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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왕권 신화
맹성렬 지음 / 투나미스 / 2025년 1월
평점 :
4년 전 3월달 유퀴즈에 출연하셨던 에피소드(UFO 관련)가 지금도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는 우석대 맹성렬 교수님이 쓰신 새 책입니다. 교수님은 원래 물리학자, 전기공학자이며 다만 다양한 방면에 조예가 깊으시기에 이처럼 전혀 뜻밖의 분야에 대해서도 고퀄의 분석서를 뜬금없이 남기는 분이죠. 영화 <미이라> 등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슬람이 침투하기 전 고대 이집트의 다신교 체계에 매혹될 만합니다. 맹 박사님은 한국 미스터리 문학의 비평과 창작에도 깊이 관여하는 분인데,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의 여러 작품을 보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신화가 모티브로 쓰인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지성은 사물들이 의외의 지점에서 서로 연결된 걸 계기로,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걸작과 업적을 여러 분야에서 남기는 것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저 나름대로 써 본 독후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 분야 종래 읽을 만한 책이 있었다면 범우사르비아문고판 제4권 <이집트 신화>였을 것입니다. 그 책도 (시리즈 안에서 이례적으로) 컬러 도판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분량이 분량이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제 한국 대중서 중에는 맹성렬 박사님의 이 책이 이집트 신화를 개관하는 결정판이 아닐까 싶어서 볼 때마다 뿌듯하고, 학문적으로도 치밀한 구조와 내용을 마련하여 독자들의 성장을 도우시려는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다시 생깁니다(2009년작 맹 박사님의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도 걸작이었습니다). 컬러 도판이 많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으며, 어린이들이 읽어도 일단 비주얼의 매력 덕분에 일정 진도까지는 따라올 수 있는 체제입니다. 물론 교수님은 고대 신화 화소에 녹아 있는 이집트 왕국의 왕권 특질과 내역을 추적, 분석하는 데에 주안을 두었으므로 어린 독자가 마냥 텍스트를 좇기에는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진지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이집트, 나아가 지중해 연안의 고대사에 대해 더 깊이있게 파고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범우사 책에서도 세트 신은 개를 닮은, 일종의 빌런으로 세팅됩니다. 이 책애서 교수님은 특히 p94 이하에서 세트(Seth) 신에 대해 거의 끝판대장급의 입체적인 분석을 시도하는데, 그간 영어로 된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아웃라인을 잡으려 고생한 저 같은 독자에게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갯과 동물이라 하면 canine, dog를 가리킵니다. 그냥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댕댕이입니다(일반적인 댕댕이보다는 훨씬 무섭지만). "갯과"라고 사이시옷이 들어가 표기된 건 우리 한국의 국어원 표준 규정에 따른 것이므로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렇게 동물 분류의 한 층위인 "과(科)" 앞에 사이시옷이 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리 알아 두는 게 낫겠습니다. 그런데 세트는 종종 호루스와의 갈등이 잘 마무리되었음을 상징하는 제의에서 종종 돼지로 표현되는데 이 책에서는 그 점까지 자세히, 더군다나 배경까지 곁들인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스 신화는 로마를 통해 다소 변형되거나 변종을 낳았지만 거의 온전히 전체계가 전하는 데 반해, 이집트 신화는 문명 자체가 결국 이민족에 의해 정복당해서인지 문헌도 적게 남았고 그나마 혼란스럽습니다(이 책에도 나오듯, 겨우 전하는 기록들은 바다 건너 그리스인들이 남긴 것들에 크게 의존합니다). 맹성렬 박사님은 아마도 이 분야를 독자연구하면서 차라리 깔끔하게 내가 한번 정리해 보겠다는 야심을 가지셨겠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예쁜, 그리고 두꺼운 이 책이겠습니다. 예를 들어 비통하게 죽은 오시리스를 다시 살리려던 게 호루스인데, 매의 모습을 한 소카라는 신도 기록에 따라 등장하곤 합니다. 소카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도 논의가 분분한데, p189에서 교수님은 권위 있는 다양한 논문과 저서들을 인용해 가며 그의 정확한 포지션을 규명합니다. 런던에 소재한 테메노스 아카데미의 제레미 나이들러 박사 말씀처럼, 소카는 오시리스와 호루스(그를 살리려 한)의 아말감(교수님은 이를 "합체"로 번역합니다)이라 보는 게 무난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 소설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장편소설로 잘 알려진(그보다 나이가 많으셔도, 1950년대 영화 <십계>에서 빡빡머리 율 브리너가 분한 그 파라오라고 하면 다들 아는) 람세스 2세. 이집트 신화 분석에 있어서도 빠질 수 없는 중요 군주입니다. 19세기 나폴레옹의 원정을 수행한 장교 부샤르가 발견한 로제타 스톤을, 한참 후에 샹폴리옹 등이 노력하여 해독된 게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입니다. p299를 보면 테베 유적 서쪽에 위치한 람세시움에서 여러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이제는 그동안의 성과 덕에 내용이 상당 부분 해독되죠. 여기서 저자는 흥미로운 해석을 제안하는데, 벌써 오시리스가 비명에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대 이집트의 정정이 무척 불안했음을 밝히고도 남습니다. 그렇다면 대관식인들 온전히 열릴 수가 없습니다. 유대 역사에서 히브리 열두 지파가 모여 사울과 다윗, 솔론몬의 즉위를 축하한 건 그저 화려한 세레모니에 그친 게 아닙니다. 그의 권위를 인정하며 확정적 충성을 맹세하는 건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정확하게는 즉위 예정인)를 추대한 아헨의 대관식도 사실 영주들의 화맹을 밝히는 장이었습니다. 저자의 말씀처럼, 오시리스 희년제(禧年祭)가 사실은 의사(擬似) 대관식이 아니었겠냐는 결론이 설득력 있습니다. 이게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정치적 지혜이기도 했겠습니다.
히브리 경전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p482를 보면 누 파피루스(Nu Papyrus)에서 기록한 "갈대의 평원" 위치를 놓고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대개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고 생존을 위한 에너지의 상징인 반면, 서쪽은 망자들이 안식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갈대의 평원이 대체 지평선 동쪽이냐 서쪽이냐를 두고 이처럼이나 의견이 충돌하는 건, 신화 체계와 왕권 구조의 근본적 지향점을 두고 어떻게 해석할지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일류 공학자의 두뇌로 분석, 재구(再構)된 체계라서 지적인 독자의 갈증을 풀어주는 명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