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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주고 슈퍼팬에게 팔아라 - 열성팬을 만드는 프리 마케팅 전략
니콜라스 로벨 지음, 권오열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물건을 그냥 주라는 게 무슨 말일까요? 경제활동은 거저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설사 내가 길에서 주은 물건이라고 해도,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그냥 주라면 마음이 내키지 않겠습니다. 애써 내 노력을 투입해서 만든 물건을 일단 공짜로 주고 시작하라? 무리입니다. 잉여의 자원과 노동만 소비한 산물이라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반대합니다.
저는 이 저자 로벨의 주장을, 다른 매체에서 전에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가 하는 말 중에 특색 있는 논거 몇만 추리고, 나머지는 귓등으로 흘렸던 기억입니다. 이번에 그의 주장이 이처럼 강력하게 보강되고, 불륨도 늘려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을 보고, "대체 이렇게 대담한 주장을 하는 배경이 뭘까? 내가 채 깨닫지 못한 무엇이 확실히 더 있었단 말인가?"하는 의문을 품고 책을 사서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가격이란 합리성을 본질로 합니다. 독과점 시장이 아니라 (우리 자본주의의 영원한 샹그릴라인) 완전경쟁시장이라면, 이에서 형성된 가격은 누구에게도 치우친 이익을 주지 않는 공평한 배분 기제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는데, 이에는 "신의 섭리" 같은 걸 상정하고 표현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가격은 누구보다 공정한 심판이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무익하고 반사회적입니다. 아니, 이런 전지전능한 신, "가격"의 존재를, 처음부터 무시하고, 시장에 공짜로 나눠 주라니, 이는 부질없는 자살행위인데다, 신성 모독까지 겸한 패착이 아닐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의 출발점은 이렇습니다. "소비자, 대중이 합리적이지 않다. 최소한, 합리적인 인간이 소비자 대중의 다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판매자, 공급자, 기억 역시, 그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 로벨은 예의 그 충격적인 해법을 또다시 내어 놓습니다. "다양한 가격의 상품을 제시하라. 일부는 공짜로 줘 버려라."
경제학 이론의 기본은,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 공급자는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프라이스 세팅의 자유가 있다"는 거죠. 이를 위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의 제품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제품이 만약 차별화되지 않았다면,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의 차별화라도 필요합니다. 어느 쪽이건, 일단 생산자는 그런 바람직한 결과물 형성에 정직하고 가치 있는 노력과 자원을 투입했기 때문에, 어떤 차원에서건 최소한의 정당성은 확보됩니다.
다시 경제학 교과서로 돌아가겠습니다. 시장의 신은 가격입니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량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의 어느 명언처럼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한 법이죠. 수요곡선은 어느 국면에서나 우하향하지만, 국면에 따라 더 가파르게 우하향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를 치고 들어가라는 게 로벨의 주장입니다.
어느 구석이 그처럼이나 "불공평하게" 가파른 우하향일까요? 1원에서 0원으로 넘어가는 문턱, threshold입니다. 이 경계선은, 이 공간과 저 공간의 질(質)을 가르는 파티션입니다. 1원까지만 해도 무덤덤하던 이들이, 0원이란 표식을 보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듭니다. 이 상품은 이제 모색, "간보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손에 잡아 채어야 하는 쟁취의 타깃입니다. 왜? 공짜니까요. 내가 아무런 예산 제약 걱정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고, 그를 획득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 지 머리를 굴릴 필요와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공짜는 이처럼, 비이성적인 열광의 대상입니다.
비이성적인 열광은 이 공짜 진영의 반대편에 또 하나가 그 방향만 달리하여 자리합니다. 바로 "팬'입니다. 이들은 그저 브랜드와 제품에 충성도가 강한 이들이 아닙니다. 그 브랜드를 지지하는 "슈퍼팬"입니다. 이들은 해당 제품을 향해 자신의 그 무엇이라도 던질 용의가 있습니다. 로벨의 주장은, 비이성이라는 전략적 공백이 자리하는 그 지점을 향해, 기업들과 생산자는 전력 투구를 해야 한다는 요지입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머리를 짜내고 짜내어, 창조적 혁신을 넘어 파괴적 혁신까지 그 아이템과 ㄹ리스트가 소진되다시피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 이론에 사실 다 나온 진리, 그의 배리에이션을 전제로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장이 분리되어 있으면, 가격은 얼마든지 차별적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향해 팬이냐 아니냐로 애티튜드가 나뉘는 것은, 단기간 안에 쉬이 변할 성질이 아니기도 합니다. 슈퍼팬 시장은 가격을 높이 책정하고, 레드 오션의 무차별한 지옥에서는 그대로 던져 주는 편이, 장기적 전략에서 유리할 수 있다,. 점유율은 그 자체로 강력한 기업 자산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는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이에는, 종전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강력한 외부 환경이 또 하나 존재합니다. 바로 3D 프린터의 등장입니다. 우리는 만인이 셀러가 되는 시대를 넘어, 이제 만인이 메이커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런 경쟁의 풍토 속에, 기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쉐어는 거의 0에 수렴합니다. 이 판국에, 점유율이 단 0.01%라도 상승한다면, 그건 거의 기적 같은 그린 라이트가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다만 경제 외적인 이슈, 도의적인 갈등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저 낮은 가격, 높은 효용만을 위해 들개처럼 달려가는 대중에게는 공짜라는 선물을 안겨 주고, 나에게 가장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슈퍼팬에게 대가를 챙기는 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 아니냐는 지극히 인간적인 회오가 한 줌 밀려오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책에 실린 레이디가가의 전략이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점유율을 높이고 돌고 돌아 내 주머니에 들어 온 수익은, 결국 슈퍼팬의 충성도에 대한 대가로, 다른 데서 결코 구할 수 없는 혜택을 그 슈퍼팬들에게 대폭으로 안겨 준다는 것입니다. 슈퍼팬이라고 바보가 아닌데, "호갱 노릇"을 하려 들겠습니까? 결국 로벤의 세계에서, 생산자와 대중, 슈퍼팬은 모두가 win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종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복하는 듯하지만, 알고 보니 우리 상식에서 벗어나는 바 하나도 없었다는 묘한 역설이 이뤄지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