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세가 - 역대 제후와 공신들의 연대기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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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신동준 선생님의 평에 의하면, 분량 면에서 이 사마천 史記 <세가>는 <본기>의 두 배이고 <열전>의 절반입니다. 중요성 면에서도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이미 대중화한 <열전>이나, 아무래도 미화, 가공, 예찬의 성격이 강한 <본기>보다도, 오히려 이 <세가>에서 우리 일반 독자들이 취할 만한 교훈이 많을 것 같습니다. <본기>는 특히 漢 고제를 다룬 서술의 경우, 승자의 역사로서 마냥 곧이곧대로 수용하기에는 꺼려지는 대목이 없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그는 최후의 승자였던만치, 그 놀랄 만한 처세와 용인의 기술은 현대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바가 적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史記> 전체를 통틀어, 만약 조직(회사) 내 정치 다툼에서 마지막의 승리를 쟁취하고 싶은 독자가, 주의 깊게 읽어야 할 행적의 위인을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이 고제 유방을 들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의 경우, 어떤 회사건 오너, 오너의 후계자 등이 누리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지는 못 합니다(비슷한 예가 최근 한 분이 있긴 했는데 결국 잘 안 풀렸죠). 이 때문에, 조직 내에서 2인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상을 점한 여러 "次上"의 성공자들이 남긴 행적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자 신동준 선생님이 "2인자들의 성공학"이라며 이 책에 대해 총평한 것은 그런 취지에서 비롯했다고 생각되네요.

<세가>는 제후의 지위에 오른 이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의 사적을 담은 기록입니다. 제후라 함은 중원의 최고 통치자에 의해 분봉되어 지방 각지에서 군주로 군림한 이를 대체로 가리킵니다. 초기에는 왕(주나라 왕은 帝로 불리지 않았다고 <사기 본기>에 언급되었고, 제가 쓴 리뷰에서도 이를 밝힌 바 있습니다)의 同姓 실력자(형이나 동생, 가까운 친척)들이 이 자리에 올랐지만, 이후에는 그런 원칙이 꼭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해당 지역에서 권력을 잡으면, 여러 명분을 만들어 주 왕실에 사후 승인을 받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죠. 춘추 전국 시대의 사정은 이러했으며, 漢 고제 유방에 의해 천하가 통일된 후에는 개국 공신, 그리고 일가 친척들이 제후에 임명되었습니다.

제후는 자신의 자리를 자손에게 세습시킬 수 있었으나, 그 자손들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거나 모반의 혐의를 쓰고 봉지를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이로부터  한참 후, 중화 제국의 통치 시스템이 성숙기에 이르면 황제가 임명한 관료가 지방을 다스리는 게 보편화되고, "제후국"이라면 사실상 중원의 통치권이 미칠 수 없었던 우리 고려, 조선 등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죠. <사기 세가>에서 다루는 제후는 이처럼 고전적인 의미의, 대륙 내 존재했던 지방 실력자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책의 맨처음에 <오태백 세가>가 등장합니다. 역자 신동준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제후의 전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기에, 이런 편집상의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는 취지입니다. 적장자(맏아들)가 있는데도 더 영특한 동생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자신은 먼 험지로 나아가 왕화(중화 문명의 혜택)를 널리 입게 함은 확실히 귀한 신분으로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림이겠는데요. 우리 역사로 눈을 돌리면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왕위를 이은 고사가 언뜻 연상되기도 합니다(만 배경상 차이가 크겠죠?).

역자 신동준 선생님은, 태백은 이름이 아니라 항렬의 표시일 뿐이라고 하십니다. 각주에서 <사기색은>을 인용하여, 태(太)가 항렬이고, 백(伯)이 이름이라는 취지이신 것 같은데요. 이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백중숙계"의 기호에 다소 어긋나기도 해서 흥미롭습니다.

오태백의 후손 중 지혜롭고 겸허한 처신으로 이름 높은 계찰이, 오나라 왕의 분부를 받잡고 천하를 순회하며 사자 노릇을 한 기록이 이어집니다. 노나라에 머물며 음악을 감상하는데, 이때 거론되는 곡명은 모두 그 유명한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에 실린 시가들입니다. 중국 고전 애호가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게, 같은 신동준 선생님이 번역하신 <완역 시경>이 올해 2016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소장하고 있기에 비교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계찰이 노나라에 머물며 음악 총평을 한 기사는, 이게 노나라에서 이뤄졌기에 노나라의 역사를 다룬 <춘추>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죠. 실제로 사마천 역시, 수백 년 전의 <춘추>를 원전으로 해서 이 부분을 저술하기도 했고요. 저본으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문장 표현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다른 리뷰에서 언급한 "교언영색"과 "교언선색"의 차이처럼, 사마천의 당대인 감각으로 자신의 시대에 잘 통하지 않는 용례다 싶으면 과감히 풀어 쓴 까닭입니다. 언어는 역사성(시대에 따라 뜻이 변천함)을 속성으로 가진 실체이니 말입니다.

마침 신동준 선생님이 완역한 <춘추좌전>도 있어서, 이 <오태백세가>를 읽을 때는 세 권을 함께 펼쳐 놓고 읽었습니다(김원중 역 <세가>와 정범진 판까지 합하면 다섯 권). 신동준 역은 언제나 한문 원문이 함께 실려 있기에, 춘추의 원문과 사시 세가의 원문이 어떻게 서로 같고 다른지를 대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 p20 이하에 나오는 곡명들은 <시경>의 순서와 같습니다. 다만 <위풍>은 그나마 이름이라도 거론하나, <조풍>은 본문에서 계찰이 듣지도 않았다고 하며 아예 이름 언급이 없습니다. "상소"와 "남약"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이 전혀 없는데(김원중 교수님 판에도 없습니다), <춘추 좌전>에는 본문 중 괄호 안에 해설이 실렸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하십시오(한길그레이트북스 제75권, p395 중간쯤). 이들은 악곡의 종류이며(서양 고전 음악에 비기면 교향악, 소나타, 환상곡 하듯이), 대무(주 무왕), 소호(은), 대하(하), 소소(순 임금) 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나눈 분류입니다.

다만 어떤 대목은 김원중 판이 더 친절한 부분도 없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팔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후주에서 "금석사죽포토혁목"라고 밝히고 있습니다(김, p63 후주 20번). 오음(=궁상각치우), 팔악 같은 건 그냥 상식으로 간주해서 신 선생님께서 생략하셨는지에 대해선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같은 구절인데도 같은 역자께서 아주 미세하게 다른 느낌으로 번역한 대목도 있습니다.

사심재, 도당씨지유民 근심이 깊다 <사기 오태백세가 계찰> - 반말
사심재, 도당씨지유風 생각이 깊습니다 <춘추> - 높임말

근심, 생각으로 각각 번역어가 다른데, 원문에는 "생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신동준 선생님 책은 한자 원문을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지요. 이는 뒤의 구절 何憂之遠也을 참조하면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은 여기서 근심이란 뜻입니다.

이 책 p22에는 "燕之巢于幕"이란 사마천의 원문이 나오는데, 그가 참조한 <춘추(좌전)>에는 燕之巢於幕上이라고 되어 있습니다(한길그레이트북스 제75권 p398:7). 于와 於는 그저 같은 말이지만, 아무튼 이렇게 서로 작은 차이를 보이네요. 신동준 선생님도 <춘추>에 上자가 더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어서 그 유명한,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 군주의 묘 근처 나무에 기어이 보검을 걸어 주고 떠났다는 계찰괘검(季札掛劍)의 고사가 나옵니다. 이 고사의 주인공이 바로 계찰이죠.

<제태공 세가>
p43 에 보면 제 태공이 사악의 후손으로 나오는데, 四嶽에 대해서는 <오제 본기>를  참조해서 읽어야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 <陳杞世家> p175에 보면 "泰嶽(태악)"의 후손이란 대목이 한참 뒤에 또 나옵니다.

p67 중간쯤에 보면 제 여공의 이름이 無忌라고 나오는데, 후대의 인물인 위공자 신릉군도 같은 이름이죠. 사기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고 배무기 교수님의 선친께서도 특히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아드님의 이름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강태공을 태공망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때 "태공"은 누굴 가리키는 걸까요? 김원중 교수님은 아마도 "태공"이 보통은 아버지를 가리킨다는 근거에서, 본문 중 설명 형식으로 "문왕의 아버지인 계력"이라고 하십니다. 신동준 선생님은 다소 모호하게 "선대의 왕"이라고 새깁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작년 이맘때쯤 쓴 이 서평을 참조해 주십시오.


제 태공은 물론 우리가 아는 강태공 그 사람입니다. 이 신동준 선생님의 책을 보면 "태공이 대략 100세에 죽자, 아들 정공 급이 즉위했다."(p47:3)라고 되어 있는데, 한자 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본기>에 보면 주 문왕이 유리에 갇혀 있으면서 "아마도 육십사괘를 만들었을 것이다"라며, <사기> 전체를 통틀어 흔치 않은 추측성 문장이 있습니다. 사마천이, 신뢰할 만한 기록에 근거하지 않고 세간에 전하는 바에 따라 기록할 때 보이는 태도지요. 이 때 "蓋 = 대개(大槪)'이겠습니다.

김원중 교수님은 이 를 문장 전체에 걸치는 걸로 해석합니다. "아마 태공이 죽은 지 백여 년이 되었을 때 아들 정공이 즉위했을 것이다."(김원중 판 <사기 세가>p74 중간쯤) 다만 당사자가 죽은 지 백 년이 지났는데 그 아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으므로, 이는 신동준 선생님의 해석을 좇아야 할 것 같네요.

<연소공 세가>
p141 중간쯤에 보면 유세가인 녹모수의 말 중에 "나라를 재상 子之에게 양위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김원중 판에는 정반대로, "옳다"고 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어느 분 주장이 옳을지는 독자들이 직접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p209 중간쯤에 나오는 삼진은 三晉입니다. 이때부터 전국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거겠죠.

<월왕구천세가>
신동준 선생님은 이 파트를 일러 사실상 "범리열전"이나 마찬가지라고 평합니다. 거의 망국 군주가 될 뻔한 구천을 도와 천하의 패자로 군림시켜 놓고도, "구천은 어려울 때는 몰라도 평안할 때 같이 영화를 누릴 위인이 못 된다"며, 나라의 반을 갈라 주겠다는 구천의 제의를 뿌리치고 제나라 등 타국으로 망명합니다. 빈손으로 시작해도 워낙 수완이 좋았기에, 가는 곳에서마다 사람을 모으고 큰 사업을 일으켜 억만장자로 부러울 것 없는 신분이 됩니다. 마치 셈 족의 시조 아브라함을 보는 듯합니다.

이 범리의 말년 일화 중 재미있는 게 있어 요점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 범리의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서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혀 사형 집행만 기다리게 됩니다.


- 범리는 막내 아들더러 "초나라의 장선생"을 찾아 그에게 황금을 주고 형을 구해 오라고 명합니다.


- 이 소식을 들은 첫째 아들이 "아버지께서 장자로서 나를 믿지 않으시니 분하다"며 자결 소동까지 벌이자, 할 수 없이 범리는 이 맏아들을 초나라로 보냅니다.


- 맏아들은 장선생을 찾아 부탁하고, 황금을 받은 장선생은 범리의 명성을 익히 알았기에 반드시 청탁 내용을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장선생은 맏아들에게 "즉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지만, 왠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맏아들은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 맏아들은 초나라에 머물며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자, 자신이 따로 챙겨 온 뇌물을 초나라의 다른 실력자에게 별개로 전달하여 일을 처리하려 듭니다.


- 한편 천문을 관찰하던 장선생은 몇 달 후 별자리가 적당하게 배치되자, 이를 핑계로 초나라 왕을 알현합니다. "징후가 심상치 않으니 큰 덕을 베푸셔야 하겠습니다." 장선생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왕은 곧 대사면을 베풀 것을 지시합니다.


- 맏아들이 뇌물을 준 다른 실력자는 이 사정을 전혀 모른 채, 맏아들에게 가서 "곧 대사면이 단행될 것 같다"며 귀띔해 줍니다. 맏아들은 괜히 장선생에게 거금을 썼다는 판단에, 장선생을 찾아가 "선생이 애 쓰시지 않아도 동생이 풀려날 것 같다"며 황금을 돌려 달라는 눈치를 보입니다.


- 장선생은 처음부터 돈 욕심이 없었으며,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재산가로 이름 높은 범리에게 평판을 얻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일이 잘 처리되면 그러지 않아도 돌려줄 생각이었던 청렴한 장선생은, 이런 맏아들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낍니다.


- 장선생은 다시 초나라 임금을 찾아갑니다.
"왕께서 대사면을 베푸시는 데 대해, 항간에선 범리에게 뇌물을 받은 소치라고 여깁니다. "
왕은 진노합니다. "내 어찌 범리 좋은 일을 시키겠소!"


- 범리의 맏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형이 집행된 동생의 시신만 수습하여 귀향하게 됩니다.


- 모두가 애통해하는 가운데, 아버지인 범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조용히 웃습니다. "맏아들은 나와 고생하며 함께 재산을 모은 애라 돈을 아끼는 성격이오. 하나 막내는 고생을 모르고 자란 터라 내가 시킨 대로 돈을 쓰면 그만이었겠지. 모든 걸 염두에 두고 막내를 보내려 한 것인데..."


<鄭 세가>
서문에서 신동준 선생님은 이 정나라에 대해 복잡미묘한 느낌을 서술합니다. 朝晉暮楚처럼 시세에 따라 강대국에 영합해야 하는 한심한 처지를 겪기도 하나, 정자산이란 명재상의 대에 이르면 대륙의 허브 국가로서 그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잘 살리는 능란한 수완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평하십니다.

공자와 달리 사마천은 안영을 좋아하고 정자산을 소홀히 기술했다는 게 신 선생님의 견해인데요. 과연 그런지 다시 이 책의 앞으로 돌아가 숙독해 봤습니다. pp.71~81(제태공세가)를 보면, 제 영공에서 제 경공에 이르는 시기까지 안영의 행적이 자세히 다뤄집니다.

p430에 보면 정 환공의 질문에 태사 백의 대답이 "제는 백이의 후손이다."이지만, 정작 <제태공세가>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어서 흥미로웠습니다. 

鄭君 乙이 보위에 오르고 한 애공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대목에서 이 파트가 끝납니다. 공교롭게도 전국시대의 출범과 맞물려 나라가 망하고, 이 다음부터 <조세가>가 시작되며,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간다는 의미에서 책의 정확한 정중앙을 이룹니다.

<趙세가>
시작 부분에 서왕모, 그리고 녹이 등 준마의 설화가 또 반복됩니다. 우리 나라 시조 중에도 "녹이 상제 살지게 먹여~" 운운하는 구절이 있죠.

참고로 정범진 총장님 책(까치판)에는, 비록 앞에서 몇 번 나온 개념이라 해도(서왕모라면 얼마나 자주 나왔겠습니까) 혹시 잊었을 독자들을 위해 처음 보는 이름처럼 몇 번이고 각주를 통해 설명해 주는 친절함을 보입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 趙盾 언급되는데, <진 세가>에 자세히 나온 것처럼 진양공을 잘 모신 명신입니다. 이름의 저 글자는 "모순", "순상지"에서처럼 "방패 순"이란 글자이지만, 자전을 찾아 보니 이름자로 쓸 때에는 "돈"으로 읽는다는군요. 김원중 교수님, 그리고 정범진 교수님 책에서는 "조순"이라고, 신동준 저자께서는 "조돈"으로 표기합니다. 그렇다면 앞의 두 책들보다는 이 책의 태도가 옳을 것 같습니다.

여기 보면 조돈은 나라가 어지러워질 걸 걱정하여 선군의 친동생을 즉위시킬 준비를 하는데, 후계자의 적모가 나타나 "적자가 살아있는데 선군(진양공이죠)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다른 이를 옹립하려 하십니까?"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대사가 신동준 선생님 책, 그리고 정범진 교수님 책에선 존대말로, 김 교수님 책에서는 반말로 나옵니다. 이 여성의 이름에 대해 다른 책에선 설명이 없는데, 유독 정범진 교수님 책에선 "穆嬴"이라고 각주를 통해 밝힙니다.

그런데 이 사항에 대해서는, 앞 <晉세가>로 다시 돌아가면, p300이하 본문에 태자의 모친 이름까지 "목영'이라고 나옵니다. 또 여기서는 목영의 대사가 반말 비슷하게 처리됩니다. 분위기를 보면 반말이 더 적합하게 느껴지네요. 조돈은 질책(김원중 교수님은 "견책'이라고 옮깁니다)을 받을까 두려워했다고 적혔는데, <晉세가>에서는 아무 설명이 없고 이곳 <조세가>에서만 그 주체가 "외척"이라고 밝힙니다. 이 역시 다른 책에선 설명이 없는데, 정범진 총장님 책에선 그 외척의 실체를 秦 왕실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설득력 있죠.

다만, 趙穿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신동준 선생님은 아무 부대 설명이 없습니다. 김 교수님은 본문 중에서 "조순의 사촌"이라고 작은 포인트 활자로 덧붙입니다. 이런 건 김 교수님 책이 편했습니다.

<공자세가>
p645:8에 보면, "공자가 노나라 재상의 직무를 대행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좀 재미있습니다. 학자마다 입장이 다를 뿐더러, 같은 신동준 선생님이 옮긴 다른 책에도 해석이 조금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공구가 노정공을 相禮했다."(<춘추좌전>3 - 한길그레이트북스 제76권 p406 중간) 
여기서 공구는 물론 공자의 본명입니다. 춘추 좌전 원문에도 禮는 없는데, 역자께서 과감히 번역문에만 삽입하는 태도입니다.

김원중 교수님 책의 해당 부분에는 "공자가 노나라의 儐相이 되었다."라고 옮기는데, 설명에서 "빈상이란 재상이 아니라, 의례적 상국 자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는 김 교수님의 같은 책 p661, <공자세가> 중에서 "재상의 일을 임시로 보고 있었는데.."라고 번역하신 부분과 다소 모순됩니다. "의례적"이라면 이름뿐이고 실무가 없는 자리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영어로 sinecure에 해당하는데, 당시 공자의 위상이 모국에서 그런 대접을 받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儐을 賓(손님 빈)으로 잘못 보시고, 客卿과 같은 의미로 착각하신 건 아닐까요?(이건 그냥 제 생각입니다만)

儐相이란, 고려나 조선사에 보면 "재상이 아닌데도 나라를 대신하여 대국과의 외교 현안을 맡아 처리하는 중직"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의례적"이기보다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입니다(이름은 높지 않으나 맡은 일이 중대함). 공자 역시 임금을 수행하여 대국에 가 업무를 잘 처리했다는 기술이 이어지는 걸로 보아, 신동준 선생님의 이 책 중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喪家之狗라 는 말이 있죠. 이걸 1) "초상집의 개(상갓집 개)"로 옮길 것인지, 아니면 2) "떠돌이 개(집을 잃은 개)"로 옮길 것인지는 예전부터 논쟁거리였습니다. 더군다나 이게 대성현인 공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니 말입니다. 이 신동준 선생님 책, 김원중 교수님 번역, 정범진 총장님 책 등 세 권 모두, 1)의 뜻으로 새기고 다른 부가 설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기> 전문가로 이름 높은 김영수 선생님(도서출판 알마에서 이분 번역이 책으로 나와 있습니다)이나, 한학자는 아니지만 박경귀 교수님 같은 분은 2)가 옳다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조국인 노나라를 떠나 전국을 유세했지만 정착하지 못했던 당시 공자의 처지를 볼 때 저는 2)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1)은 아마 조선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실제로 초상집만 돌아다니며 걸식하던 에피소드가 낳은 오해가 아닐까요.

<전경중완세가>
제 나라는 본디 강태공의 봉지여서 姜姓 呂氏의 땅이었지만 대략 전국 시대 초기에 이 전씨가 사실상의 왕위 찬탈을 행합니다. 따라서 이 파트는 <晉세가>의 후편입니다. 원래 田씨는 陳나라의 陳씨였는데, 이 제나라에 망명한 후 성이 바뀐 경위가 나와 있습니다. 앞부분 <陳杞世家>와 유기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p595 각주에 보면 陳 여공의 이름은 "他"가 아니라 "약"임을 앞에서 언급했다고 하시는데, 그 앞이 구체적으로 어디냐면 p174의 각주입니다.

개인적으로 세가에서 가장 관심 깊게 본 파트가 <유후세가>였 습니다. 장량은 반 신화적인 인물로 후대인의 뇌리에 남아서이기도 한데요. 이 책을 보면 신선이 아닌, 피와 살을 가진 현실적 관료, 책략가로서의 면모가 잘 나와 있습니다. 그는 알고 보면 초한 전쟁기에 활약한 누구 못지 않은 명문 거족의 후손이며, 용모 또한 빼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그가 흔쾌히 유방 같은 근본 없는 건달의 막하로 들어간 건 역시 장량 자신이 사람 보는 안목이 빼어났음을 말합니다. 그의 신출귀몰한 행적은 제갈량을 방불케 하는데요, 마지막 후계자 책봉 문제로 고제가 고민할 때, 장량이 선뜻 나서서 四皓(네 명의 은자)를 불러들여 대세를 굳힌 대목이 볼만합니다. <열전>의 관련 대목과 함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고제 유방이 천하통일을 이룸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로 소하를 꼽았고, "사냥개가 공이 큰 게 아니라 그 개를 묶은 줄을 올바른 방향으로 던질 줄 아는 자가 공이 크다"며, 논공행상을 두고 의론이 분분할 때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의 전략적 비전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한데요. 다만 저는 소하가 동향인 패현 출신으로서 그의 먼 일가 친척이나 진배없었던, 핏줄만큼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던 이유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소하는 오늘날로 치면 "보급의 달인"이 었습니다. 전쟁에서 병사들에게 군량과 무기를 대는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루말할 수 없죠. 소하는 특히 병력이 전멸해도 끊임 없이 보충병을 모집하여 전선으로 보냈는데, 행정 수완이나 임기 응변이 탁월해야 가능한 업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제국의 승상 자리에 올라서도 행정의 기준과 만능의 매뉴얼이라 부를 만한 것을 확립했죠. 이후의 조참이 "나는 소하가 닦아 놓은 길만 조심히 걸으면 된다"고 했을 만큼입니다.

이런 소하도, 한 고제가 지방 반란을 평정하러 서울을 비웠을 때 의심을 샀는데, 일부러 폭정을 펼쳐 "저자가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나라를 가로챌 야망은 없나 보다."하고 유방이 안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꼭 그렇게 속였다기보다, 정치 고수들끼리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제스처라고 보면 되겠죠.

조참 파트를 보면, 고제에 의해 마차 밖으로 내던져져 어린 나이에 죽을 뻔한 그 혜제가 승상 조참의 아들에게 "내가 물었다고 하지 말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저러는지 그 속을 좀 알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조참은 나중에야 황제의 근심을 알고 "폐하께서도 고제만 못하시며, 저 역시 소하만 못합니다. 괜히 일을 벌이는 것보다 그저 전철만 밟는 게 오히려 현명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이걸 보면 혜제 역시 현명한 군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일찍 죽었다는 게 안타깝죠.

<진승상세가>
p847 에서 "용모만 관옥과 같을 뿐 속은 텅 빈 자입니다."라고 해석합니다. 이에 대해 정범진 선생의 책은, 각주를 통해 "관옥"의 뜻이 뭔지 설명합니다. 한편 김원중 교수님은, "관에 달린 옥과 같을 뿐으로 그 속에 꼭 재주가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군요.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平 雖 美丈夫 如冠玉耳 其中未必有也

역자 신동준 선생님이 "2인자들"이라 칭한 건, 자신의 기량만으로 지방의 통치권을 결국 보장 받은 여러 "예비 覇者", 그리고 고제 유방을 받들어 지존의 자리에 올리고 자신들도 부귀 영화를 누린 "끝까지 팽 당하지 않고 성공을 이어간 2인자"들 에 주목한 평가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회음후 한신이나 팽월 같은 이는 하늘이 점지했다 할 뛰어난 자질을 갖고 태어난 일세의 효웅이었지만, 세속적으로 부러움을 받을 만한 성공 사례는 못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포나 번쾌 역시 영웅들이었고 끝도 대체로 좋은 편이었지만, 인신의 경지로 극에 달한 영화를 누리진 못 하였기에 역시 <세가>에 실리지 못 하고 <열전>에서나 행적을 볼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우리가 <세가>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성공"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위인들의 생생한 기록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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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사서(正史書)이건 본기(本紀)는 그 뼈대를 이루는 정수입 니다. 더군다나 사마천 저술 <사기>의 "본기"는, 본기 중에서도 가장 앞선 원형을 이루는 기록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마천의 저작을 읽으며 <열전>만 편애하고 <본기>를 정작 빼먹는다면, 이는 용의 몸통을 근사하게 다 그리고서 눈동자만 비워 두는 우를 범함이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

史記의 <본기>는 생각보다 재미 있습니다. 종래 한국어로 된 번역서는 대개 <열전>에만 관심을 두어, 정사서의 중핵인 <본기>는 정작 발췌역조차 드물게 출판되었습니다. 한문 독해가 안 되는 독서인들은 그저 아쉬운 대로 <초한연의>(소위 "초한지")등 통속 문학에 의지해 이 시절 역사를 탐독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리뷰에서 자주 언급하는, 전 고대 교수 홍석보 선생님의 역본도 그나마 <열전>의 초역(抄譯)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정범진 전 성대 총장님 외 중문과 교수님들의 귀한 노력으로 완역이 이뤄진 게 처음이고, 이후 좋은 역본들이 계속 나와 독자들로서 행복한 고민에 젖게 했죠. 사람들은 한국어 완역본을 읽고 나서야 이 <본기>가 기대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역사서는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접근하는 게 원칙입니다만, 사마천의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 "그저 재미로 읽어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을 갖지요.

이 책의 시작은 <오제본기>입 니다. 우리 현대 독자들의 시각은 여전히 "오제 시대"나 "하 시대"를 두고 역사의 범주에 들어오긴 어려운, 신화나 전설의 영역으로 치부하기가 십상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아버지"인 사마천이 그 까다로운 기준으로, "삼황"을 애써 논외 대상으로 삼음과 동시에 이 두 "시대"를 자신의 사서에 넣은 까닭이 무엇인지 정도는 겸손되이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최소한, 이를 신화라 쳐도 이후에 전개되는 중국 역사의 핵심 맥락을 잡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초 개념 정도로는 여겨야 하죠. 예컨대 제곡이 누군지 모르면 秦 황실의 근원을 언급할 때 논의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이 파트는 신화의 체계로 간주하더라도, 그 큰 줄거리를 잘 읽고 머리 속에 정리를 해 둬야 중국 역사 전반을 개관하는 교양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학자들이 오제를 칭송한 지 오래되었다"라는 문장인데요. 아마도 "삼황은 사실무근이라 쳐도, 오제에 대한 행적은 학자들조차 가벼이 넘길 대상은 아니었다"는, 어떤 학문적 근거를 사마천이 애써 제시하고자 했던 의도는 아니었을지요. 원문(신동준 선생의 이 번역본은 한문 원문이 함께 실려 있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자세한 건 <사기 열전> 1권을 두고 쓴 제 리뷰를 참조해 주십시오)을 보면 學者多稱五帝 尙矣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두고 예컨대 김원중 교수님 같은 분은 "학자들이 대부분 오제를 칭찬한 지 오래되었다."라고 옮깁니다. 원문의 자를 살린 소치입니다.

p36을 보면 페이지 내내 "여와(女媧)"라는 신화적 존재가 언급됩니다. 삼황을 누구누구로 꼽는지에 대해 학자들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춘추 오패"가 누군인지를 두고서도 여러 견해가 엇갈립니다. 복희씨, 신농씨에 이어 수인씨를 빼고 이 여와를 넣는 입장을 신동준 선생님은 소개합니다. 다만 딱 한 군데에서 "여화"로 오자가 난 게 있습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p173:4의 여화(女華)와 잠시 혼동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하 본기>에서 우리가 잘 아는 우왕이 "백우"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때의 "백"은, 당요, 우순 할 때처럼 성씨라기보다, 方伯이라고 할때의 백이라는 설명이 p151에 친절히 제시됩니다.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은 이처럼, <삼가주> 등 다양한 문헌을 동원한 철저한 비교, 비평적 분석에 기반하 기 때문에, 심도 있는 공부를 원하는 독자에게 아주 유용합니다. 다만 이 대목 관련해서는 김원중 교수님 판에도  p156(<주 본기>) 후주26번에 비슷한 언급이 있긴 하더군요. 우왕의 성은 似씨라고 이 파트 맨 뒤에 태사공이 직접 설명합니다.

하 본기 끝에 은의 사실상의 시조 탕이 언급되는데, 탕의 뜻에 대해, 김 원중 교수님 책은 "폭군을 방벌함"이란 뜻이 포함된다고 하나(p86 각주 7) 신동준 선생님은 이에 대해 딱히 언급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대목이 차라리 좀 이례적으로 다가올 만큼, 신동준 선생님의 책에는 역주가 많이 실려 있죠. 이 부분에서, 말을 교묘히 하고 낯빛을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라고 하는 탕왕 측의 말이 나오는데, <논어>에서 "교언영색"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표현이지만, 이 <사기>의 구절은  巧言色(교언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뜻은 서로 통합니다. 제가 좀 궁금했던 건 畏 자를 과연 "두려워하다"로 새겨야 하느냐였는데, 신동준 선생님이나 김원중 교수님이나 태도가 같았습니다.

p80 중간쯤 吉哉라는 원문을 두고, 신동준 선생님은 "모든 일이 잘 처리된다."고 옮기시고, 김 교수님은 간략하게 "길하다"로 번역합니다. 그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 日宣三德에서, 원문에는 주어가 없으나, 신동준선생님은 "경대부(경+대부)"라는 주어를 삽입합니다. 이렇게 주어를 넣으니 독자 입장에선 문장의 뜻이 훨씬 잘 통하더군요.

하나라를 망하게 한 妹姬(매 희, 정확하게는 계집 녀 변에 끝 말 자를 쓰는데 일단 이 글자로 적겠습니다), 혹은 말희라고 다들 들어 보셨을 텐데요. <사기 본기>에는 이 인물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신동준 선생님도 언급하시는 좌구명의 <국어>라든가, <죽서기년>에 나오는 인물이죠.

<은 본기> 이어지는데, 신동준 선생님 책에는 "탕왕 본기+ 은왕 본기" 두 파트로 나뉘어진 체제입니다. "은왕"이라는 군주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은나라의 여러 왕에 대한 기사를 그 제목 아래 다 포괄하는 태도입니다. 끝에는 우리가 잘 아는 요녀 달기, 그리고 주지육림의 고사가 나오는 건 물론이죠. 은 시대부터 우리 현대인도 모두 동의하는 본격 "역사 시대"가 열려집니다.

<주 본기>로 넘어가면, 이 책은 후직 본기, 주성왕 본기, 주목왕 본기, 주유왕 본기, 주여왕 본기, 동주 본기, 난왕 본기 등으로 소제목을 나눕니다. 물론 주나라에 이들 임금만 있었던 건 아니고, 각각의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임금을 뽑아 이름을 붙이신 것 같습니다. 김 교수님 책에는 꺾은 괄호를 써서 군명과 통치 연도를 표기하는데(p157 이하부터 진 본기까지 내내 이렇습니다), 이는 <표>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신동준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한문 원문에 충실하게 줄글 형태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주 무왕이 소위 천명을 받들어 역성 혁명에 성공했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불만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이 이슈 관련해선 역시 <백이열전>을 참고해야겠죠). 원문을 보니 其後世貶帝號 號爲王이라는 대목이 있던데(이래서 신동준 선생님 책이 좋습니다), 전에 "제"라고 부르던 걸 주나라부터는 "왕"으로 낮춰 불렀다는 뜻입니다. 원문에 (폄)이라고 되어 있어 반감 수위가 높았다는 게 짐작 가능하며, 식자층의 불만이 대단했다는 점도 추측 가능하죠.

주 무왕의 말 중 "하늘이 주나라를 보우한 덕분에"란 대목이 있어서 원문과 대조해 봤습니다(애국가 가사 일부와 겹치기도 하므로). 定天保인데요. 이 구절을 김 교수님은 좀 다르게 옮깁니다. "분명 하늘이 보우하신다면". 가정법이죠. 定 자를 어떻게 새기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 같습니다.

신동준 선생님 번역이 빛나는 대목이 또 나오는데요. 夷羊(이양)을 어떻게 새기느냐의 문제입니다. 김 교수님 책엔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큰 사슴"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동준 선생님은 <사기집해>를 인용, 이를 "괴물"로 옮기시는데요. 바로 뒤에 해충의 피해가 나오므로 이 번역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왕이 동편에 조성한 후 떠난 곳은 洛邑(낙읍)인데, 한참 후 견융의 침입으로 주 평왕이 도읍한 곳은 雒邑(낙읍)입니다. 이 둘은 발음도 같고 서로 통하는 한자이므로 동일한 지명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책에도 이 점을 지적한 대목이 없어서 독자로서 제가 그냥 써 봤습니다.

p140에 보면 小醜(소 추)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이를 신동준 선생님은 "미천한 것"으로 옮기십니다. 저는 酋長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아들에게 자네라는 말을 써 가며 밀강공의 어머니가 주 공왕에게 세 여자를 바치라고 권하지만, 아들은 듣지 않다가 결국 화를 당하는 고사입니다.

비운의 주나라는 난왕 때 또다시 동주와 서주로 갈리는데, 이 부분 역주를 보면 "동주는 하남, 동주는 공 땅에 도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기색은>을 인용하신 친절한 설명입니다. 다만 앞의 "동주"는 문맥상 "서주"의 오타가 아닐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해 봅니다.

주 무왕이 자신의 조부인 고공단보(소위 "태공") 시절부터 그토록 긴 공덕을 쌓아 세운 나라였건만,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진(秦)나라에게 기어이 동과 서가 모두 망하는 모습을 보며 비감이 서렸습니다. 한나라 때 정국이 안정된 후 그 후손을 찾아 봉사하게 했다고 하니, 한 왕조가 넉넉하고 합리적인 통치 방식으로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秦 본기>로 넘어가서요, 지난 번 <사기열전> 2권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백세후"라는 단어는 임금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동의어 관련해서 이 책 p189 이하 역주에선 불교 용어까지 총망라하며 아주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사기>라는 역사서를 즐겁게 읽는 외에 이런 특별한 교양 사항까지 익히는 유익함이 따르는 좋은 예입니다.

"결초보은" 이란 고사성어가 있죠. p188의 역주에는 이것 관련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신동준 선생님이 역시 번역한 <춘추좌전> 1권(한길그레이트북스 제74권. 이 책도 한문 원문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p506 중간 부분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궁금해서, 제가 소장한 책을 일부러 찾아 봤네요).

p203에는 진 애공 관련하여 오왕 합려, 오자서의 기사가 언급됩니다. 역시 <열전> 1권의 해당 파트와 함께 읽는 편이 유익합니다.

p206엔 "여공공"이란 통치자가 언급되는데, 이 사람 이름은 厲共公으로 씁니다. 역시 한문 원문 대조가 가능한 책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입니다.

<진시황 본기>로 넘어가면, p230에 장신후 노애의 반란이 나옵니다. 이는 물론 <열전> 1권의 "여불위 열전"을 찾아 보셔야 하는데요. 제가 재밌게 읽은 건 그것보다는 저 "노애"의 이름자와 관련된 사항입니다. 본디 노애는 거대한 그것의 크기로 조태후의 사랑을 받은 "가짜 환관"인데요. 이 이름이 홍석보 선생의 <열전>에는 "노애"로 적혀 있다가, 정범진 전 성대 총장님 책에서부터 "규애"로 표기되었고, 그 당시 조선일보 어느 칼럼에서도 이를 "규애"로 적은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님 책, 그리고 이 신동준 선생님 책에는 다시 "노애"로들 표기합니다. 두 분 다 이에 대해서는 주를 통해 딱히 언급이 없으셔서 그냥 그런 줄 알고 넘어갔습니다.

p233 이사의 죽음(이사열전), p236 화양태후 (여불위 열전)에 대한 언급도, 이 <본기>뿐 아니라 <열전>의 해당 기사를 함께 읽어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겠죠.

p240에선 드디어 황제, 폐하 등 명칭의 유래가 나옵니다. 이사 등이 박식한 배경으로 통일 군주의 위엄을 세우려 드는 대목인데, 역시 우리 독자들이 관심 깊게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p280의 역주에 보면, 악질 환관 조고의 입을 빌려, 천자가 짐이라고 칭하는 건 "조짐"에서 온 것이라고 강변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종래 홍석보 선생님 등의 책에는 이를 "궤변"으로 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동준 선생님은 이를 두고 "비록 조고의 말이기는 하나 탁견이다"고 평하십니다. 이 대목의 원문은 固聞不聲인데, <열전>의 해당 파트에는 但以聞聲 羣臣莫得見基面라고 되어 있습니다(<사기열전> 중 이사열전). 역시 원문에는 조짐兆朕이란 말 자체는 없습니다만, 전문가들은 일종의 언어 유희이기도 한 "조짐"으로 새기는 데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p288, 자영(3대 황제)의 정체에 대해서 다른 학자들은 그닥 언급이 없는데, 신동준 선생님은 각종 고증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p290에 보면, 三晉이 아닌 三秦의 유래가 나오는데, 雍, 塞, 翟 땅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항우의 이름이 슬슬 언급되기 시작하죠. p291에 보면 가생의 <과진론>이 전문 인용되는데, 신동준 선생님은 여기 대해 후세의 가필설을 제기합니다. 역시 <가생열전>과 함께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항우 본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가 많을까요? 신동준 선생은 이에 대해 "성공학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실패학'의 전형이 라는 점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는, 남들보다 압도적인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도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나? 이 물음에 대해 거의 모든 답, 전형적인 해당 사항을 지니고 있는 위인이란 거죠. 그러나 그는 낭만적이고 귀족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내 보인 까닭에, 후세의 문학가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미인의 고사나 그 유명한 사면초가 등에 대해, 신동준 선생님 특유의 명쾌한 비평으로 여러 다른 견해가 소개되니 해당 역주를 꼼꼼히 읽어 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사면초가"가 아닌 "사면 제가"였다는 일본인의 주장 등)

p344에 보면 범증이 항우에게 화를 내며  "어린아이와는 대사를 논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며 개탄하는 대목이 있는데(이때 그냥 항우가 유방을 잡아 죽였으면 천하가 자기 것이죠. 마치 장개석이 모택동을 못 죽이고 그냥 보낸 것처럼), 원문은 竪子, 즉 더벅머리라는 뜻입니다. 이 비슷한 게 <역생열전>에서 유방이 역생더러 외치는 욕설 중에 竪儒라는 게 있는데, 이걸 신동준 선생님은 "어린 선비놈아!" 로 옮깁니다(열전 2권 p396).  라는 글자가 젊은이를 비하하는 말 같긴 한데, 문제는 역생이 바로 다음 대사에서 "나이 든 사람을 앉아서 맞이해서는 안 되오"라고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는 겁니다. 독자로서 이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참고로 김 교수님 책엔 "어린"이 빠져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의문이 해결 안 되네요.

<고제 본기>로 넘어가면, 그의 이름이 정확히 季가 맞느냐는 논의부터 해서, 태공(유방의 부친)이 아들 딸린 과부를 첩으로 맞은 후 또 아들을 봤다는 둥 재미 있는 견해들이 역주를 통해 제시됩니다. 이 역시 정범진 총장님 책 등 여러 번역서에서 취하는 편제지만, 신동준 선생님 책이 가장 내용이 풍성하더군요.

pp.364~365 각주에 보면, 유방의 약속 파기를 교묘하게 장량과 진평 탓으로 돌린다는 신동준 선생님의 날카로운 고증이 있습니다. 유방은 이 외에도 자기 친자식을 마차가 빨리 달리기 위해 밖으로 밀어버린다든가, 소하, 장량 등의 코칭을 받고 급하게 태도를 바꾼다든가 하는, 온갖 희극적(혹은 비정해서 비극적)인 모습을 다 드러냅니다. 시간이 없어 꼭 한 파트만 챙겨 봐야 한다면, 이 <고제 본기>를 선택해야만 할 만큼 재미있죠. 정사서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될까 싶을 만큼.

사기만 독특하게, 제위에 정식으로 오른 적도 없던 여태후를 따로 본기에 편제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태후 역시 남편에는 많이 못 미쳐도 건국에 큰 공헌을 한 걸물이니만치 흥미로운 기사가 많죠. 척 부인을 "인체(사람돼지)"로 만든 고사라든가... 휴,...

문제, 경제, 무제 본기는 반고의 <한서>, 그 중에서도 <창읍왕 열전> 같은 대목과 함께 읽으면 재미가 더합니다. 사마천이 직접 모신 군주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대하는지가 포인트죠. 이 책 말미에는 <보임안서>가 따로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다른 역본에는 없는 귀한 자료입니다(김원중 선생님 책에는 <書>의 부록으로 편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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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열전 2 - 인물들의 흥망사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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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김원중 교수님 판을 먼저 읽은 분들은 알겠지만, 열전 파트가 장승상열전을 기준, 1-2권으로 딱 나눠져 있습니다. 이 신동준 선생님의 번역본도 태도가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한 제국의 토대가 잡히기 전의 양상(그리고 그 속에서 활동한 인물들)과, 이후 소위 시스템이라는 게 제 꼴을 갖춘 후의 시대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우연한 편의성"이 갖춰져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2권도 신동준 선생님만의 장기, 역량, 매혹성이 유감 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자세한 건 제가 쓴 1권 리뷰를 참조해 주십시오). 1권보다 출현 빈도는 약간 낮아진 느낌이지만, 역시 (좀 과장하자면) 넘겨도 넘겨도 역주가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그 역주들은 첫째 난해한 제도사적 명칭에 대한 해설(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여러 정상급 권위자들의 학설을 원용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제는 한국에서 이 신동준 선생님도 그 반열에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만), 둘째 <사기 열전>을 넘어서 한문 고전으로 된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할 지 그 지침이 되는 여러 원칙. 크게 보아 이 둘이 역주를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사정 없이 제시됩니다. 사정이 이렇기에, 공부 욕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피해갈 방법이 당최 없습니다. 물론 그런 부수적 탐구가 아직 어려운 독자라고 해도, 신 선생님 특유의 정확하고 힘 있는 문장으로 구성된 본문만 읽어 내려가면 그만이죠.

역주의 힘이 여실히 느껴지는 이 멋진 역본. 그 구체적인 예를 지금부터 좀 들어 보겠습니다. <만석장숙열전>에 보면, 음중누설(陰重不泄)의 뜻을 놓고 제법 긴 설명이 이뤄집니다. 다른 역본은 아예 한문 원문이 실려 있지 않으므로, 역자의 판단 외에 다른 "가능성"을 우리 독자가 접하는 게 원천 차단되어 있죠. 신동준 선생은 일견 하찮아 보이는 이 대목을 두고도 이처럼 세심한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이 구절을 놓고는 종래 삼가주 등에서 의견이 엇갈려 왔는데, 1) 말이 무겁고 누설하지 않는다. 2) 생식불능이다. 혹은 생식기에 큰 문제가 있다. 등입니다. 전혀 양립할 수가 없을 것 같은 이런 해석이 대립하는 이유는, 사마천처럼 비교적 직정을 토로하는 저술가의 문장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정사서란 에둘러 말하는 기조를 유지하곤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아 뜬금없는 풀이인 것만 같아도, 바로 이어지는 뒤의 문장을 보면 2)의 풀이가 훨씬 적실성 있게 와 닿는다는 취지인데, 독자로서 정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본디 고전을 해석함에 있어선 1) 문자 그대로의 풀이, 2) 도학적, 경학적 해석, 이 태도가 대립합니다. 근래 이르러(라기보다 이미 해방 후를 넘기고서는) 1)이 대세가 된 게 한국에서도 오랜 실정입니다. 신동준 선생님도 예외가 아닌데, 그의 <시경> 완역본에서도 이런 태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존경할 만한 인물을 평하고 전(傳)하는 이런 기록에서, 가급적이면 대상자의 빼어난 미덕과 인품을 논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싶지만, 현대에 중요한 건 사마천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그 진의를 탐구하는 게 일차 과제입니다. 참고로 김원중 교수님 판은 이 책과 달리 전자로만 새깁니다.

사마천이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았던 유파라고는 하나, 유림열전은 사가의 공정한 태도로서 자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효문황후, 즉 세간에서 말하는 "두태후"는 워낙 실권자로 군림한 기간이 길었기에 여러 기록에서 등장하는데요. 이분이 원생(이 책과 김원중 교수님 책에는 원고생이라고 나옵니다)에게 황로학(쉽게 말해 도교 사상입니다. 도교로 자리를 잡는 건 위진남북조를 거친 후이지만)의 평가를 구하자, 원생은 대번에 "그건 무식한 노복들의 수작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두태후는 진노하여 원생을 돼지우리에 집어 넣고 성질 사나운 짐승에 의해 상처를 입거나 죽게 하는 벌을 내립니다...

이 대목에서 미묘하나마 번역이 여럿으로 갈리는데요. 제가 위에 적은 원생의 대답은 홍석보 교수님 판본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김 교수님과 신동준 선생님은 "노복"이 아니라 "노비"라고 옮기십니다. 두태후가 국가 인재 중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만큼 중한 벌을 내린 이유에 대해, 김 교수님과 신동준 선생님, 그리고 그 외 현대 학자 거의 대부분은 "두태후가 개인적으로 황로학을 선호했는데 이에 대해 거침 없이 폄하하는 발언을 한 탓"으로 새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홍석보 교수님 해석에 더 기울고 싶은데요. 그는 "두태후가 출신이 미천했으나 대(代)왕 시절의 문제(文帝)에게 잘보여 후궁 출신으로 황후에 오른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해설했는데요. 저는 이 학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요즘에 나오는 책엔 이 설을 거론하는 분이 안 보입니다. 참고로 이 대목에 나오는 고사성어가 그 유명한 "곡학아세"입니다.

p311에 보면 "백세후" 라는 표현을 두고 신동준 선생님이 여러 동의어를 제시한 대목이 나오는데, 역시 고전 공부에 관심 있는 분들에겐 너무도 큰 도움이 되는 설명입니다. 이 百世後는 <사기 본기> 고제 파트에도 또 등장하는데, 아마 여태후의 한 마디 중 인용되는 대목으로 귀에 익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폐하의 백세 후(곧 죽을 사람인데도)에 재상으로 누굴 기용하오리까?" "(병으로 다 죽어가면서)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요." "황공하오나 그 다음은요?" "그 다음은 당신이 알 바 아니요." 나중에 본기 리뷰에서 언급하겠지만, 정말 숙연하면서도 한편으로 큰 웃음이 나오는 대목입니다.("이 여편네야 니가 그 다음까지 왜 묻니? 언제까지 해먹을 생각인데 지금?")

P777에 보면 역주에서 "약(若)이 급(及)으로 쓰인 거의 유일한 용례" 라고 풀고 계십니다. 제가 과연 그런지해서 자전을 두 권 살펴 봤는데, 역시 "급(及)"의 용법이 나와 있더군요. 여기서 及은 and의 뜻이죠. 이런 공부는 책을 통해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이 맛에 신동준 선생님 책을 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흉노의 공격이 갈수록 심해지자 여태후는 골머리를 앓습니다. 이게 근래 대두한 "거울 제국 이론"에 의해 설명이 됩니다. 농경 문화권이 분열된 상황에서는 개별적 습격이 유목 민족에게 유리하나, 일단 거대 통일 제국이 들어선 후에는 유목민들도 함께 큰 정치단위를 이뤄 대응한다는 취지죠. 여태후가 즉시 흉노를 토벌할 것을 논의하자, 제장(諸將)들이 만류했다는 기술이 <흉노열전>에 나오지만, 같은 책 <계포난포열전>에는 이와 서로 맞지 않는 대목이 있습니다. 논의의 대세가 토벌쪽으로 기울자 계포가 나서서 "저 번쾌는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라며, 선제(고제 유방)도 못 한 일을 항차 번쾌 따위가 어떻게 이루겠냐며 강력한 논거를 제시하고, 남편이라면 꼼짝도 못 한 여태후가 불문에 부치는 걸로 결론 납니다. 황제(혹은 그에 준하는 실권자)가 국정 논의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경우 쿨 오프를 시키는 게 최소한 두 번 나오는데, 앞에 언급한 <원생열전>에서 효문제가 "말의 간"의 예를 들며 중단하는 게 두번째 예입니다.

<급정열전>을 보면 효무제가 "급암은 날이 갈수록 편협함이 심해진다. 사람은 역시 배운 게 있어야 한다"고 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제가 아무리 한 제실이 안정기에 접어든 시절에 다스린 군주라고 하나, 경연, 서연 등의 제도가 채 자리를 못 잡은 고대에 일국의 재상을 두고 저런 말을 할 만큼 교양을 갖춘 자질이었을까요(본인은 얼마나 배운 사람이기에)? 어렸을 적 홍석보 선생님 판을 읽을 때는 이 대목이 도무지 수긍이 가지 않았는데, 완역본이 하나 둘 나오면서부터 "급암은 황로학에 경도된 인물이고, 무제가 말하는 '배운 것'이란 유학의 가르침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동준 선생님은 이 대목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해제를 통해 짚습니다. 황로학 vs 유학의 코드는 이 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맥락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한문 원문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한자 원문에 느낌표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따라서 번역문 어디에 이런 문장 부호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를 살피는 건 흥미롭습니다. 신동준 선생님은 대체로 느낌표를 여러 군데에 삽입하시는 편입니다.

<오왕 비 열전>을 보면 고제 유방이 조카뻘 비의 관상을 보고 때늦은 후회를 하며("괜히 봉지를 내려줬군"). "네 얼굴에는 반역의 상이 있구나. 천하는 이미 우리 유씨 가문으로 통일되었으니 너는 행여 모반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며 당부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대목에서 느낌표를 넣는 건 이 책뿐입니다. 다른 책들에는 마치 조용히 타이르기라도 하듯 평서체로 끝납니다. 한자 원문에는 감정을 표시하는 어조사 哉 같은 게 없는데, 이런 건 어느 하나가 오류이고 다른 게 옳다는 게 아니라, 번역자마다 원문을 받아들이는 미묘한 느낌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何以可哉! 더 이상 무엇을 더할 수 있겠는가! (난포열전)
이 대목에서는 거의 모든 역본들이 느낌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에서야 황제의 자리가 존귀함을 알게 되었다!(유경 숙손통열전)
여기서는 신동준 선생님만 느낌표를 쓰는데, 원문은 어조사 也로만 되어 있습니다.

~해당한다! (1권의 p292)
이 역시 어조사 哉가 있어서 모든 번역본에 공통입니다.

面欺! 이는 태후를 면전에서 기만하는 것입니다. (경포열전)
여기서도 원문에는 어조사가 안 붙습니다. 신동준 선생님만 느낌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혹리열전>에는 이런 일을 어찌 다 거론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는데, 원문을 보면 何足數哉라는 구절이 두 번 반복됩니다. 김 교수님 번역에는 번역에서도 반복시켜 놓고 있으며, 신동준 선생님은 이게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신 듯 한 번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원앙열전>에는 備之!라는 원문을 두고 "준비하라!"라며 역시 느낌표를 붙이시는 태도네요.

이렇게 재미있는 분석이 독자 입장에서 가능한 것도, 이 책이 한문 원문을 그대로 싣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 사기열전 2권은 특히 우리 민족의 기사를 다룬 <조선열전>, 신동준 선생께서 대단히 "진보적인 경제관"이 드러난다고 평한 <화식열전>, 그리고 사기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태사공 자서>가 모두 실려 있습니다. 신동준 선생님만의 현실참여적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난 품격 있는 문장으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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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열전 1 - 인물들의 흥망사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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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는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가장 근원적인 모범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당대인들과 우리 후세 사람들에게 공히 큰 축복이자 기적과도 같은 저작입니다. 그 중에서도 <열전>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생생한 각축과 화려한 업적, 혹은 비루한 악행과 과오가 가감 없이 기술되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처세와 수양에 큰 참고가 됩니다. 무엇보다 이 <사기 열전>은, 이후에 출현한 역사가들의 유교 편향적인 태도와 달리, 인물들의 행적 그 자체에 충실하면서도 문학적 묘사가 생생하여, 현대 독자들이 읽기에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게 장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이 이 고전의 가장 빼어난 정수를 정확히 익히고 맛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하면서도 접근성 좋은 번역이 필수라고 하겠습니다.

신동준 선생님의 방대한 학식과 정곡을 찌르는 문필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이 <열전> 1권은, 이 더운 여름 독서를 즐기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 준 아주 소중한 읽을거리였습니다. 위대한 고전이 이처럼이나, 무협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독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게 느껴졌고요. 개인적으로 1) 故 홍석보 전 고려대 교수님의 <사기열전>(발췌역) 2) 정범진 전 성대 총장님 외 여러 역자의 <사기 열전(상)>(한국 최초의 완역본) 3) 김원중 교수님의 <사기 열전> 등을 모두 읽어 보았기에, 신동준 선생님의 이 책을 놓고 장단점을 대조하여 평가하는 재미까지 추가로 누릴 수 있었네요.

우선, 고전으로서의 <사기 열전>을 그저 얼개만 훑어 본다거나, 본격 탐독에 앞서 대강의 내용을 파악하려는 독자라면, 이 책 포함하여 위에 언급된 어떤 역본을 골라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들 내용이 알차며, 중국이나 대만, 일본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질 바 없는 오랜 고전 연구 풍토를 갖고 있는 우리 나라의 학자들이 애쓴 솜씨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1) 문장의 박력은 홍석보 선생님의 역본을 개인적으로는 최고로 꼽고 싶고, 2) 엄정하고 균형 잡힌 서술의 미덕은 까치 역본이 나은 것 같으며, 3) 독자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오고 고급 백상지를 써서 가독성을 높인 건 김원중 교수 역본이 낫지 싶습니다. 그러나, 위의 1), 2), 3) 등을 모두 읽은 후에도 학문적 갈증이 가시지 않는 독자라면, 이 신동준 선생의 번역본을 도저히 놓칠 수 없으리라 확언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2)나 3)을 메인으로 끝까지 삼고 싶은 분들이라 해도, 최소한 참고 자료로서 이 신동준 판을 간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그 이유는....

ㄱ. 한자로 된 원문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이는 비단 이 책뿐 아니라, <묵자>, <욱리자>, <한비자>, <춘추 좌전> 등 신동준 선생이 옮긴 모든 동양 고전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오류는 책에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이며, 또 권위자의 학설이라 해도 언제나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한문 원문이 있어야만 독자가 저자의 흐름에 노예처럼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인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저자가 스스로의 논변에 자신이 있기에, 원문을 함께 실어 놓았으니 스스로 공부도 해 보고 혹 이견이 있으면 제기해 보라는 열린 자세,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ㄴ. 한자로 된 원문이 문장 부호, 따옴표 등과 함께 "비평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라틴어도 그렇고 한문 형식이라는 게 본래는 띄어쓰기조차 안 되어 있는 형식입니다. 어디와 어디를 서로 띄우고, 어디가 대화이며 서술인지 구별하는 건 이미 해석 작업의 일부인데, 대부분이 초심자들일 독자들로서는 날것 그대로의 원문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에 실린 한문 원문은, 한자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거의 한글 번역문만큼이나 친숙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ㄷ. 이 책의 최고 강점은 역자께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참고서와 연구서, 논문, 동양의 학자는 물론 서구의 연구자들이 남긴 두드러진 업적까지 거의 총망라하여 참고했다는 점입니다. 별다른 근거 제시 없이 "이 말은 이렇게 새겨야 한다"라고만 단언하고 넘어가는 책보다는, "이 말에 대해 A서에는 a라고, B서에서는 b라고, 그리고 C서에서는 c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나(신동준 선생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정리하는 각주를 접할 수 있는 책이 더 친절하고 교육적입니다. 독자는 일단 납득이 될 뿐더러 혹 아니라 해도 제시된 다른 주장 중에 취사선택할 자유가 생기는 법입니다. 이 장점에 대해서는 다른 번역서가 도저히 이 책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ㄹ. 위의 모든 장점이 그닥 필요하지 않은 독자라 해도, 그냥 본문만 읽고 넘어가도 되게 짜여져 있습니다.

이하에선 다른 판본과 비교하여 구체적으로 몇 대목을 짚어 보겠습니다.

관안열전
열전은 한 사람만을 주제로 삼은 것이 있고, 이 권처럼 둘 이상의 주인공을 다룬 것이 있습니다. 신동준 선생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둘 이상의 인물이 나올 경우 부제로 "관중열전", "안자열전" 등을 붙여, 원문의 형식에 무관하게 논리적 완결성을 보완하는 쪽입니다. 반면 김원중 선생의 책은 역자 스스로 판단한 내용적 차별성(토픽의 전환)에 따라,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는 주제문으로 부제를 다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이 "관안열전"은, 김 교수님은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라는 소제목을 각각 붙이고 있습니다. 반면 신동준 선생님은 건조하게 "관중열전/안자열전"으로 나눌 뿐입니다. 아마 전자가 자계서 같다며 싫은 분도 있을 테고, 그 반대로 친절해서 좋다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36페이지를 보시면 아래에 긴 역주가 있습니다. 원문이 有三歸 · 反坫(가운뎃점도 신동준 선생이 첨가한 겁니다)이라고 되어 있는데, 신동준 선생은 특히 이 "삼귀"의 뜻이 무엇인지를 두고 곽승도, 하안, 주희 등 근대와 고대를 망라하여 무려 다섯 개의 대립하는 학설을 제시합니다. 반면 다른 책은, 출전을 밝히지 않고 두 개의 입장을 후주에서 간략히 거론할 뿐입니다. 솔직히 이 대목을 본 후엔, 도저히 다른 책을 메인으로 유지할 수가 없더군요.

열전 중 하이라이트로 꼽힐 만한 편이 <소진, 장의 열전>이겠습니다. 여기서도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종래 소진과 장의가 동시대인라든가, 소진이 장의를 사주하여 연횡책을 주장하게 했다든가 하는, 사마천의 기술과 관점을 그대로 정통으로 간주하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신동준 선생은 <전국책>의 보다 상세한 기사를 논거로 제시하며, "거의 한 세대를 앞서 산 인물인 장의가, 소진과 생전에 한 번 만나기나 했을지 의문"이라고 명쾌히 평론합니다. 물론 이는 아직 학문적으로 당부가 판가름난 사항은 아니지만, <사기>의 태도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고전의 다른 기술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유익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든 텍스트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본문은 본문대로 충실히 번역하고, 緖論에서 이를 메타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는 점이 너무 좋더군요(참고로 김원중 교수님 판은, 간략하게 한 문장으로 "반대되는 입장도 있으나 타당성이 미흡하다"고 적습니다).

똑같은 한문 원문을 각기 다른 권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도 관심사였습니다. 妄人이라는 단어가 이 상권에는 최소 두 번 나옵니다. 그 중 <상군열전>에서 진 효공이 상앙더러 내리는 평가가 있고, <위공자 열전>에서 평원군이 신릉군더러 비웃듯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신동준 선생은 일관되게 "망령된 자"라고 옮기지만, 김 교수님은 전자에서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후자에선 "망령된 사람"로 각각 다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옳고 그르다는 게 아니라, 두 분의 개성이 어떻게 다른지 대조할 수 있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에는 영공(靈公)이란 통치자가 있었는데요. 이 사기 열전에도 <중니제자열전>에 등장합니다. 읽으면서 많이 웃었는데, 한문 원문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동준 선생님은 "처음엔 남색을 즐겼으나... "같은 설명을 구태여 넣고 있습니다. 실제로 위 영공은, 이 정사 <사기>에는 안 보이지만, <한비자> 같은 고전에 보면 미자하라는 소년을 총애했다는 기술이 나오고, 그 유명한 "여도의 죄(복숭아를 남긴 죄)"의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하필 총애하는 빈첩의 이름이 남자(南子. 이분은 물론 여자임)라서 더 희화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여유 넘치는 번역은 신동준 선생의 책이 아니면 도저히 만날 수가 없죠.

<중니제자열전> 중 "자유열전"을 보면, "무성의 읍재가 되었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한자 원문을 보면 그저 宰라고만 나와 있고, 김 교수님 번역에는 "무성의 재가 되었다"고만 옮기는데, 이렇게만 봐서는 무슨 뜻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신 선생님 태도처럼 "읍재"라고 부가설명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자고열전"에도 "비읍의 읍재"라는 번역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김 교수님 책에선 "비읍의 재상"이라고 옮기고 있는데, 일개 읍의 행정책임자를 두고 "재상"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건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관성 면에서도 신 선생님의 태도가 낫습니다.

<평원군 열전>에서 모수가 초나라 왕과 결판을 본 그 유명한 일화가 마무리되는 대목에서 "상사(相士)"라는 원문을 신동준 선생은 그대로 살려놓고 있습니다. 각주에서 선생은 그에 대해 "선비의 관상을 살피는 일"이라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는데, 신동준 선생님 책은 이처럼 한문의 다양한 문법, 활용 사항을 공부하는 맛에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고로 김 교수님 책은 "인물을 평가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홍석보 선생님 책은 "다시는 인물을 감정하지 않겠다"고 각각 옮깁니다. 모수의 일화는 전국시대에 활약한 여러 인걸들의 일화 중에서도 가장 박진감 넘치는 것들 중 하나이므로 꼭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달변, 열변 중 상당수는 "과연 이 긴 대사를, 한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마쳤을까?" 같은 의문이 들었는데, 이 모수의 사자후는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설득력이 있습니다.

신동준 선생님이 원문에 충실하지 않게 옮긴 것도 몇 보입니다. 가령 "견백동이"를 논한 공손룡이, 추연의 등장 후 설 땅을 잃었다는 대목에서, 원문대로 "지극한 도"라고 하지 않으시고 "대도(大道)"라고 옮긴 건 저로서는 납득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견백동이"에 대해서도 평소처럼 간단한 설명이 있을 만한데 역시 그냥 넘어가고 계십니다.

미자하의 스폰서인 "위 영공"의 경우, 신동준 선생님은 이 책 말고 다른 책에서도 "위령공"으로 자주 쓰십니다. 그러나 나라 이름과 군호를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신동준 선생님은 국명과 왕명도 안 띄우고 붙여 쓰시는 게 보통입니다. 이에는 선생님만의 원칙이 있으리라 짐작되므로 더 이상의 반론은 자제할까 합니다. 띄어 쓰는 게 맞다면 그에 따라 두음법칙도 적용시켜야 하는데, 이 책과 같은 시리즈 <사기 세가>에는 거의 일관되게 "위 영공"으로 나와 있습니다. 표 형식의 제약을 받는 <사기 표>는 말할 것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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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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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는 세상에 신분, 등급의 차별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지귀 설화를 처음 아동용 만화로 접했을 때, 저는 상당히 짜증이 나더군요. 아니,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그저 "분수를 알아야지!"라는 한 마디 말로 억누르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이성을 좋아하는 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도 큰 (타인들의 부수적인) 희생이 따르고, 결국 자신도 상처 받을 게 뻔하면서 부득부득 티를 내는 그 추한 모습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상대방인 여왕 입장은 생각도 안 한 셈이니 그게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더러운 정욕이지.

서민들은 보통 있는 사람 높은 사람 욕하는 재미로, 고달픈 생의 스트레스를 달랜다고도 합니다. 비록 돈은 없지만 오순도순 사는 맛이 있어, 체면 따지고 뭐 따지고 돌보고 살필 게 많은 상류층 부러울 게 없다고도 하죠. 이 소설은 어쩌면 그런 평범한 독자들에게, 저들을 당신네들의 기준과 범주 안으로 끌여들여 주겠다며, 조금은 끔찍하고 대체로는 통쾌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로 어깨를 토닥여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게 사실이고 아니고를 일단 떠나). 많은 TV 드라마들도 아마 이런 기능을 수행하겠지요.

줄거리는 책 소개 같은 데 잘 나와 있을 테고, 제가 느낀 점 중심으로 간단하게 소설의 매력을 짚어 볼게요. 우선 진욱, 이 사람은 소설의 "도덕적" 주인공 같습니다. 처음에 서회장(용훈)이 이 자의 뒤를 캘 때, 너무도 평범한(악당치곤) 배경만 줄줄이 나와 독자들이 의아해할 만했죠. 결국 눈치빠른 독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진상이 드러나고요. 물론, 혜윤(첫째딸)이 "그런 본능"을 타고났다는 것까지 거짓말이라거나 "계획"은 아니고, 실제로 여러 남자를 만나고 다닌 건 사실이더군요. 이제 이렇게 사랑하는 진욱이를 만났으니 그런 더러운 일탈은 꿈도 안 꾸길 바랍니다. 숨막힐 듯한 집안 분위기에 억압된 자아가 과잉보상심리 때문에 억지로 사고를 치고 다녔다는 설명(후천적 요인)이었으면, 보통은 이야기가 심각한 방향을 틀 뿐 아니라 길이도 엄청 길어졌겠죠? 그러나 이 소설은 아주 훈훈하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마무리일 뿐입니다.

제가 위에 지귀 설화를 뜬금없이 꺼낸 것도, "불"이라는 소재에서 연관고리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ㅎㅎ 제 생각에 지귀의 불이 엄청 추했다면, 이 진욱의 "불"은 (좀 얼척없는 비약이긴 하나) 뭐랄까, 일본식 은혜- 수치의 폭발적 언표 같은 느낌? 아무리 별 장점 없고 어리석다시피한 성실함으로 세상을 살아 온 인생이라고 하나, 일관된 도덕성 하나로 난마처럼 얽힌 그 복잡한 말썽을 한 큐에 정리하는, "근본에서 올바른 것"의 엄청난 위력을 상징하는 캐릭터 같았습니다. 뭐 이렇게 말도 안되는 초인적 선량함을 갖췄으니 혜윤이가 끌렸는지도 모르지만, 독자 입장에선 공감이 안 되었네요. 여기 나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그림이 안 그려졌습니다.

혜란은 어떤가. 이름난 신경외과의였다는 부친과 달리 외향적이고 사람들사이에서 짜릿한 게임을 즐기며 사업적 성공을 거두는 쪽에 타고난 적성인 용훈(혜윤, 혜란의 부친), 그런 기질을 잘 물려받았다는 설명인데, 중반쯤 그런 탁월한(냉혹하고 이기적이어도 탁월했다는 점만큼은 부인 못하죠) 계획을 짜 내었으니, 만약 이 안대로 일이 이뤄졌다면 아버지 사업은 그녀가 물려받아 마땅했을 겁니다. "아 왜 이럴 때만 가족들은 내 말을 들었던 거야?" 그녀의 잘못은 제가 보기에 없는 듯하고, 무슨 하늘의 섭리 같은 게 개입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보이는 진행이었어요. 이래서 어른들이 착한 사람됨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 아닌가. 확률로만 따지면 혜란의 계획은 (이 훌륭한 가문의) 골칫덩이 두 개를 일거에 쓸어버리기에 충분히 치밀했는데도요. 그래서 honesty is the best policy 라고도 하는 거겠습니다만.

저는 서회장(용훈)이 그 두 "해결사"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서툴렀다고 봅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고전을 안 읽으셨나 봅니다. 위나라 사람 오기는 장병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개의 고름을 빨기도 했는데, 이렇게나 일을 잘하는 아랫사람들에겐 더 과감한 제스처를 취했어야죠. 유미옥 여사도 옆에서 어설프게 거드는 품으로 보아 "진짜 계산"을 잘 못하는 분 같습니다. 결국 세상에 막장성만 폭로하고 서민(누구?)의 품에 안겨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는 데 그친 결과만 봐도, 이분들은 진짜 상류층의 기질이 좀 부족했던 것 아닌가... (ㅎㅎ 농담입니다)

제가 가장 끌렸던 캐릭터는 진환이었는데요. 혜란이가 입으로야 "이게 안 되면 플랜B로 가자"며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그런 게 있기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이기적이고 말은 많고 못됐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예쁘지도 않고(본인도 털어놓았듯 화장빨) 혜란이를, 그 단점까지 사랑한 진환이야말로 둘이 잘 어울리는(출신 성분도 서로 비슷하고) 천생연분인 것 같네요. 혜란이도 잔머리 잘 굴리고, 진환이야말로 제 몸으로 플랜B를 집행한 거나 마찬가지인데다, 이게 계산의 결과라기보다(본인이 머리도 좋지만) 다 진심이 뒷받침되어서 가능했던 거니까요.

저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경수 있죠. 그 경수란 캐릭터가 의외로 촘촘히 사연이 짜여진 채 끝나서 좋았습니다. 머리가 안 좋은데 어찌어찌해서 집안에서 뭐 하나 만들어 보려고 서포트해서 인재로 포장하는 예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막상 일선에 나서 보면 세상이 어디 누구 맘 편하게 롤 플레잉하도록 베이스 깔아주는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낙하산이다 뭐다 이런 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한계가 다 드러납니다. 흙수저니 뭐니 불평만 할게 아니라 정말 본인이 목숨 걸고 있는 포텐 다 끌어올려서 일하면, 저런 경수 같은 애들은 경쟁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 필요가 있죠. 그렇다 쳐도, 이것저것 두루 갖춘 진환이 같은 애들 때문에 세상은 불공평한 게 드러나나요?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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