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북유럽 스타일 경영을 말하다
앤더스 달빅 지음, 김은화 옮김 / 한빛비즈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착한 경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제가 최근에 읽은 필립 코틀러의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적 책임이란 이미 선택이 아닌, 단순한 옵션이 아닌,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잘 알다시피, 이케아는 이른바 뷱유럽식 경영을 전세계에 전파하고, 특히 우리가 머리 속에 남은 대로 "불편을 파는" 경영으로 유명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케아의 성공은, 지나친 편익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역감정,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오랜 진리를 확인시켜 준 데서 비롯했다고 많은 경영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지난 20년 간 이케아를 이끌어왔던 CEO 앤더스 달빅의 육성으로 친히, 우리에게 참된 경영과 수익 높은 성공 매니지먼트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흔히 성공하는 경영자는 두 가지 점에서 신뢰와 존경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비자의 신뢰, 그리고 직원의 존경을 얻어야 한다고요.


그럼, 달빅이 이야기하는 경영은 무엇인가? 첫째 그는 훌륭한 비전, 강하고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단기의 이익 창출에 급급하지 않은,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현재의 이익이 미래의 그것과 상충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기업 발전을 뜻한다는 게 달빅의 설명입니다. 보통 현재의 이익에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다 보면, 미래의 평판을 놓치게 됩니다. 경쟁의 장에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시장에서, 단기의 이익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미래에는 "그 기업은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모든 다른 파트너의 이익을 경시하는 불건전하고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악성의 평가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품질을 어떤 경우에도 희생하지 않습니다. 보통 이케아가 성공한 이유로, 고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취 의식을 처음 소비자 스스로가 확인하게 해 준, "불편의 판매"에 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판매자와 제조가가 그저 일정한 가격과 정해진 품질에 공급하기만 하는 제품의 기계적인 소비에 싫증이 난 소비자를 향해, 이케아는 처음으로 공공연한 불편을 판매한 회사로 유명하죠.  그러나 단지 이것만으로 이케아가 그처럼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겠습니다.


이케아가 성공한 것은 다른 데에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이고, 다른 하나는 독창적인 모델군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 말은 결국, 이케아는 다른 회사, 경쟁자들이 하지 않은 시도에 성공하였고, 다른 회사 경영자들이나 과거의 승리자들이 해낸 성취는 그것대로 다 이뤄냈기에 오늘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바는 이 명제였습니다.

"기업에는 영혼이 있어야 한다."

잉바르 캄프라드(1926~현재)는 처음부터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회사를 창업했고, 현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경영의 최고 방침으로 유지했습니다.

1)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업 경영을 도모한다.

2) 매출 순이익을 최대로 하는 행위는 이케아의 목표가 아니다. 얻은 수익은 반드시, 고객을 위한 저렴하고 가치 있는 상품 제조를 위해 재투자된다.

3) 직원 사이에는 불필요한 직급 체제를 두지 않고, 관료제를 배격한다.

4) 직원은 현장을 알아야 한다.

5) 급여는 고정급이 가장 좋고, 성과급 등 가변 요소는 최소한으로 억제되어야 한다.

6) 고객이란, 시간은 많고 돈은 적은 법이다.

7)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몸을 사리지 말고 용기를 발휘하라.


이상의 7가지 명제를 잘 종합하면, 결국 올바른 영혼을 가진 기업이 되어, 개별 고객, 시민 사회로부터 사랑 받고 공생을 꾀하는 우량 기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케아는 지금도 비상장업체이며, 이것은 경영의 불투명성을 드러낸다기보다(한국 기업이라면 그럴 수 있죠),배타적인 주주나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초심을 유지하며, 고객만을 염두에 두는 경영을 펴나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러나 1998년을 기점으로, 이케아는 원했든 그렇지 않든(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행운이든 불행이었든 간에") 국제적인 대규모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을 먼저 보겠습니다. 처음에 이케아는 스웨덴의 아주 작은 수공업체로 그 출발을 가진 업체였는데요. 창업주 캄프라드는, 철저히 다음의 원칙을 고집했습니다. "가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생필품이다. 화려하고 비쌀 이유가 없다." 처음에 경쟁 업체들은 이런 괴상한 저가 정책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 작은 초보자를 무시했습니다만, 소비자들의 니즈 핵심을 찌른 이런 전략은 금세 스웨덴 전역을 파고 들었습니다. 경쟁업체들은 원자재 공급자측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케아라는 업체에 물건을 팔지 마라." 이 카르텔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케아는 스웨덴 국내에서 구매선을 찾을 수 없었죠. 여기서 이케아의 영혼의 특성 7)이 그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위협이나 압력에 굴하지 말고, 반드시 출구와 활로를 찾으라!" 그 들은 발트해를 건너 공산주의 국가(그 당시) 폴란드에서 자재를 사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상당히 절묘한 위기 타개책이었는데, 우선 가격이 상당히 쌌다는 점에서입니다. 폴란드는 공산권과만 교역을 행했으므로, 외화 획득을 위한 마땅한 경로가 없었습니다. 이케아가 구매선을 확보하려 하자 대단히 반색하고 나섰고, 이케아 내부적으로도 "구매부서"가 여타의 다른 섹터를 누르고 가장 중요한 비중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라고 하는군요. 현재는 이케아가 자체 생산라인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이는 이미 옛 시절의 사정이 되었지만요. 가격이 싸다는 점만으로 마냥 만족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산권의 정책이라 시장 사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움직이는 게 아니고, 당국자의 변덕과 우연에 의해 공급량이 제멋대로이기가 쉬웠고, 무엇보다 품질이 열악했다고 합니다. 이 점은 향후 이케아의 평판을 "재고 부족, 품질 의문"이라는 취약 포인트에 오랜 동안 묶어 놓았습니다.


한편으로, 이케아는 이런 특이한 처지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스웨덴 국내에서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갔습니다. 안정적인 재고 창고를 확보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우편 주문 판매 방식에 의존하고, 고객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는 대신 가격을 엄청나게 낮추는 데에 성공했죠. 여기서 발달한 플랫 팩 방식은 지금도 가구 산업을 떠나 전 분야에 걽쳐 강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평판이란 마케팅상의 미미한 요소에 그치지 않습니다. 더 넓은 의미로 지켜 보아야 합니다. CSR은 필립 코틀러나 고 피터 드러커의 명제에서만 유효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그 모든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이 연대와 공유의 리더십은 유효하죠. 우리는 지금 경영학의 새로운 지평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열띤 시선과 벅찬 가슴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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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미술로 떠나는 불교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1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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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권 미술 작품을 대하는 우리로서 가장 유감스러운 건, 작자 미상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거죠. 특히 불교 미술의 경우 이런 예가 잦은데요. 우리도 전 세계에 자신 있게 내어 놓을 경주 석굴암이라는 조형 문화재가 있지만, 정작 작가, 혹은 건축 감독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죠. 불국사나 활룡사는 예전에 소실되었고(현재의 불국사는 복원물), 김대성 등의 발원이라는 점 외에는 전혀 authorship에 대해 아는 바 없습니다.


아 잔타 석굴의 경우는 차라리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오랜 동안 자연의 엄폐 덕을 보아서, 도굴꾼들의 약탈이나, 외부 침략자의 무자비한 파괴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잇었으니까요. 실제로 날란다 승원이나 굽타 왕조의 유적은, 10세기 이슬람의 대거 동진 당시 흔적도 없이 파괴된 것이 많습니다. 최근에도 탈레반의 손에 의해, 바미얀 석굴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파괴되었으니까요. 비록 서양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발견되긴 하였어도, 이후 이 아잔타 석굴은 전 인류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무려 10세기만에 들어선 힌두 본토인의 주권 정부 관할 아래, 첨단 기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상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불교 미술은 불교 전래의 역사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깊은 뿌리를 내린 분야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수학 여행 코스로 애호되는 법주사에는, "십우도(혹은 심우도)"라는 벽화가 단아한 색채를 빛내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아잔타 석굴에는, 부처님의 전생 여러 장면을 이야기식으로 묘사한 "자타카(한자로는 "본생경"이라고 하는)"의 회화 표현이, 자연의 침식을 최소한으로 받은 채 보존되어 있습니다. 책 에 의하면, 아잔타 석굴은 단일 왕조에 의해 조성된 게 아니라, 거의 8세기에 걸쳐 지역 토착 왕조 여럿에 의해 건축되고 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는 마우리야 왕조이고, 이 왕조의 대표적인 호법 군주로서 "아소카 왕" 이 있습니다. 이분이, 전장에서 저지른 무수히 저지른 살생의 죄업을 참회하고자 불교 신도가 되었고, 그 이후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는 전통적인 인도의 중심지였던 델리~펀잡 일대를 중심으로 삼았지만, 그보다 남쪽인 지방에는 세력을 확고히 뻗치지는 못했습니다. 마하라슈트라 지방은 비자야나가르 제국, 그리고 이후에는 마라타 동맹 등을 형성하여 북부의 지배에 강하게 저항한 사실로 유명하죠. 이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토착 왕조였던 사타바하나 왕조가 처음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게 아잔타 석굴입니다. 석굴이 쇠퇴한 건, 한편으로 굽타 왕조의 몰락(이 이후로는 이슬람 정복 왕조가 인도를 지배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 자체가 인도 민중에게 버림 받은 게 결정적 계기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이 책은 하진희 제주대 미대 교수님이 직접 현지를 답사하고 찍어 오신 사진이 가득 실려 있고, 재질 좋은 종이에 선명히 인쇄되어 있습니다. 회화에 적용된 미술 기법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미술 전문가의 솜씨답게 독자에게 유용합니다. 특히 p98~99에 나온 사진과 해설, 뱀의 왕으로 환생한 난다 소년과 왕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더러, 이렇게 앞선 시기(서양 회화의 발달보다 거의 천 년 이전이죠)에 발전한 테크닉이 존재하였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에 실린 본생경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아잔타 석굴 관련 아니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만족시킵니다.


p121에 보면 "진실을 밝히는 마하소다 소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마하소다"라는 이름은 오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호사드하महोसध"라는 이름이 맞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기독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명판결 에피소드와 너무 닮았습니다. 아마도 본생경이 시대순으로 더 먼저가 아닐까 학자들은 짐작한다는군요.


P37:8 "포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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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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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재난- 그것이 과거 한 때의 상흔이어서, 다시는 반복될 우려가 없는 고정된 박제라고 해도 말이죠- 을 관광상품으로 만든다는 발상, .... 좀 잔인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혁신을 강조하는 작금의 비즈니스 세태에 비추어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없진 않네요. 여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작품 세계를 주로 붓끝으로 빚어왔던 윤고은 작가의 작풍에 비추어, 이 신작은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재난 여행이 컨셉이라고 해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설정이나 펼쳐질 것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첫 페이지부터 폭풍의 연발로 쏟아지는 리얼리즘 터치 탓에, 초점과 시야를 어디에 둬야 할지가 난처했을 정도였습니다.

"이게 뭐지? 이러다가 또 화성인 등장하는 시츄에이션일까?"
"벌써 '고요나'라는 이름부터가 도로시랜드 진입 예고 제스처란 말이지."

그래도 이런 기대를 접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윤고은이라는 이름, 상표로부터 지레 떠올리는 작풍이란, 다 알고 있던 대로 특유의 풍만하고 풋풋하면서도 선명한 채도의 원더월드, 바로 그의 전개와 담백한 드라마의 버무림이었죠. 그런데 이거 첫 페이지부터가 영 심상치 않습니다. 30대 초반, 모르긴 해도 아직 미모가 시들진 않았을, 동시에 그만큼이나 세계와 자아에 대한 찌들지 않은 시선, 눈빛을 간직했을, "브레인레벨" 과장 고요나, 주인공은 그 등장의 댓바람부터 직장 내에서의 퇴출 위협 전조로 여겨진다는, 김 모 부장의 저열한 성추행 피해자로 우리 앞에 대뜸 디밀어집니다. 이건 그냥 읽어도 좀 충격입니다. 뭐 작품이 첨부터 김영하표나 달고 있었다면 모르지만, 윤고은은 문단에서의 지위나, 우리 일반 독자로부터의 평균적 대접으로나, "아직 애" 레벨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뭐 나중에 그녀다울 새콤한 반전을 예비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전 소설을 다 읽은 후라 결론을 알고 있지만 일단 짐짓 모르쇠 모드로 나가겠습니다) , 그것도 뭐 나쁠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젊은 그녀라서이죠. 만약, 지극한 나이의 방송작가 임성한이 이런다면 어떨까요? 가정법이 아니라 지금 실제로 그러고 있으며, 대충 시청자들의 공감은 이뤄진 바라서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구태여 하지 않겠습니다.

암튼 윤고은은, 재롱을 부려도 괜찮은 나이입니다. 좀 안 하던 짓을, 진지열매를 따 먹고 우리 앞에서 퍼폼 좀 하기로서니, 우리가 이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좀 어색하고 안 어울리기는 하지만, 애가 어른짓좀 하기로서니 당혹할 것까진 없습니다. 어른이 체신 없이 애들 짓거릴 하면 그게 문제고 큰일이지만요. 본디 (어린) 여자의 변신은 무죄고, 작가의 변신은 더더군다나 결백합니다. 아닐까요?

거참, 아무리 그러려니 해도, 대뜸 회사(그 이름도 정글이랩니다)에서의 살벌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깔질 않나, 질 나쁜 중년남성이기가 당연할 직장 상사의 성추행 모티브가 등장하질 않나(수위도 별반 낮다고 말 못합니다), 이거 아무래도 책을 잘못 골랐나 하는 주저함이 떠나질 않네요. 그녀가 풀어주는 이야기 보따리의 외관이 어떠하건, 이런 자락에서, 통상 가질 법한 엉큼한 상상의 부력을 받아 가며 계속 책장을 넘겨도 되는 걸까요? 조금 가책이 느껴집니다.

고요나는 정말 냉정한 플레이어입니다. 브레인으로 평가는 받아 왔으나, 나이도 들고 감각도 떨어져가는 게 말로는 표현 안 해도 본인이나 타인에게나 어느 정도 살을 쑤시는 현실로 다가오는 판인데, .... 미국의 오랜 격언 중에 그런 게 있죠. "직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면 체인지업을 시도하라." 대체로, 정직한 실력의 발휘로 직장 내 입지를 다져 왔던 그녀였고, (더 젊은 나이에 벌써 퇴물 취급을 받기 시작하는) 하급 직원들로부터는 존중과 선망의 대상으로 아직도 꼽히는 그녀지만, 심상치않은 분위기는 도처에서 감지됩니다. 퇴물만 골라 괴롭힌다는 오랜 상사(유능한 부하)로부터 더 뚜렷한 신호를 받은 그녀는, 이제 승부수를 던집니다. 일단 고충처리부서에 분위기를 타진하였으나, 차분히 주판알을 팅궈 보니 섣불리 몸을 담글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 길이야말로, 사내의 퇴물로 자타공인의 낙인을 찍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채널임을, 그녀는 예민하게 캐치해냅니다.

제가 리얼리즘의 징그러운 발현이라고 한 건, 성희롱을 사내 정치, 약육강식의 수단으로 삼는 타락한 중년 사내의 등장 따위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라면, 작중에서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작가 윤고은의 페르소나 반영 의혹을 벗기 힘듭니다. 이, 아직은 젊고 순수한 태를 털어내지 않은 고요나라는 주인공이, 이런 감당 못할 분위기의 옥죔 속에서, 저런 냉정한 계산 하에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다는 그 세팅이 섬뜩했고, 이것이 역사와 자연의 정면 투입이라는 본격 장편 구성을 위한 대담한 시도보다 제게는 더 큰 이물감으로 다가왔어요.

김과 고요나는 묘한 지점에서 타협점을 잡습니다. 김 역시 오랜 부하이자 만만찮은 비중의 프로그래머를 함부로, 내키는 대로 다뤘다간 그간의 곡예 진로가 앞을 점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음을 압니다. 고요나는 물론 회사에서의 최소한 현상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 김과의 절연이 엄청난 모험임을 이미 진단한 상태고요.

일종의 냉각기 마련, 혹은 포상을 가장한 전선 재포진을 위해, 김과 고요나는 부하의 해외 여행( 바로 그녀의 솜씨인 재난 여행 코스) 주선 쪽으로 대립 해소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감당 못할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직장과 인간관계의 대파국이라는 재난을, 가상의 설정으로 엔터테인먼트화한 코스 상품을 통해 모면하겠다는 발상, 이는 도피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영악합니다. 쉽게 말해, 재난으로 재난을 중화하겠다는 거죠.

고요나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자신의 기획에 몸을 맡겨 먼 타국으로 떠나는데, 역사적 재난인 인종청소와 때맞춰 일어난 싱크홀 디재스터로 유명한, 베트남 남단의 무이 섬이 그 배경입니다. 여행 중 일행에게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신분을 철저히 숨깁니다. 이는 타인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이기도 하고, 업무 수행을 위한 방편,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 자체의 의미를 다지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니 그 영악함에 혀가 내둘러질 밖에요.

제가 자꾸 찜찜한 마음으로 되뇌는 건, 이 고요나가 정녕 작가 윤고은과 무관한 존재일 수가, 그럴 리가 없다는 점에서입니다. 아니, 대체 그녀의 어느 정신 한 구석에서 이런 캐릭터를 창작해 낼 생각이 났던 걸까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김 같은 이는 차라리 피해의식의 발로이건, 모종의 상해 예방심리이건 여성들이 떠올리고 상상하기 쉬운 캐릭터입니다. 그런 자라면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인, 어찌 보면 흔해서 드문 파충류 같은 존재입니다. 헌데, 고요나 같은 페르소나는 다른 이도 아닌 윤고은의 솜씨로부터 빚어졌기에, 정말이지 실감과 해독이 어려운 미궁 같은 영혼입니다. 미궁이 가는 곳에 미궁의 얽힘이 빚어지고, 곳곳에 파인 싣크홀은 그 미궁의 굽이와 요철을 맞춥니다. 적당히 갈등이 봉합되고 균열이 가라앉았다 싶은 바로 그 순간, 자초한 낙오(낙오야말로 쿨하게 영악한 그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상태어입니다. "여행사 직원이 어떻게 낙오를 하죠?" 많이 부족한 이야기입니다. "왜 고요나라는 존재가 낙오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거죠?" 이 정도는 되어야 격에 맞습니다)와 끔찍한 재앙은 기묘한 반전과 충격으로, 재앙 이상의 쇼크를 독자에게 안깁니다. 저는 책을 덮으며 그저 이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윤고은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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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츠파로 일어서라 - 7가지 처방에 담긴 유대인의 창조정신
윤종록 지음 / 크레듀(credu)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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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련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강해진다. 나를 죽게 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런 독기 어린 말도 있긴 합니다만, 말이 그럴 뿐이지 실천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겠죠?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독기를 품다 보면 다른 쪽으로 부작용이 안 나타난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안티프래질의 근성을 발휘하는 소수를 두고 마냥 부러워할 일만도 아니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게 살아야 마땅한데 하는 생각에만 그치곤 하는 경지를, 그것도 민족 단위로 몸소 실천으로 이뤄 내는 이들이 있었네요. 우리가 종래 부정적인 인식으로 접하던 이스라엘 민족, 국민이 바로 그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뭔가 좀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이, 이스라엘은 상식적으로 그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지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가 업습니다. 땅도 좁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많은 인구가 좋다고만 하기는 어렵지만) 하다못해 국방을 당장 커버할 수 있는 인적 자원조차 부족했습니다(현재도 다를 바 없고요). 반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적(그들의 입장에서)은, 머리수로나 차지하고 있는 영역으로나 부존 자원으로나 당장 보유하고 있는 현찰의 힘으로나 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터진 이른바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단 6일만에, 열세의 만회는 물론 상대의 영토까지 일부 침탈, 점령하기에 이르는 대반전을 아뤄냈죠. 우리는 막연히 "미국의 원조 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남한의 경제 성장이 "모두 미국 덕"이라고 진단하는 것만큼이나 안이한 발상입니다. 이 당시 미국은 "자신들의 전쟁"도 채 승기를 잡지 못한,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한심한 거인이었습니다. 원조가 전쟁의 향방을 바꾸는 게 그토록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면, "원조" 같은 간접 방식이 아닌 "직접 자기가 치르는 전쟁"은 백전 백승을 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내 전쟁도 못 이기는 자가, 어떻게 남의 전쟁에 간여해서 그 승리를 보증할 수 있을까요? 다 떠나서, 가난하고 좁은 베트남과, 석유로 남아돌아가는 부를 주체할 줄 모르는 중동 산유국 카르텔 중. 누가 싸워 이기기에 보다 수월한 상대일까요? 6일 전쟁은 냉정하게 보아, 이스라엘 그들의 힘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그런 승전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책의 주제는 소위 "창조경제"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창의력과 상상력만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일궈 낸다는 발상, 매력적이긴 하나 그 실현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한, 그런 과제에 끊임 없이 도전하고 어 느 정도의 성과를 현재 이뤄내고 있는 이스라엘 젊은 경제인들의 이야기가 주된 화제입니다. 읽으면서 정말 놀란 일이 다물어지지 않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액면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저자 윤 장관도 털어놓고 있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某 회사는, 어이없게도 현재 새로운 위기를 맞아 파산 직전에 몰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 보면 결국 창업 실패율도 장난 아니게 높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국가가 청년들 개인의 창업 리스크를 대신 떠맡아 준다는 발상 자체가 집단 모럴 해저드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실제 우리도 1990년대 말~ 2000년 초반에 이런 일을 직접 겪기도 했죠[소위 벤처 사기꾼 문제]. 무작정 묻지마로 장려할 일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인구가 5천만을 넘어가고 개개인의 사정도 천차만별인 제법 큰 나라지만, 이스라엘은 비교적 균질적인 사회 분위기에, 인구도 7백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7백만이라면 서울 시 인구보다 작은 규모죠). 후츠파로 일어서라! 따지고 보면 얼굴에 철판 깔고 빼째라는 분위기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솔직한 말로요.


하 지만 예를 들어서, 이런 대목은 어떻게 읽혀질까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아이들이, 나는 앞으로 어떤 부대에 지원할지 여러 정보를 비교해 가며 친구들과 토의를 합니다(군입대 불법 면제를 위한 정보 공유 카페 활동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처럼). "부대"라고 하면 물론 군부대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자 3년, 여자 2년의 복무가 의무사항이니까요. 군대는, 젊은 청년이 가장 그 두뇌를 왕성히 작동시킬 나이에 머리와 활기를 썩게 하는 곳이 아니라, (그렇기는커녕) 사회 조직 일반에서 두루 통용될 리더십, 전문 기술, 그리고 인맥을 구축할 기초 네트워크를 만드는 곳입니다. 지능지수나 빼어난 학업 능력으로 선발하는 엘리트 부대는 지원한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우리로 말하면 SKY 대학이나 마찬가지로 선택 받은 소수만이 넘볼 수 있는 특권 집단이기도 하죠.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기초적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예산 비중을 국방비 섹터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가진 것 없는 나라가 그러다간 망하기 딱 좋은데요(구 소련은 그 유리한 스펙으로도 결국 망국으로 접어들었죠), 그래서 찾은 활로가 바로 "국방자원의 사회적 재활용"입니다. 국방비에 투자된 비용을, 모두 민간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와 지식으로 전환하여, 종착역을 군대로 해서 탕진하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겁니다. 군대가 곧 대학이고, 경제연구소, 기초과학연구소, 첨단 공학 밸리가 되게 하는 거죠. 이러니 "군대 잘나오면 인생이 핀다"는 말이 나올 법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물론 그 생산성 면에서 한국의 SKY를 저리 따돌리는 명문대학도 얼마든지 따로 있습니다.


군대는 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지, 다른 일 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것 아닌가? 2세기 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전쟁은 물 량이나 스펙으로 수행하는 게 아니죠. 상황에 임해서 수시로 발휘되는 임기응변 능력, 총체적인 전황 파악 능력이 핵심 자산입니다. 야전 지휘관의 실전 능력이야말로 순간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 결정적인 팩터로 작용합니다. 지휘관이 빼어나 군이 강군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장교인 소대장 뿐 아니라, 우리식으로 따지면 병장 계급 정도의 레벨에서도 폭 넓은 재량이 주어진다는 군요. 물론 재량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만한 인적 자질이 교욱 과정에서 함양이 됨을 전제로 합니다(안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했을 때, 불필요한 중간 계급이 최소한으로만 존재하는 능률성으로 유명한 조직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삼성이 세계 가전을 제패하고, 반대로 옛 가전 제국인 소니 등이 대거 몰락한 건, 바로 의사 결정 과정의 신속/비신속이 그 운명을 갈랐습니다. 하물며 정말 생사가 오가는 전쟁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사병 개개인이 모두 장교 노릇을 하다시피하는 군대, 일당 백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죠.


저 는 이 책에서 주로 이런 점들을 중심으로 교훈을 얻고 핵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벤처나 첨단 기술 산업의 성패는 그 결과를 지켜 봐야 아는 거고, 현재 한국의 젊은 인력도 그 정도 지식이나 특허가 없어서 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무작정 지원해 달라는 사람 중에 알곡과 쭉정이를 어떻게 갈라야 하는지가 더 큰 문제이며, 우리 나라 같은 실정에서 잘못했다가는 큰 사고나 저지를 수 있습니다. 벤처는 말 그대로 벤처라서,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는 원금은 물론 전 재산을 다 날리기 딱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하나하나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나를 써줄 사장님, 일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사 회에 일자리를 만들겠다! 이게 바로 후츠파 정신이고, 그런 패기와 모험 정신은 물론 대단히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무작정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쓰라린 시행 착오를 거친 경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국방 시스템, 교육 체제는, 우리와 세계가 눈으로 확인한 부분이죠. 그들의 국방력은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입니다, 벌써 40년 전에 멸망했어야 할 나라(남베트남은 미 국이 직접 군대까지 파견해서 도왔는데도 형체도 없이 사라졌습니다)가, 승승장구하며 오히려 주변국을 위협까지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굴지의 발견이나 학문적 업적을 도맡아 하는 집단이 바로 유태인들입니다. 이처럼, 그 결과가 이미 가시적으로 판명이 난 사항에 대해서는, 누가 시비를 걸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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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의 법칙 - 미술품 투자! 이성으로 분석하고 감성으로 투자하라
이호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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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운용과 증식의 수단으로 미술 작품이 그 유망한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의 저자분도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입니다. 이 책에서 "호시절"로 자주 거론되는 2007년은, 전문가들도 일치하다시피 손으로 꼽는, 예외적으로 드문 호황기였다고 하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내내 불황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주식 시장, 채권 시장의 악재는 터졌다하면 그건 그것대로 다 수용하는 분위기라서, 상시적 불경기에 요령껏 적응하는 게 전문가의 미덕으로 꼽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겁없이 신시장이라며 성큼 발을 들여 놓을 계제는 전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설령 해당시장이 그지없는 호황을 맞이하는 중이라 해도, 여전히 문제는 녹록지 않습니다. 미술 작품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비결이란 결국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 미술 작품을 보는 안목이 남달라야 한다 ㉡ 재력이 충분해야 한다. 물론, 시장을 보는 면밀한 안목도 있어야 하고, 순발력과 배짱도 남달라야 하고, 가격과 트렌드를 형성하고 주도하는 이들, 키플레이어들이 누구인지 정보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점은, 미술 시장뿐 아니라 투자 시장 어디에서건 적용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원칙이라서, 특별히 이 주제, 즉 미술 시장에 한정된 이슈는 아니겠습니다(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상당히 많은 비중을 이 원칙의 자세한 서술에 기울이고 있고,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술 시장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일단 아니라고 봅니다. 시장에서 위너가 되기 위한 안목은 고사하고, 일반적 교양 수준으로 활용할 심미안을 갖추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고요. 무엇보다 개별 투자 항목의 단가가 엄청나게 높은 미술품이, 설사 매물로 나왔다고 해도 이를 거리낌없이 사들일 수 있는 큰손이 몇이나 되겠냐는 점에서이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이 평범한 소시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쉽게 활용될 것으로는 별 기대되지 않습니다. 대중이 미술 시장에 접근하기에는, 그 진입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일반독자가 즐겁게 읽고 바로 실전에 응용한다든지 하는 독서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알아보는 안목이 하루아침에 길러질 리도 없고, 이 책이 그런 안목을 길러주는 내용도 아니며, 그런 조건이 다 갖추어진다 한들, 가격 스플리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펀드식 지분 참여도 어려운(외국에는 제한적이나마 있긴 합니다) 미술품 투자 시장에, 초심자가 참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책 저자도, 소더비에 매물로 나온 뭉크의 작품 구매자가 끝까지 누구인지 안 밝혀진 상황에서, 카타르 왕족이 그 주인공이라는 예측 아래, 그 시의적절한 투자 결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카타르의 거부나 족장도 아니고 왕실 사람들과 레이스를 벌이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라는 점에서요.




그 런데 저는, 비록 플레이어가 아닌 관전자로서 시종일관 역할이 제한된다고 해도, 제 눈에는 다른 영역의 시장과 확연하게 차이나는 점이 많이 눈에 띄는, 그러면서도 시장 일반의 특성은 또 다 갖추고 있는 이 미술시장의 작동 방식이, 그저 이해의 대상(참여의 대상이 아닌)으로만 삼아도, 자본주의 일반과 세상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슈퍼 리치, 권력층, 귀족이 아니면 낄 수 없는 게임의 현황을 보며, 역으로 결국 다른 섹터에서도 판을 주도하는 그들의 생리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이죠. 다음으로 이 책의 매력은, "과연 예술품의 미학적 가치와 시장 가치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는 의문을 잘 대답해 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미술시장에서 승리하는 투자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직 세상에 덜 이름이 알려진 신출내기 작가들을 유념해서 관찰하고, 그들의 가격이 "아직 쌀 때", 요령껏 선점해 두었다가 좋은 시기에 매도하는 게 유일한 비결이라는 거죠. 높은 안목으로 수집된 컬렉션이나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각자의 기준이 다 다르고 누가 조언이나 간섭을 할 일도 안 된다는 점, 설사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구매자 본인은 결국 제 취향에 의한 선택이었으므로 후회도 없다는 점, 이런 게 다른 시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매력적인 특성처럼 보였습니다.




미술시장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일반독자라도 재미있게 읽힐 대목이 있어요. 첫째는, 우리가 아는 불후의 미술 작품 중 가짜, 위작이 그리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희소성 면에서 어떤 재화나 귀금속도 따를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솜씨 좋은 사람이 감쪽 같이 세상에 하나를 더 만들어 내어도 좀처럼 알기 어려운 판이라 큰 돈을 벌 수 있고(실력 있는 화가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키면 피카소, 다른 기분이면 세잔, 이런 식으로 자유자재의 모작 생산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소장가들이 안전의 이유에서 가짜 하나 정도를 주문하는 일도 흔하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 같은 이는 오리지널 창작자였을 뿐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이라면서 자신의 창작을 모처에 매장해 두고 이를 "발굴"하는 수법으로 큰 돈을 챙겼다고도 하니, 위작과 기만의 상술이 이미 그 시기에도 진정성과 공존한 셈이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특히 현대 미술품의 경우, 그 가치를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예가 잘 말해 주듯, 과연 예술품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도 모호한 몇몇 퍼포먼스를 두고 한때마나 그리도 시장가나 평판이 오르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유력 평론가, 그리고 시장 운영 주체의 "견해, 미학적 안목"이 어느 정도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을 운명처럼 수용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입니다. 




저 자는 서론에서 주식 시장과 미술 시장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자세히 논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미술시장 이해관계자보다 오히려 주식에 올인하다시피하는 분들이 더 주의깊게 읽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대상을 그것만 뚫어져라 쳐다 보면, 오히려 그 속성을 파악하기가 더 힘듭니다. 대조군, 비교 대상이 있을 때에만 그 본질과 특성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법이죠. 읽으면서 오히려 주식시장에 대해 더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외, 저자는 "대가들의 드로잉에 주목하라."는 유용한 팁도 알려 주고 있지만, 이는 일반인에게도 너무 상식화한 사항이라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구요. 이 책을 읽으면 대체 왜 이중섭 등의 작품에 대해 위작 논란이 도통 그칠 줄 모르는지 그 근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걸 떠나, 깨끗한 인쇄로 소개되는 각종 미술 작품들을 구경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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