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행복을 풀다 - 구글X 공학자가 찾아낸 불안을 이기는 행복 코드
모 가댓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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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목을 보면 that little voice in your head라고 되어 있습니다. the도 아니고 that이라고 한 데에서, 저는 저자인 모 가댓 대표가 그 존재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갖고 우리에게 이 얘기를 꺼낸다고 생각했는데요. 우리한테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렇게 해 보세요"라는 듯, 언제나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소리였지만, 우리는 그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일이 바빠서, 혹은 눈 앞의 더 큰 이익에 끌려서거나 남들의 시선이 신경쓰여서였습니다. 저자는 이제, 당신들(우리들)이 그 목소리에 진정 귀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냐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혹은 반대로, 소소하게 혹은 심각하게, 나를 지옥으로 몰고가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에도 우리는 주목해서 빨리 걷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구글 등의 기업에거 엔지니어로 일했고 창업전문가로 이름 높은 저자가 언제 이런 생각까지 하셨을까 놀랍기까지 한, 그저 삶의 여정에서 느껴 온 이런저런 상념과 깨달음을 들려 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그런 이야기를 해 주신다 쳐도 소중한 가르침이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심리학적 기초를 단단히 지녔으며, 그러면서도 독창적입니다. 이를테면 p72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생되는 기분 나쁜 생각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 애인에게 차였다, 이건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그런데 "난 누구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부족하고, 따라서 또 차일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내가 만들어낸 생각입니다. 저 생각의 앞부분은 내가 애써 찾아낸 근거(잘못되었습니다)이며, 뒷부분은 그냥 은밀하고 불길하게 반복되는 주문 비슷합니다. 빨리 쳐내야 합니다. 저자는 이런 것들을 의식하고 기억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태 그렇게 하지 않아서 불길한 재생이 반복되었으니 말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처음으로 뇌의 가소성(plasticity)에 대해 알았을 때 너무도 행복했다고 회고합니다(p125). 내 머리가 그냥 늙어가기보다, 내가 이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계속 발달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두고 "자기개발(이 책의 표기에 따릅니다) 중독자"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미 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하다고 겸손해합니다. p129 이하에서는 그가 이해한 대로 신경 가소성이 기능하는 방식이 전화 교환대에 비유되어 설명되는데 역시 명쾌하고 재미있습니다. p96에서는 우리가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도 잘 봐왔던 대로 폴 맥린이 1960년대에 정리한 뇌의 삼위일체 이론, 즉 파충류의 뇌(자율신경계), 포유류의 뇌(변연계. 감정), 이성적인 뇌 셋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지가 설명됩니다. 

우리는 왜 불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럿이 있겠지만, 저자는 책의 제5장에서 좌뇌와 우뇌의 불균형을 듭니다. 우뇌는 존재 자체를 행복해합니다. 반대로 좌뇌는 행동을 하면서 비로소 행복을 느낍니다. 어쩌면 햄릿은 전형적인 우뇌형, 돈키호테는 좌뇌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p169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존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독자들에게 충고합니다. 사색과 감정 정리를 통해 내 존재를 먼저 다지기 전에는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존재에만 머물러도 안 되는데, 우뇌형이 불행한 이유는 끝내 행동을 안 하고 존재에만 그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라는 것도 내가 행복해지는 방식이 따로 있습니다. 만약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면, 이건 직업 배우이거나 사기꾼, 위선자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어떤 감정은 내가 연습해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 그래야 내가 행복해져서인데, 이건 거짓이나 위선이 아니라, 마치 지능을 계발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감정, 떠올릴 때마다 행복해지는 이 감정을 계발하려면 먼저 그런 게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걸 흘려보내지 말고 이거다!하고 먼저 자각을 해야 하는데, 이 주장은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됩니다(불행의 주범들한테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지 말고 나꿔채어서 없애라는 거죠). 처음에 잘안돼도 계속 반복해서 내걸로 만들라고 합니다. 감정도 다 연습임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p251). 

엔지니어답게 저자는 뇌의 멀티태스킹이 왜 어려운지를, 근거를 갖고, 또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p309). 간단히 말해, 멀티태스킹을 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p311 이하에 자원할당(컴퓨터 전문가답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는 설명하며, 이 중에는 놀랍게도 명상이 그 방법론으로 강력하게 추천됩니다. 심지어 이 책에는 극한의 불행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도 p352에 나오는데 그 해답은 "전념과 수용(committed acceptance)"라고 합니다. 경험 많고 성취도 많은 성공한 인생의 솔직한 고백과 시스템적 충고라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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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미스터리 문명 2 : 잃어버린 문명 - 미스터리 대표 채널 <김반월의 미스터리>가 소개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미스터리 문명 2
김반월의 미스터리 지음 / 북스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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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혜가 무궁무진할 것만 같아도, 눈 앞에 빤히 제시된 미스테리 하나를 풀지 못할 만큼 그 한계도 뚜렷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나스카 문양, 라인 들(p53)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그렸을까? 책에서는 여태 이 문제에 관심을 둔 이들이 제기한 아이디어들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그런 설명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우며,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마구 자극되는 듯합니다. 이 시리즈의 큰 장점은, 가장 쉬운 문체로, 혹 초등학생 독자가 읽는다 해도 술술 읽어내려 갈 수 있게 토픽을 잘 풀어 준다는 점입니다. 글로 읽는 유튜브 콘텐츠 같은 느낌인데, 특히 이 나스카 파트가 그렇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20에는 스톤헨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권보다 이 2권에, 우리가 잘 아는 유적들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나이 드신 세대라면 예전 소년잡지류에서 많이도 접했을 소재이며 사연들인데, 이 책에서는 그 이후 추가되었음직한 에피소드들, 즉 스톤헨지 조작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합니다. 스톤헨지를 긍정적 시선으로 보는 측에서도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때로는 근거없는 주장도 쏟아내는데, 그 반대진영도 마찬가지 태도이니 소재도 소재지만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구경하는 것 또한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서술 곳곳에 개입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평가도 개진하는데 이를테면 p34 이하에 나오는 마추픽추에 대한 파트에서도 그리합니다. 나스카 파트에서는 "아마도 외계인들이 건설하고 이용한 활주로였을 것"이라면서 의견을 표면하기도 했죠. 문양은 예술이니 제작의 동기를 따로 상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라인은 용도가 분명히 있었야 저리 수고를 들여 그리지 않았겠는가? 타당합니다만, 이런 생각 자체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입니다. 정 외계인의 존재를 상정해야 한다면 문양이건 라인이건 모두 특정 용도의 시설일 수 있으며, 마추픽추의 피라미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 

아즈텍 문명이나 잉카 문명이 낳은 테노치티틀란, 마추픽추 유적 등은 현대인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입니다. 대체 누가 왜 어떻게, 이런 뛰어난 기술을 써서 만든 건조물들이 아직도 말끔히 신비가 걷히지 않은 채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걸까? 유럽, 아시아인들이 잘 몰랐던 아메리카 대륙에 이들 유적이 몰려 있다고 여길 때만 해도, 어차피 해당 지역의 고대 문명에 대해 잘 모르니 언젠가는 연구를 통해 종합적 규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대세였습니다. 그러나 p88 이하에 나오는 바소시카 산의 유적을 탐사한 샘 새미르 박사팀의 노력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비소시카 산은 구대륙 발칸 반도 보스니아에 소재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이 유적은, 멀리 아즈텍의 그것과 이렇게도 닮았을까?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은 일개 루머나 음모론이 아니라 무려 서양 고전 철학의 시조격 인물 플라톤의 책에 언급되었다는 게 독특합니다. 플라톤은 과연 어떤 근거를 갖고 이 말을 했을까요? 어떤 역사나 지리학적 지식의 거론이 아니라, 이데아 주제를 설명하며 일종의 문학적 비유를 구사한 건 아니었을까요? 매혹적인 시나리오 중 하나는 "사하라의 눈"이,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를 묘사할 때 든 여러 지점의 수치와 일치함을 들어, 한 번 바다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가 아프리카에서 다시 떠오른 게 사하라 사막이 아니겠냐는 주장입니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실로 끝이 없습니다. 

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통째 증발해 버릴 수도 있을까? 월터 롤리 경은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의 특수 관계 때문에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친구 존 화이트가, 아메리카 식민지에 다녀올 때 로어노크 섬에 들러 가족도 형성하고 그곳의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만에 다시 방문해 보니 아이들이 갖고놀던 장난감까지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존 화이트는 혹 인근 섬에서 침입하여 그들을 끌고갔다면 그에 대한 복수마저 다짐했으나, 이후 12년 동안 그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는데도 전혀 행적을 알 수 없었다고 하니 실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플로리다의 잭슨빌은 백만 가까운 인구가 사는 큰 도시입니다. 이곳에 사는 배츠 가족은 1974년에, 인간을 따르는 금속구체(p152)를 발견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 해군이 입수하여 연구한다는 말이 들렸을 뿐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해진 구체... 세상에는 이처럼 사람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온갖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기막힌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중 과학도 발전하고 전에 없던 지혜도 발휘하게 되는 게 인류의 지난 역사에서 공통되는 이치였습니다. 궁굼함을 견딜 수 없어 모험도 감수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미래는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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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니체에 열광하는가
신성권 지음 / 하늘아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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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고통없이 안락한 상태에서 사는 게 아니라 가혹한 운명에도 내적 평정과 충일함을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다(p34)." 영화 대사 중에도 종종 언급되는, 이른바 living dangerously를 잘 설명해 주는 표현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 어떤 동물도 위험 없는 환경에서 풍족하게 살고 싶지, 수시로 닥치는 위험에 이리저리 치이고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정말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p37에 나오듯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데서 그 진의를 드러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매일의 스트레스 때문에 매순간 죽을 것만 같다면, 설령 그 곤경을 벗어나도 이미 신체 기관과 정신은 회복이 어려운 피해를 조금씩 입는 중이겠고, 이런 경우는 니체의 저 언명에 해당이 안 됩니다. 니체가 말하는 저런 사람은 상황에 자신이 끌려가며 잠식당하는지, 아니면 매순간 승리하는지 이미 본인이 알고 있습니다. 

꼭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뿐 아니라, 책임을 크게 걸머진 부유한 사람도 니체 식의 저런 유형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치열한 업계의 죽고사는 경쟁을 직면한 기업 대표도, 비록 수중에 돈이 많다 한들 매순간 몰락과 패망의 위험에 노출된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이 매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건 그런 위험 하나하나를 극복한 성취감을 통해서이며, 그런 사람 특유의 활기와 강인함, 진지함, 심각함이 육감을 통해서도 전달이 되므로 누가 쓸데없는 시비를 그에게 걸지 않습니다. 

p50 같은 곳에서는 니체가 자신의 저작을 통해 말했던 여러 어구들이 정리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에서 니체는 낙타의 (비참하고 수동적인) 삶, 사자의 (남을 지배하는) 삶, 어린이의 (매순간 호기심을 발동하며 즐기는) 삶 세 유형을 말하며, 이 셋은 별개의 루트에 분리된 게 아니라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상방이동할 수 있고, 반대로 지독한 불운, 정신적 타격 등에 대해 하방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생의 다양한 패턴을 핵심적으로 지적했을 뿐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삶에다 어떻게 이를 적용할지까지도 힘있게 논했다는 점이 탁월합니다.    

p90을 보면 니체의 또하나의 언명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주어진 단편적 지령, 원칙, 교의, 이념에 맹종하여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도그마라는 게 설령 절대진리이며 강력한 위력을 가져도, 사람은 어느새 지루해하며 그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려 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한 가지의 원칙에 의해 작동되는 게 아니며, 심지어 어떤 사람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립하고 모순을 일으킵니다. 

수시로 맞이하는 이 모순을 잘 소화하고, 나의 큰 그릇으로 잘 융화하고 담아내어야 일단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앞에서도, 내적 평정이 결국 찾아져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죠), 갈등 상황도 극복이 됩니다. 시도때도없이 다가오는 모순이 어느새 더이상 모순이 못 됨을 느끼고 극복할 때 사람은 그 정신의 키가 한층 커지고 완성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입니다. p96에서도 니체는 도그마에 갇혀 사는 사람은 위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신진대사가 마비된 죽은 인생이라며 비판합니다. 

p129에는 "거리를 두는 파토스"가 언급됩니다. 저자는 니체의 저 언명을 두고, 대중에 아무 생각없이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음이 아닌, 그 대세라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평가라며 존중하되, 적당한 거리를 두어 나만의 개성과 영역을 지키려는 태도가 바로 니체 식의 그러한 파토스라고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p149를 보면 그저 정신이 마냥 육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을 치열하게 놀리고 작동시킴으로써 반대로 정신이 강해지는 짜릿한 체험을 니체가 강조했다고 나옵니다. 저자는 p150에서 무용가의 예를 들며, 이성이다 정신이다 의지다 하는 것이 결국은 신체 활동에 의해 통합되고 강화되고 고양될 수 있음을 논합니다. 

지나치게 도덕과 법을 강조하는 사람은 그가 정말 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 자기 보호 기제를 발동하는 건데, 이게 집단 전체로 보면 퇴행과 체질약화를 가져와 변화로부터 도태될 수 있으므로 해롭다고 니체는 말했는데, 약자가 알고보면 나쁜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이 이렇게 쉽게 설명됩니다(p173). 아큐식의 정신승리, 르상티망이나 강조하는 책을 읽지 말고 내 자신이 삶에서 사회에서 강력한 의지로 승자가 되는 책을 읽으라(p209)고 저자는 힘있게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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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입니다! - 다시 쓰는 슬램덩크
민이언 지음, 정용훈 그림 / 디페랑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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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 앞면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글쎄,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나는 분들도 있겠고, 과연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기는 했는지 회의가 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나름의 열정을 불태워가며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때가 있었겠고, 자신만의 슬램덩크를 멋지게 성공시켰다면 그게 바로 영광의 시대가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슬램덩크>는 일본 (고전) 지면만화이며, 이 컨텐츠를 즐기며 성장했다면 지금 아마 중년 정도의 세대일 것입니다. 1994년에 이미 극장판 애니가 개봉되었으나, 작년(2023) 초에 새로운 줄거리와 해석을 담은 극장판이 또 나와 한국 특정 세대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습니다. 명작은 이를 보는 독자, 관객에 의해 여러 시각으로부터의 몰입과 공감이 가능하다는 게 하나의 특징인데, 민이언 저자는 작품 <슬램덩크> 하나를 두고 그여러 대목에서 다양한 교훈과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만화든 애니든 <슬램덩크>를 재미있게 본 이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수긍하며 읽을 수 있는 인생론이라 하겠습니다.   

강백호는 왜 서태웅을 싫어하는가? 답은 저자가 생각하시는 바와 우리 독자들의 답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p32에 나오듯 강백호는 채소연을 좋아하고 이 채소연은 서태웅을 짝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엇갈린 화살표의 장난이 끼어들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이겠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를 존재케 한다." 마치 김춘수의 시 <꽃>의 한 행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비로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양자역학 교과서의 한 챕터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게 하고자 시작했던 일(p34)"은, 강백호의 경우처럼 결국은 (예상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귀착하게 되는데, 이는 스타 농구선수 아닌 평범한 우리들의 인생에도 두루 통하는 이치이겠습니다. 

"날 쓰러뜨릴 생각이라면 죽도록 연습하고 와라!(p72)"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는, 강백호를 향한 윤대협의 대사입니다. "나타나면 반드시 무언가를 해 줄 것 같은 사람(p74)." 저자는 <슬램덩크>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다는 평가를 <드래곤볼>에 대해 내리는데 저 대사도 <드래곤볼>이 그 출전입니다. 센도 아키라[仙道 彰]가 저 윤대협 캐릭터의 일본 원작 이름인데, 그 뜻을 생각해 보면 윤대협이라는 현지화 개명도 그럴싸하게 이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누구의 인생이건 간에 발전을 위한 자극제라는 게 있어야 하며, 이런 상의 저런 하의를 갈아입건 말건 옷 밑에 놓인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김수겸, 이달재, 송태섭 등은 <슬램덩크>의 애독자였다고 해도 잠시 헷갈리거나 그 이름을 잘못 기억하게도 되는 조연들입니다. "주연은 아니지만 그렇게 조연도 아닌, 모두가 북산인 그들." 저자의 평가입니다. 저는 "그렇게 조연도 아니"라는 저자의 저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생각해 볼수록 <슬램덩크> 특유의 인물 비중 배분 방식을 잘 표현한 말 같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실생활의 어떤 조연도, 그냥 조연인 것만은 또 아닙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들 모두가 다 저 이달재 같은, 무시받고 싶지 않은 조연들, 그렇다고 주연은 또 아닌 그런 역할과 인생들이라서겠는데 마침 저자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고 있네요.   

"왼손은 거들 뿐(p174)" 이 표현은 슬램덩크 독자가 아니라도 알 만큼 유명한데, 저자는 이를 두고 근접설 같은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합니다. 특정 동작이나 절차가 꼭 특정 성과를 내는 데 논리필연적으로 원인이 되는 게 아닌데도, 어떤 운동선수들은 어떤 루틴을 반복하고 나서야 플레이에 임합니다. 이게 아무 의미없고 때로는 우습게까지 보여도, 어떤 미세 조정을 두뇌와 몸의 근육 단위까지 마치려면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선수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도, 이걸 거쳐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직성이 풀리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 이걸 알아채고 존중해 주는 직장상사, 동료, 배우자가 고마운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광 시대는 언제였나요?" 이 질문에, "난 바로 지금입니다!" 같은 대답이 바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 행복하다고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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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사하고 갓생에 입사했습니다! - 일 잘하던 ‘8년 차 이대리’는 왜 퇴사했을까? 혹시 N잡러?
이미루 지음 / 다빈치books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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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위성이 아니라 행성으로 살고 싶다.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 알람, 부재중 전화에 소모되는 나 자신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 책 앞날개에 나오는 이미루 저자의 말씀 일부입니다. 한국의 청년들, 일명 MZ세대는 선배들보다도 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현재의 직장에 들어온 이들입니다. 이전 세대들은 앞서 치열한 입시를 거쳤지만 입사 과정에서 그렇게까지 힘들게 관문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눈을 조금만 낮추면 들어갈 회사야 얼마든지 있었죠. 지금은 들어갈 직장 자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직장인데, 어느새 낭비되고 소진되는 나 자신이 애처로워지고 과연 다른 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는 없을지 모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제약회사, 인테리어 회사에 몸담다 30대의 나이에 드디어 퇴사하고 갓생에 접어든 저자의 이야기에 모든 정답이 담겼는지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답이 다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 결심했어!"라며 퇴사를 꿈꿀 때 뭔가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가슴이 설레기까지하는 이들에게는,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뭔가 울림이 다르게 다가올 듯합니다.    
  
흔하게 엠지 엠지라고들 하지만 엠(M)과 지(Z)는 가리키는 시대 구간이 다릅니다. 한국 외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이상한 합성어지만 어느새 주변에 안 쓰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는 이 말을 토대로 논의를 이어가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저자가 이 말을 p45 이하에서 꺼내는 이유는, 엠지의 상관 자리에 주로 포진한 기성 세대와 엠지 사이에 현격한 세계관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젠지 세대라는 말의 뜻을 몰랐는데 Generation Z의 앞 음절을 따서 그리도 부른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여튼 저자가 강조하려는 건, 권위와 위계를 내세워 조직과 생태계 전체의 생기를 파괴하려 들면 모두가 죽는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현재 연 총생산 규모 면에서 한국에 추월당하니 마니 하는 형편이고, p51에 나오듯 어디 내세울 만큼 변변한 자국 IT 기업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너무도 불필요하고 산업 발전의 의욕을 막는 규제가 곳곳에 도사리는 풍조 탓에 그리 되었습니다. 한국도 스타트업에 지원을 소홀히하고 젊은이들의 기를 괜시리 꺾으면 저리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p227에서 저자는 배달의o족이 독일 자본에 매각된 예를 들며, 정부가 너무 개입, 규제를 일삼으니 토종 IT 기업이 배기지 못한 것 아니냐며 개탄합니다. 

미국은 20세기 중반 베트남에 개입하여 엄청난 군비를 투입했으나 자국 젊은이들의 반전(anti-war) 움직임 앞에 적전분열 지리멸렬하여 결국 패퇴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터지면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할까요?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도 그간 첨단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여, 인공지능 군대를 투입하고 통신망을 고립(p93)시켜 적국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인명 투입, 희생 없이 이길 수 있는 방식을 모색 중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각국 정부는 종래의 고정 관념에서 빨리 벗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정책과 국가 경영 전체를 재편해야 하며, 이에 실패하면 국가가 파산하고 국민들은 모두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인공지능이 이끄는 무인화, 자동화 트렌드에 주목하라는 게 요지입니다. 

고용주가 열정페이라는 말로 피용인들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면 그건 자본주의의 탈을 쓴 공산주의식 위선(p138)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반면 노동자 역시, 열정 같은 추상적인 말로 자기 능력을 포장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A는 유능해서 같은 세 시간을 일해도 30가지를 해 놓고 끝내는데, B는 무식해서(저자의 표현입니다) 세 시간 동안 세 가지 일만 겨우 끝냈다면 이건 열정이란 말로 슬쩍 얼버무릴 게 아닌 심각한 무능이라고 저자는 일침을 가합니다. 

전체에 걸쳐 저자가 강조하는 건 자동화, 무인화 추세인데, 기업이 버는 수익을 전에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기여도에 따라 나눴으나, 지금은 기업이 사람을 덜 쓰므로 CEO가 큰 부분을 독식하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제프 베이조스의 예가 나오는데 그래도 이 사람은 근래 인력을 좀 쓰는 편입니다. 오히려 일론 머스크 같은 이는, 종전 같으면 숙련 노동력을 엄청 써야 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그 정도의 무인화, 자동화, 공정 간소화를 이뤘으니 그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일궈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청년은 현대맨 삼성맨 등 어느 소속이 된 걸로 만족할 게 아니라 자신을 브랜드화하고 (일자리를 뺏는) AI 시대를 역공략하여 대체불가능의 인재가 되라고 결론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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