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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를 공감합니다 - 타인의 뇌를 경험하는 역할놀이 사고법
고보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4월
평점 :
우리는 내 바깥의 세계(타인들 포함)를 인식할 때,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이게 가능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인생의 실패란 없습니다), 뇌가 그러려니 해석하는 대로 인지할 뿐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뇌가 경험대본으로 만들어낸 연극"을 우리가 믿을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타인과 소통할 때 힘든 이유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나를 왜곡하고, 나는 나대로 그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이가 아닌 어른은 "저 사람은 정말 답이 없지만, 나 역시 그를 오해한 부분이 있겠거니"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인지를 조금이라도 수정하는데, 인격이 미숙한 인간은 끝까지 자기만의 망상을 고집합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 이런 경우를 가리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할 때 사이코드라마라는 걸 시켜 보기도 합니다. p37을 보면 브레인 롤 플레잉이 나오는데, 저자는 기본적으로 "뇌의 연극"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모든 논의를 시작하시기 때문에 이런 기발한 방법론을 조직과 개인, 특히 관리자급에게 권하는 것이겠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말씀하시는 대로, 대체로 공감이란 체험의 공유(동시간이면 더욱 좋고)를 통해 형성된다는 게 통념에 가깝죠. 그러나 저자는 이와 달리 "어차피 연극이니 연극으로 풀자!"라고 믿고, 타인과 나에게 아예 특정 역할을 부여하여 합동으로 공연을 펼치자는 것입니다. "타인의 진실한 행동"이 아무리 내 눈앞에 펼쳐져 체험이 가능해도, 이를 perceive하는 내가 즉시 왜곡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전에 이건희 회장도 그런 말을 했는데, 영화광인 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며, 한 번은 캐릭터 A의 관점에서 보고, 다음 번은 캐릭터 B의 관점에서 본다고 했습니다. 현대 미술은 추상적이라서 어렵다고 하는데, 그게 보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고, 그 해석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그게 명작입니다. 조직에서 각각의 성원들이 자기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뷰를 떠올리며 행동한다면, 그 중에 공통되는 세계관이 분명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이 팀은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비주얼 씽킹이라는 방법론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 주제 관련 여러 대중서를 리뷰해서 제 블로그에 올렸고, 네이버 등에 비주얼 씽킹으로 검색하면 정말 많은 책들이 나옵니다(아마존 등에 올라온 미국 서적은 훨씬 더 많습니다). 저자께서도 p74 이하에서 이른바 가시화 작업이라고 해서 이 개념을 설명합니다. 또 많은 책들이 팀에서 피드백을 원활히 하고 팀원간 소통 밀도를 높이기 위해 사무실에 여러 상황판을 설치하고 모두가 같은 인식을 공유하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상황을 다 알고 머리 속에 훤히 펼칠 수 있는 팀장 역시, 그래도 자기 방 벽에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게 차트화해 두라고도 조언합니다. 그러면 그냥 머리로만 생각할 때와 달리, 새로운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관점, 2관점, 3관점으로 현실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팩트, 객관이 파악됩니다. 이걸 저자는 편파, 반전, 중립(p86)이라고 정리합니다. 나는 나지만, 내가 내 적의 입장에도 서 보고, 나아가 나와 적을 저 위에서 판사처럼 내려다보는 시야까지 갖춘다면, 이게 바로 가장 현명한 자의 사고입니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곧 지옥이라고까지 했는데, 저 지긋지긋한 적수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해 보라니 그만큼 괴로운 일도 또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손자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으니 이 치열한 경쟁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2관점 3관점의 장착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이를 자기객관화라고 표현합니다. 공감은 남한테 아부를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같이[共] 느끼는[感] 과정입니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남을 일정수준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p128, p154 등에서는 리더일수록 휴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간혹, 열심히 일하는 팀장급 중에 번아웃이 오는 분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같은 공황장애가 오기도 합니다. 영국의 명배우 제레미 브렛 같은 경우 말년에 정신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캐릭터에 스타니슬랍스키 식으로 몰입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는 직업병일 수도 있습니다. 남의 입장에도 서 보는 노력을 행하는 건 여간 그릇이 커서는 감당이 안 되며, 리더의 직분은 그만큼 힘들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