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경제의 귀환 - 잃어버린 성장 DNA를 찾는 길
오영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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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논의의 기본 전제로 사용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 일본계 미국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저서를 내어서, 신뢰가 경제 작동의 기본이 되고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로 세계의 국가들이 이대별될 수 있다는 논의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한 때 치열한 논쟁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그 구성분자들의 자격을 평가함에 있어서, "신용불량자"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활동자로 나누는 데서 알 수 있듯, 현행 자본주의 경제는 철저히, "신용'이라는 추상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 신용을 공여받은 자와 부여한 자 사이에, 물리적 족쇄나 법적 강제(많은 비용 지출이 수반됩니다) 없이도 원활한 거래, 혹은 계약 관계 안의 급부 교환이 가능하다면, 그 사회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 소비에만 신경을 기울이면 되고, 별 도의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를 들어 채무자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다든가, 계약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매 단계마다 별도의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면, 시스템의 공적 인력을 통한 이행 확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이 지출될 것입니다(예전에 "좋은나라운동본부"같은 TV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세요. 체납자, 채무불이행자의 추적과 처벌에 적정 수준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면, 그 사회는 세금 징수 단계에서 붕괴할 수 있습니다.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가진 자들은 더 이상 저축 섹터에 자신의 부를 노출하지 않고 "장롱"속으로만 은닉해 두거나, 신뢰가 확보된다고 판단하는 해외 경제 단위로 돈을 빼돌릴 것입니다).


저 자 오영호씨는 행정고시 재경직 출신으로, 평생을 경제관료 생활을 통해 커리어를 다진 분이고, 서강대 교수, 무협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KOTRA 사장에 재직 중인 분입니다. 이분이 1952년생이시고, 대략 20대 중후반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고 보면, 한국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를 갓 해결하려는 단계에서 벗어나 원자재 가격 폭등, 중화학 공업 위주 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극심한 성장통을 알던 시기인 1970년대말, 그리고 이른바 "3低의 호황"을 누리던 최전성의 도약기 1980년대를, 아직은 국가가 그 컨트롤타워를 관장하던 시절 정책 결정 관료로서 지켜 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분처럼, 한국 경제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 없는 기적 같은 도약을 맞이하던 시기를 회고하며, "현재의 교훈과 자율성 등은 충분히 살리되, 그 시절의 장점과 희열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지?"를 담담히, 혹은 안타깝게 저술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이 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있었구요.


베테랑, 원로들이 현 경제의 건강성과 실태를 활력 부족의 관점에서 걱정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성장하고 인생의 최절정기를 보내던 방식과는 달리, 현 경제의 성장과 건설을 담지하고 나가야 할 젊은 세대는 이른바 "3포"의 함정에 빠져 자활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추 세대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실정을 정확히 반영이라도 하듯, (비록 24000$의 사상 최고 규모의 국민소득을 달성했다고는 하나) 거시 실질경제 지표는 도무지 살아날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오 영호 저자는 우선 1부와 2부에서 과거 회고담을 펼치고 있습니다. 1부의 1장은 1960년대, 그야말로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아 외화획득원의 주요 수단으로 삼던 시절의 눈물겨운 사연이 주를 이루고 있고, 2부로 넘어가면 때맞춰 발발한 월남전의 특수 덕에, 한국으로 대거 달러가 유입되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한국 장병들이 한사코 일제군수품 사용을 거부하여("일제 마크가 찍힌 제품을 입고 착용하면 싸울 사기가 살아날 수 없다!") 말단 병에 이르기까지 강력 항의하여, 미군도 공급선을 (가까운) 국내 업체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나오네요. 박정희가 당시 서독 대통령 뤼브케에게 충고를 받아 "산과 강이 많은 한국에서는 철도보다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독일의 아우토반을 염두에 두고)" 라는 말을 귀에 새겼다는 대목도 흥미로웠고, "산업 전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깡다구 하나로 열악한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노동자들,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며 사우디의 사막에서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고 파이잘 국왕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거리라도 배려하여 할당하라."고 명령을 내렦다는 이야기에선 잠시 눈물이 돌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다시 오랜 화두를 꺼냅니다. "과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우리는 저신뢰사회가 맞는가?" 이 보람찬 고도성장기에는, 사회가 온통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진만을 마음에 채우고, 다른 구성원을 향한 신뢰의 충전에 여념이 없었다는 거죠. 저자는 이 기저에 동아시아 한국 특유의 유교 윤리, 공동체 우선 사상, 연장자는 부모나 형, 누이처럼 대접하고 손아랫사람을 자식처럼 아끼는 풍조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적 같은 성장이 불가능했으리라 단정합니다. 유교 윤리는 당시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가장 순도 높은 신뢰를 제공하는 원천이었으며, 후쿠야마 교수가 주장하는 "신뢰"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우리 독자의 신뢰가 폭발적으로 발생하여, 성장과 번영의 가망이 보이지 않던 최밑바닥에서 여기까지 발전을 이뤄왔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현 시점에서 유교 정신의 복원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만(아마 저자와 비슷한 정치 경제관을 갖고 있을 리콴유, 마하티르, 또 홍콩의 재계 거물들도 같은 논리를 펴긴 합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에 족쇄매이지 않고 도약을 감행하려면, 구체적인 방법론이 따라붙는 "신뢰 재구축"의 컨센서스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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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힐링요리
김소영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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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즘은 요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죠. 자라나는 청소년들도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 보면 "일류 요리사(셰프)를 거론하는 일이 많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대중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박찬일 셰프 같은 이가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일도 당연하다는 듯 보고 듣는 세상입니다. 일찍부터 장인 정신에 대한 존경의 풍토가 각별했던 유럽에서는 일류 요리장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새삼스러울 게 없고, 그래서 "You are what you eat." 같은 격언이 통용된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스파게티, 파스타 같은 걸 주문하면 대뜸 짜증부터 낸다고 합니다.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걸 뭐하러 식당까지 와서 돈을 내고 주문하는가?" 사실 아직도 시내에서 제일 잘되는 요식업종이 고작 삼겹살집인 걸 생각하면 우리네 외식 선호 현상을 정말 이상한 면마저 있습니다(물론 양질의 육류를 조달하는 일이 반드시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리사가 밑반찬 몇을 고작 내주는 정도의 서비스에 과도한 페이가 지불되는 건 다른 나라에서는 쉬이 찾기 어려운 현상이죠).


위생 문제, 과소비를 염려해서라기보다, 간단한 요리를, 혹은 간단하지 않은 요리라 해도,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비용도 줄고, 조리 과정에서 가족 간의 소통이 증진되고 신뢰와 사랑이 돈독해진다는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전부터 가정 주부를 위한 요리책도 많이 나왔었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에는 아침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TV에서 전문가의 지도가 이뤄지는 프로그램도 방영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있어도, 가정에서 스스로 만들어 먹는 요리를 장려하는 프로그램은 드물게 보는 게 사실입니다.

이 책의 저자 김소영씨는 "러블리 키즈쿡"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보다 가족 간의 소통을 증진하고 밖에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과정과 결과에 있어 공히 힐링을 도모하는 요리를 창안하여 보급하는 데에 열심인 분입니다. 책 은 주로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줄 수 있는 요리법"을 제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주된 역할을 맡긴 이유는, 이 요리들이 처음에 아이들의 바른 식습관을 만들어 주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때부터 간단한 요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방법을 가르치며(다시 강조하자면, 가르침의 대상이 "아이들"입니다), 편식 등 나쁜 습관을 뿌리뽑아 어려서부터 바른 성장을 기하게 한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는군요. 이렇게 바른 방법으로 식습관을 들인 아이들은, 커서도 바람직하고 균형잡힌 식단을 계속 유지하여, 애쓰지 않아도 웰-비잉이 이뤄진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는 쾌감을 가르챠 줌으로써 바른 정서와 인성의 함양에도 기여한다는 겁니다.

처 음에는 아빠가 주도하고, 아이가 곁에 끼어 아빠의 솜씨를 맛보는 코스인 줄 알았습니다. 사진을 먼저, 그리고 텍스트를 나중에 들여다 보니 전혀 아니더군요. 정말 놀랍게도, 이 책은 아이가 아빠를 위해 만들어 주는 요리, 그 방법과 즐거운 결과를 잔뜩 담아 놓은 책이었습니다! 놀랍지 않으신가요? 아빠가 애를 위해 요리를 해 주는 모습도 흔한 건 아닌데, 아이가 아빠를 위해 요리를 만들어 주는 모습이라니! 사실 저는 책을 처음 폈을 때, 제가 혼자 해 먹을 때 참고하려는 용도였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세상에 어린 아이들이 이런 요리를 만드는 게, 좋은 요리사에게 배우면 가능하구나!"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책 을 읽으면서 상식도 많이 늘었습니다. 본디 월남쌈과 쌀국수는 베트남이 아닌, 남베트남 붕괴 후 대거 호주로 몰려 간 베트남인들이 그곳에 퍼뜨린 게 효시라고 합니다. 칼로리도 적고,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들 사이에 대화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힐링을 위한 메뉴로서 최고라고 합니다. 견과류가 몸에 좋긴 한데, 어르신들은 몰라도 아이들은 이게 맛이 없어서 골라 내곤 한다죠? 그런데 이걸 시리얼에 같이 타서 주면, 초콜릿과 우유에 숨겨진 맛 때문에 아이들이 같이 잘 먹는다고 합니다. 아이를 둔 집에서는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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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집에서 치료할 수 있다 - 혼자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파킨슨병 자가운동방법
미즈시마 타케오 지음, 조기호 옮김 / 부광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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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체의학이라는 것과, 해당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고심담, 투병기에서 나온 유용한 교훈을 혼동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난치병, 불치병에 시름하는 이들의 고통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공유되고 전파되어,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를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곤 합니다. 아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는데, 단순한 감정적 상처가 아닌 육신의 병이라면 이 점은 더욱 확실해질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해 줘야 할 현대의학이 제 할 일을 못하고 있는 대목에서, 환자들 스스로가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막아서겠습니까?


이 책은 제목처럼, "정말 파킨슨병을 통원 입원 절차 일절 거치지 않고, 집에서만 치유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더군요. 우리가 독감이나 전염병 예방을 위해 손발 깨끗이 씻고 몸가짐을 잘하는 것이 사이비 대체 의학이 아니듯,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도,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파킨슨병의 악화를, 집에서나마 최소한으로 막아보는 바른 습관, 병원에서 투여하는 약들의 기능과 정체,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걸 친절하고 자세히 일러주는 지침서였습니다.


생 각과는 달리, 파킨슨병의 진단 기준이라는 게 모호한 면이 있더군요. 틱이나 운동장애가 있다고 다 그 예후가 아니며, 일정 기준을 다 충족해야 이 병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이 병이 무슨 노인들이나, 특수한 인생 경로를 거친 드문 사례, 예컨대 무하마드 알리 같은 소수나 걸리는 병이 아닌, 두뇌와 신경 장애의 일환으로서 누구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병임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 대의학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거나, 오히려 배격해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병의 싩체를 정확히 알아야 그 병마의 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고, 혹시라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이 병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을 때, 물리적 도움 외에 베풀어 줄 수 있는 그 모든 배려와 마음가짐, 유용한 팁들이 따로 있다는 걸, 경험자들의 증언과 지혜를 통해 가르쳐 주는 책이었습니다. 병이란 특히 환자의 입장에서, 부작용 없이 나을 수만 있으면 그게 곧 신의 축복인 겁니다. 간혹 이런 보건의 이슈를, 비뚤어진 과시욕이나 잇속 챙기기, 혹은 정치투쟁의 소재로 삼는 이들이 있더군요. 환자에게 이로운 것만큼 강력한 공공선과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깨달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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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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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아버지의 그 사연이란, 언제나 사람을 뭉클하고 숙연하게 만듭니다. 부모님은 나에게 육신과 영혼을 준 분이고, 나의 한계와 나의 장점은 언제나 그들을 돌이켜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죠. 한국처럼 짧은 시간에 급격한 사회 변혁, 가치관의 변용을 겪은 곳에서는 세대 간의 단절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공동체, 분단 없이 가치관과 정신적 미덕을 generation to generation 으로 이어 오는 풍토가 정착되면,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에, 아버지는 아들이 주시하는 어딘가의 머나먼 시선 속에 그 살아온 자취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3대가 이어 온 전도와 선교, 그리고 고독한 소명의 사업이 그 공통의 지향인 집안이라면 어떨까요?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향하고 세상에 발을 디디며 성경의 워딩에 그 실천의 발판을 디디고 살아 오길 힘썼으나, 무서운 죄책감의 시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사역 3대의 사연을, 아버지 목사 잔 에임스를 통해 내러이트되는 형식입니다.


우리도 하근찬의 <수난 이대>같 은 작품에서, 한 개인들의 살의 질곡과 사연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한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개인은 축소된 국가이고 겨레입니다. 일대에 걸친 삶이 그런 기능을 하기에 좀 짧은 감이 있다면, 서로를 많이도 닮은, 닮아야 할 부자의 대(代)로 내러티브의 외연을 넓히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자신의 아버지, 또 자신의 아들 사이에 놓인 "낀 세대"인 잔 에임스 목사는, 부친의 엄혹한 죄책감과 한 치 양보없는 격식주의의 의무는 고스란히 물려 받고, 아들의 상대적 방황과 확신 없음의 불리한 입지는 그것대로 또 뿌리치지 못하는, 좋은 점이라기보다 불리한 사항만 다 끼고 살게 되었던 아픔의 중간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이 에임스 목사는 삼대 중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꺼려지는 와중에도) 마침내 끌어안고, 자신의 아들이 터벅터벅 걸어가야 할 그 머나먼 지향에 대해 자신 있게 정곡을 찌르는, 유언 같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였던 것처럼, 너 역시 결국 나일진대, 이 말을 나보다 누가 더 자신 있게 일러 줄 수 있겠니?"


길리아드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이라면, "길르앗"이라고 바꾸면 그제서야 아, 하실 겁니다. 미국에는 이 "길리어드" 라는 이름을 가진 소도시, 소읍이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미국의 정착사를, 인디언들의 가혹한 절멸과 축출의 연대기로만 알고 있지만, 특히 남부의 경우 기존의 거주민 없는 버려진 땅을 혼자 힘으로 일구고 개척하여 농경 주거 형태를 최초로 도입한 지역이 많았죠. 일을 다 이뤄 놓고 보면 쉽고 편해 보이지만, 제아무리 비옥섣과 광활함이 갖춰진 농장이라고 해도 최초의 손길, 길들임이 없는 상태에선 단테의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장은 인간이 그를 농장으로 바꾸기 전에는 그저 아가리에서 용암이 뿜어져 나오는 야수의 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런 대지를 나의 벗, 동반자로 삼기 위해서는 산 멀고 물 낯선 천만리 타지에서 불굴의 의지와 집요함이 필요했는데, 그래도 거친 자연의 시련을 받아 내기엔 그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신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지금의 시련은 그분의 크신 의지 한 조각의 발현이니, 나의 장래, 혹은 먼 훗날 내 후손의 앞날에 가득한 행복과 보람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이런 종교적 신념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그 문명화와 행복 추구(pursuit of happiness)를 위한 장정은 다 무위로 돌아갔을 겁니다. 개인개인이 다 투철한 신앙혼의 담지자 대변자였지만, 그래도 최종의 조율자, 지휘자, 사역자가 필요했고, 그 일을 이 에임스 가문의 남자들 같은 목사가 떠맡았던 거죠. 따라서 목사라면, 누가 어느 상황에서 그 영적인 해갈을 시도해도, 마치 준비라도 해 두었다는 듯 진정성과 유창성을 동시에 갖춘 답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일상의 삶이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기속되는, 양심에 의해 절제되고 말씀에 의해 연출되다시피한, 비고 가난하고 그러면서도 정의로운 손놀림 눈짓 발걸음 들숨 날숨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에임스 목사의 부친, 우리 독자에게 "할아버지 목사"로 이 소설에서 설정된 그 사역자는, 남북 전쟁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남부의 그 캔사스 주에서 활동했습니다. 무 서운 일이 있었고, 그 아들과 며느리는 다만 아득한 암시와 예감으로 진실의 잔영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불길한 유품의 항목을 확인하고, 땅에 묻어 버립니다. 며느리는 그에 그치지 않고, 그 중 셔츠를 다시 집어 들어 세탁하고, 다듬고, 다시 깨끗이 손질합니다. 대리석 조각 같이 반질반질해진 그 빛나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도로 대지의 품으로 이를 돌려 보냅니다. "지금 다시 파 보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마치 우리네 여인들이, 가뜩이나 흰 바탕의 옷가지들을 빨고 다듬이질하고, 또 햇볓에 말리던 그 모습을 연상케 하죠. 한 점의 얼룩과 때도 허용하지 않음이 곧 가사의 주관자인 나의 품위와 자존에 직결된다는 듯 말입니다. 작가 매릴린 로빈슨의 서두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재건과 신앙이라는 두 개의 코드는, 유럽보다는 아마 한국의 독자들이 더 쉽게 공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같은 "세탁, 정결의 절차"라도, 그 안에는 종교적 죄의식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에서 근원적 차이가 발생합니다. 에임스 목사의 사모님은, 시아버지의 내면과 심기, 그 번뇌와 한계를 철저히 이해했기에, 그 죄책감의 상속이 부정적 인계 절차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 희망적이긴 해도 말입니다.


바산의 황소,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길르앗(그런데 기독교 성경의 길르앗은, 도시나 읍이 아닌 광역 단위였습니다. 라몬 길르앗 할 때, 라몬이 도시이고 길르앗은 그를 포함한 지역명임을 상기하세요)의 향유는 당대 일등의 명산품이었습니다. 우리네 같으면 담양 죽제품, 강화의 화문석이라고 할 때나 마찬가지죠. 향유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까요. 예수가 마르타에게 부음 받은 그 화합물도 향유였고, 사울과 다윗 이래 선택받은 이들이 언제나 그 징표처럼 장로에게 수여받고 신체에 "입은" 것이 향유입니다. 향유는 죄사함의 표지요, 은총의 언약표징입니다. 향유를 생산하는 길르앗 땅, 여기에 부인할 수 없는 과거의 사연이 있고, 미래의 화해가 있으며, 끝내 저버리지 못할 절대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길르앗은 이제 인류가 그 죄업으로부터의 사면 희망을 놓지 않는 이상, 보편적 구원의 보통명사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삼대가 지난 후에는 다음의 삼대가 그를 잇게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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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 축구의 신화 프리메라리가 프리메라리가 축구 시리즈
루이스 미겔 페레이라 지음, 윤승진 옮김 / 보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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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누스에서 프로 스포츠 명문 구단의 역사에 얽힌 팩트북을 많이 출간하고 있어요. 지난 번에 제가 읽은 책은, 한국의 뉴욕양키스라고 할 수 있는 "삼성 라이온즈"편이었습니다만(그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삼성구단을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그 탁월한 운영 솜씨와 현재의 빛나는 업적을 보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번에는 종목이 바뀌어서, 보다 전지구적으로 보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축구입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인의 사랑과 주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와 더불어서 프리메라리그의 세력을 양분하는 초특급 전투 단위인 풋볼클럽 바르셀로나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크기는 이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간편한 사이즈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팬들에게는 몰랐거나 깜빡 잊었을 법한 사샐로 가득하고, 초심자애게는 "이 정도는 알아야 축구를 소재로 한 어느 대화에도 꿀리는 일 업이 낄 수 있지!"하는 유용한 사실을 가득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축구를 즐겨 시청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료들과 어울릴 일이 잦고, 또래 남성들 사이에서야 이 축구라는 화제가 대단히 인기 있는 편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사회적, 사교적 의무사항으로 케이블에서 주요 이벤트는 곁눈으로라도 챙겨 둔다고 할 수 있죠. 마니아들 사이에서라면 전술이나 경기의 복기 등이 중요한 관심사겠지만, 진지하지 않은 술자리에서라면 과거사의 회고나 플레이어들의 업적, 비교담 등이 더 친숙한 레퍼토리입니다. 이때 해당 종목이나 구단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다면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거나, 최소한 대화에 제대로 끼기가 힘들어지죠. 특히 이 책의 소재처럼 세계적 명문 구단의 지난 발자취를 짚는 식이라면, 이미 어느 모임이나 사교에서건 그 역사가 거의 교양의 종목이 되다시피했습니다(공감이 안 되는 입장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저는 그렇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우선, 요한 크루이프가 이 팀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에 가장 오래 머무른 사람이라는 점을 처음 알았습니다. 요한 크루이프하면, 네덜란드 토털 사커의 그 전설적인 위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코드로 밀착된 레전드 아니겠습니까. 월드컵 축구 중심으로만 축구사를 정리한 입장은 확실히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점 다시 깨달았어요. 또, 전설적인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한때나마 이 팀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 클럽팀에 대해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되었네요. 전술 부분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별권이 있으니까요, 관심 있는 분들은 따로 챙겨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조만간 사서 볼 생각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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