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스팟 - 인생의 숨은 기회를 찾는 9가지 통찰
샘 리처드 지음, 김수민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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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가르치는 일을 직분으로 삼는 이, 예를 들어 대학 교수 같은 분이 스스로를 "배우는 사람"이라 칭한다면, 정말 겸손하신 성품의 한 증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 저자 샘 리처드 교수님 같은 분이 그러한데, 그는 이 책에서 우리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했었으나 차마 밖으로 꺼내 표현하지 못한, 그러면서도 나에게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하는 그 무엇을 "스위트 스팟"이라 부릅니다. 누구나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고,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이룬 후에도, 정작 내게 가장 소중한 걸 놓쳐 버려, 마음은 황량한 사막처럼 텅 비었다면 그 이룬 성취가 다 무엇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나만의 스위트 스팟을 지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전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가성비 만점인 비밀의 행로를, 샘 리처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역시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p80을 보면 저자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보면,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진학 경쟁이 펼쳐지는 등 어렸을 때부터 생존 경쟁이 장난 아닙니다. 주변에 보면 항상 잘나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득실득실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서 기 죽을 필요 하나 없습니다. 왜? 나 안에는 나조차도 몰랐던 거대하고 풍요로운 우주가 살아 숨쉬면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우주는 그 어느 잘난 친구도, 직장 상사도, 대기업 회장님도 갖지 못한 나만의 보물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나의 우주를 찾아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꽃을 피워내는 그 사람이 바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p129에 보면 아이코노클래스트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상 파괴자라는 뜻인데, 기독교 특정 종단에서는 매우 불편해할 수도 있지만, 영어 사용 국가들은 과거에 대개 프로테스탄트 계열이므로 이 단어는 매우 개척적이고 진취적인 뜻을 갖는 게 보통입니다. 근세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도 4대 우상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앎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깨뜨려야 나의 진로가 열리고, 참다운 나의 가능성을 내 자신이 그 누구보다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타인을 배척하는 게 아닙니다. 나부터가 근거 없는 미신, 우상에 사로잡혔으니 남에 대해서도 공연히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포용하십시오." 그래야 나의 우주도 내 눈에 더 잘 보이게 됩니다.

p173을 보면 저자는 "리더십이 곧 팔로워십"이라고 말합니다. 남을 이끌려는 사람은 먼저 남을 섬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도 일찍이 servant leadership을 말한 바 있고(성경에 대놓고 그런 말은 없지만 이후 많은 신학자들이 정리한 개념이죠), 부처님도 자신에게 배우기 전 먼저 변소(화장실) 청소부터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비우고, 에고를 지우고 세상을 포용하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참된 나의 우주도 찾아지는 법입니다. 세상은 본래 위아래가 없는 법이라 남을 깔아뭉개려는 자는 결코 남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p176 같은 곳에서 저자가 한국을 언급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은 리더십보다 팔로워십이 강조되므로 팔로워 만으로도 의미있는 경력 쌓기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진단입니다. 우리들은 그게 당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 말이 특별하다는 걸 모르지만 미국, 영국에서는 리더가 되어야 번듯한 커리어가 형성되니 그게 차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카페 이벤트에 나오는 자계서를 보면 그렇게나 리더니 리더십이니를 강조하는 거죠(담론이 다 서양권에서 만들어졌으니). 저자는 이런 동아시아 사회의 미덕을 서구권도 좀 배워야 한다고 이미 이 책 서문에서부터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점차 미국 회사의 구조를 각 직장이 닮아가니 미국식 리더십의 장점을 또 수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프레임을 사회학에까지 도입하면서 개인은 자유의지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미리 구조가 만들어 놓은 구조에서 의식이나 행동이 못 벗어나기 일쑤라고 주장했죠. 이 책 p285를 보면 저자는 (그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독자인 제가 알 수 없으나) 사회적 복제인간(social clone)으로 시스템이 마련한 틀에서만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판합니다. 남을 인정하고 소통하되 나만의 소중한 세계를 발견하고, 겸손하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이를 심화하라는 저자의 가르침을 우리 모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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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스피치 스피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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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으며, 실제로 로마 제국은 방대한 정복지를 순조롭게 다스리지 못하고 혼란 끝에 동서로 분열했습니다. 무력만으로는 기층 민중의 자발적인 순응, 충성을 이끌어내지 못함을 증명하는 유력한 사례입니다. 이 책 띠지에서 이어령 선생은 말합니다. "칼과 돈의 위력과는 달리, 말의 힘은 상대방을 스스로 무릎 꿇게 합니다." 꼭 상대방을 무릎 꿇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관계와 협력을 지속성 있게, 건강하게 이어가려면 위력이나 탐욕, 매수 등이 아닌 진정한 교감과 공감이 간절히 요구됩니다. 이어령 선생 3주기를 맞아 기획된 이 책에서, 강의(록)를 통해 다시 만나는 선생은, 말의 새로움과 참됨을 통해 우리 겨레가 대립을 지양하고 창조와 화합의 길로 나아갈 것을 힘차게 권유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1을 보면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중앙공무원 교육 강연에서 남긴, 길면서도 통찰 가득한 명연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선생은 GND에 대해 언급하는데, grand new deal의 약자입니다. 지금까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흑백논리가 이끌고 온 우리 사회라면, 이제는 각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져 모두가 융합하고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새로운 창조와 화합의 경지가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선생은 그전부터 디지로그, 즉 정확한 측정과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디지털, 그리고 감성과 미학의 가치를 중시하는 아날로그의 통섭을 일찍부터 주장한 적 있습니다. 이렇게 평소부터 그 지론으로 치밀하게 완성한 고유의 담론이 단단히 구조를 구축했기에, 어디서 어떤 강연을 하셔도 일관되고 교훈적인 가르침이 가능하신 듯합니다.

이러한 창조, 즉 미증유의 생성과 화합이 가능하려면 말, 이 말이란 것의 위력에 기대어야 합니다. 말이야말로 겨레와 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그 안에 품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선생은 워드 파워, 소프트 파워라고도 부릅니다. p126을 보면 이런 말의 힘을 전 민족과 공유하고 개개인의 창의를 분출하게 만드는 리더의 출현이 무척 절실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생은 새 밀레니엄 첫번째 베이비의 탄생을 방송에서 중계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밝힙니다.

사실 선생은 TV에 무척 자주 출연하셨던 편인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당시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열정을 다해 그 인문적 의미를 시청자들과 함께 부여했다고도 하죠. 이 강연은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 회의에서 펼쳐진 건데, 새천년의 불이 아직도(이 연설 당시 기준) 타고 있는 호미곶에서 이를 어떻게 운반할지를 두고 자신이 기여하신 바를 자세히 말씀합니다. 자리가 자리이니 만큼 한국 지방 행정의 경직성, 관료주의에 대해서도 은근히 일침을 가하는 선생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그런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정신, 영혼이 현실의 옹색함 앞에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겠습니까.

"에디슨은 최초로 빛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었지만...(p156)" 괴테는 죽기 전 유언으로 "빛을, 더 많은 빛을...!"을 입밖으로 되뇌었다고 하죠. 선생이 생전에 강연과 저술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포인트가 빛, 광명, 밝음과 생성의 에너지였다고 기억합니다. 만인이 화합하고 대동 공존해야 하나, 유감스럽게도 창조와 창의만큼은 원맨쇼라야 하며, 창조를 투표로 결정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없다는 게 선생의 힘찬 논지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독(獨)과 창(創)은 자주 함께 어울리며 상호친화적입니다.

모직은 털 모(毛), 짤 직(織)을 한자로 씁니다. 그래서 단위의 길이가 짧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 대목(p201)을 읽으며 선생께서는 참 모르시는 게 없다 싶었습니다. 식물에서 뽑아내는 섬유는, 반대로 원하는 만큼 길이를 뽑아낼 수 있고, 이 식물섬유와 동물성 옷감의 싸움에서 산업혁명이 비롯했다고도 합니다. 이 강연은 인사이트 창간 10주년 포럼에서 행했다고 나오는데, 역시 선생님다운 원대한 시야가 돋보입니다. 천재이자 현인의 통찰과 진단은 이처럼 적확하고 심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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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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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권의 저작에서 뽑은 에센스 중의 에센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인문학자이자 문학가인 이어령 선생은 생전에 무척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혹 선생의 열렬한 추종자, 팬이라고 해도 그 모든 책들을 일일이 읽고 소화하기란 힘듭니다. 다작을 한 문필가의 모든 결과물을 톺아보는 일이란 참 만만치 않은데, 예를 들어 지금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인 세계사에서 박완서 전집을 일찍이 펴낸 적이 있고 저도 소장 중인데, 아직도 다 읽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쁜 현대인들에게, 위대한 정신의 소산 그 핵심만을 추려 읽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자체로 고마운 일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바는, 이어령 선생은 문장을 문단이나 챕터, 개별 저작으로부터 고립시켜(추출하여) 읽어도 그 하나하나가 명언이며, 어떤 의도로 하신 말씀인지 뜻이 명확히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맥락과 분리되면 뜻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정반대로 왜곡될 수도 있는데, 이어령 선생의 문장과 명언은 그 자체로 잘 읽히고, 이렇게 에센스 포맷으로 접할 때 거꾸로 더 강렬하게 뇌리에 박힙니다. 제 짐작으로, 이어령 선생은 처음부터 글을 이렇게(의식적으로) 쓰시는 분이며, 마치 수학의 프랙털 구조처럼, 부분을 보면 전체가 유추되고 또 전체로부터 부분이 짐작되는, 천재만의 입체적 역동적 글쓰기가 가능한 분이었던 듯합니다. 이 책 서문의 제목은 "어록은, 이어령이 쓴 일행시다"입니다. 이 서문은 선생의 천생배필이셨던 강인숙 여사가 쓰셨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하던 고인류(古人類)입니다. 선생은, 원숭이나 다를 바 없었던 이들이 무덤이라는 걸 만들어 죽은 동료를 기리고, 놀랍게도 그 안에 꽃가루를 넣었다는 사실(p92)에 주목합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어느 원숭이가 무덤에 꽃을 놓을 줄 안단 말인가?" 원숭이는 고사하고 사람 역시도 해야할 도리를 하지 않는 자가 부지기수지요.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로 이런, 무덤에 꽃을 둘 줄 알았던 원숭이부터 갈라져나온 영혼들입니다. 다만 여기서 독자인 저는 망자에 대한 예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본성, 사후 세계에 대한 명상 등에 초점을 두어 읽었는데, 책에서 이 대목의 제목을 뽑기로는 "아름다움"으로, 그 미학적 측면을 더 중시한 듯합니다.

"무언극, 그것은 침묵으로 이룩한 음악이다(p202)." 저는 여태 책프에 참여하며 이어령 선생이 아직 30대였던 시절에 쓴 희곡 몇 편을 읽고 리뷰를 쓴 적 있습니다. 선생이 희곡 창작에 한창 정열을 쏟을 때는, 유럽(특히 프랑스)에서 외젠 이오네스코 같은 (공산권 루마니아 출신) 작가가 연극 문법 종래의 것을 모두 해체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을 때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추송웅씨 같은 배우가 1인극, 판토마임 등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뭔지도 모르면서 겉멋만 들어 자신이 연예인인 양 착각하는 미친 노파도 수원에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이 언명은, 특히 그가 성의를 들여 창작했던 희곡 여러 편을 염두에 두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요약하길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p331에서 이어령 선생은 "한 가지 위에만 오래 앉은 새는 그 삶이 참으로 편하겠으나, 대신 어떠한 생기도 즐거움도 딱히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그 생명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움직이고 먹이와 쉼터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한 자리에 안주하면 결국은 도태됩니다. 세상을 벌벌 떨게 한 사라센 제국, 오스만, 몽골, 브리티시 엠파이어도 결국은 달콤한 현실에 만족하고 멈추면서 쇠락의 길을 밟았습니다. 선생도 특히 21세기들어 디지로그 같은 책을 쓰며,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담론을 무척 일찍부터 체계화하여 설파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정신을 언급한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그 어떤 사상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우리 민족만의 장점과 개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리적이기까지 합니다. 한 권으로 읽는 이어령, 방대한 이어령 유니버스(?)의 주요 경영인이자 지분권자인 강 여사님이 그 편집에 관여하셨기에 더욱 권위 있는 멋진 원 볼륨 데퍼니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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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 이정하 산문집
이정하 지음 / 마음시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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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책!" 이 책을 보여 주니 제 주변에도 알아 보는 이정하 작가님 팬들이 많으며, 저도 25년 전에는 그저 제목만 보고 지나쳤던 작품을 이번 기회에 다시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시회의 기존 문학서들처럼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양장본입니다. 시대가 흘러도 빼어난 문필가의 감성은 여전히 빛나며 독자의 마음을 섬세히 터치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인본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바꾸면 주소록 바꾸는 게 또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정하 작가님은 솔직하게, 새 핸드폰에 누굴 옮기고 누굴 이참에 (버리는 폰에) 남겨놓을지 고민하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만약 당사자들이, 내가 사람의 가치와 친밀도와 효용을 빠른 속도로 채점하여 생살부처럼 추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착잡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님은 우리 속물들과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아예 낯선 이름(p28)이 다 있는 걸 보면 그와 얼마나 격조했는지 새삼 느끼는데, 그래도 이 이름이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한번 불러 주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비로소 불러 주어 꽃이 된 그의 이름(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이정하 시인은 일단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봅니다. 이게 시인과 우리들이 다른 점이지요.

"슬픔은 방황하는 사랑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저는 p38 이하에 실린 짧은 산문의 저 제목이 그닥 가슴을 후벼판다거나 하지 않고, 당연한 말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사랑이 제 갈 길을 못 찾고 누가 나 좀 저 안에 들여 주었으면 하며 지레(?) 방황하는 이들(나를 포함하여)은 그저 흔히 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산문에서 정작 포인트는 그게 아니라, 성가대의 "그애"가 유독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김 선생님"의 존재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뭐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제3자가 끼어들기에 항상 아프고, 방황하고, 눈물짓고, 마침내 먼 어디로 가기까지 하는 사단이 터지는 거죠. 물론 문제는 저 김 선생님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인 내가 다 떠안습니다. 김선생님은 그냥 유유히 상황을 즐길 뿐이니 이보다 더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휴.

그래서 시인은 절규합니다. 잠깐만이라도 그 중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길!(p44) 마약 중독이나 기타 나 외의 무엇에 족쇄가 채워져 끌려다니며 괴로워하는 이들. 사랑이고 뭐고 내가 지금 이렇게 미치도록 괴로운데 소망이든 "너"이든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초라해도 별은 여튼 자신만의 빛을 낼 줄 안다지만, 내 안의 빛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해 마치 스스로를 불태운 지귀(志鬼)의 신세처럼, 마지막 초라한 tantrum에 에너지를 모두 쏟고 티끌로 사멸할 뿐입니다. 해로운 중독의 끝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그 대상이 사랑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너를 사랑하지. 널 이렇게 보고 있는 동안에만(p73)." 바로 이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정하 시인께서 속한 그룹인 그시절 X세대의 사랑법입니다. 서로를 만질 때 용광로처럼 뜨겁게 사랑하다, 이제 시들하다 싶으면 delete 키를 눌러 삭제합니다. 이 세대에게는 이별할 "권리"가 있었고 그래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런데 과연 시인께서는 그시절 범상한 젊은이들과는 다른 빛깔의 영혼이셔서, 헌신, 몰입, 희생이라는 지난 시대의 가치를 잠시 살짝이라도 주시할 줄 압니다. 그게 바보스러움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게 저 역겨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속물스러움과 무지와 무책임함과 천박함을 열심히 휘날리고 비호감을 적립하던 언필칭 포스트모던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입니다.

아, 나한테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허울 아래 나는 그녀를 새장(p159) 안에 가두려 하지 않았습니까? 의심이 있는 곳에 사랑이 깃들 수 없듯, 그녀 역시 나의 구속복과 수갑 아래 너무나도 답답해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했다면, 그녀의 마음이 딴 데 가 있어도(p166) 그대로 놓아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시리우스처럼 내 눈을 부시게 하던 그 혹은 그녀가 마침내 평범(p168)해 보이기 시작할 때, 나 역시 비로소 자유를 찾고 중독에서 벗어나며 살아야 할 진짜 이유(p119)와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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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해커스 투자자산운용사 한권합격 핵심개념 + 적중문제 - 본 교재 인강ㅣ무료 바로 채점 및 성적 분석 서비스ㅣ이론정리+문제풀이 무료 특강ㅣ하루 10분 개념완성 자료집ㅣ필수암기공식
백영 외 지음 / 해커스금융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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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께 해커스에서 나온 투자자산운용사 최종핵심정리문제집을 리뷰했었습니다. 지금 이 신간은 제목이 약간 바뀌었습니다만 큰 틀에서 보면 그 작년판의 맥을 잇는 교재입니다. 이 책 외에, 같은 집필진이 쓰신 최종실전모의고사 책도 있으니, 이론은 그만하면 됐고 문제나 빡세게 돌리자 싶은 수험자라면 그 책을 대신 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작년판 리뷰에서도 말했듯, 1권+2권 분책이 가능하지만 자동 분책은 안 되고 면도날로 조심스럽게 작업해야 합니다(꼭 분책하고 싶다면). 2권에 제3과목 핵심정리가 들어간 점도 작년과 같은데 아마 분량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문충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나서,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대표 유형 문제가 위에 제시되고, 그 아래 적절한 해설이 나오는데 이 해설 파트를 핵심개념정리용으로 쓰면 되겠습니다. 대부분의 금융관련자격증 교재가 이런 편제입니다. ★ 표시는 출제 빈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집필진이 매긴 중요도일 수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후자입니다. 이 표시는 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않은 학습자가 자기 나름대로 플랜을 짜서 문항, 사항별 취사 선택을 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한 권 정도는 빠짐없이 남김없이 마스터해야 한다는 주의지만, 사람 일이 언제나 그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교재 맨 앞의 권장 학습계획을 보면 4주, 2주를 남겼을 때 각각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예시가 나옵니다. 단 4주만에도 투자자산운용사 대비 완성이,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제2과목 중 레버리지 분석에 대한 문제가 중요도 ★★★으로 p239에 나옵니다. 제2과목은 투자운용 및 전략/투자분석인데, 왜 제2과목의 명칭이 이렇게 되었는지(제1과목은 금융상품 및 세제[稅制]입니다) 궁금하게 생각하는 수험생도 있던데, 시험 제도의 통합 연혁 관련해서 이런 사정이 생겼습니다. 제가 작년판 리뷰에서 언급했으므로 참조하실 수 있겠네요. 아무튼, 페이지 하단에 깔끔하게, 재무레버리지와 결합레버리지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으니 이걸 읽기만 해도 무엇인지 개념이 잡힙니다. 결합레버리지의 정확한 개념을 알려면, 바로 앞 항목 영업레버리지도(DOL)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정확하게는 재무, 결합레버리지도 뒤에 도(度. degree)가 붙어야 하며, 이 교재는 영어 원어를 같이 써 놓고 있어서 수험생이쓸데없는 곳에서 헷갈리지 않게 배려합니다.

세무사나 CPA만큼은 아니지만 세법 과목은 아무래도 전공자에게건 문외한에게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1과목 이름은 투자상품및세제이지만 순서는 세제가 더 앞에 나옵니다. 배당소득 파트에서 가장 어려운 건 그로스업 설명 부분인데, 작년판 리뷰에서도 제가 자세히 언급했더랬습니다. 과연 이 2025년판이 작년판과 대조해서 많은 부분이 개정되었을까 궁금해서 제가 작년판도 옆에 같이 펼쳐 두고 검토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이 25년판 표지에 보면 100% 신규문항이라고 자신있게 강조한 문구가 있는데, 사실 투자자산운용사 시험 자체가 대폭으로 기본 사항이 개정되지는 않으므로 교재가 꼭 매년 대개편을 할 필요는 없는데, 이 정도로 개편되었다는 자체가 역시 수험생의 현장 요구에 귀기울인다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인 셈이라 뭔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끄제 미국국채시장 금리가 폭등한 게 일본인들이 청산을 시작해서라는 분석이 있었는데(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코노미스트 등에서는 그게 아니라 상품으로서 미국 국채가 그만큼 위치가 취약해져서, 일본이고 뭐고 간에 각국(미국 포함)의 투자기관, 큰손들이 미국 국채를 슬슬 작별하는 징조라는 해설을 내놓았습니다. 그것 관련해서 p175, 제2과목 투자분석에서 채권차익거래 항목 관련 문제가 나옵니다. arbitrage transaction이야말로 투자의 예술이 그 진면목을 발휘하는 국면이며, 매번 뉴스나 증권사의 리포트만 보고 아 그래서 그 일이 터졌나, 아니 여기서는 반대로 말하는데? 라며 이리저리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이처럼 기본 이론(다 학부 수준입니다)을 꼼꼼히 공부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마련하여 본인 판단 하에 투자를 해 나가면, 재미도 있고 자기책임투자 원칙도 지켜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3과목에서도 CAPM이라든가, CML 같은 재무관리 과목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멋진 이론들이 문제화하여 수험생들을 기다리니 긴장을 놓지 않고 머리를 풀가동해야 합니다. 증권시장선(SML)에 대한 이론은 p672, 11번 항목에 나옵니다. p675에는 베타에 대한 문제가 나오는데 이 문제 하나만 풀어 봐도 주식방송에서 애널들이 나와 대체 베타 베타 거리던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출제가 실제 되는 사항들만 잘 추려 문제화했으므로 시간에 쫓기는 수험생의 부담을 줄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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