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 무삭제 완전판 문학사상 세계문학
안네 프랑크 지음, 홍경호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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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점령한 영토 안에서 대중 사이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세뇌하고,시스템적인 제노사이드를 시행하여 문명사회의 휴머니티를 말살하려 든 악랄한 집단입니다. 네덜란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득세할 때에도 약소한 국력 때문에 병탄당했고, 독일이 야욕을 드러내면 곧바로 희생양이 되는 등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네덜란드 자체가 독일에게는 쉬운 먹잇감이었는데, 그 네덜란드 안에서도 소수자로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이 1940년대 전반에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당시를 살았던 사춘기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남긴 일기는 기적적으로 종전 후에도 전해져 일정 시간 경과 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 p7에도 나오듯 당시 네덜란드 총리가 라디오 방송 연설에서, 나치 점령지 하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기록으로 남겨달라는 호소를 했었습니다. 소녀 안네 프랑크는 이 연설을 듣고 기존의 개인적 기록을 더 정성들여 이어가고, 후세에 공개될 것을 대비해 등장인물 상당수의 실명을 숨기는 각색까지 했다는 거죠. 어린 소녀의 생각치고 정말 어른스럽고 사려깊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일기는 그저 나치 독일의 만행을 고발한 역사적 기록일 뿐 아니라, 성장기 청소년의 다양한 고민과 갈등 등을 솔직하게 담은 수상록 문학으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한국인들도 발췌역본으로 어렸을 때 한 번 정도는 읽어 봤음직한 고전 명작인데 지금 이 문학사상사본은 안네 프랑크 재단과 유일하게 정식 계약한 한국판이라고 합니다. 완전판은 이른바 A본(本)이며, 1990년대에 출판되었습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평소에 나오지 않던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책 p78을 보면 안네 프랑크가 판 단 아주머니(가명. 본명은 판 펠스)에 대해 심각하게 불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안네의 부친에게, 말과 헹동으로 지나치게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친은 판 단 씨에게 그렇게 선을 넘는 듯한 경솔함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독자 입장에서야 사태의 진상이 무엇이었을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판 단 부인과 오토 프랑크 씨의 사정을 지금 눈 앞에서 보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다들 생존에의 위협이 워낙 긴급히 다가오니 서로가 서로에게 더 밀접하게 기대려고들 했었겠고, 판 단 부인처럼 저런 부적절하고 정숙지 못한 행동도 나오곤 했겠죠. 대개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고, 엄마가 점잖은 분이면 딸도(사실은 아들도) 가치관이 건전합니다. 책 표지에 나온 안네의 사진만 봐도 애가 고등학생답지 않게 뭔가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입니다. 

어쨌든 이런 극한 상황에서 다들 이웃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판 단(van Daan) 씨가 늘어놓는 너스레, 넌센스 퀴즈는 현대 독자들이 읽어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대체로 이 판 단 씨에 대한 평가는 (안네의 일기 독자들 사이에서)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평적 시선을 더 입체화하면, 같은 문장이라고 해도 그로부터 여러 해석이 가능한 법이니 우리 독자들은 괜한 선입견을 갖기보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관점에서 읽어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오토 프랑크 씨처럼 평범한 이름도 아니고, 이 양반은 왜 유대계 독일인이면서 성씨에 전치사 "판"이 붙었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먼 조상이 네덜란드에서 기원했기에 성씨에 판이 붙는 건 독일인들 사이에서 드물지는 않았는데 (유대계는 아니지만) 베토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일어 von과는 달리, 귀족 출신이거나 한 건 아닙니다. 이름이 판 단인 것과, 이들이 네덜란드에 은신처를 마련하게 된 경위는 서로 아무 관계 없고 그저 우연입니다. 

보통 억압적인 부친, 성격이 괴팍한 모친 밑에서 자라 저 페터 판 단 군이 괜히 위축되고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p135에서도 알 수 있듯 필요할 때는 바로 행동이 나오는 아이였으며, 안네를 향한 행동에서도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단, p60 같은 데 보면 저 헤르만 판 단 씨가 아들인 페터를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당시 독일 가정의 훈육 관습을 감안하면 아주 이례적이거나 하진 않습니다(물론 그 시절이라고 아빠가 아들을 다 때리진 않았겠고,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베프(Bep)"는 물론 p79 같은 곳에 나오는, 전에 오토 프랑크 씨 회사에 다니던 직원이며 베스트프렌드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하고 같이 책을 읽은 누가 그런 질문을 해서 여기 적어 둡니다. p410에서 베르튀스라는 여자와 약혼하는데 안네는 남자가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안네는 어린데도 애가 아주 유머러스한 데가 있습니다. p146 같은 데를 보면 판 단 부인한테 아름답다고 평하지만 그게 반어법이라고 곧 밝힙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취미인지, 오토 프랑크 씨에게 어이없는 플러팅도 했던 게 다 이런 유치하고 바보스러운 심리의 발로입니다. 그런데도 딴에 아들을 위한다고 음식을 남겨 두는데 이때 "귀여운 아들"이라고 칭한 건 관찰자 안네의 감정이입이겠습니다. 아이들은 현란한 공중전에 쉽게 매료되곤 하는데 1987년 영화 <태양의 제국>에도 이런 장면이 있죠. 그 공중전이 (보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위험하고 그 전투의 당사자들이 생사를 건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p251 같은 데를 보면 배를 타고 은신처를 탈출하는 문제(네덜란드는 잘 알려진 대로 저지대이니까요)와 조리도구인 국자를 젓는 동작을 연결시키는데 저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 걸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흐뭇합니다. 위기에 웃는 사람이 일류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p348을 보면 당장 우리가 잡혀가는 판에 라디오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면서 오토 씨가 딸 안네의 일기를 태워 버리자는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장면이 있고, 안네가 강력 반발하자 부친이 일단 묵살하는 대목에서 역시 과거에 큰 사업체를 운영했던 양반답게 판단이 신중하고 언행이 묵직함을 알 수 있죠. p370 같은 데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저 앞에서도 페터가 영어 문제를 안네한테 자세히 물어 보는 장면이 나왔죠. 유대인 가정 특유의 기풍이라는 게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스실로 기어이 끌려가 비참하게 처형당하고 수용소의 열악한 시설 때문에 병에 걸려 죽거나 하는 게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휴... 다시는 인류사에 이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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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계단 학습 일력 : 어휘편 (스프링) 무한의 계단 학습 일력 (스프링)
아르누보 편집부 지음 / 아르누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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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귀여운 일력 형식으로 된 무한의계단 어휘편 교재입니다. 모바일 게임 무한의계단이 어린이들에게 워낙 인기 있다 보니 그를 테마 삼아 이처럼 학습 교재도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교재의 머리말에는 "우리의 생각을 더 깊게, 우리의 말을 더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어휘이며 이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휘는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학습되어야 그 지식이 오래 가고 응용력도 높아지는데, 그런 이유에서 이 교재는 그 일력 포맷이 더욱 학습 효율을 끌어올려 주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월 9일자에는 "손사래"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어른들 중에는 이 단어를 "손사레"라고 아는 경우도 있던데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단어 뜻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이 말(나아가 그 동작)을 쓰는 상황까지도 설명하는데, 거절하고 싶을 때, 반박하고 싶을 때, 심지어 부끄러울 때에도 쓴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과연 그런데요. 대체 우리는 언어나 동작의 활용법을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배웠기에 이런 설명에 수긍하거나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걸까요? 아무튼, 어린이들에게 그 나이 때부터 정확한 지식을 가르쳐 주면, 그 아이는 커서 훨씬 정밀하고 풍요로운 언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습니다. 

4월 11일에는 "통제하다"라는 단어를 배웁니다. 이 단어는 5-1 과정에서 배우는 것 같습니다. 이 일력 교재에 실린 모든 단어들은 그 소속 범주가 오른쪽 상단에 따로 나오는데, 이 단어는 "행동"이라는 카테고리 소속인 것 같습니다. 5월 16일의 부리나케 같은 단어는 "상태" 범주에 속합니다. 부리나케의 어원에 대해 책에서는 "불이 나게"에서 온 말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설명도 덧븥이는데, "신발 밑창에서 불이 일어날 만큼 빠르고 급하게 움직인다면 지각은 하지 않겠지요?"라고 합니다. 7월 23일의 단어 "상기되다"의 범주는 "감정"입니다. 이 단어에 대해 제시된 비슷한 말로는 "붉어지다, 들뜨다"입니다. 이렇게 유의어들을 함께 제시해 주는 게 이 교재의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9월 27일의 동경(憧憬)이라는 단어는 해당 교과과정은 따로 표시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움을 다소 세련되게 표현하는 단어로서 우리들이 꼭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속 범주는 "감정"입니다. 사실 저 동경이라는 단어는 그 한자도 우리가 자주 보던 것들이 아닙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비슷한 말로 "선망, 흠모"라는 단어들도 가르치는데 이 역시도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수준 있는 어휘들이라고 하겠네요. 11월 26일의 "신념"은 5-1 과정에서 배우는 단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소속 범주는 "가치"입니다. 교재에서는 이 신념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예문을 제시하는데 "우리 할머니의 신념은, 사람은 모쪼록 잠을 잘 자야 마음이 건강하다"입니다. 당사자가 이렇게 확고하게 믿고 있으면 그 역시 신념이겠습니다. 캐릭터들의 대화(말풍선) 안에 문장을 담았으므로 내용이 쏙쏙 잘 들어옵니다. 

3월 29일에 배우는 단어는 "역량"입니다. 이 단어는 6-1에 배우는데, 과연 이 교재 안에서는 제법 어려운 단어일 수 있겠습니다. 이 페이지에 나온 두 캐릭터는 기획사에 들어간 연습생인데, 둘 다 자신의 역량이 충분하다고 믿으며 언젠가는 꼭 무대에 오르리라고 희망을 품습니다. 그 비슷한 말들로는 "그릇, 능력, 실력"이 나오는데 다들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뉘앙스가 다른 말들이죠. 이 단어도 소속 범주는 "가치"인데, 이 교재가 나눈 범주는 이처럼 행동, 상태, 감정, 가치 등 네 개인 것 같습니다. 

10월 19일자에는 유사어 퀴즈가 나오는데 덤터기와 가장 유사한 단어를 고르라고 합니다. 답은 ①바가지인데, 이 퀴즈도 무한의계단 캐릭터가 말해 주는 형식이므로 아이들이 일단 호기심을 더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12월 14일자에는 헐값이라는 단어가 제시되는데 답은 ④싼값입니다. 이 말을 하는 캐릭터가 한숨을 쉬는 걸 보니 그닥 상황이 만족스럽진 않았나 봅니다. 지루하지 않게 학습자를 요리조리 잘 이끄는 형식이라서 아이들이 집중하며 공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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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소통 - 나를 위한 지혜로운 말하기 수업
박보영 지음 / 성안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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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소통 

저자 박보영 대표는 소통의 전문가입니다. 요즘은 아무리 능력과 스펙이 뛰어나도 사람들과 소통이 서투르다면 사회적 성공이 힘든 세상입니다. 효과적인 소통은 발화자 본인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같은 집단에 소속한 타인들의 감정과 자존, 편의의 달성에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내가 존중받는다는 믿음이 생기는 상대방에게 더 많은 호의를 제공하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라 하겠습니다. 소통의 달인은 곧 인간관계의 달인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28에 보면 인간관계의 유형을 저자는 두 가지로 나눕니다. 헤어져도 되는 관계, 혹 헤어져야 해도 헤어질 수 없는 관계. 사실 전자라고 해도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직장에서 누가 을이라고 생각되어도, 기본적인 에티켓도 잊고 마구 대한다면 그런 사람은 변변치 못한 자신의 지금 자리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뼛속에서부터 힘들게 하는 건 거의 대부분의 경우 후자입니다. 배우자가 나를 힘들게 하면 직장에서도 자기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 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당장 내 주변의 관계를 개선하면 하루하루가 날아갈 듯 즐거워집니다. 

p38에서 저자는 건강한 나르시시즘에 대해 논합니다. 저자가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보통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이기적이고 착취적인 attitude만 떠올리기 쉽지만, 참된 자존감은 자기사랑에서 비롯합니다. 어느 정도 나르시시스트 느낌이 나는 사람이 매력적이기도 하며, 당사자에게는 자기 숨겨진 역량이 십분 발휘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은 직장에서 행동이 쭈뼛쭈볏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 부족이 행동력 부진으로 이어지다가, 급기야 타인 탓으로 비화하기도 한다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이 설명이 설득력 있는 게, 저 단계 하나하나에 책임감 결핍이라는 요소가 꿰뚫고 있기 때문이죠.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게 EQ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이것 관련 연구가 시사주간 TIME에 실린 후 한국에도 급격히 인지도와 영향을 넓혔는데, 살면서 우리들도 절실하게 느끼는 바입니다.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상황에 순간 대처하는 능력은 편도체를 이끄는 감정인데,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제아무리 고지능자라 해도 머리가 하얘져 바보나 별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거죠. 저자의 소결론은, 상대의 감정 알람(alarm) 장치인 이 편도체를 평안하게 해 주는 존중, 배려, 공감을 축으로 소통하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 책의 주제이자 제목인 "이기적 소통"이 대략 어디를 향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건전한 나르시시즘에 바탕한 이기적 매력과 활력을 유지하되, 상대에 대한 존중도 언제나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엄청 화가 났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p93)." 마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첫문장과도 좀 닮았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힘든 게 자기객관화이며, 나에게는 그처럼이나 당연하고 뻔하게 다가오는 게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도 됩니다. "아니,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아닙니다. 타인은 당연히 그 사실을 모르며, 알아야 할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p92에는 퀄리아(qualia)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어떤 대상을 인지한 순간 복합적으로 동시에 확 밀려오는 어떤 감점들을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이게 막 벅차고 설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막힌 듯 마구 답답해지기도 하는 묘한 느낌인데,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릅니다. 

내 감정을 내가 잘 다스리게 되면 나의 능력이 어느 상황에서도 잘 발휘될 뿐 아니라, 장기 목표를 세워 꾸준한 동력으로 밀고나가는 데에도 유리합니다. 저자는 p109 같은 곳에서 이를 "자기 동기화"라고 명명하며, 감정 조절을 통해 내 안에 숨은 모든 에너지를 밖으로 끄집어 내 목적을 달성하게 하라고 권합니다. 내 감정을 내가 잘 다스리게 되면 이제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데에도 능숙해지게 됩니다. p247을 보면 말끝 하나, 표정 하나, 눈빛 하나에도 내 감정을 효과적으 싣고 전달하여 결과적으로 상대의 감정 역시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 잘 나옵니다. p124를 보면 남을 배려하는 게 사실은 (그러는 척하면서) 나를 배려하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만물에 고정된 실체란 없고, 따지고 보면 나와 너 사이의 경계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와 내가 결국 하나라면, 내가 건강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때 동시에 알트루이스트로 거듭나 소통과 관계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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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계단 학습 일력 : 한자편 (스프링) 무한의 계단 학습 일력 (스프링)
아르누보 편집부 지음 / 아르누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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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형 일력 포맷의 한자 학습서입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게임 무한의계단 캐릭터들과 배경이 그대로 나옵니다. 일년 365일 한자(漢字)를 하루에 한 글자씩 배우도록 한 구성입니다. 요즘은 이처럼 일력의 형식으로, 학습자가 한 번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공부하게 유도하는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예를 들어 1월 9일 란을 보면 다할 진(盡)이 나옵니다. 어려서부터 이 글자를 봐 왔다면 마냥 어렵게는 느껴지지 않겠지만, 사실은 그릇명 부수에 총획수 14획의, 제법 복잡한 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급수로 4급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교과과정에서는 이른 단계에서 배우지만 난이도는 제법 높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자는 특히 일상이나 책 안에서 어떤 단어,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를 어린 학생들이 알아야 하는데, 교재를 보면 진심(盡心), 진력(盡力) 등에 쓰인다고 그 용례를 가르쳐 줍니다. 매 페이지마다 무한의계단 캐릭터들이 나와 우스운 대화를 주고받는 4컷 정도의 만화가 나오는데 물론 주제가 된 한자가 포함된 단어가 대화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은 그 맥락에 대해 더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2월 13일을 보면 쇠 철(鐵)이 나옵니다. 사실 이 글자도 손으로 한번 써 보라고 하면 어른들도 바로바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글자는 나이 많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이름 글자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앞의 다할 진보다는 더 쉬운 글자인지 급수는 5급입니다. 만화 마지막 칸에는 "첫말잇기" 코너가 있는데 철(鐵)로 시작하는 단어들입니다. 철도, 철근(鐵筋), 철강(鐵鋼) 등인데 이렇게 보니 참 쓰이는 데가 많은 글자입니다. 현대문명이라는 게 철 없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으니 말입니다. 

3월 4일자에는 동녘 동(東)이 나옵니다. 만화에서는 의존명사 녘의 뜻에 대해서도 캐릭터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가르치는데 이 역시도 유익한 내용입니다. "동녁"은 특히 끝말잇기에 딱 좋은 단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들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동(東)자가 들어간 단어를 배우기보다, 연관된 다른 한자를 배우는데 서(西), 남(南), 북(北) 등입니다. 東은 쓰기도 읽기도 쉬워서인지 급수는 8급밖에 안 됩니다. 3월 9일에는 글자를 배우지 않고 사지선다 퀴즈가 나오는데, 네 선지 모두 독음은 "동문서답"이지만 답은 ①東問西答입니다. 그런데 이런 날짜에는 앞서 배운 글자들을 모두 모아 복습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3월 10일자에는 눈사람 배 위에 東西南北이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이걸 위에 트레이싱해서 따라쓰게 합니다.   

3월 24일자에는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이 설명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사자성어의 내용으로 맞을까요? 아마 뜻은 통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사자성어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인데, 사면초가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으나 여튼 답은 아닙니다. 같은 페이지에 거꾸로 답이 인쇄되었는데(바로 확인 안 되게 하려고), 역시 답은 X입니다. 4월 19일에는 刮目相對(괄목상대)라는 사자성어가 나오는데, 이 페이지에서도 캐릭터들끼리 재미있는 대화가 오고가지만 진짜 유익한 내용은 따로 있습니다. 연관어로 "일취월장(日就月將)"이 제시된 부분입니다.  

6월 30일에는 역시 사지선다 퀴즈가 나오는데 답은 ③우이독경(牛耳讀經)입니다. 그 뜻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할 때"라고 가르칩니다. 하루 앞인 6월 29일에는 한자 경(經)의 뜻이 아닌 것을 고르게 하는데 답은 ③경치입니다. 경치는 한자로 景致라고 쓰는데, 이에는 經이 들어가지 않죠. 5월 11일 퀴즈를 보면 結□報□이라는 문제를 내고 빈 칸 안에 알맞은 한자를 쓰게 하는데 답은 ②草, 恩입니다. 아이들이 부담없이 재미있게 한자를 공부할 수 있어 좋았으나 인덱스가 없고 필순이 안 나오는 건 약간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긴 이렇게 예쁜 책에 너무 많은 걸 더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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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 - 역사학자가 파헤친 환경 파괴의 시작과 끝
마크 스톨 지음, 이은정 옮김 / 선순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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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혁신과 번영을 가져왔지만 그 이면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낳았습니다. 환경파괴, 인간소외, 빈부격차, 기존 정신적 가치의 타락과 퇴조 등 일일이 손에 꼽을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가장 큰 기여인 경제성장조차, 앞에 열거한 각종 부작용들 때문에 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해 깊은 회의가 제기되는 지경입니다. 저자 마크 스톨 박사는 인류의 지난 역사를 개관하며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았으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갖가지 곤경을 어떻게 타개할 방법은 없겠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alternative)은 혹 무엇이 있을지 등의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분업의 기적은 애덤 스미스가, 무역의 편익은 데이비드 리카도가 자신들의 고전 경제학 저서에서 매우 완성도 높게 각각 논증한 바 있습니다. 베네치아와 제노아는 각각 이탈리아 반도의 오른쪽, 왼쪽 깊은 코너에 깊숙이 자리하며, 지중해 무역을 통해 운반된 물품들이 유럽 대륙에 상륙하는 최요지로서 큰 번영을 누린 도시국가들이었습니다. 저자 스톨 박사는 스미스와 리카르도가 고전 경제학의 기초를 닦기 훨씬 이전부터 이 나라들이 고도의 제조업과 무역업을 발전시켰는데, 다른 나라가 아직도 중세적 질곡에 신음할 때 이들은 벌써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놀랄 만큼 갖춰 가는 중이었다고도 주장합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분화(p63)도 이미 이때부터 태동되었다는 게 박사의 주장입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에도 나오듯 원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대던 앙숙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체급 차이는 워낙 컸고, 스코틀랜인들의 진정한 현명함은 잉글랜드가 해양 제국을 건설해 감에 따라 그 영향권 하에 자발적으로 편입(p116)되어 번영의 큰 몫을 함께 누리려고 일찍부터 결심을 굳혔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엘리자베스 1세 국왕이 통크게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를 브리튼 전체의 주권자로 그 후계를 긍인해 준 결단에서도 일부 원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비록 스코틀랜드의 상인층과 귀족, 왕족의 이해관계, 공유문화가 크게 달랐다고는 해도). 책에서는 이렇게 중근세, 근대의 역사를 짚으면서도, 제조업이 고도로 발달한 곳에 반드시 독성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이 필연적으로 따랐음을 서술하며, 자본주의가 포태했던 이 역사적 원죄 패턴에 예외가 거의 없음을 지적합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3명의 대가(大家)로 제번스, 칼 멩거, 레옹 발라를 보통 꼽습니다. 그런데 이 책 p182에서도 지적하듯, 심지어 그 제번스조차도 자신의 활동 시기인 19세기에 벌써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반성 없이 계속되면 미래 세대가 쓸 자원이 부족해진다"고 내다보았다는 점입니다. 현재 신고전파를 계승한 진영과 정반대되는 쪽에서 친환경 담론을 생산하는 상황을 볼 때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19세기 중반의 자원보존운동(conservation of resources)에 대해 간략히 짚으며, 이런 움직임이 현대에 들어 비로소 활성화한 게 아니라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해악이 현실화한 때에는 예외 없이 이런 자성과 경계의 거센 반작용이 있었음을 예리하게 귀납합니다.     

일단 관개시설이 갖춰지고 1차 산업의 기반이 마련되자 북미대륙은 전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부상할 자격을 여실히 즘명해 보였습니다. 여기에, 2차 산업혁명이 철도, 철강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자, 미국은 자본주의 발전의 중추지대로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노예노동, 플랜테이션이 이끌던 농장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로 전환하고, GM, 포드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개인용 자동차를 보급하면서 1920년대 이 흐름의 중핵으로 떠올랐습니다(p220).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지적을 하는데, 이 거대 자동차 메이커들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상징하는 1차 산업혁명,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대표하는 2차 산업혁명 등이 주도한 산업자본주의 단계를, 이 책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소비자본주의 단계로 전환했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본주의 발달에는 "여성의 적극적인 소비 참여"도 한몫했음을 또한 빠뜨리지 않고 짚습니다.        

p266 이하에서는 소비자본주의의 세계화를 규정하며, 1990년대 동서냉전 종식과 함께 도래한 세계화의물결이라는 게, 사실은 이미 1960년대 운송혁명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부각합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소비주의와 소비자본주의를 엄격히 분별하는데, 평소에 쓰지 않던 물건을 새로이 입수해 써 보려는 경향이야 인간의 본성이지만, 소비자본주의는 빨리 쓰고 빨리 버리는 행태를 자본주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 무서운 함정, 자본주의의 말기적 행태를 가리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권에는 소비주의(consumerism)이 침투하여 망했고, 이제 전세계에는 소비자본주의의 마각이 골수까지 퍼져 인간 생전의 보루를 좀먹습니다. 우리들도 이제 발상과 행동의 대전환을 꾀해야 할 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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