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생각법
하노 벡 지음, 배명자 옮김 / 갤리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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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 경제학의 지평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행동경제학이라며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만, 그 단초는 이미 게임이론 형성과정에서도 보이고 있었습니다. 즉,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동안에 다른 행위자는 어떤 사고를 진행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려를, 게임의 진행 과정에서 제약 룰로 편입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한 다면 어느 단계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이미 논의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만 카너먼의 공헌이라면, 심리학적 기법과 확립된 명제를 경제학 기본 이슈에 전면적으로 적용하여, 거의 구조 전체를 바꾸어 놓은 쾌거를 이룩했다는 점입니다.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적입니다.

이 "하노 벡Hanno Beck"이라는 독일인 저자의 책은, 재미있는 필치로 그간의 성과를 대중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대중서는 이처럼 내러티브가 자연스럽고 흥미로워야 하는데, 벡이라는 저술가는 그 점에서 대단히 빼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어요. 왜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해서, 그 상황이 요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트버스키(일찍 죽어서 불행히도 카너먼과 같은 영예를 누리지 못했죠)와 카너먼은, 어찌 보면 다소 짖궂은 방법으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상황이나 착시에 의해 달라 보이는 실험적 상황을 고안하여, 실험 대상자들이 명백히 불합리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에 대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합리성이 매 순간마다 배반당하는 이유를 두고, 인간 심리에 내재한 근본 성격에서 그 규명을 시도합니다. 귀납적 프로세스를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천재적인 직관능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이같은 우아한 해법과 명제의 도출이 가능했던 거죠.


"본전을 생각하면 전체를 잃는다." 이는 이른바 매몰비용sunk cost의 오류로 설명되고는 합니다. 이미 발생한 손실은 그저 기정 사실로 취급하고, 만회하려는 미련을 갖지 않고, 소위 "연결 회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본전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손실의 악령을 떨칠 기회마저 박탈된다는 결론이죠. 사실 정말 어려운 점은, 과연 어디까지가 매몰 비용이며, 어디서부터가 현재 유효하게 발생 중인 비용인지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겁니다. "매몰"이 일단 객관적으로 확정되었다면,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버리면 되죠. 일단 매몰이 확실한 후에도 미련을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연이 보유한 합리성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판단을 이어나간다는 결론밖에 안 됩니다.


왜, 수학적으로는 동일한 기대값을 부여하는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게임에 참여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는가? 저자의 설명은 명쾌합니다. 같은 절댓값을 가진다 해도(방향만 다른 벡터), 손실이 주는 비매력이 훨씬 큰 강도로 다가온다는 거죠. 이를 위험 회피 성향(risk aversion)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다른 말로는 부여효과(endowment effect)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둘 다 심리학 용어). 내가 가진 건 남이 가진 것보다 더 큰 가치로 보이는 착시 현상이 그 배후에 자리합니다.


p45에 보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아하나, 나서는 건 좋아하지 않고, ...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사람은 농부일까, 아니면 도서관 사서일까,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 때에, "도서관 사서"라고 냉큼 대답하는 사람은, 휴리스틱에 근거한 추론을 행할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쉽게 말해, "어림짐작"에 불과하다는 거죠. 만약 독일 국민 직종 종사자를 다룬 통계가 있어, 도서관사서의 비율이 2%, 농부의 비율이 4%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답을 맞힐 확률은, "농부" 쪽이 2배나 높다는 거죠.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직업을 선택할 때, 과연 자신의 타고난 성향과 적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구 비율에 따라 무작위로 확률에 맡기는 식으로 선택할까요? 그 사람의 성격이 정말 위에 적힌 저대로라면,
그 사람은 실제로도 직업을 "도서관 사서"로 골랐을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이의 "적성"이나 "성향"에 대한 정보는, 단순한 짐작으로 이어지는 clue라고 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유력한 통계 지표의 하나입니다. 적성 같은 결정적인 정보는, 고작 짐작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조건부 확률로 모집단의 범위를 줄여주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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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내게 아프다고 말할 때 - 내 지친 어깨 위로 내려앉은 희망의 씨앗 하나
이명섭 지음 / 다연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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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섭 저자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사랑에 관한, 혹은 애정사에 대한 아 포리즘 모음은, 외국 필치로보다 국내 책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어요. 종교 서적을 읽어도 그런데요, 아랍어로 코란이 낭송될 때 무슬림들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불가사의한 법열에 빠져 든다고들 하죠? 내용도 중요하지만, 네이티브가 느끼는 그 고유의 감각과 울림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진정한 일체적 감흥이 있으려면 아무래도 그 언어의 매개와 도움이 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건 내 이야기구나." "이건 참으로 적실한 가르침이다." "어떻게 이처럼 맞는 말만 모아놓았지?"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얼마  전 원불교 교무님이 쓰신 책을 읽고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는데요, 역시 그 나라 고유의 가르침은 (해당 종교를 믿고 안 믿고에 상관 없이) 언어 자체의 힘으로 깨우침, 공감을 전달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죠.


술은 사랑을 달굴 때 필요하지, 그 반대의 조건, 즉 이별 후에 들이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p167). 술은 악마가 흘린 천사의 눈물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 음주 상황이 빚는 이중성을 잘 간파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결론인데요. 이런 불교적 관조("일체 유심조")는 의외로 두루두루 상황에 잘 적응된다는 게, "지내 보면 절감하게 되는" 유용성이에요. 어찌 보면 어디서건 들어 봤을 흔한 내용인데, 텍스트까지 컬러효과를 주어 독자에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편집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탁월했습니다.


저는 로맹 롤랑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요, 한번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p175). 분노는 하루 동안의 수명을 가짐에 불과하지만, 그 하루 동안 파괴된 것을 수습하는 데에는 백 년이 걸릴 수 있다. 로맹 롤랑도 그 시기의 사람이기도 하지만요, 저는 이 말을 듣고 2차 대전 당시 히틀러가 "기왕 전쟁에 진 것, 점령했던 파리를 모조리 파괴하라!" 고 명령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생각납니다. 비정상적 멘탈을 가진 한 개인에 의해 수백년의 역사를 보유하고 천 만 시민의 애환과 노고를 담은 도시가 한 순간에 파괴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는데요. 시가지는 복구될 수 있었겠지만, 상처 입은 인류의 자존과 명예는 어떻게 쓸어담을 수 있었을까요. 백 년의 세월도 태부족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런 비정상적 멘탈을 가진 이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중에서 아주 악성의 질환을 가진 자는, 그런 허물을 지닌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혐오스러워서, 제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는 까닭에 몸서리치며 증오하기에 이른 상대를 두고 "상처가 크다, 환경이 나쁘다"는 둥의 심리학적 투사를 행하기에 이릅니다.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추한 모습,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대방의 안온하고 정립된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니, 감정적 치환으로 도착적 심리 상태 조성을 통한 사이비 힐링을 시도하는 거죠. 책에도 나와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려서 특히 어머니의 스킨십, 부친의 따스한 정을 못 받고 자란 결손가정 출신일 공산이 큽니다. 그런 결핍된 마음으로 성장했으니 커서 제대로 된 이성의 키스 한 번이나 선사받았을 리 없고, 자신에서 대가 끊기면 모를까 그런 악순환을 핏줄을 타고 이어지는 거겠죠. 이 책에서 "인간이 가장 먼저 발달시키는 감각은 촉각임"을 설명하고 있는데, 워낙 잘못된 경우라면 어떤 방법이 동원되어도 "백약이 무효"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불쌍한 영혼을 지닌 인간에게도 우정, 친구는 필요합니다. (p251) "친구란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정말 멋진 말이죠. 라틴어로 "알터 에고"라는 게 다 이런 걸 두고 이름이죠. 사람 인자가 마주 보는 두 막대를 서로 의지하게 버팅겨 놓은 지사(指事)에서 비 롯했다고 하듯, 인간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만 인간인 법입니다. 역시 결론은 소통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상대의 의사 교환이 동등하게 보장되는 쌍방향 소통이며, 내 말만 들어달라고 끔찍한 투정을 부리는 정신 질환을 의미함이 아니라는 것도 독서를 통해 명백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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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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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짝을 이루는 권이 <미움, 우정,...>인데요. 읽는 재미와 분위기의 활력으로만 기준을 삼는다면 이 책이 독자에게는 더 친절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짧은 길이의 "무대"에서 모든 것을 보여 줘야 하는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에, 보통 작가의 역량은 더 짧은 분량의 단편에서 잘 검증됩니다. 순전히 읽는 재미로 보나, 또 노벨상 수상 작가인 먼로의 다채로운 면을 감상하기에나, 한 권만 꼭 골라야 한다면 저는 이 책을 선택하겠습니다. 같은 한 벌 소속이라고 해도 이 책이 그 사이즈가 더 작기 때문에, 아마 기차 여행 도중 같은 특수한 처지의 독자라면, 그런 점에서도 더 유리한 면이 있겠네요, 제가 특별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 미움, 우정,...>도 그렇고 이 작품집도 그렇고,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의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데에 기차가 효과적인 수단으로 실제 활용되며, 궁벽한 지점지점을 이동하는 데 있어 기차는 특별한 정취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움, 우정,...>에서는, 수록된 어느 작품에서도 작가로서의 화자가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가구>에서 주인공은 작가 신분이기는 하지만, 전업 작가로 보기는 다소 모호하고, 설사 말하는 시점(혹은 부친의 사망 시점)에선 작품 활동을 접었다고 해도, 구성의 타당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주인공의 소설 창작은, 그저 소설 속 불행, 혹은 갈등 발아의 구실이었을 뿐입니다. 반면 이 작품집 맨 처음에 실린 <작업실>에서 대뜸 우리에게 제시되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여성 작가 신분이며, 작가 신분이라는 설정이 빚는 그 모든 사소한 파장의 작용, 부작용이 얼개의 전부에 가깝죠. "주인공이 작가임"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이야기가 안 되는 그런 구조입니다. 게다가 분량은 대단히 짧습니다.


이 <작업실>에 서 각별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는 인물은, 중년 남성인 집주인입니다. 처음에 제시되기로 그는, 좀 유별나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소심함을 드러내기는 해도, 특별히 사악한 부류로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은, 알고 보니 들이는 세입자에게마다 이상한 집착을 보이는 괴벽, 아니 아주 나쁜 범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네요. 가당치 않게 세입자의 사생활을 침해하는가 하면, 자신의 방문(이것 자체가 엄청난 무례죠)을 무시했다는 사실에서 "여성이 그 순간 바람직하지 못한 상대와 난잡한 행실을 벌이지 않았다면 자신의 방문을 무시했을 리가 없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시비를 걸고 듭니다. 급기야는 공동 화장실에 저질러진 난잡한 낙서까지 세입자의 친구(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탓으로 돌리는, 일종의 정신병인 패러노이아 증세까지 드러내죠. 주인공인 작가는 급기야 이 징그러운 중년 남성에게 "살의를 느낀다"고 까지 우리 독자에게 표방하기에 이릅니다. 읽는 우리도 그랬으니 오죽했을까요. 그런데 결말은 예측지 않은 돈강식입니다. 주인공은 그저 퇴거를 결정하고, 당일 이사를 거들러 나타난 주인집 여자는 극심한 우울이 자기 존재를 짓누르는 모습인데, 그를 보고는 주인공은 그간의 적의(適意)가 맥없이 다 빠져나가는 체험을 합니다.


보통, 신경증에 시달리며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서처럼 세입자(생각해 보니 거기서도 소설가가 주인공이었군요)를 괴롭히는 집주인이라면, 히스테리라는 이름(본디, 여성에 국한한 병이라고 오인되어 왔습니다)이 걸맞을 여성으로 설정되는 게 관습이죠.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남성이며, 제법 지능적이어서 주인공을 꽤나 괴롭힐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결말에서 드러나듯 제풀에 지쳤는지 앓아 눕고 마는 우스운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집 요한 스토킹이 무색하게 맥없이 좌절하는 모습도 우습거니와,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이 뒤바뀐 점도 골계미를 더합니다. 헌데 특이한 건, 흔히 세상의 주목을 받으려는 초보 속물 작가가 요란하게 과시하듯, 짐짓 기법을 이리 익숙히 구사하는 재주가 있음을 과시하는 의도가 전혀 안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나름 반전"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이고 편집증적 행태를 보이는 남성의 예로는 <미움, 우정,...>에서 <위안>에 나오는 생물 교사 루이스가 있었는데, 그도 결국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죠. 


<미움, 우정,...>의 마지막 단편 <곰이 산을...>을 떠올려 보십시오. 죽어가는, 한때 사랑했고,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자신을 유혹에 던져 가며(아니면, 기막힌 합리화 기제를 통해 특유의 방탕벽을 만족시키며?) 착란 상태의 아내가 한때 친하게 지냈던 늙은 남성(그 역시 환자입니다)을 요양소에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란? "아이슬란드에 대한 이런 멋진 책이 있는 줄 몰랐네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그런데 그 남자는 누구죠?" 마치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연상케 하는 반전의 연속이었죠(그런 까닭에 영화로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구요). 그 작품과 이 <작업실>을 비교해 보세요. 냉소 속에 인생의 따뜻한 이면을 조명하는, 무기교의 기교로 잔잔한 진실을 전달하는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먼로는, 심각하지 않고 가벼운, 과연 그리 부르기까지 해야 할까 싶은 귀여운 세미 불륜을 여러 차례 다룹니다. 어려운 형편을 극복하려는 방편(시대 배경이 좀 예전인가 봅니다)으로 세일즈에 나서지만, 워낙 성격이 샌님이라서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아내는 남편을 조마조마하게 지켜 보기만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어렸을 적 친구였던 "가슴 큰 아줌마"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죠. 이 작품 역시 < 미움, 우정,...>에 실린 단편 <쐐기풀>과 매우 닮은 설정과 구조를 가집니다. 두 책에서 서로 닮아 보이는 두 편의 을 짝지우는 일도, 이번 노벨상을 수상한 "가식 없는 거물"의 개성을 보다 심도 있게 감상하는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움, 우정,...>보다 이 작품의 번역과 편집, 그리고 내용 자체가 더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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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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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의 단편집 중 이 책이 좀 더 판형이 크고, 분량이 더 많으며, 그 분위기란 조금은 더 어둡고, 조금 더 차분합니다.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맨 앞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좀 긴 편이어서 중편에 가깝습니다. 그 배경도, 대체로 시골에 가까운 소읍이며, 늦은 중년에서부터, 인샏의 종막을 맞이하는 노년의 연령대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공통입니다. 대체로 주인공은 여성이며, 남성이 전면에 부각된 경우도 그를 관찰하며 캐스팅(전달)하는 목소리는 지근의 여성이라는 점도 공통입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여성도 나오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본격 글쓰기 과정을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첫 장면이, 가구를 먼 도시, 자신이 이주할 곳으로 운반하려는 여성과 역무원의 대화인 점, 그리고 세번째 단편의 제목이 <어머니의 가구>라는 점에서도, 작가 먼로가 특히 집안의 가구에 대해 특별한 장치로 사용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스타일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책과 좋은 한 벌을 이루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서도 비슷한 태도가 엿보이던데요. 그 책에서는 가구 외에도 농장을 둘러싼(주인공들이 캐나다에 흔한 소농 집안 출신이라면, 작은 농장을 성장 배경으로 삼음이 아주 자연스럽죠) 자연 풍광에, 어린 나이의 주인공, 그리고 성장하여 그 시절을 기억하는 주인공이 일일이 그 지물에 감정 이입을 하여 선, 악, 호, 오, 미, 추를 매기는 대목이 흥미롭더군요. 놀 거리가 부족한 시골 아이들의 공통 습성을 잘 잡아내어 따뜻한 풍광으로 살렸다는 의의 외에도, 인간은 결국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존재라는 점, 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역시 빼놓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서 개별사례의 일반화로 우리 앞에서 재낭독해 주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점에서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서 얼핏 느껴지는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차분한 묘한 분위기입니다. 여성은 으레 아름다움, 활기, 일상의 재미 등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법인데, 주인공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이 보입니다. 못생긴 여성에게 짖궂은 농담이나 던지는 걸 낙으로 삼는 역무원은, 어느 새 실속 있게 제 용건만 챙기고 "무례하게, 마치 자신을 자동 응답 기계 대하듯 하고는" 떠나 버린 여성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구에 손상이 생기면 안 돼요. 가축 냄새가 배어도 안 되구요." 시대 배경이 딱히 정해지진 않았으나, 우리가 속한 시간대와 그리 멀지는 않음도 확실한데, 이런 모습은 낯설기는 합니다. 역무원이 권하는 트럭 운송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영택배업 정도일까요? 조해너(한창 때에도 별 봉 일 없었을 것 같다고 역무원에게 내심으로 가혹한 평가를 당하는)는 그러나 곧이 기차 운송을 고집합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세요. 사신 가구들, 상점에서 사셨죠? 근데 그 가구들은 다 그 상점에서 만들었겠어요? 아니죠. 그 가구들도 다 기차가 운송한 거라구요. 우리는 그런 일 전문입니다. 안심하세요." 나름 재치와 설득력을 갖춘 설득이지만, "시골 사람 특유의 예의갖춤 기색도 없이" 조해너는 기계적 응대만 남기고 떠납니다.  이어 그녀는, 좋은 상품을 취급하지만 공동체 이웃들로부터 제 대접을 못 받는다는 불만을 떨칠 수 없는, 그러나 상술보다는 진정한 소통에 능한 어느 의상실 주인 밀레이디와 만납니다. 좋은 옷, 그녀의 예산에 약간 벅찬 가격의 옷을 제시받지만, 그녀의 체형에 잘 맞질 않습니다. 딱히 열등감이 사로잡혀 사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런 옷을 무리하게 걸쳤다가 웃음거리가 되기 좋겠다는 냉정한 판단을 즉시에 내립니다. 매력도 행운도 결핍한 그녀지만, 현실 인식에 있어 주관적 환상에 빈틈을 내주지도 않는 타입입니다. 20페이지 중간쯤을 보세요. "녹색 드레스의 경악을 공유하고, 갈색 드레스를 찾아 내는 사이에 뭔가 유대감이 생긴지도? 아니다, 이 여자는 방금 한 건의 마수걸이를 한 데서 오는 기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눈으르는,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도 아닙니다. 밀레이디라는 이 의상실 주인은, 그저 노련한 상식에 입각한 세일즈와 응대를 했을 뿐인데, 주위로부터 큰 환대를 받고 자라지 못한 조해너로서는, 임박한 작은 기쁨(그녀로서는 큰 기쁨)에 괜한 여파를 부를 변수를 차단하려는 오랜 습성이 발동한 것 뿐이겠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구>를 보면, 앞서 말했듯 잘 드러나지 않으나 결국 이 주인공은 작가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던 친척 아주머니의 독특한 인생 역정을 소재로 살짝 삼았는데, 이에 대해 아주머니는 크게 분노합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 온, 아주머니의 딸로부터(너무 나이들어 보여 처음에는 아주머니의 동생인 줄 알았다고 하죠) "물고기처럼 잔인하고 무정한 아이"라는 말까지 전해 듣죠. 자신의 말로야 그리 풀고 있습니다만, 우리 독자 역시 아픈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바로 대학 진학을 선택한 그녀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 평가가 진실에 가깝겠다는 생각 역시 가지게도 됩니다. 그리고, 이 아주머니의 친딸이라는 여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어려서 입양되었다는 사실, 늦게서야 찾은 생모로부터 묘한 사연을 전해 들었다는 걸로 봐서, 아마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 아주머니(서로 사촌간입니다) 사이에 생긴 불의의 사생아가 아닌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결국 그녀는, 생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셈입니다. 이 끔찍하기까지 한 진실에 어느 정도의 자각과 긍정이 주관적으로 가능했는지, 우리는 주인공의 심리를 간접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맨 마지막 작품은 사실 이 책 전체의 표제로 내세워도 무방한 비중입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여기 실린 작품들 중에 가장 극적인 구조를 지닌 단편입니다. 훌륭한 가문 출신에 빼어난 지성까지 갖추고 교수직에 오래 재임하였으나, 여제자들과의 좋지 못한 추문이 번져 결국 퇴직하게 되는 그랜트. 그리고 그의 처 피오나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남편 그랜트의 표현으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아름다움을 손상 없이 간직한 드문 케이스입니다. 피오나의 모계 쪽으로는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을 지닌 피가 흐르고 있고, 이는 아이슬랜드식 좌파라는 코드로 형상화됩니다. 금슬 좋았던 부부는, 노년에 접어들어 급속한 뇌손상을 겪어 맑은 정신을 유지 못하는 피오나 때문에 큰 시련을 맞게 되고, 사태의 변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 갑니다. 결말이 상당히 의외라서 산뜻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먼로의 다른 작품을 보면 이는 이른바 "반전, 트위스팅""으로 작가가 의도적으로 짜 낸 장치는 아닌 듯합니다. 인생에 대한 찬찬하고 정직한 관조가, 뜻하지 않게 극적 흥미까지 자아낸 결과로 보여집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아이들 전통 동요의 제목이자 가사의 한 소절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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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게임화 전략과 만나다 - |로열티 3.0 = 동기 + 빅데이터 + 게임화 전략|
라자트 파하리아 지음, 조미라 옮김, 김택수 감수 / 처음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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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은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데, 다루는 내용이 묵직합니다.


결국 비즈니스의 사활은, 변덕스러운 고객을 어떻게 기업의 곁에 잡아 둘 수 있는가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충성"할 수 있게 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경쟁 속에서 도태하는 게 당연합니다. 문제는 "로열티"인데, 이를 어떤 방법으로, 또 양질의 형태로 붙들어 두느냐는 게 과제입니다.


라자트 파하리아는, 시쳇말로 "게임화"라는 말이 뜨기도 전에, 이미 게임화(gamification)의 방법을 업계 최초로 개념화하고, 이를 사업의 장에 띄워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그가 설립한 "번치볼"이라는 회사는 일 찍부터 많은 미디어로부터 혁신 기업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고, 현재도 유수의 대기업(NBC, IBM, 아이스하키클럽 LA 킹스 등)들로부터 특정 섹터의 "게임화" 수주를 받아 자사의 첨단 모델을 곳곳에 보급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번치볼이 추구하는 "모든 사업의 게임화"라는 야심찬 전략은 현재진행형으로 성장 중이며, 아직 엔드 유저들은 실감하지 못하나 머지 않아 비즈니스, 일상 생활의 전영역을 (우리가 의식하건 그렇지 못하건) 지배하는 원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기초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되기 전에는, 타율적인 동기(책에서는 외적 동기라고 표현합니다)에 의해서, 아니면, 얄팍한 인센티브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종래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조직행동론은 다 이런 타율적 혹은 외적인 동기의 관 점에서 목표를 추구하고, 또 마케팅 이론을 정립해 왔습니다. 아직도 일부 노령층 관리자들은 이런 지난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나, 물리적 생존은 더 이상 위협받지 않습니다. 대량 인명 살상이 우려되는 전쟁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벌어지지 않고 있고(지난 시절에는 문명 세계조차 상시적인 전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죠), 기근의 문제는 질소 비료 개발과 녹색 혁명으로 어느 정도 해결을 본 상태죠. 사람들은 더 이상 집단의 명예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며 이른바 "삶의 질"을 지향합니다. 양적인 지표는 더 이상 경쟁에서의 승리와 성취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기업 내적으로는 직원이, 기업 외적으로는 충성스러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양질의 프로세스를 통해서만이, 기업은 진정한 시장의 승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보장하는 전략이, 저자가 말하는 게임화이며, 이를 위한 수단이 빅데이터이고, 그 최종의 로엹티 프로그램이 "로열티 3.0"이라는 거죠.


인간의 자발성이야말로 일찍이 체험하지 못했던 양질의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무한대의 리소스입니다. 이미 여러 논자가 지적한 대로, 아무 소득도 명예도 없는 무보수의 노동을, 인간은 기꺼이 labor of love에 의해 수행하는 게 그 본능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성과는,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동원된 수량화의 산물이 넘보지 못할 양질의 결정체인 게 또 보통이라는 겁니다.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어떻게 하면 보다 집중적이고 고급의 노고가 깃든 생산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느냐로 많은 경영진의 고민이 기울여지고 있는 작금, 이 게임화야말로 자발적 지성의 노고를 힘들이지 않고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대안이 아닐 수 없죠.


내적 동기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자발성(autonomy)㉡숙달(mastery)사회적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이 그것이며, 자기결정성 이론(SDT)에서 디치, 라이언 두 교수가 확립한 이론이죠. 여기에 저자는, ㉢목적(purpose)㉣ 도달(progress) 두 가지를 추가하여, 소비자와 직원의 내적 기제를 보다 세분화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게임화 모델을 개발함에 있어 최우선 전제로 고려해야 할 5대 내적 동기입니다. (저자가 고려하는 동기가, 단지 소비자의 동기가 아닌, 기업 직원의 동기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의 마음까지 양질의 충성을 확보하느냐의 여부를 주목합니다)


이 러한 내적 동기를 충분히 주시한 후에는, 이를 빅데이터와 결합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빅데이터는 이 책뿐 아니라 여러 다른 책, 그리고 TV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었습니다만, p64에 나와 있는 정의를 옮겨 다시 한번 고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단일 기관이 통제하지 않으며ⓒ기존의 정형화한 통제 프로그램에 의해 관리되지 않으며ⓓ그 크기가 매우 큰 데 이터를 말합니다. 이 빅데이터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이 책의 주제인 "게임화"와 직접 관련은 없으면서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어 부대 지식의 축적에 도움을 줍니다. 그 중 제가 눈여겨 본 건 크라우드 소싱(아웃소싱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의 로그에 의해 자원을 확보하기), 휴리스틱이 아닌 알고리즘(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데요, 알고리즘은 기계적인 프로세스, 휴리스틱은 인간의 감각, 직관에 의한 절차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에 의한 신규 직원 채용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가 이뤄집니다. 다만 저자는, 이 제록스의 예가 전화상담원이라는 다소 기계적인 업무 종사자였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꼼꼼한 당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숙달

목적

진전

사회적

상호작용

자발성

빠른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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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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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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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ba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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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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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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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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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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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가로행은 게임화기법, 세로열은 동기항목입니다. " 탑승"이 뭘까 하실 분들이 있을텐데, 예전부터 쓰이던 기법입니다. "윈도 마법사" 같은 걸 생각하시면 되고, 최근 어도비 포토샵의 방대한 기능을 보다 쉽게 사용하는 일을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탑승(onboarding)" 은 특정 기술에 익숙해지는 동기 외에 어떤 다른 팩터도 작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한들, 그 성과를 자랑할 대상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아주 소박한 전제조건(그러나 때로는 가장 강력할 수 있는 동기의 구체화)을 이르는 말입니다.


책 의 나머지 두 장은 이의 실전화를 위한 다양한 사례와 추가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붉은 여왕"의 법칙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세상이 워낙 치열한 경쟁 속에 탈바꿈하다 보니 질주를 해도 결국 그 자리지만, 우리는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저자는 "게임, 디지털 네이티브"를 이야기합니다. 날 때부터 이전 세대와는 다른 환경을 접하고, 디지털 부호화의 코드와 호흡이 자연스러운 세대를 소비자와 직원 pool로 대면해야 하는 기업은, 냉큼 이 현실을 status quo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편이 명하다는 말입니다. 이 native라는 단어는 저자에게 좀 다른 의미로 와 닿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저 맨 위 사진에서 보아 알 수 있듯, 그는 인도계 이민 2세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미국어 네이티브이고, 받은 교양과 지식은 어느 코카서스 인종에 뒤질 것 없음을 알리려는 듯 곳곳에서 인용하는 현란한 비유, 풍부한 지식의 동원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번역도 참 갈끔하게 이뤄졌는데요. 기술경영 서적이 이만한 가독력으로 읽히는 체험도 흔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자의 이름이 Rajat Paharia인데, 책에서는 계속 Lajat로 나와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사진에서 보듯 "쇼"라는 글자가 매번 깨져서 인쇄된 것이 눈에 거슬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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