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 개정판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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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는 동아시아 어느 나라에서건 남자의 로망과도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이걸 영어로 번역한 제목이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인데, 물론 일차 의미는 소설이란 뜻이긴 하나 여튼 워딩 자체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삼국지 몇 번을 읽지 않은 이와는 말을 섞지 말고(말을 나눌 가치가 없으므로), 삼국지 몇 번 이상 읽은 이와도 말을 섞지 말라(처세에 달통한 자이므로 그에게 이용당할 위험이 있어서, 아니면 내 속셈을 빤히 꿰뚫어보는 자이므로)는 오래된 격언도 있지만, 사실 다 번거로운 언사일 뿐입니다. 삼국지의 가치는 읽어 본 사람만이 알며, 수백 년 전(나관중 시대 기준)이나 지금이나 사람 심리의 본질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처세 심리의 택틱스에 있어 삼국지만큼 생생한 교과서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20을 보면 조조의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진림이 조조를 토벌하는 격문을 작성할 때, 비천한 환관의 자식이라는 문구를 일부러 집어넣어 상대의 감정적 격동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선결 과제에만 집중하며, 이런 현명한 처신의 연속이 결국 그의 승리로 연결됩니다. 조조는 그런 모욕적인 도발이 자신의 감정에 일으키는 교란이라는 게, 결국 현실적 이익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일시적이고 유치한 전기적 파동에 지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겠습니다(물론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전자기학 기초를 놓기 1700년 전이긴 합니다만). 어떤 분노, 짜증, 복수 욕구 분출 등이 자신의 이익 관철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되며, 사람인 이상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야 없겠으나 이를 메타적으로 잘 관리하여 빨리 평정심을 찾고 필요한 과업 수행에 집중하는 게 최상의 선택일 뿐입니다. 

저자는 책 여러 대목에서 손견을 비판합니다. 손견은 <연의> 초반 그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강동의 호랑이"이므로 독자들에게 대체로 호평을 받습니다만 저자는 p117에서 "열등감, 인적 구성의 획일화"를, p136에서 "부족한 신중함"을 들어 그를 비판합니다. 그의 둘째 아들 손권은 소설에서는 그 실책이 딱히 부각되지 않고 대개는 "수성(守城)의 달인"으로 평가받지만, 요즘은 정사(正史)까지를 내처 읽는 독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가 말년에 저지른 여러 실책이 지적되고 평판이 많이 내려갔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p106에는 원술을 두고 "남양의 꿩"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원소나 원술이나 가문의 어드밴티지를 제대로 활용 못 하고 모든 것을 날려버린 어리석은 자들이므로 뭘 봐 줄 만한 데가 없습니다. 책에서도 당연히 부정적인 평가뿐입니다. 

"과거 성인(聖人)들의 가공된 스토리에 허우적대는 구강 수동적 성격(p199)" 저자가 유요(劉繇)를 두고 내린 평가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원영적 사고"가 있는데, 10대 소녀가 세상을 마냥 낙천적으로 보는 거야 누가 뭐랄 일이 아닙니다만 한 지역을 책임지고 다스려야 할 유지, 소군주가 그 현실 인식이 미숙하다면 본인에게나 백성들에게나 여간 큰일이 아니며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합니다. 저자의 심리학 이론 원용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마냥 현실을 낙천적으로 보고 경우에 맞지도 않은 레퍼런스에 현실을 왜곡시켜 투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년기 부모 보살핌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독립을 못한 탓이라고 합니다. 보통 연의 독자들이 무능한 유요를 두고 비웃기는 해도 그의 심적 게슈탈트를 두고 oral-passive로 규정하는 건 처음 보는데 예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169를 보면 여포의 패인 중 하나로 "자신과 똑같은 맹장(孟將)들만 밑에 둔 선택"을 저자는 들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큰 그릇으로 휘하에 다양한 유형을 두루 포진시켜야 하는데 한고조 유계라든가 제(齊) 맹상군 같은 인물들은 본인부터가 그릇이 크니 온갖 사람을 곁에 두었습니다. 반면 협량한 소인배들은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본인과 비슷한 유형만을 곁에 두기에 상황 발생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지 못하므로(이른바 에코 체임버 효과) 실패하는 정치세력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진궁(p314)은 조조가 궁벽하던 시절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으나 너무도 비인간적인 모습에 크게 실망하여 조조가 방심한 틈을 타 그를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삼국지 독자 중 촉(蜀)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능력도 뛰어난데다 최후도 지사답게 비장하여 널리 인구에 회자됩니다. 여포도 그의 태도가 불손하다 하여 마냥 멀리할 게 아니라 그의 좋은 충언을 들었으면 정치적으로도 성공했을 텐데,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려 들지 않는 자의 말로가 다 이러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설정과 처세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점이 많이 정리되었으며, 삼국지를 설령 안 접해 봤다 해도 인용된 스토리와 저자의 심리학적 해석이 재미있기 때문에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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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
양현길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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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앞날개에 적힌 저자의 말씀대로, 철학의 본분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는 조직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며, 구태여 의미를 찾는 게 사치스럽게 여겨질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평범한 동물과 달리 답을 꼭 알아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며, 대체 그 뜻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좇는 데에 대해 메타적으로 성찰할 줄도 압니다. 철학은 이처럼 의미를 찾는 사람들,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구실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에 활동한, "심리학의 아버지(p40)"라 불리는 철학자입니다. 철학에서 우상을 논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라면 프랜시스 베이컨일 텐데, 이 책 p45 이하에서 인용되는 W 제임스는 우리들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우상을 따르다 보면 삶의 의미를 찾는 노력이 방해될 뿐 아니라, 이미 "의미"의 자리를 우상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므로 모든 과정이 출발점부터 왜곡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하기 전에, 의미를 찾는 노력을 전개하기 전에, 기존의 우상부터 저 멀리 갖다버려야 합니다. 

우상이란 이런 것입니다.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등등...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 목표를 이뤄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쥐떼처럼 벼랑 밑으로 뛰어내리는, 아무 생각없이 남따라 춤을 추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우상과 환상을 버리고, 자신을 먼저 겸허하게 돌아보고, 내가 과연 이 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공연히 남의 자리를 대신 점유하고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성찰하여, 참다운 자신의 행복을 찾아 겸허하게 내려놓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저자는 이를 페르소나(p112)라 규정합니다. 살다 보면 가면도 필요하고 내 진짜 모습을 남들이 궁금해하거나 관심있어하는 것도 아니므로 구태여 매사에 진심을 일일이 공개할 필요는 없습니다(남들도 알고 싶어하지 않고 피곤해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들 앞에서 (아무도 관심없는) 자기만의 연극에만 몰입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자신이 인물이 어디 가서 안 빠진다는 둥, 자기가 착하게 살아서 자식이 복을 받아 대신 잘 산다는 둥(결국 지 자식이 깜냥이 안 된다는 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듣다 보면 무대 위 주인공도 이런 주인공이 따로 없습니다. 현실은 그저 남들이 먹다버린 쓰레기나 치우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즉시 행복해지는 비결은, 환상을 버리고 자신의 현실로 지체없이 복귀하는 길, 아주 간단한 결정이면 충분합니다. 

19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의 큰 발달로 사람들은 더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위에서 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최소한의 두려움도 없다면 거리낌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 악당들에게는 이런 헛된 믿음이라 해도 아예 없느니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와중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를 선언했는데(p145), 신이 없으면 내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추하고 무절제한 성욕 식욕을 마음놓고 채우려 드는 한심한 동물적 삶을 사는 게 그럼 깨어있는 삶이기라도 한가. 이에 대해 저자는 여튼 그 기준은 나 자신이라야 하며(p147) 이로부터 짐승과 참된 인격자가 갈리는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합니다. 

p211에서 인용되는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외로운 존재"라고 합니다. 반면 하찮은 동물은 한심한 욕구가 충족이 안 되어 외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읽고, 사색을 통하여 무슨 생각이라는 걸 좀 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어디서 EBS 강사가 몇 마디 떠드는 걸 주워듣고, 연예인들이 주절거리는 만담 몇 마디가 역사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한심한 영혼들도 책을 읽고 생각 비슷한 걸 하기 시작하면 구제불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p244)은 원래 부유한 출신이었으나 그 우수한 두뇌를 철학에 오롯이 헌신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시골에 은신했습니다. 세네카는 네로 같은 폭군과 대치하는 와중에도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며 집요하고 부지런하게 시간의 중요성을 탐구했습니다(p260). 우리네의 삶도 이처럼 경건하고 근본을 응시하는 그 무엇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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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역사신문 : 삼국 시대 편 - 삼국 시대와 오늘을 연결한 최초의 신문
신효원 지음 / 책장속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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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역사신문 시리즈 너무 좋아합니다. 어린 학생들도 좋아하고, 어른이 읽어도 유익하며 꽤나 심도 있는 지식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시야까지, 어린 독자들에게 그리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차분하게 전달합니다.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을 어렵게 가르치면 어린 독자들에게는 그라 효율적인 독서가 되지 못하는데, 이 책은 "신문 기사"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기 때문에 역사도 재미있게 배우고, 더불어 "신문"이 어떤 매체인지도 함께 공부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커서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경제, 문화, 정치 등을 이해할 운명이기 때문에, 신문이 무엇인지도 알아야만 합니다. 일부 유튜브 채널처럼 편향적인 통로로만 뭘 배워 버릇하면 커서도 그 정도 그릇으로밖에 못 큽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국인들이 원래부터 풍류를 좋아한다는 건 중국의 유물 양직공도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남북조 시대 양 무제에 조공 온 각국 사신들 차림을 보면, 백제의 차림은 호사가 극에 달했고 신라의 사신은 세련되고 유니섹스하며 힙합니다. 반면 왜에서 온 자의 몰골을 보면 이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책 p53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부터 얼마나 멋을 부리며 살았는지 자세한 설명이 컬러 도판과 함께 나옵니다. "백제 사람들은 키가 크고 깨끗하다" 등이 중국 사서에도 나오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신라 흥덕왕(이 사람은 통일신라, 혹은 남북국 시대 군주입니다)은 사치 금지 풍조를 경계하여 특별한  명령을 내렸으나 역효과만 났는데, 신분제 강화라는 부작용은 이때뿐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빚어진 바 있습니다. 

"무덤 속 그림에는 죽음이 아닌 삶이 있었습니다(p33)." 참 멋진 말입니다. 무덤 자체야 죽음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 부장품으로 묻힌 물품들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열렬히 삶을 사랑한 이들이었는지를 여실하게 증명합니다. 책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해 설명하는데 사신도, 무용도, 수렵도 등은 사실 알고 보면 정말 흥미롭게 읽히는 제품들입니다. 이런 멋진 작품들이 무덤 안에 들어가니, 죽음의 귀신이 스멀스멀 들어왔다가도 그 생의 기운에 눌려 화들짝 도망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는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단어가 있을까봐 좀 어려운 말들에는 일일이 설명을 달아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변진(弁辰)은 변한의 다른 말이라고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변진=변한+진한 아니냐고 하는데 아닙니다. 이는 사서의 용례를 따른 것이지 현대인이 편의대로 부르는 게 아니므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한(韓)이 고대 국가 진(辰)과 통하기도 했으므로 이런 이름도 가능합니다. 

불교는 신라에만 있었을까?(p79)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워낙 불교가 신라에서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으므로, 또 반도 남부를 통일한 게 신라이므로 그런 착시가 생길 뿐입니다. 삼국 모두 불교를 성공적으로 수용하여 동아시아 최고의 문화를 이뤄낸 게 맞습니다. 우리 고대 사회에서는 불교가 들어와야 백성 상하가 두루 화합하고 고급정신문화가 자리할 수 있으며 사람의 인성도 순화됩니다. 책에 보면 일정한 사회적인 필요와 맞물려 불교가 수용되고 널리 확산되었음이 잘 서술되었습니다. 미개한 샤머니즘은 서서히 도태될 수밖에 없었는데 21세기인 지금도 이딴 걸 믿는 이들이 있으니 그저 한심할 뿐입니다. 

이 책은 삼국시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예쁘게 꾸미고 다녔는지(?)를 책 여러 곳에서 강조하는데, 어떤 문화권이 얼마나 외양을 세련되게 꾸몄냐는 문제가 그 전반적인 문화적 성숙도와 일정 상관관계를 가지므로 이런 태도가 교육적으로도 무난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니,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이란 그 성향이 비슷하므로 역사에 대해 두루 흥미를 갖게 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피(毛皮)는 매우 귀한 의류재료이며 상품인데 고구려, 발해 등이 이 부문에 있어 특별히 강점을 가졌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 책은 모두 다섯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문화, 사회, 경제, 과학, 그리고 정치입니다. 순서는 일반 신문과 좀 달라도 신문 역시 이렇게 섹션별로 구분되어 발행됩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문화, 과학 파트가 매우 자세하면서도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서술되었습니다. 역사 과목이 아이들에게 진정한 지혜의 통로로 작용하려면 개별 말단 지식의 의미없는 나열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이처럼 일정 맥락 하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읽는 재미까지 잃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유익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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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사회 대한민국 - 사회교사의 눈으로 본 인구 소멸과 우리의 미래
정선렬.엄혜용 지음 / 행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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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좁은 영토에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해야 했던 대한민국은 근래 출생률이너무도 떨어져서 이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저자 두 분은 현직 고교 사회과 교사분들이신데, 불균형하고 불안정해진 인구 구조가 과연 사회에 끼치는 궁극적 영향이 무엇인지, 또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근본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지에 대해, 쉽고도 정확하며 창의적인 논의를 전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 중 한 분께서는 전라남도 완도 소재의 고금고에 재직 중입니다. 지방은 요즘 인구가 급격히 줄어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곳이 많은데, p51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물론 고교학점제는 그 나름의 도입, 존재 이유가 있으며 잘 활용되면 여태 교육 현장에서 빚어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가뜩이나 급격한 인구 이탈, 유출을 겪는 지방 교육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는 크나큰 부작용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즉 지방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교사들을 확보하기가 어려우며, 또 이를 온라인으로 보충할 방법이 있다고는 하나 지방 학교의 교사들은 이 시스템에서 충분히 자기 역량을 보여 주기가 어렵다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도 합니다. 

과거에는 지방에도 양질의 일자리, 우수한 기업들이 많이 소재했었습니다. 지방이라도 (제법 숨은 부자가 많으므로) 함부로 돈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산업 구조가 반도체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어, 다닐 만한 직장은 대부분이 수도권의 반도체 벨트에 집중(p75)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방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유입되고, 지방에는 고연령층만 남는 등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 심해집니다. 한국은 그저 신생아 수만 급감하는 게 아니라, 청년 인구의 특정 지역 집중 등 이중삼중의 왜곡을 겪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합계출산율이라는 개념(p107)은 가임기의 여성이 일생을 두고 평균적으로 몇 명의 아이를 낳는지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한국의 경우 이 수치가 0.7인데 여성 한 사람이 일생 동안 한 명을 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30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조명하며,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아 기를 수 없게 만드는 온갖 한계와 모순에 주목하자고도 합니다. 또 자신의 부모 세대를 바라보며,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던 그들의 패턴을 자신은 도저히 따를 수 없겠다는 두려움, 현실 자각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도 분석하네요. 

선진국에 접어든 여느 나라라도 비슷한 문제를 겪지만 한국은 특히 고령층이 급격히 늘어나고 이를 부양할 젊은층 노동인구는 정체하거나 감소한다는 게 심각한 현실이라고 저자는 지적(p154)합니다. 의료계에서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발병의 초기 단계에서 미리 예방을 하는 게, 나중에 병이 크게 번져 치료에 들이는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뻔한 운명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 예방 방안을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하며, 이 중에는 세대 간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치적, 문화적 대립과 갈등상을 봉합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합니다. 

마산, 거제, 울산, 군산, 구미 등은 과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들이었습니다(p206). 지금은 어떠한가? 저자는 자신을 두고 출생시와 어려서부터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방 중소도시들에서만 지냈다고 회고합니다. 한때는 그렇게나 활기에 가득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가득했던 그 도시들이, 이제는 청년들이 빠져나가 휑뎅그렁할 뿐이라고 저자는 씁쓸하게 회고합니다. 현재 산업은행이 부산 이전을 거부하는 등 대기업이나 정부 부서도 지방으로 이전하는 걸 매우 꺼리는 추세라고 합니다(p211). 저자는 19세기 말 독일 통일 직후 재상 비스마르크가 마련한 사회보장제도의 예를 들고, 또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 1940~)의 견해를 인용하며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이런저런 연금이나 복지제도는 결국 세대 간 갈등 요인을 포태할 수밖에 없으며, 진정한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모든 제도의 전향적 재검토 필요성을 힘주어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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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숨결
임다윗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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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도 감사한 선물을, 그게 소중하고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수가 많습니다. 저자 충만한교회 임다윗 목사님께서는 예컨대 p68 같은 곳에서, 매일매일 주어지는 "오늘"이야말로 가장 (누군가에게든) 고마워해야 할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꼭지에서 인용되는 일화는 천주교 신부 구엔 반 투안에 대한 것인데, 그는 (책에 나오듯이) 1975년부터 무려 13년 간을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입니다. 1975년이면 베트남이 최종적으로 공산화되던 해이며, 남베트남의 기득권과 얽혀 있던 로마 가톨릭 세력에 대해 공산당은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습니다. 사실 진짜 기득권은 이미 이때로부터 20년 전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 후 식민 본국 프랑스 등으로 대거 철수했으므로 끝내 남았던 사제라면 순전히 종교적 동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만 그런저런 사정을 당국이 다 살폈을 리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신부는 "나는 내가 언젠가는 풀려가겠거니 하는 헛된 희망고문을 내게 하지 않겠다"라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성직자다운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의 상태가 아무리 부유하고 안온해도 참으로 한심한 현실인식, 어리석음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간혹 보는데, 반대로 이 사람은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풀려나겠거니 하며 현재의 고달픔을 부정하려 드는 게 보통 사람들이 갖는 도피성 마인드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제 생각에) 두 가지 점에서 특히 해롭습니다. 첫째 나를 감금시킨 가해자들에게 노예 상태로 스스로를 종속시킵니다. 이 자들은 나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친 자들이고 투쟁을 해야 할 대상인데, 오히려 굽히고 들어가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이 또 없습니다. 둘째 그랬거나 말았거나 하루하루는 무엇을 하든 내게 주어진 소중한 자원인데, 그저 풀려날 날만 기다리며 허송세월한다면 대체 누가 가장 손해이겠습니까?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 안에서 공부를 하든 뭘 하든 나를 위해 생산적인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저 베트남 감옥처럼 상황이 열악하다면, 하다못해 마음수양이라도 해야 합니다("하다못해"가 아니라, 사실은 이게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싯다르타도 그보다 훨씬 나쁜 조건에서 깨달음을 이룬 예가 있습니다. 또 예수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헛되이한 자에게 가장 가혹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달란트는 불공평하게 각자에 부여되었지만 시간만은 누구에게나 고르게 주어집니다. 

p83에는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예가 나옵니다.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와 염문이 있었던 단테스라는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주위에서 모두 만류했는데도 결투를 강행했으며 결국 실력이 훨씬 좋았던 상대에 의해 죽었습니다. 저자 임다윗 목사께서는 이 사례를 들어, 푸시킨이 아직 서른여덟이라는 한창 나이에 공연히 자존심, 만용을 부리다가 목숨을 잃었다며,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공연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지 말고, 참된 자존감을 키울 것을 권하십니다. 

저는 평소에 임다윗 목사님의 좋은 설교를 굿티비 같은 케이블 기독교 채널을 통해 휴일에 자주 시청하며, 또 지금 이 대목 말씀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저 조르주 단테스라는 이름은 러시아식이 아니라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 텐데, 실제로 이 사람은 러시아에 파견근무차 체류하던 프랑스 귀족 출신 무관이었습니다. 푸시킨의 죽음은 단순 치정 스캔들이 아니라 궁정 암투상도 복잡하게 얽힌 음모가 개재했을 가능성이 높고, 푸시킨 본인은 이를 묵살하고 넘어갔어야 현명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본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용감하게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고, 푸시킨은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도 됩니다. 만약 저 같으면 푸시킨처럼, 목숨을 내어놓고 저 강한 상대방과 한번 붙어 볼 생각입니다. 비겁자로 처신했다는 자괴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하기보다는 그게 나으며, 다윗도 골리앗을 때려잡은 소명 완수 하나로 기어이 열두 지파의 왕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세상에는 요나처럼 도망다니는 삶이 있고, 최후의 만찬 때의 그리스도처럼 주어진 소명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삶이 따로 있습니다. 또 이게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한판 승부를 걺으로써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유무형의 이익을 보기도 합니다. 어둠 속으로 도피하면 당장 생물학적으로야 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이겠습니까?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삶(p182)은 성도들과 자주 소통(p210)하고 진심으로 주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생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선에 빠지지 말고 교회에 자주 나와 은혜를 입는 게 바람직한 신도의 선택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며, 혼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섬기는 자의 리더십(p230)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 궁극의 가르침임을 또한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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