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영어
조정현 지음 / PUB.365(삼육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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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재는 튼튼한 재질의 파일폴더 안에, 레벨1, 레벨2, 레벨 3 교재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케이스 표지에는 "온 국민의 아침을 깨워주는 영어 라디오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장수 컨텐츠는 예전부터 전국 학원가 영어 일타강사분들만 진행하던 자랑스러운 내력이 있죠.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물론 학문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몸에 배어 자연스럽게 입으로부터 술술 나오는, 하나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3단계는 또 3단계라고 해도, 3분간 하루 3번 집중만으로 과연 영어가 내 체질 안에 들어올까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역시 에센스만 뽑아내는 일타강사의 감각은 남다릅니다. 월간 굿모닝 팝스 공식 교재와는 또 별개로, 조정현 선생님의 이 책은 초심자를 위한 영어 공부 교재로 하나의 마스터피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교재는 학습지 포맷입니다. 외곽의 큰 파일폴더뿐 아니라, 레벨1, 2, 3에 각각 따로 포장지가 둘러져서 학습자입장에서 보관이 편하게끔 배려되었습니다. 시중에 나오는 다른 "학습지" 형태의 교재들도 이런 점은 좀 보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다른 데서 나온 학습지들도 파일폴더는 예쁘게 제작하지만, 또 각 교재들의 성격에 따라 표지 색을 달리 넣어 그 구분을 쉽게 하지만, 이 책처럼 레벨(또는 영역)별로 다시 포장지를 두르지는 않습니다. 레벨마다 각각 세 권씩의 학습지가 제공되는데 사실 세 권이면 구태여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아무튼 레벨별로 세 권 분책 형식이라 초심자 입장에서는 더욱 부담이 줄어듭니다. 

요즘은 네o버에서 블로깅을 하는 중에도, 유저의 관심사를 알고리즘이 추측하여 타 블로거의 컨텐츠를 추천해 줍니다. 저 같은 경우 이런저런 영어 구어 표현을 정리하여 꾸준히 업로드하는 여러 크리에이터들의 글들을 추천받는데, 기존 출판 교재들에서 자주 보기 힘든 표현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곤 합니다. 요즘 영어 공부는 꼭 공인시험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넷상에서건 외국에서건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이런저런 체험과 추억을 쌓는 게 메인인 것 같습니다. 이 교재도 그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서인지 그런 내용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벨1의 제1권 p29를 보면 "아오, 답답해"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가 나옵니다. 이런 간단한 말이 그때그때 바로바로 나와야, 영어가 그 학습자의 진짜 실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페이지 하단을 보면, [θ]과 [ð]의 차이에 대해 자세히 가르칩니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가장 먼저 배우는 발음 중 하나인데, 우리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이라서 어린 학생들(또는 초심자들)에게는 더욱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몇 번 듣다 보면, 대략 어떻게 혀를 대고 놀려야 저런 소리가 날지 감이 옵니다. 음성학상으로는 dental fricative, 즉 치(齒) 마찰음(磨擦音)들이죠. 이 교재에는 문장, 단어들의 원어민 발음을 담은 mp3로 연결되는 QR코드도 찍혀 있으므로 학습자가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또 눈여겨 본 건, 페이지 최하단에 저자가 적어 둔 설명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탑건, 매버릭>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큰 관심을 모았는데, 이 작품은 1989년작 <탑건>의 수십 년 후 사연을 다뤄서 올드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 작품의 주제가 <Take my breath away>는 벌린(Berlin. 독일의 수도 베를린과 발음이 같습니다)이 불렀는데, 이 곡은 영화관에서 돌비 사운드로 들어야 제맛이 납니다. 원래도 좋은 곡이지만, 저런 데서 그 웅장한 전주와 함께 들으면 정신이 잠시 다른 경계로 인도받는 듯한 느낌이 들죠. 가사 중 브레쓰어웨이🎵라는 파트는 연음이 되어 "브레써웨이"처럼 들리는데, 이때 voceless(유성음) dental fricative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기에 저자께서 특히 강조한 게 아닐까 저는 짐작합니다. 

영어에 그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던 초보들에게 이 책은 그 허들을 낮춰 주는, 실용적인 도움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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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패턴 독일어 회화 - 내 인생 첫 번째 독일어 내 인생 첫 번째 시리즈
이로사 지음 / PUB.365(삼육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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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은 대체로 영어를 잘하는 편입니다. 회사에서 업무상 독일 현지인들과 통화를 해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발음은 약간 어색해도 문형이 정확하고 격식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합니다. 따라서 독일인을 상대하기 위해 반드시 독일어를 배워야 할 이유는 요즘 크지 않긴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러나 음악, 법학 공부 등을 위해 현지 유학을 해야 한다거나, 그 외 상사(商事) 관련 장기 체류가 필요하다거나, 국제 결혼 등을 염두에 둔 분들은 이 언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단기간에 회화 능력을 갖추려면, 실생활에 자주 쓰이고 유용도가 높은 표현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게 가성비 좋은 선택이겠습니다. 저는 작년(2024) 10월, 지금 이 책의 저자인 이로사 선생님이 쓴 ZD 시험 B1 등급 대비서를 리뷰한 적 있습니다. 학문적 정확성도 잘 유지되고, 초심자들을 배려한 쉬운 설명이 돋보이는 건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내첫(=내 인생 첫번째)" 시리즈 중에서는, 제가 작년 11월에 러시아어(벨랴코프 일리야 著) 120패턴 교재를 리뷰한 적 있으니 그 글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옷이나 신발을 살 때 "다른 사이즈 있나요?"라고 물을 경우는 아주 많겠습니다. 이 교재에는 모두 50패턴의 회화(의 상황)가 나오는데, p112의 제18번 패턴을 보면 바로 그 문장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 코트가 다른 색깔로 있나요?"라면 영어로는 "Does it(=that coat) come in another color?"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걸 독일어로는 Haben Sie den Mantel in einer anderen Farbe?라고 합니다. Farbe가 색깔(color)이라는 뜻이며, 독일어는 명사가 모두 대문자로 시작하니(꼭 고유명사가 아니라도) 모양이 저렇습니다. 또 영어나 독일어나 "~색 옷"이라고 할 때에는 전치사 in을 쓰며, 영어도 흰색 옷, 푸른색 옷이라고 할 때에는 in white, in blue라고 합니다.

p113을 보면 "이 스웨터 (내) 마음에 들어요."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스웨터는 한국인들은 요즘 니트라고 많이들 부르죠. 이걸 영어로는 pullover라고도 하는데, 아까 말했듯이 독일인들은 영어를 잘할 뿐 아니라 영단어를 (우리 한국인들처럼) 일상에 들여와 자기네 말처럼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 p113에도 der Pullover라고, 남성명사로 정관사까지 붙여 저렇게 자국어처럼 쓰는 것입니다. v도 독일식으로 [f]으로 발음할 필요는 없고, 그냥 영어처럼 유성음 [v]로 소리내면 되겠습니다. 이 페이지 마지막 줄 맨앞 문장은 tja로 시작하는데, 독일인들과 실제 대화를 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일종의 감탄사로서, 응, 자, 또는 헐 같은 뜻으로 대화에서 자주 씁니다. 이렇게 뭔가 구어체 분위기가 실감나는 예문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p128을 보면 21번 패턴에서 je-desto 비교급 구문이 나옵니다. 고교에서 독일어를 선택했다면 2학년 1학기 말쯤에 배웠겠습니다(저는 그랬습니다). 책에서는 "Je mehr du lernst, desto besser wird dein Deutsch."라는 예문이 나옵니다. 뜻은 "더 많이 공부할수록 독일어(실력)는 더 나아진다."인데, 잘 보면 앞부분은 (주어)+(동사)로서 동사가 맨뒤에 위치하여 후치(後置)이고, 뒷부분은 (보어)+(동사)+(주어)로서 도치(到置)입니다. 저자 이로사쌤은 p128 최하단에 이 점을 꼼꼼하게 밝혀 두었는데, 보통 회화책에서는 이런 문법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에, 저는 이런 점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p158에서는 상대방에게 공손하게 들릴 수 있는 말투로 접속법 2식을 배웁니다. 접속법 2식 자체가 공손한 말투라는 게 아니라, 이게 영어의 가정법과 비슷하여, 상대가 만약 나의 이러이러한 행동을 허락해 주신다면... 같은 "가정"이 은근 들어간 말투라서, 결과적으로 그게 공손한 말투가 되는 거죠(앞의 p121도 참조). 아무튼 이 접속법 2식에서 동사는 그 모습이 제법 크게 변하는데, 책에도 나오듯이 sein 동사는 wäre(1인칭 단수)처럼 모양이 심히 달라집니다(직설법 과거는 1인칭 단수의 경우 war). 책에서 간접화법이라고 한 건 접속법 1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저는 그렇게 생각되네요). p236에는 희망을 표현하는 용법의 접속법 2식이 설명됩니다. "반카드"라는 건 Bahncard인데, 독일에 가 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 책의 설명대로) 기차 여행시 필수품입니다. Bahn은 영어의 vehicle, car와 같은데, 사실 독일어에도 Karte라는 여성명사가 있습니다만 이처럼 영어 card를 끌어댄 합성어가 쓰이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 교재는 이처럼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실용적인 정보까지를 제공해 주는 점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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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괴물
김정용 지음 / 델피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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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문명이 유럽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핀 건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존중했던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고 나오는데 1677년은 벤투 스피노자가 40대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해이며 또한 그가 쓴 저작들이 출간된 연도이기도 하다고 이 책 뒷표지에 나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평전이지만, 그 형식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그간 스피노자의 생과 사상은 다분히 추상적으로만 알려졌으며, 유명한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중고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한 자신의 신조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였거나 크게 곡해되었다는 게 작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전하는 자료만으로 더 정확한 진실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형식을 통한 탐구"입니다. 꽤나 재미있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스피노자는 추상의 너울을 벗고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를 만납니다. 프랑스어 원제 "le clan spinoza"는 직역하면 스피노자 무리라는 뜻인데, 영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모두가 "스피노자들"이란 뜻도 되며, 좁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모든 동조자들과 동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대사를 읊고 행동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실존인물들이며 가공된 캐릭터는 드물게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의 나라이며 특히나 암스테르담은 당시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번성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사건의 배경은 거래소들인데 거래소라고 해도 참으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합니다. p107을 보면 한 노인이, 아직은 세상 물정에 서투른 젊은이가 저자를 기웃거리는 걸 보고 현물 거래는 여기서, 또 선물(先物) 거래는 저쪽에서 이루진다고 가르쳐 줍니다. 17세기라도 이미 현대의 금융파생상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선물(future)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선물은 일종의 위험 헤지(risk hedge) 수단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나쁜 일이 터져도 이 선까지만 피해를 입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거래행위입니다. 밀, 설탕, 향신료의 가격 동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얼마이고, 반대로 희망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신중함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현자들이 대중을 위해 고안한 파생상품이 바로 철학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는 듯합니다.

p242를 보면 데카르트는 논리, 기하, 대수라는 별개의 영역을 통합했다는 찬사를 받고 실제 스피노자도 자신의 시대에 데카르트 전문가로 꼽혀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위대한 좌절을 보면 알듯 이 세 영역의 완전한 통합이란 요원한 목표이며 다만 데카르트는 초급 해석기하의 발판을 놓았기에 상당수 도형 문제를 방정식으로 훨씬 명료하게 처리하는 천재적인 업적을 이뤘습니다. 예컨대 원은 천 수백 년 전 에우클레이데스의 언명대로 "특정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점들의 집합"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a,b)로부터 거리 r을 유지하는 (x,y)로 표현됩니다. 스피노자, 그리고 로데베르크 메이어르는 novum institium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세계관에서 기존 물리학이나 의학의 개념들은 일제 변혁을 맞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는 수백 년 후 변증법의 근대적 변용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p379를 보면 판 벨타위선은 <철학이 성경을 해석한다>를 쓴 불온한 저자로 지목되어 재판관들의 엄혹한 추궁을 받기 직전입니다. 불온서적의 명단에는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필독서로도 꼽히는 이런 책들이, 그토록 자유로웠다던 암스테르담에서도 칼뱅주의 신정론자들의 엄혹한 심판대 위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냥 의견일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p458 이하에서는 스테논 등이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클랜 안에서 언제나 최상위의 제단에 고정된 덕목은 첫째도 자유, 둘째 셋째도 자유입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지구 최후의 날까지 자유와 동의어이자 그 상위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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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
임용한 지음, 손무 원작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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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님은 국방TV에서 제작 방영했던 토전사 시리즈를 통해 큰 인기와 영향력을 얻은 분이며 사실 그 이전부터 전쟁사 관련 대중서 저술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최근 계엄령 사태에 대해서도 한 말씀을 남기기도 했는데, 지금도 YTN 등에서 틀어 주는 <전쟁과 사람> 몇몇 회차에 출연하여 허준 MC, 이세환 기자, 윤지연 아나운서 등과 함께 다시 좋은 컨텐츠를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로서 반갑기도 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손자병법>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담겼기에 이천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으로 존중됩니다. 임 박사님도 토전사 등에서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건 이면의 독특한 사정이나 맥락을 잘 짚어 주기에, 해당 고전의 주해자로서 이보다 더 적격인 분이 없다 싶었습니다. 책을 받아보고 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손자병법은 모두 13편으로 되었는데 임 박사님도 이 편제에 맞춰 내용을 이어갑니다. 역시 임 박사님답게 동서고금의 중요 전쟁사를 자유자재로 원용하며 이 오랜 동아시아 고전의 내용에 생생한 주해를 달며 원전의 볼륨을 훨씬 풍성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p122(제3편 謀攻 중) 같은 곳을 보면, "병력이 대단히 열세이면 전투를 피한다"는 구절에 대해, 저자는 이게 정말로 항전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나마 최선인 방법을 모색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같은 말이라 해도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의미라는 게 바뀌게 마련입니다. 또 워낙에 중국이란 나라가 땅이 넓다 보니, 이 전선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theater에서 재도전을 모색한다는 뜻도 관용적으로 품는다는 의견을 저자는 제시하는데, 임 박사님의 책들은 이런 독자적이고 살짝 변칙적이기도 한 해석의 독창성이 그 읽는 맛 중 하니입니다.

p123에서 저자는 분진합격(分進合擊)이라는 전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는 12세기 몽골 기병들이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택틱스라고 할 만한데, "여러 개의 여단으로 산개(散開)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 결정적 타깃 앞에서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적을 타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의 위력이란 이치상으로 누구라도 납득하고 상상할 만하지만, 몽골 군대의 특별한 성공 비법이 있었다면 그건 그들만이 실전에서 구현할 수 있었던 기동력 덕분일 것입니다. 또 저자는 십자군의 요새 운용법에 대해, 부족한 병력을 기술로 대신했다고 진단하는데, 크라크 데 슈발리에(Crac des chevaliers)가 <손자병법>의 "적은 분산, 아군은 집결" 원칙을 저 성채라는 구조물로 달성했다는 탁월한 분석이 있습니다.

"수비는 내게 남음이 있게 하고, 공격은 적이 부족함이 있게 하는 것이다(p181)." 임 박사는 이 구절을 두고, 손자병법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평가를 소개합니다. 이 구절은 제4편 형(形)에 나오는데 4편의 제목은 진형(陳形)이라고도 칭합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서 저자는 태평양전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만 폭격에서, 왜 미군을 더 철저히 무력화할 수 있었던 유류저장고 파괴를 단행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평소의 지론을 다시 전개합니다. 토전사 해당 에피소드를 시청한 이들에게는 익숙할 듯합니다. 이어 저자는 독소전으로 화제를 옮겨,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소련군 포로의 엄청난 숫자가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자유로운 기동에 큰 방해가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기세(氣勢). 사람 사이의 싸움이라는 게 참 묘해서 분명 어느 한쪽의 역량이 상대방에 크게 못 미쳐도, 이 기세라는 것이 뜻밖의 국면에서 작용하기라도 하면, 마치 1526년의 파니파트 전투처럼, 명백한 언더독 바부르가 이브라힘 로디를 패퇴시킨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p238에서 이릉의 전투를 분석하며, 적의 기세에 휘둘리지 말고 나의 기세를 조절할 줄 알라는 문장으로 이 장의 취지를 요약합니다.

1차 대전 직전 독일 육군은 필승의 방책이라 할 슐리펜 작전을 마련해 두었으나, "지나치게 대담한 계획이었던 탓에 독일 참모본부의 심장이 나약해진 탓으로(p286)"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저자는 결론내립니다. 반대로 2차 대전 때에는 간이 부은 히틀러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을 기다렸다는 듯 승인하여, 허를 찔린 프랑스 육군을 대파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기세" 라면 바로 이런 걸 두고 이름이겠는데, 요아힘 페스트 같은 이는 그저 "도박꾼의 행운"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습니다. 

제11편 구지(九地)에는 박사님 말씀대로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자주 쓰입니다. 사실 <손자병법>뿐 아니라 중국 고전 대부분이 이와 같습니다. 박사님은, 어렵게 파고들면 한도끝도없이 어려운 이 고전에 대해 최대한 쉽게, 또 박사님의 장기인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쾌하게 해석해 줍니다.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에는 위 무제(조조)가 주석을 달았고, 이제 인류의 간교한 지혜가 끝을 모르고 발달한 현황을 낱낱이 반영하여, 박식한 임 박사님이 고전에 이처럼이나 팔팔 뛰는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손자병법의 타이틀을 빌린 세계전쟁사로 읽어도 되겠으며,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책보다 더 실용적이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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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 예술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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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족의 철제 하에 신음하다가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하여 급기야는 동족 상잔의 비극까지 이어졌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 단정 수립까지를 보통 해방공간, 해방 정국이라 부르는데요. 신복룡 박사님의 이 묵직한 책을 보면 우리 민족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장래를 모색하고 민족의 앞날을 설계하려 노력했는지 그 생생한 단면을 개관할 수 있습니다. 분량도 풍성하거니와 대석학의 원대한 통찰까지 지면 곳곳에 숨어 있기에 독자로서는 너무도 행복하면서도 유익한 독서가 가능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역사는 대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 쟁패의 연속으로 채워졌습니다. p29를 보면 저자께서도 버나드로 몽고메리의 말을 인용하여 "결국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패권자가 된다"고 소결론을 내십니다. 일본은 왜 그리도 잔인하거나 호전적이었나? 이에 대해서는 무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도 언급이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호전적이고 냉혈 기질이 다분한 그들, 집단의 명예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포함하여) 개인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것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심성이, 바다를 지배하는 실력과 결합되었을 때 이웃 반도에 위치한 우리 겨레에 어떤 피해가 닥쳤는지는 이미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바입니다.

언변 좋고, 부티 나고, 사회적 지위도 번듯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런 유형이 되고 싶어하며 혹은 그런 사람과 친분을 맺길 원할 것입니다. 저자는 몽양 여운형을 가리켜 그런 축복 받은 인물이었겠다고 추정하며, 다만 이런 분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처럼, 해방공간에서처럼 좌와 우가 극렬히 대립하는 국면에서 과연 어떤 포지션을 취하는지, 양자를 조화롭게 중재하는 게 가장 바람직했겠으나 그런 고상하고 숭고한 시도가 좌절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실감나게 보여 준 위인이 바로 몽양 아니었겠냐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합리적인 중도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게 해방공간 비극의 한 국면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통감하는 바입니다.

p147을 보면 저자의 참으로 심오한 통찰이 담긴 말씀이 나옵니다. 해방공간은 과연 좌우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방울뱀도 동종의 공격에 대해서나 생사를 걸고 싸우지, 이종과의 대치 상태에서는 상대가 강하다 싶을 때 적정선에서 꼬리를 미리 내리는 게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우파 내에서, 또는 좌파 안에서의 권력 투쟁이 더 심각했으며, 이승만과 백범의 갈등도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이유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심각성을 띠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두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대립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입니다. 백범은 올곧은 지사형 인물이었지 권력투쟁 쪽에는 무관심했으며 실제로 한 살 연상이었던 이승만에 대해서도 대체로는 형님 대접을 하며 양보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승만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권력욕의 화신 같은 권위주의적 성격이었습니다.

"용서해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원한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까요? 대체로 사람은 아무리 지독한 악몽에 대해서도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잊기 마련인데, 이는 머리가 나쁘거나 사람이 물러터져서가 아니라, 나쁜 기억을 갖고 사는 게 자신의 생리적 건강 유지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색출 처단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해 적군에 몸을 허락했던 매춘부 등에 대한 린치, 마녀사냥, 사력구제 등 한심한 분풀이에 그쳤던 일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걸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라 반대로 자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칼 야스페르스 역시, 뉘른베르크 재판은 진정한 전범자를 가리는 정의의 심판장이 아니라, 거꾸로 크고작은 공범자들이 자신만은 가담의 책임을 면하려고 더 큰 범죄자를 지목하기에 바빴던 위선의 퍼레이드였다는 취지로 말한 적 있었다고 p199에 나옵니다.

김일성은 과연 진짜 독립 운동가였을까요 아님 가짜를 덧칠한 과장일까요? 일단 나이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였다고 해서 그 많은 공훈이 그것만으로 부정될 근거는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북측에서는 만주 일대의 가혹한 기후, 지형 조건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젊은이라야 그런 행적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옹호하기도 합니다. 반면,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혁혁한 공적은 1920년대까지도 거슬러올라가는데, 그 많은 전승이 심지어 10대 시절의 김일성에게 낱낱이 귀속되는 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상식 선의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국전은 과연 남침을 유도한 미국의 음모 같은 게 개재했었나? 이 역시도 근 70년 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오래된 논쟁거리입니다. 미 국무성에서 유엔 담당 업무를 맡던 D W 웨인하우스가 이미 한국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침략자로서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이미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수정주의도 두 갈래 입장이 있는데 하나는 브루스 쿠밍스(=커밍스)의 주장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구조적 유도 끝에 북한이 필연적으로 남침을 감행한, 사실상의 북침설이며, 다른 하나는 이 신복룡 박사님처럼 미국이 어설프게 뭔가 함정을 파 두기는 했었는데 우연도 다분히 개재하여 북한이 덜컥 미끼를 물었다는 입장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신복룡 박사님의 이 주제에 한정된 어떤 압권(壓卷)이 하나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딱 맞게 이 멋진 신간이 출간되어 독자로서 너무 행복하고 책을 받아들어 읽게 된 자체가 영광입니다. 원래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아티클을 모은 2017년 지식산업사판이 있었고, 이 신간은 그에 여운형, 김규식론, 남북협상 등의 화제가 더 보강되었습니다. 두고두고 읽으며 제 마음의 양식과 교양의 원천으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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