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늘이 왔어
오진원 지음, 원승연 사진 / 오늘산책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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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언제나처럼 동쪽에서 떠오르며, 24시간을 덜 채우고 저무는 일은 없습니다. 그 태양의 움직임에 어떤 각별한 의미가 있으리라 곰곰 궁구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이치와 운동에도 목적과 의도가 깃들었으리라 기대하는 건 또 우리가 어리석게도 가지는 희망입니다. "오늘"이 그냥 온 게 아니라 뭔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으리라고 믿는 건 선하고 티 없는 영혼들이 공통으로 갖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서로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겠니(p35)." 과연 그렇습니다. 바로 한 페이지만 넘기면 장대한 여정의 다부진 시작을 알리는 듯한 아름다운 사진이 한 컷 나오는데, 이 책의 최고 장점은 바로 이렇게 미려한 사진과, 우리네 인생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멋진 문장이 함께해서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란, 서로의 과거를 의심스럽게 캐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과 눈빛을 통해, 아직 보지 못했던 과거의 발자국까지를 유추하여 남김없이 사랑해 주려는 몸부림이라 하겠습니다. 

p54에는 "진심의 온도"라는 글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험한 세상에, 설령 사자나 고릴라라고 해도 제 뜻대로만 활개칠 수는 없습니다. 거친 정글을 지나다 고꾸라져 크게 다치기도 하고, 저만 못할 것 없는 비슷한 맹수를 만나 물리거나 할퀴어져 치명상을 입기도 합니다. 그런 세상인데, 어떻게 저 연약한 장미꽃이 대지를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기를 기대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제 줄기를 타고난 대로 키를 키우기도 버거운 판에, 어떻게 그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까지 한단 말입니까?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꽃을 반드시 피운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꽃이 핀 것."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p108에 실린 글을 보십시오. 제목은 "마음이 아파서 전화했어"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겪는 일을 일일이 겪어 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냉정하게, 성의없이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야, 다들 그러곤 해. 너만 힘든 게 아냐." 이런 공감 거부형 멘트가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으면 그 깊은 밤중에 전화까지 했겠습니까. 배경에 실린 어두운 도시의 야경이, 그 심란한 마음을 더욱 슬픈 침묵 속으로 밀어넣는 듯합니다. 

"내가 잡은 것은 그대일까, (아니면) 그대를 놓지 못하는 나일까.(p202)" 확실히, 집착과 미련이 심해지면, 내가 근심에 시달리는지 내가 빚은 피조물인 근심이 나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지 가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이기를 바라는 그대일까?" 그대가 (그게) 나이길 바라니, 이제 내가 잡은 건 다름아닌 나 자신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야말로,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는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지 모를 일입니다. 까만 밤에 하얗게 달이 뜸(p248)도, 배경과 주제가 도무지 구분 안 될까봐 자연이 베푼 지극한 배려임을 우리들 미물은 대체 언제쯤 깨닫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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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TTON 더 버튼 - 동대문 단추왕 유병기 대표가 알려주는 단추의 모든 것
유병기 지음 / 라온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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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동대문시장은 한국의 산업계를 선도한 본진이었습니다. 1980년대 외국인들이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슬슬 호기심에 입국해 올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동대문시장이었는데, 한결같은 반응이 "싸면서도, 예쁜 옷이 많다"였습니다. 그런데 옷 중에서 그리 눈에 확 띄지 않으면서도 중요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바로 단추이며, 이상하게도 단추라고 할 때보다 버튼이라고 할 때 뭔가 무게감이 더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 유명한 동대문시장에서 단추왕으로 군림한 유병기 대표가 저술한, 단추, 단추, 단추의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제가 책을 읽고 정말 놀란 건, 단추의 종류가 세상에 이렇게 많았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종류가 많은 정도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유대표님의 책을 보면 이 단추라는 게 하나의 체계를 이룹니다. 기능과 형태에 따라 어떤 큰 분류를 이루고, 그 세부 기능이나 모습의 살짝 바뀐 차이에 따라 다양한 하위 분화가이뤄집니다. 마치 단추의 왕국을 보는 듯한데, 왕 밑에 공작, 후작 등등 하여 하나의 위계가 있고 그 밑에 기사, 종자 등 다채로운 계급이 또다시 형성되는 등 흥미롭습니다. 물론 책에는 이런 단추의 기능과 모습을 모두 보여 주는 컬러 사진, 또는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우리가 사출이다, 혹은 에칭이다 하면 이게 혹시 반도체 공정에서 나오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단추 만드는 정밀 제조 과정을 설명하는 p78 이하에 이 용어들이 사용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새삼 숙연해지기도 했는데, 우리가 혹 옷을 거칠게 다루다 떨어져나가도 아무 미련없이 지나치던 단추들이, 공장에서 비록 대량으로 생산되는 부품이지만 이처럼 정성어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어렸을 때 혹 밥알을 흘리면, 학교에서 "이것은 농부들이 여든 여덟 번의 손길을 뻗어 수확한 것"이라며 그 안에 스며든 가치를 지적해 주곤 했죠. 이 책에서 단추에 대해 유 대표께서 상기하는 점도 그것과 비슷했다고나 할까요.    

단추 중에서도 캐스팅 단추라는 게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p92 이하에 나옵니다. 재료 선택, 금형 제작, 재료 주입, 냉각 탈형 등 뭐 정밀 기계 부품 제조 과정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캐스팅 단추의 장점에 대해, 저자는 그 재료 선택의 폭이 넓고, 디자인이 더 다양하게 뽑힌다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단추만 있는 건 아니고 수가공 제품도 있는데, p105 이하에 8단계에 걸친 그 제조 공정이 설명됩니다. 산업 혁명을 18세기에 거치고도, 세상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 생산품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정성이 일일이 손을 통해 전해진, 명품 아닌 명품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p141 이하에는 베스트라는 상의 아이템이 있는데, 이때 베스트는 vest라고 씁니다. 그 모양은 책에 나온 일러스트를 보면 아 저거!하고 바로 감이 올 만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보면, 베스트라는 상의 아이템 하나에도 그 문화(물론, 다양한 문화권들의 영향력들이 녹아든 것입니다)의 맥락과 정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일부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스웨터라고 해도, 와펜, 심지, 안감 등이 조화롭게 어울려 하나의 멋진 외관을 이룸을, 저자의 치밀한 서술을 통해 문외한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되네요. 

책 제목은 단추이지만, 단추가 안 들어가는 어패럴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쳐 이뤄낸 복식의 위엄과 품위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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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수 세무사의 가족 간 상속·증여 영리법인으로 하라!
신방수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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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적으로 상속 증여 관련하여 세율이 꽤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자산가들은 여러 우회 경로, 혹은 편법 탈법을 써서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한계는 있겠는데,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써서 일반인들에게도 써서 그런지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익숙한 신방수 세무사는 "영리법인"을 통하여 상속, 증여를 시도하는 기발한 방법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안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라별로 누군가의 재산을 남(가족 포함)에게 물려주는 방법으로는 상속, 유증, 사인증여가 있습니다. p62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한국 민법상 법인에게 "상속"을 시키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유언이나 계약을 통해 유증, 사인증여를 (법인에게도) 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고인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누군가에게 사후 자신의 남은 재산을 주는 방법은 유증과 사인증여이며, 상속은 유언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당사자가 덜컥 죽었을 때 그 재산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의 문제일 뿐입니다.  

소득세율도 금액에 따라 적용되는 세율이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1억을 벌어도, 3년에 걸쳐 4천, 4천, 2천을 벌었다면 각 연도별로 15%씩, 총 1500만원만 내면 됩니다. 그러나 1년 동안 1억이 들어와도, 나머지 2년 동안 소득이 없었다면 총 수입은 3억으로 같지만 적용되는 세율은 구간이 달라져 3천5백만원이나 납부를 해야 합니다. 233%나 증가하는 셈입니다. 상속 증여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합산과세 기간을 10년으로 잡아(이 책 p89), 10년 안의 증여, 상속은 모두 한 묶음으로 보아 과세합니다. 위 소득세의 경우도 만약 기간이 1년이 아니라 3년이었다면, 두 경우 모두, 내어야 할 세금은 3천5백만원으로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자산가들이, 자녀한테 10년 간격으로 5천만원을 주곤 하는 게, 이렇게 하면 그 금액들에 한해서는 증여세를 한 푼도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왜 법인을 통해 증여하는 게 유리한가? p125를 보면 법인이 유증이나 사인증여를 통해 부동산 같은 걸 취득할 때, 그 가액은 시가, 감정평가액(의무가 아닙니다)이 모두 없거나 불분명하다면, 기준시가를 통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준시가는 다른 둘보다 낮은 게 보통입니다(실무상, 개인상속인이 위 두 가지 기준이 없어서 기준시가로 하려 들 경우, 세무당국이 바로 감정평가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고 제가 제 주변에서 들었습니다). 

또 법인이 납부해야 하는 법인세는, 자연인이 바로 상속받는 경우보다 세율이 낮습니다. 신방수 세무사가, 상증을 영리법인을 통하라고 제안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법인세율이 상속세율보다 낮음). 게다가 영리법인의 경우, 만약 지난 15년 동안 사업결손금(=적자, 손해)이 있다면 이를 이월시켜 공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개인사업자의 경우도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p138 이하의 사례에서 보듯 법인세가 거꾸로 증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p139). 또 앞 p122에서도 저자가 지적했듯이, 주주가 상속인인 경우는 따로 상속세를 부과함으로써 조세면탈을 막는 법제 장치도 이미 있습니다(아니라면, 법인은 자산 취득분은 법인세로 내면 되므로 상속세는 면제). 이 경우 법인은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비용 계상(計上)이 좀 더 어떤 여지가 많고, 따라서 비용처리를 최대한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책 주장의 취지인 걸로 독자인 제가 이해했습니다. 또 책 p144 등에서는, 주주에 대한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소급해서 1년 간 증여이익을 1억원 미만으로 최대한 맞추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각 주주별로 1억 미만을 맞추는 기술이 중요한데, p262를 보면 본인을 제외하고 그 배우자, 자녀들, 자녀들의 배우자들, 손자녀들로 주주를 구성하고, 그 지분비율을 동일하게 구성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고 매년 법인에다가 5억씩만 증여하면 법인은 그에 대한 법인세만 내면 된다는 거죠. 이게 증여법인이고, 만약 상속의 경우라면 (앞에서 말한 대로) 상속법인(앞의 증여법인과는 별개)의 주주가 상속인(배우자, 자녀 등)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p271에 나오는 대로, 예를 들어 비상장주식의 경우, 세법에서 규정하는 거래가액(시가 등)과 너무 차이가 나게 양도, 증여 등을 하면, 부당계산행위 부인(否認) 등 당국에서 강력하게 개입합니다. 각자가 처한 현실의 범위 안에서 혹 유리한 조건(열심히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겨 있는)이 있을 때 그 혜택을 놓치지 말고 챙기라는 것이지, 억지로 뭘 세팅하려 들다가는 바로 탈세범이 될 수 있다는 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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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독일어 단어장 - 실전 말하기와 시험 준비까지 완전 정복! GO! 독학 시리즈
김범식독일어학원 지음, Michael Gutzeit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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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단어장이라고 되어 있지만 예문이 많고, 그 예문에서 문법 사항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구성입니다. 모두 8주, 주당 5일씩 해서 40일 분량으로 공부하게 짜 놓았습니다. 또 매일매일 코너가 생활독일어 표현 중심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 책으로 회화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 원어민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원을 따로 시원스쿨 사이트 독일어 섹션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단 회원가입 후 쿠폰 번호를 등록해야 하는 절차를 요구합니다. 시원스쿨 음원 중에는 절차 필요 없이 바로 다운받게 해 둔 것도 있지만 이 교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이 책 저자 김범식 선생은 시원스쿨 소속 강사분이 아니라 BSK라는 별개 어학원의 대표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단어장이라고 해서 제한된 수의 단어만 수록한 암기 보조 교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볼륨이 두껍고, 독일어 실력 향상을 다각도로 의도한 종합(comprehensive) 참고서인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일력 형태라고도 볼 수 있고, 정확하게는 스프링북에다가 소프트커버를 한 번 더 둘러서 책장에 꽂았을 때 제목과 디자인이 드러나는 "책등"도 마련한 디자인입니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몇 번이나 들춰 보고 외관을 감상했습니다. 외관뿐 아니라 컨텐츠도, 올컬러 편집에 일러스트도 있고 다양한 폰트 처리를 해서 학습 사항이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저희 때에도 이런 책이 좀 있었으면 얼마나 의욕뿜뿜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을까 싶습니다. 

독일어로 데이를 Tag(탁), 주(週)를 Woche(보헤)라고 합니다. Woche 4의 Tag 19를 보면 p235에 Verkehrsmittel이 나옵니다. 뜻은 책에 나오듯이 교통수단인데, 성(gender)이 중성임은 해당 명사 앞에 중성 정관사 das가 표시되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복합명사인데, Verkehr는 교통이라는 뜻 외에 "거래"라는 뜻이 있고, 법학 전공자라면 이 단어가 눈에 익을 것입니다. mittel은 영어의 medium과 같습니다. 

p234를 보면 Pizza라는 단어를 배우며(독일어라서 대문자로 시작하는 것 말고는, 이탈리아어어나 영어와 똑같습니다), Wollen wir eine Pizza teilen? 이라는 표현도 함께 배우는데, 이때 wollen wir~?라는 청유 패턴과, "나누다"라는 teilen이라는 동사도 배우게 됩니다(저 뒤 p345에, teilen이 다시 표제어로 나옵니다). 이렇게 이 책은, 표현이나 단어를 배우며 그에 딸린 여러 확장 사항을 자연스럽게 학습시키는 점이 또한 능률적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reservieren(예약하다)라는 동사는 본래 다른 언어, 즉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것입니다(영어도 사정이 같죠). 이렇게 외국어에서 들여온 동사는 어미(ending)가 -ieren으로 끝납니다. 

재미있는 건, Tag 20(p249)의 0984번 표제어가 Krimi입니다. 이게 한국의 어느 탄산음료 브랜드는 아니고, 책에 나오듯이 "추리소설, 범죄수사물"이란 뜻입니다. 물론 겉모습으로 보아 프랑스어, 혹은 영어의 criminal에서 따온 게 명백하죠(더 먼 어원은 고전 라틴어). 영국이나 프랑스가, 문예로서 이런 범죄(해결)물 장르가 일찍 발전했기 때문에 이런 쪽에서는 문화 후진국이기도 했던 독일이 차용했을 것입니다. 물론 독일(권)은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서양고전음악 완성자, 칸트나 헤겔, 마흐 같은 천재적 철학 지성을 낳은 위대한 문화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같은 페이지에는 얼굴이라는 뜻의 Gesicht,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다면 모를 수가 없는 Lektion 같은 단어(영어의 lesson과 같습니다)도 나옵니다. 

p279에는 Ich meine, dass du recht hast.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책에서 설명했듯, "나는 네가 옳다고 생각해."라는 뜻입니다. 영어와는 달리, 주문장의 동사 뒤에 저렇게 쉼표가 찍힌 후에 부문장이 온다는 게 특이합니다. 또 종속접속사 dass 같은 것도, 1990년대 후반 철자법이 개정되기 전 같으면 에스체트를 살려 daß라고 쓰였을 것입니다(영어의 종속접속사 that과 기능이 비슷합니다). 부문장이라서 어순이 저렇게 recht hast이며, 주문장이었으면 du hast recht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recht haben이라는 숙어도 알아 둬야 하겠습니다. 

p396을 보면 꽃병, 도자기라는 뜻의 (die) Vase가 나오는데 이 단어도 프랑스어(혹는 영어)에서 들여온 것이라 [파제] 가 아니라 [바제] 비슷하게 읽힙니다. 영어단어로도, 이 말은 [베이스]로뿐 아니라 [바스]처럼 읽기도 합니다(특히 영국에서). p397에는 시(詩)라는 뜻의 Gedicht, 농부라는 뜻의 Bauer가 다 나오는데, <경기병 서곡>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폰 주페의 오페레타 <시인과 농부(Dichter und Bauer)>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시원스쿨의 독일어 첫걸음, 문법 교재에 이어 이 단어장까지 모두 리뷰를 마친 셈입니다. 기분이 아주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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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k Art 컬러링북 3 : 동물과 바다생물 - 내 마음대로 그려서 쉽고 재미있는 Folk Art 컬러링북 3
김민영 지음 / 브레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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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달 간 컬러링북을 여러 권 리뷰했었습니다. 컬러링북은 확실히, 빈 공간을 채워나가며 점차 원 모습이 찾아지는 과정에서 뭔가 성취감이 느껴지는 맛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folk art가 그 주제인데, 이 책 p2~p3에 이 포크아트라는 것의 의의가 잘 설명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온 여러 예쁜 그림들의 (일관된) 스타일은, 서유럽에서 한때 유행한 작품들로부터 그 공통 양식을 추출하여 컬러링북에 알맞게 가공되었다는 뜻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1권과 2권을 아쉽게도 읽지 못했기에, 일단 이 셋째 권부터 꼼꼼히 읽고 채색해 가며 작품들에 스며든 아름다움을 음미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여타의 컬러링북과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p10 이하 part 1에 컬러링에 대한 베이직 레슨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컬러링에 기초 지식 같은 게 무슨 필요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을 읽어 보면 내가 미처 캐치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있었구나 하고 반성할 포인트가 생기기는 합니다. 또, 이 책 제목에서도 은근히 강조되지만, 이 책은 모범답안(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샘플")대로 독자들이 꼭 작품을 완성할 필요는 없음을 조언하며 독자들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배색은 그렇다 쳐도(즉, 독자 마음대로 칠한다 해도), 선 긋기라든가 경계 밖으로 색이 삐져나오지는 않게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심지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내 마음대로 그려 봤더니 나만의 작품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는 데에서 유니크한 기쁨을 느껴 보라고까지 합니다. 

이 책은 독특한 게, 왼쪽 페이지 상단에 헤르만 헤세의 명언이 실렸다는 점입니다. 보통 명언으로 그림 그리는 독자의 맑은 정신을 잡아주려 드는 편집 의도라면, 여러 위인들의 다양한 말, 그 중에서도 일반인들이 익히 알 만한 문구들을 배치하던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H 헤세의 말들로만 채웁니다. 그것도 출전을 일일이 밝히며 책 이름과 출간 연도까지 명기합니다. 컬러링을 수행하며 덤으로 인문 지식도 배우고, 명언으로 나의 정신까지 정화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p20에서는 헤세의 1915년작 <산중의 하루>에서 "눈 위에서 웃는 태양, 그 위에 쉬는 구름, 모든 것이 새롭고, 찬란하게 빛난다."는 문장이 인용되네요. 대자연과 합일하며 마음의 모든 티끌이 씻겨나가는 거장의 쾌감이 독자에게도 전해집니다. 

"자각과 실감의 모든 동력은 사랑이니,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자가 (수만큼) 더 행복하다." 이 말은 헤세의 1918년작 <마르틴의 일기>에 나온다고 합니다. 저도 분명 그 책을 읽었는데, 저 멋진 문장이 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에서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구절도 덩달아 떠오릅니다. 이 페이지에는 기린의 그림이 실렸는데, 가운데의 기린은 이미 노랑색이 배색되었고, 그를 둘러싼 나뭇잎과 꽃 부분만 새로 칠하면 됩니다. 그런데 왼쪽 페이지의 "샘플"을 봐도, 가운데 윗부분의 새는 하양인 걸로 보아 원래부터가 흰 새인가 봅니다. 

p36에 언급된 요세프 엥글레르트(Josef Englert)는 화가이며, 헤세보다 십여 년 연하지만 헤세보다 몇 년 일찍 타계했습니다.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할 능력이 있다는 건 행복하다"는 뿌듯한 소회를 헤세는 피력합니다. 이 말만큼, 컬러링북의 삽입구로 적절한 것도 드물지 싶습니다. 물론 구도도 형태도 이미 정해졌고 간단한 칠만 하면 끝나는 컬러링과,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지점까지 파고들며 정제된 언어로 그 핵심을 세공하는 문학 작품의 창조가 동렬에 놓일 수야 없겠지만 말입니다. 여기에 실린 그림은 덜 추상화한 만다라 같기도 하고, 고대 페르시아 제실의 문장처럼도 보입니다. 

p42에 실린 헤세의 글은 경쾌하면서도 알쏭달쏭합니다. "내 감정에는 소년 시절의 그것이 여전히 남아 있어, 어른이 되고 나이 먹어가는 게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하긴 쭈글주글하고 구부정하며 굼뜬 노인의 특징이 어린이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를 다 내다본 헤세의 관점에서, 나이들고 노화한다는 게 다 무엇이며 일체가 덧없음이 또한 파악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알록달록한 피부를 지닌, 이 세상에는 없을 듯한 뿔 높은 사슴은 오른쪽을 응시하며 숲 안에서 물아일체의 경지에 든 듯합니다. 늙는다는 게 다 뭐냐며 콧방귀를 뀌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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