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손안의 고전(古典)
범립본 지음, 권경열 옮김 / 서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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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은 한국민족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은 수험생(과거 응시자)들로부터 애독된 수험서였고, 주자의 가르침이 이땅에 전해진 이래 가장 많은 학동들의 문자 교육과 도덕 수양을 담당해 온 교과서였습니다. 이 책에 비하면, 성문영어나 수학의 정석은 명함도 내밀 수 없습니다. 그 책들은 학습자들로부터 두려움과 열띤 주시의 대상이 되었을망정, 존경과 사랑은 못 받았다는 점에서이죠. 반면 명심보감은 문자 학습, 구문 연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의 가르침까지, 이를 모두 독서자의 두뇌와 영혼에 담아야만 그 책을 마스터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책이 아니라 스승이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시중에는 많은 명심보감이 나와 있습니다. 그 수준과 엄정성도 사뭇 높아서, 과연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자못 주저함이 들 만큼이죠. 어느 소수의 몇몇 책이 괜찮더라는 식으로 정평이 나 있는 상태면 선택이 편한데, 다들 한가락하는(?) 명망 있는 저자의 저술이고, 주석이건 풀이건 믿을 만합니다. 독자로서는 즐거운 고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권경열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명심보감의 권위자 다섯 명만 꼽으라고 할 때, 어떤 기준에서도 리스트에 들 만큼 권위자인 분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매끄러운 문장, 권위 있는 번역에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판본을 와이셔츠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게 만들어 놓아서, 휴대성을 최고로 높였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과연 책이 그렇게 작은 사이즈 안에 본문이 다 들어가는가? 명심보감은 예로부터 비축약본(완전판)과 초략본 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요. 이 책은 초략본을 담은 것이라서, 담뱃갑 하나보다 작은 사이즈, 라이터 두께만한 얇은 볼륨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자 원문과, 그 번역이 깨끗한 인쇄로 들어 있고요.


걱정하시는 분들은, 충분한 주석도 없는데 그 한자 원문. 한글로 단 한자음, 그리고 해석만으로 과연 뜻이 전달될까 하는 생각을 가질 만합니다. 제가 읽어 본 결과, 해석 안에 압축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시피해서, 다른 추가 레퍼런스 없이 이 텍스트만으로 독해가 가능합니다. 과거 조선 시대에 이 책이 나왔으면, 옷소매 등에 특수 먹물로 베껴다 놓은 의상의 도움이 없어도 아마 효과적인 커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게, 휴대성 면에서는 최고입니다. 다만 어르신들은 작은 글씨가 불편할 수 있고, 챕터를 바로 펼칠 수 있는 thumb인덱스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네요(이런 휴대용 책에는 필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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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왜 밤에 잠 못 드는가 - 심리학자가 풀어낸 현장 리더들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의 해법
니콜 립킨 지음, 이선경 옮김 / 더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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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대통령은, 최전방에서 국적을 주시 경계하는 최고 책임자의 절대 고독을 한스러운 어조로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운영하는 업체 그 규모의 대소에서 차이가 날망정, 자기가 책임진 수백 수천 명의 피용인, 그 생계와 가족, 장래까지 두 어깨에 지고 있는 사장님들 역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저런 종류의 책무를 지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국가 원수라고 해 줄 만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왜 경영주들은 그리도 많은 몫을 갈무리해 가는가?" 그 답은 하나입니다. (물론 일부 악덕 경영자, 사주도 있겠으나) 책임 있는 지위의 부담과 무게는, 말만 편히 할 뿐인 관전자의 깜냥이 감당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죠.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그런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Buck Stops Here!" 책임은 모두 이 내가 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책은 사장님들의 고충담을 묶어서 수기 형식으로 내기라도 한 책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책이라면,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이 특별히 양심적이기라도 해서,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착한 직원이거나, 아니면 지금은 일개 평범한 학 부생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사업체를 알토란같이 경영하고 싶은 미래의 사장님이거나 한 독자가 읽으면 좋겠죠.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아니라, 리더십에 관한 책입니다. 어떤 사람이라야, 작게는 자신이 속한 부서나 팀을 잘 통솔할 수 있고, 크게는 제 사업체에 자신이 채용한 직원을 잘 부리고, 충성하게 하며, 그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 회사에 기여하게 할 것인가, 이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경영자가 될 사람 아니면 읽을 일이 없는 책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또 누가 읽으면 좋은가, 뭘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직장에서 인간 관계가 매번 꼬여서 풀리지를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주로 직장입니다. 학교나 기타 1차적 관계, 연인 사이의 갈등 등은 이 책의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격이 나쁘지도 않고(성격 나쁜 사람이라면 심리 치료를 받거나 자신이 각성을 해야 하지, 이런 책을 읽어서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성실한 관계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안 풀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에는, 요즘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관련 논의가 많은, "관계의 조작자(operator)"에 대한 논의도 짧게 다루고 있습니다(다만 범죄심리학적 관점의 소시오패스 개념이나 접근론은 피하고 있습니다). 매력도 능력도 충분한데, 그를 미끼로 삼아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이익만 취하고 껍데기만 남긴 채 냉혹히 버리는 유형에 대해, 어떻게 간파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가르쳐 줍니다.


리더십을 책의 논의 출발로 삼았지만,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론 워크북으로 이용해도 될 만큼 다루는 범위가 넓습니다. 각 챕터의 제목들도 독자의 구미를 확 당기게 잘도 뽑아냈습니다만, 읽어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일이, 성실히, 맞춰 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론"이라고 하니까 대학 학부 시절 배운 그 고리타분한 나열식 이론이 아닌가 생각하실 분들도 있는데, 아닙니다. 이 저자는 책의 전권에 걸쳐, 언제나 CEO로서 자기가 겪은 진솔한 개인적 체험을 논의의 실마리로 삼는데, 그것도 우리더러 친숙하라는 건지 주로 실패담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직접 겪은 실패담이 아니라면, 예컨대 악덕 기업주나 극단적 개인 플레이어인 직원을 모델로 두고 열심히 "뒷담화를 까는" 재미가 또 있습니다. 딱딱하기 쉬운 리더십이론, 기초 인간관계론을 실례(자기 주변의)를 통해, 부담 없이 들려주는 게 이 책의 강점입니다. 저자는 문학적 창작력도 높은 편인지, 자기가 직접 지어 낸 이상한 우화를 곳곳에 삽입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과 실제로 같은 자리에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겨운 분위기일 것 같아요. 편집도 깔끔하고 최신의 사정, 세태 반영이 이뤄진 참신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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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홀리데이 (2013~2014년판, 휴대용 맵북)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3
이동미 지음 / 꿈의지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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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예쁘고 실용적인 여행 서적이 많이 나오죠? 수수한 외모에 불필요한 장식적 서술을 일절 배제하고 영양가 있는 정보만 잘 추려 산뜻한 책으로 꾸며 내는 데에 재능이 뛰어난 이동미씨가 쓴 책입니다. 여행서적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책도 사이즈가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무게가 가벼우며, 좋은 질의 종이로 내용을 꾸렸으나 눈이 피로하지 않은, 쓰임새 만점의 여행 서적입니다.


이동미씨는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모두 B로 시작하는데, 다만 이스탄불이 예외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이고, 그 이전의 라틴 식 이름은 "비잔티움"이었는데, 이 이름이 다름 아닌 B로 시작하죠. 결핵 유병률이 세계 1위인 불명예스러운 구석도 있습니다만,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간직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의심의 여지 없이 B로 시작하는 방콕은 어떠한가? 방콕 가이드북은 많은 종류가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만, 이 이동미씨의 책은 과연 빠질 게 없는 알짜 정보로 잘도 묶어 놨습니다. 한 번도 현지를 다녀 온 경험이 없는 분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라도 될 만큼, 이러이러한 게 필요했는데 마침 이 안에 다 있네?싶은 정보가 가득하고,  한 번이라도 다녀 온 분이라면, "그때 그랬어야 했구나.", " 맞어, 딱 내 심정을 대변하네?" 같은 생각이 들 만큼 공감을 유발합니다. 일부 몰지각한 어글리 코리언들(주로 나이 든 분들이죠) 때문에 여러 부정적인 연상이 겹쳐지기도 하지만, 방콕은 오랜 세월 동안 불교를 숭상한 왕국이 그 터전을 잡아 온 유서 깊은 도시이며, 열대의 기후가 빚은 풍광의 아름다움이 비할 바가 없으며, 일부 매춘부나 악덕 상인을 제외하곤 사람들의 심성이 착하고 순한 고장입니다, 최소한 베트남 사람들보단 순박합니다.


저는 거기에 묵어 본 적이 없지만, 모든 방문객들의 로망은 "더 시암 호텔"이죠. 여행을 가서 특유의 자연 픙광이나, 오랜 고적, 건축물, 랜드마크도 아닌 고작 럭셔리 호텔을 로망으로 삼는다고 하면, 속물 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다시 찾는 방콕이라면 (노래 가사대로) 원 나잇이라도 방콕에선 "그 시암"에 머물고 싶습니다. 영어로는"사이암"이라고 읽는 이 이름은, 한번도 독립을 잃지 않았던 고왕국의 옛 명칭이죠. 이에는 동남아인 특유의 강한 자부심도 깃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푸드 로프트, 역시 관광객들 사이에 명성이 높은 곳이죠. 저도 한번 들어가 봤습니다만 너무 번잡한 탓이었는지 과연 명성과 비싼 가격에 맞는 서비스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세심히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처럼, 이 카드를 분실하면(정신 없어서 그런 일 벌어지기 딱 좋습니다) 최고 한도액을 다 물어야 합니다. 방콕은 또 특이한 게 방 크라차오라는 섬(정확하게 말하면 반도입니다)이 있어, 도심으로부터 배를 타고 조금 가거나, 그 협로를 통해 이동하게 됩니다. 우리로 따지면 여의도 같은 것이, 영등포나 반포에 한 꼭지가 붙어 있기라도 한  모습으로 생각하시면 되죠. 이 방 크라차오는 차오 프라야 강이 휩싸고 있습니다.


여행서는 사전 계획을 세울 때뿐 아니라, 현지에서 휴대하기에도 편해야 합니다. 여행서는 정보 취득이 우선 목적이라서 정작 급할 때 도움이 안되면 쓸모 없죠. 이 책은 차분히 즐거운 마음으로 계획을 짤 때도 유용하고, 더 알찬 여행이 되기 위해 다음번에는 휴대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누구에게나 강추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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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아는 삼성 안에서 배운 삼성 - 삼성전자 조 대리의 생생리포트
조승표 지음 / 아이넷북스(구 북스앤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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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의 입사란, 요즘 전 국민적 열망의 대상입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만 하면 장래가 보장되고, 주위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 어려운 입사의 관문을 통과했으니 만큼 능력이나 인물의 품격이 이미 검증 한 단계를 통과했다는 말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내부 사정을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공채 단일 기수에 뽑는 인원수도 적지만, 이른바 "별을 다는" 임원의 수는 더 적고, 다들 뛰어난 사람들만 모이다 보니 실적 경쟁과 신경전도 장난이 아니죠. "정치"는 정치대로 잘 해줘야 합니다. 정년 보장? 꿈도 못 꿉니다. 웬만한 인재도 이런저런 곡절로 결국 임원 승급에 실패하면 결국 처량하게 짐 싸서 나가야 하죠. 삼성 경격이면 어디서건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편차가 큽니다.


이 책은 이런 말못할 뒷사정까지 다 담은 책은 아닙니다. 갓 입사하여 아직은 삼성의 푸른 피가 자기 온몸에 흐르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그 감격에 젖어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일 시절의 풋풋한 대리가 쓴 책이죠. 저자는 스스로를 말하길, 똑똑한 줄 알았으나 고교 시절 공부를 소홀히한 "죄로" S대 정도에 입학하는 데 그쳤고, 따라서 삼성 같은 꿈의 직장에 들리라곤 기대를 못 할 처지에서, 패기와 자신만의 메리트를 내세워서 당당히 입사에 성공했으며, 지금도 하루하루를 성취의 기쁨과 배우는 보람으로 살고 있음을 즐겁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하루하루가 익사이팅했던 삼성에서의 근무 실기를 적어 놓고 있습니다. 입사를 갓 마친 사원은 기초 연수를 받고, 다음으로 거치는 게 OJT입니다. 온더 잡 트레이닝의 약자로서, 현장에 배치되어 실무 감각과 직원들 사이의 분위기를 익히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물론 급여를 지급받는 정식 직원으로서의 근무의 일환입니다만, 새내기로서의 긴장이나 설렘, 미묘한 호승심이나 공명욕 같은 건 또 이때에만 느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사람에 따라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직원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이 저자분에게는 아주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나 봅니다. 사실 SKY출신들은 이런 분위기를 꼭 반기지만은 않죠. 저자분의 표현을 빌리면, "애사심이 팍팍 생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저자는 아직 나이가 어린 편인데도, 항상 이런 책 한 권을 저술했으면 하는 계획을 심중에 지니고 있었나 봅니다. <입사 후 3년> 같은 책을 쓴 신현만 씨의 말을 인용하는 품을 보면 그런 게 느껴집니다. 책 곳곳에서 암시되지만, 저자는 머리가 특별히 스마트하거나, 혹은 스타일이 훤칠해서 삼성에 들어 온 케이스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의 존재 가치는 거기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인생인데, 자기만의 열정과 패기, 비전만 간직하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직장이 삼성이고, 또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난 사람들, 걸출한 인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자아실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을 책을 통해 심어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 꿈이 어디까지 이워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세상은 본디 긍정의 마음가짐을 갖고 노력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 주게 마련이죠.


"개인의 가치는 그가 속한 조직의 가치로 대변된다. " 이 문장 하나에서 그가 현재 자신의 아이덴티티 한 부분에 대한 프라이드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자는 자신뿐 아니라, 같은 직장에 소속한 닮고 싶은 상사, 선배, 그리고 자신이 아끼고 탐내는 후배들의 유형을 하나하나 책을 통해 소개하고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이 사람은 소속 조직을 대외 과시용이 아닌, 주변에서 자기 인격, 정체감과 결정적 팩터에서 교집합을 이루는 그 모두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죠. 삼성에 들어와서 대단한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이니까 삼성 같은 좋은 직장에서 뽑아 오는 겁니다. 그가 무난히 회사 생활을 이어 가서, 모두가 우러르는 별까지 달아 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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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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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에서 요즘 박경리, 이어령 등 거장의 라이브러리를 한 권 한 권 예쁘게 복간하고 있습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을 감명깊게 읽었으나, <디지로그>의 선구성(?), 전위성(!)에는 다소 피로감을 느꼈던 저라서, 이어령 선생의 최신간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선생의 1980,90년대 "고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2008년에 나온 책이더군요. 이 마로니에북스판은 그 08년판의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요즘 통섭이라는 단어, 개념, 그리고 그 실천적 캠페인이 유행입니다만, 선 생은 이미 그 한참 이전부터 통섭을 몸으로 꿰고 글로써 그 빛나는 지성의 결과물을 다 지면에 옮긴 놀라운 철학자, 인문학자이면서도 문학 부면의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죠.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한국보다 저 일본에서 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였을 그때의 선생은, 오히려 복고적인 소재(그러나 아무나 다루기 힘든)를 저술의 테마로 삼아, 그 분석이 대단히 어렵고, 그 소통이 상당히 까다로울(타민족에게 그 개성이 뭐라며 깨우치는 작업이니까요) 작업을 해내었습니다.


선생은 기이하게도, 연세를 드시고 난 후 오히려 최첨단의 과학(자연, 사회, 기술 분야 두루)에 더 큰 천착을 보이시는 듯합니다. 이 책이 이처럼이나 최근에 저술되었는데도 제가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고(저의 무신경), 08년 기준으로 어언 76세에 달하는 연령에 이처럼 치밀하고 시세의 첨단 변화를 다 소화한 그 지적 능력에 놀랐습니다.


통섭 이전에 이미 당신 개인이 통섭 자체였기에, 작금의 학제간 연구이니, 콘실리언스이니(선생은 특유의 날카로운 영어 감각으로 "있지도 않은 단어를 만들어..."라시며 은근 마득찮은 심기를 노출하기도 합니다), 또 경계허묾(경제 경영 분야에서의)이 니 하는 것들이, 그 출현 즉시 즉각의 이해로 다가오셨을 듯합니다. 이 책은, 요즘 출판, 독서계의 트렌드를 최소한 4, 5 년 앞서 내다보고, 그 흐름을 우리 전통의 인문개념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원. 융. 회. 통"이 그것입니다.


책 어디 하나 버릴 구석이 없을 만큼 명언 명구 명논설로 가득합니다만(요즘도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삼국지가 아니라 이 책을 읽혀야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네요),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대칭성과 융합성에 대한 논급 부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국 장은 전통적으로 쌍두독수리인데, 이는 대칭성을 지나치게 따르다 보니 초자연적 기괴성으로 추락했다는 게 선생의 견해입니다. 대칭성을 희생하고 자연스러움, 나아가 평화 지향을 선택한 것이 미국의 일두 독수리(모양으로는 그러하나, 이 독수리 역시 "쌍두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이죠. 전근대성과 근대성 사이에서 후기근대성(선생의 표현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말로는 "포스트모던"이죠)이 탄생함을 예증하며 선생이 이 뒤에 바로 들고 나오는 건 우리의 "태극"입니다. 태극은 대칭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칭보다 안정적이면서, 대칭의 편협성, 고정성을 극복하고 변화무쌍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칭보다 우월합니다. 태극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조화를 해치지 않습니다.


선생은 불의 파괴성, 소모성보다, 물의 유연성, 순리성을 강조합니다. 바뀌는 세태에서 새로운 세대는 고체의 고정성을 지닐 게 아니라, 물처럼 주변에 융합하고 천변만화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정부의 치수 정책을 거론하는 대목이 나왔기에, 저는 여기까지 읽고 비로소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저작임을 알았습니다. 더 앞선 시기의 저술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은 것이, 선생은 당신 자신이 이미 통섭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게 없고, 그 아는 바를 하나의 관점과 시야로 꿸 수 있는 초인적 능력을 갖추었기에, 5년 전에 나온 책이 최신간 자계서마냥 감각이 새로운 거죠.


선생은 또한 선형성 체계에서의 탈피를 강조합니다. 최근 제가 읽은 <안티프래질>에서도, 역동과 발전을 위해서는 선형성의 지양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선생의 이 저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더 앞선 시기의 작품인데도요). 벌써 1990년데에 쪽거리(프랙털) 이론, 카오스-퍼지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인식의 지평선이 확장되었는데요. 우리도 이런 흐름에 마냥 뒤떨어진 건 아니라서 당시에도 퍼지 세탁기, 자연풍 선풍기가 나왔음을 선생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 원융회통,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맞서 이분법, 흑백논리의 극복을 또한 강조합니다. 융합과 조화, 다이내믹 변증법의 시대에 진영의 논리를 들고 나오는 자체가, 젊음의 속성. 본질을 배신하는 패착이라는 겁니다. 선생 말을 인용하면, "늙으면 어차피 세월의 풍화에 못 이겨 자연스럽게 한 쪽으로 기울 텐데, 새파랗게 젊어서 곡예하듯 균형 유지가 가능한 그 좋은 나이에 뭐하러 늙은이의 흉내를 내느냐."는 거죠. 이 책은 주로, 이제(08년 기준) 갓 대학에 입학한 파릇파픗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큰 인재가 되고 싶고 정신적으로 자유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기존의 낡은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통합과 조화의 이데아를 지향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을 보죠. "젊음의 탄생"입니다. 젊음은 사실 그 모습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 유아성, 미숙함 따위가 한 단계의 변태를 겪어 이행하는 다음 단계입니다. 그러니 젊음은 꽃이 때가 되면 피고 지듯, 자연의 순리로 다가오는 거지 어느 순간의 탄생을 요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굳이 이 젊음을 두고 "탄생"이라는 술어를 부착하고 있는데요. 이는 젊음이 물리적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역량과 본질의 건강성, 나아가 포텐셜의 생산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늙고 고루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그건 이미 젊음의 자격이 없다는 점에서, 저 같은 세대에게 많은 자성을 마련해 주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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