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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글쓰기를 부탁해 - 꿈과 끼를 찾는 십대를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한경화 지음, 유영근 그림 / 꿈결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최근에 도입된 "자유학기제"를 고려하여 짜여진 글쓰기 교재입니다. 저는 요즘 학생들이 맞게 될 가장 큰 정책상의 전환, 그리고 그 전환이 줄 혜택이 바로 "참여의 확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TV 어느 채널에서 한 여배우가 "참여"라는 단어에 풍성한 감정을 넣으며 발성하는 게 들리는데요. 이처럼이나 "참여"란 창의성 있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특별한 의의를 갖는 개념입니다. 어린 학생 시절부터 "끌려다니며 지식을 주입당하는 대상"이 아닌, 자기 힘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살아 있는 영혼으로 성장할 비전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조직화, 구조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어떤 동료 신입생이 "우리는 시청각 세대이다."를 선언하며, 지나친 부담을 주는 글읽기와 쓰기를 지양하려는 듯한 의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딴에는 그게 시대정신이었다고 여겼는지 모르며, 또 당시에는 "포스트모던"의 잘못된 수용, 오해가 그런 트렌드를 일각에서 부추긴 점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교육의 바른 방향은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글쓰기, 글읽기를 배제하고선 이뤄질 수 없다는 데에 다시 굳은 합의가 형성된 듯도 합니다. 수동적으로 시청각 컨텐츠를 소비하기만 하는 정신은, 참여와 창조가 시민의 덕목으로 요구되는 현대 민주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와 각성을 정리된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행복을 구가, 향유할 수 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영혼이 가장 불행하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테니 말입니다.

책은 정말 아무 부담 없이 누구나 열어 보고, 또 거기 쓰인 내용을 따라할 수 있는 포맷입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미국 학부생이 공부하는 교재로 수업을 받으면서 느낀 점이, 우리와는 너무도 달리 인트로와 본문이 내내 쉬운 말로 쓰여 있고, 독자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부르는 형식이었다는 건데요. 이런 책들의 핵심은 단원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연습문제"였습니다. 물론 지도하는 교수님이 꼼꼼하게 그 과제를 챙겨야 실효가 생기죠. 이 과정에서 창의력 전반과 전공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싹트고, 수업은 교수님께 끌려 다니는 게 아닌 학습자의 "참여와 각성"이 메인이 되는 방향을 갖춥니다.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교재들은 이처럼 중학생들이 보는 책조차도 이런 방향성을 가진다는 게 부러운 점입니다. 그냥 쉬운 게 다가 아니고, 아이들이 읽어가다 보면 저자들의 깊은 의도를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게 좋습니다.
1부는 "창의톡톡 글쓰기"라고 제목이 붙었는데요. 물론 포인트는 "창의"에 놓여 있습니다만, 주로 우리 현대인들이 직접 노출되어 있는 글쓰기 환경에 올바로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저는 이런 내용과 인스트럭션이 책의 맨처음에 놓인 게 의외였습니다. SNS에서 바른 덧글(댓글) 달기, 웹소설 감상하기와 나도 한 번 써 보기, 웹툰 창작하기(웹툰은 순수하게 쓰기의 영역이라기보다 그리기 활동이 결합되어 있음에도) 등이 주된 과제입니다. 기존의 경직된 작문 교육이 아닌, 아이들이 자신들의 실생활에서 가장 흔히, 그리고 직접 접할 환경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임할지를 "교육"하는 이런 포맷이 신선하기도 했고, 세상이 이처럼이나 바뀌어 가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2부부터는 어른, 기성 세대가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려가며 아이들의 글쓰기 과정을 먼저 고민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읽을 책이라고는 하나, 먼저 아이들을 지도할 위치에 있는 부모님, 학교 교사들이 읽어 보고 실천적 고민을 해 봐야 함은 당연하겠습니다. 시 쓰기, 시와 잘 어울리는 시화(詩畵) 완성하기, 기행문 쓰기 등이 제시됩니다. 특히 기행문을 내실 있게 쓰는 과제는, 변화한 교육 환경인 "자유학기제"와 결부되어 이전과는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먼저 내가 직접 방문하여 겪어 보고 싶은 타지, 타향을 선택하고,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내가 예상, 기대했던 바와 직접 체험한 환경이 어디에서 달랐고 독특한 감흥을 불렀는지 자신과의 밀도 있는 대화를 요구합니다. 인터넷이나 SNS 등 다양한 채널과 매개체, 소통 방식을 통해 격지의 풍광과 지방색을 미리 접하고 일정한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에서, 기행문의 쓰기 역시 이전과는 좀 다른 형식과 성취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아이 자신의 자아 성장과 만족이 최우선 과제임은 두말할 것도 없겠구요.

3부는 "글쓰기"를 위한 단원이라기보다, 현실에의 참여와 비판, 시민 의식의 성숙을 위해 "글쓰기"를 어떤 과정, 단계로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곳이더군요. 인용되는 교재로는 시사주간지 TIME도 나오고, 우리의 이웃과 먼 나라의 시민들이 주로 어떤 모순과 난관 때문에 어려움과 아픔, 상처를 겪는지 자세히 가르칩니다. 비판과 지적,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위해 어떤 덕목과 기술적 수단이 필요한지,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해 볼 것을 가르칩니다.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마냥 덮으려고만 드는 일본에 대한 비판도 있고, 게임과 스마트폰에 빠져 살면서도 그게 중독인지 모르는 청소년 자신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비판은 타자, 타인만을 향한 것이어서는 곤란하죠. 글쓰기가 바른 인성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인성 발전 과정 그 자체라는 점 다시 인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왠지 똑똑해 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이죠?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갖기 쉬운 고정관념인데, 아주 근거가 없지도 않습니다. 똑똑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글을 더 잘 써 나가게 되는 과정에서 학생 본인의 지성이 발달하게 돕는 게 이 책의 장점입니다. 바른 글쓰기는 바른 방법으로 학생의 지능을 균형 잡게 키우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책의 이 단원은 영화 보고 나서 감상 쓰기, 특히 마틴 루서 킹 2세의 그 유명한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등 시대를 바꾼 명연설문을 읽고 자신도 자신만의 연설문을 써 보기 등 재미있는 과제를 많이 부여합니다. 자유학기제 아래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참 행복할 것 같네요.
글을 쓰는 건 예컨대 입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면도 있지만, 글을 쓰는 활동이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고,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 지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고 분명한 과제를 부여하는, 실천적 - 미래 형성적 커리큘럼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챕터로 나뉜 다섯 가지 큰 제목이, 사실은 어른들에게도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인생의 과제를 "글쓰기"를 통해 정리해 주는 의의를 갖기도 하더군요. 청음에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초심을 되찾는다는 목적, 마치 <문장강화>에서 능숙하고 세련된 글쓰기를 가르치듯 기본기를 다듬어 보자는 목적도 있었는데, 읽다 보니 글쓰기는 그저 기술일 수 없는, 인간됨됨이 형성의 필수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먼저 꼭 한 번 읽어 보고, 자유학기제라는 축복된 환경에서 산뜻한 인생을 가득한 희망으로 설계할 아이들에게 권해 줄 만한 멋진 교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