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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시대 십대는 소통한다 - 네트워크화 된 세상에서 그들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다나 보이드 지음, 지하늘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소셜social"이라는 단어는 구미에서 확고한 고유 용도가 있던 말입니다. 근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교(社交)"라는 번역어에 대응하는 게 이 단어이니 그 오래고 깊은 연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최근에 들어 인터넷 혁명과 맞물려, SNS라는 신개념 가상 환경의 탄생과 함께,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중년층과 노인들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들을 담거나 스스로 찍은 사진을 웹에 올리고, 카페(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그들만의 소통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떤 분들은 학생이나 젊은이 이상으로 큰 열성을 가지고 이에 임하는데, 때로는 정도가 지나쳐 주위의 비웃음을 사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중노년층의 몰입도나 참여도가 우리처럼 높지는 않은가 봅니다. 그래서, 대개 성인들은 학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들(10대 중심)의 지나친 SNS 탐닉, 참여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는 게 보통인 듯합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입장을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합니다. 성인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 SNS에서 거리를 두고 있으며, 자신들보다 SNS에 훨씬 밀착하여 시간을 보내고 "존재를 투자"하는 10대를 이해 못 합니다. 이런 자녀를 둔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얘야,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니, 그만 두렴." 같은 피상적인 조언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어른과 아이들의 갈등은 이제 SNS를 두고서 제 2전선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저자 다나 보이드는 MS나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고, 요새 아이들이 도대체 왜 SNS를 둘러싸고 기성 세대가 접근하기 힘든 성을 쌓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며 설명해 줍니다.
저자는 "SNS로 소통하는 10대"라는 주제를 두고 모두 8가지 카테고리를 통해 논의를 펼쳐 나갑니다. 각 장은 "기성세대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10대"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SNS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전개됩니다. 한마디로, SNS와 10대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셈이죠.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SNS는 10대의 전유물이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SNS를 가장 효율적으로, 남김 없이, 그리고 "전위적으로" 사용하는 계층은 10대입니다. 하나를 알면 다른 하나를 덩달아 알 수 있는 구조적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 정체성: 사실 이 점은 SNS의 주인공인 10대가 가장 자신없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성숙한 개인으로서 10대는, (당연히) 다른 세대에 비해 가장 정체성 파악과 형성이 취약한 세대이기 때문이죠. 만약 SNS를 정체성 형성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10대는 그 기능적 수월성(秀越性)에 비해 내용적 성숙성이 비대칭적으로 떨어지는 유저들입니다. 이 챕터는 성인이 읽기에 가장 편안하고 재미있으며, 동시에 책임감을 더해 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아이들과 대립하고 싸우는 입장이 아니라, 이 미숙하고 어린 인격을 보호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가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10대는 인격적 미숙함 때문에 미로에 빠져 있지만, 기성 세대는 네트웍 환경의 생소함 때문에 갈 길을 못 찾는다는 저자의 진단이 볼 만합니다.
2. 3. 사생활, 중독: 개인적으로 저는 SNS를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프라이버시 이슈의 취약함입니다. 나를 적당히 가리고 보호할 줄 아는 점에서, 아이와 어른이 차이나는 것이라고 교육 과정에서 배운 세대로서, 사진이건 인적 관계이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SNS에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은 데이터, 동시에 자신의 자아 일부와 열정을 "업로드"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사실, 어른이라고 해도 급격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개인적 자아를 합당하게 발전시키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분별없는 아이들마냥 컴퓨터 앞에 "홀릭" 되어 붙어 사는 모습을 보면 한심해서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야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지만, 어른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왜 자기 정보를 불특정 다수 앞에 올리고 평가를 안 받느냐며 채근하는 일까지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죠. 정신 연령이 10대에 머물러 있는 소치입니다.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들은 대체 사생활 개념이 없는거냐? 뭐하러 소중한 자아를 그처럼 노출시키고 사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전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어른의 태도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자는, 일부 철없는 기성세대가 아닌, 앞으로 변화하는 세상의 룰을 익히고 때로는 만들어나갈 10대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새로이 등장한 사회화의 한 패턴"이라고 정리합니다. 마치 농경사회에서, 대도시로 진출하려는 자녀를 두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라며 만류하는 부모와도 유사하다는 거죠. 저자는 자신의 세대가 합의를 이미 이룬 듯 보이는 "사생활"의 개념 역시 지극히 유동적이고 가변적임을 지적합니다.
3. 4. 5. 위험, 왕따. 불평등: 이 역시 고리타분한 어른들이, "SNS 잘못쓰면 이렇게 돼!" 하며 아이들 겁줄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이슈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SNS의 본질과는 무관한 사회 문제이며, 저자는 이를 자세한 논의를 통해 날카롭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3장 위험에서는 소위 아동,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의 위험에 대해 자세히 말합니다. 특히 저자는, 미국 학부형들 사이에 10대 성매매, 혹은 그루밍(성매매 유도)의 온상처럼 여겨지는 마이스페이스를 소재로 여러 사례를 들어 줍니다(저는 이 외에 크레이그리스트도 그런 선입견 가득한 매체의 대표로 알고 있었습니다. 크레이그리스트는 지금은 이미 한물갔다고 여겨지는 메신저이므로, 주로 SNS를 논의대상으로 하는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어쨌든 아이들은 SNS를 통해, 사회의 위험과 필요악, 부수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 따위를 교묘히 구별하며 정글의 법칙을 익혀 나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막는 게 능가 아니라는 거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냐는 말과 통합니다.
SNS 왕따는 요즘 우리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통한 신종 왕따 수법 때문에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집단따돌림 문제는 사실 일본이나 우리 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 더 심합니다. 우리는 그나마 신체적 조건, 성격 따위가 주 소재일 뿐이지만, 서양은 이들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 등 출신 계급 문제 모순까지 더해진, 솔직히 답이 없는 형편이죠. 저자는 이 문제를 다루며 "SNS로 드러나는 건 기존 모순의 심화나 변형일 뿐, SNS가 전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합니다. 이제 기업 채용이나 대학 입학시 지원자의 SNS적 배경을 심사하는 일도 흔히 봅니다(국내에서도 물론). 외국처럼 다인종 사회가 기본 여건인 곳에서는, 바로 이때 사회적 차별의 문제가 불편하게도 전면에 부상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가까운 장래에 일상처럼 겪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이슈는 흥미롭기도 합니다.
자, 순서가 좀 바뀌긴 했지만, 저자는 복잡한 현상을 정리하는 도구로 이미 서문에서 4가지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①지속성②가시성③퍼짐성④검색성, 이 네 가지는 SNS의 핵심적 특징이고, 앞으로 SNS가 바꿔나갈 사회의 미래적 속성이며, 동시에 미래의 주역이 될 현 10대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본문에서 여러 번 인용하며, 설사 선의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무작정 권위를 내세워 규제 일변으로 가는 게 절대 옳은 방법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It's Complicated>입니다. 옮기면 "그거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정도겠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히 보고 올바르지 못한 처방을 들이대면, 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 해결의 기미가 안 보입니다. 마치, 지난 세기말 인간 복제를 두고 그 비윤리성 이슈가 제기되었을 때, "어찌 되었든 과학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과학자들이 반박했던 일과 유사합니다.
SNS는 좋든 싫든 인류의 미래 그 한 중추이며, 일부 문제가 대두된다고 폐지하거나 단속할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특히 투명성과도 통할 수 있는 ②가시성 항목을 보고, 오히려 SNS를 통해 기존에 곪아 있던 사회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나 그 치유 교정의 가능성마저 새로이 열리지 않을지가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거듭되지만, SNS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올바른 용도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과 사회가 문제이며, 오히려 아이들은 기성 세대가 미처 알지 못하던 건전한 용도를 개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