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언제 와요? 책고래마을 57
무아 지음 / 책고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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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비밀 친구>라는 어린이용 그림책을 서점에서 잠시 읽은 적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크게 바뀐 세상이 주제가 된 작품이었는데, 지금 이 책을 보니 그림체가 비슷해서 확인해 보니 같은 작가분이었습니다. 두 작품만 읽고 그 경향을 판단하긴 이르지만 이 무아라는 분은 시사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삼는다고 생각도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이 인접 작은 나라를 침략했다는 점에서 아무 명분이 없는 무도한 범죄행위입니다. 중국도 러시아와 부분적으로 군사협력을 이루는 나라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 입장을 표명하지 않거나 중재를 자청할 만큼 중립을 지키는 편입니다. 나토 가입국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만행을 규탄하는 분위기가 주류인데, 아마 중국은 이들 나라들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수 있습니다. 

여튼 하루아침에 무수히 많은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이 깨어지고, 이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가정은 집과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며, 이런 참상을 보고서도 애써 외면하거나 양비론을 쉽사리 꺼내드는 행태도 전쟁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들은 곰돌이 가족입니다. 이 동화책에서는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곰돌이 가족의 이웃은 여우, 원숭이, 토끼 같은 이들입니다. 동화책에서 그 배경은 하나같이 어둡고 쓸쓸한데, 전쟁이 나서 기존의 세상이 폐허가 되었으므로 이런 분위기인 게 당연합니다. 가족들은 어떤 수용소 같은 데 모여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고, 배식을 제공받는데 아이들은 이 와중에도 철모르고 뛰어다니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당장 내일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 막막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살던 나만의 공간이 불과 며칠만에 폐허로 바뀌었으니 그 충격만으로도 회복이 쉽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은 말합니다. "벌써 몇 번을 집을 옮겨다녔는지 몰라요.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줄 이들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원치 않는 여행이 자꾸 길어진다는 말이 더욱 가슴 아픕니다. 이 와중에 엄마는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자리를 잡았고, 동생은 언니가 돌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한국전 직후 모두가 생활고에 내몰렸을 때 이처럼 손윗형제들이 동생들을 보살피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동생은 자꾸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어대기 때문에 언니를 힘들게 하지만,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며 마음을 추스르는 태도가 참으로 장합니다. 

사실 처음에 아빠가 왜 따라오지 않았는지 확실하게 드러난 건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나라에 군인으로 징집되어 전투에 참여 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동화 말미에 아이가 꿈을 꾸며 산타 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빕니다. 그 꿈에서 아이는 썰매를 함께 타며 지상에서 앰뷸런스를 몰고 있는 아빠를 하늘에서 가리키는데, 어쩌면 구호 업무에 종사 중인 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천인공노할 악마 같은 독재자가 급살을 맞아 죽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전쟁은 끝나지 않으며, 이 곰돌이 가족이 다시 만나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곰돌이 모양의 젤리과자(아이들은 이게 뭔지 바로 알 것입니다)만 컬러로 채색되었을 뿐 이 동화책은 내내 어두운 배경입니다. 불쌍한 아이들의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그 꿈만은 총천연색일 수 있습니다. 세계에 불의가 대놓고 판치는 한심한 현실이 아무리 암운을 드리워도 저 아이들에게서 작은 꿈마저 빼앗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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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상어 이야기 나의 첫 번째 과학 이야기
버즈 비숍 지음, 박은진 옮김 / 미래주니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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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는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바다의 강자입니다. 1974년 미국에서 상스럽지만 현실감 넘치는 스타일로 베스트셀러가 된, 피터 벤츨리의 장편소설 <조스>를 보면 인간이 미지의 바다에 대해 품는 모든 혐오와 전율이 상어라는 동물에 모두 은유, 투영되었습니다. 미녀의 늘씬한 다리를 한입에 자를 수 있는 이 난폭하고 잽싼 물고기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 걸 보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상한 동물인데 어른보다도 애들이 상어에 열광하는 걸 보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64를 보면 이 책의 저자 버즈 비숍(Buzz Bishop)의 사진과 약력이 나옵니다. 나이 지긋한, 사람 좋아보이는 중년 남성인데 그 인스타(@buzzbishop)를 찾아가보니 팔로워 1만의 인플루언서입니다. 저서의 표지가 게시되었는데 캐나다판 원서와 이 한국어판이 같은 디자인입니다. 차분하지만 열정을 뿜어내는 개성으로 보이는 저 방송진행자가 쓴 이 책은 어린 독자를 주로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지만 그 내용은 아주 꼼꼼하며, 게다가 정성들인 일러스트가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p1을 보면 상어는 지금으로부터 4억 년 전에 지구에 출현했으며 심지어 공룡보다도 오래된 동물이라고 합니다. 상어는 어류이며 공룡은 파충류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입니다만, 이 정보를 아이들에게 말해 주면 아니 그 공룡들은 벌써 몇 천만 년 전에 멸종했는데 어떻게 상어처럼 아직도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이 더 오래될 수 있냐고 놀랍니다. 이런 아이들은 우리 인간이 비교적 최근에 지상에 등장했다는 점도, 또 현생 동물들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는 똑똑한 애들입니다. 

늑대나 개 등은 마치 사람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며 협동을 통해 사냥하는데 이 방식이 대단히 큰 효율을 발휘한다는 건 우리들이 잘 압니다. 늑대가 만약 혼자 다닌다면 다른 고양잇과 맹수에게 쉽게 포식당할 것입니다. 이 책 p6을 보면 마치 개떼처럼 무리지어 다니는 상어를 영어로는 dogfish shark라고 부른다는데, 우리말로는 이 상어들을 묶어 돔발상어목(目)이라 칭한다고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상어들은 혼자 다니거나 기껏해야 암수 한쌍이 같이 다니는 정도인데 늑대처럼 떼지어 다닌다니 신기합니다. 하긴 1983년작 <Never say...>를 보면 주연배우 숀 코너리가 상어 무리에 쫓기는 장면이 있기는 했네요. 

심해에 사는 생명체는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특이한 생태를 가진 게 많습니다. p24에 나오는 그린란드상어는 역시 돔발상어목에 속하는데, 최대 400살을 산다니 대단합니다. 그런데 시력을 잃어서 앞을 보지 못하고, 대신 후각이 매우 발달했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눈이 안 보이는 대신 다른 뛰어난 감각이나 능력으로 보상한다고 했을 때 (무슨 데어데블도 아니고) 아무도 그런 제안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 밑이라면 빛이 부리는 조화가 육상만 못하니, 시각이라는 감각의 효용이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 

p32에는 삿징이상어라는 종이 나오는데, 이게 영어로는 zebra bullhead shark라고 하네요. 목(目)으로는 괭이상어목인데, 몸에 저렇게 난 줄무늬를 보면 그런 이름이 붙을 만도 했겠구나 싶습니다. 크기는 대체로 작은 편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망치 모양으로 생겨 hammerhead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큰귀상어도 있는데(p43), 이런 머리 모양 덕분에 몸을 돌리지 않아도 뒤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말로는 뱀상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tiger shark라고 하니 특이한데 몸에 난 줄무늬가 역시 그 이유라고 나옵니다(p48). 한 번에 서른 마리까지 낳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영화에 자주 출연하여 아마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녀석이라면 p56에 나오는 백상아리겠습니다. 몸무게는 2.7톤, 엄청난 힘을 지닌 턱, 이빨, 꼬리까지, 정말 강력한 괴수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상어의 생태를 미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여,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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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지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불안한 삼십 대를 위한 32가지 자기발견 심리학
김윤나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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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과 소통 능력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이 서른쯤 되었으면 이제 사람 대하는 솜씨가 능숙할 만도 한데, 타인은커녕 나 자신을 다루는 방법도 아직 서투르니 과연 나라는 사람이 발전이라는 게 있는지 불안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마냥 태평으로 안이하게 사는 것도 문제지만, 공연히 불안해하며 나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닦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김윤나 소장은 대기업이나 미디어에 꾸준히 강연, 출연하며 MZ 세대에게 동기와 확신을 넣어 주기 위해 애쓰는 분입니다. 소장님이 치열하게 겪어낸 체험담과 교훈을 듣는 편이 젊은 직장인들에겐 더 실감이 나서 유익할 것 같습니다. tvN 같은 데서 소장님을 본 시청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독일어로 Gestalt란 모습, 형태라는 뜻인데 심리학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이 책 p27에서 간략하게 짚어지는 대로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그 사람의 인격, 개성 등의 총체를 가라킵니다. 그러니 이 관계라는 게 잘못되면 그 사람의 내면에 크나큰 고통이 밀려오는데, 저자는 이를 "관계앓이"라고 이름짓습니다. 저자가 이런 관계앓이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에게 들려 주는 층고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삶의 중심에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나"를 두라는 것입니다. 안테나가 세상 바깥을 향해 있으니 온갖 잡된 신호와 잡음이 다 몰려와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그 안테나를 나로 향하게 바꾸어 내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자는 것입니다.  

p67을 보면 50가지의 "가치"를 적어 둔 카드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대기업을 다니는 30대의 진호 씨라는 사례자에게 이 카드 중 내 것이다 싶은 것, 그렇지 않다 싶은 카드를 구별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도 책을 펴고 과연 이 50개 카드 중 어떤 것이 내 것일지 아닐지를 하나하나 가려 보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 것으로 분류된 카드 중 단 여섯 개만, 가장 소중한 것으로 가려 보는 단계까지 갑니다. 이 과정이 진호씨에게, 그가 진정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지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례자 진호 씨에게 성공, 성취, 명예 등은 사실 그리 중요치 않았는데, 남들따라 그리 힘들게 살았으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이 테스트를 더 심도있게 셀프로 시도해 보고 싶은 독자들에겐 p90 이하에 자세한 과정이 나옵니다. 

말(speech)이란 그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교육받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말이란 것의 진짜 중요한 의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 대화하는 통로가 된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내가 난데 내 생각을 모른단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에도 여러 개의 실체가 들어 있어, 때로는 그들끼리 갈등을 일으키고, 어떤 건 억압당합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말을 걸어 "넌 지금 어떤 상태니?"에 대한 답을 얻어내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ㅎㅎ) 온전한 나 진정한 나를 내 삶의 중심에 놓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런 나 자신과의 대화를 책 p134에서는 inner speach라고 부릅니다. 

30대 후반이면 팀장이 될 만합니다. p161 이하에는 승연씨라는 이름의 사례자가 나오는데, 사람들 앞에서 다소 엄격하게 보이려는 자신이 있고, 내심 매우 수줍어하는 자신 사이에서 어떤 쪽이 진짜 나인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이 괴리감이 심해지면 공황장애가 오는데, 저도 한참 일할 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급격한 붕괴감이 엄습해서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이란 상당히 강한 듯하면서도 그만큼 한순간에 허점을 노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p180에는 A 매슬로우의 욕구 7단계에 대한 다이어그램이 나오는데, 익히 우리가 아는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의 정리가 깔끔해서 좀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p213에는 대학생 정연씨가 사례자로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연씨는 이런 사람일 것 같아요"라면서 접근해 오면, 그녀는 그런 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씁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어설프게 타인의 감정을 지배하려 들며, 타인을 조종하여 자신의 성욕이나 금전욕을 채우려는 한심한 인간도 있기 마련이며, 이런 착한 사람들이 행여 그런 추하고 늙은 괴물들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연씨에게 저자가 권한 하나의 방법은 p225에 나오듯 감정에 이름을 하나하나 붙이고 감정 일기를 쓰는 건데 얼마 전에 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남한테 끌려다니지 말고 나 자신으로 확실히 자리잡고 살려는 그 마음가짐이 모든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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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끝내는 시원스쿨 토익 파트 3 & 4 - 토익 LC 초단기 고득점 전략서 일주일에 끝내는 시원스쿨 토익
길지연.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LAB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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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길토익TV"로 유명하신 길지연 선생님의 새 책입니다. 최근 토익 LC의 파트 3, 파트4가 부쩍 어려워졌다는 평이 많아졌습니다. 이유는 출제 유형과 경향이 바뀌었다는 한 마디로 충분하며, 수험생 입장에서는 그 변화한 방향성에 맞춰 대응을 해야만 합니다. LC에서 물론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듣고 받아쓰기가 될 만큼 청해가 가능해져야 하는 게 맞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많은 수험생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전부터 "수업 들은 효과가 확실하다"는 입소문이 자자했던 길지연쌤의 책 답게, 문장이 온전히 안 들리는 학생들도 최대한 정답을 추측할 수 있게 돕고 요령을 가르쳐 주는 부분이 탁월합니다. 학생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탁월하셔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3과 4의 유형을 먼저 익히고, 빈출 토픽도 익힌 후(이게 은근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기 이해한 사항이 더 귀에 잘 들어오게 마련이며, 한국말이라 해도 본인이 모르는 내용이라면 그에 한해 귀가 막힌 것이나 같으니 말입니다), 특히 파트4의 지문 유형을 배우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 지문 유형 학습 부분이 저는 특히 좋았는데, 이 책에서는 회의발췌, 연설, 관광, 방송, 공공장소 안내 등으로 세분하여 마치 실전 시험을 미리 치르게나 하는 듯 적중도 높은 지문들에다 수험생을 노출시킵니다. 이 방식이 유일한 답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몸에 배게 할 최상의 대응책 중 하나인 건 분명합니다. 

꼭 토익이 아니라 해도 영어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같은 말의 반복입니다. 표현이 풍성해야 하고, 비슷한 뜻이라도 겉모습을 달리해서 구체화하는 게 으뜸가는 미덕인데(사실 고대 로마의 수사학, 혹은 당송팔대가의 모범 문장도 그 이치는 같습니다), 개편된 토익에서 이 패러프레이징된 말들을 수험생이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느냐는 중요 평가 척도로 삼고 문제를 내기 때문에, 한국의 학생들이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p46을 보면 페이지 하단에 패러프레이징이라고 해서, coupon- voucher, passport- driver's license 같은 걸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paraphrasing이라기보다 동의어, 유의어 나열에 가까운 것도 있는데, 중요한 건 이들 단어들이 서로 통함을 알고, 지문에 특정 단어가 나오면 선지 중에서도 비슷한 걸 빨리 캐치하여 당/부당을 잽싸게 가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토익 LC에서 시각자료 연계 문제는 꾸준히 나오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그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은데, 많은 학생들은 그저 차트나 도표만 나오면 무슨 PSAT이나 되는 듯 지레 얼어붙습니다. p60 이하에 시각자료 연계의 다양한 유형이 분석되는데, 토익 LC에서는 이 정도만 해 둬도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책 곳곳에는 길토익TIP이라고 해서 따로 요긴한 요령을 박스로 정리해 두었는데, p71을 보면 의도 파악에 먼저 신경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confirm은 사전에 나오는 대로 "확인하다"라기보다, 이 코너(p71)에서 말하는 대로 "확인시켜주다"에 가깝습니다. 사전 풀이를 기계적으로 암기만 하는 수험생들이 언제나 부딪히는 함정이기도 하죠.      

저는 작년 7월 길지연 선생님의 실전토익 900+교재를 공부하고 리뷰를 올린 적 있습니다. 이 책은 그 교재를 꼼꼼하게 공부하고 난 학생이라면 더욱 효과가 좋을 듯합니다. 이 교재에는 챕터마다 QR코드가 찍혀 있는데, 이걸 스캔하면 바로 시원스쿨랩 사이트로 이동하여 개별 음원이 재생할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런데 음원을 들을 수는 있지만, 이걸 소장할 수는 없습니다. 회원 가입 후 로그인 상태에서 길지연 코너의 개별 교재로 이동해서, 부록을 클릭한 후에는 비로소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모든 음원이 통으로 압축되었으므로(427Mb) 혹시 폰에 용량이 부족하다면 따로 저장장치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압축해제를 하면 대략 600Mb가 넘는 양이므로 꽤 큽니다. 

길지연 쌤의 정리는 실용적이면서도 이해가 빠르게 요약됩니다. 예를 들어 p137을 보면 devoted to ~ing가 나오는데, 이때 to는 부정사(infinitive)를 이끄는 게 아니라 저렇게 뒤에 명사상당어구(동명사라든가)가 따라온다는 점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이 점을 미리 알면 같은 문장, 어구도 귀에 더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반면 p145의 be available to do의 경우 그 실제적인 뜻(~할 시간이 되다)도 알아야 하지만 to가 부정사를 끌고 온다는 점도 알아야 하겠지요. 

정답 및 해설은 칼로 분책할 수 있고 자동분리는 안 됩니다. 길쌤 책에서 항상 느끼는 건데 해설이 자세하기도 자세하지만 눈에 잘 들어오게 편집이 성의있습니다. 이러니 공부하면서 학생들이 더 많은 편의를 얻지 않겠습니까. 1등은 뭐가 달라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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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뒤낭, 그가 진 십자가 - 최초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일대기
코린 샤포니에르 지음, 이민주 옮김 / 이소노미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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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 앙리 뒤낭은 국제적십자사의 창설자이며 노벨평화상 최초 수상자로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사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이분의 명예를 드높인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레프 톨스토이는 19세기에 러시아를 넘어 전세계에 이름을 떨친 문호였는데, 이런 분이 노벨 문학상을 못 받았다는 사실이 이후 두고두고 노벨 상의 권위에 누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앙리 뒤낭은 당연히 큰 상으로 그의 업적이 기려져야 마땅한 인물이었으며, 만약 다른 이가 받기라도 했다면 노벨상은 더 늦게 그 권위가 정착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톨스토이와 앙리 뒤낭은 출생, 사거 연도까지 서로 똑같은 동시대인들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린 시절 위인전기에서 공중 보건 의료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우리는 영국인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이분의 생애에 대해 배웠습니다. 나이팅게일도 이분보다 여덟 살 정도 위이고 타계 연도는 이분과 같습니다. 남자애들은 적십자 설립이라는 뚜렷한 업적이 있으니 이분 편을 들고, 여자애들은 무슨 소리냐며, 크림 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활동이 유명해졌기에 적십자 설립이 더 일찍 기초를 다졌다며 옹호했습니다. 이분이나 나이팅게일이나 모두 금수저 출신이고 구태여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신분이었기에 그 희생 정신과 행적이 더 주목 받는 건데, 다만 사회사업가들의 성향이 보통 그렇듯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마련하는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특히 앙리 뒤낭은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인해 일생을 궁벽하게 산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 p96 이하에 그 자세한 과정이 나옵니다.  

저자 코린 샤포니에르부터가 스위스 제네바 사람이므로, 프랑스 본국과 알제리 식민 당국 사이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로 결국 토지 불하 신청이 기각되어 큰 재정적 충격을 받았던 이 시기(1850년대) 앙리 뒤낭의 상황에 대해 아주 자세한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뒤낭은 제네바에서 모친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사람은 출신 성분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마련인데, p52를 보면 에두아르 모니에, 프레데릭 모니에 형제와 마치 유관장 3인처럼 의기투합하는 장면이 적혔습니다. 세 사람 다 프랑스 출신이고 독실한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했으며 인류애 가득한 명분, 대의에 공감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회합한 곳은 바로 제네바였는데, 여기는 수백 년 전 프랑스 사람 장 칼뱅이 이주해서 종교개혁의 열정을 불태우던 바로 그곳이기도 했죠. 지금도 적십자사 본부가 제네바에 있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023년 4월 SG증권사태라는 게 터져 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소시에테제네랄이 한국에서는 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한데, 무려 135년 전인 저 앙리 뒤낭이 40대였던 시절에도 소시에테제네랄이 또 좋은 일에 협조를 안 해 줍니다(p226). 물론 제가 농담을 하는 것이며, 이 책 각주에도 나오듯이 크레디 리오네라든가 SG 같은 곳이 워낙 업력이 오래된 금융기관이다 보니 역사 곳곳에서 별의별 일들과 다 엮이는 것입니다. 확실히 뒤낭처럼 인격은 훌륭하고 사회 실정에는 어두운 위인에게는 좋지 못한 작자들이 곁에 붙어 훼방을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프랑스는 선동정치가 루이 보나파르트가 삼촌의 위명을 빌려 제2제정을 선포하고 황제로 군림 중이었는데 워낙 그릇이 작은 작자였다 보니 뒤낭의 큰 뜻 실현에도 전혀 도움이 못 되고 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잔머리만 굴렸지 본질이 무능한 작자가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리 만무해서 프랑스는 우세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기어이 패배하고, 파리에는 그 유명한 코뮌이 출현합니다. 패전에 더하여 이제 프랑스에서는 좌우 내전까지 터진 것입니다. p297을 보면 뒤낭은 동생 피에르에게 쓴 편지에서 이미 내전을 예견했다고 나옵니다. 역시 큰 인물답게 이런 정세의 대격변과 국난까지 다 내다본 것입니다. 설상가상이라고, 코뮌에서 발생한 혼란의 책임을 플라비니 백작은 뒤낭에게 돌리기까지 합니다. 뒤낭의 삶은 소인배들의 모략과 술수 때문에 몇 배는 더 힘들어졌는데 그의 평생을 두고 되풀이된 패턴입니다. 삼류 사기꾼들이 적반하장격으로 피해자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것도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유럽의 뜻있는 지사들이 고국으로부터 배신당할 때 항상 바다 건너에서 맞아주는 곳이 바로 런던입니다. p398을 보면 "프랑스인들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1885년에 그가 찾은 도시도 런던이었습니다. 세상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아니고 같은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그를 괴롭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레오니 카스트네르 부인만이 그의 곁을 지키며 도움을 주었으나 1888년 사망합니다. 이 부인도 나이팅게일처럼 뒤낭보다 여덟 살이 많았습니다. 

뒤낭이 남긴 글들, 특히 다양한 서간문들을 빠짐없이 찾아 분석하여 합리적인 맥락에 따라 재구성한, 치밀함과 열정이 배어나는 멋진 평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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