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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익스포저 (포토에세이) ㅣ 듄 시리즈
그레이그 프레이저.조쉬 브롤린 지음, 채효정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평점 :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은 발표된 지 반 세기가 훌쩍 넘은 SF 고전입니다. 40년 전쯤에 영화로도 한 번 만들어졌는데 감독이 무려 데이비드 린치였고 폴 아트레이더스 역에 카일 맥라클란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쇼걸>에서 남주 포지션, MBA 소지 카지노 부장이었던 양갈래 머리 영앤리치 역이었던 그 배우입니다. 2020년대 리부팅 시리즈에서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티모시 살라메가 나오죠. 사실 데이비드 린치는 위대한 감독이기는 해도 <듄> 팬들이 원하던 실사판에는 그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984년판은 그 캐스팅에서 카일 맥라클란(주인공)이 제일 지명도가 떨어지는 배우였고, 막스 폰 시도, 실바나 망가노, 호세 퍼러, 패트릭 스튜어트, 숀 영, 버지니아 매드슨(프린세스 이룰란 역), 위르겐 프로흐노, 그리고 가수 스팅도 나옵니다. 완전 초호화 캐스팅이었는데 제 생각에는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만 고집한 데이비드 린치의 잘못으로 저 1984년 기획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영화가 졸작이었다기보다, 팬들이 원한 게 그게 아니었던 거죠.
지금 이 책은 2021년에 개봉한 드니 빌뇌브 판에서 거니 할렉으로 나온 조시 브롤린, 그리고 드니 빌뇌브와 이번에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촬영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여러 아름다운 스틸컷과 비하인드 샷과 함께 텍스트를 썼습니다. 이런 영화, 대작 원작이 있는 판타지 장르는 촬영감독이 또한 중요한데 1989년작, 그 말이 많았던 팀 버튼의 <배트맨>도 사실 저는 촬영감독 로저 프랫이 기대만큼 못해줬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2021년판 <듄>은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연출자 빌뇌브와도 호흡이 잘 맞았고, 제작진의 의도를 알아서 잘 읽어내어 대형 기획을 성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저는 봅니다.
조시 브롤린은 <노인을 위한...>에서 갱들에게 쫗기고 살인마와 대립하던 그 퇴역군인 역이었고, MiB에서 요원 K(의 젊은시절)였던 배우이기도 합니다. 심각하고 핸섬하며 중후한데 웃기기도 하죠. 아쉽게도 이 책에는 페이지 마킹이 없어 제가 쪽수 인용을 못하겠는데, 중간쯤에 보면 "친애하는 드니(에게)"라는 설루테이션으로 시작하는 짧은 글이 있습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로케이션된 이 영화를 찍으며 브롤린은 내가 지금 (역에 깊이 몰입하여) 노래 한 곡조 뽑으려는데 한번 들어 보겠냐며 (브롤린이 아니라) "거니"라고 클로징 시그니처를 적습니다. "드니(Denis)"와 "거니(Gurney)"의 라임을 맞춘 것입니다.
장대하게 펼쳐진 사막을 보면 인간은 할 말을 잠시 잊습니다. 1961년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스페인과 요르단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요르단, 조금 내려와서 페르시아만을 바라보는 UAE 아부다비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dune은 그저 모래언덕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에 불과하지만,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과 빌뇌브의 이 대형기획 덕에, 이제는 뭔가 다른 울림을 갖는 이름으로까지 격상된 듯합니다. 원작소설 제목도 관사 없이 그냥 Dune입니다. 이 책에 포함된 많은 사진들도 배우들의 깊은 주름, 정신없는 컬 뒤에 아스라이 자태를 드러낸 배경으로 크고작은 모래언덕들이 나옵니다.
"발이 빠지지 않게 걷는 데 우리 모두가 익숙해졌으므로 아무도 샌드백(이라는 이동도구)을 쓰지 않는다." 이런 대작의 촬영은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스탭들이 참여하는 중노동입니다. 앞으로 생성형 AI가 완전히 활성화하여 CG도 모두 대체하고 사람은 그저 컨셉만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컨텐츠에서 과연 관객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듄의 캐릭터들이 걸친 코스춤, 수트들은 원래도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이 책에 실린 많음 사진들에서는 더욱 기괴하게 보입니다. 얼굴이 익은 배우들도 하나같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상당수가 흑백으로 찍힌 사람들과 언덕들을 담은 사진들이 또한 아름답습니다.