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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니체에 열광하는가
신성권 지음 / 하늘아래 / 2024년 7월
평점 :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고통없이 안락한 상태에서 사는 게 아니라 가혹한 운명에도 내적 평정과 충일함을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다(p34)." 영화 대사 중에도 종종 언급되는, 이른바 living dangerously를 잘 설명해 주는 표현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 어떤 동물도 위험 없는 환경에서 풍족하게 살고 싶지, 수시로 닥치는 위험에 이리저리 치이고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정말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p37에 나오듯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데서 그 진의를 드러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매일의 스트레스 때문에 매순간 죽을 것만 같다면, 설령 그 곤경을 벗어나도 이미 신체 기관과 정신은 회복이 어려운 피해를 조금씩 입는 중이겠고, 이런 경우는 니체의 저 언명에 해당이 안 됩니다. 니체가 말하는 저런 사람은 상황에 자신이 끌려가며 잠식당하는지, 아니면 매순간 승리하는지 이미 본인이 알고 있습니다.
꼭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뿐 아니라, 책임을 크게 걸머진 부유한 사람도 니체 식의 저런 유형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치열한 업계의 죽고사는 경쟁을 직면한 기업 대표도, 비록 수중에 돈이 많다 한들 매순간 몰락과 패망의 위험에 노출된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이 매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건 그런 위험 하나하나를 극복한 성취감을 통해서이며, 그런 사람 특유의 활기와 강인함, 진지함, 심각함이 육감을 통해서도 전달이 되므로 누가 쓸데없는 시비를 그에게 걸지 않습니다.
p50 같은 곳에서는 니체가 자신의 저작을 통해 말했던 여러 어구들이 정리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에서 니체는 낙타의 (비참하고 수동적인) 삶, 사자의 (남을 지배하는) 삶, 어린이의 (매순간 호기심을 발동하며 즐기는) 삶 세 유형을 말하며, 이 셋은 별개의 루트에 분리된 게 아니라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상방이동할 수 있고, 반대로 지독한 불운, 정신적 타격 등에 대해 하방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생의 다양한 패턴을 핵심적으로 지적했을 뿐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삶에다 어떻게 이를 적용할지까지도 힘있게 논했다는 점이 탁월합니다.
p90을 보면 니체의 또하나의 언명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주어진 단편적 지령, 원칙, 교의, 이념에 맹종하여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도그마라는 게 설령 절대진리이며 강력한 위력을 가져도, 사람은 어느새 지루해하며 그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려 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한 가지의 원칙에 의해 작동되는 게 아니며, 심지어 어떤 사람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립하고 모순을 일으킵니다.
수시로 맞이하는 이 모순을 잘 소화하고, 나의 큰 그릇으로 잘 융화하고 담아내어야 일단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앞에서도, 내적 평정이 결국 찾아져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죠), 갈등 상황도 극복이 됩니다. 시도때도없이 다가오는 모순이 어느새 더이상 모순이 못 됨을 느끼고 극복할 때 사람은 그 정신의 키가 한층 커지고 완성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입니다. p96에서도 니체는 도그마에 갇혀 사는 사람은 위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신진대사가 마비된 죽은 인생이라며 비판합니다.
p129에는 "거리를 두는 파토스"가 언급됩니다. 저자는 니체의 저 언명을 두고, 대중에 아무 생각없이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음이 아닌, 그 대세라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평가라며 존중하되, 적당한 거리를 두어 나만의 개성과 영역을 지키려는 태도가 바로 니체 식의 그러한 파토스라고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p149를 보면 그저 정신이 마냥 육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을 치열하게 놀리고 작동시킴으로써 반대로 정신이 강해지는 짜릿한 체험을 니체가 강조했다고 나옵니다. 저자는 p150에서 무용가의 예를 들며, 이성이다 정신이다 의지다 하는 것이 결국은 신체 활동에 의해 통합되고 강화되고 고양될 수 있음을 논합니다.
지나치게 도덕과 법을 강조하는 사람은 그가 정말 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 자기 보호 기제를 발동하는 건데, 이게 집단 전체로 보면 퇴행과 체질약화를 가져와 변화로부터 도태될 수 있으므로 해롭다고 니체는 말했는데, 약자가 알고보면 나쁜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이 이렇게 쉽게 설명됩니다(p173). 아큐식의 정신승리, 르상티망이나 강조하는 책을 읽지 말고 내 자신이 삶에서 사회에서 강력한 의지로 승자가 되는 책을 읽으라(p209)고 저자는 힘있게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