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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특허 표류기
이가라시 쿄우헤이 지음, 김해용 옮김 / 여운(주)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대한의사협회에서, 인간의 사망 판정 기준을 "뇌사"로 정하자고 공식적 입장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주요 일간지에서도 이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한 이유에서였는지, 이 발표를 1면 톱으로 비중 있게 다루었고, 그 중 한겨레신문의 만평에선 어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이가 "뇌 사려!"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컷을 담기도 했죠.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사법부의 공식 입장은 "심장사"로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편의"보다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헌법상, 그리고 실정법상의 최고 가치로 인정하는 데에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단호한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우리 국민, 시민들의 마음을 크게 안도하게 만드는 하나의 보루, 방벽으로 여전히 기능합니다.
2000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초안"이 비교적 치밀한 모습으로 완성되었음을, 기자 회견을 통해 전 세계에 공포했습니다. 이때와 인접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복제 동물에 관한 성과가 줄을 이어 발표되었고, 줄기 세포 연구를 통한 장기 대체, 난치병 치유의 가능성이 금방이라도 눈 앞에 현실화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죠. 그 무렵으로부터 대략 15년이 지났지만, 이런 연구가 갖은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당장의 희망을 줄 것 같은 성과가 딱히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유전자 해독에 퍼 부은 그 숱한 인적, 물적 노력이 다 헛된 것이었나?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몇몇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고, 바로 그 내용이 이 책 중에 나옵니다(에이즈와 천식의 치료). 인간 유전자의 97%, 아니 그 이상이 해독되었다면서, 고작 그 정도 성과가 난 것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그 해답도 이 책 안에 있습니다. 이 책은, 로버트 쿡-디간이 쓴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는 책에 대한, 20년 후의 속편, 혹은 화답을, 눈물 겹도록 인간적이고 대책 없으리만큼 물욕 없는 어느 일본 저널리스트, 방송인이, 우리 같은 일반인을 위해 써 낸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97%, 아니 그 이상이 해독되었다면서 왜 이렇게 난치병 치유가 더딘 것일까요? 생각 같아선 벌써 4, 5년 전에, 암, 에이즈, 신장병, 심장병, 요즘 떠들썩한 루게릭 병 등 거의 모든 치명적인 질병, 신체 질환에 대한, 완벽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처방이 나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게, 일반인, 문외한의 기대입니다. 실제로, 이 책의 1장과 2장은 에이즈와 천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동성애자들에게 직격탄이다 싶은, 그들 특유의 성생활 방식 때문에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병이 에이즈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문란한 관계를 가지면, 이 병은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가리지 않고 면역 체계를 파괴하죠. 심지어 수혈을 통해서도, 그리고 임신 중의 태아에게도 수직적 감염이 가능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특히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게 이 병입니다.
헌데, 주변의 파트너들은 이 무서운 병에 걸려 특수한 관리를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 유독 자신만은 이 무서운 HIV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한 무풍지대로 남았던 이가 있습니다. 뉴욕 주민인 화가 스티브 크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책에 명시적으로 나오진 않으나, 결국 이분도 동성애자였다는 말입니다). 이분은, 주위의 동료들이 다 이 병마의 겨냥을 피하지 못해 무서운 고통과 스트레스,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만은 가벼운 증상조차 경험하지 않고 있는 점에 의아해했습니다.
그는 연구소에 자원하여 찾아가 실험 대상이 되길 원했습니다. (책에는 "어느 연구소"라고만 나와 있는데, 이 연구소는 역시 뉴욕에 소재한 Aaron Diamond AIDS Research(http://www.adarc.org)입니다. 1996년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데이비드 호 박사가 바로 이 연구소의 창립자죠) 그가 제공한 유전자는 이후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문제는, 그의 인격적 존엄과 가치가 달린 이 유전자 정보가, 이후 여러 연구소들에 의해, 상업적 특허를 내는 데에 무차별적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여 약품을 개발한 연구소, 제약회사는 특허를 등록하여 많은 수익을 올렸고, 이 책에서 주된 비판 대상 중 하나인 벨기에의 "유로스크린" 연구소 역시, 이 유전자(CCR5)를 이용해 파생적 특허를 독자 출원하였습니다.
책에서는, 이 크론 씨가 분노를 표현했다고 적고 있습니다(저자는 NHK 프로듀서이며, <인체 특허>라는 제목의 다큐를 제작하여 당시 전혀 낯설었던 이 분야의 현황에 대해 대중의 경각을 일깨운 바 있습니다. 크론 씨는 당시 다큐에 출현하여, 이 같은 자신의 태도를 밝힌 것입니다). 그분의 주장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전자는 인류 모두의 자산이다. 그런데 왜, 특허를 얻어 낸 일부 기관만 독점적으로 그 혜택을 누려야 하는가?"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허라고 하면 대뜸 발명 비슷한 것을 떠올린다. 그런데 어째서 법 제도가, 인간의 유전자까지 특허 대상으로 하여, 일반의 접근을 가로막게 돕고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 문제는, 특허 제도, 나아가 지적재산권 제도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성질이기도 합니다. 어떤 혁신적인 지식, 발명 따위가 공개되면, 누구나 그의 혜택을 보게 하는 것이 문화와 경제의 발달에 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애써 처음 세상에 내 놓은 것이, "무임승차자"들에 의해 제한 없이 이용된다면, 그건 결국 "노력한 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죠.
그래서 각국의 특허 제도는, 1) 일단 최초 고안자에게 독점적 혜택을 주되, 2) 그 시한을 일정 기간까지만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애써 노력한 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다면, 이제 아무도 혁신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사회는 뚜렷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전망도 타당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이기심에 기대어 여기까지 놀라운 발전을 이루고, 물질적 풍요를 이뤄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본 법원은, 자국의 오노약품이라는 제약회사와, 특정 유전자 관련 이미 특허를 취득하여 일본에서까지 인정 받은 (위의) 유로스크린 간의 소송을 취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판결은, 오노 연구소의 손을 일부 들어 주었습니다. 판결 이유는, 특허를 위한 세 요건, 즉 산업성, 신규성, 진보성 중, 신규성 요건을 결여하였기 때문에, 유로스크린의 특허는 무효라는 것이었습니다. 신규성 요건이 결여된 건, 일본 내에서 이미 이 사항에 대한 더 앞선 시기의 공표(모 연구소의)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판결 역시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인즉, "인간 존엄을 해치는, 유전자에 대한 특허 출원 자체를 부인해야 마땅함에도, 고작 신규성 요건 하나의 결여를 이유로 유로스크린의 청구를 기각"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도 어느 일본 연구소가 일찌감치 이 발표를 하지 않았더라면, 유로스크린의 특허는 인용되었을 테고, 그것은 인간 존엄을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이 해로운 제도의 존속을 인정함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실용적 관점에서도,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부인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느 대학이나 민간 연구소가, 순전히 공익적인 목적으로 이 유전자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려 해도, 특정 기관이나 제약회사가 소유한 특허라는 이유로 이것이 불허된다면, 수많은 난치병 환자가 고통을 받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른 딜레마에 봉착합니다. 난치병 치유를 위한 신약은, 이를 개발한 회사에게 무제한의 이익을 주는 식으로 다루어져도 될까요? 이익이 없으면 연구 개발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처방이, 고가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환자들에게만 제공된다면, 이는 너무도 비인도적인 처사입니다.
유전자 특허 역시 같은 영역이죠. 특정 질병 치유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한 회사가,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얻고 이제 사운을 건 채 신약 개발에 나섭니다. 만약 신약 개발로 인한 막대한 이익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대규모 자본 투입을 통해 이런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회사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기능을 순전히 정부의 공공재 생산 영역에 맡기거나, 뜻있는 민간 연구소의 재량에만 의존한다면, 난치병의 치유는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더 요원해질 수도 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인격적 존엄을 담고 있는 유전자를 기꺼이 연구소나 제약 회사에 공여한 개인에 대해, "유전자는 인류 공용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역시 인권의 침해로 다루져야 한다는 거죠. "모두의 재산은 누구의 재산도 아니다"라는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셈인데, 적절한 이기심의 자극과, 인간 존엄의 수호 요지라는 상충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는 게 결국 관건이겠습니다.
일본이나 우리 법제와, 미국의 법제가 보호 범위 면에서 서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이번 애플과 삼성 간의 소송에서도 드러났지만, 미국은 그 보호 범위가 비교적 넓습니다. 이 책에서도 나와 있듯, 의료상의 특정 치료 기술마저도 미국은 보호대상으로 잡는 반면, 우리와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가치 판단상 간단히 다뤄질 성격이 아닙니다.
스티브 크론 씨는 작년 이맘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나이 66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