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크래프트 맥주 - 내일은 반짝반짝 빛날
염태진 외 지음 / 애플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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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수제 맥주를 별개의 풍미로 즐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원래 유럽 등 맥주의 본고장에서는 지역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수제 맥주가 발달했었으며 이런 문화가 근사하다며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이 늘어났으며, 한국산 병입맥주, 캔맥주가 별나게 맛이 없다는 불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나만의 레시피를 정해 두고 즐기는 분위기인데 맥주라고 딱히 예외를 둘 이유도 없습니다. 이 책 추천사 p3을 보면 "모든 맥주에는 사연이 있다"라든가, 맥주를 음식(끼니)의 일종으로 간주한다든가 재미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여섯 명의 저자가 자신들이 평소에 즐겨 찾는 브루어리, 브루펍 등을 소개하는 형식입니다. 인천, 전주, 경북 의성, 강원도 강릉, 부산 등 전국 곳곳의 명품 맥주에 대해 독자들은 이제 알 수 있습니다. 제5장에서 차은서 필자는 뉴잉글랜드 IPA라고 하셔서 미국 동부에서의 추억을 소개하시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홍대에 직영 펍을 운영하는 제조원이었습니다. 문장들도 시적으로 참 잘 쓰셔서 이 책이 맥주 소개서인지를 잠깐 잊기도 했습니다. 매 챕터는 "브리지"를 통해 다음 장으로 연결되는데 마지막 6장의 브리지에는 필자가 송효정씨라고 나옵니다.

"의성 하면 마늘만 유명하다는 착각(p35)." 의성이라고 할 때 마늘을 대뜸 떠올리는 사람도 요즘은 드물 만큼 지방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 김예지 대표는 이곳에 "호피홀리데이"라는 맥주공방을 지었다고 나옵니다. 뭔가 이름도 귀여운 느낌입니다. 호피에 둘러싸여 따뜻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랄까. p44이 소개되는 메뉴는 홉희홀리데이인데 이는 김 대표가 어머니께 헌정하는 IPA(고도수 에일)이며, 성광성냥의 폐업을 아까워하는 사연을 담은 성광포터도 있는데 홉보다는 몰트가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염태진 기자가 이 1장을 집필했습니다.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다룬 글을 보면 상생의 경제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정동진영화제(p105)에서는 지역의 소상공업자들을 초청하여 차례주, 하이볼, 소시지 등의 레시피를 공유한다고 하는데, 이로써 개성 있는 향토의 맛이 일정 지역에서 통일성을 형성하여 타지 관광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효과가 생기는 거죠. 슈타인도르프(p112)는 무슨 독일 어딘가의 명소인가 싶어도 서울 방이동 먹자골목의 어느 브루어리 이름인데 강태순 대표라는 분이 꽤 이른 시기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처럼 주세법이 개정되고 나서 더욱 번창했으며, 이성준 필자는 "맥주는 술뿐 아니라 그 환경을 함께 즐기는 것(p119)"이라는 지론을 폅니다.

크래프트맥주의 주재료가 홉(hop)이다 보니 이 말이 들어간 독특한 이름이 많기도 합니다. p159를 보면 "호피"라는, XS ROOM 고유의 메뉴가 있는데 이게 hoppy 같은 표기가 아니라 한자로 호피(虎皮)라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진짜 호랑이가 아니라 여길 드나들던 길고양이한테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이라니 더욱 흥미롭네요. 원래는 "칼리가리박사의 밀실(1920년대 독일 무성영화 고전)"이었던 인천의 어느 펍은 그 개성넘치는 이름을 버리고 인천맥주로 간판을 바꾸었는데 장샛별 필자가 정리한 그 사연도 재미있습니다.

경북 안동이라고 하면 소주만 유명한 줄 알아도 저 풍산읍에 독특한 브루어리가 있습니다(p215). 고제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고제는 高製 같은 게 아니라 독일 중부 고슬라 소재의 강 이름 Gose입니다. 과일과 매칭이 잘되는 신맛이 일품이며 그래서 김삼응 필자는 앞에서 강릉의 감자브루어리를 소개할 때도 감자가 어떻게 고제 스타일과 조화되는지 설명을 자세히 했었습니다. 안효균 필자가 소개하는 부산의 와일드웨이브(p285)의 김관열 대표는 맥주를 연구하기 위해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분인데, 구도심의 맥을 이어가는 영도의 독특한 지리적 개성까지를 잘 살리는 펍의 번창함은 그의 노력에 기댄 바 큽니다.

우리 나라에만도 이런 맥주 명소들이 제각각의 풍미를 열심히 빚는 줄 처음 알았으며 장맛 못지 않은 뚝배기의 멋인지 필자들의 글솜씨도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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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왜 지금 노무현인가
이장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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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이 끝난 후인 1988년 중앙일보는 지면에 <청와대 비서실>이란 기획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 김진, 오병상 기자 등의 취재력, 필력 등에 힘입어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 받으며 당시에는 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할 때 필수 화젯거리였다고도 전합니다. 지금 이 책도 중앙일보 지면, 온라인에 실제로 연재되었던 컨텐츠이며 그런 역사적 맥락까지 더해지니 더욱 흥미롭고 의미도 깊어지는 듯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국 현대사는 군사정변, 대규모 시위, 끝없는 극한의 정치투쟁 등으로 점철되어 결코 가볍게 커버될 수 없는 성격의 연대기지만, 그래도 박정권, 전정권 등의 시기를 다룬 책을 볼 때에는 뭔가 억눌렸던 표현의 욕구가 분출된다거나, 절대 권력의 몰락, 퇴장 과정의 폭로를 구경하는 쾌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를 다룬 기록을 읽을 때에는, p17에 나오는 대로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다 알기 때문에 뭔가 불편하고 무거워지는 마음입니다. 아무튼 저자들의 기획 의도대로, 역사의 밝은 면이건 그렇지 않은 부분이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는 우리 사회의 권력이 근본에서부터 교체되는 시기였고, 이때 나라 일에 참여한 인사들 중 몇 사람은 지금 신정부에서도 (우여곡절을 거쳐) 중요 포스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p58에 나오는 강금실은 문재인 비서실장이 법무장관으로 추천한 사람이었는데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에서였으며 얼마 전까지 더불어민주당 대선 선대위에 소속해 있었습니다. p62를 보면 김진표(p294에 그와의 짧은 대담이 있습니다), 우원식 등 최근의 두 국회의장도 2004년 17대 총선 때 초선으로 원내에 입성했다고 나옵니다.

김진표씨는 그전부터 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였고 이헌재씨(p282)는 1998년부터 이미 중용되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 역할을 했던, 국민 대다수가 그 얼굴을 알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첫째, 둘째 경제부총리였습니다. 또 국무총리는 고건씨였는데 전북 출신, 엘리트 행정 관료로서 대한민국에 그만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 없었습니다. 1998년에는 서울시장에 출마도 했었는데 한나라당의 최병렬씨를 꺾고 여유 있게 당선되었습니다. p175를 보면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씨와 "미스터쓴소리" 조순형씨가 악수하는 사진이 있습니다(두 사람은 지금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위해 만난 것입니다).

p112에서는 SK 비자금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당시의 사진이 나오는데 아직 젊었던 시절의 한동훈 검사가 찍혀서 눈길을 끕니다. 그 사람인 줄은 알겠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이 사람이 이때에도 중요 현장에 있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p126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사진이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인 시절에도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번거로운 일들을 손쉽게 처리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p138을 보면 그가 만든 이지원에 대한 회고가 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는 근검절약하는 풍조가 없고 어디에서건 거대 부실 요인이 잠복하여 거시경제를 위협한다는 게 어제오늘의 사정이 아닙니다. p215를 보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여파로 90조원 가까운 규모의 카드채가 부도 직전까지 갔던 2003년의 사정이 회고됩니다. 국가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이를 막으라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였는데, 이때 어설프게 방치했다가는 바로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상황 판단에서였습니다.

이라크전은 명분이 부족하여 미국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지만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워낙 강력하게 요청하여 어쩔수없이 파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나옵니다(p298). p379에는 김경수, 김종민 등의 비서관들과 가진 짧은 인터뷰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지금 모두 거물로 성장했습니다. 자신을 던져 폐족 전체를 구한 과감한 승부사로 유인태씨(전 국회 사무총장)는 평가하는데 매우 울림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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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흔, 시작하기 좋은 나이
장연이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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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의 프롤로그에서는 저자께서 한스밴드의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노래에 대해 언급합니다. 저자는 학창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 중 생물 과목(현재는 생명과학) 교사분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시는데, 저 곡이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삼은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글의 제재이기도 해서 언급이 됩니다. 한스밴드는 자매들로 이뤄진 일종의 걸그룹이었는데, 비슷한 시기 캐나다의 보이그룹 모패츠도 형제들로 주로 구성되었었습니다. 그런데 KBS 2TV <이소라의 프러포즈>에 이 두 팀이 함께 초청되었을 때 모패츠가 너무 한스밴드를 데면데면하게 대해서 시청자가 다 민망했던 기억입니다. HOT의 당시 히트곡 <위 아 더 퓨처>가 영상과 함께 나올 때에는 마치 팬들처럼 좋아하던데 말입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꺼내고, 나아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되기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학창 시절에 교단에서 자신을 가르친 학교 교사들에 대해 다소간의 환상이나 좋은 추억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원래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집안의 반대 때문에 간호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관련 직종에서 업무에 종사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했으며 자녀들도 두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왜 신체장기인 심장(心臟)은 그 이름이 '심'장일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p20). 마음에서 내 영혼이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적으로 이 설명이 타당하고 않고를 떠나, 결코 꿈을 버릴 수 없다는 메시지에 우리 독자들은 공감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임용고시는 난이도가 낮은 시험이 아니며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중등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건, 이 시험을 통과해도 중등교사직이 보장되는 건 아니며 교사가 되고 나서도 여러 난관이 기다린다는 점입니다. 한창 머리가 잘 회전할 때에도 시험 합격이 쉽지 않은데, 마흔의 나이에 임용고시에 재도전한다는 건 정신적으로 엄청난 각오, 물리적으로 상당한 양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레서 기어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지금보건교사로 일하고 계신 저자의 성취가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수험생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20대의 내가 치른 임용고시는 하는 척만 하는 공부였다.(p45)" 20대의 저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공부하며, 그래서 성적도 오르지 않고 몸과 마음은 그것대로 괴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공부는 당연히 공부 효과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인데도 당사자는 뭔가 이타적인 거창한 일에나 자신을 희생한 양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 엉터리 공부를 할 바에는 차라리 삼각지나 영등포에 가서 밤새 술마시며 노는 것만도 못합니다. 이 책에서는 나이 마흔에 진짜 공부에 대해 눈을 뜬 기록도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어떤 체험과 환경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는지가 중요합니다. p100을 보면 저자는 코끼리 사슬 증후군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께서 전직 간호사이시니 이 주제에 대한 설명이 더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슬에 묶여 지낸 아기코끼리는 성체가 되어도 말뚝을 벗어날 줄 모르고 주변을 맴돈다는 건데, 그래서 사람은 단 한 번이라도 껍질이 째지는 아픔을 정면으로 겪어야먄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p144 이하를 보면 머리의 길이(여성의 경우), 시간 관리, 식단 등 수험생이 수험 기간에 어떻게 자신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암기는 뇌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아침과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p167)" 또 저자는 공부를 할 때 이 시각부터 이 시각까지 떼어놓고 외워야지 같이 거창하게 마음먹지 말고, 틈새 시간을 활용하라고 권합니다. 조직화, 정교화, 이미지화, 맥락화, 심지어 노래화 등 암기하는 방법은 무척 많은데 이 중 자신에게 맞는 기술이 무엇일지도 상황에 맞게 알아내야 합니다. 자기주도로 공부하여 실제로 원했던 결과를 이뤄낸 분의 강한 성취감과 자신감이 곳곳에 배어나는 책이라서 수험생들이 정보, 동기부여뿐 아니라 좋은 기운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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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나와 고시원을 차렸습니다 - 교사에서 고시원 원장이 된 인생 커리어 전환기
노지현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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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중학교 과학 교사로 근무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이어오던 분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퇴직하고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다소 당혹스럽다 할 고시원을 창업했다고 하십니다. 안정된 교직원 생활을 그만두고 위험이 따르는 자영업을 시작하신 것도 의아하지만, 업종이 고시원인 것도 눈길을 끕니다. 과연 창업의 결과는 어떠했으며 업종 선택을 그리하신 데에는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매우 궁금했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께서 상당히 실리 위주의 냉혹한(?) 가치관을 갖고 계시며, 주변 사람들과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연을 이어왔건 간에 여기까지가 한계다 싶으면 단칼에 자르는, 매우 단호한 현실주의자이며 연세는 꽤 많으실 것으로 제 마음대로 짐작했습니다. 그런 선입견은 몇 페이지 넘기고 나서 바로 깨졌는데, 일단 저자는 자신의 제자들과 꽤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해 오던 분 같았습니다.

책 곳곳에 노래 가사들이 인용됩니다. 그 노래들 중에는 저자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들이 부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 가사가 저자의 낭만 가득했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저자는 (제 예상과 다르게)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떤 때묻지 않은 이상상을 지니고 일해 온 분으로 보였습니다. 오히려 영악한 요즘 아이들이야말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갭을 지적하며 선생님의 이상주의를 동정하는 것으로도 느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라던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내가 큰 괴리를 보인다고 자각하기 시작할 때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저자가 여성이니 그 고통이 더 심했을 수 있습니다.

2021년은 워킹맘이기도 했던 저자가 44세였던 해로, 한국인들이 코로나 때문에 고생하던 구간의 끝물입니다. p68을 보면 저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당할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두고두고 당사자를 괴롭히더라구요. 저도 어떤 버스 기사가 뒤에서, 심하게 직접 치인 것도 아니고 살짝 추돌한 정도로 탑승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었는데도 제법 후유증이 길어서 이런 사고를 결코 예사로 볼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교통사고나 몇 페이지 뒤에 나오는 버스 운전수의 불친절 같은 게, 저자의 인생에 어떤 큰 상처를 남기거나 해서 이 책에 기록이 있는 게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을 지날 때 그런 일들조차 큰 충격, 불안(의 상징)으로 다가왔을 만큼 저자가 본래는 심약한 분이었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의도 같았습니다.

창업이란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닙니다. 저도 어제 장을 보다가 또 주인이 바뀌거나 리모델링을 준비 중인 어떤 마트에서 사장님 부부가 열심히 방향성(...)을 두고 토의하시는 걸 봤는데, 누구나 처음에는 이렇게 하면 실패란 없을 것 같고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성공에의 길이 기다릴 것 같아도 막상 해 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같은 교육 관련으로 업종을 고르시지도 않고, (p78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연금 나오려면 저자한테는 아직 한참 멀었는데 퇴직금만 까먹고 버틴다는 건 정말 불안해서 못 버틸 일입니다. 처음에는 강연자라는 직업을 택하시려고 했는데 말이 좋아 강사지 과연 그 일로 생계 유지가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서셨다고도 나옵니다.

고시원 창업 후 이야기에서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페인트 냄새 때문에 괴롭다는 컴플레인을 처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자영업에 대한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들려 주는 어떤 사장님의 책을 읽고 많은 점을 배웠더랬는데, 그 중 하나가 "진상을 응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보면 그 저자분은 인상도 장난 아니었는데, 자영업 사장님은 이처럼 첫인상에서부터 진상을 압도하고 들어가는 포스가 있어야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 저자분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입주인들에게 사과의 뜻으로 선물부터 돌렸다는 쌩초보 사장님이신 이 책 저자의 말씀을 들으며 이번에는 조마조마하게 책장을 넘겨 나갔습니다. 과연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제넘은 걱정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고정비 지출은 계속 발생하는데 공실이 생기고 신규 입주 문의가 없으면 그것만큼 초조하고 난감한 게 없다고 하십니다. 단기로 머무는 이들에겐 쾌적한 게 최고인데 인근 고시원에서 인테리어를 새로 했다면 그 역시도 신경이 쓰입니다. 무엇보다, 현금 유입의 들쭉날쭉함이 가장 큰 고충인데 각각 장점을 달리하는 두 입지의 고시원을 매입하여 운영하니 한 군데가 힘들어도 다른 데서 보충이 되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솔직하고 현실적인 고충 토로, 교훈이 많아서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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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AI 전쟁 (DeepSeek AI WAR) - 빅 브라더 중국 AI 굴기, 딥시크 모델 분석, 중국 현지 특파원과 AI 전문가가 들려주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빅브라더 중국 AI이야기
배삼진.박진호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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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올해초 DeepSeek라는 생성형 AI를 자체 개발함으로써 전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일단 중국 같은 신흥국의 스타트업이, 미국의 오픈AI社(라든가 구글)처럼 천문학적 자본을 끌어다대지 않고 훨씬 적은 투자만으로, 또 엔비디아에서 만든 고성능 칩을 쓰지 않고서도(일단, 그렇게 보입니다) 대단한 일을 해 냈기 때문입니다. 이 성공 후에 중국의 여러 다른 기업이라든가, IT 섹터를 넘어 산업 전반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서구권  자본도 중국 증시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비록 지금 불황을 겪고 있다고는 하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예전의 활기를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중국을 향해 다시 싹트는 듯도 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딥시크의 창업자는 p80에 나오듯이 량원평(梁文鋒. 양문봉)이라는, 아직은 젊다고 할 1985년생 기업가입니다. 조직 운영은 철저히 실력주의에 기반한다고 나오며, 인재를 채용할 때에도 마치 생성형 엔진을 개발할 때 LLM을 돌리듯, 서류전형이나 면접만으로 사람을 뽑지 않고 철저히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여러 단계를 거쳐 딥시크에 소속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챗지티피를 포함하여) 모든 생성형 엔진이 "사고"라는 작용을 온전히 수행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방송이나 애널리스트의 레포트를 읽어 보면 추론, 맥락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 아무도 못 갔습니다. 이런 말을 믿고 섣부르게 투자를 했다가 큰 낭패를 보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p83을 보면 딥시크는 "차원 축소 분해법"으로, 지원자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본다고 하는데, 과거에는 중국보다 한국의 HR이 뛰어나다고 했습니다만 지금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채용 단계부터 이 정도이니 회사 들어와서는 얼마나 뛰어난 인재가 되겠습니까. 이런 인재가 결국은 추론도 사고도 해 내는 엔진을 만드는 것입니다.

p119를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딥시크가 중국 AI 산업의 정점에 있다면, 마누스(Manus)는 그 반대편에서 현실을 마주하는 전략의 이름이다." 마누스는 모니카 AI에서 개발한 또하나의 엔진인데, 이 책에서는 "딥시크와는 또다른 길, 즉 저비용, 저컴퓨팅 최적화를 선택한 실무형 LLM"이라고 소개합니다. 한국은 아마추어 동호회 수준의 이해가 고작이거나, 플랫폼이란 미명 하에 자릿세나 받아먹을 생각에만 골몰하거나, 챗지피티 원형의 AI 한 방향으로만 관심이 쏠렸을 뿐이지만 중국의 젊은 개척자들은 청춘을 저당잡히고 이처럼 원대한 미래를 내다보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년 후 한국은 과연 뭘 먹고 살고 있을까요?

중국에는 저런 신생기업 말고도, 이미 세계의 거인으로 취급받는 BATX, 즉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샤오미 등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원래 BATX에는 화웨이가 안 들어갑니다만 이 책에서는 편의상 같은 챕터에서 논의합니다(p122). 이들은 이미 스마트팩토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서서히 높아지는 (중국 내) 인건비의 압력을 우회한지 오래이며 한국 기업들에 못할 바 전혀 없습니다. 다만 p147을 보면 중국 전체 거시경제를 지탱하려면 여전히 농업, 제조업, 유통업, 자영업이 잘 돌아야 하는데 마치 한국처럼 이 분야가 고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이 어렵다는 소리는 여기가 기대만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앞에서 딥시크의 성공이 놀라운 이유 중 하나가 엔비디아산 고성능 칩을 쓰지 않고도 H800 같은 자체 칩으로 비등한 성과를 내어서라고 했는데, p171에 그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아키텍처가 우수해서인데(다른 이유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들죠), 자체 최적화한 혼합 전문가(MoE. 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라고 부릅니다. 원형은 미국의 학자들이 얼개를 만들고 예측했겠지만 산업의 현장에서 물건을 만들게끔, 서비스를 행하게끔 구체화한 건 젊은 중국인 개발자들입니다. 이렇게 현지화하고 토착화하는 단계까지 벌써 도달했다는 게 무서운 점입니다.

이게 그저 평탄한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도 아닙니다. p224를 보면 미국은 2023년부터 그물망 전략을  채택하여 중국을 압박했고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했으며 "넓은 뜰, 높은 담"을 만들어 기술 봉쇄구체화했다고 나옵니다. 세상에서는 지금 전쟁이 벌어지는 판이니 누굴 원망하고 한탄할 여지도 없고, 중국이 이런 도전에 제대로 응전했다는 평가를 할 뿐입니다. 소프트웨어 최적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동 설계(한국이 가장 힘들어하는 분야죠), 게다가 오픈소스 전환이라는 전략까지 채택하여 더욱 공포감을 부릅니다. 정부와 기업 간의 치밀하고 유기적인 협력으로 데이터 관리가 이뤄지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AGI 문제가 심도 있게 다뤄지는데 예전부터 중국은 자신들의 체제가 정보화 사회, 빅데이터로 사회가 더욱 자동화하여 작동하는 세상에서는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르기도 하는 상황인데, 과연 인류가 이 성장의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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