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청문회 1 - 독립운동가 김구의 정직한 이력서
김상구 지음 / 매직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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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의 권화였는가?
김구 선생은 애국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는가?
김구 선생은 통일의 화신이었는가?
김구 선생은 (심지어) 진보 세력의 아이콘이기도 한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저는 현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거의 거리낌 없이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심지어 저는, 애국심이다, 독립운동이다, 통일 운동이다, 하는 개념을 배우기도 전에, 백범의 생애와 인격을 먼저 배우고, 그를 통해 "아 애국심이란 이런 것이구나, 독립 운동가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백범이 먼저고 애국심 등 추상적 덕목은 배우는 게 오히려 나중 순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최소한 저희 세대는 그랬고, 지금 어린 세대도 대체 그들이 애국심, 민족애라는 관념을 최소한 마음에 품고나 있다면 그러하리라고 다소 성급한 추측마저 합니다.

그런데 저자 김상구 선생(백범과 이름마저 비슷하죠?)은, 제가 위에 적은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인 답을 내어 놓습니다.
1) 백범은 자신의 독립 운동에 대해 스스로 과장하기도 했고, 그의 미화에 친일파들이 앞장서기도 했다.
2) 일신의 안녕과 체면을 위해 대의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기도 했으며, 경무총감이나 주석으로서 그가 내린 조치에는 월권, 반인륜적인 것이 상당했다. 귀국 후에는 일종의 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힘에서 밀려 좌절되었다.
3) 통일운동은커녕 반탁운동에 무분별하게 나섬으로써, 이승만의 단정 수립 운동에 결과적으로 기여하고 말았다. 그의 행보에는 일관성이 없고, 지켜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노선 변경이 잦았다.
4) 진보는 고사하고, 평생을 두고 반공 노선을 유지한 극우분자다. 심지어 독립 운동 도중 공산당에게 입은 은혜마저 배신한 적이 있다.

1권은 주로 백범일지에 대한 비판과 분석, 검토가 주종을 이룹니다.  특히 치밀한 역사 고증을 시도하고 있어, 백범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독자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 리가 어려서부터 잘 아는 내용이, 어느 주막에서 일본인 하나를 구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내용입니다. 이른바 치하포 의거라는 것인데, 사실 어린이용 전기에서도 이를 두고 마냥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백범일지>에서도 이를 두고 그저 자랑하거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투는 아닙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이며, 다만 아직 젊은 나이라 생각이 미숙했을 수 있고, 여튼 방법상 옳지 못했다는 것 뿐이지 애국심의 절절한 표현이라는 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당시의 인권 의식이 아주 낮은 수준이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습니다. 잘했다는 게 아니라 이방인이 타지에서 시비 끝에 목숨을 잃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지적하는 건, 옥중의 백범이 <황성신문>을 통해 자신의 사형집행 예정을 알게 되었고, 집행 직전에 고종의 전화 한 통으로 중지되었으며, 그 전화는 조선에 갓 가설된 문명의 이기였다는 점에서 실로 극적인 사건이었다는,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신화"의 허구성입니다. 이 이야기는 "최초의 통화"와 "독립운동의 레전드 백범"이 한 에피소드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꽤나 인기가 높았습니다. 저자는 <황성신문>의 창간과 최초 전화 부설 시점이, 백범 석방 이후라는사실을 들며, 이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임을 증명합니다. 더군다나 이 일화는 백범이 자신의 책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백범일지> 자체의 신빙성에 결정적 의문을 제기하는 증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백범이 치하포 사건 당시 공초를 받으며 소위 "좌통령" 직함에 대해 출처를 중국인으로 댄 것(일제의 기록)과, <백범일지>에서 스스로 술회하는 내용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들며, <백범일지> 집필 당시 그가 품었던 의도에 꿰어맞춘 조작 내지 은폐의 시도라는 주장을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백범일지>를 여러 차례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저로서는, 저자의 이런 분석과 지적이 실로 흥미롭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토록 큰 신뢰와 존경으로 접해 왔던 텍스트가, 날카로운 분석 앞에서 모순과 약점을 노출하며 (그 일부라도)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언제나 당혹감과 비애를 유발할 수는 없습니다. 특정인에 대한 존경과 경모감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실 그 자체니까요.

저자는 백범일지에 대해, "이처럼 오류와 거짓, 허위로 가득한 기록을 두고 1차 사료로 평가하는 건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단정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을 말하자면, 모든 사료는, 크로스체크, 교차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심지어 사마천의 <사기> 역시, 그 단독으로 진실의 보증이 있는 절대 무류의 기록은 아닙니다. 개인의 기록, 수기가 개인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설사 메모가 있다 해도 말이죠)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백범이 아니라 그 누구의 증언도 타 기록과 대조하여 그 진위를 평가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죠. <백범일지> 아니라 그 누구의 책에 대해서도, 저자분이  지금 이 책에서 이렇게 성실하고 치밀한 비판을 가하시는 것처럼, 한 톨의 의심도 남지 않게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합니다.

오히려 저자분이 그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오류 지적과 진실 규명에 쓰셨다는 자체가, 이 <백범일지>의 기록적 가치와 중요성을 (반대로)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제아무리 이 책이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 해도, 이 책을 두고 1차 사료로까지 평가하는 입장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백범기념사업회 같은 특수한 처지의 단체야 또 생각이 다르겠습니다만. 그저 평균적인 독자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쓰셨으면 될 것을 너무 과민한 스탠스를 잡으신 것 같습니다. 책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붙툭정 시민, 독자가 읽는 게 원칙인 데도요.

백 범의 상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저자는 깊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일본에 항거한 흔적보다는, 그 죄상이나 평가가 애매한 같은 동포를 적으로 몰아 생명을 앗은 예가 더 많지 않느냐는 겁니다. 특히 어느 17세 소년을 두고 부역으로 몰아 사형을 집행한 건, 그 비인간성과 냉혹함에 전율이 느껴진다는 정도의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관념으로, 눈감으면 코베어갈 살벌한 국제 도시 상해의 조계에서 나름 자기 사업(?)을 벌인 17세 소년이 과연 요즘 철없는 고등학생들과 같은 모습이었겠는가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기록이 워낙 미비하고, 별 물리력도 자금력 여유도 없는 임정이, 설사 절박하게 필요한 사정이 있어 집행한 조치를 두고, 그리 넉넉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보다 신중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이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결론이, "백범은 포악하고 사람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월권 성향의 독재자"일까요?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보면 그렇게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논거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이봉창 의사의 의거입니다. 비록 히로히토를 죽이는 일에는 실패했으나, 당시 아무도 감히 상상도 못하던 거사를 감행했기에, 내외적으로 끼친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우리가 봐도, "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1) 이 일은 싷제로 백범이 주도한 것인지 다소 의문스럽다
2) 이 의사는 일제에 잡힌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행동을 "어리석다"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3) 이 의사는 백범의 본명도 신분도 몰랐으며, "그리 학식이 높지 않고 뛰어난 인격자도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 속은 것 같아 분하다"고 진술한 기록이 남아 있다.
4) 이 의사가 의거에 실패한 이유는 폭탄이 불량품이었던 까닭이며, 이는 백범의 무능력을 보여 준다.
5) 이 의거는 사실 공산주의자 들의 지원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정도의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2) 3)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죠. 백범의 말에도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제의 공식 기록은 글자 그대로 믿는다는 건 과연 어떨지요. 더군다나 이 의사는 고문과 취조로 극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텐데, 그 중에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연 다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저자는 이상하게도, 고문 가능성은 거의 배제하고 있습니다(철저하게 "가정법"으로만 언급합니다). 또, 윤 의사는 의거 전후 시종 일관하여 백범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고, 임정에서 그를 따른 이들 중 해공 신익희라든가 장준하 같은 엘리트가 많았던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쪽만 보면 왜곡된 결론이 나올 수밖에요.

4)와 5)는 저자의 자가당착입니다. 만약 공산주의자들의 기여가 그만큼 컸다면, 불량품 폭탄 건은 백범의 무능이 아니라 공산주의자 탓입니다(책에 폭탄의 출처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조차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 또한 설사 백범의 준비가 부실했다고 해도, 그가 가진 자금과 능력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 아니었겠습니까? 돈이 있어야 폭탄 실험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윤의사 홍구 공원 의거에서는 엄청난 위력으로 요인이 대거 죽었다는 사실이, "두 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백범의 능력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백범의 학식이 높지 않다는 건 당대인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북 연석 회에서 "나는 배운 바도 없고,... "로 시작하는 그 어눌한 연설을 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교육방송 다큐에서 자주 보여 주고, 아마 유튜브에도 찾아 보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인들은 백범을 존경했고, 백범은 자신의 학력 부족을 굳이 숨기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이 그 학력의 깊이에  있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백범이 자신의 생을 통해 보여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우리가 그에게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무식한 인간이 자기 목소리만 빽빽 높이고, 말이 막히면 오히려 남을 두고 "저 자는 자기 주장만 한다"며 얼토당토않은 모함을 하는 게 못 배운 근성의 인간들입니다. 이런 게 문제지, 백범 같은 인격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의 저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썼든 간에, 참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을 그러나 하고 있습니다. 왜냐. 백범은 있는 그대로 위대한 분이지, 다른 윤색이나 가공이 필요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식에 그간 거품이 있었다면, 그건 걷어내어져야 합니다. 왜냐면 백범은 그런 게 전혀 필요 없이도 그 자체로 위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백범일지>에 허위나 오류가 있다고 해도, 저자의 주장대로 이광수가 제 한 몸 살아 남으려 과잉 충성을 하느라 저지른 잘못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우익 진영에서 백범의 행적이 다 소거되면, 독립 운동의 치적이라고 내세울 건 거의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좌익의 업적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뿌리부터 무너지는 것 아닐까요? 백범이 쓰러지면 그 결과는 이처럼 중차대한 파장을 낳죠. 이 책을 두고 백범기념사업회에서 "그 의도가 불순하다"고 평가한 건, 혹시 이런 점을 지적하려는 것 아니었을까 저는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여튼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좋은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너무 핳 말이 많고, 책 내용 토씨하나에까지 제 개인적 감상을 적을 수 있지만, 2권 리뷰로 미루겠습니다. 2권도 다 읽었기 때문에, 이 1권에 대한 리뷰 안에 총체적 평가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2권은 1권과는 좀 성격이 다릅니다. 해방공간사를 저자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백범 뿐 아니라 다른 역사까지 자세히 고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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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헤겔의 신학론집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 인간사랑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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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헤겔은 근대 독일, 나아가 유럽 철학의 토대를 확립함에 있어 큰 공헌을 세운 두 위인입니다. 두 사람의 뚜렷한 공통점이라면, 철학의 어느 한 분과에 한정하지 않고, 거의 모든 분야의 철학, 그리고 당대의 성취 수준 범위 안에서 자연과학, 역사학, 문학, 종교학 등 포괄적인 영역에 대해, 그 이전까지의 성과를 거의 망라하다시피하여, 후배 학자들에게 잘 정리된 형태로, 넘겨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종합과 편집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이 두 거인은 종전의 철학자들이 전혀 엄두를 내지 못하던 방식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고, 비판하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위대한 종합 만으로도 그것은 큰 성과인데, 두 사람은 종합을 뛰어넘어 철학 전반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종합을 성취해 낸 이들은, 대체로 그 세계관이 보수적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바로 "종합"이라는 개념 속에 이미 그 (보수주의의) 단초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종합"이라면, 그것은 기성, 기존의 것들에 대한 종합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종합의 대가들은 대체로 conservative의 아성에서 그리 먼 발짝을 떼려 하지 않습니다. 아퀴나스의 성 토마스가 그런 인물이며, 심지어 적폐 타파의 상징과도 같았던 마르틴 루터마저도 그 학문상 방법론이나 정치적 노선의 특징은 극히 보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거인, 칸트와 헤겔은 어떻습니까? 임마누엘 칸트는, 생애 단 한 번도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고 하죠. 물론 자신의 고향에 진중히 은거했다고 해서 항상 보수적 기질을 지녀야 한다는 단정은 대단히 억지스럽지만, 칸트는 실제로도 그러한 성향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어구를 보십시오. "네 자신의 의지의 격률이 항상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게 하라." 이런 도그마대로라면 아마 숨조차도 마음 놓고 못 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는 학부 시절 그의 <실천이성비판(삼성문화사판)>을 읽던 때에, 그 서문에서 자신을 후원한 모 주권자(soverign)에 바치는 그의 헌사를 읽고, (좋게 말해서) 그의 질서와 체제에 대한 강한 신뢰와 외경심을 감지할 수 있었고, (나쁘게 말해서) 그의 다소 비루하다 싶은 권력 추종 성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이런 말투와 형식은 당대의 관습이었다는 사실을 넉넉히 감안해도 그렇습니다).

 

반면 헤겔을 보죠. 이 사람이 남긴 무수한 명언 중에 "예술가는 군주의 기상을 가져야 한다."는 게 있습니다. 물론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라는 게 아니라, 군주의 처지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혼을 불사르며 불멸의 미학적 성취를 남기라는 그의 당부가 주된 취지였겠지만, 그렇다손 쳐도 함부로 군주를 거론했다는 자체가 그리 예사롭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또한, 헤겔의 연구에 있어서는, (이 책 역자 정대성 교수님도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청년 헤겔"이라는 분과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노년 원숙기에 이르러 헤겔은 그 엄청난 폭과 깊이를 자랑하며 후세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극악의(?) 하중을 안기고 떠났지만, 반면 38세가량까지의 청년기(이 시절이라면 더군다나 38세라는 나이가 "청년" 범주에 들기 어려워겠습니다만, 헤겔의 그 아득한 사상 반경을 감안한다면 진정 자연스럽습니다. 시점을 20세로 잡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겠습니다)까지의 헤겔이라면. 그 진취성과 대담함, 기존의 사유 체계와 그를 둘러싼 현실의 낙후성에 대한 비판이 워낙에 강경한 모습이라, 그를 피상적으로 알던 이들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최소한 "청년 해겔"은 누구 못지 않은, 강경 좌파였던 셈입니다!

 

본디 프랑스에서도 그러했듯, 기독교(특히 구교)는, 계몽주의의 대두 무렵에서는,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온갖 구폐와 기득권을 대변하는 사회의 公敵 비슷하게 치부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놀라는 건, 헤겔 역시 기독교에 대해 일반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신랄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입니다. 헤겔은 기독교의 구, 신 을 가리지 않고, 민중의 자발적 개과천선과 자유에의 희구를 철저히 가로막는 장벽 구실을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오성과 자유의지를 자극하는 종교의 탄생을 강력히 열망하고, 그에 대한 試論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사이비 종교 창시자(?)로 오해 받을 지경입니다. 물론 이성과 오성에 대한 철저한 숭배자인 그가, "묻지마"와 "막무가내", "거짓과 허위 선전"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세력과 엮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만 말입니다.

 

이 책 제목은 <신학론집>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 헤겔이 생전에(혹은 사후에라도) 이런 제하의 단일 저서를 출판한 건 아닙니다. 역자 정대성 교수님이, 헤겔의 저작 중 그의 의도에 맞는 여러 저술을 추려 이렇게 모양 좋은 한 권으로 번역해 낸 것입니다. 엄밀하게는 "신학"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도 있고, :"논문"이라기보다는 중수필에 가까워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 헤겔" 나아가 "인간 헤겔"을 이해하는 데에,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문헌들이라서, 독자는 잠시 충격을 받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헤겔의 글이었단 말인가?"

 

마르크스, 아니 그 이전의 유물론 전통이, 헤겔을 깊은 사상의 호수로 하여 태동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변증법"을 빼면 대체 무엇이 남을까요? 헤겔의 適子는 우파 체제 옹호론자일지 모르지만, 설사 마르크스를 사생아로 분류한들 이 사나운 자식을 빼면 그 가계의 족보가 심심해지는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확실한 것은, 마르크스야말로 이런 아버지의 씨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태 아들을 보고 그 범상치 않은 기질에 놀라곤 했지만. 이제 그 아비의 젊은 시절을 보니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우리 속담의 타당성을 되씹게도 됩니다.

 

칸트는 저 먼 동방의 벽지, (그 당시에도)거의 러시아에 가까운 고장에서 평생을 보내고, 게르만 겨레가 일군 나라 중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프로이센의 신민으로 생을 마친 사람입니다. 반면 헤겔은 그때나 지금이나 게르만 종족의 거주지 중 가장 서편에 치우친, 프랑스와 등을 대다시피한 뷔르템베르크 공국 출신이고, 상당 기간을 타지 유람으로 보낸 이력이 있습니다. 종합의 거장이자 초인적 두뇌의 소유자인 두 사람이지만, 이처럼이나 남긴 업적의 성향이 차이남은 반드시 그들이 각각 산 시대의 격차에만 기인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역자 정대성 교수님의 해제가 일품입니다. 번역도 유려하지만, 과연 이처럼이나 명쾌한 헤제가 아니었다면 헤겔과의 대화가 가능했을까 하는 회의가 듭니다. 됵일 본토에서 정통 코스로 박사를 따신 분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감탄, 이 서평에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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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세를 읽는 승부사 조조 - 우세와 열세를 아는 자가 이긴다 삼국지 리더십 3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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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술(詐術) 없는 정정당당한 방법,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업적을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기간에 망한 진(秦)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건설한 유방 역시, 순탄치 않았던 통일 과정에서 체면 깎이는 일을 수도 없이 당했으며, 건업(建業) 후에도 이른바 토사구팽으로 상징되는 공신 대숙청을 별 망설임 없이 감행했습니다. 이치와 명분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50여년이 흐른 후 주원장 역시, "시기호살"이란 표현으로 잘 알려진 특유의 의심증과 과도한 견제 심리의 발동으로, 십만 단위에 이르는 인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 둘에 대해, 당대나 그 이후나 민중들은 애정과 존경을 보내는 편이었습니다. 대체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1) 둘 다 농민 출신이다. 2) 그 이전 체제 아래에서의 혼란이나 수탈이 극심하여 왕조에 대한 불신이 심했다.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보나, 자기가 부리는 인재에 대한 활용 능력, 권한 위임의 과감성으로 보나, 위 무제 조조는, 위에 거론된 유, 주 양인을 능가하고도 남는 파천황의 대 영걸(英傑)이자 전무후무의 경영자였습니다. 중국 오천 년 역사상 그만한 인물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아니 세계사를 통틀어 놓고 봐도 그만한 천재가 있었을까 하는 감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에는 두어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귀족에 비해서는 평판이 다소 떨어지긴 하겠으나, 상당한 권세를 누렸던 집안 배경을 지니고 출발했다(친가 양가 모두)는 점에서, 순수 농민 출신 영웅에 비해 친화도가 떨어짐. 2) 그가 자신의 것으로 (사실상) 대체한 직전 왕조 한실(漢室)이, 아직은 백성에 의해 버림 받은 정도의 위신이 아니었다(즉, 멀쩡한 왕조를 뒤엎었다는 역적의 이미지). 의심이 많았다든지, 정적이나 총애를 잃은 신하에 대해 무자비한 처결을 했다든지 하는 건 어느 창업 군주나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조맹덕이 특별히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만 더 덧붙인다면, 3) 그가 창업(형식적으로야 선양을 받은 당사자는 아들 조비입니다만)한 왕조가 단명하고, 곧바로 사마씨의 진(晉)에 의해 교체되었다는 사실도 빼 놓을 수 없겠습니다. 그가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것도, 나머지 양국(촉, 오)의 실력이 다른 분열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5대 10국이나 남북조 말, 빈사의 원 치하에서 할거했던 군웅과는 상대가 안 될 만큼 강한 지방 정권들을 채 조복(調伏)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이걸 그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닙니다. 오의 주공근은 "하늘이 나를 내고 왜 또 양(제갈량)을 내었는가!"라고 탄식했다지만, 맹덕으로서는 자신 외에 유비와 손씨 삼부자를 또 내려 보낸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1)과 2)를 가만히 살펴 보면, 둘 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철저히 외생적(exogenous)인 변수들입니다. 3) 역시 창업자가 어떻게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고, 제아무리 천재라 한들 후손의 DNA를 생전에 조작해 놓고 죽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보면, 조맹덕은 자신의 힘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에 유리하게 바꾸어 놓고 게임을 진행했다는 뜻도 됩니다.

하지만 상황을 언제나, 제 힘만 부려서 일일이 바꿔 놓는다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방식도 됩니다. 바로 초한 쟁패기의 항우가 그러했습니다. 항우가 바위 위의 파리를 잡으려고 주먹을 내리쳐서, 파리는 잡지 못하고 바위만 부수었다는 이야기는, 사실(史實)이 아니라 일종의 우화입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이런 항우와는 달리 유방은 매우 실리적인 성격이었으며, 위신을 내세우지 않고 솔직하게 타인을 대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사기 열전을 인용하여 저자 자오위핑은, (현재는 자기 휘하에 있다고는 하나)잠재적 적수인 한신 앞에서 "그 두 가지 점 다 내가 못하오."라며, 조금의 가식이나 말재주 없이 약점을 인정하는 유방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사실 "조조"를 다룬 책에. "유방"의 예가 나오는 건 좀 의아합니다(물론 저자의 능력 증명이요, 독자로서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접한다는 재미가 있습니다만). 저자로서도 고육책이었던 것이, 조조라는 인간은 경영자로서 군주로서, 별로 미달하는 자질이나 덕목이 없는 형편이었던지라, 제 아랫사람에게 뭘 인정하고 말고 할 사항이 애초에 없었던 겁니다. 대신 저자는, 관도의 대전에서 조조 필생의 적수(과거 내력으로 보면 조조가 감히 대적할 수도 없는 강하고 귀한 지위였지만)인 원소의 약점을 거론합니다. 아랫사람을 두고 겉으로는 인자하고 너그롭게, 좋은 표정을 꾸며 대접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 없이 의심하고, 좋은 간언이나 헌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우와 정확히 닮은 점입니다. 이러니, 좋은 판세를 등에 업고서도 그 이(利)를 살리지 못하고 제풀에 엎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조조는 제 주변에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꿔 놓으려는 감투 정신의 소유자요, 또 그런 구상을 실전에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미련스럽게 모든 변수에 대해 수정을 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능력이 뛰어났기에, 마음만 먹으면 못할 바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한 일에 진을 빼고, 정작 힘을 발휘해야 할 때 가서 힘을 못 쓰고 성과를 못 내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노장의 가르침처럼, 무위(無爲)함만도 못한 것입니다. 저자 자오위핑은 그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조조의 진정한 위대함은 각종 수완과 책략에 능하고 두뇌가 빼어났으며 사람의 마음을 잘 읽었다는 자질 뿐 아니라, 판을 잘 읽고 타인의 힘을 제 유리할 대로 이용할 줄 알았다는, 자원 활용의 경제성 원칙에 충실했던 그 영악함이었습니다.

그가 서부를 안무하고 나서, 눈을 돌려 동쪽을 보니 여포, 원소, 유비라는 걸물들이 제각기 자기 세력 구축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조조는 섣불리 천하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아마 이 3웅(雄)이 단결하여 조조의 목에 공동의 칼을 겨누었을 겁니다. 조조가 수세에 몰려 몰락하고 난 뒤, 이 셋은 아마도 다시 필사적 각오로 상호 쟁패에 돌입했겠습니다만, 내가 죽고 난 후 어부지리를 취하는 게 다 무엇이겠습니까? 판을 앞당겨 서로 싸워서 세를 쇠잔하게 만드는 게 최상의 방법이고, 그 수에 말려 들지 않으면 각개 격파를 시도해야 합니다. 조조는 이런 구상으로 원소를 안심하게 하고, 유비는 먼저 여포와 반목하게 한 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당시 가장 가공할 적이었던 후한 최고의 무장 여포의 새력을 궤멸시킵니다.

관도에서 원소에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는 일은, 조조로서도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강대한 병력, 넉넉한 군량(전쟁에서 보급이란 얼마나 중요한 요소입니까),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해 온 그 오랜 세월에 비례한 세간 평판의 깊이 면에서, 조조가 원소를 대적함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무모한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판세를 정확히 읽고, 그 허점만을 정확히 타격"함으로써, 불리한 형세를 뒤엎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풍은 이런 계책을 올렸습니다. "조조가 용병에 능하니 우리는 지구전으로 맞서 손실 없이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는 일시적 승리가 아니라 조조가 다시는 발호하지 못하게 하는 발본색원의 방안입니다." 라고 하자, 원소는 마치 자신의 능력이 조조에 못 미친다는 암시처럼 듣고는 그를 투옥했습니다. 허유가 "조조가 저리 부족한 병력으로 무리한 진형을 짜고 있으니, 이 틈을 타 허도를 기습하면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것이며, 조조는 이 과정에서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라고 원소에 결정적인 한 마디 충언을 했습니다. 사실 전풍의 A안과 허유의 B안은 서로 모순되는 것입니다. A안이 신중하고 수세 중심의 선택이라면, B안은 이와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병법에서 최고로 치는 寄策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원소는, 둘 다를 잘 추려 수용하는 운용의 묘까지는 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둘 중의 하나는 그냥 골라 잡아 마땅한 상황에서도, 둘 다를 묵살하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리더가 제 주견이 없을 뿐 아니라, 뛰어난 아랫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열등 컴플렉스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의 망상 세계에서 머물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처음의 자기 판단이 옳았기만을 끝까지 집착하며 빌고 있는, 여지없는 패배자의 모습을 노출한 거죠. 유리한 판세도, 제 마음 하나 편하고자 왜곡하고 비트는 습성은, 가진 판돈을 불리한 패에 걸고 다 날리는 파멸의 정코스로 사람을 몰게 되어 있습니다.

조조는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허유가 귀순의 뜻을 밝힐 때, 자신 없는 타입이라면 "이게 혹시 반간계의 일종 아닐까?"하며 우왕좌왕하거나 반대의 패착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조조는 허유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의사 결정은 신속함이 최대의 미덕인데, 조조는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단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 보고 좋아한다는 건 바로 이를 두고 이름입니다. 맞는 말은 누가 하는 말이건 무조건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게 win이란 걸 체질로 아는 것입니다. 조조가 판세를 읽었다 함은, 타인의 힘 중 유리한 건 애써 뺏으려 할 게 아니라 그대로 타인의 수중에 둔 채 내것으로 활용하고, 타인의 허술한 구석은 틈을 두지 않고 바로 찔러서 무력화하는 데 당대 누구보다 능했다는 뜻입니다.

판세를 잘 읽었다는 건, 외부 형편이나 적의 형세를 두고만 이르는 게 아닙니다. 나 자신의 형편, 내가 부리는 아랫사람들의 객관적 상황 파악에도 능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은 <연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사(진수의 삼국지)나 다른 문헌을 두루 참고하여 재미있게 각색했다는 사실이 돋보이는데요(이 점은 자오위핑의 전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은 <연의>에서 거의 비중 없는 인물로 다뤄지지만, 정사의 행적을 보면 초조의 창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인재였습니다. 이전 역시 상관의 기색과 심기를 잘 살피고 능숙한 처신을 보였지만, 조조 역시 그런 이전의 본의를 잘 읽고 극진한 대접을 베풀어, 출중한 인재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게 조장했습니다. 아랫사람이라고 해도 배신, 불만의 여지는 언제나 상존하게 마련인데, 조조의 뛰어난 점은 인재의 심중을 언제나 헤아려 선제적으로 최상의 대우를 베풀고 이를 미연에 방지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야말로 또다른 "판세읽기"의 미덕입니다.

연의에 나오지 않는 조조의 행적으로서, 그가 20대 초반 일시 좌절을 맛보고 낙향했을 때도, 반드시 자신의 패착이 어디 있었는지 반성하고 복기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그는 이 기간에 천운의 반려자인 변황후와 연을 맺는데, 어쩌면 가장 소중한 성과와 자원 확보를 이룬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 나와 있듯 변황후는 그 걸출했던 아들 조비와 조식을 낳아 준 동반자였습니다. 자오위핑은 이처럼,  <연의>의 후일담이라도 들려 주듯 재미있는 이야기를 곳곳에 섞어 넣어, 주제의 설득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도 있지만, 일개 소설에 불과한 <연의>에 비해 권위도 더 높은 것들입니다. 역사와 허구를 교묘히 오가면서, 캐릭터로서의 조조와 역사적 위인으로서의 조조를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오늘의 처세 그 핵심을 묘파하는 저자의 능력이 또 한번 빛나는 두툼하고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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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
레오나르도 콜레티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나라의 어느 베스트셀러 저자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과학 본연의 연구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더 중시하는 듯한 카이스트 출신의 그 저자의 작업은, 어찌 보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스토리가 있고, 감독이나 제작진 중에는 대학에서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 때에는,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게 미학적 감동 외에도, 모종의 과학적 맥락의 전달 역시 있게 마련입니다. 캐릭터나 피사체가 움직이기도 하고(영화를 영어로 하면 motion picture입니다), 스토리(영화가 품고 있는) 중에서 스토리(예컨대 정재승 박사의 이야기)를 뽑아 내는 건,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극히 어려운 과제도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motion picture)가 아니라, 그냥 회화(picture)에서, 그 그림을 해석하고(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이야기를 풀어내라고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한정된 공간 안에서 구현된 구상 혹은 추상에서 "과학을 본"다라? 그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림을 그린 그 거장들의 의도도 그게(과학의 구현 같은 것) 아닐 뿐더러, 정지된 이미지 한 컷에서 그 복잡한 수학적 구상이 개입해 있는 원리를 줄줄 풀어낸다... 물리학에 통달한 이에게도 힘든 일 같고, 회화와 미술사에 어지간히 밝은 이에게도 어려운 일 같습니다. 두 분야에 다 도가 튼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도 않겠거니와,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둘을 동시에 엮고 버무려 가면서 "썰"을 푸는 건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저자 레오나르도 콜레트는 본분이 물리학 연구직입니다. 이탈리아 트렌토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현직 교수이며, 미국 물리학협회 APS 회원이라고 책 소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이력을 가진 사람 입에서는 절대 안 나올 것 같은 주제가 바로 회화의 역사, 기법 등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그러나 이 책에서, 미술사상 특정 유파나 조류에 속한 작가나 작품만 거론하는 게 아니라, 다빈치나 카라바조에서 마네와 샤갈, 오토 딕슨에 이르기까지, 정말 아무 공통점도 서로 갖지 않은 거장들을 32명 뽑아 놓고, 말 그대로 그림과 물리학의 역사를 종횡무진 오가면서 "썰"을 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아마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대학에서, 어린 학부생들을 상대로 교양 강의차 들려 주던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주제를 전달하는 형식은 두 남녀 대학생(아직은 본격 사귄다기보다 썸타는 정도로 보이는 사이)의 대화로 꾸려져 있더군요. 남자 대학생이 물리학을 설명하고, 여대생이 그를 이해하는 위치에서 둘은 신나게 말을 주고 받으며, 독자와 저자의 사이에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 냅니다. 대화는 유머러스하고 화기애애하며, 특히 프란체스카의 날카롭고 당돌한 질문은, 파올로의 도도한 논변을 힘겹게, 때로는 의아한 느낌으로 따라가는 독자의 심겨을 상당 부분 대변하고 있습니다.

 

분리하면서 포착한다. 사실 이 말은, divide and rule을 살짝 비튼 것입니다. 파올로의 대사 중에는 "포착"이 아니라 "정복"이라고 되어 있고, 이렇게 읽으면 저 어구와 거의 일치하죠. 물론 저자는 어지간히 진보 성향의 스탠스라서 그런지, "정복"이라는 단어가 전달할 수 있는 의미가 그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아님을 구태여 여러 번, 변명하듯이 덧붙입니다. 이런 책을 읽는 독자가 그런 오해를 할 가능성은 낮을 텐데도 말입니다.

 

저자의 입장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자는 것이었고, 이런 입장이 교조적으로 굳어 과학은, 물리학은 수 세기 동안 발전을 할 수 없었다."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부분적으로 선명한 진리를 포착하기 위해 관계 없는 다른 사정과 상황을 제거하고 사실을 관찰하려는 작업을 시도하였고, 그것이 바로 사고 실험(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이며, 이 시도를 통해 "관성"이라는 것의 개념 정립이 시도되었으며, 이를 통해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물리학이 처음 자리잡았다."
"근대 과학은 이 갈릴레이의 시도를 기점으로 눈부신 발전을 보일 수 있었으나, 이후 플랑크에 와서 한계에 부딪혔고(소위 양자성의 문제), 비로소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적 총체성으로 복귀할 필요성을 일부 느끼기 시작했다."


이 모든 주장을 저자는 움베르토 보초니의 <동시적 착상> 한 폭의 그림에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저 표현들은 제 느낌과 기억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책 원문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요)

 

옳은 말이고, 이 1장은 이후 계속 이어지는 뉴턴의 고전 역학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 있어 토대와 대전제를 이루는 내용이라서, 독자는 반드시 읽고 지나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발췌독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명작 32점은 그 배열에 별반 필연성이나 깊은 의도가 없지만, 그 명작 32점을 모티브로 하여 펼쳐지는 과학사(이 책 내용은 과학 이론 현황 설명이라기보다는 과학사 해설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폐기된 에테르論, 플로지스톤 說도 등장하니까요) 설명에는 반드시 시간적 맥락(어떤 이론이 무엇을 극복하고 등장한 것이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순서를 바꿔서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과학사에 이미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도, 저자만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개념어가 여러 번 나오기 때문에, 발췌독 형식은 어렵습니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과정, 혹은 과학이라는 정신 작용을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분명 저자는 상대론적 관점에서 이 모든 주제를 소화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충격을 받은 건, 저자는 "원자" 개념에조차도 얼마든지 향후 붕괴할 수 있는 가설 정도의 위치 이상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원자가 물질의 최소 단위라는 돌턴식 개념은 타파된 지가 한 세기가 넘었습니다만, 적어도 "원자"라는 단위가 물리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에는 아무에게서도 이의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저자는 그러나, "원자 역시 그 누구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으며, 더 유력한 설명이 나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설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투로 이야기합니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원자는 끈(혹은 초끈) 이상의 실감이 나는 개념도 못 되는 셈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나오는 중입니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건, "불변의 진리라고 받아들였던 그 모든 도그마를 손쉽게 버릴 줄 알아야 대가라고 할 수 있다"더군요. 예를 들어,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총체성을 폐기함으로써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런 갈릴레오의 관성 개념이나 원운동 역시, 뉴턴에 의해 전면적으로 비판, 수정되고야 말았습니다. 저자가 직접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서양 회화 역시 관점과 스타일을 그토록 정교하고 세련되고 발전시켜 오다가, 어느 천재(마네나 마티스 등)에 의해 송두리째 버려지고 전혀 새로운 기법, 스타일이 만들어지면서 발전해 온 사정이나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지요. 그냥 과학 이야기만 해도 될 것을 굳이 그림까지 끌여 들여 온 건 그런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자기 스승(티코 브라헤)를 충실히 섬긴 걸로 유명한 케플러, 그리고 교회와도 큰 마찰을 빚지 않고 무난히 넘어갔던 케플러에게서 "혁명가, 파괴자"의 성격을 찾는 건 좀 힘들어 보입니다. 저자는 그러나, 갈릴레오의 원운동 개념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고 타원 운동설을 정립한 그야말로, "틀린 것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진정한 혁명적 과학자의 자격이 있다고 단언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저 케플러가, 티코(이 책에서는 "튀코"라고 표기합니다. 그게 정확하죠) 브라헤와 갈릴레오라는 두 神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 뿐 같습니다만.

 

이처럼, 모든 이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히 다은 이론을 내어 놓음으로써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이런 말은 없습니다만 독자로서의 제 해석)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니,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론이 빠질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카라바조의 <바울의 회심>을 두고, 회심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빛"을 가득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보통 권위 있는 미술 평론가들에 의해 내려지는 그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거의 꿈보다 해몽이라고 될 만큼, 이 걸작을 놓고 풀어지는 설명은 저자 특유의 물리학사 해설이 주종을 이룹니다.

 

예컨대 저는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두고, "사실주의적 결함"을 들고 나오는 저자의 태도에서 과연 물리학자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총을 쏘는 군인들이 꼿꼿이 서 있느냐는 거죠. 물론 이는 저자의 편협한 주장은 아닙니다. 인상파 작가들이 처음 나올 때부터 받은 비판이 바로 그런 류였습니다. 마네는 처음부터 "그 꼿꼿한 인상"을 포착하여 전달하려 했던 것으므로, 아무 잘못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탁월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개인으로서 막시밀리안 1세(멕시코의)를 두고 저자가 너무 왜곡된 주장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황제로서 실권을 가지지도 못했고, 나폴레옹 3세의 농간에 놀아나 대신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뿐이었죠. 빈민과 약자에 대해 대단히 온정적이었고 굳이 사지로 가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남자답게 군주답게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좀 지나친 평가가 아닌가 했습니다. 물리학자는 물리학 이야기만 해야 하지 않았나 싶은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이 장에서 펼쳐지는 작용 반작용 설명은 대단히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사울의 죽음>은, 제 개인적으로 가장 탁월한 챕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전쟁터에서 보이는 무수한 창날을 보고 "벡터"를 떠올린다든가, 울퉁불퉁한 지평선의 완급을 보고 함수의 개념을 설명한다든가 하는 건, 어린 학생들에게 읽히면 참 유익한 설명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말 역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게, 벡"터"와 전쟁"터"를 갖고 벌이는 언어 유희가 일품이었네요. 어원적으로는 전혀 무관한 두 단어인데도 말이죠.

 

아쉬운 건, 그림 사이즈가 작아서 저자의 의도, 설명을 그림과 함께 대조해 가면서 읽기가 불편했다는 점입니다. 하긴 개인적으로는 그림 많고 텍스트 적은 책을 좋아라 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이 책에 대해 불만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입장이 다른 독자도 있을 것 같고요. 정 그런 분은 인터넷에서 해당 작품을 검색하면 큰 해상도의 파일이 쉽게 구해질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 드릴 것은, 이 책은 명화를 해설하는 책이 아닙니다. 정통적인 해석은 다른 책에서 알아 보셔야 할 것 같고, 이 책은 그림 하나를 구실(?) 삼아, 지난 물리학의 역사 자취를 짚어 가고, 바람직한 과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은근 강도 높게 설파하는 "과학책"이란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탈리아인이라서, "전화의 최초 발명자"를 두고 A G  벨만 꼽지 않고, (우리가 잘 모르는) 메우치(미국식 발음으로는 메유치죠)를 슬쩍 끼워 넣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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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지음 / 다섯수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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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라는 게 그래서 무섭습니다. 가톨릭 교회라고 하면 보수주의, 전통에의 완강한 집착 같은 막연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현존하는 종교 조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유지된 실체이니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것이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그렇게나 긴 시간 동안 마냥 변화를 거부하고 지냈다면, 아마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속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실제, 16세기 초의 로마 대 약탈, 19세기말의 이탈리아 통일 등, 교황청은 아예 그 존폐가 문제될 정도의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그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이어져 온 건, 끈질긴 생명력 같은 이유라기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 일반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열심히 적응해 온, 아니 그를 넘어 어쩌면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시대를 이끌어 온, 성직자들의 노력 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 그 역할은,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교황보다는, 진보적이고 열린 생각을 지닌 교황들이 보다 더 비중 높게 맡아 왔을 것 같아요.

 

이 책의 제목은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입니다만, 이런 비슷한 제목을 달고 있는 다른 책들과는, 그 보는 시야와 취지, 담고 있는 내용이 사뭇 다릅니다. 아마 이 교황, 호르헤 베르골료는, 지금까지 구교가 맞이했던 교황 중 가장 진보적 색채가 짙은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이 교황이 어떤 족적을 보이고, 어떤 업적을 남기고 가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뉴스에 의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자처럼 생전에 은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자들에게 시사한 적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씩이나 진보적인 인사가 교황직에 착좌(이런 용어를 쓰더군요)했다는 자체가, 교회사에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타원의 초점 중 하나로 놓고, 다른 하나의 초점을 보수 세력에 둔 후, 가톨릭 교회가 그려 나갈 타원의 반경이 앞으로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혹은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움츠려들지, 최근 한 세기 정도를 주된 범위로 잡아 교회 전반의 형편, 내력을 조명한 책입니다. 물론 교황 개인에 대한 여러 신변 사항,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 전임자인 대교황(아직 정식 호칭은 아닙니다만) 요한 바오로 2세 등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신변잡기가 아니라 보수-진보의 대립, 혹은 발전적 갈등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리와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혁 구도를 축으로 놓고 본 현대 가톨릭 교회사> 정도로 부제를 달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 책의 저자는 가톨릭계 언론 기관에서 주필로 오래 봉직했던 한상봉 선생입니다. 저자는 사제가 아니지만, 학문적 배경을 구교 관련 영역에서 갖춘 분입니다. 저자는 먼저 "현 교황은 공산주의자인가?"라는 당혹스러운 질문으로 책의 서두를 열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 같은 분이 그런 시각을 가질 리는 없고요, "현 교황처럼 온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인사에 대해서도, '공산주의자'로 손쉽게 매도하려는 세력이 교회 내에 엄존한다."는 논의를 열기 위함입니다. 진보적 분위기,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성직자에 대해 언제나 마뜩지 않은 시선을 주어 왔던 세력이 교회에는 상존해 왔고, 이는 물경,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활약하던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잘 나오듯, 가난한 이와 함께 하고 민중의 아픔을 지배층에 알리려는 움직임은, 언제나 이단으로 경원시되어 왔습니다. 아시시의 성인이 활약하던 시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리 오랜 시간을 끌지 않고 시성함으로써, 교회가 결코 변화의 움직임에 눈을 감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였습니다. 반면, 교회가 변화를 거부하고 타락한 소수의 책동에 놀아날 때에는, 프로테스탄트와의 대립 등 파국적인 결과를 맞이해 왔다는 점을, 저자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들며 암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의 관점은 그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는 언제나 빈민과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해 왔다. 지금의 교회가 가져야 할 사명 역시 그것이다. 너무도 단순 명쾌하지 않은가?" 마르크스의 명제 중에 유명한 것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가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쟁쟁한 명성의 해방 신학자들(예: 볼프)은 한결같이 지적합니다. "이 명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무엇이 다른가?"

 

저자는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평신도로서 그는, "용산 참사 등 민중이 억압받고 생존의 위기에 몰렸을 때, 교회 관계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고 묻습니다. 한국의 경우 예컨대 정진석 추기경 등은 현장에 몸소 나와 이들의 고충을 묻고 위로를 건넨 일이 전무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현 교황은 대주교 베르골료이던 시절, 나이트클럽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때, 누구보다 먼저 현장을 찾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사가 이제 세계 십 수억 가톨릭 신도를 이끄는 수장이 된 시점에서, 실천과 탈권위의 소통을 보이지 못한 고위 성직자들은 반성해야 하지 않냐는 게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 책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 강우일 대주교처럼 진보적인 인사도 한국 교회에는 존재합니다. 아니, 주필직 같은 중책을, 이 책의 저자처럼 진보적인 성향의 인사가 오랜 기간 동안 맡아 왔다는 사실부터가 무엇인가를 강력히 시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입견은 엄연한 현실 앞에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이 책은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저는 현 교황을 담은 여러 사진을 보면, 자애롭고 깊은 수양이 담긴 표정이 있는가 하면(저자의 평가로는, 현 교황이 외모 면에서도 아주 출중하다고 하십니다), 뭔가 수심 가득하고, 인간적인 불안이 짙게 배어나오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가 지극히 소탈하고 가식 없는 분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 교황으로서 그가 교회 내부의 반대 세력, 교회 외부에서 가해져 오는 심각한 위협, 부정 부패 등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그 전망이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걸 암시해 주는 것도 같더군요. 앞에서 인용한 "전임 베네딕토 교황처럼 조기 은퇴할 수 있다."는 언급도, 해석하기에 따라선 상당히 무거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교황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기보다, 내가 교황께 무엇인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성숙한 생각이 드는 가톨릭 신자라면, 이 책을 읽고 현 교황이 얼마나 어려운 입지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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