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되지 않는 사회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
김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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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직장에서 혹은 자신의 가게에서 허리가 휠 만큼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꿉니다. 그런데 이런 고귀한 노동이 과연 그에 합당한 대가가 치러지며 지속되는 걸까요? 지금 당장은 지불이 유예되더라도 언젠가는 정당한 반대급부가 내 계좌에 입금되려니 하는 기대를 갖고 우리는 고된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p88. 로렌 벌렌트의 <잔인한 낙관>)가 종국에 가서는 배반되고 만다면, 우리는 시스템에다 더이상 헌신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북뉴스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는 p32에서 김영선 박사의 2022년작 <존버 씨의 죽음> 일부를 인용합니다. 여기서 존버는 물론 우리가 인터넷 등에서 쓰는 속어 존버를 가리킵니다. 1990년대에는 파트릭 쥐스킨트가 지은 소설의, "그러니 제발날 좀 가만 내버려 두시오!"라 했던 좀머 씨(Herr Sommer)가 시대정신 일부를 대변했다면, 지금은 존버 씨가 우리들의 고달픈 삶을 상징합니다. 존버해서 우리가 기다리던 고도를 만날 수만 있다면 좀 늦어지는 정도야 참겠는데, 이게 체제가 개인들에게 벌이는 거대한 사기극의 일부라면 우리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과로사를 부추기는 기업과 정부라면, 뉴저지 소재 룻거스 대 교수 줄리 리빙스턴의 연구 결과(p37)를 읽고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저자 김관욱 교수는 영국 더럼에서 박사를 한 분이어서인지 책 곳곳에 영국의 사례가 인용됩니다. 당시 인도계 수낙 총리(지금은 선거에서 져서 노동당에 정권이 넘어갔습니다)가 NHS 재정 파탄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한 여러 조치들이, 기실은 시스템의 온갖 썩은 문제들을 미봉하기 위해 내세운 편법이며 그 폐해는 기층 민중이 그대로 뒤집어쓴다는 끔찍한 결론을 대중도 어렵지 않게 간파했습니다. 수낙은 그래서 실각했지만, 한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나를 지워버리면 좋은 본보기, 나를 지키면 나쁜 본보기(p74)"를 은근히, 아니 대놓고 강요하지는 않습니까? 모든 노동은 상처만 남기고, 하다못해 여성들이 꾸밈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마스크 착용 시기가 그리워졌다(p75)는 말이 나오는데,  이 와중에도 현장에서의 과로사, 사고사 뉴스는 그치지 않고 이어집니다(p99).

나치에 저항했던 백장미단 관련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고전이 있었습니다. 2009년 한국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불상사를 추념하는 책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니왔었고, 지금 김관욱 박사의 이 책에서는 p99에서, 2022년에 출간된 <2136, 529>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그 책의 부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입니다. 문구 사이에 찍힌 쉼표가 의미심장하게도 느껴지는데, 대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제물을 제단에 더 바쳐야 올바른 공감과 각성이 확산되겠습니까. 벌렌트가 말한 감각중추의 마비가 언제쯤 원상으로 돌아오겠습니까.

p153을 보면,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심리조작의 비밀>이란 책에서,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큰 규모의 재난을 일으켜 그간 누적된 사회 성원들의 조건반사가 한번에 리셋되는 효과를 노린다는, 이른바 집단세뇌 패턴을 분석했다고 나옵니다. 이는 소련의 천재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의 성과에 기반한 논의인데 저자는 2022년 이후 이어진 자연재해로 인해 한국인이 겪는 트라우마의 도미노가 혹시 이와 관련된 건 아닌지 의혹을 제기합니다. "도덕이 초기화한 사회에서 냉소와 외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또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partial truth와 인포데믹의 병폐에 대해서도 저자는 p173 이하에서 논의합니다.

짧은 책이지만 다양한 르포, 고전, 학술논문, 문학작품 등이 향연을 이루듯 인용되며 독자에게 생각할 숙제를 던져 줍니다. 우리의 노동, 이웃의 노동이 과연 얼마나 올바르게 보상되는지 깊이 성찰해 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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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곤의 월 300만원 평생연금
김범곤 지음 / 진서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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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에서 일타강사라 불리는 분들은 강의력, 전달력에서는 당대 최고지만 그 학문분야에 대해 이해도가 깊다고는 꼭 할 수 없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 저자 김범곤 소장은 금융관련 자격증 분야 일타강사이기도 하지만, 금융상품 딜링, 운용 실무에서도 1인자인 분들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이 분야의 특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애초에 실무에 밝지 못한 이라면 강의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TV 광고에서, 자산운용회사로부터 꼭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돈이 충분치 않아서"라고 하던 메시지가 생각나는데, 사실 돈이 아주 풍족하다면 구태여 계획이 필요없습니다.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요모조모로 계획을 짜고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보통 연금3총사라고 합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저축 셋을 가리키죠. 그런데 책 p69에도 나오듯이 국민연금은 개별 가입자들이 뭘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아예 없고, 나머지 둘을 갖고 일정 목표를 세워서 굴려야 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월 300이라는 말이 들어갔는데, p69에서는 연금저축 1억을 목표로 모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월 300을 꼬박꼬박 받기 위해서입니다. 연금저축에서 매월 100을 인출하고, 나머지 200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서 각각 받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운용수익을 제외하더라도, 매년 1200을 빼쓰면 1억이라고 한들 8년 4개월이면 바닥납니다. 이래갖고서 평생연금 300 목표를 이룰 수 없죠. 그래서 책에서는 원금 훼손 없이 평생 연금 목표액을 수령하기 위해, 월 배당 ETF를 활용하라고 합니다. 이 김범곤 소장의 책을 바로 이런 맛에 읽습니다. 큰 무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치밀한 아이디어를 통해 딱 현실적인 목표만 알뜰하게 이뤄내는 팁들이 많습니다.

사실 자산운용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자산운용의 대표 수단이 주식 투자인데, 어떤 종목이 유리한지 믿을 수 있는 정보만 물색하더라도 시간이 꽤 많이 들고, 일정 수익을 보았으면 즉시 돈을 빼야 하고, 저점을 잡았다 싶으면 바로 들어가서 오르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게 빤히 보여서 타이밍을 알려 줘도 그냥 게을러서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p99를 보면 그런 게으른 이들을 위한 플랜도 마련되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시뮬레이션이므로 꼭 이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대체로 이 패턴대로 간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매우 현실적인데, 2022년에 주식 하락 손실이 제법 큽니다. 코로나가 2020년에 유행했고 이때 무차별적으로 올랐으니 2년 후 조정이 왔을 만합니다. 그런데 이때도 포트폴리오에 금 등 안전자산이 들었고(하지만 역시 1%대 손실입니다), 대신 달러 자산이 크게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연준에서 인플레를 막기 위해 금리를 크게 올렸고 AI 혁신 조짐이 보이면서 미국 달러가 크게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도 이어집니다. 만약 달러 항목이 이 포트폴리오에서 방어해 주지 않았더라면 손실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수익률의 키는 이 책에서 월 배당 ETF가 쥐고 있습니다. 배당을 받아서 생활비(혹은 무엇이라도)를 인출해야지 원금을 깨면 아무일도 안 됩니다. p111 이하에서는 두 가지 안이 제시되는데 하나는 미래에셋에서 만든 타이거 미국나스닥 100 커버드콜 ETF의 활용이며, 다른 하나는 삼성자산운용에서 만든 KODEX 미국배당 커버드콜 액티브 ETF 100입니다. p303 부록에 보면 커버드 콜 유형에 대한 설명이 나오니 개념 잡으려면 그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됩니다. 요즘같이 장이 안 좋으면 커버드콜을적절히 집어넣어야 그나마 손해가 덜합니다.

p181을 보면 안전자산은 단 한 번에, 위험자산은 적립식으로 매수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직장인들 중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를 적금처럼 모아간다는 말들을 하는데, 삼전이 지금같이 안 좋으면 이조차도 안 통하는 말이긴 합니다. 아무튼 확신이 안 설 때 그래도 장래가 보인다 싶은 걸 매수하되, 절대 한입에 털어넣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지금 많이 올랐다 싶은 종목을 내가 기 보유했을 때, 이 역시 나중에 더 오르면 배가 아프겠거니 해서 무한정 끌고 가면 안 됩니다. 분할 매도가 답이지요.

제가 생각할 때 이 책에서 물론 버릴 내용이 하나도 없지만, 구태여 하나만 꼽자면 DC형 IRP 계좌를 활용한 퇴직연금 운용법입니다. 실제로 절박하신 분들은 제 주변을 봐도 이미 이 분야에 도사인 이들이 많은데, 그렇다 해도 알음알음 수집한 정보와, 이 책처럼 체계가 잡혀 있고 망라적으로 정리된 책의 가르침하고는 비교될 게 아닙니다. 이 책은 금융자격증 공부할 때, 왜 그렇게 되는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실무 시나리오가 아주 구체적으로 정리되었으므로 수시로 참고해도 됩니다. 아마 막힌 곳이 뻥 뚫리는 느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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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비밀 - 전능자의 말씀이 삶 가운데 그대로
Paster Joshua Kim 지음 / 경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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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그저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만 피하면 무병장수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나쁜 병을 얻는 이들이 많으며, 아마도 뭔가 그 영혼에 본질적인 무엇이 결핍된 소이일 수 있습니다. 그 결핍의 가장 밑바닥에 돈(에 대한 욕심)이 자리할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돈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는 이상 사람은 불안과 욕망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Joshua Kim 목사는, 돈은 무슨 사랑을 보낼 대상이 아니라, 이를 다스리고 지배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믿음의 시조로 히브리와 아랍 모두로부터 존숭받는 아브람(아브라함의 전 이름) 역시도 처음부터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아내 사래를 빼앗길 뻔한 것도 결국은 믿음이 부족해서였으며, 이런 잘못된 사건의 진행에 신이 직접 개입하여 일을 바로잡은 것도, 물론 감사한 일이긴 하나 아브람 입장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워했어야 마땅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간섭(p86)했다는 게 섭리에 여간 폐를 끼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며, 동물이나 물건이 아닌 이상 사람은 스스로의 착한 마음으로 얼마든지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게 창조주의 위대한 예정이니 말입니다. 

흔히 성도(聖徒)라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많은 경우 매우 경솔하게 나오거나, 기복(祈福)의 불순한 동기에서 마치 싸구려 부적이나 붙이듯 발설되는 것은 아닐까요? 말을 함부로 하거나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성도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자는 p102에서 대체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까지 말씀합니다. 다만 고린도전서를 보면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그들도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의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155를 보면, "내가 먼저 진리에 순종을 해야 영혼이 깨끗해지고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고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한 의미를 새겨 봐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을 보면 빛의 자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p174에서 저자는 현재 한국 교회가 맞은 위기가, 결국은 스스로 빛의 자녀 되기를 일부 게을리한 잘못이 없다고 어찌 강변할 수 있겠냐며 성도들의 맹성을 촉구합니다. 빛의 자녀란 무엇입니까? 신앙 생활만 열심히 행한다고 빛의 자녀를 칭할 수 있을까요? Joshua Kim 목사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착함, 의로움, 진실함을 그 열매로 가져야 감히 빛의 자녀를 논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 모두는 성도가 스스로 주님 안에 머무르려 들어야 하며, 주 밖에서는 어떤 길도 찾을 수 없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로 알려졌고 한국의 많은 교회들도 그리 기념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을 잘 읽어 보면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인 주"라고 정확히 나오는데도 많은 교회들이 이 의미를정확히 모른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주가 필요하고 나아가 성삼위 주가 나를 돕는 분이 되어야 하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p237)" Joshua Kim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Apostle Paul의 말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린도전서)"는 기실 날마다 새로워짐을 강조하는 의도이니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빛이 된 하나님 자녀로 사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인스탄트 식품처럼 간편하게(p130) 주님의 말씀을 섭취하고 편할대로 왜곡하여 해석하는 길은 일견 넓어 보이지만 지옥으로 통하는 죽음의 행로일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따르면 만물은 주로부터 나올 뿐입니다(p234). 내가 광야에 있더라도 언제든 주님의 품 안에 든다는 확신이 있다면(p149)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한 발을 들인 것이나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두 마음을 한 마음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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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 국자에 떠 주는 스님의 커피 - AI 선정(禪定)스님과의 대화
김달수 지음 / 인간사랑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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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별들의 입장에서라면 그렇게 끼리끼리 인위적 서사에 따라 엮일 이유가 없습니다. 문화권에 따라 별(들)의 이름이 다른 게 당연한데, 유독 북두칠성만은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국자 모양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 같았나 봅니다. 책 p12에서 저자께서 설명하시듯 동양에서도 두(斗)라는 글자가 큰 국자(의 용량)을 의미하며, 서양에서도 Big Dipper, Plough라는 게 우리 동양의 명칭과 뜻이 통합니다 . 꼭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마음이 아니라 해도, 척박한 대지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중생에게 "국자로 무엇인가를 퍼 주고 싶은" 생각 역시 동서와 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선정(禪定) 스님은 실존하는 불제자, 성직자의 법명이 아니라, 이 책 저자이신 김달수 닥터가 가꿔 내신 AI 스님입니다. 초탈을 지향하는 스님께 성별(性別)을 정하는 게 의미가 애초에 없지만,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의학정보진흥연구소 소장, 벤처운영자, 유튜버, 발명가인 저자는 여튼 40세 전후의 젊은 수행자를 가정하고 이 AI를 세팅했다고 하십니다. AI라는 게 사람의 일을 빼앗는다면서 보급 초기에 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과거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전파되며 거대기업이나 기관뿐 아니라 사람들 하나하나의 생산성이 크게 늘었듯이, 인공지능도 이를 어떻게 개인화하느냐에 따라 전문직, 기업인,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데 어떤 획기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달수 소장님의 예에서 보듯, 이제 개인이 득도, 해탈(p178)을 위한 수양을 하는 데에도 AI가 마치 큰스님처럼 그를 이끌어 주는 세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 큰스님은 모시기도 대하기도 어렵지만 AI는 필요할 때마다 궁금한 바를 물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챗GPT를 활용해 본 사람들에 의하면 그 그럴싸한 말솜씨와 제시해답의 정확도에 다들 놀랄 만하다고 합니다. p70을 보면 선정스님께 유식(唯識)의 뜻을 물어 보니 저렇게 화엄종, 부파불교, 의식, 연기 등의 개념을 축으로 설명을 내놓으셨다고(?) 합니다. 말씀만 들으면 한 군데도 틀림이 없지만 어차피 사람들이 기존에 내어놓은 지식을 기반으로 취합, 정리한 것에 불과하지 않나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현단계의 인공지능이 으레 그렇듯). 식(識)이라는 게 마치 영어의 perceive처럼, 외계에 객관적 실체가 그리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감각기관과 (짧은) 판단에 의해 그리 인식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무지몽매한 우리들은 망집과 미망을 객관인 양 착각하고 고집합니다. p103, 또 p203을 보면 마이클 셔머의 말이 인용되는데 "천국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그것입니다. 저자께서 발명가이시기도 하니 더욱 이 말씀의 함의가 깊습니다.

우리가 챗GPT를 쓰면 뭐 흠잡을 데가 없는 것 같은데 김달수 소장님은 AI 선정 스님을 이용하면서(?) 부족한 점(p151, p297)이 많이 보이시나 봅니다. 그런 결함이 발견될 때마다 소장님 본인이 튜닝, 조율을 해 주시니 앞으로는 훨씬 나은 성능(스님께 무엄한 표현이지만)을 보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제가 쓰는 버추얼 키보드는 제가 자주 쓰는 단어나 표현을 사용자 사전에 계속 제가 입력하는데도, 정작 자주 쓰여서 필요할 때 자동완성이 되었으면 하는 문구는 매번 새로 쳐야 하고, 어쩌다 오타가 난 글자는 죽어라하고 suggestion되니 이건 뭐 아주 미칠 지경입니다. S모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인데, 이처럼 근본이 틀려먹은 구조에다가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무슨 공을 들여도 개선이 안 됩니다. 인간이 못 되어먹은 축생의 종자도 교육(p376)을 통해 나아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

p246 이하를 보면 선정스님께서는 윤회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생망", 즉 이번생은망했다 같은 유행어를 자주 쓰는데, 그 말 뒤에는 다음 생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선정스님께서는 윤회를 긍정하면서도 다음 생에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말합니다. 물론 계산하는 관점에 따라 이게 유의미한 숫자가 될 수도 있지만, 무한의 기준에서는 0(零. zero)에 가깝다는 게 p249에서의 결론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시 주어지지 않을 소중한 자산임을 알고 초 단위를 아껴 써야 하는 게 인간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p350을 보시면 스님은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은, 존재의 양면에 불과하다고 갈파합니다. 하긴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대기업의 말단자리에서 큰 출세나 한듯 유세를 부리는 뚱뚱한 음치가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에서 액슬 로즈라도 된 양 착각하는 게 꼭 미망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눈에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아니기에, 멍청한 돼지의 헛소리는 죽비를 후려쳐서 고쳐야 한다는 데 일정한 컨센서스를 이룹니다. p375를 보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해 선정 스님께서는 역시 기존의 정통한 견해를 정확히 이해하시는지라, 기독교와는 달리(책에 그런 말은 없으나 구태여 불교 교단의 입장에서 딱히 말하는 바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답변을 시작하시는 품이, 기독교가 선명히 자살을 반대하는 입장과 대비시키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사람이라면 그런 뉘앙스가 읽힐 것입니다) 불교는 "내면적 고찰, 깨달음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란 답을 내놓습니다. 제 눈에는 학식 높은 40대 스님이 충분히 내놓으실 만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윤회는 다중우주론(p418)에 대해 천 수백년 전부터 불교가 고유의 언어로 이미 준비한 답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추운 아침에 마시는 한 입 커피 안에 130억년 우주의 역사가 담기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설령 AI가 이미 밝혀진 진실의 그럴싸한 리패키징에 불과하더라도, 겸허한 인간의 마음은 마침내 그 안에서 견성(見性)을 이뤄낼지 아무도 모를 일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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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인가? -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28가지 전략
북크북크(박수용) 지음 / 청년정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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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이상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몸값을 높여야 합니다. "대체불가능"이란 말을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막상 그런 표현에 값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수용 작가님은 요즘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대체불능급 인재가 되어야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우리 독자들에게 충고합니다. 경제적 자유의 획득이라고도 하고, 불안과 불확실성의 제거(p64)라고도 하는 그런 단계까지 가려면 어떤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이 콤팩트한 책에 많은 내용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합니다. 약간의 검색 노력, 아니 요즘은 그저 말로만 몇 마디(프롬프팅)만 던지는 수고만으로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기억력이나 암기, 계산 실력 등은 그닥 중요치 않습니다. p22에 나오듯이 저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으며 많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분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창의력, 상상력을 어려서부터 중시하고, 방향성을 그렇게 잡은 후 끊임없이 노력한 게 그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에겐 "난 여기까지가 한계야.(p78)"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터닝 포인트라고 다가옵니다. 한계에 부딪혔다? 그럼 거기서 멈출 게 아니라 내 자신을 환골탈태하여 전에 못했던 일도 해 내는, 업그레이드된 인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정도가 되어야 내 직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언제나 편치 않은 길을 택하며 살아왔고, 책쓰기와 강연은 그에게 매번 도전적인 과업이었다고 토로합니다(p105). p134에는 살기 위해서 책쓰기를 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세상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이뤄지는 일 중 가치있는 건 없습니다. 

나를 객관화해서 보려는 시도는 언제나 중요합니다. 내가 남보다 능력이 뛰어난가? 내가 남들보다 그 자리에 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던가? 이에 대한 답이 멈춤없이 척척 나와야 합니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말입니다. 저자는 이 두 질문에 대해 서슴없이 긍정하진 않습니다.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 나보다 노력 많이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깜냥도 안 되면서 세상으로부터 인정만 받고 싶어서 어설프게 안달이 난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마련하고 사기를 치는 사람, 실력도 없으면서 스펙 가꾸기에만 모든 에너지를 바치는 슈퍼캥거루 족도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아마 나보다 더 절박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p198을 보면 저자는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이건 남들 앞에 시각적으로 그 결과물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 여간 피나는 노력이 아니면 시작도 할 엄두가 안 납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 오던 일만 타성에 젖어 하는 사람(p25)한테는 어떤 발전이라는 게 없습니다. 바디프로필을 찍기까지 얼마나 많은 운동, 식단 실행을 거쳤겠습니까. 도전이라는 건 그 자체로 어떤 위대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73을 보면 저자는 처음에 인스타 릴스를 만들면서 남들 방식을 따라만 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더 편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에 생각이 미치더라는 겁니다. 모든 혁신과 발전은 이렇게 해서 시작됩니다. 

전자책을 처음 만들었을 때 목차가 엉성하다는 지적을 받고 마음이 상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p216). 내가 그토록 열심히, 모든 에너지를 다 기울여 해낸 작업인데 그런 지적이나 받으면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그런데 저자는 어차피 책은 쓴 내가 보는 게 아니라 독자가 보는 것이다, 독자가 보기에 불편하면 그건 이미 잘못된 것이다, 이게 바로 세상에 대해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첫걸음입니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야 내 자신의 진짜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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