반주가 곁들여지는 게 보통인데, 뿡이는 심벌즈, 트럼펫, 드럼을 혼자서 꽝꽝 울리는 듯 묘사됩니다. 사실 방귀 소리는 묵직한 트롬본 한 방에 가깝지만 뿡이가 좀 별난 듯합니다. 나이 지극한 손님들이 너무도 크게 당황합니다.

누군가가 방귀, 혹은 입방귀인 트림을 거리낌없이 내뿜는다면 상대방은 이 사람이 정말 날 존중하지 않는다고, 예절이 없다고 불쾌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뿡이는 오히려 본인이 의아해합니다. 사람들은 왜 날 좋아하지 않지? 이는 제 생각에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겠는데, 어린이가 방귀를 뀌었을 때 대개는 생리 작용이므로 이건 본인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불쾌해할 수 있는데, 이게 왜 그런 건지 제3자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이죠. 이 책 앞에 보면 "사람들을 놀래 주는 걸 좋아하지!"라며 뿡이가 웃는 장면이 있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은 이렇게까지 짓궂지는 않습니다만, 방귀라는 건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준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 뿡이는 사람들 세계에서 쫓겨나 외톨이가 되고 마는 건지? 뭐 그래도 될 듯한데(현실도 대체로는 그러니 말입니다), 뿡이는 야외에서 자신과 비슷한 철없는 아이들과 즐겁게 뛰놉니다. 서유럽인들 또는 미국인들 컨텐츠에는 이처럼 처음에 사회 적응에 곤란을 겪는 주인공이, 나중에 성공적으로 사회 성원이 된다거나, 아니면 다른 결말을 빚는 게 많은데, 아마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많아서 그런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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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미국 서부 - 최고의 미국 서부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25~'26 최신판 프렌즈 Friends 22
이주은.소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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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토가 광대하여 기후대도 다양하고 풍광도 가지각색입니다. 우리는 할리우드 오락물의 오랜 영향 때문에 미 서부라고 하면 황량한 사막에 총잡이들부터 대뜸 떠올리지만 사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 도시 인프라가 잘 발달된,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 부유한 계층이 모여 사는 축복받은 지역입니다. 자연히 관광객들을 위한 어트랙션도 많고 글로벌 대기업 본사나 유수의 교육기관이 자리했기에, 먼저 꼼꼼하게 현지 사정을 검토한 후에야 관광이든 유학이든 취업이든 시도할 일 같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72를 보면 샌프란시스코 남부 지역이 소개됩니다. 머리에 꽃을 꽃고 여길 찾으라는 스캇 매킨지의 노래도 있지만, 아마도 이 정신이 가장 물씬 배어나는 곳은 카스트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쿠바의 공산주의 지도자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카스트로 극장 때문에 구역 전체가 그리 불립니다. 저자는 숀 펜 주연의 <밀크>를 먼저 보고 이곳을 방문하라는 조언도 하는데, 숀 펜의 기존 연기 경력과는 좀 거리가 있던 영화(2008년작)이라서 관람한 후 당황할 수도 있다는 점 말하고 싶네요. 앨러모라고 하면 텍사스를 떠올리겠지만 원래 더운 데서 자라는 나무 이름이라서 (구) 스페인어권 어디서든 이런 지명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 시대 미국을 대표하다시피 한 배우였는데, 아직 연예인이 정치를 한다는 게 보기 드물던 시절에, 중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시에서 단체장을 지낸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종로구 가회동 인구보다도 적으니 과연 시장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카멜 타운은 과거 스페인 사람들이 주로 거주할 시절의 건물, 풍경이 많이 보존되어 더 호기심을 키웁니다. p222에 소개된 몬터레이 카운티 안에 소재합니다. 바로 근처에 부자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17 Mile Drive도 있고 책에도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자세합니다.

특히 이 미 서부 가이드가 프렌즈 시리즈 중에서도 올해 특히 더 관심이 가는 건, 2년 전까지 키움 히어로즈에서 열심히 뛰던 이정후 선수가 거액을 받고 현지 명문인 자이언츠 구단에서 지금 맹활약 중이기 때문입니다. 더 두고봐야 하겠으나 제가 이 후기 쓰는 시점 기준으로는 준수한 성적입니다. 책 p155에도 바람의 손자라고 재미있게 불리는 이 젊은 스포츠스타에 대해 언급이 있어서 역시 이주은 이소연 작가와 중앙북스에서 세심히 개정판을 만들었구나 싶었습니다. 오라클 파크, 체이스 센터 등이 잘 소개됩니다. 월별 샌프란시스코 행사 일람이 p125에 나오므로 아깝게 볼거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챙길 필요가 있겠네요.

p203 이하에 내파 밸리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샌프에서 제법 멀기 때문에 자동차(렌트) 이동이 일반적이고 대중교통도 있긴 하나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p205를 보면 여기는 봄이나 가을에 찾기를 저자들은 권합니다. p206을 보면 내파밸리를 유명하게 만든 와이너리들이 잔뜩 나옵니다. 와인 애호가들은 사진만 봐도 침이 고일 만합니다. 이 중 잉글눅(Inglenook)은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소유로도 유명하다고 책에 설명이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Hess collection 중 언급되는 프랜시스 베이컨은 근세 경험주의 철학자가 아니고 20세기에 활동했던 아일랜드 출신 화가입니다.

로스앤젤레스는 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한 도시(p258)라고, 그 두 올림픽을 모두 지켜본 메모리얼 경기장이 LA의 주요 관광 포인트 중 하나겠습니다. 2008년에 보스턴 레드삭스(아메리칸리그)와 이곳 연고팀인 다저스(내셔널리그) 사이에 MLB 인터리그 게임이 3월 29일에 열렸을 때 115,300명이 입장하여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p243에는 다저스 구장(=다저 스타디움) 이야기가 나오는데, 작년에 뉴욕 양키스와 다저스 사이에 진심 역사적인 월드시리즈가 열렸어도 5만 3천 최대 관객을 수용하는 데 그쳤죠. 물론 볼파크 사이즈 자체가 달라서였지만 여튼 그런 매치가 좀처럼 열리기 힘들기에 관계자들이 아쉬웠을 겁니다. 맨해튼 비치(p294), 샌터모니카 비치(p286) 등 남부 LA의 명소들에 대한 설명도 너무 좋습니다.

프렌즈 미국 서부편에 대한 리뷰를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3년째 이어가는데 언제나 만족스럽고 업데이트도 충실하여 책 읽는 맛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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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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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인문학자의 군주론 해설서를 4개월 전에 리뷰했었고 여태 네 권의 책을 읽고 리뷰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철학자들의 명언을 담았는데 모두 네 파트로 나뉘었습니다. 제1장은 삶과 처세에 대한 통찰, 2장은 인간의 사유에 대한 말들, 3장은 특히 대문학가들이 남긴 말들, 4장은 동양 위인들의 말들을 분석합니다. 이 시리즈가 항상 그랬듯 원어, 혹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 번역어를 함께 실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도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책은 제4장이 조조, 루쉰, 한비자, 여러 제자백가 거두들의 말을 주제로 삼았기에 한문 원문을 병기한 점이 시리즈 기간(旣刊)들과 다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41 이하에는 사르트르가 남긴 명언들이 나옵니다. 원문이야 불어이겠지만 사르트르 정도 되는 거장들에겐 영어 번역가들도 일류들이 커버하므로 이 문장들도 충분히 권위 있습니다. "불안이란 자유가 느끼는 현기증이다"라고 하는데, 역시 그다운 멋진 말입니다. 노예나 돼지의 정신에는 불안이고 뭐고가 깃들지를 않는 법입니다. 사르트르가 즐겨 쓴 현기증이라는 보조관념에는 그의 신체 특징 관련한 다른 이유가 작용했겠다고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이렇게 그의 말 자체에만 집중해도 얼마든지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파시즘은 그 피해자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살인의 방법에 의해 정의된다"는 명언도 있네요.

같은 시대 프랑스 실존주의의 또다른 거장(사르트르와는 자주 대립한) 알베르 카뮈는 3장이 아니라 2장에서 다뤄지는데 아마 "인간의 사유"라는 주제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서 그리하신 듯합니다. Man is mortal, but I must rebel and die.라고 할 만큼 그의 사상은 "반항적 인간" 한 마디에 잘 녹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Life is not something to be built but to be burned down.이란 말도 있는데, 확실히 이분은 화끈한 형님이십니다. burnt가 아니라 burned down이라고 하신 그 깊은 의도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서쪽에서 온 달마는 조사(祖師)도 죽이고 부처도 죽이라고 했는데, 이 형님은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한, 너는 인생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 양반 돌아가신 모습을 보면 자신의 말에 참으로 충실했다는 점에 동의하게 됩니다.

황제의 자리가 그저 마음 편하고 온갖 호사를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책임이 또한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고생과 고민만 잔뜩 하고 군주로서 영화를 즐기지는 못했던(=않았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마도 수백 년 먼저 살다 갔던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 정치라는 게 바로 이런 이의 치세를 두고 이름일 것입니다. "세계는 변화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들이 결정한다(p111)." 이 말의 원어는 고전 라틴어이겠지만, 영어 번역문에서는 섬세하게 세미콜론이 두 절(clause)을 가릅니다. 5현제들의 시대에 세미콜론의 저런 용법은 없었을 테고, 김태현 인문학자의 한국어 번역도 그 문장부호를 살렸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p74). 다들 알듯 이건 그의 책 제목인데, 독일어 원어는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이죠. 영어나 독일어나 조상이 같아서 저런 allzu같은 표현을 보면 두 언어가 정말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 확인하게 됩니다.이 저서의 부제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해"인데, 인간 정신과 영혼의 본질이 독창성을 기반으로 삼는 자유라는 점, 니체는 온몸으로 절규했던 것입니다. "믿음(faith)이 과연 무엇을 입증하는가? 정신병원을 산책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다." 니체다운 냉소적인 말입니다. 뭘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자는 시설에 수용된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음을 잘 드러냅니다.

톨스토이는 니체보다 16살이 많았는데 죽기는 십 년 뒤에 죽었습니다. 그의 명언들을 읽어 보면 니체의 격정적인 세계와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김태현 저자가 p148에서 말하듯 그는 (의외로) 여성 심리를 읽는 대가(大家)였고 <안나 카레리나> 같은 작품에서도 그 섬세한 문장 안에 잘 드러납니다. 사람들 사이에 대립이 있을 때 p156 이하에 실린 그의 말을 읽어 보면 매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마지막 장은 동양인들의 지혜인데, 한비자(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저자가 평가합니다)의 말 要講統治術 不要講信任關係라는 문장을 보고, 어쩌면 조금 뒤에 나오는 맹자(孟子)의 말과 이렇게나 빛깔이 다를까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명언의 지혜와 함께 한자 공부도 할 수 있어서 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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