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당신을 최고로 만드는가
스티브 올셔 지음, 이미숙.조병학 옮김 / 인사이트앤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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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많은 놈이 밥 굶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참 역설적인 이치랄까요. 재능이 많으면 남들보다 몇 배는 넉넉한 삶을 누려야 마땅한데, 오히려 남들보다 더 평탄치 못한 결과를 얻는다... 이것은 물론 주된 원인이, "사회성 부족"에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자아실현이건 경제 활동이건 다른 동료들과 어울려 이뤄 나가는 길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게 보통이죠. 재능보다 더 중요한 건(중요하다기보다는 더 기본적인 덕목) 사회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진단한 결과입니다. 타인의 팩터를 떠나서 그 사람 개인의 문제를 본다면, 이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를 등한히한 탓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생이라고 해도,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동일합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이것저것 건드리며 정력을 분산하면, "한 우물만 판" 사람보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도 효율적인 자기 관리가 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을 살 수도 있는데, 하물며 별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어중간한 위치의 우리들이라면 어떨까요? 효과적으로 가용 자원을 써 먹지 못하면, "중간도 가기 힘든" 위태위태한 처지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스티브 올셔라는 사람은, "보잘것없는 재주만을 타고난 사람도, 자기만의 특별한 끼를 계발하고 그것에다 가진 모든 정력과 주의를 쏟아 부으면, 당장이라도 최고가 못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어찌보면 모든 자기계발서가 판에 박힌 모습으로 다루는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책을 읽을 때 항상 먼저 보는 건, 책의 저자가 무슨 경력을 가진 인물이냐 하는 점입니다. 대체로 저는, 학력 좋고 지식 많은 이들보다는,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제 사업을 일구면서 크게 성과를 올린 이들에 더 신뢰가 갑니다. 또 하나는, 같은 말을 해도 얼마나 읽는 이의 동기를 자극할 수 있는, 신명나는 어조로 말하고 있느냐로 기준을 삼습니다. 말이 흔하고 정보가 널려 있는 세상에, 남의 말을 비슷하게 카피해서 그럴싸하게 꾸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많이 배운 사람(저자)일수록 이런 일은 더 쉬운 법이죠. 하지만 자기가 몸소 겪은 바를 사무치게 증언하는 사람,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버젓이 책까지 쓸 만큼 성공한 사람의 어투는, 직접 들으면 더할 것이고 이렇게 책으로 읽으면서도 감동이 몰려 옵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렇더군요. 체계를 세워서 하는 이론은
학습에는 네 단계가 있다
1) 무의식적 무능력
2) 의식적 무능력
3) 의식적 능력
4) 무의식적 능력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처음에는 잘해야겠다는 의식도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없으니 무능하고, 그 다음에는 "아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를 아는 수준으로 올라오고(여전히 무능), 그 다음에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낑낑거리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해 내기는 하는 단계, 최종적으로는 힘 하나도 안 들이고 몸에 밴 요령만으로 척척 임무를 해 내는 단계를 각각 가리킵니다.

 

그럼 이런 학습 단계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거칠 수 있는가? 저자는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인생에 있어 내가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 철저한 무기력 상태에 빠졌던 건 언제인가? 내가 가장 환희에 차서 무엇인가를 성취해 낸 적은 언제였던가? 등으로 내적 의지, 감정의 구조를 재편성하라는 것입니다. (자세한 건 책 고유의 주장이므로 여기에 적지 않겠습니다)

 

저자는 또한 사분원을 그려서, 내가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범위에서 접촉하고 의지하는 이들을 네 명 배치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특성과 성향을 파악하라고 합니다.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맥(저자는 그런 말을 쓰지 않지만 우리식 표현으로는 인맥이겠죠)을 다 쳐 내라고 고언합니다. 사실 저는 전에 읽은 어떤 자계서와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똑같아서 좀 놀랐습니다. 자계서의 내용은 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읽으면서도 어느 책이 시간 순서로 다른 책의 영향을 받았겠다 싶은 건 읽다 보면 눈에 훤히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두 책의 그 대목들은, 저자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내용이라, 뭘 표절할 가능성이 없었죠. 아무튼 도움 안 되는 인맥을 솎아 내라는 주장은, 마음이 좀 아프긴 해도 맞는 말이다 싶어서 가슴에 좀 새겨 놓아야 할까 봅니다. 분명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저자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을 원용하며, 다만 자신은 여기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겠다고 합니다. 뭐냐면, 매슬로는 하위 욕구가 만족된 후에야 상위 욕구가 만족된다고 했으나, 자신은 그에 대해 반대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5욕구는 계층이 없으며, 동시적으로 고르게 만족되는 게 최대 수준의 행복을 가져 온다는 겁니다. 물론 매슬로의 이론을 그렇게만 이해하는 건 학문적 태도와는 거리가 멉니다만, 이 책은 자계서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죠. 중요한 건 누가, 내 발전하고자 하는 기분이랄까 동기를 띄워 주면, 나는 그 흐름에 힘 안 들이고 올라타면 된다는 겁니다. 내가 내 기분 스스로 업 시키는 것도 돈 들고 수고스럽거든요. 그런데 누가 그걸 공짜로(책값만 빼고) 해 주겠다? 그럼 받아 들이면 됩니다. 그게 자계서 읽는 이유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신나고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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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페에서 커피가 운다면 새봄 그림책 1
조철희 지음, 이민영 그림 / 새봄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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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피눈물, 그것도 불공정 조건으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피눈물이 섞여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에 여유롭게 앉아 그날의 신문과 서류철을 뒤적이며 한 잔의 커피를 즐기는 이(예를 들면 지금의 저 같은)들이, 전혀 받아 들이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본디 커피란 플랜테이션 농업의 산물입니다. 커피는 그저 가나 같은 열대 지방에서 우연히 몇 군데에 집중 서식하던 식물의 열매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그 땅의 거주자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존재일 뿐이었겠죠. 그러나 백인 침략자가 이를 발견하고, 우월한 무력으로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자국의 시민들에게 고가의 기호 식품으로 팔아 먹을 생각을 하고부터는 모든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차"를 얻기 위해 "아편"을 보급할 반인도적인 책략을 부렸고,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커피"를 얻기 위해 현지인의 생활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대규모 단작 체제를 갖추어 노예 노동으로 이를 수확, 수탈했습니다. 말 그대로 "악마의 음료"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현대에 들어 이런 원주민 착취 구조나 행태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자본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변한 게 없습니다. 이윤이 가능하면 많이 남는 쪽으로 생산 구조를 개편하고, 법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편법적인 자원 운용을 도모합니다. 이것이 가장 악질적인 지경까지 간 것이, 아동들의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노동력을 이용하여, 과거의 플랜테이션 착취 구조를 겉모습만 살짝 바꿔 재현하는 못된 풍조입니다.

 

사실 커피는 성인의 기호 식품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리 친숙한 음료가 아니며,  성인이 되어서도 분위기 때문에 겨우 버릇을 들이기 시작할까, 평생 입에 안 대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대상입니다. 담배처럼 중독성이 강하지도 않고요. 그러나 아이들이라고 해도, 쇠고기 버거 같은 건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얼마든지 즐겨 찾는 아이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값싼 쇠고기, 값싼 커피를, 대량으로 팔아 이윤을 얻고자 하는 구조 속에, 저 어두운 세상의 반대편에서는 자기 또래의 어린 아이가 하루하루 힘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이건 아이들도, 매우 마음이 아프겠지만 어려서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인권과 인격과 영혼을 송두리째 희생당한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버젓이 종래의 삶의 패턴을 이어나간다면, 그 사람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든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밝고 아름답고 풍요롭고 따뜻한 것만 보여 줄 게 아니라, 생의 어두운 이면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반드시 이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그에 담긴 타인의 눈물을 감지하고, 자신도 따라 뜨거운 눈물을 떨굴 줄 알고, 다음의 1센트를 보다 값진 용도에 쓸 줄 아는 어린이가, 커서도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될 것 같습니다. "공정 무역"이나 "아름다운 가게"에 관한 책도 함께 읽히면 바람직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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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공격헬기 AH-64 Apache 밀리터리 하이테크 3
쓰보타 아쓰시 지음, 권재상 옮김 / 북스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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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은 맹수에 비해 연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고(방어에 취약), 달리는 속도가 느리며(효과적인 도주 능력이 떨어짐), 비록 같은 종(種)인 사람을 때때로 죽일 수도 있다고는 하나 맨손으로 가하는 타격의 힘이 강하지 못합니다(보잘것없는 공격력). 그런데 이 모든 선천적인 약점을, 가공할 만한 병기(兵機)를 만들어 보완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병기 또한, 다른 종(種)의 동물에 넘어가거나, 혼자 놓였을 경우 아무 쓸모 없는 고철덩어리 이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의 손에 들어 왔을 경우에만 위력을 발휘하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서도, 대단히 특이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집념이 비행기라는 도구를 탄생시켰지만, 이 이기(利器)는 초기에 여객 운송의 수단보다 전쟁의 도구로 더 활발히 이용되었습니다. 2 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투기는 정말 짧은 시간 안에, 가공할 성능을 지닌, 전쟁의 대세를 좌우하는 결정적 자원으로 활용되었죠. 일제가 강점기 말 한민족을 수탈하면서 재력가들에게는 "비행기 헌납"을 강요했고, 징용으로 잡아 간 인력은 활주로 공사장에  투입하곤 했던 사실을 보아도 간 접적으로 이 병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이 독일에게 정복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소위 "배틀 오브 브리튼"에서 괴링의 나치 공군을 최종적으로 격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공권을 빼앗긴 그 어느 나라의 군대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종래의 전투기(지금도 해리어 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마찬가지지만)가 안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활주로가 없으면 이착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육상이나 해상이 아닌 소규모 공중 운송의 경우 굳이 번거로운 이착륙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고 간이한 과정만을 거칠 필요가 있는데, 이 사항을 기존의 비행기들은 만족시킬 수 없었지요. 과연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고, 로터(rotor)의 추력(推力)을 통해 하늘을 나는 원리의, 새로운, 어쩌면 더 혁신적인, 발명품이 출현하여, 이 니즈를 빨리도 만족시키고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헬리콥터입니다.


그렇다곤 하나 오랜 시간 동안 헬기는 그저 헬기였을 뿐입니다. 기름을 덜 먹는다고는 하나 속도도 느리고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지상으로부터의 공격에 더 큰 취약점을 드러내는 게 보통이었죠. 헬기는 헬기로서 만족해야 할 뿐, 너무 큰 기대는 곤란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탄생한 이  헬기의 혁신을 바라는 군사 당국자나 기술진의 열망 역시 정체되어 있지만은 않았지요. 그저 탑승자가 수동으로 쏘아 대는 기총 소사 같은 것 말고도, 기체와 일체가 된 공격력의 증강, 혹은 360도 회전 따위를 실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강의 공격 헬기"라고 다소 심심한 제목이 붙어 있을 뿐이지만, 이 AH-64는 그간 헬기에 대해 기술진이 품어 오던 모든 희망사항, 거의 꿈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았던 요구를 대부분 충족시켜 주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이자 꿈의 병기라고 할 만합니다. AH-64에 대해, 책에서 이를 두고 붙인 이름은 "하늘을 나는 탱크"입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AH-64가 행하는 주 기능이 공격 용도임을 잘 드러냅니다. 처칠은 대전 당시에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더도 덜도 아닌 탱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탱크가 하늘을 날아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탱크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를 쏘아대기만 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적의 공격에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이 있어야 합니다. 이 AH-64를 두고 "하늘을 나는 탱크"라고 부름은, 지상군으로부터의 반격(때로는 공중전)에 그만큼 강한 방어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몸체를 튼튼히 만들려면, 당연히 그 중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거워진 무게를 버텨 내려면, 일단은 엔진의 힘이 강해야 하며, 설계 구조면에서의 극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간 기술적 장벽이 거대하게도 자리했던 영역으로 평가 받았지만, AH-64는 그 모든 애로를 효과적으로 극복한, 거의 기적이라 할 만한 개선과 혁신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중량 증가는 단지 튼튼한 기체 구축 때문에 초래된 것은 아닙니다. AH-64는 마치 전폭기처럼, 기체와 폭격 장치가 일체화된, 종래의 범용(유틸리티)이 아닌 공격 전용 무기입니다. 공격에 특화된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종래의 헐렁한 녀석들과는 달리 몸이 엄청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엔진의 우수성은 이 점에서도 특별히 요구되는 사양이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병기는 미국에서 개발되었고, 군수 산업의 구조가 언제나 그렇지만 투자의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자국 국방부에 납품하는 걸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군사 무기를 애국심에만 의존해서 개발, 양산을 기대한다면, 제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어느새 군비 경쟁에서 타의 추월을 허용하고 말 것입니다. 미국 시스템의 무서운 점은, 엄청난 이윤을 노리고 민간에서 첨단 무기의 제작을 주도하는 구조라는 사실이죠. 다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는 것이, 이윤을 노리고 무기를 여기 저기 팔다 보니, 미국이 전혀 선호하지 않는 국가 혹은 세력의 수중에, 가공할 화력의 무기가 넘어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테러리스트들이 어디서 그처럼 성능 좋은 무기를 얻어 펑펑 써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구조의 취약한 점에 대해 실감이 납니다. AH-64야 물론 총기류 따위와 달리 함부로 거래가 가능하지도 않고 일단 어렵게 손에 넣은 축이 함부로 남에게 넘기지도 않을 것이며, 리버스 엔지니어링 따위가 결코, 결코, 용의하지도 않겠습니다만. 여튼 이런 헬기가 굳이 개발될 필요를 부를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참 미련한 악순환의 한 고리가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듭니다.


다만 엔진의 우수성 기여도에 대해서는, 이를 수입한 각국마다 입장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특히 네덜란드)과 일본의 경우, MD의 엔 진을 쓰지 않고, 자국의 고유 부품으로 대체한다고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재미있게도, 대신 장착한 그 엔진 역시 독자 개발이 아니라 또다른 당사자에 라이센스료를 주는 방식입니다. 아무튼 이는 아마도 수입국 측에서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엔진 파트에만은 fee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혹은 줄이기 위해) 지국이 보유한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해서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보았습니다(책에 분명한 경위 설명이 없으므로). 그러고도 원활한 운용이 가능한 건, 이 AH-64의 성능 혁신이 엔진 개선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확증이 될 수 있습니다. 군사 무기를 각국의 실정에 맞게 "자기 버전"으로 수입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구조 면에서도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종석이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동차건 비행기건 배건, 조종사는 내부의 가장 앞 좌석에 앉아야 한다는 선입견, 통념을 깨뜨린, 대표적인 역발상의 예라고 하겠습니다. 시야가 보다 넓게 확보되는 등 이런 개선이 부른 구체적인 장점들은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AH-64의 예는 아니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른 헬기의 설명 파트에서, 적의 시야에 최대한 느리게 나타나기 위해(눈에 띄지 않기 위해) 탠덤식 구조가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비단 군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경영 혁신 전반에 걸쳐 여러 시사점을 던져 주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하겠습니다.


AH- 64에 달려 있는 성능 좋은 레이더는, 지상의 적군 배치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탑승한 조종사와 전투 요원에게 알려 줄 뿐 아니라, 전술 전반을 결정할 멀리 떨어진 지휘부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정보(의 일부)를 전달해 줍니다. 정찰기의 임무와 겹치지도 않습니다. 헬기는 군 편제상 육군 소속이므로, 이러한 기능은 기존의 커버 범위와 겹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백 영역을 메꾸어 주는 역할입니다.


오래 전 영화(예컨대 로이 사이더 주연의 <블루 썬더>)에 보면, 360 도 회전을 묘사하면서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기적"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이런 가공할 무기가 더 이상 세계의 평화를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철로에 세워 두고 파괴해 버리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360도 회전은 그만큼 종래 상상이 어려웠던 고난도 기술의 구현입니다. 그 외, 이 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특장점 중 하나는 호버링 상태에서 벌일 수 있는 여러 빼어난 성능들입니다. 호버링은 이 책에서 "공중정지"로 번역되어 있지만, 공중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뚜렷한 전진 후진 없이 일대를 배회하는 걸 말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나오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하는 그 "운행"입니다.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재미있는(이라기보다 유익한) 정보도 많습니다. 일본 자위대는 이 AH-64D를 일반 대중에 정기적으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사항이라 국민의 감시와 관심에 노출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원칙의 결과라고 하네요. 우리야 이런 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지만(아직은요), 만약 보여 달라고 하는 일반인이 있을 경우 군 당국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그들의 실정에 대해 확실히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책에는 이 무기를 수입한 나라 중 이스라엘이,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군사기밀이므로 당연합니다만, 이 책의 저술 시점이 아니라 지금에서는, AH-64D에 관심이 없던 대중도, CNN 기자가 매일 같이 읊어 대는 뉴스 때문에라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군의 AH-64는. 지금 가자 지구를 쓸어 대는 일에 열심히 그 성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테러리스트의 경우 레이더에 감지되는 성격이 아니므로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이 AH-64의 성능이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적고 있는데, 하마스는 주로 대공포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패턴이므로(하마스를 두고 테러리스트라 매도하는 건 아닙니다) 이 AH-64는 나름 톡톡히 제 할 일(...)을 하는 중인가 봅니다. 다시 1차 대전 당시의 여러 전황을 살펴 보게 되기도 하고, 영화 <블루 썬더>의 엔딩을 곱씹게도 하는, 마음이 착잡한 뉴스, 요즘 얼마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이-팔 간의 공방은 50일을 넘김으로써 최근 기준으로 최장 기록을 세우는 중이라는군요. 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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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경영 첫걸음, 한 장 보고서
정보근 지음 / 시간여행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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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엄청난 과업을 이룰 수 있는 단위가 바로 회사입니다. 어느 회사이든 능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여, 자기 조직 안에서 최대한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려 애씁니다. 사원 역시, 조직에 대한 자신의 기여를 가장 크게 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마련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그것이 내 머리 안에 머물러 있는 이상, 혹은 동료나 상사, 그 윗선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이상, 그것은 회사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수단, 때로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보고서입니다.

 

이 책 제목은 <스피드 경영 첫걸음, 한 장 보고서>입니다. 삼성이 한국 내 1등에서 벗어나 오늘날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바로 최고 경영진의 스피디한 의사 결정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경쟁사의 액션에 대한 대응이 느리고, 바른 전략을 세웠다 해도 그 집행이 느렸던 sony의 경우,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처럼 그 막강한 자금력과 무수한 원천기술,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도 쇠망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과거에는 "스피드"가 독자적인 가치나 미덕이 아니었습니다만, 요즘에는 "그저 빠르기만 한 것"만으로도 칭찬받거나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 경영에서 속도란 그만큼 중요합니다.

 

실제로 현대와 삼성에서 오랜 동안 기획과 설계 업무에 종사한 저자 정보근 씨의 이 책은, 이미 업무에 숙련되어 많은 양의 우수 보고서를 척척 작성하는 사원에게도, 혹은 갓 입사하여 서류 작성 업무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는 사원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1) 가장 모범적이고 깔끔하게 작성된 보고서의 예를 제시하여, 아직 개념이 잡히지 않은 사원들은 그냥 보고 따라만 해도 될 만큼 친절히,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일부 보고서는, "보고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도 될 만큼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도 보입니다.

 

2) 보고서의 작성 방법 뿐 아니라, 회사에서 요구하고 윗선으로부터 칭찬 받는 기획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보고서 작성 실무에 주안이 놓여 있으므로, 기획의 방법론을 다룰 여유는 없습니다. 저자는 본격적인 기획 요령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자신의 다른 책을 참고하라고 합니다.

 

3) 이런 책은 뼈대만 앙상한, 팁 위주로만 짜여진 책 아닐까 하는 선입견도 부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읽어 보니, 2차 대전 당시 미국 측에서 내려졌던 오판, 1980년대 빈센스 항모가 저지른 판단 착오(이란 민항기 격추 사고) 같은 역사적 사례, 그리고 아마 저자 자신이 재직 시절 직접 경험했던 것으로 보이는, 회사 내에서 전형적으로 벌어지곤 하는 몇몇 에피소드 들이 소개되어 있더군요. 결국 저자는, 평소부터 전략적, 전술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요령 있고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되는보고서를 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초 체력이 부실한 채 정력만 좋은 사람이 없듯이, 회사 생활의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서 보고서만 잘 쓰는 사람도 없다는 걸 은근히 가르쳐 주는 셈입니다.

 

4) 종이 질이 좋고, 참고 자료가 천연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동료들과 윗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보고서를 쓰라면서, 정작 그 주장을 담은 책이 보기 불편하게 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모순이겠는데요. 이 책은 솔선수범이라도 하듯 깔끔한 편집이 돋보입니다.

 

5) 흔히 경영학 학부 커리에서 배울 게 별로 없다고도 합니다. 실무에 직접 쓰이는 것도 없고, 원론이나 인사관리에서 가르치는 건 결국 말의 성찬이고 깊이도 부족하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왜 자신이 남다른 업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왜 자꾸 승진에서 밀리는지 그 바른 원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이 책을  완독하고 느낀 건, 학교 다닐 때 배운 지식과 원칙들이, 내가 일상적으로 쓰는 보고서에 다 적용되고 요긴히 쓰이고 있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경영학 교과서에서 배운 그 모든 개념들은, 그에 대해 자신이 주관적으로 어떤 평가를 하건 간에, 자신이 작성하고 윗선에서 읽을 보고서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도구로서 쓰이고, 요구되고 있습니다. 공부를 안 해서 적시 적소에 용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그건 다 자신의 무능을 폭로하는 결과로 돌아올 뿐입니다. 보고서를 상시 쓰면서도 채 잊고 있던 사실을, 이 책은 당사자에게 환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보고서 작성 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쓰는 나의 만족이 아니라 읽는 타인들의 효용을 먼저 염두에 두고 쓰여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미학적 쾌감이나 주관적 감상을 위한 게 아니라, 분초를 다투는 사업적 의사 결정의 토대를 이루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작성의 원칙은 첫째도 요령이고 둘째도 요령입니다. 한눈에 척 보고, 무슨 내용인지 어떤 의사 결정을 권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책이 말하는 "한 줄 보고서"는 바로 이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보고서가 언제나 한 장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특히 민간 섹터 대기업에서 회람과 결재를 위해 돌고 도는 보고서는 볼륨이 클 수 없습니다. 빠른 의사 결정을 한다면서 장문의 보고서가 고집스레 오간다면, 이는 이미 의사 결정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다는 징후입니다. 한 장 보고서가 분명히 쓰일 용도가 따로 있고, 그 경우 그 한 장은 이러이러한 원칙에 의해 쓰여져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입니다. 소규모 기업에서 CEO 혼자 만기친람형으로 관리하는 환경에서는 보고서가 한 장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천안함 사건이나 재해 보고의 경우, 한 장 보고서가 상황에 맞지 않게 강요되다 빚은 여러 무리한 사고 중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취지는 요령 있고 효율적인 보고서의 작성이지만, 중간중간 저자 자신의 경영관에 대한 피력도 나와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는 진정한 혁신가였는가? 부품 업체의 혁신 등 주변 환경의 덕을 적지 않게 본 사례가 아닌가 하는 평가도 나옵니다. 현장 실무에서 잔뼈가 굵은 거장의 한 마디이기에, 괜한 질시를 담은 폄하가 아니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TF(태스크 포스)의 남발, 남설이 조직을 망친다는 충고도 쉬이 넘길 고언이 아닙니다. 얇은 볼륨에 뭐 하나 버릴 것 없는 알찬 내용이지만, 특히 마지막 부분 part 5를 보면 실무자 입장에서 입이 딱 벌어질 만합니다. 위로부터 사랑 받는 직원이 되는 비결이 여기 다 있었다고 하겠네요.

 

오타가 몇 있었습니다.

p32: 밑에서 세번째
쓰야 -> 써야

p64: 2 늦으도 -> 늦어도

p94: 밑에서 여덟 번째
자괴감을 마저 든다 -> 자괴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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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진설 - 근황 인문학 수프 시리즈 6
양선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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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작가들이 이처럼 깊이 있고 문장의 맛도 은근한 본격 수상록을 잘 내어 놓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단편적인 주장만 내 놓거나, 독자의 편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단문, 구호로만 채워진 글을 쓴다거나, 그도 아니면 정치색 강한 목적성 위주의 글을 쓰거나.... 자기 개성도 뚜렷이 나타내면서, 독자가 그를 통해 은근 곱씹고 배울 구석도 많고, 문학적 향취도 짙게 배어나는 글은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저는 작가님의 전작을 한 권도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따로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에 동의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이런 본격 수상록을 만나기 힘든 요즘, 한 권도 아니고 지금까지 어떤 일관된 컨셉 아래 여러 권이 시리즈로 나왔다는 자체가 고마웠다고나 할까요. 어떤 챕터는 내용이 어렵고, 어떤 장은 다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괜히 늘려 이야기하시는 느낌도 있었고, 어떤 대목에서 털어 놓는 (작가님 자신의) 취향이나 소신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독후 소감은, 믿음직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정도였습니다.

 

남자는 얼굴을 보고 여자는 옷을 본다. 여자 얼굴만 따지는 게 남자의 본성이라는 게 우리의 상식이긴 하죠. 그러나 이런 말은, 중립적 입장에서 진술되어야 신뢰가 가는 법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성(性)의 중립지대는 있을 수 없으니, 이 역할은 많이 배우고 수양이 쌓여 색에 흔들리지 않는 남자가 이야기하면 무난한 타협이 되지 싶습니다. 여자 얼굴 어지간히 안 본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님 같은 분이 이야기를 해야 말이 먹히지 싶은데, 작가님은 소싯적에 본 홍콩 영화의 어느 묘하게 생긴(생겼던) 주연배우를 좋아하신다 하니 이는 얼굴을 안 보는 게 아니라 취향이 독특하신 게 아닌가 독자로선 생각이 들더군요. 검색을 해 보니 한국에서 그 특정 배우가 인기를 끌 때 여고생들의 반응이 특히 유별났다고는 하나, 그 또래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딱히 열광의 분위기가 없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불안의 대상화. 작가님의 태도에 의하면, 불안이란 전적으로 이를 느끼는 주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교란의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불안을 제거하거나 치유할 때, 밖에서 원인을 찾으면 안 됩니다. 나의 덜 익고 상처난 내면을 다스리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나의 결함은 인정하기 싫으니 특정 대상을 지목해 이를 타자화하는 것, 이게 작금의 세태를 지배하는 악습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불안의 유형이 따라,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대응 방법과 처방전이 다르지 않을까도 생각됩니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작가님이 하신 말 중 "요즘 소통은 그 자체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기보다, 오히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매도하기 위한 명분, 트집으로 자주 악용되는 듯하다"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 사람은 불통이야!"란 단정은, 이유가 제시되지 않으면 그건 객관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불통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지 타인에게 있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죄는 그저 일방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소통을 방해하기까지 합니다. 조선 시대의 "역적 고변"에 빗댄 건 그런 의미에서 참 적절했습니다. 거사는 본디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게 고정 훌이었으니까요.

 

소설의 기원을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되는 어구가 이 "소가진설"이라고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작가님의 깊이 있고 진득한 이야기에 잔뜩 취하기는 했으나, 제목과 제가 감상한 책의 내용이 얼마나 부합했는지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건 책을 쓰신 작가의 의도를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만, 반대로 "인문학 수프"를 들고 나오신 이 책의 컨셉 그 하위 섹터까지 일일이 동의를 보낼 필요는 없겠다는 독자로서의 의식적인 자각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명인의 레시피도 교조가 꼭 될 수는 없고, 다만 여러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훌륭한 참고가 되는 정도라고 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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